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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노조키메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7.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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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14.10.22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하기다.

보다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시작 단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설계하기보다는 일단 시작하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 더 낫다.    

'하기 싫다, 어떻게 시작하지, 얼마나 걸릴까' 등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에너지만 소모할 뿐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와. 미쓰다 신조도 어느 정도 끝이 보인다.

<도조 겐야 시리즈>와 <사관장>, <백사당>이라는 큰 덩어리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겠지 정도의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끝은 반드시 온다.

 

<노조키메>는 취향을 탈 수 있는 작품으로 추리를 선호하는 분들께 잘 맞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괴담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 평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으스스한 분위기와 특이한 장례 풍습,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의 뒤바뀐 운명 등이 <사관장/백사당>을 떠올리게 해서 읽는 동안의 만족도는 높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이자와 소이치가 '한 사람마다 하나의 묘를 쓰는' 것을 특이하게 여긴 부분. 가족묘의 경우는 합장이 보편적인 걸까?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개인 묘패를 쓴 장면에서 이런 표현이 없었기에 눈에 걸렸다. 

 

또 하나의 단상은, '일본에서는 사람을 공기 취급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 화자가 그런 취급에 분노하는 장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놀라기보다는 '그런 일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 친구가 당했다니'에 가까운 감상이다. 뭐랄까. 콕 집어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진다.

 

나물, 협죽도 등의 식물들이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건 '노조키메'가 '노조키네(除木根)', 즉 나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까. 

 

즐거웠다.

집안에 어두운 구석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수면등을 주문해야 할 것 같다.  

 스윽, 스윽, 스윽.

 

 


 

 

"어째서죠? 왜 이 노트를 읽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 오니까."
"네?"
"그것이 엿보러 오니까..."

 

 


- 세상에 기담과 괴담을 좋아하는 이는 많다. 무서운, 불가사의하고 기분 나쁜, 오싹하고 섬뜩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너무나도 기묘한 그런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중에서는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직접 괴이담을 수집하기 시작한 인물도 있다. 유명한 사례로는 중국 청나라 전기에 기록된 포송령 蒲松齡 의 <요재지이 聊齋志異>나, 일본 에도시대에 정리된 네기시 야스모리 根岸鎮衛의 <미미부쿠로 耳嚢> 등이 있을 것이다.  

- 포송령은 산동 지방의 문인으로, 소년기부터 수재로 이름났었지만 장성한 뒤에는 관직시험에 몇 번이나 낙방했으며, 그 좌절한 마음이 <요재지이>로 결실을 맺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통행본으로 전 16권, 445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고 있다. 

- 네기시 야스모리는 고케닌카부(御家人株; 무사의 신분. 에도 시대에는 궁핍해진 무사가 신분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표면적으로는 구입자를 양자로 들이는 형태로 권리를 넘겼다-역주)를 사서 네기시 가의 양자가 되어 그 집안의 장자권을 상속함과 동시에 두각을 나타낸 막부의 신하로, 재정을 담당하는 칸조부교나 행정 사법을 담당하는 미나미마치부교 등을 역임했다. 사도 섬을 다스리는 사도부교 시절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써서 남긴 것이 전 10권에 1천 편에 이르는 <미미부쿠로>다.

- 이 두 가지를 예로 든 것은, 포송령이 구전되던 기이한 설화나 고사를 모은 데 반해 네기시는 동료나 지인이 체험한, 혹은 들은 기묘한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양자를 비교해 가며 읽은 경우, 전자보다는 후자에서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가나 시대나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담겨 있는 이야기가 지닌 일상성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갑자기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불안이, 항간의 기담 수집본이라고 불리는 <미미부쿠로>에 붙어 다니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가 그저 괴이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서민의 실제 풍속까지 담은 내용이었다는 점도 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네기시가 거기까지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멋들어진 연출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나 내가 괴담과 기담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 물론 이러한 선인의 발치에는 미치지도 못하지만, 나도 편집자 생활을 하던 20여 년 전부터 기회가 날 때마다 괴이담 수집을 해왔다. 다만 작가가 된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확 줄어버려서 유감스럽게도 최근 수년간은 거의 수확이 없다. 근본적으로 내 작업은 문헌이 중심이라 원래부터 취재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적다.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목적이 확실하므로 대부분은 주된 화제만 나누고 끝나버린다. 도저히 괴이담 같은 것을 들을 기회가 없는 실정이다. 

 

- 하지만 편집자 시절에는 달랐다. 면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그 분야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게다가 기획 단계부터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화제가 이쪽저쪽으로 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와중에 이때다 싶은 타이밍을 잡아서 상대로부터 무서운 이야기나 기묘한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하곤 했다. 즉 대화에 여유가 없으면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목적이 확실한 취재가 그것 자체가 괴이담 수집을 의도한 것이 아닌 한 수집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다. 

-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이 이야기해 준 괴담과 기담을, 당시의 나는 부지런히 대학노트에 정리했다. 컴퓨터를 구입한 뒤로는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노트에 적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언젠가 '실화괴담집'으로 간행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적어두는 것을 좋아해서 취미 삼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작가가 된 지금, 이 대학노트는 정말 요긴한 존재다. 이때에 모았던 괴담과 기담을 바탕으로 이따금씩 괴기 단편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실명이나 지명은 가명이나 이니셜을 쓰거나, 말투를 소설 스타일로 바꾸거나 하는 등 나름대로의 배려는 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바꾸지 않는다. 당시의 내가 들었던 내용을 독자에게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전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 하지만 그래도 발표를 자제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몇 가지 존재한다. 관계자가 아직 살아 있거나 혹은 무대가 된 지역을 특정하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까. 후자는 조금 변형하는 정도로는 아무 소용없을 정도로 그 괴이담이 그 지방의 특성에 뿌리내리고 있는 경우로, 왕왕 차별 등의 다른 문제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 또한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거나 글자로 적거나 하면, 들은 사람과 읽은 사람도 괴이 현상에 노출되어 버리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다르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는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괴담과 기담을 원하는 단계에서, 그 사람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희구하며 일부러 귀를 기울이거나 눈으로 보거나 함으로써, 그 사람은 스스로 괴이한 존재를 부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괴이 현상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도 배려는 하지 않는다. 그런 행위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실례일 것이다.

- 다만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앞서 이야기한 이유도 포함되지만, 결코 그것만은 아니란 기분이 든다. 굳이 말하자면 시기상조라고 할까. '아직 발표할 때가 아니다. 이 이야기에는 뒤에 이어지는 것이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고, 애초에 괴담과 기담에 완결을 원하는 것은 뭘 모르는 행동이다. 오히려 이야기 도중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 쪽이 더 무섭기도 하다. 굳이 말하자면 나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 이 책의 단서는 아직 내가 간사이 지방에 머무르며 편집자 일을 하던 시절, 모 기획을 위해 몇 번이나 만나서 의논했던 ㅇㅇ대학부속초등학교 교사인 토쿠라 시게루(利倉成留)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남자와는 나이도 엇비슷하고 독서 취향도 유사해서 마음이 맞은 덕분인지 금방 친해졌다. 일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잡담을 하는 일도 많았고, 따라서 괴담이 화제에 오를 때까지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 토쿠라 시게루는 쇼와시대(일본의 연호 중 하나로 1926년부터 1989년까지를 말한다-역주)가 얼마 남지 않은 -나중에 생각해 보고 안 것이지만- 학생 시절의 어느 해 여름, M지방의 임대 별장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무서운 체험을 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함께 정말 오싹한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에 들었던 토쿠라의 체험담에 나는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문제의 마을 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뭔가 관계가 있을까요?"
"그것도 포함해서, 저희들이 체험했던 괴이한 일에 대해서는 그 집이나 그 마을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조사해 보면 혹시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토쿠라는 그렇게 대답한 뒤,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괴이한 현상과 맞닥뜨렸을 때는 다들 그럴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간신히 차분함을 되찾았을 무렵에는 저 역시 졸업논문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조사해 볼 짬도 없어졌으니까요... 아니, 사실은 그런 체험 따윈 얼른 잊어버리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팽개쳤던 거죠." 
"무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3자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당신이 처음입니다."

 

- 나는 맞장구를 치거나 감사를 표했을 뿐, 특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저택이나 촌락에 어떤 복잡한 내력이 있는 듯하다는 점은 일찌감치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직접 그것을 조사할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기담과 괴담에 대한 나의 자세는 같았다. 
'아, 무서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 따윈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실은 이런 인과응보가 있어서'라는 식의 설명 따윈 전혀 필요 없다. 괴이한 일은 어디까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토쿠라 시게루의 체험담도 대학 노트에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거기에 자신이 조사한 사실 괴이의 배경이 되는 것이 틀림없는 과거의 사건을 나중에 덧붙이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트에 다 기록하고 난 후 수집한 다른 괴이담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 이 이야기가 기억의 바닥에서 되살아난 것은 작가가 된 뒤의 일이다. 수집한 지 10여 년은 지났을 무렵에 <이형(異形) 콜렉션> 시리즈 <귀신의 집>의 집필 의뢰를 받았을 때였다. 예전에 이 테마에 딱 맞는 내용의 체험담을 듣고 적어두었던 것을 떠올린 나는, 낡은 대학노트를 꺼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엿보는 저택의 괴이>다. 다시 읽어봐도 <귀신의 집>이라는 테마에 딱 들어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나는 주저했다. 어느 정도의 각색은 필요하다고 해도, 이 이야기를 이용하면 집필이 상당히 편해진다. 오히려 의뢰받은 원고 매수로는 다 쓰기 부족할 정도로 꼼꼼히 취재되어 있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을 정도다.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소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망설였다. 
'여기서는 아니다...' 
어째서인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여기서 발표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 오해가 없도록 적어두는데, <이형 콜렉션> 시리즈가 발표 매체로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내 보잘것없는 괴이담 수집의 성과를 보이는 데 이 정도로 어울리는 자리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결국 나는 자신의 몇 안 되는 괴이 체험 중에서 테마에 맞는 <내려다보는 집>을 소개하기로 했다. 타인의 체험보다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 쪽이 독자에게도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며 조금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켰던 기억이 있다. 

-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가 바뀌는데, 이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나는 빙의물 신앙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세면 8년 전이 될까.
그때 나는 이제까지 집필했던 <기관(忌館), 호러 작가가 사는 집>으로 시작하는 <작가 3부작>이나 그 관련작과는 별개의 새로운 소설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것은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을 노리는 작품이 되어야 했다. 졸작인 <작가 3부작>으로도 두 장르의 하이브리드가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그 융합된 수준에나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 한쪽이 주가 되고 다른 한쪽이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농후하게 양자가 뒤섞인, 그야말로 혼돈 상태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 

 

- 거기서 선택한 것이 빙의물 신앙이었다. 이 테마와 아이디어의 결합이 그대로 호러와 미스터리의 혼합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직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장편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다이 책에서 나는 빙의물 신앙에 지배된 가가구시 촌이라는 기묘한 촌락을, 문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창조해 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니, 이야기가 엇나가버렸다.
어쨌든 나는 그 무렵에 빙의물 신앙에 관한 취재에 전념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어떤 문학상의 파티 자리에서 라이터인 나구모 케이키(南雲桂喜)를 소개받았다. 나구모는 호러와 미스터리 서평부터 심령 스폿의 탐방기사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에서의 미스터리 소재라면 뭐든지 다루는 라이터로, 나도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의 서평을 제외하고는 그의 문장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면식도 전혀 없었다. 그런 나에게 파티에서 나구모를 소개한 것이 미스터리 평론가인 센가이 아키유키(千街晶之)였다.
"분명히 말이 잘 통하실 겁니다."
정말로 센가이의 말대로였다는 점에는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나구모와 편집자 시절의 나는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자기는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고, 대부분 다른 사람의 현지 조사자료만을 참조해서 원고를 쓰는 학자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이런 방면의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잘난 듯이 휘갈기기도 하죠. '네가 조사하라고!'라고 딴죽을 걸고 싶어집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두 사람 다 쓴웃음을 지었지만, 나구모는 금세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이자와 소이치의 저작물 중에서 실은 단 한 번밖에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괴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네?!"
"스쿠자 산지에 '노조키네'라고 불리는 괴물의 전승이 있습니다."
"어떤 한자를 씁니까?"
"기본적으로는 한자를 쓰지 않고 그냥 히라가나로 적습니다만, 한자로는 엿보다는 뜻의 사(覗) 자에 나무 목(木) 자, 아이 자(子) 자로 표기합니다." 

 

- 내가 머릿속에 '覗木子'라고 떠올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잠시 동안 공백을 둔 뒤에 나구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산의 나무 중에는 산신님이 깃들었다고 여겨지는 나무가 있잖습니까?"
"다른 나무들과 형태가 완전히 다른 나무 말씀이군요."
"그런 나무는 절대 베어서는 안 된다고 하죠. 스쿠자 산지에서 도 마찬가지라 그것을 '노조키네(除木根)'라고 부르며 구별했다고 합니다."
나구모는 다시 한자의 설명을 한 뒤에 말했다.
"그래도 깜빡하고 베어버린 사람이나 고의로 벌채한 못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 녀석이 있는 곳에 앞서 말한 노조키네가 찾아온다는 거죠."

 

- "네. 다만 괴물이라고 해도 그것이 못된 사람에게 앙화를 내리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냥 나타날 뿐이고,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죠?"
"베어서는 안 되는 나무인 '노조키네'를 벤 자는 이윽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주시당하고 있다는 감각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언제 어디서나 그것의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정신이 나가버린다...라는 모양입니다."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게 되는 거군요."

노조키네(木子)의 특이한 성질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나구모가 말을 이었다.
"상대는 괴물이니까 익숙해질 수는 없겠죠. 생각해 보면 유령이나 괴물 같은 존재는 그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조키네의 이런 방식은 꽤 효과적인지도 모릅니다."
나구모는 그렇게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 "그런데도 노조키네를 거론한 장의 말미에 기묘한 문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떤 거죠?"
거기서 나구모는 마치 애태우려 하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술을 다시 음미하듯이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안 보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노조키네에서 파생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에 노조키메가 있다'라는 문장입니다."

 

- 다만 묘하게 속뜻이 있는 듯한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말하자, 코스케는 다시 신음한 뒤에 입을 열었다.
"일솜씨가 좋은 건 틀림없어. 근데 그 사람에겐 별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어서 말이야."
"붙임성은 좋아 보이던데..."
"그렇다고 해도 너도 자료노트를 팔아넘기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라,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겠지?"
"... 맞아. 호감이 가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일부 편집자들 사이에서 나구모 케이키는 뭔가에 씌어 있다는 얘기로 유명해."
"문자 그대로 말이야?"
"그 녀석에게 진짜로 여우나 견신(犬神)이 씌어 있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괴이한 것에 대한 집념이라고 할까..."
"기담과 괴담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라는 얘긴가."
"그렇지. 때로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언동을 하는 모양이야. 그 덕분에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무슨 일에나 정도라고 할까, 절도가 필요한 법이잖아?" 
"그 사람은 그걸 이따금씩 넘어버린다는 건가?"
"그것 말고 금전적인 트러블도 있는 듯한데, 그 부분은 나도 잘 몰라."

- "하지만 그건 예상하고 있었고, 애초에 아이자와 가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 사람이 작성한 노조키메에 대한 자료를 찾아내는 것."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어조로 나구모는 선뜻 말했다.
"다만 집 안을 뒤질 수도 없어서 이 일에는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저는 아이자와 부인의 사업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부인의 사업?"
"아뇨, 사업이라고 하면 야단맞을까요. 아이자와 부인은 점술사입니다. 그것도 잘 나가는 점술사인지 집에는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손님 중에는 점술사보다는 기도사에게 가는 게 나을 것 같은 사람도 섞여 있더군요. 하지만 부인은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자세로 누구든 만났습니다. 아이자와는 그런 손님들의 상담 내용에 대단한 흥미를 보였습니다. 빙의에 관련된 상담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그 때문에 저를 서재나 서고에 혼자 놔둔 채로 부인이 있는 곳에 가버리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습니다."

- 집 수색, 탐색, 물색, 아무리 말을 바꾸더라도 나구모가 저지른 행위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도둑질이다. 그런데도 그는 웃는 얼굴로 아이자와가의 속사정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비난하는 듯한 나의 물음에 나구모는 정말 섭섭하다는 듯 반응했다.
"저는 10여 년에 걸쳐 아이자와 씨의 일을 거들어왔다고요." 
"그건 당신에게 불순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오랫동안 아이자와를 거들어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낡은 골판지 박스에 들어 있던, 아마 본인도 잊어버렸을 노트입니다. 잠깐 빌려보는 것 정도야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빌릴 거라면 정식으로 아이자와 선생님의 양해를 얻어야 합니다. 가령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그걸 멋대로 팔아버려도 될 리가 없잖습니까."
"물론 파는 것은 복사본입니다. 노트는 시기를 봐서 원래 있던 장소에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조금 전에는 분명히 노트 자체를 넘기려는 듯한 말투였다. 그것을 급히 복사본으로 변경한 것은 내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일까. 그렇지만 당연히 복사본이라도 절대 안 된다. 
"나구모 씨, 아이자와 선생님에게 들키기 전에 그 노트는 돌려놓는 편이 좋을 겁니다."
너무 강한 어조로 말해서 나구모의 태도를 딱딱하게 만들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완전히 호박에 침주기였던 것 같다.
"들키지 않을 겁니다. 당신만 알리지 않는다면."

- 무대가 된 마을도 집도 지금은 사라졌으므로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는 없다는 것, 이대로 노트에 기록된 괴이가 묻혀버리는 것은 한 사람의 민속학자로서 몹시 안타깝다는 것... 그런 내용이 아주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변호사 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다. 아이자와의 편지 내용을 간추려서 이야기하자, 변호사는 내가 그 노트의 정당한 소유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자와 부부에게는 자식도 친척도 없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만 그 내용에 대해서 변호사 사무소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발표함으로써 생길지도 모르는 문제에 자신들은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 그다음에 나는 나구모 케이키에게 연락했다.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어 있었지만 아는 편집자를 통해서 조사한 새로운 번호로 걸었더니 금방 본인이 받았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이번 용건을 전하자, 깜짝 놀라며 숨을 삼키는 기척이 나더니 잠시 말이 없어졌다.
"여보세요, 나구모 씨. 듣고 계십니까?"
그는 내 부름에 한동안 침묵으로 응하다가 가만히 말했다.

"... 손 떼는 게 좋을 거요."

"네?"
"그 노트의 내용은, 절대 읽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처음에는 '내가 아이자와에게 직접 노트를 받았기 때문에 나구모가 기분이 상한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의 어조가 미묘했다.

"어째서죠? 왜 이 노트를 읽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 오니까."
"네?"
"그것이 엿보러 오니까..."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팔뚝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다음 순간, 나는 5년 전에 있었던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 나구모와 바에서 헤어지고 2주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그가 이 노트를 보내왔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노트를 읽은 그의 신변에 뭔가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두려워진 그가 문제의 노트를 처분하려고 나에게 보낸 것은 아닐까. 
문득 떠오른 이 의문을, 나는 있는 그대로 나구모에게 물었다. 배려를 할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나구모에게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 나구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노트를 읽을 거라면, 어쨌든 각오해 두시오."
그 말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갑자기 나는 불안해졌다. 단순한 위협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이쪽에게 겁을 줄 생각이라면 좀 더 길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상대는 그런 쪽의 전문가이니까 효과적인 말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구모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되는 것을 두려워하듯이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떡하지...'
문제의 대학노트를 앞에 두고 나는 망설였다. 이대로 읽지 않고 봉인할 것인가, 나구모의 경고를 무시하고 읽을 것인가. 나는 어느 쪽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결정할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 다만 그런 갈등과 모순될지도 모르지만, 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자신이 결정을 내린 것을 알고 있었던 같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나란 인간이 괴이담을 좋아하는 괴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진해서 일부러 무서운 일을 당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령 스폿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장난 삼아 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런 공포를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괴담과 기담이다. '담(談)'이라고 불리려면 이야기여야만 한다. 그것이 이야기라면, 설령 들은 사람에게 괴이한 일이 생긴다는 충고를 받더라도 나는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작가가 되고 나서 이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런 주의를 받고 취재한 이야기로 괴기단편으로 발표한 작품도 여럿 된다. 다만 지금까지 심신에 영향을 줄 정도의 변고를 당하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 그래도 나는 사흘 정도 주저했다. 나구모 케이키의 그 반응이 도저히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기는 다를지언정 스스로 그 대학노트를 펼치리라는 것 역시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 '처음에 의도했던 민속학적인 조사기록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될 것 같지만, 이번 체험을 글로 써서 남겨두기로 한다.'
아이자와 소이치가 쓴 그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이미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그대로 끝까지, 단숨에 독파해 버렸다.
다만 읽어나가는 중에 어떤 우연을 깨달았을 때에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 '우연...'
물론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이자와 소이치가 학생 시절에 방문했던 마을이 토쿠라 시게루가 학생 시절에 들어갔던 폐촌의 50년 이상 전의 모습이었다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우연이라고. 아니, 결코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두 사람이 조우한 괴이한 존재도 동일한 것이었다. 
나는 수십 년의 시간에 걸친, 같은 마을의 다른 시대에 일어났지만 아마도 원흉은 동일한 두 개의 괴이담을 우연히 수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연히...'

 

- 그러나 우연이라고 말하자면 아직 더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나구모 케이키가 처음에 아이자와 소이치를 방문했던 시기가, 마침 내가 토쿠라 시게루로부터 <엿보는 저택의 괴이>를 취재했을 무렵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겹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 이후의 경위와 그 결과로서 이렇게 내 곁에 두 개의 이야기가 모인 사실을 생각하면,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우연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면 좋겠지만-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점차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작가인 나의 역할이 아닌가. 그것을 위해서 내 곁에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 <엿보는 저택의 괴이>
<종말 저택의 흉사>
이 이야기들은 이렇게 나란히 발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나는 그렇게 강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로 후자는 대학 노트에 기록된 아이자와 소이치의 체험담에 내가 붙인 제목이다.

- 서두가 너무 길어져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두 가지 이야기를 나란히 책에 싣기만 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인명이나 지명은 가명이나 이니셜 등으로 처리하고, 후자의 오래된 어휘는 현대의 독자도 읽기 쉽도록 고치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독자에 대해 너무 불성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본문의 첫머리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 왜냐하면 괴담과 기담을 원하는 단계에서, 그 사람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희구하며 일부러 귀를 기울이거나 눈으로 보거나 함으로써, 그 사람은 스스로 괴이한 존재를 부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괴이 현상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도 배려는 하지 않는다. 그런 행위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실례일 것이다.

 

그 사람이란, 물론 당신입니다.


-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 이외의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따라서 독자인 당신에게, 이 자리에서 말해두고 싶습니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이 책을 읽는 중에,
평소에는 느끼지 않을 시선을 빈번하게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엿보고 있다. 그런 기분이 들어서 견딜 수 없다.
이런 감각에 사로잡힌 경우에는 일단 거기서 이 책을 덮기를 권합니다.
대부분이 단순한 기분 탓이겠지만,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 말도 안 되는 장소란 예를 들자면 책장과 가구 사이의 틈, 조금 벌어진 문의 그늘, 식기 선반이나 냉장고 등과 벽 사이의 틈, 복도의 구석, 책상이나 코타츠나 침대 아래, 목욕탕이나 화장실의 환기팬 속, 커튼 뒤편, 방 안의 사각, 천장의 네 모서리, 모든 창문의 밖... 어쨌든 아무도 없을, 또한 어린아이라도 절대 들어갈 수 없을 만한 곳이다.

 

- 앞서 열거한 세 가지 감각 중,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세 번째다.
뭔가가 엿보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른 이 책을 덮기 바란다. 그 증상이 가벼워서 별다른 영향이 없었을 경우, 이 책을 다시 펼칠지 말지는 당신의 자유다. 

-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것은 독자인 당신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한다. 그것의 기척만 느끼지 않는다면, 딱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전혀 지장은 없으니까.

- 사이코가 아주 자연스럽게 카즈요와 미노베 부인의 대화에 끼어들었고, 시게루와 유타로도 뒤를 이었다.
관리동 식당에서 마음이 진정되었을 무렵에 미노베 부인이 보리차를 내주었다. 남편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이는 아주 싹싹한 여성이었다. 이 관리인 부부와 아르바이트 동료만을 보면 상당히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것만이 이 상황에서의 위안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 그런데 마지막에 미노베가 몇 가지 묘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나시라즈 폭포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폭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만, 옛날부터 아주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순례자가 찾아오곤 하는데,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반드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 여러분이 직접 대응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아르바이트생이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니 평소 같으면 그대로 흘려들을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게루는 마음에 걸렸다. 자신들에게 나시라즈 폭포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일일이 관리인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 "관리인 아저씨에게 알리는 것은 상대가 순례자일 경우만인가요?"
"... 그렇지요. 대여 별장의 손님에게는 사전에 제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미노베의 대답도 어딘지 모르게 미묘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손님에게 나시라즈 폭포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저희는 어떡하면 되나요?"
"그런 사람에게는 알려드리세요."
"어, 하지만..."
"여러분께는 나중에 지도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순례자에게 폭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미노베가 하는 말은 명백히 이상했다. 시게루가 사이코에게 얼굴을 돌리자, 때마침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뭔가 수상히 여기고 있음을 손에 잡힐 듯이 알 수 있었다. 

- "원래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쪽 길은 다니는 사람이 없어져서 어느샌가 잡초로 막혀버렸다는 느낌인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거기부터 저는 여자애의 손에 끌리는 상태로 계속 따라갈 뿐이었고... 정신이 들고 보니 커다란 바위 옆에 있었어요."
"자연적인 바위?"
"...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마치 잘라낸 것처럼 네모난 바위였어요. 작은 무대 같은 느낌이 드는 하지만 한가운데에서 두 쪽으로 갈라져 있어서, 자연적인 바위인데도 마치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신기했어요." 
"이와쿠라(磐座)인지도 모르겠네."
낯선 단어에 시게루가 궁금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사이코는 바로 설명해 주었다.
"옛날에는 커다란 바위에 신이 깃든다는 신앙이 있었어. 그런 바위를 '이와쿠라'라고 하지. 나무 중에서 다른 것들과 다른 형태를 한 나무는 신이 내린 나무라며 '요리시로(依代)'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야."

- "여자 혼자 산에 오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거든. 그렇게 이런저런 것들을 배울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대답했지만, 문득 얼굴을 흐리면서 말했다.
"그 바위에는 균열이 가 있었어. 깨졌다는 거지. 그런 바위가 이와쿠라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만 원래는 이와쿠라였던 것이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는 동안 조금씩 금이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이와쿠라인가 아닌가로, 뭔가가 변하나요?"
사이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시게루는 도통 알 수 없었다.
"... 그런 말을 들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네. 그 바위를 내가 본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다 그녀 자신도 확실치 않은 태도였다. 그것이 시게루에게는 어째서인지 찜찜하게 느껴졌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건 이상해요."
바로 시게루가 이의를 제기했다.
"저 촌락이 폐촌이 된 건 기껏해야 수십 년 전일 거예요. 하지만 이 큰 바위에 이 정도의 금이 가려면 훨씬 긴 세월이 걸렸을 거예요. 사이코 씨의 해석은 시간적으로 전혀 맞지 않아요."
"그렇지."
사이코는 그 말에 맞장구쳤다. 근거는 없지만 자신의 감각에 확신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 "그 방울소리... 이젠 안 들리네요."
네 명이 동시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 다시 카즈요가 안도했다.
"... 다행이다. 사이코 씨의 말대로 여기는 안전한 장소였나 봐요."
"정말 그럴까?"
"방울소리가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증거예요."

"응. 그건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하지만 카즈요. 순례자 모녀와 만난 것은 K리조트 근처였잖아?"
"아..."
"산길에서 나오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K리조트 부지 옆이었지."

"... 네."

거기서 사이코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즉 저것은, 이 큰 바위를 넘을 수 있다는 얘기잖아."

- 큰 바위를 출발한 뒤로 네 사람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카즈요, 유타로, 시게루, 사이코의 순서로 그저 K리조트로 돌아가는 산길을 걸을 뿐이었다. 
카즈요가 만난 순례자 모녀와 그 촌락에 있던 무시무시한 뭔가는 같은 존재였을까. 그것을 문제 삼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검토할 것도 없다는 분위기가 네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사이코를 걱정해서 시게루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가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고 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뒤따라오는 뭔가를 경계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탓인지, 그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 '어라...'
그런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 이상하다. 그렇게 느끼고 억지로 두 눈을 뜬 시게루는 자기도 모르게 절규했다.
2층 침대 위쪽에서 쑥 튀어나와 있는 시커먼 얼굴이 빤히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이와노보리 카즈요와 시로토 유타로 두 사람이 먼저 K리조트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르바이트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안색도 나쁘고 기운이 없었으므로 정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여름방학 초반에 비교하면 손님 수도 대폭 줄었으므로, 회사의 담당자도 전화 연락만으로 간단히 승낙했다.  
갑작스런 두 사람과의 이별에 미노베 부부는 놀라고, 또 아쉬워했다. 그리고 카즈요와 유타로의 모습을 상당히 걱정했다.
"아르바이트로 지친 몸으로 낯선 산길을 오랫동안 산책한 것이 분명 큰 부담이 되었겠죠."
미노베의 추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고 있었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수수께끼의 마을에서 겪은 괴이한 체험이었지만, 물론 아무도 말하지는 않았다. 

- 유타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얼마 전에 죽은 사람이 자던 장소에서 쉬는 것은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다음 날 오전 중, 다시 사이코는 카즈요의 집에 전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받았을 뿐, 이번에도 본인은 받지 않았다.
그날 밤, 우연히 시게루는 한밤중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멍하니 있었지만, 문득 깨닫고 침대 위쪽 가장자리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안도하며 몸을 뒤척이자마자, 살짝 열려 있는 문틈에서 빤히 그를 훔쳐보고 있던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 "여보세요? 카즈요, 괜찮아? 걱정했었어."
"... 죄송해요."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다며?"
"무서워서요."

"무슨 일이 있었어?"

"훔쳐보고 있어요."
"뭐?"
"뭔가가 저를 훔쳐보고 있어요."
"... 어디에서?"
"여기저기서요... 다양한 틈새에서...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엿보고 있어요. 그, 그쪽에서는 아무 일도 없나요?"

- "사이코 씨는 그곳에서 떠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었잖아요."
"응, 미안해. 너무 낙관적인 예측이었어. 그러니까 카즈요..."
"유타로 군은 괜찮기는커녕 그런 일을 당하고..."
"그 애는 정말로 안 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는..."
“다음은 저예요. 저도 노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전에 말했던..."
"빤히 보고 있어요. 몰래 훔쳐보고 있어요."
"나라의 기도사가 있는 곳에..."
"그건 숨어 있어요. 집안 이곳저곳에, 그 안에..."
"카즈요, 얼른 그 기도사에게 상담..."

- 단순 사고나 자살이 아닐 거라고 여겨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타살이라 하기에는 용의자도 동기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고사로 처리되었다고 들었다. 
"그렇죠. 사이좋게 지냈던 터라..."
상대의 오해에 사이코가 말을 맞춘 것은, 그러는 편이 그만두기 쉬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효과로 나타났다.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어떻습니까?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저와 집사람에게 두 분의 치료를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치료라니요?"
사이코뿐만 아니라 시게루도 미노베가 하는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 정신적인 치료입니다. 실은 저하고 아내는 젊었을 적에 그런 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말이죠."
"아, 저기..."
"남은 며칠간은 일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보시는 대로 손님도 적으니까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럴 수는..."
그렇게 말하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려는 자신들이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사이코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 일단 도망 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섭지만 이렇게 계속 위협당하는 것에 화도 나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분노가 두려움에 승리했다.
시게루는 싱크대 위의 찬장까지 다가가서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어젖혔다.
"우와아아악!"
그 직후, 이웃집에까지 들릴 정도의 절규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비좁은 찬장 안에 몸을 웅크린 자세로 시게루를 응시하고 있던 것은, 두 눈을 크게 뜬 이와노보리 카즈요였다. 

- "저기..."
그렇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시게루는 당황하며 오른손을 내렸다. 가족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빠의 손을 빤히 보고 있던 듯한 여동생이 말릴 새도 없이 찬장을 열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그녀의 말대로 그곳에는 냄비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을 뿐, 카즈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애초에 어른이 들어갈 만한 공간은 없었다.

- 여동생까지 대답을 마쳤을 때, 자신이 집에 돌아왔을 때의 집 자체가 이상했던 거라고 간신히 깨달았다. 그 집은 토쿠라 가이면서도 이 토쿠라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물론 그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만약 부모님이랑 여동생이 달려오지 않고 그 집에 자신과 카즈요만이 존재하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한 것만으로 시게루는 자기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알 수 있었다. 

- ... 방울이었다.
카즈요는 방울 하나를 오른손에 단단히 쥐고 있었다.


- 문제의 방울은 카즈요의 어머니에게서 사이코에게 전해지고, 다시 그녀에 의해 기도사에게 넘어가서 처분되었다. 이것으로 시게루 일행이 받은 앙화는 전부 씻겨나갔으니,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기도사에게 들었다. 

 

- 하지만 시게루는 한동안 문 뒤편이나 틈새에 신경이 쓰여 괴로웠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이 공포심을 누그러뜨려준 것이 사이코였다. 언젠가부터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해의 크리스마스이브도 새해의 첫 신사 참배도 두 사람은 함께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는 반년도 가지 못했다. 이윽고 시게루는 사이코를 피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어째서냐면 사이코가 -그녀 본인에게는 자각이 없었던 듯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게루를 가만히 그늘 뒤에서 엿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처음에 의도했던 민속학적인 조사기록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될 것 같지만, 이번 체험을 글로 써서 남겨두기로 한다. 아무런 기록도 없이 넘어가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기괴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선 보고 들은 것 전부를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대일까. 이런 흉측한 체험기 같은 것은 오히려 남겨서는 안 되는 걸까. 나 자신부터 한시라도 빨리 잊으려고 노력해야 할까.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세 원숭이처럼, 그저 모르는 체하는 것이 무엇보다 현명한 행동일까.  
사야오토시 가의 별채 손님방, 그곳의 책상머리에 앉아 큼직한 대학노트에 적기 시작하면서도 아직 나는 망설이고 있다. 이런 간단한 판단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괴이 현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 '노조키메...'
그 괴물은 역시 그것일까. 사야오토시 소이치가 고백했던, 종말저택에 붙어 있다는 귀신일까. 아니, 원령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일본의 많은 신 중 난폭한 신에 속하는 걸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더욱 커다란 앙화가 이 저택을 뒤덮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화가 지금이라도 마을 전체로 퍼져나갈 것 같은 예감까지 든다. 이곳을 방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완전한 외지 사람이었을 내가... 왜냐하면... 

아니,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쓰고 있으면 끝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저런 의문이 잔뜩 들어차 있는데도 그 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는커녕 그곳에는 현실적인 해답 따윈 없는, 전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선 현상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바싹바싹 밀려오고 있다. 
불안... 아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그것은 공포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 확실한 것은, 이대로 나의 의심이나 두려움을 아무리 늘어놓아봤자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보다도 지금은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남김없이, 우선 여기에 기록해둬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정도밖에 없다.

-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도쿄 분리카 대학에서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만났던 일이다. 나와 그는 사학과에서 일본사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민속학에 흥미가 있었다.  

- 우리들이 민속학 중에서도 특히 흥미를 느낀 것은 각 지방에 전해자는 괴이한 습속에 대해서였다. 두 사람 모두 괴담 애호가이고 해외의 괴기소설을 애독하고 있었다. 당초에 나는 그런 흥미가 강해진 결과, 이런 분야에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 개인은 그랬다. 그렇지만 소이치에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째서인지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어디까지나 각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괴이한 현상과 그것에 얽힌 괴이한 숲 속을 알고 그것을 분류 분석 및 해석하는 행위를 즐기고 있었던 것에 반해 소이치는 상당히 진지해 보였다는 점일까. 처음에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자세로 여기고 감탄했다. 하지만 이내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소이치에게는 뭔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까지 열중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나는 이따금 기회가 될 때마다 넌지시 떠보았다. 하지만 늘 얼버무리는 소이치를 보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다면 억지로 캐내지는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였다.  

- "그러니 그런 오해를 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다 내 탓이야."
그렇게 말하며 소이치가 머리를 숙였지만, 나에 대한 사죄라기보다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우리는 단둘이 이야기할 때에도 간사이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의논이 가열될 때 어쩌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정도였다.
"딱히 너를 나무랄 생각은 없어."
나는 당황하며 덧붙였다.
"애초에 나에게 그런 권리도 없고 말이야. 다만 좀 신경이 쓰이던 터라, 피차별 부락에 대한 문제가 문득 떠오른 김에 살짝 물어보려고 했던 것뿐이야. 나야말로 미안해."
그렇게 내가 고개를 숙이자 소이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는 고향 얘기를 절대 안 하잖아?"
"... 응. 뭐, 그랬지."
어정쩡하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남몰래 가슴의 커다란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 민속학에 종사하는 자는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 반드시 자신의 고향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만큼 습속에 정통한 지역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가족이나 친족이 살고 있으면 편지 한 통만으로도 조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개의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민속조사지는 고향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이치만은 달랐다. 절대 고향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 ...  

- "호쿠라이에서 마라이, 마라이에서 난라이 순으로 개척된 게 아니었다는 얘기야?"
"응. 참고로 호쿠라이로의 입식은 800년 정도 전에 여섯 명의 승려가 소나이 촌을 거쳐 그 땅을 밟은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렇게나 역사가 오래된 지역이었구나."
내가 솔직히 감탄하자 소이치는 자조적인 어조로 답했다.

"쓸데없이 긴 것뿐이야."
"그래서 여섯 명의 스님이란 뜻의 무소(六僧) 고개란 이름이 붙은 거구나."
"그것과 마찬가지로 난라이 집락의 남쪽에는 로쿠부 고개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어."
노트에 기록된 한자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이쪽은 여섯 명의 무사란 뜻의 로쿠부(六武)... 아, 패잔병들이었나?"
"물론 단순한 전설이야. 스쿠자 산지의 거의 인적미답의 산속에 무가이(無涯)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어. 그곳에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나시라즈라는 이름의 폭포가 있거든."
"나시라즈(名不知)... 이름을 모른다는 뜻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는 사람이 적다는 건가?"
내 농담에 소이치는 엄숙하게 끄덕였다.

- "무가이는 옛날부터 영험한 장소로서 일부 순례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던 것 같아. 그 상징이 나시라즈 폭포였지."
"그렇구나. 그래서 싸움에서 진 무사들도 일단 그곳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이후에 로쿠부 고개라고 명명된 험한 길을 넘었다. 그리고 도달한 땅에 난라이 집락을 개척했다는 건가"
"사야오토시 가의 선조가 그 무사들 중 한 명이라고 전해지고 있어."
소이치에게 들을 때까지, 부끄럽게도 나는 '사야오토시'란 성씨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난라이에서 칼을 버렸기 때문에, 칼집을 떨어뜨렸다는 뜻의 사야오토시라는 성씨를 쓴 거구나.”
"그야말로 일본 각지에 수도 없이 전해지고 있는 헤이케(平家)의 패잔병(12세기말 가마쿠라 막부 시절에 미나모토가와의 전쟁에서 패한 다이라(平)가 일족을 이르는 말로, 이들은 전쟁에서 패한 후 추격을 피해 일본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역주) 전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어째서인지 자조적인 말투를 쓰는 소이치에게 나는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중에는 진짜도 있을 거 아냐. 로쿠부 고개라는 지명과 사야오토시라는 가명(家名)으로 생각하면 너의 선조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그런 의미심장한 지명이 일본의 도처에 잔뜩 널려 있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 그렇게 중얼거리던 내 머릿속에 문득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 다른 설에서는 여섯 명의 무사를 의미하는 로쿠부(六武)가 아니라 로쿠주로쿠부(六十六部) 순례를 가리키는 로쿠부(六部)라고 쓰는 거 아니야?"
"역시 대단한걸."
힘없이 미소 짓는 소이치가 아주 애처로워 보였다.
'즉 사야오토시 가에는 로쿠부 살해의 전설이 있다...' 
"맞아."

 

- 미소를 지운 어두운 얼굴로 끄덕인 소이치를 앞에 두고, 나는 모든 의문이 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야오토시 가에 이방인 살해의 전승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나는 이후에 몸서리쳐질 정도로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 참고로 로쿠부란 직접 베껴 쓴 <법화경>을 궤짝에 넣어 짊어지고서 그것을 전국 66개소의 영험한 곳에 바치기 위해 일본 내 여러 지역을 순례하던 수행승을 말한다. 지금도 로쿠부는 존재하지만 전부 진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걸식을 목적으로 하는 가짜가 에도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탓이다. 
그런 로쿠부를 살해했다고 전하는 이야기가 일본 각지에 채집되는 '로쿠부 살해 전설'로, 지방에 따라서 세세한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옛날에 그 지방의 어느 집에 여행하던 중 날이 저물어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청하는 로쿠부가 찾아왔다. 그 집에서는 흔쾌히 맞이하고 저녁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순수한 친절에서 한 일이었지만 그 로쿠부가 순례를 위한 자금을 듬뿍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 집안사람들에게 나쁜 마음이 싹텄다. 자고 있던 로쿠부를 습격해서 죽이고 가진 돈을 전부 빼앗은 것이다. 이후로 그 집안은 번영해서 큰 부자가 되었지만, 죽인 로쿠부의 저주를 대대로 받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로쿠부가 아니라 맹인 스님이나, 비구니나 무녀로 바뀐 경우도 있다. 또한 돈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로쿠부를 인신공양하는 사례도 보인다. 공통된 것은 그 지방 밖에서 찾아온 이른바 '이방인'이 특정한 집이나 마을의 사리사욕 때문에 죽게 되고, 그 뒤에 재앙을 내린다는 흐름이다. 

- "그런 전설이 친가에 있다니... 아주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우선 나는 위로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어릴 적에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어?"
로쿠부 고개를 넘어서 학교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할 때의 소이치가 보였던 표정을 떠올린 나는 암담한 기분으로 그렇게 물었지만, 의외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가? 어린아이는 관계없었나."
안도하는 것도 잠시, 다시 그는 고개를 젓고서 대답했다.
"시골 아이들의 세계는 마을 어른들의 축약도 같은 구석이 있어. 어린아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 "자신의 침상 주위에 병풍을 세우게 했어.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어. 병풍이 접히는 틈새 부분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생기면 거기서 뭔가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며 겁을 먹었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미 나는 민속학적인 관심을 드러내며 소이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카에몬은 병풍 대신에 침상 주위에 널빤지로 벽을 치게 했어. 그것도 그 벽을 차츰 가까이 붙이게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카에몬 자신이 길쭉한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상태가 되어버렸지."
"그건 마치 관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잖아."
"분명히 본인은 깨닫지 못했던 거야. 그 소름 끼치는 사실을..."

"그렇구나."
"하지만 역시나 뚜껑까지 덮게 하지는 않았어. 다만 천장의 옹이구멍이 무섭다면서, 커다란 천으로 천장 전체를 덮게 했지."
"철저하네. 하지만 그것으로 시선에서는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일상생활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거 아냐. 애초에 나빠져 있는 몸 상태가 좋아질 리도 없고. 무엇보다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도 없을 거 아냐.”
"물론 카에몬은 죽었어."
이때의 '물론'이라는 부사의 사용법에 난 진심으로 오싹해졌다.

 

- 소이치는 끄덕이면서도 아주 신경 쓰이는 말을 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협력도 얻었지만."

"어떤 사람이라니?"
"나중에 이야기할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생긴 건, 순례자들이나 이방인들이 난라이를 찾아오지 않는 시기가 이어질 때였어."
그러고는 그런 영문 모를 소리를 꺼냈다.
"마을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사야오토시 가도 관여할 방법이 없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난처한 사태가 벌어진 거야."
내가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는지, 소이치는 잘 알아듣게 하려는 듯한 어조로 차근차근 말했다.
"누구든 종교인이 난라이를 방문하면 사야오토시 가는 그 사람에게 정신이 팔렸지. 그것은 괴이한 존재도 마찬가지였어."

- "그래. 순례자 모녀 중 딸에게 신이 내렸을 때는, 특별히 그랬는지도 몰라."
"그렇다는 건, 그 딸은 신이 내린 게 아니라 생매장당한 모녀 중 딸의 혼이 씌었다는 건가?"
"둘 중 어느 쪽이었는지 이제는 아무도 알 수 없어. 그저 순례자들이 전혀 없는 상태가 이어지면, 가끔씩 사야오토시의 아이에, 그것이 빙의되게 되었다고 해."

- 그것이 무라하치부로 이어진 요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아직 이방인 살해의 구전이 끊어지지 않았던 두 번째 이유가 남아 있었으므로 나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어린애에 대한 빙의를 두려워한 당시의 당주는, 스쿠자 산지 주변 일대의 마을에서 무녀 체질인 여자애를 찾아서 돈을 안겨주고 사야오토시 가로 데려와서 그것의 빙의체로 세웠어." 
"그 시도는 성공했나?"
"응. 그러다가 관혼상제도 관장하게 된 것은, 살아 있는 신으로 모시던 때 하고 똑같았지."
"출신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출세했네."
"이윽고 빙의체 역할을 맡는 소녀를, 순례자였든 마을 여자애였든 상관없이 '시즈메(鎮女)'라고 부르게 되었어. 그것을 진정시키는 소녀라는 의미지."
"아주 번듯한 종교인이잖아."
"하지만 몇 번씩 빙의되는 동안, 대부분의 소녀들은 정신이 이상해졌어."
"그렇게 강렬했던 거야?"
"개개인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녀들은 미쳐버리고 말았지."

 

- 이제부터 자신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저쪽에 전하면서도 저쪽의 거절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된다. 정말 비겁한 방법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면서 거절당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수단밖에 없었다. 
재빨리 그런 내용의 편지를 소이치의 부모님 앞으로 쓰고 난 뒤에 나는 여행 준비를 했다. 고향으로 귀성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편지에는 아무런 거짓말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의외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의 작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낸 직후, 지끈지끈하고 위장이 쑤시는 아주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후회와도 비슷한, 그런 기묘한 감정이었다. 그것이 직감이라는 것일까. 토모라이 촌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였던 걸까.

-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기 전까지의 나는, 소이치의 친우로서 순수하게 묘에 참배하고 싶다고 바랄 뿐이었다. 토모라이 촌이나 사야오토시 가에 민속학적인 흥미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고 가슴을 펴고 말할 생각은 없다. 물론 그것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배가 목적이고 민속학상의 채집은 둘째 문제였다. 소이치의 입장에서 보면, 만약 고향 마을에 민속조사가 들어왔을 경우에는 아주 혐오하고 반발하는 반면에, 한편으로 제대로 조사해줬으면 한다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도 마을을 찾아간 결과, 또한 사야오토시 가를 방문한 끝에 뭔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조사기록으로 남길 생각이었다. 결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소이치의 공양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뭐 하지만, 그 마음은 틀림없이 진짜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보내고 난 우체국 앞에서는, 벌써부터 꽁무니를 빼고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편지를 쓴 것은 잘못이었다고 후회하는 내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금세 자신을 책망했다.
사실은 아직 늦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놓고서 방문하지 않는 것은 실례이지만, 오히려 사야오토시 가로서는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도쿄 역에서 기차를 탔다고 해도 ㅇㅇ에서 스쿠자 산지 방면으로 갈아타지 않고, 소나이 촌을 향하지 않고, 하물며 무소 고개 같은 곳은 넘지 않고 그대로 고향으로 귀성하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와버렸다. 이 지방에 이 마을에, 이 집에.
아니,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을 짬이 있다면, 곧바로 여기에서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 신사의 참배길이나 작은 사당, 혹은 신을 모신 감실(龕室)에 붉은 깃발이 구비되어 있는 광경은 이제까지도 자주 보아왔다. 그러나 그것이 평범한 집의 문에서 펄럭이고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순수하게 호기심을 느낀 나는, 산길 중간에서 시작 저택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그 대문 곁까지 다가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붉은 깃발로 보였던 것은 커다란 연어 토막이었다. 물론 날 것이 아니라 말린 것이었다. 마치 미늘창 끝에 매단 천처럼, 연어의 두툼한 등 부분을 위로 오도록 해서 굵은 대나무 꼬챙이로 꿰어놓고 있다. 그래서 선명한 붉은 살 부분이 마치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보였던 것이다. 

- 하지만 어째서 문에다가...
이런 것을 일부러 꽂아둔 걸까. 꼭 연어만이 아니라 산간 마을에서 생선은 사치품이다. 그것을 식탁에 올리지 않고서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설마 햇볕에 말리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원래대로라면 식욕을 돋웠을 붉은 생선살이, 이때만큼은 강렬한 적색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역시 문이나 현관에 고추나 마늘, 삼나무 잎이나 호랑가시나무 같은 식물도 매달려 있다. 집에 따라서는 문이나 현관을 장식하는 것처럼 에워싸고 있는 예도 있었다. 또한 그것들이 창문 주변까지 붙어 있거나 매달려 있는 집도 적지 않았다.

 

- '어떠한 주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 토다테 가의 연어까지 포함해서, 이것들은 정말로 주술이 아닐까. 물론 그 대상은 사야오토시 가의 장례다.

- 생선의 경우에는 그 냄새가 부정한 것을 쫓는다고 옛날부터 믿어져 왔다. 가장 널리 보급된 사례는 절분(節分)에 정어리 머리를 현관문에 달아놓는 의례일 것이다. 그때 호랑가시나무 잎사귀도 사용하는 것은, 그 뾰족한 형태가 부적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삼나무 잎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다. 마늘은 식물이면서도 생선처럼 강렬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추는 볶는 게 효과적인데, 저렇게 매달아 놓는 것은 붉은색이 부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연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선 과연 명가인 토다테 가라고 나는 감탄했다. 저 훌륭한 연어 토막만으로 색깔과 냄새라는 두 종류의 주술을 걸고 있다. 


-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주술들이 호쿠라이의 모든 집에서 빠짐없이 행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 철저함은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사야오토시 가가 기피 대상이라고는 해도, 또 그 집의 장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어쩐지 오싹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 다시 마을의 집들에 눈길을 보냈을 때였다. 모든 집 앞에 남천촉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그 부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보아, 결코 자연적으로 자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느 집이나 일부러 키운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남천촉의 붉은색도 부적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호쿠라이 집락 사람들은 평소에도 나쁜 기운을 쫓는 장치들을 자기 집에 설치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자문할 것도 없이 답은 명확했다. 사야오토시 가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장식된 현관 부근의 주술적 처치도 납득이 간다. 사야오토시 가의 장례라는 특별한 액일(厄日)을 맞이해서 평소보다 한층 더해서 악한 기운을 쫓는 의식을 호쿠라이의 모든 집이 실시한 것이 틀림없다. 호쿠라이뿐만 아니라 마라이나 난라이 집락도 아마 같을 것이다. 

- 소이치의 생가에 관한 고백은 정말로 충격적이어서, 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한때는 계속 음울한 기분에 빠져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차피 그것도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토모라이 촌에 와서 실제로 눈을 의심하게 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간신히 진짜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마을사람과 만나지 않은 동안에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 '이런 시간에 장송을...'
깜짝 놀란 나는 곧바로 숨으려고 했다. 아무리 해가 긴 여름이라고 해도, 이미 주변이 어두워지려고 하는 해질녘에 장송을 하고 있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던 탓이다. 
죽은 것이 그저께라면 어제가 츠야(通夜, 일본의 장례 풍습 중빈소에서 유족과 조문객들이 밤을 새는 것-역주)고 오늘이 장례식이 될 터이지만, 그것도 오전 중이나 늦어도 오후에는 끝나지 않았을까? 만약 그저께 늦은 시간이나 어제 이른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면 어젯밤이 가(仮) 츠야고 오늘 밤이 본(本) 츠야일 테니 장례식은 내일이 될 것이다. 시신이 상하기 쉬운 계절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매장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터이다. 사야오토시 가 정도로 오래된 가문이라면 가츠야, 본 츠야, 장례식까지 최소 사흘은 ...

- 그리고 그러던 중에 작은 산의 오른편 장송 행렬이 다가오는 방향에 늘어서 있는 집들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간신히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짐작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결코 장송 행렬 안에 들어가 있는 뭔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피리나 북이나 꽹과리 같은 것이 장송 행렬과 함께 이동하며 계속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내는 뭔가는 아마도 마을 전체의 집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장송행렬이 자신의 집 앞에 들어서기를 기다리다가, 집 앞을 지날 때에 그것을 일제히 두들겨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송행렬이 지나간 집은 조용해지고, 이제부터 지나갈 집은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소리를 내게 된다. 그것이 마치 그 소리 자체가 이동하는 것처럼 들린 원인이 아닐까. 파도처럼 출렁거린다고 느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았다는 얘기가 된다. 
호쿠라이 집락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고, 장송에 참가한 마을 사람 이외에는 모두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송 행렬이 자기 집 앞에 들어서는 것을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이때다 싶을 때에 소리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이 기묘한 소리도 틀림없이 부정한 것을 좇는 주술일 것이다. 어느 지방의 민속조사에서는 장송 행렬 선두에 총을 가진 사람을 두고, 장송 행렬이 굽어지는 길이나 네거리에 접어들 때마다 하늘을 향해 공포를 쓴다는 사례를 채집한 적이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그것을 신부 행렬에서 행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장례와 혼례라는 대조적인 의례인데도, 양쪽 다 공포탄의 소리로 마물을 쫓는다는 점은 같았다. 토모라이 촌에서는 그 소리를 뭔가 특수한 -그렇지만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결코 드물지 않은- 물건으로 내고 있는 것이리라.

-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길을 조금 올라간 지점에서 마라이 집락의 길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이내 장송 행렬의 선두가 나타났다.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절의 깃발이나 제등을 든 사람이 맨 앞에 온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것은 대나무 빗자루를 거꾸로 든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그냥 거꾸로 들어 올리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빗자루를 좌우로 흔들면서 걷고 있다.
'저것도 부정한 것을 쫓는 행위일까.'

 

- 민속학상, 일단 빗자루란 말에서 떠오르는 것은 출산에 입회하는 빗자루 신(箒神)일 것이다. 빗자루로 임산부의 배를 쓰다듬거나 발치에 세워두거나 해서 빗자루신을 불러 무사히 출산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빗자루는 장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출관한 뒤의 방을 쓴다는, 그야말로 빗자루로서의 사용법이다. 물론 이것은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때를 문자 그대로 쓸어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 증거로 밖으로 쓸어내는 몸짓을 보인 뒤에는, 쓸어낸 나쁜 것이 돌아오지 않도록 서둘러 문을 닫아버린다. 
혼례나 장례에서 사용되는 총도 그렇고, 출산이나 출관에 사용하는 빗자루도 그렇고, 본래는 정반대로 보이는 경사와 조사 사이에는 실로 아주 가까운 뭔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 처해 있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엉뚱한 고찰에 빠져 있던 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들은 적도 없는 빗자루잡이 다음에는 승려가 오고, 그다음에 절의 깃발과 제등잡이, 그리고 조화와 경단과 위패를 안은 친족인 듯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두가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 결혼식 의상이나 장례식의 상복에 검은색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시대 이후부터다. 서양에서 전해진 정장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의복의 역사에 해박하지 못한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아직도 백색이 주류다.
대개 친족 남성이 시로바카마, 여성이 시로무쿠라는 하얀 옷을 입으며 하얀 천으로 만든 삼각건을 머리에 두른다. 일반 참여자는 보통의 기모노를 입는다. 하얀 상복이 쇠퇴하고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지방에서도, 유족은 하얀색 물건을 몸에 걸치고 있기도 한다. 친족이 몸에 두르는 이 하얀색은 죽은 자가 입은 수의와 같은 색이다. 즉 저 세상으로 보내는 시신과 같은 색을 공유함으로써, 친족들은 죽은 자에게 몸을 붙이고 있다. 시신만이 홀로 저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함께라는 증표인 것이다. 적어도 나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사야오토시 가의 장송 행렬에서는 승려를 제외한 참배객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문제없다고 해도, 친족인 듯한 사람들도 누구 하나 하얀 것을 걸치지 않았다 -삼각건조차 보이지 않는다- 는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계속해서 새까만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뱃속이 싸늘히 식어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봐서는 안 될 것을 엿보고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그런 감각에서 해방된 것은 장송 행렬 마지막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행렬의 소리가 호쿠라이 방면으로 멀어져 가고 난 뒤였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뒤늦게 어떤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심원사로 향하지 않는 걸까?'

- 저 뒤를 따라가서 확인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가 솟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떡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순간, 장송 행렬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 빗자루잡이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고, 어째서인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 난라이까지 돌아가는 건가?'
완전히 토모라이 촌을 일주하는 건가 하고 놀라고 있는데, 그대로 곧바로 내가 숨어 있는 작은 산을 향해 오기 시작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이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도망쳐야 해...!'
갑자기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 어느 여행자가 시골마을을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장송 행렬이 오는 것이 보였다. 외길이어서 이대로는 마주치게 된다. 여행자는 장송 행렬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건 싫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만한 길이 전혀 없다. 다만 바로 옆에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위로 몸을 숨기면 장례 행렬을 지나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나무 중간쯤까지 올라가서 굵은 나뭇가지에 앉아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장송 행렬은 그 나무 바로 아래를 지나가가 갑자기 딱 멈춰 섰다. 나무 밑에는 딱 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재수 없게... 그렇게 저도 모르게 여행자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관을 짊어진 사람들이 그 자리에 관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나무 밑에 관만 내려놓고는 참여하고 있던 자들이 모두 왔던 길을 재빨리 돌아갔다.  
여행자가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시에 섬뜩하고 기분 나빠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무에서 내려가려면, 어쩔 수 없이 관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가던 중에 혹시라도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했다간 저 위에 떨어지게 된다. 높은 나무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여행자는 관 뚜껑을 내려다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천천히 관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선 바짝 마른 듯한 가느다란 오른손이 나오더니, 그 뒤에 나타난 왼손과 함께 관 뚜껑의 가장자리를 붙잡고서 하얀 옷을 걸친 노파의 시체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히익, 하는 소리 없는 비명이 여행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무 위를 올려다본 노파의 시체와 눈이 맞았다. 게다가 그를 인식한 그녀는 그대로 굵은 나무줄기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여행자는 자신도 황급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아래를 보니, 노파는 여행자를 올려다보면서 마치 거대한 곤충 같은 모습으로 기어 올라온다. 노파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앉아 있던 나뭇가지를 지나서, 노인의 시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속도로 나무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다. 
다시 여행자는 올라간다. 죽은 자가 기어 올라온다. 여행자는 더 높은 가지로 올라간다. 죽은 자가 기어 올라온다...

그런 반복 끝에 결국 여행자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노파의 시체는 여전히 기어 올라온다. 여행자를 올려다보면서, 그를 향해 그저 네 발로 기는 모습으로 기어 올라온다.

- 관을 매장하는 무덤 구멍을 볼 수 있으면서도 참여자들에게는 결코 들키지 않을 장소를 재빨리 찾아내서 숨기 위해서다. 이때 나는 민속학적인 견지에서도 사야오토시 가의 장례를 마지막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작은 산의 뒤편에 와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 묘지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묘비는커녕 석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산길 끝에 나타난 것은, 부자연스럽게 평평하게 골라진 기묘한 작은 공터였다. 그 주위는 우거진 초목에 둘러싸여 있어서, 이 이상한 장소가 산길의 종착지라는 점은 우선 틀림없어 보였다. 
'뭐지, 여기는...?'
게다가 공터의 한복판에는 둥근 구멍이 파여 있었는데, 구멍의 측면은 여러 개의 돌로 보강되어 있다. 척 보기에는 우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들여다봐도 구멍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아서, 바닥의 흙이 바로 보였다. 

- 확실히 좌관(座棺)을 넣고 빈틈을 흙으로 메우기에는 딱 좋은 크기였다. 다만 이런 곳에 묻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무덤 구멍의 안쪽에 축벽을 쌓는 것이 사야오토시 가의 관습이라고 해도, 이 기묘한 공터가 가문의 묘지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구멍 바닥의 흙 밑에는 이제까지의 사야오토시 가의 사람들이 묻혀 있는 것일까.
'설마...'
자신의 상상에 웃고 싶었지만, 내 얼굴은 굳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장소가 엄청나게 불길하게 생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안도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나는 참여자들의 기묘한 얼굴에 눈길이 고정되었다. 작은 산 아래에서 봤을 때는 거리가 멀어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남자들은 승려를 제외한 모두가 양쪽 눈썹 위에, 여자들은 양쪽 뺨에 붉은색으로 'X'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부정한 것을 쫓는 주술이 틀림없다. 게다가 붉은색과 'X'의 조합에서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악한 기운을 내쫓겠다는 강한 의사가 느껴진다. 
그때 어른들의 등 뒤로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불쑥 얼굴을 드러냈다. 너무나 귀여워서 처음에는 여자아이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만히 관찰하니 아무래도 남자아이인 듯했다. 장송행렬이 어디에 도착하는지, 분명히 그 종착점에 호기심을 자극받았던 것이리라. 그 소년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차림이었지만,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역시 이마였다. 그곳에는 붉은색으로 크게 '犬'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두고 '강아지다, 강아지', 혹은 '강아지인가 고양이인가'라고 부르거나 '강아지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주문이 있다. 또한 처음으로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에, 뜬숯으로 이마에 '犬'이라고 쓰거나 'X'표를 그리거나 하는 지방이 있다. 이것은 연약한 어린아이일수록 마물이 노리기 쉬우므로, '이곳에 있는 것은 인간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해서 어떻게든 재액을 피하 ...

- 그때 나의 뇌리에 소이치가 입 밖에 낸 자조적인 말이 되살아났다.

[이방인 살해 전설에 관한 소문이 돌던 집이, 그 뒤로 빙의 체질의 가계로 바뀌어간다... 그 과정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이 사야오토시 집안이야.]
그것 때문에 무라하치부를 당하고, 장송 행렬도 온 마을의 집들이 부정을 쫓는 주술을 실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토장의 풍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장을 당한다.
'이런 차별이 버젓이 이루어져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의분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관을 짊어진 사람들이 공터까지 나와서 좌관을 구멍 안에 내려놓았다. 그 발걸음이 어째서인지 위태로워 보여서 관에 든 것이 덩치 큰 남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죽은 사야오토시 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다른 이유가...

- 관이 구멍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관 주위를 둘러싸듯이 나뭇가지들을 놓고 그 주변에 다시 지푸라기들을 기대어놓았다. 나뭇가지는 감나무가지였는지도 모른다. 감나무 가지는 땔감으로 쓰지 않는 지방이 많다. 어린아이가 목욕물을 끓일 때에 별생각 없이 감나무 가지를 태우려고 하다가 어른에게 야단맞았다는 이야기를 채집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화장할 때에 쓰는 나무이기 때문인데, 그 이유까지는 조사하지 못했다. 
관이 충분히 나뭇가지와 짚으로 덮이자, 마지막으로 커다란 멍석에 물을 빈틈없이 뿌린 뒤에 그것을 관 위에 펼치듯이 덮었다. 그것으로 화장 준비가 끝난 듯했다.  

- 청년단의 일원으로서의 자각이 있다면, 이미 화를 내며 아이를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시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고사하고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즉 시게에게는 저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결론에 내가 경악하고 있는데, 시게가 온몸의 용기를 짜냈는지 드디어 관의 멍석에 불을 붙였다.

- 처음에는 어둑어둑한 어스름 속에 불길이 살랑살랑 흔들릴 뿐이었다. 석양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산 뒤편에서 비쳐드는 적갈색 피 같은 저녁놀 쪽이 훨씬 밝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잠시 있다가 갑자기 화악 하고 단숨에 불길이 솟아올라서, 깜짝 놀란 나는 어리석게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순간, 이쪽에 등을 돌리고 있던 시게가 번쩍 하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아보았다.
덤불에 몸을 숨기고 필사적으로 숨을 죽이는 나와, 그 덤불을 응시하면서 거친 숨을 토하는 시게가 서로의 눈을 맞추지 않은 상태로 노려보는 모습이 되었다. 
내 기척은 알아차렸으면서 어째서 저 아이의 기척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역시 시게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까. 하지만 어째서...

"누, 누구 있어요?"
시게의 겁먹은 목소리는 내가 숨어 있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소리가 났는지, 시게도 정확히는 모르는 듯하다.

- 굉장한 소리가 다시 나더니, 위에 얹혀 있는 멍석을 밀어내며 관 안에서 불타 문드러진 시체가 벌떡 일어났다.
"우왁!"
"히이이익!"
내 외침과 시게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겹쳐졌다. 그러나 그가 이쪽의 비명을 깨닫기 전에 펑! 하는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지며, 이번에는 시체의 다리가 관을 깨부쉈다. 두 개의 부서진 구멍에서는 굴뚝처럼 기분 나쁜 누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시뻘건 화염이 활활 솟아나고 있다.
시체가 관에서 나오려 하고 있었다... 


- "이런 시골 마을에 있기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 아닙니까?"
아무래도 현관에서의 내 태도를 오해한 듯했다.
"마을분은 아닌 것 같네요."
핑계 대지 않고 그렇게 조용히 대답하자, 주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토키코가 손님방으로 보이는 방에 나를 들여보내자, 옆에 있던 조린 주지가 천천히 말했다.
"우선은 코노에 여사의 장례에 참석하고, 그 뒤에 불단의 소이치를 만나는 것이 좋겠지요. 묘를 방문하는 것은 내일로 하는 게 어떨까요?"
"네. 그게 좋겠네요."

 

- 원래는 두세 개의 방이 있던 공간이지만, 칸막이를 떼어내서 큰 방 하나로 만든 듯했다. 
그 큰 방 안쪽에는 제단이 안치되어 있고, 코노에 씨로 여겨지는 노부인의 사진이 정면에 보였다. 제단 좌우로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복도 근처까지 죽 줄지어 앉아 있고, 그 사이를 장례를 거드는 여자들이 술병이나 요리를 담은 그릇을 반상에 얹고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골에서는 드물지 않은 장례 풍경이다. 
그런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십여 명 모두에게서 일제히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떤 자는 술잔을 입으로 옮기고, 어떤 자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고, 어떤 자는 옆 사람에게 술병을 기울이는 상태로 딱 굳어서,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모습을 보인 직후에 모두의 움직임이 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전부터 이야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장례가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인원이 한 방에 있으면 소곤거리는 소리 정도는 흘러나온다. 그런 기척은 복도에 있어도 반드시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즉 여기 있는 모두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말이 없는 부자연스러운 회식 자리에, 이번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요소가 더해진 탓에 큰 방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그 일그러진 공기를 한 몸에 뒤집어쓴 나는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무서울 정도의 정적에, 내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이, 이쪽입니다."
무시무시한 정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깬 것은 조린 주지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제단 바로 왼편에 주지의 모습이 있었다.

 

- "여러분께서도 피로가 몰려오기 전에 적당한 때에 자리를 파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게 큰 방의 모두를 향해 말을 건 주지는 나를 재촉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든든히 드셨습니까?"
"... 네. 입을 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들 그냥 계속 먹고 마시고 있는 것이지요."
"사야오토시 가의 장례이기 때문인가요?"
"뭐, 그런 겁니다."
 
- 화장장까지 동행시킬 생각은 아니겠지,라고 나는 경계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말을 거스를 수도 없다.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커다란 대문 밖으로 나오자, 조린 주지가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알겠습니까? 이 집에서 뭘 보고 뭘 듣고, 뭘 느끼더라도 무조건 모르는 체를 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청년단의 일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나도 관계가 없을 터이다. 사야오토시 가의 하녀나 집락의 부인들, 청년단의 시게와 마찬가지로 이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저런 것을 보게 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때 나는 문득 조린 주지의 충고를 떠올렸다.
'이 집에서 뭘 보고 뭘 듣고, 뭘 느끼더라도 무조건 모르는 체를 해야 합니다.'
어째서 주지는 내가 저것을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째서 저것과 관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 이 커다란 방에 혼자 있는 것이 점차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멋대로 집 안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어떡해야 할까 하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서 있는데, 또다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삐걱, 삐걱, 삐걱....
이미 시선은 그 기둥으로 향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못 박혀 있다.

- 사야오토시 가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소이치의 친구일 뿐이다. 확실히 소이치로부터 사야오토시 가에 관련된 괴이 현상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그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걸까. 그것에 홀려버리는 걸까.
'노조키메는 전염된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야오토시 가가 무라하치부를 당한 상태에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것은 몇십 년, 몇백 년에 걸쳐서 이 집안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이치가 나에게 말해버렸다. 그래서 그것은 소이치 앞에 나타났다. 그 결과, 그는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 전부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망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생각에 잠기는 것뿐이다. 그런 생각을 금방 다른 내가 부정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위스키에 취해있는 걸까? 
'게다가 너는 이따금씩 두려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갑자기 소이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 울려 퍼졌다. 사야오토시 가에 관련된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에, 그가 했던 한 마디다.

 

-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닦고, 유카타를 입고서 가방에서 회중전등을 꺼내 들고 별채 툇마루의 섬돌에 놓여 있던 짚신을 신고 안채 뒤편으로 향했다. 
목욕탕의 격자창 아래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진짜 나무벽을 기어올랐다면 어떠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밖에도 뭔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물론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저쪽에게 쫓기며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내 쪽도 행동에 나서야만 하는 게 아닐까. 위스키의 술기운을 빌어 대담해진 것뿐만 아니라, 소이치의 말에 등을 떠밀린 느낌이었다. 
아니, 정말로 술과 소이치 때문일까? 일부러 이 마을의 이 집에 이렇게 찾아와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곳에 소이치를 향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다만 그것과 같은 비율로 내 안에는 괴이에 대한 감출 수 없는 호기심이 틀림없이 숨어 있었다. 민속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것에 대한 흥미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은 때로는 공포심을 능가한다. 
 
- 그 대답이 조금 마음에 걸린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와요."
태연한 말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사야오토시 가에서 소이치는 그 정도의 존재였다는 것일까. 후계자로는 칸이치가 있다. 토키코라는 며느리를 얻고 쇼이치라는 손자도 키우고 있다. 도쿄의 대학에 간 내성적인 차남 따윈 가업을 계승한 장남만 건재하다면 있든 없든 마찬가지인가. 

'소이치를 생각하고 있던 것은 형수와 조카 두 사람뿐인가...'

그래도 나는 외로움이나 슬픔보다 따스함을 먼저 느꼈다. 두 사람의 소이치에 대한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묘는 하단석과 중단석과 상단석에 간석을 겹친 훌륭한 것으로, 묘 뒤에는 소토바(卒塔婆, 공양을 위해 탑 모양으로 꾸민 가늘고 긴 판자에 경문 등을 적어서 무덤 뒤에 세운 것-역주)가 세워져 있고 앞부분에는 디딤돌과 배석(拝石)도 있는 등, 선반 형태라 단의 폭이 좁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꾸며져 있다. 사야오토시 가에는 필요 없는 자라고 여겨지면서도 죽으면 엄숙한 묘만큼은 세워준다. 이것도 시골 특유의 허세일까. 

- 소이치의 묘비 옆에도 새로운 묘가 있었다. 틀림없이 코노에 씨의 묘일 것이다. 즉 사야오토시 가에서는 한 사람에 하나씩 묘를 쓰는 풍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야오토시 가가 토모라이 촌의 오래된 가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한 사람씩 매장해야만 할 정도로 사연에 가득 찬 꺼림칙한 뭔가 ... 

- 다시 소년은 얼굴을 긴장시키면서 말했다.
"이 불당의 신을 위해서 세웠대요. 그러니까 사당에도 절대 다가가지 말라고 증조할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신이 화를 낸다고."
'순령당의 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사당...' 
그렇게 마음속에서 중얼거려 보지만, 이것도 무슨 의미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와카미야(若宮)를 말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비명횡사한 자가 초래하는 무서운 앙화를 커다란 신격(神格) 아래에 둠으로써 진정시키고, 그것을 신으로서 모시는 신사가 와카미야다. 하지만 그래서는 쇼이치의 설명과 모순된다. 완전히 반대다. 상대가 어린아이니까 코노에 씨가 적당히 이야기를 지어내서 겁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가령 사당이 와카미야였을 경우, 그곳에 모시는 재앙신이란 누구인가. 순령당의 신보다 신격이 낮은 그 신의 정체란 무엇인가. 

 - 나는 문가에서 제단을 찬찬히 관찰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토키코가 따온 것인지 관음상 앞에, 하얀색이 아닌 보기 드문 복숭앗빛의 협죽도 꽃이 보일 뿐이었다. 저곳에 신찬을 바치는 것이 무섭고 괴롭다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그것뿐만이 아닌 걸까.'
신찬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의례이며,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내용이 너무나도 꺼림칙해서 노리코는 인계를 거부했다. 그래서 토키코에게 넘어갔다. 노리코에게는 역부족이지만 토키코에게는 문제가 없는, 노리코는 할 수 없었지만 토키코라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었다. 
'노조키메에 관여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의 사야오토시 가에는 살아 있는 신도 빙의체도 없다. 시즈메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언제 노조키메의 앙화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현재 내가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 '그러나 어째서 그것이 외부인인 나에게도 보이는 걸까.'
다시 이 의문이 떠올랐을 때,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자신이 무방비하게 고개를 들이밀고 엿본 장소야말로 노조키메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시고 있는 순령당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급히 문을 닫고 빗장을 채웠다. 분명히 토키코는 제대로 채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것은 문제없을 것이다. 

- 순령당에서 멈추지 않고, 비틀거리며 사당 앞까지 간 나는 오른손을 뻗어서 문손잡이를 쥐었다.
이 안에 모셔진 뭔가를 보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분이 든다.
순령당을 엿본 뒤에 작은 사당을 본 순간, 그렇게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불당에서 느낀 공포심을 초월할 정도의 강렬한 호기심이었다. 탐구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방 그 탐구심을 아득히 능가할 정도의 공포심이 나를 덮쳤다. 
모든 것을 이해한 찰나,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곳에 이론은 없었다. 있는 것은 감각뿐. 말하자면 본능이 속삭이는 경고다. 그렇기에 나는 압도적인 전율에 휩싸였다. 사당에 모셔진 것을 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고 있으니까...


- 한 가지는 숫자의 위력일 것이다. 한 사람의 시선은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숫자가 모이면 그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 또 한 가지는 훔쳐본다는 행위일 것이다. 직접 나를 응시할 경우에는 나도 마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숨어서 보게 된다면 성가시다. 시선은 느끼는데 장소도 인물도 특정할 수 없다. 그냥 누군가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이 상태는 상당히 괴롭다.
상대가 눈앞에 있는 1대 1의 눈싸움이라면 나에게도 승산이 있겠지만, 집 안에 숨어 있는 몇십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이 엿본다는 상태로는 절대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에, 문득 나는 휩싸였다.
너희들은 그렇게 소이치도 계속 지켜본 거냐!
시선의 폭력으로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거냐!
자기들만 안전한 집 안에 숨어서 훔쳐보다니, 부끄럽지도 않냐! 너희들 같은 마을의식의 덩어리가...
그렇게 계속해서 토모라이 촌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이 머릿속을 휘도는 가운데, 정신이 들고 보니 등 뒤에서 느껴지던 시선은 사라져 있었다.

- 다시 남쪽의 폭포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저곳에서 난라이와 로쿠부 고개를 넘어 찾아왔을 수많은 순례자 모녀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모녀는 이 산길을 걸었을까. 난라이의 사야오토시 가에서 신세를 지면서 그녀들은 어떠한 미래를 상상했을까. 살아 있는 신이나 빙의체인 시즈메가 된 소녀들은, 실제로 얼마나 가혹한 처사를 당했을까.
'정신 이상을 일으켜 미쳐버렸기 때문에 몰래 처리되어 버린 거야.'
소이치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이 고개까지 돌아와서 도망칠 수 있었던 소녀는 없었을까. 혹은 어머니와 함께 다시 순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소녀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 '없었어요...'
그때, 몇십 명이나 되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야오토시 가와 로쿠부 고개 사이의 산길을 방황하는 그녀들의 혼이 보였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도 도저히 고개는 넘을 수 없다. 그런 소녀들의 원통한 마음이 로쿠부 고개에 깃들어 있다. 그녀들의 원한이 쌓여 있다. 원통함이 괴어 있다. 광기가 가득 차 있다.

- 문득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무녀 같은 차림을 하고 산길을 지나 큰 바위까지 필사적으로 달려온다. 이 고개를 넘으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추격자가 쫓아온다. 오른편에는 낫, 왼손에는 새끼줄을 든 굳센 사내가 큰 바위 앞에서 소녀를 따라잡는다. 뿌리치며 달아나려고 하는 소녀와 낫으로 위협하며 새끼줄로 묶으려고 하는 사내가 뒤엉켜 싸운다. 다음 순간, 새하얀 소녀의 옷이 선혈로 물들고, 로쿠부 고개에 그녀의 절규가 울려퍼지고...

- 나는 서둘러 큰 바위를 내려가서 왔던 길을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로쿠부 고개까지 도망친 여자들의 혼이 그곳에서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게 쫓겼다간 정신이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소나이 촌에서 무소 고개를 목표로 했을 때도 확실히 비슷한 공포를 맛보았다. 하지만 그것에는 구체성이 없었다. 낯선 산속에서 느끼는 흔한 두려움이 원인이었다. 그 증거로 주위의 환경이 조금 변하니 금세 괜찮아졌다. 그러나 이쪽은 다르다. 소녀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도망치려고 하다가 살해당한 여자아이의 모습을 본 것이다. 아니, 설령 그것이 환각이나 환청이었다고 해도 로쿠부 고개에 응어리진 음산한 공기는 진짜였다. 게다가 그 고개에서 아무리 멀어져도 그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곳에서 느낀 기묘한 분위기가 찰싹 들러붙어 따라오는 듯해서 너무 무서웠다. 

 

- '노조키메만으로도 무서운데...'
거기에 살아 있는 신이나 빙의체가 된 시즈메들과 관계하다니, 절대 사절이다. 나는 안이하게 로쿠부 고개로 향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까이 가는 것은 마을 사람 모두가 싫어하니까요.'

토키코의 경고 같은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역시 그것은 암묵적인 경고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 말 뒤에 혼자서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산속에는 땅거미가 지려하고 있었다. 집락에 있으면 아직 밝을지도 모르겠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머리 위가 덮여 있는 산속에서는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금세 해가 져버린다. 그리고 태양빛이 약해지면 약해지는 만큼 마물들은 오히려 날뛰기 시작한다. 그런 것과 만나기 전에 어떻게든 해서 난라이까지 돌아가고 싶다. 그 일념으로 나는 산길을 쉬지 않고 나아갔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다리의 후들거림이 이젠 한계라며 단념하려고 할 때, 주위를 비추는 저녁놀이 갑자기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앞쪽을 가만히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더 나아가서 확인해 보니, 덤불 너머로 집락이 보였다. 
'살았다...'
그곳은 사야오토시 가 뒤편의 절벽으로 통하는, 짐승들이 다니는 듯한 그 좁은 길 근처였다. 그 길을 지나면 얼마 안 가서 난라이 집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나갈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언덕을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비틀거리면서도 나는 남아 있는 산길을 달렸다.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다.
그것밖에 머리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왜냐하면 짐승의 길 옆을 지날 때, 덤불 속에 멈춰 서서 새빨간 저녁놀을 받으며 이쪽을 빤히 엿보고 있는 그것의 그림자가 시야에 흘끗 들어왔기 때문이다.  

- 덕분에 로쿠부 고개를 왕복하느라 흘린 땀도, 맛보았던 공포도 대부분 씻어낼 수 있었다.
짐승의 길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노조키메도...
역시 그것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로쿠부 고개까지 쫓아오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 덤불을 뛰어서 지나가 않았더라면 대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무서워진 나는, 당황하며 주지의 말대로 그저 마음을 비우고 뜨끈한 물을 뒤집어쓰고 탕 안에 잠겼다. 입욕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불제 의식이라고, 이때 나는 몸으로 체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어이쿠, 아무래도 생기가 돌아온 것 같군요."
이쪽의 얼굴을 보자마자 조린 주지가 웃었다.
"현관에서 당신을 봤을 때는 조금 놀랐습니다."
"엄청 지쳐 있었거든요..."
방석에 내가 앉자 주지는 참으로 신경 쓰이는 말을 시작했다.

"몸의 피로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마치 뭔가에 씐 것처럼도 보여서 말이지요."
다만 갑자기 내가 불안한 표정을 지은 탓인지 곧바로 다시 웃으며 덧붙였다.
"아니, 이젠 괜찮습니다. 우리 절의 성스러운 목욕물 덕분에 그런 것은 전부 깨끗하게 씻겨버렸을 겁니다."
"이곳의 목욕물에는 그런 영험한 효능이 있나요?"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습니까."
간단히 주지가 고개를 저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굉장한 효능이 있었다면 한참 전부터 영험한 목욕탕이라 선전하고 겸사겸사 숙소도 지어서 수많은 손님을 불러들여 한몫 벌었겠지요."
꼭 농담 같지만도 않은 것이 이 조린 주지의 무서운 부분이다. 

"뭐, 초라한 절간입니다만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이 인사가 신호인 것처럼, 하녀가 반상을 들고 왔다. 차린 것이 없다고 한 것치고 꽤나 호화로운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
"젊은 학생이 사찰음식만 먹으면 불쌍하니까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문득 의심스러워졌다. 어쩌면 평소부터 이 절에서는 사찰음식 같은 건 나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속세에 찌든 느낌의 이 주지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화장을 할 경우는 보통 그 이유가 두 가지 있지요. 하나는 시신이 전염병에 걸렸을 경우, 다른 하나는..."
주지는 일단 말을 끊었다가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시신이 뭔가에 빙의된 채로 죽었을 때입니다."
"빙의 상태로 죽었을 때..."
"그대로 매장하면 만에 하나라도 되살아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체는 태워서 재로 만들어 쓸데없는 화근을 남기지 않으려는 거죠."
"하, 하지만 소이치 군은..."
"뭔가에 홀렸던 것이 아니죠."
주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만 이 토모라이 촌에서는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 사야오토시 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 "사야오토시 가사람만은 옛날부터 토장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절에 조상 대대의 묘를 쓰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종말 저택의 부지 안에 묘소가 있으니까, 그곳에 매장한다면 딱히 토장이어도 문제는 없지 않나요?"
나는 곧바로 반론하고 있었다. 죽으면 토장이든 화장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토장의 풍습이 남아 있는 지방에서 우연히 그 집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이치가 화장당했다고 생각하니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말씀대롭니다. 사야오토시 가가 자기 땅에 시신을 모신다면 그것이 토장이든 화장이든 풍장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토장한 시체에게 사야오토시 가의 마물이 붙어서, 그것이 집락으로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노조키메... 인가요."
조린 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것은 시체에 빙의되나요?"
깜짝 놀란 내가 묻자, 주지는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런 사례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노조키메의 바탕이 된 순례자의 딸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받던 어머니와 함께 생매장당했다는 전승이죠."
"그 이야기에서는 딸이 묻힌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되살아난 시체죠.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의 바탕은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집락까지 내려온다니..."
"옛날에 순경의 칼에 베여 죽은 소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소이치에게 들으셨던가요?"
"아, 네."
"그건 정신 이상을 일으킨 시즈메가 사야오토시 가에서 집락까지 내려가서 차례차례 마을 사람들을 습격한 사건입니다."

- "아아, 그렇지요. 심지어 그 근처에는 빙의하는 마을이란 뜻의 츠키모노 촌이라는 마을도 있습니다. 아주 강렬하게 빙의하는 존재가 있다더군요."
"하지만 대학의 민속조사는 특별히 빙의물 신앙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어요. 더욱 일반적인 생활상 조사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소이치는 대학의 조사를 하는 사이사이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조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뭘 말이죠?"
"아마도 노조키메 같은 존재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이었겠지요."

의외의 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과 동시에 소이치가 내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 방법을 찾은 뒤에 당신과 의논할 생각이었겠지요."

이쪽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주지는 그렇게 말을 이었다.
"다음 민속조사지가 소류고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소이치는 몰래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맡은 일을 다 하면서도 자신의 조사도 진행한다는 계획을."
"실은 소이치에게 올여름에 이곳에 오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호오, 그게 언제죠?"
"그 민속조사지로 떠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으음. 분명 그 친구에게는 자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거군요. 그래서 사전에 그렇게 말을 해둔 거죠."

- 자연스럽게 내가 고개를 떨어뜨리자 주지가 술을 따라주었다. 그런 뒤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술을 서로 따라주며 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윽고 내 마음에 어떤 무서운 의혹이 고개를 쳐들었다.

"... 잠깐만요."
내가 고개를 들자, 마치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주지가 이쪽을 보고 있어서 한순간 움찔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의혹을 입 밖에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이치 군이 빙의물 신앙이 번성한 조사지에서 정말로 그런 조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소이치 군이 보인 기묘한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계속 주위에 신경을 쓰고, 어떠한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그런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는데..."
"아마도 신변의 위험을 느낀 것이겠죠."
"그 위험이란..."
"노조키메."
조린 조지는 그 한마디만 말했다.

- "즉 소이치 군의 조사를 노조키메가 방해했다. 완전히 없애는 방법이 알려지기 전에 소이치 군을 처치했다... 그런 이야기일까요?"
"소류고에서 소이치가 보인 행동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주지는 험상궂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애초에 당신도 후쿠무라라는 학생의 증언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니까요."
본인을 만나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고 나는 후회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야오토시 가의 괴이한 현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죽기 직전의 소이치의 모습을 그런 식으로 보았다는 점은, 오히려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주지스님의 말씀대로라고 생각해요."

 

- "다만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이지요. 그것이 다른 지방에도 나타나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전혀 사례가 없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사야오토시 가 사람이 아무도 토모라이 촌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그런 것을 신경 쓰시는 건, 사야오토시 가에 머무를 때에 뭔가를 보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닙니까?"

"... 네."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아직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노조키메 체험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가 문제다. 물론 조린 주지는 이 토모라이 촌에서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몇 안 되는 인물이었지만, 완전히 신용해도 괜찮을까. 애초에 소이치는 어째서 그때, 자신에게 사야오토시 가의 괴이한 존재에 대해 알려준 '어떤 사람'이 심원사의 조린 주지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자고 결심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으음..."

다만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주지는 그런 신음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뭐,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주지의 반응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환자인 나의 증상을 들은 뒤에, 두 손 들었다는 듯이 곤혹스러워하는 의사를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 장송 행렬 때에 말인데요, 행렬이 나아가는 것에 맞춰서 묘한 소리가 들렸어요. 그건 뭐였나요?"
"아아, 그건 절구를 두드리는 소립니다."
"정월에 떡을 찧는 그 절구 말씀인가요?"
자기도 모르게 되물은 나는 깜짝 놀랐지만 주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느 집에나 절구는 있으니까요. 장송 행렬이 자기 집 앞에 접어들기 전부터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각 집에서는 준비해 두었던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절구를, 모두가 절굿공이로 찧는 겁니다. 이 소리에는 부정한 것을 쫓는 효과가 있어서..."
그 이후의 설명은 내가 추측한 대로였다. 다만 그 음원이 절구였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순순히 감탄하면서도 그 소리의 정체보다 더욱 알고 싶었던 의문을, 나는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장송 행렬에는 많은 분이 나오셨는데요, 그만큼 많던 장송 참여자 중에 누구 한 사람도 노조키메를 깨달은 분은 안 계셨나요?"
"깨닫고 뭐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꾸중을 들을 줄로만 알았는데, 주지는 간단히 답해주었다.

"사야오토시 가 사람에게도 말인가요?"
“가령 보였다고 해도 모르는 체를 했겠지요. 즉 아이자와 씨 같은 반응이 사실 제일 위험합니다."
움찔하는 것과 동시에 오싹해졌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어도 곤란하다. 노조키메의 대처법 따윈, 소이치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 "하. 하지만 어째서 그것은 제가 있는 곳에 나타난 건가요? 어째서 저에게 보이는 건가요?"
"그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막힌 조린 주지의 표정을 보고, 나는 아주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 듣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 귀를 막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전에 주지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흥미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자와 소이치라는 학생은 외지인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흥미의 대상이 되는 법이지요."
오늘 오후에 난라이 집락을 걸으며 받았던 무시무시한 시선의 세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같은 원리가 노조키메에게도 적용되는 겁니다."
"즉, 제가 보기 드문 존재라서..."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하지 않는 겁니다. 저쪽이 싫증 날 때까지, 모르는 체하고 상관하지 않는 겁니다."
"그걸로 괜찮아질까요?"
"어차피 어린앱니다. 그러다가 이내 흥미가 사라지겠죠."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평범한 어린애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 "몇 번이나 그것이 저를 보았습니다. 그 탓에 기이치 씨에게 앙화가 내린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말입니다, 노조키메의 시선을 받는 것은 사야오토시 가 사람이고 그것으로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도 사야오토시 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 집에서 노조키메의 시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전혀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이치 군이..."
"그 이야기는 정말로 오래간만입니다. 게다가 그 이야기에 따르면 시선을 받은 본인이 죽습니다. 앙화가 그 당사자에게 내리니까,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 말대로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뭔가가 응어리처럼 남은 듯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존재를 이론으로 생각하는 건, 우스운 얘기죠. 그렇지만 무슨 일에나 조리가 있는 법입니다. 어디까지 인간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사실은 괴이한 현상도 그 조리를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상당히 놀랐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전하자, 주지는 기뻐하면서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해석은 결코 무익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답받는 경우는 적지요. 허나 그것도 괴이한 현상에 맞서기 위한 훌륭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 그렇게 되면 범인이 누구이든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마을 사람이 아는 사이인 폐쇄적인 집락이다. 덤으로 피해자가 사야오토시 가라는 특수한 집의 당주이니까, 더욱 알기 쉬울 것이다. 그 정도로 단순한 사실을 당사자인 범인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기이치를 살해한다고 해도 좀 더 적합한 시간과 장소를 고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시 노조키메의 앙화일까. 그러나 그래서는 주지가 지적한 대로 모순이 생긴다. 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사고도 살인도 부정되고, 그런데다 앙화조차 아니라면 기이치의 죽음은 대체 뭐라는 것인가. 자살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방울소리...'
그것도 현장에서는 방울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헛간 안에서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한 순례자 모녀가 아마도 필사적으로 흔들었으리라고 생각되던 방울소리. 이것들과도 역시 관계가 있는 걸까. 
그러나 그렇다면 노조키메의 짓이 되어버린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나는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별채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몰래 안채의 눈치를 엿보러 가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복도를 나아가고 있자니, 어느 방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말도 안 되는 의논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을 츠야로 나고, 내일 바로 발인하자는 것이 아닌가. 보통은 오늘이 가 츠야, 내일이 본 츠야, 모레가 발인 후 장송일 것이다. 하물며 시신은 사야오토시 가의 당주였던 인물이다. 마땅한 장례 절차를 밟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나 매정한 대응에 아연실색했지만, 코노에 씨의 장송 행렬을 떠올려보고 이내 납득했다. 사야오토시 가의 사람이 죽었을 경우, 마을 사람들은 하루라도 빠른 매장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물론 그 방법은 화장이다. 저 작은 산 뒤편의 조잡한 석조 화장장에서 기이치도 코노에 씨나 소이치와 마찬가지로 불살라지는 것이다. 

- 그 자리를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조심 벗어나서, 나는 불단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얼른 가지 않으면 시신은 관에 들어가고, 츠야를 위해 제단 앞에 안치되게 된다. 어젯밤에 토키코에게 안내받아서 가는 길은 알고 있다. 되도록 누구와도 만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달려서 아무도 없는 방들을 지났다. 불단이 있는 방 정면이 아니라, 미닫이문으로 나눈 그 옆방으로 향한다. 그곳이라면 가령 누가 그 방에 있더라도 들키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
무사히 옆방에 도착해서 살며시 미닫이문을 열고 불단이 있는 방을 들여다본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 '나에게 익숙해져서...'
한순간 그것이 답이라고 판단할 뻔했지만, 곧 그렇지 않다고 깨달았다.
시선이 줄어든 것은 애초에 마을 사람의 숫자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사야오토시 가에서 고용인들이 도망친 것처럼, 아마도 집락에서도 사람들이 피난하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특히 난라이가 가장 많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럴 수가...'
토키코의 야윈 얼굴과 쇼이치의 쓸쓸한 표정이 내 안에 겹쳐졌다. 그 두 사람이야말로 이런 마을에서 나가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금방 다른 문제를 깨달았다. 
토키코 정도의 기량과 인품을 가진 여성이 어째서 이런 시골의, 그것도 사야오토시 가처럼 사연 있는 집안에 시집을 온 것일까. 그 점을 생각하면 분명히 뭔가 외부에 이야기하기 꺼리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그녀의 본가가 빙의하기 쉬운 체질의 집안이라든가. 그런 집안끼리의 혼인은 거의 친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집안에서 며느리를 들이려고 해도 오는 사람이 없고, 그 집에 시집을 보내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친족 간에서 오가게 되는데, 당연히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것 때문에 동일한 고민을 가진 다른 지방의 같은 계열 집안을 찾아서, 그곳과 사돈을 맺는 일이 이따금씩 있다고 한다.  
 
- 상당히 밤이 깊어진 데다 내 혀가 잘 돌지 않기 시작한 탓인지 그런 질문을 해왔다.
"... 아, 아뇨. 내일은 사, 사야오토시 가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 역시 돌아가야 해서..."
사야오토시 가를 떠나기 전에 쇼이치와 놀자고 약속했다고 말하자, 카쿠조는 무척 기뻐하면서 말했다.
"만약 너무 오래 놀아서 그날 귀가하기 어려워지신다면 사양하지 마시고 저희 집에 들러주세요. 어차피 돌아가시는 길이니까요." 
".... 가, 감사합니다."
그런 뒤에 한동안 환담을 나눈 후 슬슬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러자 웬일로 카쿠조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험상궂은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사야오토시 가가 뭐라고 불리고 있는지 아십니까?"
"종말 저택... 이죠."
"그건 옛날부터 불리던 이름입니다만 최근 수년 사이에 마을 일부 사람들은 '지사이(兒災) 저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무슨 한자를 쓰는지 설명을 들은 나는 납득했다. '재액을 부르는 아이의 집'이라는 의미라면 '사이지(災兒) 저택'이라고 해야겠지만, 발음하기 편하게 '사이'로 한 것이리라.
곧바로 내가 내린 해석을 이야기하자, 카쿠조는 같은 발음에 한자만 바꿔서 먹이 이() 자에 재앙 재(災) 자를 쓴 지사이(餌災)라고 쓰는 마을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한 뒤에 내 얼굴을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충고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불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도 그 집에서는 충분히 주의를 하셔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느끼더라도 결코 확인하지 말도록 하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별채에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다."
조린 주지와 완전히 같은 요지의 말이었다. 어째서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하고 놀랐지만, 이제까지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물론 술기운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야오토시 가에 대한 배려 때문에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내가 순순히 끄덕이자, 카쿠조는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리면서 말했다.
"뭐, 내일은 돌아가실 테니 걱정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부디 조심하십시오."

- 유모인 후사 씨를 비롯해서 하녀나 고용인들이 쓰러져 있는 사이사이에 그릇과 요리들이 흩어져 있다. 모두가 몸을 부자연스럽게 비튼 채로 숨이 끊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대,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연실색하며 그 자리를 둘러보고 있던 내 눈에 어떤 물체가 들어와서 앗 하고 숨을 삼켰다. 서둘러서 조금 전의 방으로 돌아가보니, 역시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 머리맡에 있던 고비나물 같은 식물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나물이었다.
"설마..."
곧바로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정답처럼 생각되었다. 그렇게 직감했다고 말해도 좋다.

- 그렇다면 어째서 그 독초가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는가. 그것은 내가 외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집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래서 이것과 같은 덩굴 형태 식물의 요리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의 의미로, 그것을 머리맡에 놓아둔 것이다. 그러면 대체 그런 충고를 누가 했는가.
'노조키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조린 주지는 말했다. 그것은 나에게 흥미를 갖고 있다고.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 외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즉 꼭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고 만은 할 ...

- 나는 별채까지 쏜살같이 달려가려고 했다. 방에서 짐을 챙겨서 별채 뒤편의 벼랑에 난 가파른 길을 기어올라 그 짐승의 길을 따라 산길까지 나가면 그대로 로쿠부 고개를 넘어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문득 저 사당이 신경 쓰였다. 두 번 다시 이곳을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저 사당 안을 엿보고 싶다. 그런 강한 충동에 휩쓸렸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빨리 도망쳐라, 주지의 충고를 잊었는가, 게다가 그 주지도 죽어버렸다, 카쿠조도 주의를 촉구하지 않았는가, 일부러 앙화를 부르는 짓을 할 필요가 어디 있나, 그런 마음의 소리도 들려왔다.

 

- 시간으로서는 정말 찰나의 망설임이었다.
나는 서쪽 정원을 돌아서 순령당과 작은 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순령당의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지만 사당에는 자물쇠가 없다. 살며시 오른손을 뻗어서 손잡이를 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과 동시에 문을 활짝 열었다.
나의 절규가 대문 밖까지 닿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내가 로쿠부 고개를 넘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 한 가지 마음에 남는 점이 있다면, 내 손으로 소이치의 납골 항아리를 제대로 납골해주지 못했다는 점뿐이다.

- 1) 아이자와하고 대화하던 중에 어째서 사야오토시는 '어떤 사람'이 심원사의 조린 주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했는가?
2) 조린 주지에게 환대받으면서도 어째서 아이자와는 상대가 자신을 쫓아내고 싶어 한다고 느꼈는가?
3) 사야오토시 가에 시즈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노조키메가 나타나서 앙화가 내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4년 동안이나 방치한 상태였는가?
4) 열 살 무렵의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자기 아이인 쇼이치를 겹쳐보고 토키코가 어두운 얼굴을 한 것은 어째서인가?
5) 순령당에 신찬을 바치는 역할이 어째서 노리코가 아니라 갑자기 토키코에게 인계되었는가?
6) 토키코가 맡은 일을 할 때에 무섭고 괴롭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7) 노조키메가 된 순례자 모녀를 공양할 목적으로 세워졌던 것이 순령당이다. 그러면 그 순령당을 진정시키기 위한 사당의 정체란 무엇인가. 대체 그곳에는 무엇이 모셔져 있던 것일까?
8) 사야오토시 가 = 종말 저택이 일부 사람들에게 지사이 저택이라고 불린 것은 어째서일까. 그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 이 밖에도 의문점은 다수 있었지만 적어도 괴이 현상에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단호하게 제외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어떤 사실이 점차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 1번과 2번 항목으로, 심원사의 조린 주지는 별로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지가 노조키메와 관계없을 리가 없다. 사야오토시 소이치의 조사지를 안 것만으로 그의 목적을 추리할 수 있었을 정도다. 사야오토시 가가 시행하던 노조키메 대책에 지혜를 빌려주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애초에 본인이 그 사실을 암암리에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항목처럼 어째서 주지는 시즈메가 없는 상태로 사야오토시 가를 방치하고 있었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한 나는 자기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치게 되었다. 사야오토시 가가 지닌 비밀 중 한 부분을 밝혀냈다고, 그 찰나에 확신했다. 아니,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망상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 하지만 노조키메라는 괴이 현상이 멈춘 내 괴이 체험이 최소한으로 끝난 것이야말로 이 추리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자신도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 어쨌든 내가 도출한 해석은 이렇다. 사야오토시 가는 시즈메가 없는 상태 그대로 아무 조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린 주지의 협력을 얻어서 시즈메와는 다른, 새로운 방위책을 취하고 있었다 그 계책은 물론 주술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은 4년 전에 시코쿠에서 난라이를 찾아온 순례자 모녀를 사야오토시 가에 맞아들여서 병약한 어머니는 순령당에 지내게 하여 인질로 삼고, 딸은 사야오토시 가의 '지사이(持衰)'로서 작은 사당에 모시며 사야오토시 가에 내리는 모든 앙화를 떠맡는 역할을 부여한다는 새로운 주술이었다.

- 지사이란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중국의 당나라에 파견된 견당사의 배에 반드시 태웠던 인간을 말한다.
지사이는 배의 뱃머리에 서게 되는데,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이 일절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머리는 제멋대로 자라고 몸에는 땟국이 흐르며 옷은 넝마 같은 상태가 된다. 게다가 육식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것이 금지된 채로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항해가 성공하면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바다가 거칠어져서 조난의 위험이 생기면 바다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바다에 던져질 운명이었다. 즉 지사이의 존재 자체가 견당사의 배를 바다의 재앙으로부터 지키는 주술이었던 것이다. 

- 순령당의 관음상 앞에 보기 드문 복숭앗빛 협죽도 꽃을 바친 것은 분명 소녀였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실은 그 꽃에도 독이 있지만...

- 복수를 마친 소녀는 어떻게 했을까. 도망친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디로 도망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그녀에게는 갈 곳이 없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사당에 돌아갔을 가능성이다. 
그런 소녀를, 사당 안을 엿본 아이자와가 발견했다면... 그리고 같이 도망쳤다고 한다면... 그리고 아이자와하고 가정을 이룬 그녀가 이윽고 능력 있다고 소문난 점술사가 되었다고 한다면...

- 완전히 내 공상이다. 다만 증거는 없다고 썼지만, 사실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다.
나구모 케이키가 아이자와 가에 드나들고 있을 무렵에 가끔씩 아이자와 부인이 맥주와 함께 나물 무침이나 산채 요리 등을 내놓은 듯한데, 아이자와는 그것을 젊은 사람 입에는 맞지 않을 거라며 나구모에게 먹이지 않았다. 
어쩌면 부인은 나구모의 사악한 목적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의 비밀을 폭로할지도 모를 그의 간사한 의도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야오토시 가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그 독초를 나물이나 요리로 만들어 내놓았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깨달은 아이자와가 나구모에게 먹이지 않도록 했다. 이 생각은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일까.  

 

- 그렇지만 어째서 아이자와는 이 노트를 나에게 맡긴 것일까. 어째서 소설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허락한 것일까.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어쩌면 아이자와 소이치는 사후에라도 그런 사회에 대해 복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나처럼 괴이담을 좋아하는 작가의 손을 빌려서... 아니, 조종해서...

- 내가 우연히 노조키메의 화자가 된 것인지 어떤지는 당신이 어떠한 체험을 했는가에 달릴 것 같다. 가령 무서운 일을 겪었다고 해도 부디 나를 원망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야기의 처음에 경고했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니까.



 

 

역자 후기



미쓰다 신조란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역시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호러 소설의 오싹함과 미스터리 소설의 수수께끼 풀이. 이 요소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는 것은 소설 초반부에서도 내비쳐진 부분이지요. 미쓰다 신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조 겐야 시리즈>만 보더라도, 풍부한 일본 민속학 지식을 바탕으로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정작 수수께끼풀이는 주어진 단서들을 통해 아주 논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노조키메>도 예외는 아닙니다.

<노조키메>는 시간차가 있는 두 가지 사건과 그것을 보는 또 하나의 관찰자 시점이라는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실제 증언과 수기를 바탕으로 엮은 논픽션을 읽는 듯한 감각이라 오싹함을 더하죠. 그런 와중에 미스터리 요소도 빈틈이 없어서, 각 에피소드에 깔아 두었던 복선을 마지막에 가서 차례차례 회수하는 수수께끼 풀이는 특히 일품입니다. '초현실적인 존재'와 '논리'라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어색하지 않게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에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혹시 작품 내에서 결국 '노조키메'란 존재에 대해 완벽히 설명하지 않는 점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독자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이 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본문의 한 구절을 옮겨봅니다. 

'아, 무서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 따윈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실은 이런 인과응보가 있어서'라는 식의 설명 따윈 전혀 필요 없다. 괴이한 일은 어디까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이나마 작가가 추구하는 '호러'가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포영화의 괴물은 끝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미지의 존재로 남아야 영화가 끝난 뒤에도 두렵게 느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대단한 마술이라도 트릭이 밝혀지면 어쩐지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하는 호러,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을 단서를 찾아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미스터리.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새삼 호러와 미스터리를 밸런스 좋게 융합시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느끼게 됩니다.

한창 이 책을 번역하던 지난 겨울밤에는 작업실 조명등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장 난다거나 며칠 뒤에 다락에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구르거나 한 적이 있습니다. 둘 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것도 한 달 정도 집에 혼자 있던 기간이었죠. 왜 하필 이 소설을 작업할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하고 기분이 뒤숭숭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노조키메>는 저에게 쉽게 잊지 못할, 독자로서도 역자로서도 참으로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미쓰다 신조의 재미있는 작품들을 계속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현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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