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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최규석] 지옥: 부활자 1-2 (완) - 지옥 season2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6. 17.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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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연상호 / 최규석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4.10.21


저자 : 연상호 / 최규석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4.10.21



       

 

<지옥: 부활자>는 동 작가들의 작품인 <지옥>의 시즌2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앤솔로지인 <지옥: 신의 실수>와는 순서를 바꾸어 읽으셔도 무방하겠으나, <지옥>과 <지옥: 부활자>는 꼭 순서를 지켜 읽으셔야 이해 및 감상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햇살반 선생님'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로 시작하는데, 강렬한 붉은 색감과 선버스트 헤일로(또는 스텔라 마리스, 마리안 스파이크) 형태의 뼈가시 관이 눈에 박힌다. 거친 분장이지만 어딘가 장 폴 고티에스러운 예술성까지 느껴지는데- 여기에는 피와 뼈가 연상되는 폭력성 및 원시 주술성이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햇살반 선생님'과 '부활자 박정자'가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었느냐는 다르지만, 붉은 화장, 전체적인 장식과 초월적인 분위기 등은 매우 유사하다. '새의도'의 발표를 통해 화살촉을 견제 또는 흡수하겠다는 새진리회의 의도가 담긴 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작품 내에서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바는 없다)

 

이는 화살촉이라는 집단과 새진리회라는 집단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지'와 '시연'이라는 현상에 대한 공통된 해석에서부터 파생된 두 집단. '햇살반 선생님'과 '부활자 박정자'는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갈라진, 하지만 뿌리는 같은 두 집단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옥: 부활자>를 읽거나 읽으실 분들은 아마 <지옥>을 이미 접한 분들일 것이다. 간략하게 해당 작품의 세계관을 설명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희뿌옇고 거대한 머리 형상의 '천사'가 나타나 특정 시점을 알려주는 '고지'라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현상뿐 아니라 표현도 당황스럽다. 그 시간이 오면, 당신은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합성, 조작된 영상이라며 떠돌던 '고지' 영상. 그런데 실제로 해당 인물이 괴물들에 의해 분사하는 일이 일어난다.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고지'는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맞는 죽음은 '시연'이라 불리게 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회 전체가 크게 술렁인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부터 꾸준히 '고지는 신의 뜻이다'를 설파해 온 정진수와 그의 단체인 '새진리회'에 관심이 집중되고. '시연'이 신에 의한 단죄라면 그 대상이 된 자가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단죄하고 속죄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화살촉'이라는 집단까지 생겨난다. 

 

<지옥>이 '시연'에 의해 죽음을 맞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지옥: 부활자>는 이 현상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와 남겨진 이들, 그리고 '시연'으로 맺음 짓지 못하고 돌아오는 '부활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무엇으로도 끝이 아닌, 끝나지 않는 이야기.

모두가 다 경험하거나, 아무도 경험하지 않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

그러나 다수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어떤 것도 항상 '일어나고' 있다.

 

<지옥>이 현상 자체의 기괴함과 강렬함을 보여줬다면, 

<지옥: 부활자>는 그 현상의 이면과 이후에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기괴함과 절박함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 아닐까.

 

흥미로웠다. 

드라마까지 볼 지는 미지수. 

 

   


   

   

 

 

- "그러나 신은 제 팔만 받으시고 죄인의 죄를 사하여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정경석 죄인의 진실된 참회와!!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식구들의 숭고한 헌신이 더해진다면!! 오늘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 "정경석 죄인! 두려워하지 마세요! 신의 손길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손길에 몸을 맡기듯 받아들이세요! 그래야만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 "그래도 새진리회처럼... 수준 있는 사기꾼이 민심을 잡는 게 낫겠단 말이죠."
"뭐요?! 사기꾼...?"
"하이고~ 꼴에 자존심은 남아 있으셔? 지금 나라 꼴을 좀 보세요. 정치, 경제, 사법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어요. 쟤들 논리는 인간이 법이나 권력이 아닌 자기 자신에 의해 규율돼야 한다는 건데... 이건 국가 자체를 없애자는 소리 아녜요?"
"그... 그게 우리 책임입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에서 한 게 뭐 있어요? 공권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싹 잡아다 넣으면 될 걸,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하! 그러는 의장님은... 화살촉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있으세요?"

"..."

 

- "거봐요. 지금 화살촉을 공격하는 건 '의도'를 부정하는 일이 돼버렸어요. '의도'를 만든 건 당신들이지만 그걸 쥐고 흔드는 건 화살촉이라고요. 키우던 개가 주인을 물어서 버릇을 고치려고 봤더니 이미 주인보다 커져 있더란 얘기죠."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박정자 사건이 전 국민에게 방송됐을 때,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어요. 그래도 최소한의 통제는 작동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봐야죠. 규율 없는 집단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이미 사회 곳곳에 화살촉 놈들이 침투하지 않은 데가 없는데 무슨 수로 되돌린다는 겁니까?"

- "아니~ 왜 흥분을 하세요~ 의장님더러 거기 뛰어들란 거 아니고요~"
"허... 참..."
"새진리회의 말에 다시 강력한 힘을 실어줄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잖아요... 캐릭터가 좋아야지. 그게... 본인이 아니란 건 아실 거고..."
"상징적 인물이라니... 누구를..."
"모른 척하지 마세요... 이거 찾느라 우리 직원들 고생 많~이 했어요."
 
- "4년간... 이렇게 가둬둔 거예요? 상태는 어때요? 뭘 봤답니까? 대화는 가능해요?"
"허... 대화... 그게 되면 그동안 써먹지도 않고 이러고 있겠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이 수백 번을 시도했죠. 그나마 말 비슷한 걸 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들어서지, 처음 3년은 숨만 쉬었어요."
"그래서?! 의미 있는 내용이 있었어요?"
"정상적인 소통이 안 돼요. 계속 멍한 상태로... '은율아... 하율아...' 애들 이름만 부르고... 텅 빈 거나 다름없어요."

- "고지는 아무런 인과도 없는 사고잖아요. 사기를 오래 치다 보니 본인도 믿게 됐어요? 잘 들어, 김정칠.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개헌선을 넘기면... 화살촉이 원하는 모든 게 현실이 될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제스처만 그렇지 정치인이 자기 앞길 막는 짓을 왜..."
"정치인이니까 그렇겠죠. 당신이 늘 말하잖아. 이 세상이 죄악 그 자체라고. 당신은 사기 치려고 하는 소리겠지만, 그걸 진심으로 믿는 자들은... 자기 앞길 따위 생각하겠어요?"

- "총선 전까지 박정자를 내세워서 대부흥회를 열어요! 정부에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할 테니... 박정자를 새진리회와 화살촉을 압도하는 인물로 만들어서... 그의 입을 통해 새 세상의 교리를 공표하는 겁니다! 
화살촉을 사이비 이단으로 규정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원칙이 담긴 교리. 아시겠어요?!"
"우리라고 그런 계획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동물 조련사를 써서라도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들 수는 있어요. 그런데... 시연받은 사람이 박정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새진리회 공식 시연만 142건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부활해서 우리랑 다른 얘길 하면 그때는 또 어쩝니까?"
"아까 말했죠? 중요한 건 캐릭터라고. 숨어서 시연받은 사람들은 부활했다고 해도 대중이 믿지 않을 거고, 새진리회 본당에서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여기서 부활할 테니 관리하면 돼요. 1호 죄인 주명훈 건은 성지 폐쇄하고 정부에서 24시간 감시하도록 하면... 지금 상징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저 박정자... 그리고 시연 불발된 아기랑 죽은 부모... 정도죠. 그 애도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걜 데리고 뭘 할 수 있겠어..."

 
- "하... 한 명 더 있어요. 그... 상징이 될 만한 인물..."
"?"
"정진수."

- "오늘 바로 박정자의 부활 사실을 발표하세요. 가능하시죠?"
"예? 아, 아직 '새의도' 초안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우리가 이슈를 선점하는 게 중요해요. 쟤들이 김 빼기 전에... 일단 부활을 공식화하고 3개월 후에 '새의도'를 공표한다고 하면 그동안 웬만한 이슈가 터져도 우리 입만 바라보게 될 거예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 예...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 "그때 왜 정진수의 진실을 알리지 않으셨어요?"
"진실... 알렸으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시연이 틀어지고 아기가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세요. 전보다 나아졌습니까?"

- "그 시연이 생중계되면서 세상은 더 미쳐 날뛰고 그 아기는 평생... 자신을... 엄마 아빠를 지우고 살아야 해요. 그게... 진실의 결과예요."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죽은 듯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랬다면 적어도 나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진형사님이 박정자 씨를 지키려고 총을 쏜 것처럼... 저도 그런 거 같아요. 눈앞에 지켜야 할 진실이, 지켜야 할 세상이 있으니까... 계속 방아쇠를 당겨보는 거예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 "재현이, 언제까지 저렇게 둬야 할까요?"
"저렇게라뇨?"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로 24시간 감시당하면서 매달 DNA, 혈액, 심리검사... 정상적이진 않죠... 좀 더 평범하게..."
"평범한 새진리회 신도나 평범한 화살촉처럼요? 이런 세상에서 평범한 건 곧 잘못된 거죠. 아직도 재현이를 변호사님께 맡기는 것에 반대가 많은데...
이러시면 저도 더 이상 편들어드리기 힘들어요. 민 변호사 님은 그 아이의 보호자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재현이, 그냥 보통 아이예요. 시연을 피한 이유가 재현이에게 있다고 믿을 근거가 없는데... 끝도 없이 이런 식으로 지낼 수는 없어요."

"그 애가 보통 아이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판단합니다. 연구팀에서 계속 데이터 분석하고 있고... 이제 고작 네 살인데 급히 결론 내릴 순 없죠. '진실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져오는 것이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말이죠. 엉뚱한 곳에 무의미한 노력을 쏟는 건..." 
"설사 평범한 아이라 해도 그 애는 우리의 이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 아이 하나를 살리기 위해 동료 여섯을 잃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자산을 그런 이유로 포기하자고 설득할 수 있겠어요?"

 

 

 


- "무슨 얘기든 좀 해봐요!!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네?"
"그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설명이 되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테니까... 그냥 뭐라도 말을 좀 해보라고요...
지금 몇 년 동안... 지겹지도 않아요? 제가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이 일은 이미 제 손을 떠났어요. 지금 나한테 말하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 입에서 우리가 원하는 말을 뱉게 만들 사람이 저 밖에 있어요."
"... 끝없는... 그리움... 이라고 해야 하나..."
"뭐요?"

- "할게요..."
"예?"
"뭐든 할게요... 우리 아이들한테 아무 짓도 하지 말아요... 저를 찾아오지 못하게 해 주세요..."
"오케이, 오케이!! 이제부터 당신은 부활자입니다. 신의 '의도'를 전하러 온 부활자! 오케이?"

- "얼씨구, 김정칠이... 그래도 아주 폐급은 아니네."

 

 

 



- "보육원 근처에서 상주하던 멤버가 신병 확보했고 곧 우리 지부에서 관리하는 안전가옥으로 이송할 예정입니다."
"그리고요?"
"이미 합의한 부활자 대응 방안대로 외부접촉을 차단하고, 시연 이후에 뮐 겪었는지 조사를 해야겠죠?짜 그 지옥이란 게 있는지, 이 모든 게 대체 뭔지..."
"조사 기간은요? 새진리회는 박정자 씨를 4년이나 붙잡고 있어도 알아낸 게 없는 것 같던데..."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때까진 어쨌든 우리가 관리해야죠."
"기한 없는 구금을 하자는 말씀이네요."
"변호사님... 리걸마인드는 법이 작동할 때나 의미가 있는 거고요. 그럼 그냥 내보내요? 아니면 정진수 부활했다고 광고라도 할까요? 무슨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화살촉이나 새진리회에서 어떻게 악용할지도 모르는데..."

- "부활자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저번 회의에서 가결이 됐는데... 이걸 다시 토론에 붙이려면..."
"아뇨,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보다 전에 제안한 박정자 씨 구출 건에 대해 논의했으면 합니다."
"'세의도' 발표를 앞두고 새진리회 보안이 청와대 수준이에요. 지금 우리 역량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발표가 성공하면 새진리회의 교리가 전면제도화될 거예요. 불가역적 신정국가가 되는 거라고요!"
"화살촉이 장악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수도 있죠. 지들끼리 세력 싸움한다는데 굳이 우리가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박정자 씨를 구출해서 뭘 하시겠다는 겁니까?"
"뭘 하다뇨?! 당연히 가족들에게 데려다줘야죠."
"우리 조직이 입을 피해는 생각 안 하세요?"
"맞습니다. 얻을 건 불확실하고 위험은 너무 커요."

 

- "아이들에게 엄마를 데려다 주자는 게... 설명이 따로 필요한 일이었어요? 위험이요? 우리가 언제 위험하지 않은 적 있나요? 고지받은 한 명 구하자고 몇 명씩 희생하며 싸웠던 소도가, 언제부터 이해득실 따지고 정세 판단해 가며 활동하는 조직이 된 거죠? "
"그래서 그 아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본 적도 없는 애들 때문에 조직을 위험에 빠뜨려요?"
"저는 박정자 씨의 법률대리인입니다. 당시에 아이들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아이들의 정보를 공개하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납니다."
"민혜진 님! 중요한 정보는 혼자 독점하면서 우린 몸빵이나 하라는 겁니까? 시연을 피한 아기를 직접 관리하겠다 한 것도 모자라, 박정자 가족에 대한 정보도 혼자만 아셔야겠다고요? 소도는 민혜진 님의 사조직이 아닙니다!"

- "용서받았어... 내 죄를... 용서받았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우리의 헌신이 응답받았습니다!! 햇살반 선생님의 헌신에 신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화살촉! 화살촉!!"

 

- [그날 이후 아내는 화살촉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됐어. 그래도 더 이상 시연을 찾아다니지 않게 돼서 좋았어. 지원이의 마음이 어디에 있든 몸만이라도 내 옆에 있는 게 더 나았으니까.]

- "시연을 받아도... 거기서 살아남아도... 숨을 쉬는 한... 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거야!! 당신이!!"

"당신 아내한테는 그게 쾌락이었던 거야."
"뭐?!"
"평범한 삶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일체감. 신의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벅차오르는 자긍심... 유일하게 시연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월한 지위. 당신 아내가 처음 시연에 참가한 건 내 영향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이 죽은 건 내 탓이 아냐. 죄의식 때문도 아니고. 당신 아내 말고도 시연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두 명 더 있었다며? 그녀는 챔피언 벨트를 되찾고 싶었던 거야. 인간의 죄를 씻는다는 숭고한 대로 자신을 속이며 실제로는 쾌락을 추구한 거지. 아마 시연을 받는 순간에도 지고의 쾌감을 맛봤을 걸... 당신과의 결혼생활에서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감각 말야." 

- "이제야 세상에 돌아온 게 실감 나네. 그래서. 당신이 생각해 낸 복수가 나를 소도라는 조직에 넘기는 거였어?"
"복수가 아냐! 바로 잡으려는 거야!
당신이 망쳐놓은 세상을... 다시는 지원이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 평범한 정의가 통하는 세상으로..."
"뭐? 하하하하하. 그런 말은 대체 누가 가르쳐주는 거야? 소도가 그렇게 얘기하던가? 그렇게 자기네 일원이 되어달라고 했나 보지? ... 잘 들어... 소도라는 놈들은 절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소도는 고지와 시연이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를 섬기는 자들이야.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모른 척하고 싶은 거라고. 하지만 일어나 버렸잖아. 거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와버렸다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건... 이 세상을 바꿀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얘기야." 

 

- "인터넷 기사 잠깐 본 걸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해?! 네가 소도에 대해 뭘 알아!!"
"그럼 하나만 물을게. 그 시연을 피한 아기 말야... 소도에서 데려다가 도대체 뭘 했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4년이나 지났는데... 뭔가를 할 의지가 있는 놈들이라면 이럴 수가 있나?" 
"그... 아기는 연구 중이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실? 내가, 그 진실을 보고 온 사람이야. 그런데 그 진실이 소도가 원하던 게 아니면 어떻게 되지? 당신이 아는 소도는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조직인가? 그럴 리가!! 그놈들은 당신 같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의감을 채울 뿐이야.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들만 제정신이라는 자의식에 취해 고립을 택한 놈들이라고!"
"이..."
"날 소도에 넘기면... 그다음엔?"
"조... 사를 하겠지..."
"죽일 거야. 내가 아는 진실은 소도에게 소용이 없고, 내가 가진 영향력은 그들에게 너무 큰 위험 요소니까."

- "핸드폰은 버려. 소도에서 추적할 테니."

"..."

- " 정진수 의장은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정의와 선을 행할 것을 설파했는데 마지막 인터뷰에서 앵커의 돌발 질문에 답하면서 의도치 않게 '신은 우리에게 그 능력을 새겨놓았습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화살촉은 정진수 의장의 이 발언을 마치 제1교리인양 내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행동 준칙이 개별 인간의 내면에 있다고 하면, 준칙이 없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피상적 공간에서 형해화된 준칙을 다시 '의도'라는 텍스트 내부로 고정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도 핵심적인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신생아 시연 이후 형성된 시연 동참을 통한 '죄 사함'이라는 낭설 또한 자연스럽게 해체시킬 수 있으리라 예측됩니다. 저희 교리 개발팀에서는 이러한 방향성에 입각해서..."

"아니~~ 그 부분은 이미 새진리회에서 다 반박하고 정리를 끝냈어요! 틀렸다고 백날 말해봐야 뭐해요? 사람들이 안 믿는데!"
"아유~ 의장님. 교수님들이야 원래 논리따지고 분석하는 게 일인 분들인데... 왜 역정을 내실까."

 

- "교수님, 교리야 뭐 교수님들께서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는데 제가 부탁드릴 건 딱 하나. 박정자가 직접 발표할 대사. 그게 중요해요. 짧고 강렬하면서... 언뜻 들으면 훌륭한 말 같은데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알아먹기 힘든 그런 거 있잖아요."

"... 예?"
"말이란 게 원래 아리까리~하면서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여야 오래 살아남는단 말이죠.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시고요. 이해되는 말은 분석되고, 분석 가능한 건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없잖아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
"아... 예, 예.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 "다음은 부활자 비주얼을 담당하고 계신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박율금 선생님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초월'로 잡아봤어요. 인간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다운 이미지를 통해 관중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부활자의 메시지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새진리회와의 연결성을 위해 사제복 색상을 포인트 컬러로 배치해서... 신적인 숭고함과 귀족적 절제가 공존하는 콘셉트를 지향합니다. 메이크업도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 "!!"
"답장 왔어요. 두 시간 거립니다. 바로 움직이죠."
 

- "정진수 의장... 왜 화살촉입니까?"
"왜요? 의심스러워요?"

"의심이라기보다는... 내가 뭘 선택한 건지는 알아야 하니까... 차라리 새진리회가 더 낫지 않을까요? 정부와의 관계도 좋고..."

"타협을 할 거라면 그게 낫겠죠. 새진리회나 정부는 나의 이용가치를 따질 테니...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광신적 집단만이 세상을 바꿀 동력을 가졌어요."
"바꿀 수야... 있겠죠. 더 나쁘게..."
"화살촉은 지금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유일한 집단이에요. 그리고 나를 만나면... 내가 그들의 신념이 될 겁니다."
"..."
"의심스러우면 소도로 돌아가시고요."

- "!! 그... 그래서 그게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어쩌면 박정자 씨가 죽음의 순간을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당장은 검증할 방법이 없죠.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으니..."
"그게... 우리 계획에 영향이 있습니까?"
"
딱히... 그런데 이 파일에 의장님 면담 내용은 다 빠져있더라고요? 의장님은 뭐 들은 거 없으세요?"
 
- "대체... 그동안 뭘 하다 온 거야?! 세상을 바꿀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셨나? 그래! 말해 봐... 뭘 어떻게 해서 바꾼다는 건지..."
"지금 박정자에게 갈 겁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무슨 방법이 생긴다는 거야?"
"... 당신에게만 얘기하는 건데... 난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요."

- "여긴 내가 경험한 수천 개의 삶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이곳만이 특별할 이유가 없잖아... 이게 현실인지도 확신이 없는데..."
"그럼... 박정자는 왜... 만나려는 건데..."
"거울을 보면... 그 괴물이 보여... 나를 수없이 찢고 태우던 그게...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다가오고 있단 말야... 알고 싶어... 이게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지...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 먼저 그곳에 갔다 온 사람이 아니면 물어볼 데가 없잖아... 당신들은 절대 모를 거야... 이게 어떤 고통인지 절대..."
"그럼 나는... 나는 지금껏 뭘 한 거지...?"
"당신은 뭘 한 게 아니라 무엇도 하지 않은 거죠... 아내의 삶도 죽음도... 복수도 모두 타인에게 맡겼으면서... 마지막 기회마저 내 선택에 맡겼잖아요."

- "당신에게 유감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세상을 구한답시고 이런저런 머리를 굴리는 게 우리 계획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당신을 죽이겠다네요. 나로선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요. 이미 다녀온 사람으로서 얘기를 해주자면... 아마 거기서 당신 아내를 만나게 될 겁니다.
어떤 형태의 만남일진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이번 생보다 낫진 않을 거예요. 그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부디 편안히..."

- "지옥이야!! 신은 지옥을 이 세상에 옮겨오려는 거라고!! 이제 알겠어! 크하하하!"

- "소도에서 유포한 거짓을 철석같이 믿고 있네요. 의장님이 떠나신 뒤에 시연을 받았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돌았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면 어쩌실 겁니까? 제가 지옥에서 돌아온 게 사실이라면..."
"예?"

"어쩌시겠습니까?"
"다... 다녀오셨습니까? 다녀오셨군요!! 의... 의장님이라면 그러셨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세상 끝!! 그 너머까지도 가실 분이니까요! 저... 가슴이 벅차다 못해 터질 것 같습니다. 아아... 모두가 이것을 느껴야 하는데..."
  
 

 

 

 
- "오늘 그렇게 될 겁니다. 지금 그것을 하러 가고 있지 않습니까."

- "새진리회한테는 절반의 성공만 주려고요."

"그... 게, 무슨..."
"거 봐요~ 짧게 끝낼 얘기 아니랬죠? 들어봐요. 박정자의 입을 통해 새로운 교리를 발표한다고 하면 모든 시선이 새진리회로 향하겠죠? 그 틈에 화살촉을 야금야금 녹여버릴 거예요. 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라치면 싹 조지면 되니까..."
"그런데 박정자는 왜...?"
"박정자는 주인공이에요. 추상적인 개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 같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


 




- "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첫 페이지의 핵심이었던 인물이... 세상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주인공을 가진 이야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아... 새진리회가 박정자를 소유하고 있으면 끝없이 힘이 커질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소도가 박정자를 탈취해 줘요. 새진리회는 박정자의 말을, 소도는 박정자의 몸을 나눠 갖는 거죠."
"왜 일을 그렇게 어렵게 합니까?! 그냥 정부가 나서서 박정자를 데려가고, 이 현상은 인간의 행위와 관련 없다고 공표를 해요!! 이만한 일을 꾸밀 정도면 대통령의 의지도 확고한 거 아닙니까."
"성집 씨 순진한 건 여전하네...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인간이 가장 갈망했던 게 뭘까요? 현세에서 작동하는 신의 직접적 단죄. 죄인이 공포에 떨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실토하고, 참회한 끝에 찢겨 죽어가는... 그런 쾌락에 맛 들인 사람들에게서 그걸 뺏으라고요? 정부가? 소도의 말이 힘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한 달에 겨우 한두 명이 당하는 일에 감정 이입할 사람은 없어요. 전 국민의 반 이상이 고지를 받는다면 모를까..."

- "그런 사람들이 화살촉 진압에는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국민 다수는 화살촉을 싫어해요. 시연은 남의 일이지만 화살촉의 테러는 내 일이니까. 단지 새진리회의 논리는 받아들이면서 화살촉만 부정할 수 있는 정합적인 논리가 없으니 얼렁뚱땅 끌려다니고 있는 것뿐이죠. 사람들은 단죄의 쾌락은 누리면서 화살촉의 테러로부터는 안전한 모순적 안정을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화살촉을 무너뜨리고 새진리회와 소도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에요."
"그건 소도가 추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수석님도... 더 이상 제가 모시던 원칙주의자 이수경 의원은 아닌 것 같고요." 

"소도가 아니라 민혜진이 추구하는 사회겠지... 소도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새진리회랑 화살촉에 복수하고 싶은 거잖아요. 성집 씨도 알죠? 나 민 변호사 좋아하는 거. 우리 당 비례대표로 영입 제안도 했었잖아. 혼자 죽을 권리... 아름다운 말이죠... 그런데 민혜진은 과거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녜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신념을 배반하는 거거든."

"우리는 그따위 세상을 물려주려고 그 많은 희생을 한 게 아닙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물려줄 세상 따위는 이제 없어!! 지킬 가치도, 지켜야 할 세상도... 전부!! 이미 망했어! 너도 알잖아! 아직 아닌 척... 대안이 있는 척 연기하면서 종말을 지연시키는 것 외엔 모든 게 무의미해! 침몰하는 배에서는 돛대든 방향타든 부숴서 구멍부터 막아야지! 그래도 끝내 가라앉는다면... 가장 늦게 침몰하는 곳에... 내 자리가 있어야 해. 우리가 물려줄 건 그 자리밖에 없어." 

 



 



- "자꾸 세상이 멸망한다는 얘기만..."

"..."
"저런 정신 나간 년 때문에 이게 다 무슨 짓이야... 이... 씨..."
 
-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당신... 원하는 게 뭐야..."
"아, 적대적으로 받아들이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수석님 계획을 일부러 망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고... 그걸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말했잖아요. 박정자라고."
"박정자를 만나서 뭘 어쩌려고?"

"뭘 어쩌자는 건 아니고 그냥 사적인 대화가 필요해서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지금 그분 하나잖아요? 그런데 박정자는 소도가 데려갔고... 이 광신도들은 일처리가 어수룩하고... 그러니 수석님이 박정자를 제게 데려와주셨으면 해요. 제가 지금 마음이 좀 급해서요..."
"만난 뒤에는?"
"뭐든... 당신들 편한 대로. 돌려달라면 돌려주고... 세상을 함께 속이라면 속이고." 
"당장이라도 내 말 한 마디면... 박정자를 죽일 수도 있어."

- "박정자 씨 잠시만요! 어차피 달아날 길은 없어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저도... 저도 부활했어요! 부활인지... 또 다른 지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대체 언제 끝납니까?"
"뭐... 뭐가요?"
"당신도 알잖아요... 매번 다른 인물로 다른 삶을 살다 시연을 당하는 끝없는 반복... 이 삶이 몇 번째인지... 내가 누군지도 흐릿해지는데... 시연의 공포와 고통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수천 번의 삶..." 
"저... 저는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우린 같은 걸 겪었잖아요...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무엇이 현실인지 알아요? 확신하냐고요!"
"나는 내가 누군지 알아요... 난 은율이 하율이의 엄마... 그 모든 삶 속에서 난 늘 그 아이들의 엄마였어..."
"거짓말!!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자아조차 온전히 유지할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당신의 지옥과... 나의 지옥이 다른가 보죠."

- "그리고 그 괴물은 당신 뒤에 있는 게 아냐. 당신 안에 있어."
"..."
"당신이 왜 그런 선택을 받았는지 알겠어..."

"...?"
"당신이... 겁쟁이라서 그래."
 
- "김성집!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 화살촉이었어?!"
"화살촉이 아니라 소도의 뜻입니다!"
"소도가... 날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이해해 주세요! 민 변호사님이 그리는 미래가 불가능하단 거... 본인도 알잖아요! 지금 세상은 거짓을 필요로 해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진실이 아니라... 단단한 거짓!! 모두가 혼란에 지쳤어요. 단단한 거짓 위에 안정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박정자 씨만 보내고 나면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 죽으라면 죽고 사라지라면 사라질게요! 그러니까 총 내려놓고 조금만 시간을 줘요."

"그러니까! 당신이 죽어야 한다는 거야! 두 사람의 목숨을 바쳐서 부활자를 빼왔는데, 그냥 자기 갈 길 가게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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