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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호르몬이 그랬어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8.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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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서련
출판 : 자음과모음
출간 : 21.02.01


       

 

나는 박서련이 좋다.

그의 글이 좋다. 

 

내가 처음 '박서련'을 기억한 것은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였다.

이전에 몇몇 앤솔러지에서 그의 단편들을 이미 읽었는데도 그랬다.

내가 처음으로 '박서련'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인지'하고 '기억'하게 된 것은, 그 작품이었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작가의 첫 작품이 아니었고, -당시까지는- 대표작도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한 '박서련'의 이미지는 -독자가 상상하는 작가란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지만, 아니 인간은 누구나 자아상 실존이 분리되어 있고- 다소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 작품에서 떠올린 작가의 이미지는, '직장생활의 고달픔과 작가지망생 시기의 고생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블랙유머로 승화해 낼 수 있는 밝은 작가'였다. 내면의 순수함은 마법소녀 굿즈로 위로할 줄 알고, 꽤 괜찮은 컬렉션을 수집할 정도의 생활력은 확보하고 있는, 그런.

 

<폐월: 초선전>을 읽었을 때는 조금 흔들렸다. 그때도 밝기만 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비틀림'도 다룰 수 있는 작가였구나. 하지만 어떠한 '상식'의 선을 넘지는 않는구나. 조금 더 읽어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몸몸>을 읽었고, <마법소녀 복직합니다>를 읽었다. 

어쩌다 보니 그 작품들이 손에 닿았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비슷한 결을 가진. 

 

그래서 그때 내 안에 생겨난 '박서련' 작가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다. 

'좋다'고, '더 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읽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그리고 26년이 되었다. 

어느 한 작가를 정해 그 작가의 작품만 연이어 읽어보기로 했을 때.

그렇게 읽는다면.

그런 시간을 가진다면.

<박서련>을 읽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박서련 작가의 모든 발표작을 읽진 못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감사하다. 읽을 작품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앤솔러지들을 포함해 대략 절반 정도 읽은 상태인데, 현재 내 안의 '박서련' 작가의 이미지는 상당히 변했다.

뭐랄까. 이전의 이미지가 이 작품의 후기 겸 에세이인 <...라고 썼다>에 나온 표현인 '문학공주TM'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이미지는 그보다는 훨씬. 훨씬. 뭐랄까. 더. 

비틀리고 절박한 면모가 있달까. 

글을 써는 사람, 보다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

아니 이 표현이 아닌데. 

 

그러니까,

달라졌다. 

싫지는 않다.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읽어본 작품으로 인해 행복했고, 남은 작품들에 대한 기대로 즐겁다.

 

<호르몬이 그랬어>는 작가의 상당히 초기작들을 다듬어 발표한 단편집이다.

각각의 단편은 분위기와 정서가 판이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놀랍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마법소녀>의 박서련과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의 박서련을 연결 짓기는 쉽지만, 그와 <카카듀>, <폐월:초선전>과 <호르몬이 그랬어>의 박서련은 사뭇 달라서. 

그런데도, '박서련'이어서. 

 

이 작품을 읽는 분들이 그 근처에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깊게 흔들렸으면 좋겠다. 

<호르몬이 그랬어>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될대로 되라는 심정의, 뭐든 다 망하고 부서지고 최악이 되어버렸으면 하는, mess up 또는 멘헤라적인 '호르몬 상태'를.

 

나는, 좋았다. 

 

 

 

           

   


   

 

- [나 지금 서울이야.]

 

- 첫 문장은 남겨두자.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야지. 이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니까.

- 첫 장면까지도 그대로 쓸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숙취를 처음 겪고 쓴 일기를 가져와 만든 문단들이다. 남겨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기 연민이고 고쳐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기혐오, 어느 쪽도 공정하지는 않다.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고쳐 쓴 것은 9년 전일이고 그때는 이렇게 썼다 

- 숙취를 겪는 동안에도 계속 토했으니까. 이런 일이 더 이상 흔하고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드물게 단 한번 생긴 사건이라도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 생각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지만 사건 자체는 내가 쓴 소설에서와 같았다. 그것이 신기한 우연인지 필연적인 현상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 폭음이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혼자 술집에 들어갔다가 취기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까지는 생각이 나지만 그 뒤로는 아득했다. 불현듯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허겁지겁 빨래 바구니를 뒤져 전날 입었던 속옷을 찾아냈다. 아무런 기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음이 다소 놓였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부랴부랴 핸드폰 통화 기록을 살폈다.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메시지함도 마찬가지였다. 습관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오싹오싹하는 소름이 말초에서부터 올라왔다. 

- 해가 짧은 계절이지만 벌써 날이 밝고도 한참이었을 시간인데 바깥은 어두웠다. 눈이 오려나. 조금 젖혀둔 커튼 자락을 붙든 채 지난 저녁을 곱씹었다. 

-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러 갔던 것, 이라고 하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나는 술꾼이 아니게 된 지 여러 해 되었다. 예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지난 저녁의 이미지 중 드물게 또렷한 것이다.

- 아주 오래 예의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그 애 목소리의 지문은 여전히 여리고 고왔고, 그래서 도리어, 그로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렵지 않게 스무 살 즈음 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수화기에서 그 애의 따뜻한 숨이 가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서 나는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나 지금 서울이야.
나도 서울이야. 손가락들이 그 애의 목소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전화기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긴장했을까, 맥락 없는 안부만 귓속을 맴돌았다. 만나자, 고 말하고 예는 약속 장소로 우리가 다니던 대학 근처의 작은 술집 앞을 짚었다. 그리로 가는 길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 만은 무섭게도 온전했다.

- 기를 쓰고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 남자와 관계를 가진 건 맞지만 그건 전리품을 빼앗기는 느낌도 아니었고 처녀를 잃을 도리도 없었다.
왜 그렇게 썼을까? 좀 까져 보여야 쿨한 것 같아서? 정말 까져 보이고 싶었다면 열여덟 살 때 했던 첫 섹스에 대해서 썼어야지. 어차피 소설이라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해 쓸 거였다면 첫 섹스를 오빠가 아니라 언니와 했다는 이야기도 했어야지. 
예에 대해 쓰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철저하게 정직해졌어야지.

- 예와 가까워진 것이 바로 그 4월 무렵이었다.
스무 살의 예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날카로워 상대가 먼저 말을 걸기엔 쉽지 않은 인상이었다. 이렇다 할 특징 없이 둥글고 매끈한 내 생김새가 보는 사람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편이라면 예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워서 상대에게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필연 남자애들은 이유 없이 그 애 앞에서 초조해했고 여자애들은 잘 웃지 않 ... 

- 이런 것을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언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 예언 탓으로 결국 일어나는 것.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나는 2에게 전화를 걸었다. 2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개념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며, 전날 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법한 사람이기도 하다. 신호음이 두어 번 가고, 약간 나른한 듯한 2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일부러 2가 좀 더 큰소리로 말한다. 여보세요? 난데, 어제 무슨 일 없었나 궁금해서 어제? 2는 음, 하고 목소리를 끈다. 어제 나 제사 때문에 내려간다고 했잖아. 잊어먹었구나? 어제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됐어. 끊을게. 
한숨이 나왔다.
1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 1에게 전화를 걸면 신호음을 오래 듣게 된다. 핸드폰 수신음을 항상 진동으로 설정해 두는 1은 전화를 바로 받는 법이 없다. 더구나 휴일이다. 거듭 세 번을 다시 걸어서야 1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1의 목소리에는 잠이 잔뜩 묻어 있다. 왜, 노는 날 아침부터 왜.


- 문득 나는 1이, 예에 대해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경계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예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어. 걔는,
그러나 나는 이윽고, 내가 예에 대해 한마디 말로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다.

예가 누구냐면.

- 예 역시 누군가에게서 내가 '서'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헤매게 될까. 아니면 벌써 그런 적이 있었을까.

- 예라는 글자는 예의 이름 끝에 들어갔다. 내 이름 앞 글자인 서 자와 같은 자였다. 미리 예 豫, 펼칠 서 豫. 똑같은 글자가 내 이름에서는 서로, 그 애의 이름에서는 예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신기하게 여겼다.

 

- 우리는 종종 지하 세탁실에서 같이 공부를 하거나 방에서는 잡히지 않는 유선방송을 보거나 컵라면을 나눠 먹거나 한 세탁기에 같이 빨래를 했다. 어떤 바람도 불어 들어오지 않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추위를 ...

-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보니 2가 이미 와 있었다. 바로 못 온다더니 잡아보니 손이 아직 따뜻했다. 나 좀 안아줘. 빨리. 방학, 주말, 대학가에는 빈방이 얼마든지 있었다. 방을 잡아 허겁지겁 입을 맞추고 아무렇게나 옷을 벗었다. 1만큼은 아니지만 나를 제법 오래 만나온 2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왜 이래?
나는 멈추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두꺼운 겨울옷 소매가 양 팔꿈치에 걸려 내가 버둥거리자 2는 슬며시 끝을 잡아당겨주었다. 그러나 2는 분명히 나의 초조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 있었어?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 나는 2에게 이 소설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와 나를 주인공 삼아 쓴, 다시 그 애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담아서 쓴 소설. 예에게서 정말로 전화가 왔어.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어.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2가 이 소설을 즐겁게 읽은 것은 이 소설이 완료된 과거와 완료될 수 없는 상상의 합이라고 믿었을 때의 일이니까.  

- 예가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은 스무 살 무렵 우리가 자주 의식을 잃었던 술집 앞이었다.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민속 주점이었지만 해물파전을 인원수에 맞게 시키면 동동주를 무한 리필 해줘서 오래 앉아 있기 좋은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가본 지도 3년이 더 되었다. 안줏값이 정확히 3천 원씩 뛰어 있었다. 격세지감이라고 했던가, 늘 북적이던 술집이었는데 한산했다. 테이블에 가깝게 종이갓을 씌운 형광등들이 내려와 있었고 나는 건너편에 앉은 대학생들의 구김 없는 주홍빛 얼굴들을 건너다보며 정말 오랜만에 의식이 부옇게 흐려지도록 술을 마셨다. 술이 깰 때쯤 쪼그려 앉아 토하는 내 등을 두드려준 사람을 나는 또 잠깐 그 애로 착각했었다. 울었던가,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술집 앞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술을 마시자고 할까. 기억에는 대학 시절 그 애도 제법 소문난 주당이었다. 동기들과 어울려 학교 근처 유명한 술집을 찾아가 그곳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안주를 맛보는 것도 즐거웠 ...


- 기침이 심하다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열을 앓는가 싶으면 또 증세가 바뀌어 맑은 콧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그 애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 예의 곁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난 아침이었다. 환기하려고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자 맑고 찬겨울 햇살이 예의 침대로 몸을 뻗었고 눈이 부시게 먼지가 날아다니는 아래에서 예는 꿈꾸듯이 말했다. 나 지금 서울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서울은 나한테 도시가 아니고 상태인 것 같아. 겨울이 와도 나는 서울. 겨울이 가도 나는 서울. 여름도 가을도 봄도 없이 나는 서울이야. 그러다 예는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너도 서울이야? 나는 홀린 사람처럼 예를 쳐다보았지만 정작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예는 아주 슬퍼 보였다.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표정과 슬퍼하는 표정을 잘 구분할 줄 몰랐던 그때의 내게도 그건 슬픈 얼굴이었다.
내내 서울일 거야.
나는 그 애의 이마를 짚으며 그 곁에 엎드렸다.

- 나는 예가 약속 장소로 말했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예는 꽤 오랫동안 서울에, 적어도 학교 근처에는 오지 않은 듯했다. 우리가 자주 찾던 술집은 와인바로 바뀌어 있었다. 예는 그 사실을 알고도 그곳을 약속 장소로 정했을까.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없는 곳에서 만나자... 진의는 알 수 없으나 어쩐지 그 애답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오늘은 예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 애를 만날 준비도 나는 되어 있지 않다.
돌아서 걷기 시작한다.

- 스물한 살 때 쓴 소설은 이렇게 끝났다.

 

- 예를 정말 만나고 싶지만, 그때 우리가 서로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기억하는지. 약간의 불씨로 그 마음을 되살릴 수도 있을지를 알고 싶지만, 와인바로 바뀐 민속 주점에 앉아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만 확인하게 되는 게 무서웠다. 여전히 무섭다.

- 그러나 이 지점에서 소설과 현실은 갈라져야 한다.

- 마침내 나는 예를 만난다. 이루어지기를 너무나 바란 나머지 소설로까지 쓴 바람이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는 고백한다. 내가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얼마나 엉망인지를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나는 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지금 서울이냐고. 여전히 서울이냐고 물어야 한다.
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 이후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쓴 소설은 아직 없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 고민의 내용은 요컨대 그런 것이다. 아니, 입을 게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입던 짙은 회색 코트가 있고, 졸업 시즌 즈음 산 재킷에 네이비색 카디건을 받쳐 입을 수도 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그 정도의 겉옷이 더 어울릴 것이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는, 이 패딩 점퍼가 상당히 좋은 옷이란 데에 있다. 좋은 옷이란 물론 비싼 옷이다. 함께 입으면 무릎 나온 청바지조차 원래 그런 빈티지룩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 옷의 능력에 나는 종종 놀란다.

 

- 남방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점퍼를 걸친 뒤 거울 앞에 서본다. 내가 제법, 비싸 보인다. 이것이 내가 끝내 점퍼를 포기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오늘 나는 꼭 비싸고 좋아 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멋을 낸 티가 나서도 안 된다. 티 안 나게 멋 부리기는 티 나게 꾸미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비싼 옷이면서도 캐주얼한 점퍼야말로 티 안 나게 멋 부리기에 딱 맞는 아이템이다. 어색하게 허리를 젖히며 포즈를 취해보는 순간 불쑥 문이 열린다. 

- 옷을 얻은 기쁨을 밀어냈다. 추위가 아무리 심해져도 점퍼를 한 번도 입지 않고 겨울을 났다. 겨우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그 무렵부터의 내 생활은 철저하게 화학적인 것이었다.
몸이 더 이상 잠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자고, 의식이 명료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 있는다. 위산이 많이 분비되어 속이 쓰리기 시작하면 밥을 먹고, 식사 후에는 뇌에 공급되어야 할 혈액이 소화기로 가면서 자연스레 오는 식곤증에 순응해 잠을 잔다. 깨어 있는 동안은 그날 호르몬의 균형에 따라 날카롭거나 무디거나 즐겁거나 침울하다. 자고 나면 그 잠 너머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화학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이 기억을 혐오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날이 저물면 밤일까 새벽일까 애매한 시간부터 방의 불을 꺼두고 울기 시작한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눈물이 나는 것도, 호르몬의 작용일까? 아주, 길게, 울고, 누액의 분비와 함께 생성되는 호르몬에 의지해 까무룩 잠이 든다. 잠은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까지 이어지다가, 다시 처음부터.

- 그때쯤부터 내가 백수였다는 얘기다.

 

- 졸업한 지 2년, 좀 더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위해 알바를 막 관둔 참이었다. 어쨌든 내가 누군가의 애인이라는 사실이 대단히 무심한 남자였던 그 누군가의 속성과는 별개로 꽤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직은 누군가가 나를 요구해주고 있음이 내 안심의 근거였던 것이다. 
이별은 핸드폰 메시지로 통보받았다. 장난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진담이라는 답장이 와버릴까 봐, 그러니까 진짜로 헤어지는 것이 될까 봐 겁이 나서 함부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처구니없지만, 어쨌든, 진짜로 헤어진 것이 맞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아졌다. 처음에는 이별조차 문자로 통보한 그 누군가의 무심함이 정말 원망스러웠으나 따지고 보면 애인이란 역시 일종의 비정규직이므로, 가능한 처우였다는 결론에 곧 다다랐다. 그때, 나는 드디어 완전한 백수로 거듭난 것이었다.  

- 모친이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그즈음이었다.
집에 아주 눌러앉으면서 모친을 관찰할 시간이 늘어난 덕이다. 놀랍게도 모친은 자기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남자와 만나고 있었다. 신중한 관찰과 은근한 정탐 활동을 통해 나는 모친의 애인이 옆동 사람이고 단지 앞 상가에 가게를 가진 자영업자이며 열일곱 살 먹은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등의 사실을 알아냈다. 

- 돈과 시간의 여유를 과시라도 하려는 듯 그는 종종, 굳이, 우리 집에 와 점심을 먹었다. 처음 셋이서 함께 식사하던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평일 정오 무렵을 집에서 지낸다는 사실에 몸이 서서히 적응해 가던, 그러니까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다. 초인종 누르지 않고 그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벌건 대낮에 낯선 남자가 벌컥 현관문을 여는 상황은 뭐랄까, 굉장히 자극적인 것이다. 그럴 때에는 순간 부정적인 방향으로 상상력이 아주 풍부해진다. 강도인가? 강간범인가?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있었는데 모친이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는 것이었다. 


- 그가 떠나기 전에 몹시 수줍어하며 준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준 선물이 자기와 모친의 관계를 눈감아달라는 의미일 거라고 믿고 있다. 그게 아니고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기보다 열몇 살은 어린 여자한테 고가의 선물을 갖다 바칠 리가 없다. 모친은 내가 당신들이 어떤 사이인지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라면 딸더러 자기 애인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그를 집으로 불러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 그의 호의는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생각해 보니 부담스러웠으며 급기야는 짜증이 났다. 짜증은 직접 그에게 가닿지 못하고 굴절되어 모친에게 들이꽂혔다.
사려면 딱 맞는 걸 사을 것이지, 왜 이렇게 큰 옷을 사다 준대? 내가 그렇게 덩치가 커 보였대? 누구 놀리는 거야?
바뀌다 달라고 그럴까?
모친은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나는 왜 엄마가 미안해하느냐고 엄마가 한 짓도 아닌데 왜 엄마가 미안해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짜증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횡설수설하다 어차피 안 입을 거니까 ...


- 안 들어올 거야?
걷기도 힘든 발로 종종 달음질을 친다. 갈수록 가늘고 날카로워지는 외줄을 버티는 기분으로.

 

- 쉰 살 막 넘은 모친이 계속 예뻐지고 있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연애의 힘일까. 모친의 애인이 그녀 호르몬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생리만 해도 그렇다. 모친은 아직도 한 달에 닷새씩 꼬박꼬박 행사를 치른다. 기간은 나보다 일주일쯤 앞선다. 모친의 생리가 끝나면 내 생리가 시작되는 셈이다. 생리를 할 때의 상태는 비슷하다. 빈혈기가 심해진다. 피곤을 빨리 느끼고 술을 마셔도 금세 취한다. 첫째 날 생리통이 가장 심하다. 보통 생리할 때는 머리, 배, 허리가 아프다고들 하지만 모친이나 나는 온몸의 관절이 빠짐없이 골고루 아파진다. 
함께 사는 여자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리기간이 점차 비슷해진다고 하지만, 나의 초경 이후 함께 피 흘린 10여 년간 지금껏 모친과 나의 생리는 단 한 번도 겹친 적이 없었다. 

- 기분이 이상해진다. 샴페인인가? 둥근 잔 안쪽에 기포가 달라붙는다. 웨이터가 가자 누군가가 잔을 들어 내민다. 얼결에 잔을 들자 꾸짖는다.
그렇게 감싸 쥐면 와인 온도가 변하잖아.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누군가에게 식사예절로 혼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마주 앉아 있는 누군가를 흉내 내 가느다란 잔 받침을 쥔다. 식은땀이 난다. 앞으로 남은 순서마다 계속 이렇게 구박을 받을까. 기나긴 식사를 그러면 어찌 버틸까. 나는 민망함을 떨치려고 아무렇게나 지껄인다. 
어쩜 이런 데 오자고 할 생각을 다 했어?
사실 왜 날 이런 데로 끌고 왔냐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책망이지만 누군가는 칭찬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만족스러워 보인다. 잔을 부딪치고 와인을 한 모금 머금는다. 잘 모르겠다. 뭔가 비싼 걸 섭취하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긴 하지만 정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맛이다. 달 것 같다가 떫은맛이 나고 그 때문에 마시고 나면 시린 침이 혀 밑에 고이며, 차가운데 아주 시원하지도 않고 하여간 이상하다. 얼마 전에 와인 마시는 걸 예술로 승화한다는 내용의 만화책을 빌려다 보았는데 그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 한 모금 더 마셔본다. 그래도 모르겠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한 잔이 홀랑 입속으로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감이 안 잡히는 맛이다. 누군가가 또 얼굴을 찌푸린다. 
왜 그렇게 빨리 마셔? 취하자고 마시는 거 아니잖아.

- 웨이터가 전채를 놓고 지나간다. 얇게 썬 붉은 살 생선 위에 레몬색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잠시, 둘 다 말이 없다. 나는 와인잔을 들여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왜, 만나자고 했어? 이 말 뒤에는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할 거면서,라는 유치한 불만이 숨어 있다. 사실 그런 이유만으로 궁금한 것은 아니다. 만나자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쭉 묻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 비싼 밥을 먹다 말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내게 할까? 아니면 미안했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날 부른 걸까? 

 

- 나 결혼해.

- 누군가의 말이 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제는 누군가가 와인잔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냥, 잘 사나, 하고 한번 불러봤어. 이왕이면 맛있는 것도 먹이고 싶었어. 우리, 그래도 꽤 오래 만난 사이잖아.
말을 마치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본다. 그랬는데 역시 안 만나는 게 나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다. 아, 그랬지. 나는 누군가의 저 표정, 언제나 나를 책망하는 듯한 그 얼굴을 사... 랑했다.

- 점퍼는 크림색, 충전재는 캐나다산 구스 다운. 소매와 허리는 암적색 밴딩으로 마감, 지퍼로 탈부착 가능한 커다란 후드에는 라쿤 퍼가 달려 있었다. 왼쪽 가슴에 <엘르>나 <쎄씨> 같은 잡지에서 본 적 있지만 살 엄두는 나지 않았던, 그렇다기보단 언감생심 마음도 품어본 적 없는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기장은 허리 위로 조금 올라오는 편으로, 두툼한 겨울옷인데도 불구하고 몸통 라인을 예뻐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정말이지 좋은 옷이었다.

 

- 12월이 오고 본격적인 한파가 닥쳤을 때에도 나는 그것을 입지 않았다. 일종의 시위였다. 물론 모친의 심부름이나 빌려온 비디오 반납 같은 것 말고는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어서 내가 일부러 점퍼를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이 티는 나지 않았다. 모친은 내게 그 옷을 입을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정말로 안타까워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제대로 했니? 그 옷 입고 나가서 삼촌한테 밥이라도 사드려. 원래 옷 선물 받으면 그 옷 입은 모습 보여주는 거야.
알 게 뭐야,라고 생각했다.

- 가끔 모친의 애인이 문자를 보내오는 경우가 있었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삼촌이예요,,^^ 날씨추운데 감기조심하고 있죠? 먹고싶은 것있으면 말해요 사갈게요]
아마 모친이 번호를 알려주고 시켰을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모친에게 화를 냈다. 몇 번인가 답장을 보낸 적은 있다.
[치킨이요]

[집에 귤 떨어졌어요]

- 모친의 애인은 그다지 잘생긴 편도 체격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를 따지자면 오히려 아비가 나았다. 내가 그 아비의 딸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라, 실로 아비는 못나지 않은 편이었다. 모친 애인의 생김새에 장점이 있다면 인상이 선하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모친보다 열 살 정도 어리다면서도 ...

- 길었던 연애까지도 끝을 본 그 무렵의 나는 다른 누군가의 연애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너그럽지가 못한 상태였다. 모친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모친이기 때문에 더 용납할 수 없었다. 누군가 모친의 연애를 망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연애 덕으로 내가 평생 보아오던 중 최고로 귀엽고 발랄하고 예뻐진 나의 모친이, 연애 때문에 펑펑 울고 나이만큼 폭삭 늙어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 모친의 애인이 내게 보이는 관심은 모친에 대한 관심의 연장이라는 것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의 관심은 마음이 흔들릴 만큼 집요하고 섬세한 것이었다. 그저 내가 모친의 딸이기 때문에 베푸는 관심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모친과 닮은 얼굴을 가진 모친보다 젊은 여자였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참 엄마랑 많이 닮았네요.
제가 엄마만큼 예뻐요?

- 누군가는 내가 사는 동네로 가는 길을 안다. 결혼이라. 낯설고도 가까운 말이다. 누군가의, 결혼이라. 차라리 신기한 일이다. 결혼만 빼고 다 했던 것 같은 내가 아닌, 결혼 아닌 건 거의 아무것도 못 해보았을 사람과 결혼이라. 재미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도록, 진짜로 재미있다.
누군가도 모친처럼 결혼하고 연애를 할까. 결혼하고도 외로움이 지워지지가 않아서 혹은 심심해서, 또 연애를 시작할까. 혹시 그게 나일 수도 있을까. 그런 건절대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미 상상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는 눈치챘을까.

-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다르도록 말이 없던 누군가가 내리는 나에게 말한다.
부케 받으러 와.
안가, 미친놈아.
차 문을 닫자 누군가는 조수석 창을 내리고 몸을 기울인다.
잘 들어가.
너나.
누군가가 차창을 다 올리기 전에 나는 돌아선다.

- 마지막 인사를 건넨 나의 모습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좀 쿨해 보였을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의 그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해 다시 전화를 걸지도 모를 일이다. 김칫국일지도 모르지만 번호는 미리 바꾸는 게 좋겠다.

느릿느릿하게 집을 향해 걷다가 문득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나를 본다. 옆모습이 그럴싸하다. 멀리서 보니 살이 붙은 것도 그다지 티가 안 나는 것 같다. 정면을 보려고 돌아선다. 나쁘지 않다. 전체적으로 좀 둥글어진 듯하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다. 핸드폰을 꺼낸다. 마음이 이상하게 설렌다. 통화 버튼을 길게 누른다. 
삼촌, 저예요. 우리 순댓국 먹으러 가요. 

아직 집에 들어가기엔 이른 시각이다.

- 내가 아직 처녀이던 시절에 갖고 있던 각오는 한마디로 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얼른 해치워버리겠다는 이상한 각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하고든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품었던 각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 처녀라는 사실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 거듭 생각해 보면 여전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다 똑같고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했던 또래 가운데 경험자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부터 가만히 있던 나머지가 늦되고 모자란 것이 되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어가는 거지?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섹스를 해본 쪽이 놀림거리가 아니었나? 혼란스럽고 초조한 가운데 내게도 누군가가 나타났다. 별거 아니었네. 나는 그전까지의 불안을 잊고 의기양양해져서 내 뒤에 남은 이들에게도 같은 충고를 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해버려. 

- 나는 그때 그 이상한 각오를 또 품고 모친의 애인을 기다리고 있다. 모친의 애인과, 자버리겠다. 모친의 연애를 망쳐놓고야 말겠다. 첫 섹스를 준비하던 때처럼 내가 무언가를 겁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서 더 불안하고, 그래서 더 가슴이 뛴다.

 

- 모친의 애인은 통화한 지 5분 만에 헐레벌떡 달려 나온다. 딱히 어디라고 짚어 말할 순 없지만 어색하게 멋 부린 티가 줄줄 나는 차림이다. 너무 웃으니까 사람이 좀 모자라 보이는 듯도 하다. 

- 여자는 고개를 홱 돌린다.
다행히 모친은 집에 없다. 나는 방문을 꼭 닫고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내린다. 거울에 비친 나를, 패딩점퍼를 입고 아랫도리는 벌거벗은 나를 하염없이 본다. 반쯤 마른 피와 털이 지저분하게 엉겨 있는 사타구니를 보다가, 보다가, 비린내 때문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 앞에 무릎을 꿇는다. 
침대 위에 내가 두고 나온 종잇장은 지금쯤 피를 조금 먹었을까. 나는 거기에 내가 적어둔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 나오라는 토는 안 나오고 눈물이 울컥울컥 나온다. 구역질이 밀어낸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며 식는다. 

 

<호르몬이 그랬어>

 

- [죽어서도 세 들어 살고 싶지는 않아.]

- 길은 줄곧 가파른 나선이었다.
버스는 수챗구멍에 빨려드는 구정물처럼 맥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시든 잡목으로 뒤덮인 겨울 야산이 창밖을 빙글빙글 돌았다. 오래된 버스 특유의 불편한 냄새가 연신 목젖을 밀치고 올라왔다. 차 안은 헛구역질에도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다. 
두꺼운 옷가지에 파묻힌 노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오래된 정물화처럼, 흐르다 남은 연민 같은 것들 ...

- 산 그림자가 뒤척이듯 내 위로 몸을 뻗었다. 가서는 안 되는 길처럼 보였다. 얼어붙은 공주의 묘혈로 가는 길. 수천 년 전에 죽은 공주의 관에 손댄 이들은 모두 저주를 받았고 헤집어진 무덤이 있는 그 지역에는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문득 났다. 얼음공주의 묘를 찾아낸 이들도 나처럼 불안을 느꼈을까. 그럼에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곱씹으면서.

- 얼마 걷지 않았는데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눈과 흙이 뒤섞인 길을 한참을 더 걸었다. 발가락이 얼어서 하나로 붙어버린 듯했고 나중에는 아주 감각이 없어졌다. 이제 더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처음 오는 길이 아닌데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몇 번이나 그러고서야 목련공원의 흰 정문을 볼 수 있었다.
텅 빈 주차장을 가로질러 관리실로 갔다. 공원관리인은 외출 중이라고, 그와 형제라는 매점 주인이 전했다. 매점 주인은 난로 위에 주전자를 얹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유적을 지키는 공무원처럼 무료해 보였다. 

- 숨이 멎어버리는 미지의 생물이었다. 땀투성이가 된 내가 옆에 누우면 너는 반지하의 곰보 유리창으로 꿈틀거리며 스미는 빛을 가리키며 집어등 集魚燈이야, 조심해, 일러주곤 했다.
 
- 네가 살았던 곳 어디도 집은 아니었다. 보육원을 도망 나와 쉼터로 갔을 때, 최장기 체류일수를 꽉꽉 채우고 쉼터를 떠나 숙식 제공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처음 셋방을 구했을 때에 대해 너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때의 사건들은 네 어조를 닮아 가벼운 플래시백으로 처리된다. 

- 내 방은 네가 살았던 네 번째 셋방이었다. 주인 여자는 일쑤 1/n로 전기세, 물세를 부담해야 하니 누굴 데려와 살 것 같으면 반드시 말하라고 했다. 여기가 장면 3. 나는 방을 뺄 때까지 혼자 지낼 계획이라고 웃으면서 말했고 너는 방문 너머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 동거 1년의 기억은 구획 지어지지 않은 슬라이드 필름 같았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대개 그대로였지만 몇 가지 장면들은 불러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 내가 한 말과 네가 한 말을 구별하기가 어려웠으며 종종 실제로는 연출된 적 없는 장면들도 끼어들곤 했다. 상연이 끝나면 언제나 견디기 힘든 화가 치밀었다. 너는 내가 화를 내는 것을 싫어했다. 너는 왜 슬프면 화를 내?라고 했던가, 너한테는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던 거지라고 했던가. 모두 네가 했던 말일 수도 있다.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나를 싫어한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 

- 장면 4. 들킬까 봐, 해가 져도 불을 못 켜고 나를 기다리면서 너는 세계의 미스터리들을 더듬었다. 조금 어둑한 그 방의 광경이,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 담요 두 채 펴면 꽉 찰 방 가운데 이불을 펴놓고 엎드린 너. 손을 많이 타 책등이 너덜너덜해진 불가사의 도록. 간이 화장대. 비키니 옷장, 신발 서너 켤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데스크톱 컴퓨터, 화면 군데군데가 죽은 오래된 모니터. 귀퉁이의 전기밥솥, 그리고 그 위에서 밥을 지은 지 몇 시간 되었는지 알리는 빨간 표시등이 빛났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지내면서 너는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는 타지마할, 지상 최대의 무덤이라는 피라미드, 세계 유일의 수중릉이라는 문무대왕릉 같은 것에 매료되었다. 일종의 허영이거나 도피일 것이 분명한 네 취향이 내게는 귀엽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은 남의 무덤에 관심이 많구나.
그러게. 관광도 가고.

- 장면 5. 이따금 네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불가사의들을 차츰 나도 듣고, 가끔은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언제나 목소리에 더 관심이 많았으나 연인을 위해 사막에 공중정원을 만들고 함께 묻힐 무덤을 짓는 군주들에게서 나는 우리의 집을 보기도 했다. 

- 장면 6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너의 무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어야 했다. 나는 왕이 되어 아직 죽지도 않은 너를 위해 수의를 짓고 관을 짜고 무덤을 쌓는다. 본 것도 적고 상상력도 부족한 나는, 네게 아직 입혀보지 못한 웨딩드레스를 수의로, 홈쇼핑프로에서 본 공주 침대를 관으로, 해변 아름드리나무 숲을 묘혈로 삼는다. 이런 것들을 그리다 보면 살고 죽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없었다. 

- 다음 장면. 우리는 엎드려 머리를 모으고 도록을 들여다보다 마지막에는 책에 나온 방법대로 텔레파시를 연마하곤 했다. 카드 무늬 맞히기 따위는 잘되지 않았지만 같은 단어 외치기는 제법 잘 맞았다.

- 셋 세면 동시에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하기.

하나, 둘, 셋.
너.

네가 되고 싶은 나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너를 안아주었다. 너는 안긴 채로 우물우물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살아 있는 우리보다 죽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거.
나는 안쓰러운 너를 더 세게 안으며 내 무덤은 너야 라고 말해주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크며 유일한 나의,

- 너는 난초당 42호에 보관되어 있었다.

- 매점 주인이 20분은 족히 걸릴 거라던 유리문 앞에 나는 12분 만에 당도했다. 건물 안은 바람이 들지 않지만 온도는 오히려 바깥보다 낮은 듯했다. 씨발 목욕탕 사물함도 이것보다는 커. 이토록 춥고 비좁은 곳에서 허술한 자물쇠 하나만 믿고 지냈을 너를 생각하니 화가 났다.
까치발을 들어 드라이버로 너의 서랍 같은 방을 열었다. 조금 큰 밥주발처럼 생긴 볼품없는 사기 단지 안에 너는 담겨 있었다. 그나마도 10만 원이나 치르고 산 것이었다. 열어볼 생각은 없었다. 종종 안에 있는 줄 모르고 화장실 문을 열면 뜨거운 물이라도 맞은 듯 놀라고 악을 쓰던 네가 떠올랐다. 하물며 너의 뼈를 보는 일이라면. 

- 쪼그려 앉아 청테이프를 뜯었다. 얼어서 곱은 손이 덜덜 떨렸다. 단지 뚜껑 네 귀퉁이에 테이프 조각을 붙였다. 테이프도 살짝 얼어 접착력이 시원찮은 것 같았다. 마음이 안 놓여서 아예 둘둘 감아 붙였다. 끝을 끊어내다가 단지를 놓칠 뻔했다. 놀라서 잠깐 동안은 움직일 수 없었다. 청테이프는 옥색 타일 위를 굴러 모르는 사람 방에 부딪혔다.
시험 삼아 단지 뚜껑을 돌려보니 덜걱덜걱 헛도는 소리가 났다. 준비해 온 검정 비닐봉지를 꺼냈다. 가방 속에서 네가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 도착할 무렵에야 잠이 가셨다. 벌써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흐릿한 차창 위에서 강가에 밀집한 불빛이 휘청이고 있었다. 비었던 옆자리에는 어느새 모르는 사람이 앉은 채였다. 단 한 번 함께 건너본 강 위 평행을 지하철은 무심히 가로질렀다. 이상하게 속이 편해졌다. 내내 끄고 있던 핸드폰을 켰다. 캐치콜이니 메시지니 난리 났겠지 하며 켰지만 아무에게도 연락이 와 있지 않았다. 약간 민망하고 쓸쓸해지려 하는 순간 핸드폰 진동이 가만히 울렸다. 문자메시지가 왔다. 촬영 총괄팀에서 영수증 처리를 하는 선배였다. [니가 가져간 거 빼고 그동안 밀린 니 급여 계좌에다 넣어놨어 다음부터 나오지 말래.] 이 바닥은 좁다. 다시 이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건 상관없다. 각오한 일이었다. 

- 올림픽대교를 벗어나는 데만 꼬박 20분이 걸렸다. 예상한 것보다 도착이 늦었다. 차가 터미널 앞에 서기도 전에 복도로 나와 있다가 멈추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먼저 내리려다 누군가를 밀친 것 같았지만 뒤에서 뭐라 하는 것도 모른 체하며 달려 나갔다. 지하철역 쪽을 서성대다 다시 도로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여윳돈이 아직 5만 원 넘게 남아 있었다 

- ... 못 할 경우 원금액의 20프로 추가.

(※ 선불 조건의 할인 금액이기 때문에, 기간 내에 납부하지 않으시면 할인 혜택이 사라집니다.)

리비를 지불 못 할 경우 보증금에서 차감.

- 이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적은 짐을 들고 나는 촬영팀 선배가 알려준 고시텔로 갔다. 생활이라기보다는 생존의 공간이었다. 방이 아니라 관 같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방은 좁았고, 그곳에서 오래 지냈다는 입주민들의 몰골은 모두 미라 같았다. 
자주 빨지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옷가지들은 모두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땀이 뱄다 마르기를 반복한 등판에는 소금 결정이 눈꽃처럼 맺혔다. 매 끼니가 라면이었고 그나마 하루 세끼를 챙기기에도 부족했다. 버리지 못한 네 물건들을 머리맡과 발치에 쌓아두고, 이집트 왕의 시신처럼 양팔을 교차해 내 어깨를 붙든 채 새우잠을 잤다. 좁아서가 아니라 껴안을 사람이 없어서. 껴안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고 좁아서. 혹은 둘 다. 나는 슬플 때 화를 내는 사람. 그걸 알려준 사람은 너. 화가 났다. 죽을 만큼 화가 났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 혼곤한 잠 끝에 가끔 네가 나타났다\

- 가뜬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로지 오늘을 위해 산, 너를 담아둔, 검정색 스포츠 색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까지 내가 가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버스에 두고 내린 것 같기도 했고 택시에 탈 때까진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발권받을 때 내려놓았는데 누가 슬쩍 가지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올 때까진 내게 있었다... 이 사실만이 온전했다.

- 부산으로 가는 차 안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앞 좌석에 머리를 기댄 채 우리가 함께 살던 이 도시 어딘가에 말없이 앉아 있을 너를 생각했다. 네가 정확히 어디에 있을지 도무지 짚어낼 수가 없었다. 그저 이 도시에 있으리란 것밖에는. 그리고 내가 점점 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밖에는. 지나온 곳들은 모두 컴컴한 정적 속에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 기차는 거대한 너의 무덤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총 塚>



- 처음으로 지은 이야기... 를 나는 기억한다... 고 생각한다. 아주 뚜렷한 기억은 아니다. 그때는 사촌언니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그러니까 열 살 때? 열한 살 때? 원고지에 쓴 이야기를 보고 언니가 서련이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라고 했다. 거짓말을 하면 매를 맞거나 벌을 받았지만 지어낸 이야기를 종이에 옮기는 것으로는 혼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고 기분이 좋았다.


- 문장은 기억에 박는 앵커.

-십대 후반에 이 기억에 대해 쓴 적 있다. 이십대 후반에 이 기억에 대해 쓴 글에 대해 쓴 적 있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면서 오래전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이 책에 실린 단편들 또한 그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래전에 썼기 때문이다. 문학 플랫폼 던전에서 <전도서와 나의 무관함>이라는 제하에 15주간 연재했던 이 원고들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의 글을 노태훈 평론가에게 보내면서 이런 문장들을 담기도 했다:

- [쓴 사람으로서의 정념을 배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저의 의견을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정리하자면, <전도서와 나의 무관함> 연재 기획에 포함된 세 작품은 지금의 제 작품들과는 다릅니다. 이십대 초반에 쓰고 삼십대 초반-근래에 고쳐 쓴 작품들로, 당시의 제가 삼십대 초반인 저처럼 작품을 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 또한 이십대 초반의 저처럼은 쓸 수 없습니다. 
때문에 최근 몇 년간 해온 단편 작업들 사이에 이 세 편을 자연스럽게 섞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그렇지 못한 의미에서든 이 작품들은 돌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이십대 초반의 나는 어떤 작가였는지를... 해명하기를... 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전에 왜 이 해명을 필사적으로 피해왔는지도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이다.

-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들었던 이상한 칭찬이다.
너는 참 많이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아.
아마 그 말을 한 사람은 '콩쿨에서 입상하는 여자아이'라는 나의 이미지에 기대어 그런 평가를 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말 앞에는 이상하게도 '나와는 달리'라는 투명한, 비난조의 말이 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얼마나 -나보다 더? 나보다 덜?- 사랑받고 자랐는지는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써낸 글이 항상 좋은 평가를 받는 얄미운 여자애, 아마도... 그렇게 보였던 게 아닐까? 나는 나를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어느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상상할 수 없으므로 (나 대신 나의 피해의식이 상상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극단에 이르지 않도록, 처음부터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 말하자면 그건 누군가... 최초로 나를 문학공주TM 취급한 사건이었다.
반은 농담, 반은 비아냥 삼아 꺼낸 말이지만 어쩐지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문학공주TM.

 

- 이 오해를 얼른 바로잡는 게 좋을지 상대가 자기 상상 속의 문학공주TM 이미지 때문에 약이 올라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을지 오랫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 문학공주TM 생활은 2000년대 중후반에 상당히 권위 있는 청소년 대상 공모전과 백일장에서 입상한 경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권위 있는 청소년 대상 공모전과 백일장과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어떤 식으로 구분할 수 있냐면, 문예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할 때 그 대회의 수상 경력이 영향력을 갖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알았다. 마침 내가 참가한 대회가 그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보통 '마침' 정도의 마음가짐만으로는 올 수 없는 자리라는 것. 대개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고, 이 대회에서 상을 받아 대학에 가려고 한다는 것. 그런 대회에 왠지 나갔고 그런 대회에서 왠지 상을 받았다. 처음 한두 번은 얼결이었지만 이내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나야말로 은밀히 나를 문학공주TM라 믿기 시작했다. 그냥 그게 나의 운명으로 느껴졌다. 운명이었으면 했던 것 같다. 설명할 필요가 없게. 

- 지금은 2020년대이고 나는 이제 서른 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인터뷰나 작가 소개에서 내가 10여 년 전, 십대 후반에 탔던 상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건 사실은 좀 부끄러운 일이다. 입사 면접을 보려는데 유치원 때 개근상을 타셨다죠? 다른 아이들보다 목을 훨씬 빨리 가셨다죠? 이런 칭찬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까.

- 그런데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농사를 짓는 집이라서 일단 쌀이 떨어질 일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절약습관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가난이었다는 것을 대학에 가서, 갑자기 한 달에 30만 원의 용돈(식비 포함)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 이제는 갈 일이 없는 철원 집 거실 전등 스위치 바로 위에는 내가 아홉 살 때 그린, 어린애 머리통만 한 붉은 동그라미가 있다. 읍내 크리아트라는 팬시점에서 친구와 똑같은 유리 반지를 사서 손에 끼고 집에 돌아갔을 때 부친에게 혼나고 그린 것이다. 부친은 반지를 깨뜨리고 나를 두들겨 패서 울린 다음, 벽에 그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것은 나의 사치다"라고 열 번 말하게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체벌도 아니다.

- 그런데 나는 매우 사랑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문학을 잘해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여러 분야에 도전하여 재능을 발견하고, 재능을 한껏 후원받아 꽃 피우고, 하나님과 부모님과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말하며 상을 받는 여자아이...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문학공주TM.

- 문학공주TM에게 대학은 이상한 나라 같았다.

 

- 고등학교 때 받은 청소년 문학상 덕택에 첫 한해 간은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당시에 한 달에 30만 원이나 되는 용돈(식비 포함)을 우리 집이 어떻게 용인 혹은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오래 궁금해했는데, 이름 있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는 것에 대한 상금의 개념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실제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 장학금 수혜가 끝난 이듬해부터는 용돈도 끊어졌기 때문에.

 

-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자본 대학 기숙사가 막 개관한 해였고 나도 거기에 살았다. 술을 배우고 연애를 하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 옷은 전부 너무 촌스러웠고 화장 같은 건 할 줄도 몰랐으며, 주문 방법이 복잡한 스타벅스나 배스킨라빈스에 가느니보다는 찻길에 뛰어드는 편이 낫다고 늘 생각했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게 아니라 중간에 눈치챈 거여서 상처가 되었다. 가난이라는 것. 총알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피가 안 나는 척하는 기분으로 늘 살았다.

- 여름방학 즈음에 양친이 내가 사는 기숙사를 둘러보고 갔다. 나중에 모친이 귀띔하기를 부친은 내가 기숙사 보증금을 따로 빼서 방을 구해 남학생과 동거하고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부친까지 데리고 와서 기숙사 구경을 시켜줄 수밖에 없었다고. 나의 어떤 상상력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믿음을 그때부터 품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바깥에서 누구와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기 전에 눈앞에 45톤 덤프트럭이 지나가지 않는지를 살핀다.

- 그러니까 사실은 대학이 아니라, '원래' 세계가 이상했던 거겠지만... 

- 계속 소설을 썼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쓴 시기가 그즈음이다. 쓴 순서대로 정렬하면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호르몬이 그랬어>, <총 塚> 순이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 해에 한 편씩이 된다.

- 대략 10여 년 전에 쓰인 이 글들을 참 많이 미워했다. 십대 시절 쓴, 그러니까 기술적인 면에서 훨씬 부족했던 습작들보다 성인으로서 쓰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며 쓴 이 글들이 더 꼴 보기 싫었다. 쓴 사람의 자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그 자의식이 몹시 미숙한 한편 기를 쓰고 어른인 척하고 있음을 지나치게 잘 알아볼 수 있어서다. 스스로가 남겨둔 그런 태도를 미워하지 않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 가령 이 글들이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이었다면 나는 그 사람도 미워했을까?

- 언제까지고 문학공주TM일 수는 없었다. 계속 문학공주TM가 되려면 우선 등단을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요원한 일이었다. 십대 시절 서련이는 금방 등단할 거야, 시간문제지, 하고 덕담을 해주신 선생님들께 괜한 원망을 품기도 했다.

- 이즈음 내 작품이 등단 문턱에 아주 가까이 간 적도 있다.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 수업 자료에 쓸 소설 작품을 내면 원고료를 주겠다는 강사의 말을 듣고 내 작품을 맡겼는데, 그 강사가 내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신춘문예에 투고했다. 강사는 멍청하게도 신춘문예 심사평을 그대로 복사해 내게 메일로 보냈고 나는 그 어디선가 따서 붙여 넣은 듯한 문구가 이상해 검색을 해보았고... 내 작품이 나도 모르게 신춘문예 최종심에 가 있었다.
여기 실린 작품 중에 그건 없다. 그건 내가 고등학교 때 쓴 글이다. 조금 이상한 얘기가 되겠지만, 강사가 훔쳐 신춘문예에 투고한 내 작품은, 이후로 오랫동안 등단하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에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이후로 쓰인 글들이 번번이 낙선하는 동안에 내 작품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믿음이 되어주었다.

 

- 고등학교 때 쓴 작품이 최종심에 오를 정도라면 이후에 쓴 작품도 그보다 못하지 않을 거야...
남의 이름으로 최종심에 오른 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 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지금은 정확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구에게나 공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이 책의 세 작품을 쓴 나와, 그것들을 고친 나는 분명히 연속적이고 동일한 존재지만 또 이토록 다르다. 너의 저의를 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런 마음으로,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쓰는 심정으로 소설을 고쳤다. 나는 원래 이 소설들의 저자였는데 이제야 비로소 다시, 또는 처음으로, 공동 저자로 승인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때문에 나의 의식은 지금의 나와 이 글들을 쓴 내가 공유하는 더 먼 과거로 간다. 제대로 쓴 적 없기에 떠올릴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유년.
내가 열 살인가 열한 살 먹었을 무렵 사촌언니가 우리 집에서 지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부친의 임금이 체불되었음을,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것처럼, 모친이 그에 대해서도 절대로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언니가 자기 모친과 사이가 나빴던 것으로 미루어, 집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막내 이모가 사는 우리 집을 떠올렸을 것, ...

 

<...라고 썼다>



 

해설

겨울의 습작

 

윤경희(문학평론가)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작품의 이름으로 출판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쓰는 자 본인은 늘 주지하지만 책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거의 인식되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 아래 묶인 단행본은 최종과 완성에 도달한, 또는 적어도 현시점에서 더 이상 나아갈 바가 없다고 간주된, 글쓰기를 담는 물적 형식이자 독자가 가장 손쉽게 접근하고 소장할 수 있는 상품이다. 세련된 미감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출판 경향에서 책은 원재료인 글쓰기에 최상의 외적 형태로서 주어지고, 매끈하게 편집되고 장정된 책은 그것이 독자적 사물로 생산되기까지 여러 ...

... 의 몰역사적 구조물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의 생산물이라는 것, 쓰는 자는 정체성의 여러 요소들이 특수하게 교차하고 중첩하는 실존인이라는 것, 작품은 상품의 형태로 비로소 가시화된다는 것, 글쓰기에서 상품으로의 이행에 노동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 노동은 기술의 기계적 수행을 넘어 신체 감각과 정념을 일깨우는 사건이라는 것, 시간은 현실의 기억과 역사로 쌓인다는 것을 곁텍스트는 집요하게 상기시키고 인식시킨다. 작품에서 물러난 유령들이 현상된다. 그것을 읽지 않을 이유는 없다. 주의를 기울여.

작품으로 출판되지 않은 글쓰기, 상품으로 형체화되지 않은 글쓰기, 완성, 출판, 판매의 미래를 굳이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그러나 작가가 끊임없이 시도하는 글쓰기, 그것을 습작이라 부를 수 있겠다. 습작은 작가적 삶의 초창기에만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쓰는 자라면 누구나 체험할 테지만, 글쓰기는 매번 새롭게 막막하다. 이전의 쓰기를 통해 성취한 것과 패착한 것, 진척한 것과 미결된 것, 모색한 것과 우발적으로 발견한 것 등이 장인적 지식으로 노련하게 축적되기는커녕 쓰는 동안의 지루한 고통의 기억과 다소간의 보람만 남긴 채 거의 말소된다. 그것은 매번의 글쓰기가 제각기 특수하기에, 오로지 그것 앞에서만 당면하는 과제, 그것에만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 그것을 씀으로써만 되살리거나 새로 겪는 정념이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이 완수되면 그것에만 해당하던 고유한 문제와 방법은 효력을 잃는다. 쓰는 자는 새 글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과제 앞에서 이전에 시도하지 않은 새 방법을 도모해야 한다. 배운 적 없는 것을 근본부터 연습해야 한다. 시도와 연습의 과정에서 어떤 문장들, 메모, 자료 조사 노트, 초고가 습작으로 구현된다. 완성작으로 퇴고하고 발전시키면서 작가는 습작을 홀가분하게 파기하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물적 생산 과정을 입증하고 그럼으로써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신화화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잔존하는 습작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탐구와 해석의 대상이다. 곁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습작 읽기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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