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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8.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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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출판 : 비채
출간 : 12.09.25


       

 

현재까지 발표된- <도조 겐야 시리즈>의 마지막 리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발표 시기 상으로는 <도조 겐야>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며 '가가구시 촌'과 '마귀 가계' 등으로 등장한다.

다만 훨씬 이전에 발표된 <작자 미상>에도 '가가구시 촌'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구상은 되어 있었던 모양.

('나가보즈'라는 마물도 언급되는데 이는 <사상학 탐정 시리즈>와 이어진다)

 

<염매>는 대대로 영매 체질의 딸 쌍둥이가 태어나는 모계 가문 '가가치 가'와 그 대척점에 선 듯한 '가미구시 가' 간의 이야기다.

'마귀 가계'라는 이유로 경원시 당하는 가가치 가를 통해 가문 간의 알력과 우위 다툼, 경시와 질시 등의 어두운 면모를 보여준다면, 가미구시 가를 통해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신분제와 이상(理想)화를 보여준다. 

 

가가치 가 딸들의 이름은 마치 개인의 개성은 필요치 않다는 듯 모두 '사기리'로 정해져 있는데,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할머니 자매는 사기리⠁와 사기리⠃(존재는 언급되지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머니 자매는 사기리⠇(이모)와 사기리 ⠏(어머니), 딸 자매는 사기리⠟(언니)와 사기리⠿ 로 표기한다.  

 

그 외에도 일본의 뱀신 신앙과 뱀에 씌는 것에 대해 가볍게나마 다뤄지고 있으니 이쪽에 흥미를 가진 분들께도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다.

 

<도조 겐야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데, 도조 겐야가 제시하는 결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맺음 짓는 것도- 어느 쪽도 좋다.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그럴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조 겐야> 전체를 아우르는 -그 외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도- 기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좋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쇼와 몇 년쯤의 세상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새로운 연호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서력 몇 년'으로 고쳐 말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될 대단히 특이한 '세상'도, 그 시대는 명확치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썼는지, 이유는 본문을 읽다 보면 차차 이해할 수 있으리라. 또 적어도 이번처럼 전국 규모의 지자체 합병이 실시되어 어느 특정 지역의 명칭이 소멸되기라도 하지 않는 한 내가 이 원고를 발표할 뜻이 없는 이유도 아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내용을 소설로 쓰는 사람으로서 신중함은 당연한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선 별반 곤혹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몰라 여간 애먹지 않았다. 내 취재노트에 관계자의 일기며 의사의 업무일지, 나중에 당시를 회상해달라고 부탁해서 받은 수기까지 자료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몰라 무척 고심해야 했다. 

나 자신이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모양새로 그 일과 연관을 맺은 경위도 있어. 처음에는 '나'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래서는 내가 보고 들은 사실밖에 기록할 수 없으니 그 많은 기괴한 사건을 묘사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삼인칭으로 바꾸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신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작가는 모든 장면과 모든 사람의 속내를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방법으로는 그 기이할 정도로 사위스러운 분위기를 도무지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당사자의 일기며 수기에서 느껴지는 그 생생한 느낌을 재현할 능력이 내게 없음을 절감했다. 

가가구시 神々櫛 촌.
음감이 독특한 이 지명을 입에 담기만 해도 이 특징 있는 글자 표기를 보기만 해도 나는 지금도 전율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아마 사기리⠿, 렌자부로, 지요가 체험했던 꺼림칙한 사건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들었기 때문이며, 나 자신도 그곳에 있으면서 실제로 기이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귀 계통인 가가치 집안과 마귀 계통이 아닌 가미구시 집안이라는 대립하는 두 구가, 신령에게 납치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사라진 아이들, 인습의 의례 중 죽으면 산신령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노파, 생령을 봐서 그에 씌었다며 시름시름 앓는 소녀, 염매가 나왔다고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 죽은 언니가 돌아왔다며 두려워하는 동생, 흉산을 침범했다가 공포 체험을 한 소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에 쫓기는 무녀. 


그리고 내가 마주친, 뭐라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에서 잇따라 끔찍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과 그들에 얽힌 소름 끼치는 수수께끼들.

그런 무시무시한 사건들을 완전히 소화해 한 편의 이야기로 엮는 작업에 착수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 나는 한동안 고민한 끝에, 입수한 자료를 기본으로 활용하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소설로 풀어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다만 원 상태로는 설명이 부족하거나 지장이 있는 묘사도 일기와 수기에 있었던지라 어느 정도(경우에 따라서는 대폭) 손을 대기로 했다. 만약 그 때문에 원문의 맛이 손상되었다면 그 책임은 모두 작가에게 있음을 미리 밝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뇌리에는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고 있다. 원고를 쓰는 작업을 통해 그들과 재회할 것은 고대되지만, 일련의 괴이를 또다시 체험할 생각을 하니 솔직히 그냥 펜을 내려놓고 싶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 지금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뭔가'가 방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쇼와의 어느 삼월달에

도조 마사야 또는 도조 겐야

 


 

 

- 당집의 어둠 속에 촛불 두 개가 흐릿하게 밝혀졌다. 무지한 마을 사람이 연결복도의 널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더라면, 발 너머로 보이는 불빛이 두 눈처럼 보여 무서운 염매가 눈을 떴다며 겁에 질려 떨었을 것이다. 기도소에서 사용하는 밀초에 불을 붙였을 때 처음 나는 빛은 그 정도로 어슴푸레하고 섬뜩했다. 하기야 당집 또는 기도소라고 불리는 가가치가의 '무신당'을 자진해서 들여다볼 천벌 받을 인간은, 이 가가구시 촌에 한 명도 없겠지만.

- 황혼이 빠르게 저물어가고는 있어도 바깥세상은 아직 햇빛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신당은 그 얼마 안 되는 빛마저 꺼리듯 덧문을 꽉 닫아놓았다. 그 탓에 기도소 안은 벌써부터 밤의 장막이 드리운 양 어둠이 가득했다. 더욱이 바깥의 빛을 차단해 연출시킨 인공적인 어둠이다 보니, 흡사 깊은 밤 깊은 산속에 우두커니 선 것처럼 어둠이 끈끈하고 칠흑 같았다. 아니, 한정된 공간에 갇힌 것이니만큼 대자연에 깔리는 어둠보다 한층 짙을지도 모른다. 그 어둠을 촛불 불빛이 조금이나마 찢어놓았다. 하지만 어둠을 밝힐 광명이 될 불빛도 여기서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어둠을 불식시켜야 할 불빛이 어둠에 예속된 것처럼 보였다. 

-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단 좌우 촛대에 세워진 밀초의 불길이 서서히 높아졌다. 이윽고 제단 중앙에 모신 허수아비님 바로 앞에, 겁도 없이 산신님을 등진 채 정좌하고 앉아 고개를 떨군 사기리⠿를 가까스로 비추기 시작했다.
무신당의 제단은, 크기가 매년 3월 3일 윗집의 가운뎃방에 장식되는 훌륭한 히나 인형 진열대만 하다. 계단식이라는 점에서도 히나 인형 진열대와 비슷한데, 그 중앙에 크게 움푹 팬 곳이 있고 그곳에 허수아비님이 계신다. 그 때문에 당집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제단이 둘로 갈라져 그 속에서 허수아비님이 신령하신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박력 있는 산신님 앞에 앉았다고는 해도, 가가치 윗집의 '혼령받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기리는 무척 작고 연약해 보였다.

- "... 아비라운켄소와카."
손녀와 마주 앉은 사기리 무녀가 마룻바닥에 닿을 만큼 머리를 조아리며 일심불란하게 빙의 의례 주문을 외웠다. 목소리에서 왕년 같은 힘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뱃속 깊은 곳에서 쥐어 짜내는 듯한 포효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주문의 말미가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두 차례 배례 하면서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기리⠿를 살폈다. 혼령받이로서 맡은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무녀로서도, 혼령받이로서도 미숙했던 아홉 살 때부터 일이 년 전까지 보다 요즘 상태에 더 큰 불안을 느끼는지, 손녀를 탐색하듯 바라보는 눈초리는 매우 날카로웠다. 증세가 가벼운 마귀라면 무녀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퇴치할 수 있지만, 빙의 상태가 심한 경우는 혼령받이의 존재와 역할이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 사기리⠁ 무녀와 사기리⠿가 조를 짜서 행하는 기도와 축귀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평판이 아주 좋았다. 신탁도 잘 맞는다고 다들 좋아했다. 그런 찬사 뒤에는 실은 윗집의 허수아비님이, 또는 생령이 평소 마을을 떠돌며 온갖 일을 보고 듣기 때문이라는 외경심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심정은 대단히 복잡해, 잘 맞는다고 고마워하면서도 윗집에는 대들지 않는 게 좋다고 두려워했다. 
그런데 한 일 년 전부터 사기리가 혼령받이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가 생기고 사기리⠁ 무녀도 건강이 좋지 않은 날이 늘어나면서 둘 다 예전 같은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을 하건 전체를 주관하는 무녀의 상태가 나쁘면 곳곳에 영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기리 무녀는 칠십 대 중반이라는 실제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였다. 사람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늙는 게 당연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단순히 나이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변화가 보였다.

- "온아로리캬소와카, 온로케이지바라키리쿠소와카, 온마이타레이야소와카, 온아보캬비자샤운핫타..."
지요와 정면에서 대치한 사기리⠁ 무녀가 즉각 주언을 읊었다. 빙의 의례의 주문에 비해 축귀 주언은 훨씬 힘차게 들렸다. 지요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고 무녀로서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언이 계속되어도 지요의 모습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마귀가 그녀의 몸을 떠나 혼령받이인 사기리⠿의 몸으로 옮아올 때가 됐는데 그럴 낌새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온바사라다루마키리쿠, 온아미리토도한바운핫타..."
무녀의 주언에서 조바심이 느껴졌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온바라다한도메이운, 온아라하샤노우...”
무녀의 곤혹을 비웃듯 발 너머에서 지요가 목을 한층 위로 쑤욱 쳐들었다.
"온산마야자토잔, 온바사라아라탄노우소와카..."
아니, 실제로 지요는 웃고 있었다. 발의 좁은 틈새에 눈을 쑤셔 넣을 것처럼 얼굴을 들이대고 배례소 안을 들여다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온카카카비산마에이소와카, 온잔잔사쿠소와카..."
그 웃음도 '히죽히죽' '히히히' 그런 웃음이 아니라, 쳐진 눈꼬리와 치올라간 입꼬리가 정말로 맞붙을 듯한,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 전체에서 쑤우욱 하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그런 섬뜩한 웃음이었다.


-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노여움의 중심에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십 수년 전 말이 나왔던 가가치 가와 가미구시 가의 있을 수 없는 혼인과 이번 일을 겹쳐 생각하는 듯했다. 미래의 가정을 과거의 사실, 그것도 결국 실현되지 않은 일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위였다.
"게다가 설사 렌자부로와 이 댁 아가씨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해도, 큰신집과 윗집은 집안의 격이 원체..."
딸의 문제가 어느새 자신의 이혼과 재혼으로 치환되어 과거의 노여움이 되살아난 지즈코가 더욱 격앙되어 말을 이으려 했을 때였다.
"조용히 못 할까!"
사기리⠁ 무녀의 호통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결코 큰 목소리도 아니었고 제단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지즈코가 입을 딱 다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직 마귀가 지요에게서 완전히 떨어진 게 아니네. 혼령받이에 빙의시킨 마귀를 주물 呪物로 옮기기 전까지는 저 애에게서 쫓아냈다고 할 수 없어. 정확히는 일단 주물을 영산의 산신님께 기탁했다가 히센천에 완전히 떠내려 보내고서야 비로소 축귀를 했다 할 수 있는 걸세. 자네도 명색이 가가구시 사람이거늘 그것도 모르는가?"
"그, 그렇지만 이 애에게 들려 있었던 건 거기 있는 사기리⠿ 양의 생령이잖습니까. 본인이 직접 시인했으니 이 이상 확실할 수 ... "

- 그래서 나도 구태여 생각해내려 애쓰지 않는다. 확실한 사실은 구구산에 올라가 그곳에서 뭔가를 봤다는 것뿐...

 

- 영산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가가치 가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아홉 살이 되면 거행하는 구구의례를 올렸다. 특히 쌍둥이일 경우 의례는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각각 무녀와 혼령받이 중 어느 역할을 담당할지 결정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가가치 가는 대대로 딸 쌍둥이가 태어나는 가계로, 어머니도 쌍둥이였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도 그랬다고 한다. 따라서 항상 무녀와 혼령받이 둘 다 갖춰져 있던 셈이다.

- 하지만 쌍둥이가 태어나지 않거나 성장하기 전에 죽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한 명이 무녀와 혼령받이를 겸한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딸이 태어나지 않은 대는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개중에는 할머니처럼 쌍둥이 자매가 있어도 혼자서 두 역할을 모두 소화하는 사람도 몇 대에 한 명씩은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혼령받이 역할을 맡은 할머니의 동생 사기리⠃가 세상을 떠나고 딸인 어머니는 병약한 탓에 소임을 다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혼자서 전부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뒤에서 뭐라 수군대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할머니를 인정한다. 아니, 현재의 가가치 가는 할머니 덕에 겨우 유지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다만 그때 무리했던 게 지금에 이르러 화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무녀도 혼령받이도 소임을 다하려면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 어떤 중요한 것도 닳는 것 같은... 그게 뭔지는 알듯 말듯 하지만.

- '안 돼, 그런 생각은 하는 거 아냐.'
그래, 구구의례를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무리를 하신 것은 어머니가 병약한 탓만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쌍둥이 언니이자 무녀 역할을 맡았던 사기리⠇ 이모가 성장하면서 머리가 이상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녀의 소임은 물론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웃 마을 의사인 도마야 선생님은 구구의례 중에 마시는 '우카노미타마'라는 약주의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했다. 물론 할머니는 부정했다. 하지만 우카노미타마가 마신 이의 목숨까지 앗을 위험이 있다는 것은 과거의 사례로도 알 수 있다. 그 가장 가까운 예가 사기리⠟ 언니였다. 

- 무신당에서 의식을 마친 뒤, 언니와 나는 이상한 액체를 마셨다. 맛이 달짝지근하면서도 묘하게 썼다. 걸쭉하고 미지근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기분 나빴다. 그게 우카노미타마였다. 그 뒤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의례 후 아흐레 동안 제단 앞에 짚으로 엮어놓은 산실에 둘이 틀어박혀서 하루에 한 번씩 우카노미타마를 마셨을 것이다. 무슨 까닭에선지 밖에 빗자루를 기대 세워놓은 산실 안에서, 이윽고 각각 무녀와 혼령받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 전율했다. 난생처음 맛보는 강렬한 공포였다. 어쩌면 구구산에서 한 체험이 처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 기억이 없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 
그때는 결국 할머니가 발견하실 때까지 장지 너머로 옆방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기억은 그것을 본 데서 그친다. 얼굴이 온통 보랏빛으로 부풀고 군데군데 거무죽죽한, 괴물 같은 그것을. 

- 그렇지만 그것이 사기리⠟  언니였다. 내가 본 것은 이불 밖으로 나온 언니 얼굴이 틀림없다. 아마 온몸이 변색되고 심하게 부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내가 깨어났을 때도 그 정도로 심하지만 않았을 뿐 손발이 약간 묘했다. 원 상태로 회복되기까지 일주일쯤 걸렸다. 나는 분명 증상이 가벼웠기 때문에 살았고, 언니는 중증(그 모습을 보면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다)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 이튿날 할머니는 '감사하게도 사기리⠟는 허수아비님이 됐다'라고 하셨다.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가가치 가 사람은 누구나 죽고 나면 혼이 구구산으로 돌아간다. 그중에서도 무녀나 혼령받이로 소임을 다했던 자는 산신님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나아가 구구의례에서 선택받은 자는 산신님 그 자체가 된다. 좀처럼 없는 일인 모양이다. 바꿔 말하면 사기리⠟  언니는 정말 선택받은 자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그렇게 이상할 정도로 기뻐했다. 참고로 산신님이 화신하신 모습이 허수아비님이다.  

-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가치 가는 흑이고 가미구시 가는 백이다. 마을을 양분하는 지주임에는 변함없지만, 우리 집안은 오랜 마귀 가계다. 오빠는 그런 게 바로 미신이라고 하지만 엄연한 차별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즉 어떻게 해도 흑과 백이다. 설사 만에 하나 맺어질 수 있다 해도 거기에서 태어나는 것은 회색, 백이 더러워질 뿐이다. 검정이 색깔 중에서 가장 진하듯이, 가가치 가의 흑도 농도가 짙으니까...


- "지요야, 사기리⠿랑 놀면 네가 더러워지지 않니."
지즈코 아주머니의 이런 말을 언제부터 듣게 됐을까.
처음에는 밖에서 놀아서 지요의 옷이 더러워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지요의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조심했다. 그렇지만 이내 아주머니가 말하는 더러움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이윽고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지요나 아주머니를 원망하지는 않거니와, 마귀 신앙에 젖어 있는 마을 사람들을 무지하다고 경멸할 생각도 없다. 게다가 렌 오빠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면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아홉 살 때 구구의례를 체험한 이래로 오늘까지 구구산 밑의 두 정화와 영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히센천에 이미 수백 번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의 기척을 느끼고, 듣고, 본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 서적을 참고하며 그런 전승이 있는 지역의 풍토기와 역사책 등을 통해 지금도 일본에 남아 있는 마귀에 관한 자료들을 노트에 정리했다. 그러나 종류와 명칭(다른 호칭), 발생 지역, 전파 경로, 형태, 성질, 영향, 사역과 가계의 유무에 이르기까지 명확히 분류하고 정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뿐이었다.

- 가가구시의 가가치 가가 이 일대에서 '소자모노'라 불리는 뱀신의 가계라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이는 윗집이라는 택호를 가진 가가치 가만의 호칭이며, 나머지 가운뎃집과 아랫집은 나가모치, 나가모노, 나가나와라 불린다. 각각 '큰 궤 長持ち' '긴 것 長もの' '긴 밧줄 長縄'로, 모두 뱀을 나타낸다. 소자모노란 '쌍뱀 双蛇もの'을 의미하는데, 윗집에 대대로 딸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과 관계있다는 고찰이 <스자쿠와 자코쓰의 마귀신앙>에 나온다.

- 뱀을 부리는 것에 관해서는 문헌에서도 일찍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뱀에 씌는 것 자체는 엔포 3년(1675) 구로카와 도유가 쓴 <엔페키 수필 분류 초 抄>에 도뵤와 비슷한 '도신'이라는 명칭이, 겐로쿠 10년(1697)에 아마노 사다카게가 쓴 <시오지리 塩尻>에 '도비야우 蛇蠱'가 등장한다. 또 지하라 데이의 <보소 만록 茅窓漫錄>에는 시코쿠에 도비야우가 있으니 흔히 도뵤 土珁라 이른다. 스가에 마스미의 <가타이부쿠로 かたる 袋>에 '이즈모, 이와미국 國 일대에 도비야우라고 해서', 호에이 6년(1709)에 가이바라 에키켄의 <야마토 본초 大和本和>에 '인가에 다우베우라는 뱀신을 부리는 자 있으니', 호레키 7년(1757)에 기자키 데키소가 쓴 <습추잡화 拾椎雜話>에 '뱀의 배처럼 되는 일이 있는데(중략) 이는 나가모노의 소행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에노 다다치카의 <설창야화 雪窓夜話>에서는 '어떤 이가 말하기를 히센국에도 다후베우가 들렸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여우가 아니다. 담뱃대의 담배설대 정도 되는 작은 뱀으로 길이가 7, 8치에 불과하다'라며 그 상세를 기록했다. 안에이 7년(1778)에 오구리 햐쿠만이 쓴 <도료코 수필 屠竜工隨筆>에는 스이카즈라라는 호칭이 나오는데, 이는 쇠퇴한 모양이다. 가가와의 미토요군에서는 돈뵤가미 또는 돈보가미, 에히메에서는 돈뵤라고 부르는데 이는 동부에 치중된다. 도쿠시마와 고치는 개 犬 신이 성했는데, 미요시군에는 돈베가미가, 다카오카군에는 돈베, 헨비, 구치나와, 나가나와가 있다.

- 뱀에 들리는 현상은 전국에 널리 유포되어 있지만, 도뵤라는 호칭은 서쪽 지방 것이며 특히 주고쿠, 시코쿠에 집중된다. 인호와 겹치는 주고쿠 지방에서는 산요, 그리고 산인의 이와미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즈모의 니타군에는, 어느 집에서 흰 뱀을 항아리에 넣어 받들었는데 하녀가 실수로 뜨거운 물을 부어 죽이자 가세가 기울었으며 그로부터 주위에서 그 집안을 꺼림칙하게 여겨 기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같은 이즈모의 야쓰카군에서는 그런 집안을 가리켜 도바이에 들렸다고 한다.

- <가타이부쿠로>에는 '대가리에 흰 줄기가 있는 검은색 뱀을 부린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와미의 하마다시에서는 흰 선이, 오카야마의 아테쓰군에서는 노란 선이 목둘레를 따라 나 있는 뱀인데, 후자의 경우 일흔다섯 마리가 무리를 이룬다고 한다. 히로시마의 후타미군에서는 가다랑어포처럼 길이가 짧고 가운데가 굵다. 오카야마의 마니와군에서는 목에 환문이 있고 길이가 4, 5치쯤 되는 뱀이다. 가가와의 미토요군에서는 삼나무 젓가락쯤 되는 것부터 대나무 이쑤시개쯤 되는 것까지 크기가 다양하며, 몸은 칠흑이고 배 부위는 연노랑, 목둘레에 이 역시 선이 있는데 이쪽은 금색이라고 한다. 또 길이는 1자 5치에서 2자쯤 되고, 목둘레의 선은 청색과 황색 두 가지라는 곳도 있다. 도쿠시마의 미요시군에서는 5, 6치쯤이며 목둘레에 노란선이 있다.

- 시마네의 가노아시군에서는, 씌면 목이 조여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축귀 문답이 불가능하니 기도로 쫓아낼 수밖에 없다. 쫓아낸 뒤에는 띠 모양으로 반점이 남는다고 한다. 야마구치에서는 개 신과 비슷하다고 믿으며, 무려 일백 마리가 무리를 이룬다. 집에 붙지 않고 사람에게 붙는데 개 신보다 집념이 강하다. 구가군에서는 그런 집안을 쓰카이테라고 부르며, 쓰카이테를 노엽게 하면 기물 속에 뱀을 넣는다고 하여 두려워한다. 히로시마의 히바군 경우, 메이지 시대까지 많았는데 이후 개 신에게 밀려난 모양이다. 후타미군에서 게도는 여자가 부리지만 도뵤는 남자가 부린다고 여겨지며, 옹기에 넣어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사당을 세워 은밀히 모신다. 이따금 뚜껑을 열고 술을 붓는다. 그러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다루는 방법만 그르치지 않으면 평생 화를 가져오지 않는 ...

- 그래도 느긋한 어조로 대답하며 일어나려던 도조 겐야는 움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자신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험악한 표정의 마을 사람들이 버스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 "지요가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문안 다녀오렴."
복도에서 마주친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또 그냥 신경증이겠지."
보나 마나 지즈코 큰이모가 전화해서 부풀려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여느 때랑 다른 모양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가 어쩔 줄 몰라하면서 전화를 걸었더라."

 

- 전화 상이지만 자존심 센 큰이모가 어머니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데에는 약간 흥미가 생겼다. 평소의 이모 같으면 친동생이기는 해도, 아니 친동생이기에 더더욱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큰이모가 대략 오 년쯤 아버지와 부부였던 과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큰이모가 이혼하고 겨우 일 년 뒤에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하니 응어리가 남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여느 때랑 다르다니 지요가 드디어 뱀 괴물로 탈바꿈하기라도 했대?"

 

- "사기리⠁ 무녀님이 전에 염매랑 마주쳤을 때 상대방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걸 절대 들켜선 안 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났고."
"그래, 나도 전에 다른 데서 들은 적이 있어."
사기리⠿에게 들었다는 것은 일부러 숨겼다. 사기리⠿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그 이상으로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여기서 지요의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뒤에 있는 게 뭐든 간에 아무튼 돌아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걸음을 좀 빨리 했는데, 뒤에 있는 뭔가가 따라오는 것 같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지요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게 이야기하면서 그때의 공포를 또다시 체험하기 때문일까.
"셋째 다리를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을 땐 나도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어. 바로 지장갈림길로 나왔지만 거기, 길이 다섯 갈래로 엇갈려 있어서 헛갈리기 쉽잖아? 허둥대다가 절로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서고 말았지 뭐야. 그것도 하필이면 애들이 '나없다길'이라고 부르는 그 찜찜한 길로." 

- 그곳은 구 년 전에 정말 신령에게 납치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시즈에라는 일곱 살 먹은 여자애가 실종된 길이었다. 그 길로 더 가면 '마주침오솔길'이라 불리는 괴이쩍은 곳도 나온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으스스한 곳이라 인적도 뜸하다.

- 사기리⠿의 얼굴이었다는 것은 지요가 잘못 본 것이라 쳐도, 마을 아이의 장난이라 하기에는 너무 기묘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애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아이들은 절대 혼자 장난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무리 지요라 해도 그렇지, 새신집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배짱이 두둑할 수 있는 아이는 마을에 없다. 게다가 대개 마지막에는 상대방을 놀리며 달아나는 법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장난의 목적이라고 할지, 묘미니까. 나도 어렸을 때 그랬으니 잘 안다. 
그런 내 망설임을 눈치 빠르게 알아차린 듯, 지요가 별안간 힘을 되찾은 눈초리를 내게 향했다.
"하지만 렌자부로도 옛날에 염매를 본 적 있잖아."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꺼냈다.

 

- "그만둬!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부르짖었지만 지요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딱 한 번, 마을 사람들이 결코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기피하는 구구산에 렌타로 형과 발을 들여놓았다가 염매와 마주친 적이 있다. 게다가 형은 그 뒤...
 
- 큰정화소는 구구산에서 흘러오는 히센천이 크게 호를 그리는 강변 자갈밭에 있다. 수미단 같은 대좌를 중심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박공지붕을 네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구조에서 목조건축 만의 중후함이 느껴진다. 그 중앙에 설치된 사당도 조그만 당집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본래는 구구산의 외 外 신사니 으리으리한 게 당연할지 모른다. 

 

- 나는 밑에서 절을 한 뒤 왼손으로 높직한 난간을 짚으며 계단을 올라가 사당 정면에 섰다. 그리고 격자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눈물을 한 회사를 비단에 올려놓았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다음 주문을 읊었다.

대개는 이즈음부터 현실 속의 소리나 목소리가 사라지고 술렁거림이 느껴진다. 물론 큰정화소 내부가 아니라 주변의 것이다.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술렁거리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소리 없는 소음이라 할 기척에 에워싸인다.

그러나 의식을 마치고 사랑에서 나오면 주위를 둘러본들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찾는 눈치를 보이면 안 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것이 실체화되도록 거드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일이 성가셔진다. 큰정화소에서 나오기 무섭게 직접 접근하려 들기 때문이다. 위험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하기야 이때 느끼는 것은 이 지방에서는 말하자면 공기 같은 존재인지라 의식하지 않고 평상시대로 행동하는 게 제일 좋다. 우리가 평소 살면서 공기에 관해 별 달리 생각지 않는 것과 똑같다.   

- 정해진 주문을 읊고 나서 제단에 올려놓았던 회지를 공손히 받들었다. 손에 닿는 감촉이 명백히 달랐다. 조금 전까지는 어쩐지 끈적끈적한, 종이인데도 묘하게 무거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 차이를 손가락으로 실감했다.

- '할머니께서 큰정화소로 가라고 하실 만했구나. 작은정화소였다면 이렇게까지 정화하기는 무리였을 거야.'
새삼 큰정화소의 힘을 실감한 나는 제단을 향해 절한 다음 사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와 정화소를 향해서도 절을 했다. 그런 다음 강변을 따라 작은정화소까지 가려다가 무심코 왼편으로 보이는 도코요 다리에 눈길을 주었다. 
'앗, 영산에 올라가야겠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영산에 가고 싶다,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무서워했던 곳이건만 지금은 가까이 가고 싶었다. 영산에 이상하게 끌렸다. 작은정화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 한구석에 있었다. 그런데 몸이 자연스럽게 다리 쪽으로 향했다. 아홉 살 때 느꼈던 압도적인 공포가 되살아날 듯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순식간에 지워버릴 정도로 기분 좋은 바람이 영산 쪽에서 불어왔다. 히센천의 물 흐르는 소리조차 청량한 음악처럼 들렸다. 큰정화소 안에서 체감했던 괴이한 주위 기척이 사라지고, 마치 무릉도원에 온 것처럼 평온함이 주위를 감쌌다. 머릿속이 멍하고 기분이 좋은데,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가면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다리에 발을 디디려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영산이 부를 때가 있다.]
멍한 머릿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오른발을 도코요 다리에 막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몇 발짝 물러났다. 다리에 발을 내디뎠다면 나는 틀림없이 영산 어귀까지 갔을 것이다. 두 허수아비님이 모셔진, 아홉 살 때 딱 한 번 가봤던 무서운 곳으로. 

- '그랬다면 대체 어떻게 됐을까.'
영산에 올라갔을까. 올라가서 뭘 할 생각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 의사로 올라가는 게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영산이 부를 때가 있다.
그렇기에 이곳에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가치 가의 무녀와 혼령받이조차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과 다른 만큼 오히려 부름을 받기가 더 쉬운지도 모른다.

-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나는 여느 때와 달리 이것저것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질타했다. 마음을 다잡고 조금 전 소리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큰정화소로 돌아가니 사당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아까 분명히 좌우로 여닫는 격자문을 꼭 닫았는데.
'바람이 불었나?'
아까 들은 소리는 사당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렇지만 바람이 분다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릴까. 게다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열었다 닫았다 한 것 같은...
인간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바로 격자문을 잘 닫고 정중하게 절한 다음 큰정화소를 뒤로했다.

- 히센천을 따라 하류의 작은정화소를 향해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할머니 말씀으로, 히센 緋還 천은 과거 기록에는 시센 贄還 천으로 나와있는데 '시'가 '히'로 바뀌면서 글자도 바뀌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의 '贄'는 보아하니 산 제물을 뜻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이 강은 구구산에 바쳐진 제물을 돌려보내던, 즉 떠내려 보내던 곳이며, 영산도 원래는 구기 供犧 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기'란 산제물을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히센천의 '緋'도 붉은 실이라는 의미니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것 같다. 산 제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치 붉은 실처럼 또는 붉은 뱀처럼 강물을 따라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 할머니가 주의를 주었어도 주위가 신경 쓰인다. 무심코 눈길을 주고 만다. 아무리 그래도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것만은 할머니의 말씀을 지켰다. 그렇지만 뒤가 아닌 왼편의 강물이나 오른편 덤불 그리고 머리 위의 하늘과 발 밑 강변은 늘 쉴 새 없이 시선으로 훑곤 했다.

너무 무서워서...
똑바로 앞만 보고 작은정화소까지 가면 그만큼 의식을 빨리 끝내고 빨리 돌아올 수 있다. 머리로는 아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주위를 완전히 차단하고 정화소로 가서 의식을 올리고 주물을 강물 떠나려 보낼 수 있게 되기까지 일 년도 더 걸렸다. 그동안 나는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 때문에 더욱 눈을 뗄 수 없어졌다. 어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 황혼녘 하늘에 구불구불 떠다니는 길고 굵직한 밧줄 같은 것, 강변의 돌 틈새로 무수히 보이는 핏발 선 눈알들, 울창한 덤불에 새 쑤욱 나왔다가 쓱 들어가 버리는 거대한 새의 다리, 물결치는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부르듯 한들한들 흔들리는 손목, 물고기 비늘과 똑같이 생겼는데 사람 피부가 타는 듯한 냄새를 풍기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뭔가, 발목에 엉겨드는 갓난아기 것처럼 조그맣고 긴 머리털이 난 손들,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강을 헤엄치는 팔다리가 붙은 뱀장어 같은 짐승, 몸 크기가 계속 달라지고 덤불 속에 숨어 '꺼내줘 꺼내줘 꺼내줘' 하고 속삭이는 네발짐승,  얼굴, 가슴, 팔다리에 들러붙으려고 앞쪽에서 꿈틀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물컹물컹하고 형태가 없는 검붉은 것, 거대한 스투파처럼 영산의 나무들 사이로 솟은, 납작한 막대기 같은 회색 물체, 아주 낮은 상공에 떠서 가루차 같은 색의 물을 떨어뜨리는 짙은 녹색의 구름덩어리, 머리는 백발 노파에 몸통은 닭인데 다리는 없고 궤궤 기성을 지르며 강변을 기어 다니는 짐승,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수험자며 중, 비파법사, 샤미센 악사 등의 썩은 송장들... 

- 내가 본 것을 말씀드리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건 요괴들이 꾸며낸 환영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쪽에서 동조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게야. 다만 그런 것들은 진짜 모습이 환영보다 더 무시무시한 경우도 있으니 절대 한눈팔면 안 된다." 
늘 이렇게 꾸중만 듣다 보니 나는 이윽고 뭘 봐도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충고는 잊지 않았다.
진짜 모습은 더 무시무시하다.
그런데도 계속 한눈을 판 것은, 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괴들의 환영에 홀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이러다 그때 같은 상태로 돌아가겠어.'
나는 그런 걱정이 들어 다시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별로 흐트러지지도 않은 무녀복의 매무새를 고쳤다. 혼령받이 역할을 맡는 사람도 무녀와 마찬가지로 백의에 붉은 하카마를 입는데, 무신당에서 나올 때는 그 위에 흰 겉저고리를 걸친다. 가가치 가의 무녀도 혼령받이도 솔직히 내게는 짐이 너무 무겁지만 이 복장만은 꽤 마음에 든다. 

 

- '서두르자. 꾸물대다간 정말 어두워지겠어.'
이미 반쯤 온 지점에서 내 나름대로 최대한 걸음을 빨리 했다. 해가 떨어지면 주위를 방황하는 것들이 순식간에 늘어나기 때문에 그 걱정도 있었다. 그런 밤의 존재들은 한눈팔지 않아도 집적댄다. 물론 상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가 많으면 성가시다. 계속 무시하는 데도 기력과 체력을 쓰게 된다. 그래서 몸이 약해졌을 때 터무니없는 것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축귀 의례를 마무리하는 장소라지만 이곳은 결코 성역이 아니다. 성역은커녕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마소 魔所다.

- 하류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옷자락이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점차 걸음이 느려졌다. 꼭 나를 보내지 않겠다고 바람이 가로막는 것 같다. 어떤 의사마저 느껴질 정도로 강한 돌풍이 불었다. 
힘겹게 나아가 간신히 작은정화소 앞에 이르렀다. 큰정화소 같은 지붕도, 기둥도, 대좌도 없이 그저 강변에 사당이 서 있을 뿐이다. 사당의 크기도 십 분의 일쯤 될까. 격자문을 열려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그렇지만 이 정화소를 볼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큰정화소에서는 안심감 그리고 외경심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는데, 그곳에 비해 작아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천벌 받을 생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도 몹쓸 짓이라고 반성한다. 그렇지만 작은정화소 앞에 서면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차, 긴장을 늦추면 안 돼.'
나는 또다시 스스로를 타이르고는 큰정화소와 같은 순서대로 의식을 올렸다. 오로지 정화 의식만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머릿속을 주문만으로 메웠다. 큰정화소를 거쳐서 왔다지만 이곳에서 할 소임도 중요하다. 

 

- 의식을 마친 나는 회지를 들고 정화소 오른쪽에 설치된 널판 위로 올라갔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선창다리처럼 강에 조금 걸쳐져 있다. 몇 발짝 못 가 바로 끄트머리에 이를 만큼 짧지만 주물을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데 중요한 곳이다. 
"네 본디 있던 곳으로 돌아갈지어다." 
나는 그렇게 읊으며 회지를 강물에 담근 뒤 말을 이었다.
"결코 성내지 말지어다. 그리고 돌아오지 말지어다. 결코 탄식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돌아오지 말지어다. 결코 교만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돌아오지 말지어다. 그리하여 네 본디 있던 곳으로 돌아갈지어다." 
주물을 떠내려 보내는 주문을 읊으며 손을 살며시 뗐다.
바로 강물을 타고 떠내려가기 시작한 회지는 얼마 못 가서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정지했다.
'하필이면 이런 때...'


- 주물은 하류로 떠내려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것이 제일 좋고 그 자리에 가라앉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하다. 마귀가 퇴치할 놈에게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간주된다. 그렇지만 가장 나쁜 게 떠내려가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이었다. 축귀 의식 자체가 미흡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녀가 문답으로 제압한 듯 보인 것은 상대방의 책략이고 실은 주물에 봉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온아로리카소와카, 온로케이지바라키리쿠소와카, 온마이타레이야소와카, 온아보캬비자샤운핫타..."
나는 널판에 앉아 곧바로 주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평소 혼령받이 역할을 하지만 할머니 밑에서 무녀로서도 수련을 쌓았다. 혼자서 대처해야 할 상황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온바사라다루마키리쿠, 온아미리토도한바운핫타..."
주언을 읊을수록 회지가 더 빨리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강물에 떠내려갈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려는 나를 질타하며 주언에 정신을 집중했다.
"온카카카비산마에이소와카..."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문득 얼굴을 들어보니 어둑어둑한 수면에서 새하얀 회지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일심불란하게 주언을 읊으면서 무의식 중에 머리를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떠내려갔나, 아니면 가라앉았나.'
어쨌든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긴장을 푼 순간 주위가 캄캄해진 것을 깨달았다. 아직 완전히 어둠에 싸이지는 않았어도 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주위는 이제 완전히 캄캄했다. 나는 그래도 눈을 감고 오른손을 살며시 움직여 왼쪽 어깨로 천천히 가져갔다. 이윽고 뭔지 모를 젖은 것에 손이 닿았다.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의지의 힘을 총동원해서 다시 왼쪽 어깨로 가져갔다. 축축한 것에 손이 닿았다.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잡아 어깨에서 떼어냈다. 손가락 사이에서 그것이 꿈틀거렸다. 엉겁결에 놓아버릴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오른손을 가만히 눈앞으로 가져오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한 박자 뒤 '무서운 곳'에 내 비명이 울려 퍼졌다.

- 히센천에 떠내려 보냈을 주물이 눈앞에 있었다.

- "실례되는 질문이오만 그 마을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
버스에 올라탄 노인의 태도는 신사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눈빛과 말투에서 대답을 거부할 수 없는 박력이 느껴졌다.
"아, 예... 그게..."
도조 겐야는 노인의 박력에 눌려 말도 나오지 않자 허겁지겁 여행 가방을 뒤져 봉투를 내밀었다. 자신이 섣불리 설명하기보다 봉투가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판단해서다.
"이게 뭐요? 흠, 잠깐 볼까."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 든 노인은 속에 든 것을 꺼내 들고는 노안경을 썼다. 한동안 차 안에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 

 

-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버스를 포위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기껏 생긴 우호적인 분위기를 깨뜨릴까 봐 잠자코 있었다.
"흠, 이제 와서 얼버무려봤자 소용없을 것 같군."
노인은 생각에 잠겨 겐야의 무릎 위에 놓인 <스자쿠와 자코쓰의 마귀신앙>을 보며 말했다.
"소개장에도 이 일대 민간전승, 특히 마귀에 관한 조사에 편의를 봐주라고 돼 있으니 말이지. 그래, 작가시라고?"
노인은 새삼 겐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뜯어보았다. 그가 입은 청바지가 신기함과 동시에 수상쩍었으리라. 
당시 일본에서는 공식적인 의류 수입이 인정되기 전이었던 터라 청바지는 어디까지나 중고만 구할 수 있었다. 더욱이 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 많을뿐더러 일본인 체형에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흔치 않은 청바지를 겐야가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니 노인의 눈에 몹시 기이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복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취미는 없는지, 아니면 그런 지적은 결례라고 생각하는지, 노인은 청바지에 역력히 흥미를 보이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네, 도조 겐야라고 합니다. 소설 자료 취재를 겸해 여기저기 찾아다니죠."
"그렇군. 난 도마야라고, 이 마을의사요."

- "그렇다면 그놈은 산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왔다는 뜻이지. 허나 전후에는 수험자들마저 버스를 이용하는 지경인데 구태여 산을 넘을 인간이 있겠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상하겠는데요."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들어왔거나..."
겐야가 이럭저럭 마음을 다잡고 대답하자, 도마야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그런 말을 말했다.
"네? ... 원래부터 마을에 있던 사람이란 뜻입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염매가 나왔다고 하오만."
"여, 여, 염매!"
염매란 소류향에 전해지는 명칭인데, 기본적으로 정체불명의 가장 무시무시한 괴물을 가리킨다. 겐야가 별안간 생기를 되찾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가가구시 촌 사방에 삿갓과 도롱이 차림의 허수아비님이 모셔져 있는 건 도조 씨도 이미 아실 테지."
"네. 매년 2월 8일 가카산에서 산신을 모셔오는 혼령맞이 제례로 모든 허수아비님에 산신님이 강림하기 때문이라고도, 또 산신님이 마을 안 어디든 갈 수 있게 허수아비님을 모신 것이라고도 한다죠?"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오만 실은 숨은 용도가 하나 더 있다오."

도마야의 목소리에 겐야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염매가 실은 허수아비님과 똑같이 삿갓과 도롱이 차림이라는 전승이 있거든. 즉 재수 없게 염매와 마주쳤을 때 그걸 마을에 모셔진 허수아비님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보내기 위한, 말하자면 일종의 방어 수단인 셈이오.

 

- "그것 참 대단한데요."
어린애 눈속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정도 대처밖에 할 수 없는 염매라는 존재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겐야는 이내 그와 관련된 의문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가가치 가가 모시는 허수아비님은 구구산의 산신님인 셈인데, 그럼 마을 곳곳에 있는 허수아비님은 전부 가카산의 산신님이라고 봐야 할까요?" 
"흠, 문제는 다들 '산신님'이니 '허수아비님'이라고만 한다는 거요. 실은 명확하게 구별이 안 된다는 거지. 게다가 노인네들 중에는 염매의 정체가 구구산에 산다는 나가보즈라고 믿는 이들도 있거든. 염매가 허수아비님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전승 때문에 가가치 가의 허수아비님에 관해 무서운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오."
"그렇군요. 단순하지 않다고 할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영역 같군요."
"산신님에 씌었을 경우 증세가 가벼우면 가카산, 무거우면 구구산이란 식으로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오." 
"그것 참 편리한...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도조 씨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믿소?"

- "그런데 난처하게도 실은 그 무렵, 가가치 아랫집에서 이사무를 데릴사위로 들여 사기리⠏와 결혼시키자는 이야기가 있었던 거요.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을 혼담인데 그런 것까지 끼어들면 더더욱 수월치 않지. 그런데 본인에게는 딱한 일이지만 이사무가 나이깨나 먹어선, 그때 그 친구가 분명히 스물다섯 살이었소만, 풍진에 걸렸지 뭐요. 그것도 처음 진찰한 게 돌팔이 오가키 놈이라 이 놈이 그냥 감기라고 진단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오. 그 통에 데릴사위 이야기가 흐지부지되면서, 선대 주지도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양쪽 집안에 타진한 거지." 
"잠깐만요. 하지만 마귀 가계와 혼인을 맺은 집안도 마귀 가계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가미구시 가가 마을에서 아무리 세력이 있어도 결국은 흑이 됐다고 간주돼서 그 뒤로는 가미구시 가까지 가가치 가와 동류로 취급되지 않을까요?"
"보통은 그렇겠지. 이 경우 사기리⠏가 큰신집으로 시집간다면 큰신집은 마귀 가계가 되오. 그와 동시에 친척인 새신집도 동류로 간주될 테고. 새신집에서 그런 사태를 피하려면 큰신집과 친척관계를 완전히 끊는 수밖에 없소. 이건 다케오가 윗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갈 경우에도 마찬가지요. 부모가 아들과 연을 끊지 않는 한, 설령 데릴사위로 들어가 집을 떠난다 해도 큰신집이 마귀 가계가 되는 걸 피할 수 없는 거요. 이게 마귀 가계와의 혼인에서 늘 문제가 되지." 

- "... 에서는 백이나 흑이냐 하는 문제가 일시적으로 유보되죠. 마을의 생활을 우선시해 서로 협조하는 겁니다."
"호오, 역시 공부를 많이 하셨군. 가가구시 촌에서도 그런 때는 가계와 상관없이 지주와 소작인으로 움직인다오. 가계가 문제가 되는 건 주로 관혼상제가 관련될 때일 거요. 가장 많은 건 일상생활 속의 자잘하고 어처구니없는 차별이겠소만." 
"하지만 그럼 가미구시 가가 흑이 되면 백에서 배제되고 끝 아닐까요? 어차피 마을의 생업에 영향이 없을 테니 말이죠."
"가미구시가 평범한 집안이라면 아마 그리 될 테지. 마귀 가계라는 게 사사건건 문제가 되는 지방도 있으니. 허나 그런 지역은 처음부터 마귀 가계가 몇 안 되는 경우가 많다오. 두어 집을 배척해도 영향이 전혀 없는 거지. 처음부터 노동력으로 인식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가구시 촌처럼 백과 흑이 뒤섞여 있고 더욱이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성립되어 있으면 이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거든. 게다가 상대가 마을에서 두 번째로 큰 세력을 가진 큰신집이면 이야기는 별개인 거요. 아닌 게 아니라 상호부조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지주와 소작인 관계는 뭣보다도 관혼상제 그리고 일상의 다양한 접촉 위에 성립된다오. 마귀 가계가 됐다고 배제하기는 아무리 그래도 무리일 거요. 그랬다간 마을이 돌아가질 않소."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헤미야마 씨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조하려 했던 거군요." 
"이야기가 곁길로 샜군. 그렇지, 그런 거요. 헤미야마 씨는 간사이 산골 출신이라던데, 듣자 하니 그 마을에 햐쿠미 가란 유서 깊은 대지주 가문이 있었나 보오. 그런데 이게 강력한 뱀신가라 이것저것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오. 그래서 남일 같지 않다고 했소."
"저런, 그렇습니까. 책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는데요."
"자기 고향을 다루기는 쉽지 않지. 그렇지만 말을 듣기로, 그 마을에서 장사 지낼 때 올리는 장송 백 百 의례란 관습이 이 일대와 대단히 비슷하더군. 그러니 그 사람 나름대로 친근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소." 

- "그럼 혼담은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군요?”
겐야가 중요한 결과를 묻자 도마야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음, 비록 예상할 수 있는 사태였다고는 해도 가미구시 가에서 씨도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오. 선대 주지라 그나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쫓겨났을 거요. 반대로 가가치 가에선 관심을 보였소만, 단 다케오가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조건으로만 받아들이겠다고 했지. 가가치 가는 대대로 모계 집안이라 맏딸이 데릴사위를 맞는 풍습이 있다오. 하지만 사기리⠏의 언니 사기리⠇는 그 무렵 조금 이상했거든. 그래서 동생인 사기리⠏를 아랫집 이사무와 결혼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셈이오만."
"설령 다케오 씨가 큰신집을 버리고 데릴사위로 들어갔더라도, 그 사실과 무관하게 다케오 씨와 가미구시 가의 모든 인연이 자동적으로 끊어졌겠군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모든 인간관계가, ... "

- "다만 전쟁은 일본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앗아갔소만, 민주주의 세상이 되면서 이런 촌에서도 예전 같은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단 말이지. 봉건제하의 신분제도는 마귀 가계 문제와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오." 
"천민 말씀입니까?"
"그렇소. 부락 차별의 문제점 중 다수가 마귀 가계의 경우에도 들어맞는다는 생각 안 드시오? 태정관 포고로 해방령이 발령돼서 천민도 평민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게 됐다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사람 아닌 사람' 취급을 받았소. 그 배후에는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정책, 즉 임금이 저렴한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일본의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지. 그 뒤 부락 개선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다이쇼 11년(1922)에 수평사가 창립되면서 부락 해방운동이 활발해졌소. 물론 전후라고 부락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오만 진전은 있는 것 같지."
"마귀 신앙에도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지방에 아직 인습이 많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니 그리 쉽게 달라지진 못할 거요. 허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할지, '마을의 수치'라는 의식도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오."

- 도마야는 큰신집의 셋째 아들 렌자부로가 마을 사람들의 계몽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와 새신집의 지요, 두 사람이 가가치 윗집의 사기리⠿와 어렸을 때부터 친했다는 것, 다만 세 사람이 지금은 삼각관계가 된 듯하다는 것, 큰집의 스사오는 이십삼 년 전 동생 일이 마음에 남아 있는지 렌자부로의 심정을 헤아려준다는 것, 그러나 도요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려우리라는 것 등을 가르쳐주었다. 

 

- "큰집 당주와 셋째 아들이 협조적이란 건 꽤 희망적인데요."
"게다가 내 보기에 렌자부로는 사기리⠿한테 반한 것 같으니 그 애와 결혼하면 계몽 활동에도 힘이 실릴 거요. 새신집의 지즈코가 작년 이맘때부터 딸 지요를 렌자부로와 약혼시키려고 획책하는 것 같소만, 뭐, 렌자부로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괜찮을 테지.” 
"그렇지만 이런 일은 저쪽에서 주변부터 차근차근 다져 가면 본인 뜻대로 안 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오. 그러니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렌자부로 군과 사기리⠿ 양의 혼인은 역시 가미구시 가의 도요 부인과 가가치 가의 사기리⠁부인이 걸림돌이 될 테죠. 전자는 혼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테고, 후자는 렌자부로 군이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경우만 인정할 테니까요."
"허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결혼이면 의미가 없소."

- "그저 가가치 가가 마귀, 그것도 뱀신님뿐 아니라 생령까지 들리는 특수한 가계가 된 건, 마을의 신령 납치 전승과 무관하지 않다고 쓴 부분이 있었죠."
좋아해 마지않는 괴이담을 앞에 두고 중요한 사실이 생각난 겐야는 냉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도마야에게 물었다.
"가가치 가 초대 당주는 엔포 5년(1677)에, 이대 당주는 교호 10년(1725)에, 삼대 당주는 간엔 2년(1749)에, 사대 당주는 덴메이 5년(1785)에 각각 타계했소만, 실은 이게 전부 뱀띠 해라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뱀신 신앙은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거든. 그런데 삼대에서 사 대 당주 때 가가치 가의 쌍둥이 자매가 신령에게 납치돼 아흐레 동안 행방불명됐다는 기록이 가미구시 가에 남아 있소. 그중 하나는 구구산 기슭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게 발견 됐는데 또 하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오. 게다가 발견된 아이는 그 후로 종종 신이 들렸던 거요. 그것도 행방불명된 아이가 빙의된 거지. 그런 빙의 소동이 계속되는 사이에 점차 마을사람들까지 씌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소." 
"가가치 가가 마귀 계통으로 여겨지게 된 내력이로군요?”
"이 사건이 전부는 아니겠소만 유래의 일부라 봐도 틀리지는 않을 거요."
"신령 납치가 발단이라면 좀 성가신 걸."
겐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형은 산속의 커다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다'라고 했다더군. 그뿐 아니라 형이 줬다는 선물까지 보여준 모양인데, 그게 당시 마을에서는 구할 수 없던 과자였다는 말이지." 
"어째 '산속 집' 같은 이야기인데요.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검은 대문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발견합니다. 정원에는 붉고 흰 꽃이 피어 있고 닭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죠. 외양간과 마구간도 있고요. 그런데 인기척이 전혀 없거든요. 조심조심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로에 무쇠 주전자가 걸려 있고 물이 펄펄 끓습니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 집에서 갖고 나온 사발로 쌀을 푸면 아무리 퍼도 쌀독이 비지 않았다는 민화 말씀이구먼. 욕심 없는 여자가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않았더니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냇물에 사발 하나가 둥둥 떠내려왔다는 이야기, 또 그 집을 목격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산에 들어가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네. 형제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그렇구먼.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 이야기요. 동생은 그 뒤로도 몇 번 형을 만난 모양인데, 정작 집이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했소. 신사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는 데서 가카산을 수색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모양이오만, 어린애 말만 듣고 그렇게까지 할 순 없다고..."
"성역이니 말이죠."

- 대답할 겨를도 없이 복도 쪽 장지가 열리더니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나타났다.
"어떻습니까? 사기리⠿ 양은 무사하신가?"
이어서 도마야 선생님인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앗, 선생님, 잠깐 기다려주세요."
물음의 의미까지 더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어머니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복도에 있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재빨리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나는 그제야 복장이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음을 깨닫고 비록 어머니 앞이기는 해도 부끄러워졌다. 
"이런 데서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내 옷매무새를 만져준 어머니는 다시 복도로 나가, 도마야 선생님과 처음 보는 낯선 남자 한 명을 방으로 들였다.

- 남자는 처음에 이십대 초반쯤으로 보였으나 차분한 말투와 태도에서 후반일지도 모르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도시 사람인지 분위기가 세련됐고 지적인 외모까지 더해 첫인상은 싹싹한 청년으로 보였다. 그러나 세련됐다는 느낌과 모순될 수도 있는데, 바지가 어쩐지 작업복 같고 특이했다. 물론 지저분하지는 않았지만 멋을 부린 느낌은 아니다. 옷차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꾸밈이 없었다. 그런 기묘한 바지가 멋져 보였다. 하여간 분위기가 영묘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 ...  

- 그뒤 도마야, 렌자부로와 함께 가미구시 큰집으로 가서 도요와 스사오에게 인사했고, 도조 가가 옛 화족 가문임을 안 순간 별안간 태도가 상냥해진 도요의 말 상대를 한참 해야 했다. 녹초가 되어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고 손님방으로 물러났는데, 도마야와 렌자부로가 따라 들어와 결국 아침까지(의사는 도중에 잠이 들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가가치 윗집을 방문했나 싶더니 지금은 무신당 안에 있다. 그것도 만나려던 사기리⠁ 어르신은 못 만난 채 젠토쿠 도사라는 자칭 수험자의 목매단 시체와 대치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때 겐야는 눈앞의 기이한 시체를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사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불행한 미소녀란 표현이 있는데.'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명색이 소설가라는 자신이 그런 진부한 표현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게 부끄럽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표현에 딱 들어맞는 소녀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말 불행한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 "우카노미타마란 수상쩍은 걸 마신다죠?"
"전에 사기리⠁ 부인에게 물으니 주로 사안초 蛇顔草를 달여서 만든다고 가르쳐주셨소만......"
"라쿠고에 나오는 사함초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건 '뱀을 품은 풀'이지만 이건 '뱀의 얼굴 풀'이라오."

"앗, 네, 그렇겠군요."
"그런데 사안초 말고도 온갖 초근목피를 넣는 모양이더군. 사기리⠁ 부인은 약뿐 아니라 술까지, 그런 달여서 마시는 것을 만드는 명인이니 말이오." 
"그럼 정확한 성분은 그분만 아신다는 말씀이군요."
"우카노미타마에 관해서는 그 애 큰이모가 실성했고 언니는 죽은 데다 본인도 후유증이 남았으니, 결코 안전한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
"의례 뒤에 사기리⠿ 양을 진찰하셨습니까?"
"사기리⠁ 부인이 없을 때 그 애 어머니가 불렀거든. 하지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소. 증상을 보면 뇌경색과 비슷한데."
"아홉 살 먹은 어린애가 말씀입니까?"
"그렇소. 반신에 마비가 남고 잘 걷지 못하게 된 것도, 증세가 나아진 뒤로도 보행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뇌경색과 흡사하오. 그 애가 약간 멍한 상태라든가 기억이 명료하지 않은 점은 설명할 수 없소만 둘 다 의례의 후유증이라고는 생각하오."

- "저, 죄송하지만 어젯밤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는 건..."
도조가 넌지시 할머니의 일방적인 단정을 나무랐다.
"이런, 그야 선생님께도 따로 생각이 있으실 테고 그게 분명 옳겠지요. 내가 경솔한 발언을 했군요. 실례 많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회중시계의 시각이니 무신당의 밀실이니 그런 어려운 문제는 선생님만큼 잘 알지 못해도,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똑똑히 압니다. 그건 그 미친 계집 짓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
할머니는 반성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되풀이할뿐더러 '선생님'까지 연발했다.
"아, 예... 그야 현재로서는 사기리⠿ 씨가 범인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습니다만."
도조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는 건지 그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관해서는 단념한 모양이다.

- 결코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할머니의 태도가 이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지요의 병문안을 가기 전에 말했듯이 처음에는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인지 모를 글쟁이라는 천박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확 바꾼 것은 도조 가문이 과거 도쿠가와 가의 남계 자손이며 그 때문에 메이지 2년 행정관 포고(포달)로 화족 계급이 탄생했을 때 공작으로 서임되었다는 사실을 안 다음이었다. 전부 도조가 아버지에게 준 소개장에 쓰여 있었는데, 정작 도조 본인은 까맣게 몰랐던 듯 몹시 놀랐다. 도마야에게도 보였으면서 자기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모양이다. 소개한 사람을 어지간히 믿는 건지, 아니면 소개장의 역할만 다해주면 내용 따위 관심이 없는 건지.

- 아버지 말로는 화족은 가문에 의한 것과 국가에 대한 공훈에 의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가문에 의한 화족은 옛 황족이나 궁중 귀족, 제후, 승려와 신관, 충신 등의 집안이 대상이다. 국가에 대한 공훈의 경우는 정치가, 관료, 학자, 기업가 등의 문공과 군인 등 무공으로 나뉜다. 작위는 당시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렇게 다섯 개로 나뉘었다고 하니 도조 가가 얼마나 명문인지 알 수 있다.

 

- 하기야 도조의 아버지 가조는 젊었을 때부터 특권 계급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이윽고 장남인 자신이 호주가 되어 공작의 지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현실에 반발해, 집을 뛰쳐나오다시피 해서 오에다 다쿠마라는 사립탐정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도조 가에서 의절당했다는데, 그게 지금은 명탐정으로 유명한 도조 가조라는 말을 듣고 나도 놀랐다. 刀城牙升라는 본명에서 한자를 바꿔 '冬城牙 '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는 것은, 의절당한 본가를 배려한 결과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들인 겐야는 아버지의 탐정사무소를 이어받기 싫어 방랑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니 하여간 이상한 부자다. 걷는 길은 달라도 부자가 닮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자신이 그런 현상을 믿기 때문이라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 서평을 읽고 웃은 적이 있어. 그런 소리를 하자면 애초에 창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먼저 논해야 하니까. 덤으로 문제의 신인 작가가 실은 베테랑 작가의 새 필명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 그러고 나니까 그 서평이 어찌나 더 우스꽝스럽게 생각되던지."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부정하는 것 같은데요."
"가가치 가는 마귀 가계고 흑, 가미구시 사는 비 非 마귀 가계고 백, 이런 식으로 흑백을 단정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세상에 얼마 없다고 생각해."

- "히다 지방에 우엉 씨앗이라는 생령 전승이 있는데 말이지."
도조가 느닷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의미가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생령 하고 다른 점은 구다 여우나 개신 같은 네 발 마귀처럼 가계가 있다는 거야. 난 가가치 가가 뱀신의 가계이면서 거기에 생령이 포함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 우엉 씨앗이 혹시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거든. 아차, 이야기가 곁길로 샜네. 그래서 이 가게 사람이 예컨대 탐스럽게 여문 이삭을 보고 '올해는 풍년이군요'라고 하면 벼가 말라죽고,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러 찾아가서 '아기가 참 예쁘네요' 하고 칭찬하면 아기가 이내 죽고, 양잠소에서 '잘 자랐네'라고 말하면 누에가 모조리 죽어버린다는 거야." 

 


- "그런 칭찬 뒤에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질투나 시샘이 종종 숨어 있곤 하거든. 그럼 자기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어도 우엉 씨앗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목소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대상을 파멸시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그 가계 사람들은 경사를 축하하거나 병문안을 하러 집에 찾아가도 문전박대를 받는다나." 
"그렇네요. 축하하는 자리뿐 아니라 위문하는 자리에서도 섣불리 '건강해졌네' 같은 말을 했다간 순식간에 병세가 악화되겠는데요."
"하지만 그런 칭찬 뒤에 숨은 질투심은 당연히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거야. 이 가계 사람들만이 아니라고. 그런 걸 일부 사람들만 흑이라고 단정하고 자기들은 백이라고 큰소리치잖아? 자기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하고 무관하다는 양.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백이라는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그야말로 마물이지. 좋은 면만 가졌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엉 씨앗이란 생령은 인간 심리의 모순을 강렬하게 부각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워. 그게 차별로 이어진다는 게 마귀 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만." 

"그게 바로 제가 이 마을에 퍼뜨리고 싶은 생각이에요. 그 점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래, 알아. 마귀 신앙의 선민의식이며 차별은 문제라 해도, 실제로 뭔가에 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증세가 나타난다든지, 생령을 본다든지, 그런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게다가 이 마을에는 신령에 납치되는 사람들이 있고. 대체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느냐는 말이지?"
"백흑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도 알지만, 그런 현상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처음부터 생각해보지도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그건 결국 백 아니면 흑 어느 한쪽을 택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선택할 바엔 역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예컨대 코끼리 한 마리를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없어지게 하는 게 가능하냐고 누가 물으면 렌자부로 군은 어떻게 대답하겠어?"
또 묘한 말을 꺼낸다. 나는 일단 진지하게 생각해 본 다음 대답했다.
"전 무리지만 실력 있는 마술사라면 가능할지 모른다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응. 내 대답도 같아. 그리고 실력 있는 마술사한테 똑같은 질문을 하면 서슴없이 가능하다고 대답할 거야. 다만 무대 설정은 분명 자기가 직접 할걸." 

 

- 하지만 마귀를 떠내려 보내는 히센천과 마을의 재액 일체를 떠내려보내는 오주천. 기능은 똑같은데도 마을 사람들의 두 강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다르다. 화를 떠내려보내는 곳이니 오주천이 청정하다면 히센천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또 아무리 떠내려 보낸다 해도 마귀의 일부가 히센천에 남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주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못 본 척한다. 어쩌면 심지어 못 알아차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밤중에 오주천에 홀로 서 있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앞에 흐르는 게 무서운 강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 그래. 이곳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성역이건 무서운 곳이건 상관 없어진다. 가가구시 촌 자체가 하나의 마소로 변한다. 

마을 사람들도 애초부터 무의식 중에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황혼녘이 되면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누구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밤에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외출하지 않았다. 볼일이 있어 나갈 때는 이웃의 같은 조합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상례였다.  
 
 - 자기 뒤에서 그림자가 슥 뻗은 것을.
일체의 기색을 지운 그림자가 소리도 없이 살며시 다가온 것을.

"으아악!"
이윽고 자기 뒤에 선 XXX를 알아차리고 가쓰토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소심한 그치고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외침이었다. 어쩌면 무서운 나머지 비명도 제대로 못 질렀는지도 모르지만.

- 공포에 굳었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금세 경악, 이어서 공포에 찬 얼굴로 바뀔 줄은, 본인도 그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 "에도 시대에 다다노 마쿠즈가 쓴 <오슈 이야기>에 나오는 건데."
"그림자 병...? 일종의 병이란 말인가요?"
"기타 유지란 사람이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와서 자기 방에 들어오니 책상 앞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어. 이놈은 누군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머리를 묶은 모양부터 입은 옷까지 자기하고 똑같더란 말이지. 물론 자기 뒷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거든. 그래서 얼굴을 보려고 다가갔더니, 남자는 등을 보인 채 책상에서 슥 멀어지더니 장지문의 열린 틈새로 달아났어. 유지는 황급히 뒤를 쫓았지만 장지문을 열었더니 아무도 없지 뭐야. 이상한 일이 다 있다고 어머니한테 이야기했더니 왜 그런지 눈살만 찌푸리고 아무 말도 안 해. 그 뒤 유지는 갑자기 병에 걸려 그 해가 가기 전에 죽고 말았어. 알고 보니 기타 가에서는 삼대에 걸쳐 비슷한 일이 있었어. 어느 날 가장이 자기 자신을 봤다고 말해. 그러고 나면 가장이 갑자기 병이 들어선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 자기 자신을 보면 본인은 얼마 안 돼서 죽는다. 이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도펠겡어 전설에 공통되는 특징인..." 
"사기리⠿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요?"
"그런 말은 아니야. 다만 사기리⠿ 양의 경우 가가치 가의 무녀라는 특수한 입장이 있지. 본인을 앞에 두고 말하긴 뭐 하지만, 가가치 가의 마귀가 뱀신님뿐 아니라 생령도 포함한다는 건 렌자부로 군도 알 텐데. 물론 지요 양도 알고 있고."

- "이 시기는 이전의 자급자족하는 자연경제가 비약적인 상업의 발전으로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시대요. 윗집은 이런 시류에 편승하는 데 성공했지. 가운뎃집을 분가한 게 삼 대 당주 때였다는 사실만 봐도 이 시기에 윗집의 세력이 커졌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급기야는 원래 대지주였던 가미구시 가를 신흥인 윗집이 앞지른 거요. 윗집이 새로이 아랫집을 분가한 시기에 큰집이 새신집을 분가한 것도, 내 보기엔 가미구시 가의 최후의 발악이지 싶소. 뭐, 분가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일률적으로 단정할 순 없겠소."
"이곳에 오기 전에 조금 조사해 봤는데, 마귀에 들렸다고 이야기되는 집안, 말하자면 혈통이 문제 되는 가계는 조상이 그 지방에서 본래 이인자인 신흥세력이었던 경향이 강하더군요. 같은 말을 가가치에 대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음, 그렇게 간단히 단정할 수는 없겠소만, 신흥 지주니 신흥 부자 같은, 이를테면 마을 사람들에 대해 중간 착취의 지위에 있던 자들 중에 그런 가계가 많았던 건 분명하지."

 

- "댁은 이것저것 많이 조사한 것 같으니 알겠지만, 마귀에 씌지 않게 예방하는 방법, 또 씌었을 경우 쫓아내는 방법이 있지 않소? 개 犬 신 가계의 집 앞을 지날 때 앞섶에 바늘을 꽂아두면 씌지 않는다고 하지. 씌었을 때는 주먹밥 세 개로 몸을 문지른 다음 개신 가계의 집을 향해 던진다고 하고, 개신이 가장 싫어하는 게 올빼미니까 문간에 올빼미 발톱을 걸어놓는다든지, 마귀 가계의 집 주변에 똥을 뿌려놓는다든지. 뭐, 이것저것 많소만, 마귀 가계의 사람이 자기 집에서 마귀 자체를 쫓아내는 방법은 없거든.”

"아닌 게 아니라 예전 자료를 봐도, 마귀 가계라는 딱지가 붙고 나면 여간해선 떼어버릴 수 없다는 걸 알겠더군요."


- "도뵤 가계의 경우, 종이에 싼 돈을 사거리에 버린다는 방법이 있잖소? 돈을 주운 사람한테 도뵤도 같이 붙는 거지. 그렇지만 이건 실은 다른 여러 마귀들의 경우에도 공통되는 방법인가보오. 어떤 의미에선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왜 다들 쓰지 않는 걸까요? 마귀 가계 중엔 부유한 집이 많은데..."
"종이에 싼 돈이라고 해서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오만, 여기서 돈이란 전 재산을 의미하는 거요."
"저, 전 재산이라고요? 그건 너무한데요."
"그러니까 이 방법을 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요. 마귀 가계라고 차별을 받아도, 그렇다고 무일푼이 될 순 없는 일 아니오? 다만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재력을 잃고 몰락한 집도 많았으니...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뭐, 터무니없는 방법이라고 웃을 수만도 없지."

 

- "그나저나 방금 말씀하신 방법은 매우 암시적인데요. 역시 급격히 두각을 나타난 자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느껴집니다. 그렇다는 건 신흥 가가치 가에게 마을을 빼앗긴 꼴이 된 가미구시 가에서 ... "
 
- "그걸 음 音, 즉 읽는 소리에 초점을 맞추면 실은 더 재미있는 걸 알 수 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이젠은 아직 망설이는 듯했다.
"가가치라고 읽는 데서 뭘 알 수 있는지요?"
겐야가 다그치듯 묻자, 다이젠은 경직된 표정으로(이번에는 웃는 게 아니었다) 나지막이 말했다.
"알겠소? <와묘루이주쇼 倭名類聚秒>에선 대망, 즉 큰 구렁이를 '야마카카치'라 하오. 이 경우, '야마'는 산맥의 산이지. '카카'는 뱀을 의미하고 '치'라는 건 혼령이오. 즉 '산 뱀의 혼령'이거든. 야마카가시라는 뱀이 있으니 비슷한 표현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렇게 보면 가가치라는 이름은 '뱀의 혼령'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거요."
"그, 그럼 가가치 가는 원래부터 뱀신에 씌어 있었다는..."

저도 모르게 바짝 다가앉은 겐야와는 대조적으로 다이젠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아니, 이건 가가치라는 한 가문의 문제만은 아닐 거요. 실은 <고고슈이 古語拾遺>에 '고어에 큰 뱀을 하하라 한다'는 말이 나오거든. '하하'는 뱀을 나타내는 '카카'가 자음변화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소. 즉 하하 촌은 뱀 마을이고 가가치 가는 뱀의 혼령 집안이라는 뜻이 되오. 도대체가 하하 爬跛의 '爬'는 기어 다닌다는 뜻이고 '跛'는 절룩거린다는 뜻이라는 데서도, '爬跛'라는 문자의 ... "

- 격자창이 전부 꽉 닫힌 탓인지 당집 안은 캄캄했다. 배례소일듯한 북쪽 공간의 제단으로 보이는 곳 주위에만 촛불 두 개가 밝혀져 있었다. 얼마 동안 새로운 어둠과 촛불 불빛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는데 자꾸만 등 뒤가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뭔가가 사람에게 붙을 때는 목덜미로 들어온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런 말이 생각나는 바람에 자연히 두 손이 목으로 올라가 손바닥으로 목덜미 주변을 가렸다. 
'믿는 건 아니야. 목덜미가 좀 선득해서 그래.'
변명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 '아무도 없네.'
당집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겠다고 판단한 나는 대기소에서 나올 수 있는 것에 마냥 기뻐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려는 곳이 지금 있는 곳보다 수십 배는 더 꺼림칙한 공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주저했다. 아무리 불길한 기운이 감돌아도 대기소는 어디까지나 무신당의 부속물이고 본체는 당집 그 자체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냥 갈 순 없지.'
사기리⠿에 대한 체면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당집의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그 이상으로 어둠 속에 숨어 있을 비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리라.

- "내가 알기로 윗집밖에 없어. 헤미야마 씨도 저서에서 그 점을 가장 강조했지."
"생령가계?" 
"아, 미안. 월요일에 묘온사로 가는 길에 이야기한 우엉 씨앗 같은 거 말이야."
"그 무시무시한 생령이..."
"그냥 생령이 아니야. 그거라면 어디까지나 그 사람 개인의 문제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이름 그대로 가계 문제란 말이지."
"요는 뱀신 가계가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뱀신을 물려주듯 생령 가계는 생령의 체질을 이어받는다는 건가요."
"그 가계 사람은 거의 모두가 같은 체질을 갖고."
"하지만 가가치 가하고 흑의 집들 중에 생령가계라는 집안은 윗집밖에 없잖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쌍둥이가..."
"헤미야마 씨 책에 따르면, 예전에는 가가치 가가 모두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윗집에만 집중된 모양이야. 전후에는 생령 이야기가 거의 없었으니 지요 양의 경우는 상당히 흔치 않은 사례가 되겠지. 머지않아 가가치 가의 생령은 윗집 쌍둥이만의 특징이 될지도 몰라." 

 

- "생령 가계 자체는 흔치 않은가요?"
"오키나와에 이치자마라는 생령이 있는데, '살아 있는 사악한 마'라는 뜻으로 '生邪魔'라고 쓰거든. 여기에 씌는 걸 '야마사루' 또는 '쿠라린'이라고 하는데, 전자는 '병들다'고 후자는 '더해지다' '깨물리다'를 뜻한다고 해. 이치자마한테서 파초나 마늘, 염교의 씨앗이나 희석 식초를 받으면 안 돼. 씐다는 거지. 또 이치자마부토키, 이건 '生邪魔佛'이라고 쓰는데, 이 인형을 냄비에 넣고 끓이면서 주문을 외거나 불의 신 앞에서 선향을 부수면서 태우면 자기가 원하는 상대한테 이치자마가 붙는다고 해. 이치자마에 씐 사람이 있으면 입술에 심황을 발라. 그럼 뛰어가서 어느 집 앞에 쓰러지는데, 거기가 그 사람한테 씐 이치자마의 집이야. 또 이치자마에 씐 사람한테 그 이치자마를 흉본다, 이치자마가 붙게 한 집의 처마에 못을 박는다, 그 집 물독에 파초 잎으로 싼 똥을 넣는다 등등 다른 축귀하고 비슷한 방법도 있지."
겐야의 장황한 설명을 잠자코 듣던 렌자부로가 입을 열었다.
"요는 그 이치자마란 것도 어떤 특정 인물만이 아니라 가계라는 건가요?"
"그래. 이 가게 사람하고 혼인하면 '사니', '씨'라는 뜻인데, 이게 나빠진다고 싫어해. 다만 이 가계 사람들 중에는 왜 그런지 미인이 많다고 하지."
"흥, 못생긴 사람이 시기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듣고 보니 윗집 쌍둥이도 대대로 미인이 많네요. 사기리⠁ 어르신도 지금은 저렇지만 제가 어렸을 땐 할머니긴 해도 꽤..."
"아쉽게도 사기리⠁ 부인은 아직 뵙지 못해서 말이야. 하지만 윗집 쌍둥이가 미인이라는 건 알고 있어. 사기리 양이나 사기리 양의 어머니를 봐도 알겠던 걸." 


- 그런데도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생겼을 뿐 크게 다치지 않고 강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
간 씨는 재빨리 좌우를 살펴보았다. 강을 따라 도망칠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류와 하류 모두 얼마 못 가서 강변이 사라지고 또다시 울창한 덤불이 이어졌다. 어느 쪽으로 가건 금세 오도 가도 못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을 때 바로 뒤의 덤불이 부스럭거렸다. 
간 씨는 재빨리 도망쳐 눈앞의 강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제일 깊은 곳에서도 물이 가슴까지 차는 정도라, 강 한복판에 얼굴을 내민 비교적 평평한 바위 위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그를 쫓아온 뭔가는 덤불 속에 머물고 있는 듯, 또다시 기분 나쁜 대화가 들려왔다. 물 흐르는 소리와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 때문에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보아하니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왜 지금이 아닌지, 여기까지 쫓아와놓고 어째서 덤불 속에 있는지, 그리고 밤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간 씨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생각만 해도 소변을 지릴 것 같았다고 한다. 

- 결국 간 씨는 날이 완전히 저물면 자기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고 끝났다. 직후에 마을 사람 둘이 우연히 위쪽 길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하자 한 사람이 밑으로 내려와 강변으로 돌아온 간 씨를 길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동안 덤불 속 어둠에서 자기를 꼼짝 않고 응시하는 시선이 줄곧 느껴졌다고 한다. 그 뒤로도 한동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슷한 느낌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간 씨도 절대 혼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윽고 섬뜩한 기척도 사라진 모양이다. 

- 간 씨는 비슷한 체험을 그 밖에도 여러 번 했다는데, 내가 성장하면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내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익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간 씨의 체험담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마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있었죠' 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어린애를 겁주려는 의도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그의 이야기는 죄다 영문을 알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었는데도 어딘가 묘하게 현실적인 냄새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렇군... 비슷한가. 간 씨의 괴담하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 괴사사건. 내용은 전혀 딴판인데 그에 들러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 주변 상황과 별안간 생각난 여러 괴담, 그리고 현실 속 의문의 죽음 세 건에 관해 생각하다가, 나는 내가 어린애같이 겁에 질린 것을 깨달았다. 지난주만 해도 지요에게 묘온사에서 6시에 만나자는 전갈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길을 다녔는데, 지금은 견딜 수 없게 무서웠다. 나는 이때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맛보는 공포를 실감했던 것 같다. 왜 다들 저물녘이 되면 일찌감치 집 안에 틀어박히는지, 해가 지고 나서 외출할 때는 여럿이 같이 움직이는지 그 이유를 뼈저리게 이해했다. 

 

- 그래도 애써 허세를 부린 것은 무섭다고 생각하고 나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큰신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진심으로 걱정했다. 

나는 사당에서 눈을 떼고 가운뎃길로 이어지는 길로 발을 들여놓으려 했다. 소름이 돋은 팔을 옷에 문지르며 지장갈림길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발을 뗀 그때였다. 위팔의 소름 따위 순식간에 잊어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한기가 느껴지며 온몸의 털이 주뼛 곤두섰다. 그러더니 오한에 호응하듯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돌아본 곳에는 나없다길이 있었다. 비명은 그 길 저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똑같은 말이 맴돌았다.

'오한을 느낀 게 먼저고 비명은 그 뒤였어. 오한을 느낀 게 먼저고 비명은 그 뒤였어.  오한을 느낀 게 먼저고 비명은 그 뒤였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거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정신이 들게 한 것은, 곧이어 마음속에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이었다.

'방금 그 비명, 사기리⠿ 목소리 아닌가?'

젊은 여자, 그것도 소녀의 목소리였던 것은 확실하다.    
 
- "젓가락을 주웠소. 또 야마타노오로치에게서 구출한 인물은 구시나다 히메였고 말이지. 오모노누시노카미의 아내 야마토토도 히모모소히메는 젓가락에 음부를 찔려 죽었고." 

"꽤나 들어맞는 게 많은데요."
겐야의 관심은 단숨에 신화의 해석으로 옮아가려 했으나 다이젠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고대에는 다양한 나무와 풀로 뱀을 비유했소만, 그런 식물을 재료로 만든 예컨대 부채, 빗자루, 우산 같은 것도 뱀과 동일시됐다는 견해가 존재하거든. 다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나도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오. 그렇지만 방금 전 신화에 나오는 빗과 젓가락은 일종의 상징물이라 봐도 될 테지."
"신이 깃드는 주물입니까. 게다가 소위 말하는 신체 神體가 아니라 신이 강림한 뒤의 허물 같은 것이라 받아들여도 될 것 같군요."
"흠, 과연. 부채나 빗자루, 우산 같은 것도 경우에 따라선 그런 용도로 쓰였을지 모르지. 다만 가가치 윗집의 구구의례에서 쌍둥이가 아흐레 동안 무신당에 마련된 산실에 틀어박히는데, 그 바깥에 빗자루를 세워놓는다고 하오." 
"산실에 말씀입니까? 그건 빗자루가 예로부터 출산에 꼭 필요한 물건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요? 빗자루신이 오셔야만 아기가 태어난다고 여겨졌죠. 평소 빗자루를 함부로 다루면 좀처럼 출산을 지켜보러 찾아와 주지 않아서 난산이 된다고 한 겁니다."
"호, 제법 잘 아시는군."

"아뇨, 뭐. 그보다 구구의례에서 쌍둥이가 산실에 틀어박힌다는 행위는 대체 뭡니까?"
"아마 탈피겠지."
"타, 탈피라고요? 뱀이 허물을 벗는 그..."
"산실을 뱀의 껍질에 견주는 거요. 말하자면 윗집의 쌍둥이는 구구의례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오. 그때까지는 평범한 계집애였다가 구구의례로 무녀며 혼령받이라는, 보통 아이와는 다른 존재가 되는 거요. 게다가 의례 중에 목숨을 잃으면 산신님이 됐다고 여겨지고, 어느 쪽이건 산실에서 나올 때 쌍둥이는 탈피하는 거요. 빗자루를 세워놓는 건 그게 유사 類似 산실이라는 증거 아니겠소? 뭐, 빗자루 자체에도 뱀이란 의미가 있으니 이중의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소만.”


- "다만 피해자들의 입안에 뱀의 상징물이 있었다는 건, 억지로 갖다 붙이는 걸지 몰라도 가가치의 '呀'자에 맞춘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분명히 '입을 벌리다' 또는 '입 벌리고 웃는 소리'란 의미가 ... "

- "그렇지 않아. 작년부터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사기리⠿라고 생각했어. 그 애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혼령받이 역할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하지만 윗집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기 시작하면서 사기리⠿가 아니라 언니 쪽 사기리⠟라는 걸 다들 깨달은 거야." 

 

- 지요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또다시 몸서리를 쳤다. 게다가 이번에는 대단히 현실적인 전율이었다.
예컨대 마을 사람 전원이 윗집의 연쇄 괴사사건의 범인이 염매가 된 사기리⠟라고 믿는다면, 전 같으면 나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 지요의 이야기를 듣고 그쪽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사람들의 믿음이 조금만 엇나가도 염매 사기리⠟라는 해석이 사기리::의 생령이라는 또 다른 해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요는 처음에 사기리⠿의 생령을 봤다고 생각했으니 '바뀌는' 게 아니라 '되돌아가는' 셈이지만.

 

- '젠장,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마을 사람들의 해석, 그것도 미신으로 똘똘 뭉친 위험한 믿음이 염매 사기리⠟에서 사기리⠿의 생령으로 발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리⠿ 본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나아갈 염려가 있음을 깨닫고 몸서리를 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미신이 깊어도, 최종적으로 범인이 인간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자칫하면...

'마녀사냥이 시작될지도...'

- "덤불을 이용하면 숨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렌자부로가 히센천의 상황을 애써 떠올리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러더니 금세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사기리가 처음에 돌아봤을 때는 그렇게 해서 넘겼을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는 그 녀석이 사기리 바로 뒤까지 와 있었잖아요."
"그래. 강물에서 건진 주물을 들고 말이지."

 

- "도망치지 않았어. 오히려 그 녀석은 꼼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사기리 뒤에서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러고 안 들킨다는 거죠?"
"아니, 그 녀석은 그 방법으로 숨을 수 있었던 거야."
"어떻게요? 어떻게 사기리 한테 들키지 않았다는 거예요?"
"사기리 양한테는 그 녀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 버스가 커브를 돌아 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내 눈에 비친 것은 동문 앞에 모셔진 허수아비님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게 허수아비님인가.'
사기리의 티 없는 미소가 벌써 아련해지기 시작했을 때.
별안간 마을에서 한 무서운 체험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괴사가 계속되던 그 주 화요일 저물녘, 묘온사로 가던 길에 마주친 뭔가.

- 결국 그때 체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사기리⠟였던 셈이다. 사건에 참견하는 타지 사람을 견제하려 했는지, 경우에 따라서는 죽이려 했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사기리⠟였던 것은 분명하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득 똑같은 체험을 한 지요가 생각나면서 어떤 사실을 깨닫고 아연했다.
지요가 지장갈림길에서 사기리⠟를 봤을 목요일 저물녘, 사기리⠁ 부인이 오랜만에 축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령받이 역할을 하는 사기리⠿에게 알리바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렇다면 산신을 연기해야 하는 사기리⠟에게도 어엿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나...

 

- 그렇다면 지요가 본 것은 대체 누구였나? 아니, 무엇이었나?

- 버스는 어느새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보이지 않게 된 가가구시 촌 쪽을 바라보며 어떤 의혹에 사로잡혀 떨고 있었다.

 

- 어쩌면 지요와 나는 진짜 염매와 마주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 해석은 완전히 뒤집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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