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홍칼리
출판 : 한겨레출판
출간 : 22.11.30
서유기에 나오는 '인삼과' 생각을 종종 한다.
원하는 모양을 내기 위해 과실이 맺힐 무렵부터 틀로 고정시켜 두는 농법으로 생각이 흐른다.
충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비닐로 감싸는 애호박의 경우도 넓게 보자면 이 농법을 응용한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왔느냐.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느냐.
축적된 삶의 궤적들이 일종의 틀처럼 미래의 그 사람을 '고정'시켜 간다는 생각을.
다만 사람의 경우는 스스로 그 틀을 단단히 잠글 수도, 벗어던질 수도 있다.
틀이 있다는 걸 인식할 수만 있다면.
진령군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예전에 읽었던 <신령님이 보고 계셔>의 홍칼리 저자가 눈에 띄었다. 마침 무속 관련 책들을 읽던 참이라 저자의 또 다른 책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무속 전반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그보다는, 저자가 무당이기 이전에 하나의 존재로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인터뷰의 형식으로 공유하는 책이다.
본문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있는 줄도 몰랐던- 편견들이 많이 부서졌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무언가가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자주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살피고 가꾸어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하게 된다. 건강한 나로 설 수 있을 때, 다른 이들이 잠시 기대더라도 함께 설 수 있을 테니까.
동시에 약간의 의문을 품는다.
저자가 말하는 신내림은, 어쩐지 내림굿을 통한 강신보다는 위카의 이니시에이션에 가까워 보인다는.
자유롭게 자신의 믿음대로, 이끌림대로 사는 것은 좋지만.
조금 더 정돈된 길을 따르고 싶은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문득 깨닫는다.
나의 틀이 맞거나.
나의 길은 아닌 것이다.
결론.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해도 삶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은 서로의 도반이다.
- 무당을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신비로운 존재로만 생각할까. 눈을 부릅뜨고 잠을 안 자거나, 섹스를 절대로 안 하거나, 이슬만 먹고사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다. 무당에 대한 편견을 마주할 때마다 멋쩍게 대답하곤 한다.
"노래방 좋아해요. 주로 자우림의 노래를 부르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아요."
"잠도 자요. 가끔 코도 골아요."
"네, 저도 섹스합니다. 손가락으로 자위도 해요."
-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무당도 비슷한 질문을 맞닥뜨릴까? 나는 이불을 털고 화장실에 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할까? 그들도 노래방에 갈까? 그래서 무당으로서 무당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무당도 굿하고 뒤풀이로 노래방에 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내가 인터뷰한 이들이 무당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조현병 등이 있어서 정신장애인으로 불리는 사람, 당당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 사회·문화운동을 하는 사람, 평일에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 안마로 손님을 치유하는 사람, 책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을 문자 중독자라고 소개하는 사람, 스님이었다가 은퇴한 사람, 고졸 청년으로 불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성별·장애 유무·경력·학력·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무당을 인터뷰하고자 했다. 청소년 무당, 이주민 무당과 탈북자 무당도 만나고 싶었지만, 그들을 인터뷰하진 못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도 들리면 좋겠다.
- 무당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들으면서 평소에 느낀 궁금증이 많이 풀렸고, 무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새롭게 배웠다. 한국의 전통적인 무당 혜경궁 선생님에게는 손님의 안녕을 바라며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과 무속의 세계를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무지개 무당 무무에게는 연대의 의미를, 보석처럼 반짝이는 예원당 선생님에게는 무당의 자부심과 희생정신을, DMZ철조망 앞에서 굿판을 벌이길 주저하지 않는 무당 솔무니에게는 용기를, 시각장애가 있는 송윤하 선생님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법을, 현대 무당 가피에게는 지속 가능한 신앙생활을 배웠다.
- 무당의 내림굿 의례 중 '쇠걸립'이 있다. 무당이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놋쇠로 만들어진 물건과 이야기를 받는다. 예비 단골손님을 만나며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의식이다. 그렇게 모은 놋쇠는 무구를 만드는 데 쓰이며, 이웃들의 이야기는 무당이 뿌리내리는 장소가 된다.
- 1년 동안 무당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여섯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쇠걸립과 비슷했다. 무당 한 명의 내림굿을 위한 쇠걸립이 아니라, 차별과 폭력 없이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쇠걸립.
- 3년 전 신내림을 받아야겠다고 느낄 때 무당 김금화 선생님을 뵙고 싶었지만,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영화 <만신>(2014)을 보고 혜경궁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고 김금화 선생님의 조카이자 제자이고 서해안 풍어제를 주관하신다. 서해안 풍어제 배연신굿은 배와 사공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배굿이다.
- 선생님께 상담 예약을 했지만, 예약 직후 인도로 떠나 뵙지 못했다. 이후 다른 신선생님을 만나 무당이 되고 나서도 전화로 굿 교육 일정을 문의한 적이 있다. 무당을 인터뷰하기로 했을 때, 선생님께 드디어 인사드릴 때가 왔구나 생각했다. 궁금한 점과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아서 꼭 뵙고 싶었다.
- 선생님과 전화로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인상 깊은 꿈을 꿨다. 꿈에서 할머니가 예전에 지내던 커다란 기도원에 갔다. 할머니는 기도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할머니를 만나고는 천막으로 만들어진 화장실에 ...
- "점사를 보느라 힘들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어떻게 하세요?"
[남을 위해서 빌어줘야 되니까 내 삶에는 만족을 많이 못 해요. 우환이 들끓는 집을 많이 빌어줘야 하고, 자식을 못 낳던 집이 삼신 받아서 아기를 낳으면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야 하니까 빌어주고, 대학교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보는 집도 빌어주고.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사는 거지, 일종의.
내가 빌어줬는데 일이 잘 풀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뿌듯하고 좋죠. 보람을 느끼고. 무당은 잘 안 되는 집을 더 많이 빌어줘야 하고, 잘될 때까지 계속 빌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아, 내가 왜 무당이 돼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프게 살지? 싶어요. 무당도 힘들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어디 가서 치유를 받지? 모든 짐을 내가 다 짊어져서 사는 게 어렵고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산 기도를 가. 즐겁게 차를 타고 산에 가서 기도하면, 접신도 접신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 그대로 힐링이 되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푸르른 풍경을 보고, 또 눈이 오면 하얀 설화를 보면서 응어리도 풀고 머리도 식히고. 그러고 돌아와서 다시 자리 잡고 손님을 보는 게 무당이거든요.]
- [하늘이요, 남색은 땅이요, 노란 거는 사람이란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굿 속에 살았죠.]
- 무당이 되었다고 바로 신관(神)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수년간의 경험과 공부가 필요하다. 선생님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구전으로 듣고 현장에서 배운 한국 무속신앙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 [워낙 사는 게 바쁘고 신어머니가 이름이 높으니까 할 일이 많아서 공부를 끝까지 못 하는 바람에 학위는 못 받았어요. 학과장님이 논문도 쓰고 학위를 받아라 받아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조금 아쉬워요. 옛날에는 축원문도 다 구전으로 내려오니까 우리 신어머니의 동기들도 그렇고 연세 잡순 분들은 글씨를 몰라요. 보통 축원문을 장부에다 써서 신당에 올려놓죠? 그런 분은 귀에다 대고 얘기해 줘야 돼. 머리가 참 좋은 거야. 귀띔으로 몇 마디만 해주면 다 축원했으니까. 그분들 지금도 살아 계셨으면 백 살쯤 됐을 거야.]
- "무당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억울한 존재를 달래주고 공동체의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장식 축산으로 희생된 동물의 한을 풀어주는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요즘 어떤 존재의 아픔에 공명하시나요?"
[옛날에는 살아 있는 돼지를 잡아서 굿을 했죠. 학교 다녀오면 재갈 물리고 묶어놓은 돼지가 꿀꿀거리고 있었어요. 가마니에 물 받아서 돼지를 넣고 이런 걸 너무 많이 봤어요. 대수대명을 보내라고 흔히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안 하잖아요. 죄스럽기도 하고. 오래전에는 개도 잡아서 굿을 했어요. 이북에서는 개 사신굿이라고 해서 기르던 개도 잡고, 돼지를 3년 기르고 제물로 바쳤죠.
지금은 세월이 좋아져서 살아 있는 짐승 직접 잡지 않고 공장에서 가공된 게 나오잖아요. 우리도 그걸 써요. 소도 사람하고 똑같이 열 달 지나서 새끼를 낳거든요. 소도 죽기 전에 눈물을 뚝뚝뚝뚝 떨어뜨려요. 그걸 보니까 너무 안타깝더라고. 소를 자주 잡아서 굿하는 거는 아닌 것 같아. 이건 내 소견이에요. 흔히 무당이 소 잡아서 굿하면 뭐 엄청 대단한 줄 아는데, 소를 잘못 잡으면 다 뒤집어져요. 소가 꿈에 나오면 우리 조상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신어머니한테 짐승 많이 잡고 굿하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누구네 소 그만 잡으세요, 그러니까 야, 나도 그만하려고 그런다야, 죄짓는 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하시더라고.]
- "선생님은 비거니즘이 뭔지 모르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혼이 있고, 그들을 꼭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얼마 전에 반려견 위령제 굿을 했어요. 마로니에 가서. 말 진오귀(지노귀)도 해주고. 말 진오귀 할 때는 염(念)을 하고 말이 좋아하는 당근을 차려놓고, 신령은 신령대로 음식을 차려놓고 굿을 했어요. 동물들도 위령제, 진오귀를 그렇게 해줘요. 개도 그렇고 우리가 두어 번했어요. 사람이 죽으면 짐승으로 변하기도 하고 나비로 변하기도 하니까 유기견을 기르고 길고양이 밥도 주고 그런 거죠. 그런 애들도 영혼이 있어서 죽으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 반려동물을 천도(薦度) 해주려는 손님이 종종 찾아온다. 그럴 때 신당에 있는 코시차임을 사용한다. 손님이 눈을 감은 채 반려동물을 떠올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동안, 나는 그 존재에게 공명하며 맑은 종소리를 낸다. 손님이 슬픔을 충분히 털어내고 반려동물을 보내줄 준비가 되면, 창문을 열어 종소리가 밖으로 퍼지도록 안내한다. 손님은 그 소리와 함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눈을 뜬다. 보호자가 죽음을 애도해 주는 동물도 있지만, 도축된 후 애도 없이 사라지는 동물이 대부분이다.
- [예전에 나라굿을 많이 했어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잖아요? 거기서 영혼을 달래는 굿을 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신어머니하고 일곱 명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천으로 가르고 보내드렸어요. 성수대교도. 몇십 년 된 옛날 얘기지. 대구 지하철에 불났을 때도 굿을 했었고, 천안함 사건 때도 연안 부두에서 사진 다 걸어놓고 굿을 했고요. 과거에 비행기가 폭파됐을 때도 나라굿을 했어요. 큰 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분, 연고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김대중 대통령 돌아가셔서 추모제도 했고요.]
- [천안함 굿을 할 때는 허리에다가 소창 몇 필을 묶어서 나도 모르게 사방팔방 물로 뛰어 들어갔어요. 세월호 굿 할 때도 분수나 물 있는 데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잡았어요. 그냥 물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밖에 없더라고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에요. 무당은 돌아가신 분하고 산 사람의 매개자, 중간 역할을 해요. 돌아가신 분의 말을 전하면 산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살풀이, 흥풀이, 심풀이 겸 가슴에 맺힌 한을 다 풀어요. 세월호 참사 때 나라에서 뭐 해줬어? 응? 교회에서 기도하고, 스님이 와서 염불했지? 무당들이 가서 영혼을 달래야, 영혼을 실어야 자기 엄마 오면 엄마를 찾아보기도 할 텐데, 나라에서 굿을 잘 허용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굿하는 사람들은 인천시나 문화재청 같은 데서 예산을 받아가지고 안타까운 영령들을 달래기도 해요.]
- [옛날에는 무당을 신녀라고 했잖아요? 무당이 궁에 책사로 있으면서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냈고 농사가 잘 안 되면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했어요. 또 나라가 편안치 않으면 국태민안하라고 늘 기도했고. 마고(麻姑) 시대에서 시작해서 환인, 환웅천왕, 단군의 자손이잖아요, 우리가. 우리가 다 신의 말을 전하는 제자란 말이에요. 무당은 나라의 일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큰 제사장이에요. 죽은 사람의 명복을 기원하고, 명이 짧은 사람에게 명을 나누어 늘려주고, 아픈 사람들은 덜 아프게 해 주고, 이렇게 생명을 위해 비는 거예요. 이런 게 무당인데 무당을 사기꾼으로만 보는 건 아니라고 봐요.]
- ""굿은 종합예술이니 편견 없이 봐달라"라고 하신 김금화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굿을 하시는 모습도 좋았고요. 선생님에게 굿이란 무엇인가요?"
- 나는 인도에서 일본의 부토춤을 추다가 접신하고 신내림을 받았다. 한국에서 내림굿을 했으니 전통적인 무당이기도 하지만, 이름이 '칼리(힌두교의 신 이름)'인 만큼 내 정체성에는 여러 종교가 섞여 있다. 애초에 샤머니즘은 모든 종교의 뿌리라서 짬뽕인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신내림을 받은 후에도 다양한 종교와 각 나라의 샤먼 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하늘과 땅, 만물을 섬기는 태도는 같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양상은 조금씩 달라서 재밌었다. 샤머니즘은 각 문화에 뿌리를 내려 기후에 따라 다르게 자라는 야생초 같다. 외국인의 굿 의례를 치러온 선생님은 다른 나라의 샤먼 의식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했다.
- "선생님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신내림 의식과 굿 교육을 진행하시죠? 외국의 샤먼 문화를 접한 경험을 들려주세요."
[독일인 안드레아 칼프 아시죠? 안드레아가 우리 신어머니 신딸인데, 독일에 있는 사람들은 내림굿을 하면 신당에 신을 모셔놓고 점을 봐주고 상담하는 게 아니라 네오샤먼이라고 해서 기치료, 마음의 치료를 많이 해요. 그러니까 전 세계에 샤먼이 다 있기는 한데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또 외국에서는 쑥 냄새가 나는 향을 사방에 피우는 방법도 쓰더라고요.]
- <배우고 베푸는 무당 혜경궁 김혜경>
- 무지개색 꽃과 칠성초가 놓인 신당에서 무무를 만났다. 그가 신내림을 받을 때 나는 그에게 '칠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를 제안했다. 위기의 순간에 나침반이 되어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무무가, 칠성신을 주 신령으로 모실 수 있을 거라고 느껴서였다. 그는 '무지개 무당'의 앞 글자를 따서 '무무'가 되었지만, 그 이름의 의미에는 무지개색 칠성초가 포함되어 있다. 무무는 칠성신을 비롯해 여러 신을 모신다.
그는 한솥밥을 먹는 내 식구이기도 하다. 무무는 내 친언니인 홍승은 작가와 비독점적인 애인 사이였고, 무무와 우주 그리고 언니는 지금은 연애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관계 맺는다. 나는 규범과 고정관념을 계속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세 사람의 반려인으로 일상을 가꾼다.
- "아침에 눈떴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과 자기 전에 꼭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이불을 정리하고 창가로 가요. 제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까, 해는 어떻게 떴는지 바람은 어떤지 비는 오는지 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기 전에는 기도하듯이 명상하고, 일기로 좀 써놔야겠다 싶은 게 있으면 일기를 쓰는 날도 있고요. 대부분 혼자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다가 잡니다.]
-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해질녘의 하늘을 볼 수 있어서 해 지는 시간대를 좋아해요. 밤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의 컨디션이 다르더라고요. 해가 졌을 때 혼자 가만히 시간을 보낼 때가 가장 좋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어차피 먼지." 활동명으로 '먼지'라는 이름도 쓰시잖아요. 먼지와 무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요?"
[먼지는 주문 같은 이름이에요. 살아가면서 크게 두 가지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는데, 하나는 제가 너무 커 보일 때예요. 밖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중하는 순간, 불안과 우울이 찾아와요. 그럴 때 스스로에게 넌 그래봤자 먼지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이 이름을 사용해요.
다른 하나는 제가 너무 작아 보일 때예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도 이름 덕분에 모두가 어차피 다 먼지야,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자기 의심이 많아지는 순간에 주문처럼 외우는 이름이에요.
반면에 무무라는 이름은 딱 들으면 허리를 곧추세우게 되는 정제된 기운이 들어와서 신기해요. 이 이름을 통해 제가 무엇을 하려고 했고, 어떻게 살려고 했는지 떠올리면서 자세를 바꿔요. 무무와 먼지 모두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름입니다.]
- '어차피 먼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죽음을 가까이 둔 표현이라 편안하다. 무무의 '무'도 '無'를 떠올리게 해서 텅 빈 느낌이다. 누구든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처럼 비어 있기로 결심한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려고 자신을 비우는 무당의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이 무당을 슬픈 직업으로 인식할까. 자아가 사라지는 건 슬플지 모르겠지만, 텅 비어 있어서 오히려 무지갯빛을 품을 수 있다.
- [아마 많은 성소수자가 공감할 텐데, 커밍아웃은 평생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어떤 집단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내 정체성을 알려야 하니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무밍아웃을 처음 해보니까 반응이 어떨지, 어떤 반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의 데이터가 전혀 없었어요.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무수한 데이터가 쌓였으니까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웃어넘기는 데 능숙해졌는데, 이쪽은 그렇지 않아서 두려웠어요.]
- "무당이 되기로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었나요?"
[무당이 되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무당의 삶을 부정하고 밀어낸 기간이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자기 불신'과 '편견'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당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정신 병리와 관련된 역사에서도 그랬고, 많은 무당이 소외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꾸준히 해왔는데 내가 과연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 역할에 걸맞은 존재일까?라는 자기 불신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다음은 편견 때문이었어요. 저한테 무당은 부정적인 인식이 씌워진 존재이기도 해서, 내가 무당이 된다면 오물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느낌일 것 같아서 ... ]
-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기독교 대학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랬다. 내가 지금 아프고 힘들고 동굴 속에 갇힌 기분이 드는 이유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다가 몸과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야.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갑작스레 공황을 느껴 이 세계 바깥으로 튕겨 나가거나 귓가에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분명 기존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상을 보고 듣고 겪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현상을 무시하거나 신기한 경험으로 남겨놓는다. 혹은 병원에서 진단명을 찾거나 신의 힘을 빌린다. 그런데 이때 어떤 해결책을 찾거나 찾지 못했는지, 어떤 언어를 만났는지에 따라 이상한 꼬리표가 붙는다. 진단명을 못 찾은 만성질환자는 쉬이 '꾀병을 부리는 사람'이 되고, 끝내 무속의 언어를 찾아 삶을 회복하고 타자를 위로하게 된 사람은 '사기꾼'이 된다.
나는 일상을 되살리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있다. 이제는 인정한다. 내게는 신병이 있었고, 신병을 통해 삶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신병은 지금의 나를 설명해 주는 키워드라고, 신병을 풀어내야 삶을 계속 꾸려나갈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무지개 무당, 무무가 됐다.]
- "무무 님의 신병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듣고 싶어요. 환청도 들으시고 가위도 눌리셨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환각과 환청은 습관처럼 찾아오기는 해요. 이 집에 처음 신당을 만들고 옆방에 제방을 막 꾸렸을 때만 해도 부정적인 꿈을 꾸고 가위에 눌려서 무섭고 두려웠고 자는 동안 울어서 아침에 일어나 보면 베개가 젖어 있었는데, 요즘은 괜찮아졌어요.]
- "신내림을 받아야 될 사람이 신내림을 받으면 힘든 문제가 다 풀린다고 보는 인식이 많은데, 무무 님은 실제로 어떠신지 궁금해요."
[저는 그런 생각에 의문이 들어요. 오랫동안 신병을 앓은 사람이 신내림을 통해 한도 풀고 새로운 길도 찾는다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의식 하나가 갑자기 삶을 확 바꾸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신내림을 수용의 과정으로 보거든요. 나에게 찾아온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하는 일이요. 예전에는 어떻게든 제가 겪는 현상에 정신병의 이름도 붙여보고 내면의 문제라고 생각해보려고도 했는데, 잘되지 않아서 신내림을 받았어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이분법을 벗어난 더 깊고 넓은 영적인 차원과,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고 여기는 만물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 차원, 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두 연결되어서 더욱 다양한 존재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차원이 새롭게 열렸어요. 그래서 저에게 새로운 언어와 힘이 생긴 것 같아요, 모든 문제가 딱 풀렸다기보다는.]
- 내 앞에 찾아온 자극이 무엇인지 모를 때 두렵고 불안하다. 신명(하늘과 땅의 신령)을 받아들이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의 울음소리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귀 기울이는 행위다. 모든 자극이 하찮은 것 하나 없이 소중한 장면이라는 걸 각성하는 상태다. 신내림은 무무의 설명처럼 인간의 정상 규범을 넘어 비인간 동물·식물·광물·사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 정령과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와 교감할 수 있거나 그 존재가 되는 과정을 뜻한다. '나'의 정체성을 우주 전체로,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품은 만물로 확장하는 수행을 시작하겠다는 의식·의례다.
- [저도 공감이 돼요. 제가 겪는 증상이 신병인지 모르고 헤매다가 정신과에서 조울증·조현병·공황장애 같은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 고통을 해석해 주는 언어가 있어서 위로를 받았어요. 하지만 이 언어도 어쨌든 제 증상을 문제라고 보잖아요. 문제로 규정된 증상을 지금은 누군가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것, 제가 이웃의 삶에 더 많이 공명하면서 자연스레 나타난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래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에도 괴로움을 다른 태도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 <함께 울어주는 무당 무무>
- [팔자는 어쩔 수가 없나 봐요. 나이를 먹고 연예계 생활을 할 때 점집에 가면 무당 선생님들이 그랬어요, 신 받으라고. 싫다고 하지는 않고 지금은 안 받을래요, 나중에 받을래요, 이러고 다녔어요. 그때는 때가 아니었겠죠.]
- "무당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디자이너 아니면 예술가가 됐을 것 같아요.]
- "신내림을 받은 계기를 이야기해 주세요."
[신을 안 받으려고 미국도 가고 일본도 가고 그랬는데, 일본에서 카지노를 알게 되는 바람에 거기서 1년 동안 전 재산을 탕진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들어왔어요. 아는 언니가 일하는, 대전에 있는 가게에 놀러 갔다가 가게 주인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 일을 하게 됐죠. 돈 벌기도 어렵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점을 보러 갔는데, 조상굿 좀 하자 그래서 어, 그래요, 조상굿해요, 한 게 8월 17일이에요. 16년 전. 당시 밤에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했으니까 술이 떡이 돼가지고 갔어요. 굿하기 전에 부정을 치잖아요. 부정을 치고 나서 신엄마가 신을 받아야겠다고, 안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 말문이 탁 터졌어요. 그래요, 해요, 그랬죠. 그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 굿하기 전에는 영혼이 드나드는 길을 청소하려고 부정을 친다. 기독교에서 성수를 사용하듯 무교에서는 마고할미의 천수(맑은 물)를 쓰거나, 흰 천을 몸에 두르고 푼다. 이때 흰 천은 영혼이 다니는 길을 의미한다.
-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무당이 된 후에 부모님과 멀어지겠구나 싶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저의 삶을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세요. 선생님은 무당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갈등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다 찬성했어요. 저는 열일곱 살 때부터 트랜스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제 정체성도 알고 있었어요. 신령님을 모신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식구들이 다 놀랐죠. 그런데 신을 받고 나니까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잘됐다, 였어요. 내가 술집 나가서 술 따르는 트랜스젠더로 사는 게 싫고 너무 마음 아팠는데, 그래도 무당 일은 잘만 하면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면서 살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 내가 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부모님도 같은 마음으로 안도했을까. 무당이 되기 전에는 간간이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겨우 유지하거나, 집회에서 하는 퍼포먼스로는 수입을 얻지 못해 성노동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에세이 <붉은 선>(글항아리, 2017)에 썼고 부모님이 책을 읽었으니, 얘가 성노동 하면서 집 없이 지내느니 무당이 되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여전히 무당 말고 샤먼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 "성소수자 손님들도 고민을 안고 찾아오시죠?"
[많이 와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전환수술도 하고 싶고 미치겠다, 이런 고민도 갖고 오시고요. 일반 점집을 가면 속 시원하게 얘기를 못 하는 입장이다, 이러시더라고요. 게이한테 이쁜 여자가 있는데 왜 결혼을 안 하니, 이런 헛소리를 빽빽 하니까. 우리 성소수자들은 그런 소리가 너무 듣기 싫잖아요. 좋은 연으로 좋은 사랑을 하며 살아라, 하면 되는데 결혼 얘기를 먼저 하니까 너무 싫고 답답해서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는 손님을 만난다. 이성애 결혼에는 관심도 없는데 지금은 그래도 나중엔 결혼할 거다, 이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운명을 이야기하는 곳에서조차 소외되는 사람들. 어떤 손님은 점사를 해석할 때 성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무당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선생님을 찾은 많은 성소수자 손님도 큰 위로를 받았을 거다.
- 하지만 종교는 사회와 동떨어진 별개의 법칙이 아니고, 무당은 사회와 무관하게 신의 자리를 꿰찬 존재가 아니다. 무당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신'의 이름으로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 예원당 선생님은 유튜브 영상에서 퀴어가 신줄이 강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자 선생님은 성소수자도 장애인처럼 신의 벌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를 지운 탓에 태아령이 많아서 주어지는 칠성의 벌전이자 삼신의 벌전이라고.
- 임신중지 수술 후 다른 무당에게 태아령이 붙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태아령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무당이 되고 보니, 태아령은 따로 없고 임신중지로 여성 개인이 느끼는 오래된 죄책감이 존재할 뿐이었다. 많은 여성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종교를 찾는다. 교회에서 울면서 회개하고, 스님이 주관하는 태아령 천도제에서 죽비로 자기 등을 친다.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했을 뿐인데, 자기 몸을 통제한 여성이 스스로 등을 때리는 광경은 이상하다. 임신중지는 태아와 여성이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 문제다. 하지만 한국의 무속신앙도 다른 종교처럼 여전히 이 문제를 태아 대 여성의 구도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다.
- "저는 2018년에 대구퀴어문화축제에 갔어요.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보수 기독교인 앞에서 사람들과 춤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거든요."
[퀴어축제에서 굿하러 와달라고 하면 해주고 싶어요.]
- "무당은 어떤 사람일까요?"
[무당은 희생하는 사람. 대가를 바라면 안 되는 사람. 목숨을 내놓고 사는 사람. 그래야만 살 수가 있어요. 어차피 우리 무속인은 죽은 몸이에요. 너무 슬프죠. 그래서 마지막까지, 죽어서 땅속에 들어갈 때까지 뭘 기대하면 안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 방울부채를 쥐고 불사복 입고 죽어야 돼요. 그때까지 그냥 희생하면서 살아요. 얻을 것도 없고, 자식도 함부로 낼 수도 없고. 나는 가족들 기도, 신도들 기도, 신령님 기도 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내 기도 하는데, 건강 주세요, 지혜 주세요, 해요. 왜? 제자는 지혜로워야 하니까. 명기서기는 신령님께서 다 받아오셔. 우리 제자들은 희생뿐이야.]
- 연대할 방법을 궁리한다. 냉소로 차가워진 마음이 다시 따뜻해진다. 모두를 위해 기도하라는 신령님의 뜻을 느낀다. 신령님은 모든 인연줄을 억지로 잡으려는 내 집착을 끊어놓은 대신, 우애와 연대의 인연줄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 [나하고 맞는 직업, 나하고 맞는 사람, 나하고 맞는 음식, 나하고 맞는 색깔을 찾아서 사는 것이지. 인간이 무엇을 알겠어요. 다 자기가 잘난 줄 알아. 못난 사람이 어딨어. 안 그래요? 다들 깨닫지를 못해요. 그래서 내려놓고 살아라, 비우고 살아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도 무당으로 살면서 깨달았어요. 그전에는 몰랐어, 나도. 나 혼자 잘난 줄 알았죠.]
-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내려놓고 비우며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을 뿐이다.
선생님은 11월 3일에 개봉한 퀴어영화 <공작새>(2022)에 무당 역할로 출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나에게 주로 어디에 기도하러 가냐고 물었다. 무당끼리 이렇게 묻는 건, 직장 동료 ...
- <트랜스젠더 무당 예원당>
- 불사는 죽음도 뛰어넘는 영험함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공덕을 쌓는 수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 명기서기. 명기와 서기. 명기는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과 직관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며, 무당이 신령님의 공수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서기는 무당이 점사를 볼 때 몸으로 인지하는 감각을 표현하거나 몸으로 한풀이 흥풀이 굿을 펼치는 능력이다.
- 몸주. 무당이 모시는 주 신령이다. 점을 볼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무당과 함께 하는 신령(들)을 뜻한다. 하늘신령, 자연신령처럼 아주 큰 신은 몸주신이 될 수 없고, 인물신령만 몸주신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무당도 있다. 일상에서 사람이 늘 하늘 같고 바다 같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무당은 몸주신을 포함한 모든 신령이 언제나 함께한다고 느끼고, 어떤 무당은 몸주신이 주로 함께하고 특정 시기에 다른 신령들도 찾아온다고 느낀다.
- 애동.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무당. 애동제자라고도 불린다.
- 퀴어 영혼 대동굿. 퀴어문화축제를 샤머니즘의 언어로 번역한 말. 영혼은 성별이분법을 횡단하는 퀴어다. 대동굿은 소외되는 존재 없이 모두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굿이다. 퀴어 영혼대동굿은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에 갇힌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해방의 굿판이다.
- "신선생님이 내림굿을 하고 나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DMZ로 기도하러 가자고 하셨어요. 어쩌다 보니 태극기 부대,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에서 온 분들과 동행하게 됐어요. 버스에서 여러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광주민주항쟁, 제주4.3항쟁은 빨갱이들 것이라고 좋더라고요. 선생님도 그분들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죠. 선생님은 영적으로 밝은 본인데 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사리가 밝지 못할까, 맑은 것과 같은 것은 다르구나 느꼈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전쟁의 상처를 사회적으로 치유할 수 없어 풀지 못한 억울함이 있겠지만요."
- "누구의 고통을 볼지, 누구를 애도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린 것 같아요. 모든 건 정치적이니까 무당이 모시는 신령의 기운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죠, 무속신앙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왜 많은 무당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힘 있는 장군님을 모시는 일에 더 집중할까요? 장군 신령님도 사실 산천을 지키는 마음으로 우리와 연대하는 분인데. 이 영적 에너지가 인간 사회의 민족우월주의나 가부장제와 결합하면서 왜곡된 형태로 발견된 것 같아요"
- [서울·경기권에 그런 강신무가 생긴 이유는, 6·25전쟁 때 희생된 망자를 달래야 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모든 종교가 원래 삶과 죽음의 통과의례를 주관하잖아요. 전후의 혼란기에는 우리나라의 정신문명이 다 무너져서 망자의 한을 풀어줄 시스템이나 장치가 없었어요.]
- [... 혼을 만나 그들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서 사회의 모순이 뒤엉킨 에너지를 푼다면, 칼리 님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직접 터치해 주잖아요. 그게 정화고요. 저도 점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치유를 도우려는 지향점이 있어요. 그래서 타로 카드나 심리학도 공부해보고 싶어요. 열망은 있으나 아직은 깜깜이라 못 하고 있지만요.]
- 솔무니 뿐 아니라 점사를 보지 않는 무당도 많다.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그처럼 자신이 점사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절한 도구를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내 신당의 책상에는 산통 가지가 있다. 산통은 시각장애인 무당이 사용하는 점술 도구였고, 사회 전체의 길흉을 점칠 때도 사용한다. 솔무니에게 산통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 "나중에 이 산통을 쓰셔도 좋겠어요. 주역 괘(卦)로 점사를 보는 도구인데, 주역이 무척 잘 맞으실 것 같아요."
[저 요즘 주역 공부하고 있는데.]
- "그럼 산통으로 하시면 되겠네요!"
[주역을 공부하면서 비슷한 도구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아, 요즘 세상에 다 있구나.]
- "네, 직접 무구를 만드셔도 좋지만, 쿠팡에서 팝니다. 방울도 쿠팡에 있어요. (웃음)"
[그러니까요. 좋은 세상이에요.]
- "주역은 옛날부터 혁명가가 사용했던 점술이잖아요. 만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점을 볼 때 정확하다고 하더라고요."
[지혜가 밝아지면 점사를 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새로 만든 박수무당 명함을 주니까 사람들이 자꾸 상담이 가능한지 물어봐서 몇 번 상담을 해줬어요. 되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손님이 미래를 궁금해하면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저는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거든요. 미래? 모르지. 내 삶도 한 치 앞을 모르는데. 미래는 모르겠고 뭐가 답답한지만 얘기해 보라고 했죠. 그럼 내가 풀어줄 테니까.]
- "답답한 거 풀어주는 게 무당의 역할이죠."
[대부분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인간관계가 꼬여서 답답해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다 떨면서 이 얘기저 얘기 하다 보면 풀리죠.]
- 메모지에 '주역 산통'을 적어 솔무니에게 건넸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 주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사 풀이다. 가만히 있어도 타인이 속내를 털어놓는 건 무당을 비롯한 영매의 공통된 특징이다.
<대동굿판을 여는 무당 솔무니>
- [손으로 스무 번 이상 성경을 완독 했어요. 그걸 읽으면서 왜 자기가 잘못해 놓고 짐승을 대신 바치지? 왜 자기 때문에 고통받은 당사자한테 사과하지 않고 저위에다가 용서를 구해야 하지? 사랑한다면서 어른이라면서 왜 사람을 죽이지? 같은 의문이 끊임없이 생겼어요. 지금은 휴먼 디자인, 유전자 키, 주역, 차크라, 카발라, 점성학 등 온갖 걸 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쌓아놔서 필요하면 입 밖으로 나와요.]
- 반가웠다. 나 역시 마야 달력과 만세력, 주역, 차크라, 카발라, 수비학을 명상한다. 모두 영감을 주는 영혼의 지도다.
- "여러 방편으로 상담한다고 하셨는데, 점사를 어떻게 보시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앞으로 만날 사람을 미리 생각하면, 그 사람에 대한 기도가 떠올라요. 인터뷰 전에 홍칼리 님을 계속 생각했고 유튜브 영상도 두세 개 찾아서 들어봤어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태을주라는 진언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이분은 태을주와 연관이 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경우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르고 어떤 경우에는 불경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다양한 것들이 그때그때 떠오르니까 되게 신기해요. 사람을 만날 때 특정한 냄새를 맡기도 해요. 술 냄새, 전 냄새가 나면 ... ]
- "김해로 이사를 가신다고요?"
[네, 김해의 가야불교문화원 건물 1층에 두드림 안마센터와 거처를 마련했어요. 명산대천을 다 찾아다닐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내림굿을 받길 거부했었는데, 이번에 부처님과 보살님의 그림이 그려진 건물로 들어가요. 그분들의 몸속에 살게 되었으니 핑곗거리가 사라졌지요. 불보살님의 가피 속에서 무당의 삶이 펼쳐지려나 봐요. 그 삶에 기꺼이 뛰어들어야죠.]
- [요즘에는, 제 친구가 고안한 기법인데, 잠들기 전에 나는 지금 죽는다, 난 죽음을 환영하고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가난·비참함·슬픔·외로움·고통을 내가 모두 데리고 죽겠다,라고 엉터리 같은 기도를 하고 자요. 아침에 깨서는 나는 지금 다시 태어났어, 전생을 기억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해, 나 정말 잘했네? 하면서 일어나요.]
- "죽음처럼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게 새롭겠어요."
[분명 어젯밤에 내가 잠든 공간이지만, 아침에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어요. 보통 기도하고 책 읽고 사람 만나고 다시 책 읽고. 제 일과는 거의 책 읽는 게 ... ]
- [내가 무언가를 기대했구나 생각해요. 방에 들어가 명상하면서 마음을 돌아봐요. 욕심이 너무 많았네, 라면서 성찰하고요. 손님 인생에 개입했다가 실패했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버텨요. 그래, 에디슨도 백열전구 발명할 때 999번을 실패하고 1000번째에 성공했다는데, 나도 999명에게 내 조언이 안 먹혀도 한 명에게만 먹히면 되지 뭐.]
- "상담할 때 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손님에게 공명하면서 기운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욕심을 부려서 내 기운을 준다는 느낌이 강해지면 쉽게 지치고요."
- "손님의 장애 유무에 따라 점사를 보는 방식이나 풀이가 달라지나요?"
[깊이 들어가면 물질적인 풍요와 풍요롭지 못함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는 겉으로 드러나고, 지적장애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잖아요. 여기가 법조 타운이니까 엄청 잘 나가는 변호사·검사·판사들이 많은데, 자기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상담할 때 훨씬 힘들어요. 몸을 만져서 치유하든, 대화를 통해서 치유하든, 마음의 방이 많아서 건드릴 곳이 많아요. 장애 유무와는, 특히 보이는 장애 유무와는 관련이 없어요, 전혀. 어떤 손님이든 그 사람의 핵심을 찔렀을 때 몸이 긴장하는 걸 보면서 쾌감을 느끼죠.]
"혈자리에 침을 놓는 것처럼요."
- "안마사와 무속인이라는 직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공통점은 사람을 대한다는 거죠. 차이점은 내가 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가슴 쪽을 가리키며) 얘를 사용하느냐 그 차이예요. 어떤 도구를 쓸지, 지혜·현명함 · 통찰력·예지력을 어떻게 종합적으로 제대로 올바로 쓸지 항상 고민해요.
도구 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최근에 어떤 분이 가게 문을 닫고 건물을 팔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옛날에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집 앞에 거꾸로 세워놓으면 집이 팔린다는 속설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몇 번 해봤는데 효과가 있더라고요. 옛날에는 지팡이를 도둑질해서 갖다 놓으라고 그랬죠. 이제는 그러면 안 되니까 새 지팡이를 사서 바꿔치기해, 새 거니까 ... ]
-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무당 송윤하>
- 가피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은퇴한 무당이자 은퇴한 스님이다. 어머니인 나비 선생님과 사회적 기업 '신밧드(신을 받드는 사람들)의 모험'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무당의 자활을 도우면서 유튜브 채널 '행운 멘토 나비쌤'에서 기도와 운세 영상을 공유하고, 사람들이 자기 안의 신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상담과 교육을 진행한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가피는 어렸을 때부터 무속신앙의 문화를 많이 접하면서 살아왔다. 나비 선생님도 무당이고 나비 선생님의 어머니도 무당이었다. 그는 나와 함께 수행하는 도반, 영혼의 친구 그리고 스승이다.
- 가피는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면서, 존재만으로 나에게 무엇이든 저지를 용기를 준다. 내림굿을 하고 그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마침내 내가 무당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 "언니의 여정이 너무 재밌어요. 스님이 되려고 했는데 인도에서 춤추다가 갑자기 무당이 됐다니. 크크." 무당이 됐다는 고백에 으레 무거운 사연을 상상하며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가피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자신의 영향으로 내가 재밌고 이상하게 산다는 걸 그는 알까?
- <신령님이 보고 계셔> 출간 후 한 언론에서 나를 'MZ세대 무당'이라고 표현했지만, 내 생각에 진정한 MZ세대 무당은 가피다. 그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쉽게 편집하는 방법을 알려준 덕분에, 나도 유튜브에 여러 영상을 올리며 채널을 운영할 수 있었다. "영상? 그냥 하면 돼요." 그는 누구나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노래? 그냥 하면 돼요. 그림? 그냥 그리면 돼요. 글? 쓰면 돼요."라고 가볍게 말하면서도 반짝이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그를 보며 매번 감탄한다.
- [이 선생님은 신을 받으셨는데 왜 못 하실까. 반대로 이 선생님은 동영상으로만 점술을 공부하는데도 왜 빠른 변화가 일어날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깨닫고 변화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아요.]
- "무당이 많이 토로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다고 느낀 순간에 갑자기 분노가 피어올라서 고민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또 자식이나 배우자, 부모님과 관계가 안 좋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말해요. 우리는 보통 예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힘들잖아요. 무당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신발이 떨어졌나? 내가 저주받을 만한 안 좋은 일을 했나? 내가 죄를 지었나? 같은 프레임으로 많이 생각해요.]
- [신이 외부에 있다는 착각 때문이에요. 저희 외할머니가 지금 70세가 넘으셨는데, 매일 108배를 하시고 수십 년 기도하셨어요. 과연 신이 '너 무릎 나갈 때까지 기도해'라고 시킬까요. 신이 그렇게 시켰다는 믿음이 실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죽음으로 돌아갈 때는 이해하게 돼요. 하지만 지금은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으니까 그게 안 보일 뿐이지. 사실을 직면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내 한 몸 바쳐 위대한 부처님께 절하면 나도 부처가 될 거라 생각하고, 밥도 못 먹고 일하면 가족과 세상이 내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내가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았죠. 단지 내가 그렇게 믿었을 뿐이죠. 그 믿음이 현실이 되었고. 스님이든 목사든 무당이든 종교계에 있는 선생님들이 결국 아무것도 없더라, 내가 수십 년 굿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더라, 같은 말을 해요.]
-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무당도 비슷하게 말했다. 무당이 되는 의식을 치르고 절차를 밟는 것보다 내 믿음이 더 중요하고, 신령님은 내가 믿기에 존재한다.
- [주역타로 배우는 분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분은 주역타로를 한 시간 만에 공부해서 바로 상담하시고, 어떤 분은 1, 2년이 걸려요. 사주는 10년을 해도 상담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차이는 뭘까요. 이 업을 통해서 손님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차이를 만들어요. 나에게 보이는 글자를 믿고, 타로를 보면서 딱 떠오르는 한마디, 내 진심에서 우러나는 한마디가 답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자기가 하는 상담과 진심을 믿지 않는 분은 계속 더 나은 이론, 더 나은 선생님, 더 위대하고 높은 신, 더 좋은 명상법과 수행법을 찾죠.]
<무당의 자활을 돕는 무당 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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