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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화가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6.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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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25.08.31



발췌 정리라는 벽에 부딪쳐 실제로 읽은 것과는 다른 순서로 리뷰를 쓰게 되었다.

 

<화가>는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집 시리즈>는 총 네 권이 발표되었는데, 한국에 정식 번역 출간된 것은 세 권.

<災園>을 제외한 세 작품이 각각 <흉가>, <화가>, <마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다가 최근 개정되었다. 

개정된 제목은 각각 <흉가>, <화가>, <괴담의 숲>.

 

<집 시리즈>는 이전에 읽었던 듯한데, -자신은 없다- 이번에는 전부 개정판으로 읽었다. 

 

<흉가>, <화가>, <괴담의 숲> 모두 10세 전후의 어린 소년이 갓 이사한 집에서 겪는 괴이한 일에 관한 이야기다.

이는 미쓰다 신조 본인이 유년기에 독특한 경험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설정인데, 특히 <집 시리즈>의 경우 연속해서 읽으면 그 유사성이 일종의 기시감처럼 작용해 더 오싹하게 읽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두려움, 공포, 조급함이 백미.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이지만- 호러 쪽에 훨씬 가깝다. <노조키메>나 <도조 겐야 시리즈> 등은 결말의 설명이 이전의 현상들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반면, <붉은 눈>이나 <백사당>, <사관장>은 호러에 완전히 치우쳐져 있다. <집 시리즈>는 그 사이 어딘가 쯤이지만 호러 쪽에 더 가까운 위치. 결말은 현실적으로 풀어내지만, 이전까지의 괴이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찝찝한 여운이 남는다는 점 때문이다. 

 

<화가>는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소년이 할머니와 함께 운 좋게 구한 저렴한 주택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소 교외지이긴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넓은 주택이라 기쁜 것도 잠시.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불길함이 느껴진다. 기분에서, 상황에서, 사건으로. 

 

코타로의 경우 <작가 시리즈>의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의 쓰구치와도 비슷한 설정인데, 작가 역시 그것을 의식했는지 본문 중 '인형장'을 등장시킨다. 일종의 복선처럼 작용하니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실 것. -물론 그냥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내가 실제로 읽은 순서는 <괴담의 숲>, <화가> 그리고 <흉가> -현재 읽는 중- 인데, 결말만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괴담의 숲>이 더 마음에 들었다. <화가>의 경우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는데- 어떻게 보면 그 부분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마무리되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만족스럽기도 하고. 조금 애매하다. 일본의 발표 순서 상으로는 <화가>가 첫 번째라지만, <집 시리즈>를 처음 접할 때는 기왕이면 다른 순서로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아예 권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재미있었다. 

끝. 

  


  

 

- 앗, 여긴 전에 본 적이 있어!
그 집을 차분히 바라보기 전에, 그 길거리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무나카타 코타로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코타로가 그렇게 부정한 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한 번도 전에 살던 치바현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쿄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도쿄 도심에서도 꽤 떨어진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낯선 지역에 있는 우누키 마을 히가시 4번지 거리가 낯익다니, 어떻게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다. 

- 사실 지금까지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대개 안 좋은 일을 겪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무서운 일이 생기곤 했다. 전에 본 적이 있다고 느낀 그 장소에서. 그래서 코타로는 기시감 같은 것을 느끼면 되도록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 하지만 이번에는 이제 막 이사 온 참이다. 아무리 수상한 낌새가 있더라도 당장 떠날 수 없다.
말하자면 이 마을에서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걸까...?
오늘부터 자신과 할머니가 살게 될 집 앞에 서서, 코타로는 몹시 불안한 시선으로 눈앞의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 이것뿐이라면 그리 드물지 않은 풍경이다. 코타로가 이 정도로 강한 기시감을 느낄 리가 없다. 문제의 원인은 'く'자의 끝에 있었다.

- 그것은 기묘한 존재감을 풍기며 마을 동쪽 외곽에 웅크리고 있었다. 불룩하게 올라온 전체적인 형태는 언뜻 거대한 거북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얌전한 이미지인 거북이와는 반대로, 코타로에게는 마치 지금부터 눈앞에 있는 열 채의 집들을 하나씩 집어삼키려고 땅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괴물처럼 보였다.

  
- "여기는 진수의 숲(鎭守の森, 그 고장의 수호신을 모신 신사와 참배길 등을 둘러싸도록 만들어진 숲-옮긴이)인가?"

 

- 정신을 차려보니 코타로는 그 숲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길이 굽어져 있어서 숲이 조금 더 잘 보이는 곳까지 가보자며 몇 걸음 걸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집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사로 바쁜 할머니를 거들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く'자 형태의 길 끄트머리까지, 숲의 입구까지 발길을 옮긴 것이다.

- 코타로가 입구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길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바닥에 돌이 촘촘히 깔린 길이 신사의 참배길처럼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왼쪽으로 비스듬히 뻗어나가는 그 길을 눈으로 따라가 봐도, 한동안 뻗어나가다가 오른편으로 꺾이기 때문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에서 코타로가 뛰어놀던 진수의 숲과 눈앞에 보이는 숲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다만 그 시골 마을의 숲은 신비로운 분위기라 경외심을 품게 만드는 존재였던 것에 비해, 이 숲은 규모가 작음에도 어째서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 "신령님은 자비롭기도 하지만 때론 아주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단다."
치바에서 살 때 이웃집 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얘기였다. 만약 이곳이 신사를 둘러싸고 있는 진수의 숲이라면, 그 중심에 모셔진 신령님과는 절대 관계하고 싶지 않다. 코타로는 한순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 그러자 문득 작년의 그 사건 이후로 다시 꾸게 된 악몽이 머릿속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것은 코타로가 어릴 적에 자주 시달리던 무서운 꿈이자, 오랜 시간에 걸쳐 인상이 흐려지다가 마침내 꾸지 않게 되었던 꿈이었다.

- 악몽 속에서 코타로는 새까만 어둠 속에 있다. 마치 별빛 하나없는 암흑의 우주공간을 떠도는 것처럼,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심해에 가라앉은 것처럼, 주위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갑자기 세로로 길쭉하고 가느다란 빛줄기가 나타난다. 압도적인 어둠 속에서는 너무나도 가느다란 빛줄기이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어두운 밤을 찢으려 하는 광명으로 보였다. 그 증거로, 처음에는 너무나도 가느다랗던 빛줄기가 서서히 폭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선이 면으로 변화하고, 이윽고 빛으로 넘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곳에서 코타로는 간신히 안도하고, 어둠에서 빛의 공간으로 기어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코타로의 눈앞을, 늘 괴물이 막아선다. 밉살스러운 방해자는 요괴나 유령, 혹은 괴수나 괴인으로 그때마다 바뀐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 당시에 코타로가 가장 무섭게 여기던 존재가 나타났던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더 이상 그런 상상속의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로는 악몽을 꾸는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그런데 악몽이 다시 돌아왔다. 게다가 되살아난 악몽에서 코타로의 앞을 막아선 것은 언제나 똑같은 검은 형체였다. 코타로는 깨달았다. 이제까지 등장했던 모든 괴물은, 사실 그 녀석이 모습을 바꾼 것이었다고. 정말로 두려운 존재가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고.

- 다시 코타로는 두려움에 떨면서 잠들게 되었다. 더 이상 가공의 존재라며 그 검은 형체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악몽 속에서 흉측한 그 형체와 대치한 순간, 그 녀석에게서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꿈속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형체는 실존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코타로 스스로 인정해 버렸던 것이다. 

- 눈앞에 웅크리고 있는 숲을 바라보던 중에 끔찍한 악몽이 머릿속을 스친 것은 울창하게 우거져서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이 암흑 공간으로, 그 안으로 사라져 가는 참배 길이 한 줄기 빛으로 느껴진 탓인지도 모른다.

- 이사해서 환경이 변하면 악몽 같은 건 꾸지 않을 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갓 도착한 지역에서, 하필이면 대낮부터... 
오오오오...
그때 갑자기 가까이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린 오른편을 보니, 낡은 목조 주택 한채가 눈에 들어왔다. 코타로가 살게 될 집과 마찬가지로 길의 남쪽에 늘어서 있는, 동쪽 맨 가장자리 집이다. 
"허어, 이것도 운명이겠구먼..."
이어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주위의 공기를 진동시키고, 그 소리가 귀에 닿은 순간 코타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문제의 집에는 '코쿠보'라는 문패가 있었다. 그 오른편에 '나카타니 클리닝'이란 간판이 걸린 깔끔한 가게가 있어서 더 낡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거주자가 집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

- 코쿠보 가의 난잡한 마당 동쪽 구석에 거의 말라죽은 듯한 감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뒤편에서 뭔가가, 아니,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 것이 가만히 코타로를 엿보고 있었다. 
곧바로 절대 그걸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치미 떼는 얼굴로 집까지 돌아오려고 했다. 기묘한 속삭임이 어디에서 들려왔는지를 간신히 알긴 했지만, 그것과 섣불리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서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곁에 할머니가 있을 때를 골라야 한다. 

 

- 그러나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늦었다. 코타로가 저쪽의 기척을 알아차린 것을 아무래도 저쪽 역시 깨달은 듯했다.
나무 뒤편에서 쑤욱하고 얼굴이 나타났다. 마치 평생 맛볼 모든 고난을 한 번에 체험하고, 그것이 뒤틀린 형태의 용모로 나타나버린 듯한 기괴한 노인의 얼굴이... 결코 나이 탓만은 아닌 듯한 무수한 주름과 검버섯에 얼굴이 뒤덮인, 딱한 마음이 들 정도로 무섭고 기괴한 얼굴이... 
겉모습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코타로는 몸서리쳤다.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굳었다. 하지만 그런 공포 따윈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뼈저리게 느꼈다. 
그 노인이 가래 끓는 불쾌한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꼬마야, 다녀왔니..."

- 코타로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전율이 퍼졌다. 두 무릎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녀왔냐니, 대체 무슨 소리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동네는 정말로 처음 와보는데 아니면, 처음에 느낀 기시감이 진짜였다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이 동네의 이름조차 전혀 몰랐으니까. 코타로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에 질린 나머지,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 그런 코타로의 동요가 전해졌는지 노인의 얼굴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것은 의외로, 의도치 않게 어린아이를 놀라게 만들었다고 후회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완전한 착각임을 곧 코타로는 알아차렸다. 고통에 가득 찬 듯 일그러진 표정이, 그 노인에게는 미소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수한 주름 한 줄 한 줄에서 당장이라도 뭔가 기분 나쁜 체액 같은 것이 흘러나올 것처럼, 끈적이는 듯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노인은 빤히 코타로를 바라보고 있다. 

- 가족이 넉넉히 살 수 있는 규모의 큰 집이고, 게다가 집세가 아주 싸며, 집에 특별히 손상된 부분도 눈에 띄지 않는다면 교통이 조금 불편한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코타로 같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즉 이 집은 세입자가 쇄도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조건의 집이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와서 사는 건 할머니와 손자뿐인 가족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코타로는, 그렇게나 이웃 사람들이 환대해 준 것은 정말로 순수한 호의 때문이었을까 하는 어쩐지 무서운 의심에 사로잡혔다. 
만약 그밖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면? 
예를 들면 사실 이 집은 살던 사람이 계속해서 나가버리는 유령의 집이고, 그것이 이 마을의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이번에 들어온 입주자는 어떻게든 오랫동안 살아줬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환대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일은 역시나 있을 수 없다. 유령의 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코타로는 미신 같은 것에 몹시 부정적인 할머니처럼, 미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징조 같은 힘을 가진 기시감을 느낀 적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믿느냐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일도 세상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정도의 느낌일까.

- 하지만 이곳이 사람들이 기피하는 집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가르치던 제자의 먼 친척은 바로 이 동네의 마을회장인 오이카와 집안이다. 그쪽 연출로 집을 얻은 경위를 생각하면, 유령의 집 같은 걸 소개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이곳이 유령의 집이라는 소문이 할머니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코타로는 모처럼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호의를 짓밟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참으로 답답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공부방 앞까지 돌아와 있었다. 모든 방을 확인하면서도, 생각에 빠져 있느라 중간부터는 제대로 실내를 살펴보지 않았다.
이거야 원...
마음을 추스른 코타로가 문손잡이에 손을 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등 뒤의 복도에서 뭔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 다음 순간,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자기 뒤에서 계속 붙어 다니고 있었으며 같이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소름 끼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코타로는 부정했다.

 

- 척척척...
그 순간 그것의 기척이 다가왔다.

- 당황하며 문손잡이를 돌린다. 철컥철컥 소리만 나고 전혀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다. 잠겨 있을 리는 없다. 애초에 이 방문의 열쇠를 할머니에게 받은 적이 없다. 
척척척척척...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발소리는 다가온다.
곧바로 왼편에 있는 문을 통해 북쪽 방으로 도망쳐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미친 듯이 손잡이를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손바닥 안의 손잡이가 회전했다. 잽싸게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가서 번개처럼 문을 잠갔다.
척척척... 척.
코타로가 문을 등에 붙인 찰나, 그 반대편에 딱 도달한 것처럼 그것의 발소리가 멈췄다.
"하아, 하아, 하아..."
필사적으로 기척을 감추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코타로가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으니까 그런 노력은 소용없는데도.
문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분명 기분 탓일 거라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코타로는 살짝 몸을 돌려 문에 오른쪽 귀를 ...

 

- "아, 미안. 초등학교 때 '나고이케의 4대 유령의 집'이란 괴담이 유행했거든."
"네, 네 군데나 있어...?"
놀라는 코타로를 보며 레나는 조금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했다.
"첫 번째는 '인형장'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저택인데, 어떤 작가가 살고 있었지만 그 집을 무대로 한 괴기소설을 쓰는 동안에 머리가 이상해져서 그대로 행방불명 되었대."

- "진짜로?"
"글쎄.... 정작 중요한 인형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모르니까."
"흐음..."
"하지만 이 이야기를 고등학생 언니에게 들었다던 애가, 정말 있는 집이라고 말했어."
코타로의 대꾸에 의심스러움을 느끼고 당황했는지, 서둘러 레나가 덧붙였다.

- "두 번째는 '강변에 있는 유령의 집'으로 불리는 집인데, 여기는 실제로 노가와 강변에 있는 폐가야."
"어, 노가와라면..."
"응, 조금 전에 안내했던 강이지. 그 집 쪽으로는 가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한번 데리고 가줄게."
"거기는 왜 유령의 집이 된 거야? 역시 사람이 안 사니까?”
"그 집은 말이지, 옛날에 정말로 살인사건이 있었어. 그 집의 아버지와 이웃집 여자애가 집 안에서 죽어 있었대."
"그 집 딸이 아니라 이웃집 아이?"
"당시에는 '호박 사나이'라고 불리는 변태가 돌아다녀서 그 아이를 맡아주고 있었대. 그런데 집 안에서..."
"우와, 그건 무섭네."

- "그리고 세 번째가 이 '괴물의 집'이고..."
그렇게 말하면서 옛 우에노 가를 바라보다가 레나가 갑자기 말을 우물거렸다.
"왜 그래?"
네 번째는, 이라고 물어보려다 갑자기 코타로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문득 무시무시하게 섬뜩한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혹시 그 네 번째 집이 우리 집...?
인형장이라는 곳이 어딨는지는 모르지만, 강변에 있는 유령의 집과 옛 우에노 가는 양쪽 다 빈집이다. 각각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거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연도 있고, 그것 때문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으리라고 추측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 집도...
주뼛주뼛하고 몸을 돌려서, 코타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시선으로 무나카타 가를 바라보았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야시키가미였대."
"야시키가미?"
"카즈사 가문에서 모시고 있던 수호신이래. 옛날에는 그런 대지주의 집에서는 집의 부지 안에 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세우기도 했대."
"그렇구나. 이 숲도 카즈사 가의 땅이었구나."
"그렇다기보다는 정원의 연장선으로 숲을 두었다는 느낌이 아닐까?"
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영국 귀족의 장원 같다며 코타로는 감탄했다.
"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그 괴물의 집에 살았던 우에노 가는 카즈사 가의 먼 친척에 해당한다는 얘길 들었어."
"흐음..."
"그래서 카즈사 가를 등에 업고 마을에서 위세를 부렸다는 모양이야. 자기들은 특별하다, 평범한 사람하고는 신분이 다르다, 하는 밉살스런 느낌으로."
레나가 가끔씩 어려운 말이나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분명 할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으므로 아직은 그리 곤란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당주도 이미 죽어서 없을 거 아냐."

"그렇지. 몇십 년이나 전의 이야기니까.”

- 도, 도망쳐야 해...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밑까지 다가오는 안개에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등을 돌리자마자 스르륵 하고 단숨에 덮쳐올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안개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얼마나 참배길 쪽으로 물러섰는지는 코타로도 알 수 없지만, 아직 연못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개 속에서 흔들리는 그것은 섬 위에, 사당 주변에 있던 것일 텐데...
그 순간 코타로의 발치에서 아주 강렬한 경련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머리꼭대기까지 이상한 감각이 주르르 타고 올라왔다. 당황하며 아래쪽을 보니 어느새 안개가 발목을 덮고 있었다. 게다가 두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오려는 듯 보였다. 
"아, 아아, 아아..."
의미도 없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인지 울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토하고 싶은 것인지 코타로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기이, 기이, 기이...
그런 상황에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만드는 불쾌한 그 소리는, 앞에 끼어 있는 안개 속에서 나고 있었다.

 

- 냄새가 난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무슨 소리이고 무슨 냄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분명 자신은 무사하지 못했으리라는 것만큼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다. 

코타로의 뇌리에 멈춰 선 자신의 등 뒤에서 모든 기척을 지운 그것이 번개처럼 코타로를 덮쳐 누르려고 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그 한순간의 공 백은 그것을 위해 힘을 모으던 시간이었으리라. 

 

- 다만 그 안개가 사라진 흐릿한 순간이 코타로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아직 달리는 건 불가능했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리 걸을 수 있었다. 이 상태라면 도망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솟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뻗어 있는 참배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 움직이는 동안 다리도 점점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또각또각, 또각...
그렇게 갑자기 소리가 바뀌었다. 돌이 깔린 길 위를 한 걸음씩 짓밟는 듯한 기척에서 마치 달리는 듯한 소리로... 
"우와아아악!"
순간 이제까지 느끼던 것 이상의 공포에 코타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면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내달렸다.

- 똑바로 뻗어 있는 참배길이 끝난 곳에는, 당연한 듯 촘촘히 돌이 깔린 길이 이어져 있었다. 숲의 입구에서 연못 안 섬까지의 모든 거리를 짐작해 보면, 직선이 끝나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 

 

-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검은 형체가 코타로의 앞길을 막아섰다.
아앗, 붙잡히겠어!
"우와악! 그만둬! 이거 놔!"
그 순간 검은 형체에 안긴 코타로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날뛰며 도망치려고 했다.
"잠깐! 얘! 왜 그러니! 저기, 무슨 일이야?"
그런데 뜻밖에도 코타로의 귀에 성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모르게 날뛰던 것을 멈추고 자신을 붙들고 있는 존재에게 눈길을 향한다.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몹시 걱정스러운 듯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오싹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 얼굴에, 코타로는 순간 매료되고 말았다. 

- "아, 코타로였나요?"
그 자리에 레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직후, 코타로는 숲의 입구 옆쪽에 있는 풀숲 앞에서 자신이 그 여자에게 반쯤 안겨 있음을 깨닫고 당황하며 몸을 떼었다.
"이 숲 안에 들어갔던 모양이야."
코타로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면서 다가오는 레나에게, ... 


- "시미짱은 참 예쁘지?"
언제까지고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코타로 옆에서 레나가 중얼거렸다.
"머리카락도 저렇게 찰랑찰랑하고... 그래서 긴 생머리도 잘 어울려. 피부에 주근깨도 없이 새하얗고... 화장 같은 걸 할 필요 없겠어."
곱슬머리도 얼굴의 주근깨도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매력 포인트가 된다고 코타로는 생각했지만, 레나 앞에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게다가 날씬해서 멋지고 말이야... 저렇게 예쁘면서도 어쩐지 보이시한 매력도 있는 것 같지 않아? 저 긴 생머리도 멋지지만, 짧게 자르면 분명히 중성적인 느낌이 강조되어서 또 다른 시미짱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런 레나의 말에, 굼뜬 코타로조차도 레나가 시모노 시미에라는 여성을 동경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어지는 레나의 말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코타로가 시미에를 의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면 영감이 떨어진대."

 

- 혹시 저 사람은 숲에서 나온 나에게... 아니, 그게 아니지. 그 뒤에서 다가오는 그것의 기척을 곧바로 느꼈던 게 아닐까?

- 과연 레나는 숲의 나무들을 베어버리려 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역시 공사 인부들 중에서 다치는 사람이나 아픈 사람이 생기고... 그래서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진입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대."
"그 말뚝들은 역시 그런 의미였구나."
"그런데 말이지, 울타리를 친 뒤로 마을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대."
"이상한 일? 예를 들면...?"
"작은 날벌레들이 새카맣게 날아다니거나, 갑자기 두통이나 구역질이 생기는 사람이 늘어나거나, 마을 안의 개나 고양이가 미친 듯이 계속 울어대거나, 밤이 되면 숲 쪽에서 '어욱, 어욱'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작은 일이었지만 그런 기묘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어.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가 울타리를 부수자마자 그 이상한 일이 뚝 그쳤대." 
"할아버지께선 저 숲 때문이라는 걸 아신 걸까?"
"글쎄... 하지만 그 뒤로 이 마을에서는 저 숲에는 절대 손대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어."

 

- "긁어 부스럼을 피한다는 말은 그런 얘기였구나..."

코타로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에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충분할 정도로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저 숲의 무서움을 간신히 이해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레나가 말을 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때, 이웃 시에서 초등학생만 노린 변태가 있었어."
"호박 사나이인가 뭔가 하는 그거?"
"그것도 이 근방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변태야. 어쨌든 그 녀석이 아이의 부모에게 들키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쫓겨서 이 동네로 도망쳐왔던 거야." 

- "어, 설마..."
“그래. 그대로 숲 속으로 들어갔고..."
"사라졌어?"
"응. 그때는 범인이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몇 사람의 경찰관이 봤고, 말 그대로 수십 명이 동원되어 숲 속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어디에도 없었대."
"하지만 숲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잖아?"
자신은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코타로가 말했다.

- 어쩌면 할아버지였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머리에 쓴 수건과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숙인 노인 특유의 자세에서, 왠지 모르게 노파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저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신경이 쓰여서 멈춰 서자, 그 노파가 코타로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지면에 쭈그려 앉을 듯한 자세를 한 채로, 오른손만 높이 들어 올려서 천천히 손짓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부탁할 것이 있겠거니 하며, 어느샌가 코타로는 제방의 경사면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노파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우거진 덤불 속으로 스윽하고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코타로는 멈춰 서려했지만 덤불 안에서 오른팔만 쑤욱 나오더니 이리 온, 이리 온, 하는 몸짓을 되풀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코타로가 끌려 들어가듯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오른손을 향해 가고 있던 때였다.
"코오타로오오오오!"
등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고함에 뒤를 돌아보니, 새파랗게 질린 할머니가 제방 위에 서서 소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나중에 들은 할머니의 말로는,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우연히 제방 위를 걷고 있는 코타로를 발견했다고 한다. 혼자 있는 것이 신경 쓰여서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코타로가 제방 너머로 휙 사라져 버렸다. 황급히 제방으로 가보니, 저수지를 향해서 척척 나아가는 모습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러 멈춰 세웠다고 한다. 
코타로는 자신이 본 노파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할머니가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듯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 당시 코타로가 할머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을 때, 노파의 손은 스르륵 하고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참이었다. 다만 할머니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지만...

- 해가 바뀌고 점차 기운을 되찾은 코타로는, 이사하기 전에 제일 사이가 좋았던 요시카와 키요시에게만 이 체험을 이야기했다. 조금 생각하는 시늉을 하던 키요시는 그 노파는 사신(死神) 같은 것이며 코타로가 부모님을 잃고 정신적으로 몹시 약해진 틈을 노려서 덤불에서 저수지 바닥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 그 노파가 정말로 사신이었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때 코타로가 무사했던 이유가 할머니의 외침 덕분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 저녁, 식당에서 코타로를 구해준 것도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 계속 불을 켜두기에는 전기세가 아깝지만, 지금은 그럴 걱정을 할 상황이 아니다. 우선 층계참에 있는 불을 켜고, 코타로는 2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복도의 전등만 켜놓고 바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2층의 침실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2층 방에는 아무것도 없는 건가?
레나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코타로가 본 괴이한 형체가 한 가족의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기였다면, 적어도 아버지의 존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만큼 넓은 집이니, 아기 말고도 다른 자식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직 만나지 않은 주민이 2층에 있다?

- 정신이 들고 보니 코타로는 어느새 침실 문의 손잡이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두라고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고 있었다. 
양쪽 다 본심이었지만 결국에는 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기에 지닌 모순된 심리에 코타로가 저항할 수 없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 천천히 문을 열고 실내를 잠깐 들여다보았을 때.
작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곳에 있는 모습을 본 코타로는 저도 모르게 방 안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아, 아버지...?"
곧바로 부르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꿈이니까, 이젠 괜찮을 거야."
그곳은 치바에서 살던 임대주택의 방이었고, 다다미 위에는 코타로의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그렇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둘이서 기분 나쁜 집으로 이사 왔다가 무서운 일을 겪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데... 

- "자, 그림책 읽어줄게."
그러나 뭔가 마음에 걸린다는 느낌도, 아버지가 재촉하는 목소리에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아, 네, 금방 갈게요."
코타로는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집에 이렇게 넓은 다다미방이 있었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버지는 코타로의 작은 이부자리 안에 있었다. 물론 두 팔과 두 다리는 완전히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어떻게 봐도 코타로가 같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다만 두 팔로 펼친 그림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책을 읽어준다는 말은 진짜인 것 같다.  

 

- 코타로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는 자기 전에 이렇게 그림책을 읽어주곤 하셨지. 문득 그리운 생각이 밀려왔다.
어릴 적에...? 거기서 다시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림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 순간, 신경 쓸 일 아니라며 또다시 잊어버렸다. 그 그림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집>.

- 이윽고 아버지의 낭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느샌가 주위는 이부자리 주변만을 남기고 암흑 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 자리만을 비추는 어슴푸레한 스포트라이트가 마치 어둠 속에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옛날 옛날에, 어느 숲 근처에 커다란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 <마지막 집>이라는 그림책의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그 집에 사는 가족이 한 명씩 '식인자'라는 존재에게 참살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코타로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도 읽어주었던 내용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전개 자체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커다란 설정은 어디선가 들은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모처럼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으니 지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다.

-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올라가는 것을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속도를 내다가, 정작 중요한 기사를 못 보고 넘어가기라도 했다간 정말 큰일이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완전한 기우였다. 3월 마지막 주에 들어서서 며칠이 지난 그날의 1면 기사로 명확해졌다. 그곳에는 큰 글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택가의 참극! 일가족 참살!
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 순간, 코타로는 확신했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그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어느샌가 코타로의 몸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이마에는 땀이 배어 나오고, 호흡이 가빠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코타로의 눈앞에 새까만 입을 쩍 벌리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그곳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이대로 신문 축쇄판을 덮고 도서관을 뒤로하면, 진정한 공포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코타로의 본능은 줄곧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라고. 이 이상 나아가지 말라고.

 

- 그러나 코타로는 기사를 읽기 시작하고 말았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정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한 듯한 이 기분. 참으로 모순된 감각에 감싸인다. 마치 머릿속이 합선된 듯한 기분이다.
뭐, 뭐지... 이건?
코타로가 본 신문 기사. 그곳에는 참극이 일어난 집에 살던 가족의 성씨가 '무나카타'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혼자 살아남은 장남의 이름은 '코타로'였다.

- "금전적인 여유가 아마 없으실 거야."
이어지는 코타로의 말에 레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호러영화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설정은 조금 우습기도 하네."
레나의 반응을 곁눈으로 보던 코타로는 마치 농담을 하듯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레나는 전혀 웃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레나가 말했다.
"코타로, 우리 할아버지한테 상담을 하면 분명 힘이 되어주실 거야. 어딘가 괜찮은 집을 알아봐 주실 거고..."
"응, 고마워. 레나네 할아버지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할머니를 설득하기는 힘들 거야. 이제까지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만으로 혼자 살아오신 분이니까... 자존심이 엄청 강하시거든."
"하지만 그러고 있을 상황이..."
“맞아, 그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하지만 할머니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할 거야."

 

- "저 집에서 계속 이대로 살 거라면 반드시 뭔가 대책을 세워 ... "

-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간단히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레나의 눈치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실은 말이지, 나도 내일은 오후부터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업무가 있어. 어쩌면 코타로 군의 할머니도 내일은 귀가가 늦어질 일이 있을지도 몰라."
"무, 무슨 소리야?"
불길하다는 듯이 레나가 물었다. 코타로도 같은 기분이었다.
"또 우연이다, 운명이다 하는 이야기가 되는데, 10년째가 되는 내일, 이 집에 코타로 군만 남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되도록 모든 상황이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 그럴 수가..."
너무나도 오싹한 발상에 레나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곧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걸 무너뜨리면 되잖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반대라고 봐. 어설프게 거스르는 방식으로는 더욱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부르지 않을까? 그야말로 그것이 운명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일부러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말고 상황의 흐름에 따르면서,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해두는 거야. 대책을 세우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 아까 코타로 군이 말하는 것처럼 맞서는 거야.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 도망쳐봤자 일시적으로 위험을 피하는 것뿐, 아마도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될 거야."

- 해질녘이 될 때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도중부터는 레나도 의견을 굽히고 두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어떻게 코타로를 지키고 괴이에 대처할까, 어떻게 그것을 없앨까 하는 점에 대해 논의와 검토를 거듭했다.
그 결과, 시미에가 내일 이른 아침에 아는 신사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고 그것을 코타로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오전 중이라면 레나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내일 오전에 셋이 다시 한 번 모이기로 했다. 

- "혹시 모르니까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 있을까?"
두 사람을 배웅하려던 코타로에게 시미에가 말했다. 레나도 찬성했지만, 코타로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시미에가 있다고는 해도 해가 많이 기운 데다, 레나가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으면 할머니의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빠짐없이 준비해 올 테니까, 내일 아침에 또 보자. 그러면 실례했습니다."
"코타로, 부디 몸조심해.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해."


- "이 인형 안에 코타로 군의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을 집어넣으면, 이것이 무나카타 코타로의 '분신'이 되는 거야. 그리고 진짜 무나카타 코타로 쪽은 기척을 죽이고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는 거지. 그러면 코타로 군을 찾아온 존재가 이 인형이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인형을 덮치게 되지. 그렇게 해서 현세에 남았던 원한을 해소하면, 이 집에 머물러 있는 강고한 의지도 깨끗하게 사라지는 거지."
"아, 그런 거구나. 과연 시미짱이야!"
간신히 레나의 표정이 누그러졌을 때, 시미에는 코타로에게 부탁해서 약간의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잘라서 짚인형 안에 넣었다. 그리고 부적을 꺼내서 코타로의 이마에 붙이고는, 중얼중얼 뭐라고 외기 시작했다. 그 의식 같은 행동이 끝나자, 부적을 이마에서 떼어내 인형의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집어넣은 곳 위에 붙였다. 
"이걸 옷장 안에 매달아 둬야 하는데 말이지..."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도 시미에는 어째서인지 코타로 쪽을 걱정스러운 듯 보고 있었다.
"...?"
아직 뭔가, 그것도 말하기 어려운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 코타로는, 시미에를 재촉하듯이 반문했다. 그러자 시미에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어쩐지... 그래서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내 쪽을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시미에라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한, 그런 기묘한 시선을 하고 있었구나... 역시 보이지 않았던 거구나."
간신히 납득했다는 듯한 눈치의 시미에는, 곧이어 감개무량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랬던 거야. 몰랐어... 이 집에 들어온 뒤로 내가 줄곧 오빠하고 같이 있었다니..."


- "그래, 카미츠케 시메이(司命)야. 몰랐을 테니 알려주겠는데, 시메이라는 두 글자에는 사람의 생명을 지배하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자라는 의미가 있어."
 
- "이, 있어요... 앗, 그렇구나... 혹시 성씨도 '시모노'가 아니라 '시모츠케'라고 읽을 수 있겠네요. 보통은 '우에노'라고 읽는 '上野'라고 쓰고 '카미츠케'라고 읽는 것처럼. ..." 

- 그런 무나카타 코타로와 한 소년이, 길 중간에서 지나쳤다. 코타로를 지나친 소년은 이윽고 우누키 마을 4번지의 서쪽으로 뻗은 길에 도착해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앗, 여긴 전에 본 적이 있어...
그 집을 차분히 바라보기 전에, 그 길거리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소년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만 집 쪽에는 어째서인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알고 있는 곳일 텐데도 일부러 다른 얼굴을 내보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묘한 기시감...

"네가 아직 어릴 적에는 자주 데려왔는데...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어느샌가 소년의 뒤에 선 노부인이 가만히 속삭였다. 그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부인이 말을 이었다.
"큰아버지와 어머니가 못다 한 유지를, 이번엔 네가 잇는 거란다. 츠카사...? "

 



역자후기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3부작 중 두 번째로 소개해드리는 <화가(禍家)>입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화가> (2007년)가 <흉가>(2008년)보다 먼저 발간되었습니다. 시리즈 첫 작품이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왕도적인 전개, 말 그대로 '재앙이 내린 집'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나올 법한 정석을 보여줍니다.

여기까지라면 자칫 예상 가능한 내용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인공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란 설정에 미쓰다 신조 특유의 오싹한 묘사가 어우러져서 또 하나의 색다른 '유령의 집' 이야기가 멋지게 완성되었습니다. 마지막 반전 역시 일품이고요.

<화가>와 <흉가>를 다 읽어보신 독자 중에서 혹시 눈치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요시카와 키요시'입니다. 본문에서 아주 잠깐 지나가기는 합니다만, 바로 주인공이 전학 가기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의 이름입니다. <흉가>에서는 주인공인 쇼타가 이사 가기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라고 언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가>에서는 코타로가 친하게 지내던 초등학교 친구로 회상 중에서 잠시 등장했습니다. 동일인물이라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친구들을 둔 초등학생이라고 해야겠군요. 혹시나 집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권 <재앙의 뜰(災園)>에도 슬쩍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그러고 보니 코타로가 사는 지역에 떠도는 4대 유령의 집에 관한 레나의 설명을 보면, 미확인의 첫 번째 유령의 집을 '인형장'이라고 부릅니다. 미쓰다 월드의 애독자라면 많이들 아실 테죠? 바로 신조의 데뷔작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집 3부작 세 권 중 두 권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권은 '어린 주인공', '이사', '기괴한 체험'이라는 기존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앞서 나온 두 권과는 다른 파격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조만간 집 시리즈 마지막 권도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현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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