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25.04.03
<집 시리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내 기억에는, 2016-17년 즈음 구판으로 <집 시리즈>를 모두 읽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되며 일부 바뀐 것인지 내 기억력의 문제인지, 특정 장면은 확실히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전체적으로는 낯선 느낌이라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걸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무서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정도의 오싹한 기시감- 개인적으로는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흉가>에서는 <사관장>과 <백사당>에 등장하는 나가하시 촌과 햐쿠미 가, 타츠미 가가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시대 배경 상으로는 훨씬 이후의 일인지 위세를 떨치던 저택은 폐가 수준이 되었고, 가문 역시 몰락해 일가에 관해서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는 상황.
주인공 쇼타가 겪는 일은 타츠미 미노부가 경험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물론 유사한 체험도 일부 겪지만-, 햐쿠미 가의 사당에 모셔져 있던 뱀신 님은 키미로 가볍게 등장하는 정도다. 쇼타의 경우는 그보다는 영산 쪽,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바꾼다는 '뒤바뀜' 쪽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사관장>, <백사당>을 읽고 이이서 <집 시리즈>를 읽는 걸 권하고 싶다. 두 작품이 <작가 시리즈>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소년이 주거지를 옮기며 겪는 기이한 체험담이라는 점과 햐쿠미 가와 영산이라는 배경 설정이 <집 시리즈>, 특히 <흉가>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쓰다 신조 정주행이 거의 끝나가는데, 만약 내가 사전 정보를 확인하고 읽었다면 아마 이런 순서로 읽었을 것 같다.
호러 : <작가 시리즈> - <집 시리즈> - <붉은 눈>, <노조키메>, <죽은 자의 녹취록/괴담의 테이프>, <괴담의 집>, <우중괴담> 등
미스테리 : <사상학 탐정 시리즈> - <도조 겐야 시리즈> -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리뷰는 한참 밀렸지만, 독서 기준으로는 2-3권 정도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미쓰다 신조는 다 읽는 셈이다.
박해로 작가도 2권 정도 남아 있어서 남은 여름은 조금 다른 분야의 글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습도가 낮지만,
그래도 여름이다.
끝.
- 이제까지 살던 도쿄 고쿠분지의 임대 아파트를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될 안라 시의 새집에 도착할 때까지, 약 5시간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아버지 마사유키가 말했다. 그래서 쇼타는 열차 안에서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읽을 생각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축약본인데, 이미 쥘 베른의 소설을 몇 권이나 읽은 쇼타에게는 친숙한 책이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특별한 날 어울리는 이야기로, 기상천외한 여행기인 이 책을 골랐다.
- 도쿄역까지 갈 때는 차 안이 혼잡해서 도저히 책 읽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칸센 지정석에 앉아서 가면 문제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본 뒤,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의 또 다른 설렘을 느끼면서 쇼타가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였다.
그 섬뜩한 두근거림이 엄습한 것은...
쇼타는 가슴 언저리가 꽉 죄는 듯 답답하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빠져 안절부절못했다.
이사하는 날에 느끼다니...
- 이 증상을 처음 느낀 것은 유치원에 갈 무렵이었던가, 세 살 많은 누나 사쿠라코의 뒤를 따라 혼자 바깥에 나갔던 때가 아니었을까?
누나가 향한 곳은 아이들이 자주 놀러 가던 근처 공터였다. 주택가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그곳은 묘하게 적적한 장소로, 주위에 집들이 있기는 했지만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아주 이상한 공간이었다.
- 공터에서 누나는 친구들과 '다루마가 굴렀다(한국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옮긴이)'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쿠라코가 술래인지 근처 집 벽을 보고 서서 "다, 루, 마, 가, 굴, 렀, 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벽에서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뒤돌아서 있는 누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술래는 '다루마가 굴렀다'고 외치자마자 재빨리 뒤돌아본다. 다른 사람들은 그전에 최대한 술래에게 다가가려고 앞으로 나아간다. 다만 술래가 돌아보았을 때는 움직이지 말고 딱 멈춰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모습을 술래에게 들키면, 술래 옆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모두 붙잡히기 전에 누군가 술래의 등을 탁 치면,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까지 모두 한꺼번에 도망갈 수 있다.
이때 곧바로 술래가 '스톱!'이라고 외치면 도망치던 사람들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한다. 그 상태에서 술래가 세 걸음 뛰고 팔을 뻗어 한 명을 건드릴 수 있으면, 손이 닿은 그 사람과 ...
-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엄청나게 초조한 기분이었다.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된다...?
곧 큰일이 벌어진다...?
뭔가 다가오고 있다...?
두근거림은 어느새 뭔가 무서운 것이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쇼타 자신이 무의식 중에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 "쇼타! 네가 술래니까 얼른 저쪽으로 가."
움직일 생각이 없는듯한 남동생에게 곧 누나가 화를 냈다.
"아직 무리 아냐? 쇼타한테는..."
누나의 친구 리에가 쇼타를 술래에서 빼주자고 말했지만, 사쿠라코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다 같이 놀려면 쇼타도 술래를 해야 해."
"하지만 아직 어리잖아..."
"그럼 우리하고 놀기에도 아직 이른 거 아니겠어?"
"하지만 그래도... 불쌍하잖아."
- "도망쳐야 해..."
쇼타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 그러고 나서 쇼타는 갑자기 누나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집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 사실 쇼타는 이때부터 그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 가고 싶으면 혼자 가."
당연히 사쿠라코는 거절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남동생이 손을 놓지 않았다. 얌전한 성격에 싸우려고 하면 금세 울음을 터뜨리는 쇼타가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집에 가자고 매달렸다. 결국 끈질기게 잡아끄는 쇼타에게 지고만 사쿠라코는 어쩔 수 없이 남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터에서 멀어질수록 쇼타는 기묘한 두근거림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평소 상태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 사쿠라코는 분통을 터뜨리며 어머니 마이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몸이 안 좋은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어디 아픈 데는 없었다. 말하자면 경기를 일으켰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누나하고는 달리 어릴 적부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얌전한 아이였기에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 그날 밤, 리에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리에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쿠라코와 쇼타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숨바꼭질 놀이를 했는데, 술래가 된 아이가 아무리 찾아봐도 리에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항복을 하고, 이제 그만 나오라고 불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모두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쿠라코하고 쇼타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리에의 어머니가 쇼타 집에 전화를 했던 것이다.
-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간 것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기 훨씬 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리에의 어머니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밤새 수색에 나섰지만 리에를 찾을 수 없었다. 공터에 수상한 흔적은 전혀 없었고,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리에는 그렇게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쇼타의 기억도 흐려져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쇼타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무렵이었다. 친구 요시카와 키요시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쇼타는 그 집 할머니에게 오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공터에서 아이들 몇 명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여자아이만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같이 노는 모습이 보였는데 문득 깨닫고 보니 없어졌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카미카쿠시(神隠し, 갑자기 사람이 행방불명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옛 일본에서는 요괴의 소행으로 믿었다.-옮긴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요시카와의 할머니는, 남자아이라고 결코 방심하지 말라며 무서운 얼굴로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었다.
- 계속 놀았다면 행방불명된 것은 누나였을지도...
쇼타는 그날 '다루마가 굴렀다'를 하던 아이들 중 여자는 리에와 누나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때 느꼈던 섬뜩한 두근거림이 생생히 되살아나 몸이 덜덜 떨렸다.
- 그 일이 있고 나서 쇼타가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은 딱 두 번 더 있었다.
한 번은 어머니와 함께 어느 상점가 아케이드를 걸어갈 때였다. 쇼타는 의아해하는 어머니를 재촉하며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곧장 벗어났다. 그날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식칼을 들고 무차별 연속 살인을 저질렀다.
- 또 한 번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어느 국도를 달릴 때였다. 목적지가 확실했기 때문에 그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자고 해도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그대로 계속 달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 주 뒤 그 국도에서 10여 대의 차량이 연쇄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세 차례 느낀 기묘한 감각이 가까운 장래의 변고를 알려주는 예고인지 어떤지는 쇼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예지능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어느 역을 통과한 다음 날, 그곳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때는 사전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이 죽을 만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는 장소에서 참사를 미리 감지할 수 있다면, 전철에 타고 있을 때 그 느낌이 덮쳐 왔어야 한다.
그래서 쇼타는 생각했다. 어쩌면 첫 번째는 누나, 두 번째는 엄마, 세 번째는 아빠와 같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 그리고 지금, 가족 모두 함께 있다.
- 이 신칸센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차량의 고장으로 탈선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관제실의 실수로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다른 신칸센과 충돌하는 것은 아닐까?
무서운 상상이 차례차례 머릿속을 휘감았다. 가족 모두 내린다고 해도 다음에 정차하는 나고야 역은 한참 뒤였다. 그때까지 괜찮을까? 그렇다고 해도 쇼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가령 나고야 역에 무사히 도착한다고 한들 무슨 말로 부모님을 설득한단 말인가.
공황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쇼타는 그 섬뜩한 두근거림을 느낀 장소에서 곧바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 ...
- 이처럼 단기간에 연달아 느낀 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
싫어... 안돼... 싫어... 싫어.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옆에 앉은 아버지에게 도쿄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과거에 겪은 세 차례의 경험에 견줘봐도 이번 일은 정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신칸센, 급행열차, 택시라는 서로 다른 탈것 안에서 느꼈다. 여기에 뭔가 공통점이 있다면...
이사 갈 집을 향하고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쇼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그런데 길 양쪽으로 집들이 대여섯 채 정도 이어지다가 갑자기 눈앞이 탁 트였다. 길 양옆 풍경이 논으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길은 그대로 쭉 이어지다가 막다른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한동안 나아가더니 오른쪽으로 한 번 꺾어져 눈앞에 보이는 작은 산중턱까지 이어졌다.
뱀...?
그 산을 보는 순간 쇼타는 곧바로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어째서일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처음 가는 장소에서 어떤 것을 보고 이렇게까지 또렷한 이미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택시가 논 한복판에 난 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섬뜩한 느낌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가다가는 때를 놓치고 만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빠, 저쪽에도 문이..."
쇼타가 가리키자 복도를 돌아가려던 아버지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부엌문이겠지."
확실히 위치상으로는 그랬다. 아파트에 살 때 어머니는 신문에 끼워진 주택 광고지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몇 번이나 같이 본 기억이 있는데, 대개 부엌에는 문이 딸려 있었고 그것은 집의 옆이나 뒤편, 어느 한쪽에 접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까 저 부엌문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이상한 것은 이 뒷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가까이에 부엌문이 있는데, 일부러 복도를 만들면서까지 뒷문을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럴 여유가 있다면 그냥 수납장을 더 만들지 않을까?
- 이런 복도와 뒷문은 역시 불필요하다.
아마 아버지도 분명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다만 쇼타가 생각하는 정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 그렇게 대답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쟤는 예전부터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좋아하잖아요."
곧바로 사쿠라코가 끼어들자 아버지와 어머니도 조금은 납득한 듯했다.
확실히 안쪽 방에서 보이는 것은 북쪽 옹벽과 동쪽의 울창한 숲뿐이었다. 결코 경치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어떤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실은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방으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사쿠라코가 앞쪽 방을 고르지 않았다고 해도, 분명 쇼타는 안쪽 방을 선택했을 것이다.
- 쇼타의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산기슭에 세워진 폐허 저택이었다.
- 참으로 갑작스럽게 길이 끝나 있었다.
눈앞에는 키 낮은 초목이 우거진 작은 들판 같은 적적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선택받은 산 정상 치고는 상당히 소박했다. 다만 바로 앞쪽의 초목이 우거진 수풀이 의외로 깊어 보였다.
포장이 끊어진 발밑에서 저 검은 숲으로 흐릿한 길이, 한 줄의 좁디좁은 산길이 이어져 있었다. 거의 산짐승들만 다니는 길 같았다. 잡초가 조금만 더 우거졌더라도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았을 길이었다. 간신히 눈에 띌 정도였는데, 그야말로 절묘한 경계에서 안쪽의 어두운 숲으로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가야 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부르고 있어...
- 포장된 길에서 한 걸음 내딛자마자 쇼타는 묘하게 부드러운 흙과 잡초의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야말로 무기물에서 유기물 위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청나게 거대하고 흉측한 어떤 생물의 피부 위에 올라간 듯, 그런 소름 끼치는 감촉이 신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마치 발밑이 땅과 동화되고, 걸어감에 따라 온몸이 산에 감싸이듯 고양된 기분에 휩쓸렸다.
이 산의 더 깊고 깊은 곳으로..., 아주 깊은 곳으로...
자신의 몸이 들어간다, 이끌려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 다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새해가 되면 신사에 하츠모데(정월의 첫 참배-옮긴이)를 하러 가고, 가을에 오봉(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일본의 명절-옮긴이) 연휴에는 아버지의 친가가 있는 오카야마와 어머니의 친가가 있는 후쿠오카의 절에 각각 1년 교대로 성묘를 하러 간다. 하지만 특정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극히 일반적인 부류였다.
그런 부모님에게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 집에서 유령을 봤다든가 이 산 위에서 괴물을 만났다고 이야기하기는 차라리 쉽다. 하지만 지금은 쇼타의 느낌뿐이었다. 막상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아주 애매모호해진다. 아마 자신이 느낀 섬뜩함, 위험, 소름 끼침의 10분의 1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막 이사를 왔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직접 유령이나 괴물을 목격하고 그것이 가족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여기서 떠날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 언덕 아래 곁길까지 내려와 거기서 왼편으로 돌아갔다.
우선 모모미를 집 안에 들여보내고, 잠시 같이 놀다 보면 점심시간이 된다. 쇼타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산기슭을 산책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산이나 저 집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이상한, 묘한, 일그러진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던 부모님이 깜짝 놀람과 동시에 두려운 나머지 이 집을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정도의 뭔가를.
- 그렇게 결심했을 때 쇼타는 2층 베란다에 어머니가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봐, 엄마가 저기..."
모모미에게 말하려고 하는데, 현관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엄마!"
곧바로 모모미가 손을 흔들며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쇼타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자기 집 2층 베란다에 서 있는 검은 사람 형체를 멍하니 응시하면서...
- 이것도 미처 못 봤구나.
이사당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냥 지나쳤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네...
길 양쪽 가장자리에 세워진 석상은 후쿠오카에 사는 외할머니가 알려준 '도조신'이 아닐까 하고 쇼타는 생각했다.
- 도조신이란 옛날에 질병이나 악령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의 경계나 고개, 혹은 네거리나 다리 등에 세운, 이른바 문지기 같은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상의 정면은 당연히 바깥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산 방향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두 석상은 마주 보고 있었다. 서로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두 석상 사이를 지나가려는 자를 막아서겠다는 듯이.
마치 지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처럼.
- 어쩌면 이것은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표식이 아닐까? 아니면, 산에서 뭔가가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망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옛날에도 이곳에 마을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지금은 이 지역에 나가하시 마을이 있다. 그러나 사당도, 도조신을 모셨던 것도 아주 오랜 옛날 일인 것 같았다. 몇십 년도 더 된 옛날, 오카야마와 후쿠오카의 할머니들이 '전쟁 전'이라고 부르던 시대보다 ...
- 언덕길에 접한 서쪽 벽에는 위아래로 다섯 개씩, 열 개의 우편함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각방의 현관은 산 쪽을 향하고, 창문은 반대편인 남쪽을 향하고 있는 구조였다.
쇼타는 우편함에 눈길을 주었다. 201호에 '나카미나미'라고 손으로 쓴 이름표가 보였다. 101호에 '이이노', 103호에 '쿠레바야시', 106호에 '오니타'라고 적혀 있었다. 104호와 204호는 번호가 없었다. 나머지는 빈집인가 싶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206호의 이름표가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어째 기분 나쁘네...
쇼타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빈집이라면 아예 이름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6호에는 명패가 있었다. 게다가 이름이 새까맣게 지워져 있는 것이 아주 꺼림칙했다.
- 이웃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쇼타 가족이 살았던 고쿠분지의 아파트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2층 복도에 들어서자 갑자기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북쪽의 산을 향해 있는 데다 난간 너머로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붙어서, 마치 자연의 벽처럼 보였다. 그래서 햇살이 거의 비쳐 들지 않았다.
"어! 잠깐 기다려 봐."
코헤이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더니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쇼타는 나무들 사이로 자기 집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북동쪽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복도 구석에 서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206호 앞인 듯한 그곳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몸은 산 쪽을 향하고 있으면서 고개만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 몹시 무리하게 목을 한껏 비틀고 줄곧 이쪽을 바라보며 쇼타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 "야! 얼른 들어와."
속삭이듯이 낮게, 그러면서도 꾸짖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 난 쪽을 돌아보니 201호의 열린 문 안에서 코헤이가 필사적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쇼타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현관으로 뛰어들자 코헤이가 곧바로 문을 닫고 잠갔다. 그때 머리 위에 딸그랑하고 방울 소리가 났다. 올려다보니 몇 개나 되는 부적이 포렴처럼 문 위의 들보에 늘어져 있었다.
- "나쁜 것을 쫓는 부적 같은 거야."
당연하다는 듯 설명하는 말투에 놀란 쇼타를 뒤로 하고 코헤이가 집 안으로 척척 들어가면서 가리켰다.
"봐, 여기도 있잖아."
현관에서부터 뻗어 나간 짧은 복도 끝, 그곳 방 입구 대들보에도 부적들이 매달려 있었다.
- "어머니하고는 여기서 자. 그리고 잘 때 가장 영향을 받기 쉽다길래 현관뿐만 아니라 방 입구에도 부적을 달았대."
“너희 엄마가?"
- 토지를 그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마을 북쪽에 자리 잡은 '도도 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산에는 옛날부터 무서운 뱀신이 산다고 전해져서, 입산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런 신성한 영산(靈山)을 모시면서 뱀신을 진정시키는 한편 입산객이 있는지 눈을 번뜩이며 감시하는 것도 타츠미 가의 역할이었다.
- 그런데 태평양전쟁 이후 농지개혁에 의해 타츠미 가는 이 땅의 권리를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개혁에는 산림 소유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도도산만 남게 되었다.
게다가 타츠미 가는 전쟁 이후로 후계자들이 신통치 않아서 점차 몰락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전에 끝내 도도 산 주변을 개발해서 '타츠미 빌라'를 세웠고, 그 1년 후에는 산 자체를 주택지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타츠미 가의 최연장자였던 센은 도도 산에 손대는 것을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그러나 이미 체면을 차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사위와 딸들이 우격다짐으로 개발 계획을 단행했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공사가 난항을 겪었다. 처음 개발에 착수한 것은 산의 오른쪽 절반이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정상에는 일체의 차량이 올라갈 수 없었고, 산 중턱의 2단째부터는 곁길을 만들었지만 몇 번이나 절벽이 ...
- 잠깐 망설이다가 식당을 통해 거실로 나가려고 했다.
부엌과 식당에는 작은 불밖에 켜져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거실은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단란한 가족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반짝이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오른편이 어둡게 느껴졌다. 2층 복도 부근이 어둠침침하게 흐려 보였다.
- 2층 천장까지 뚫려 있으니 그 구석까지 불빛이 닿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무엇보다 쇼타는 벌써 나흘 밤을 이 거실에서 보냈다. 그동안 저 부근이 특별히 어둡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참 이상하네...
신경 쓰이는 곳을 계속 쳐다보면서 식당을 지나가고 있는데 문득 끈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2층 복도 난간에서 1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뭐지, 저건?
검고 길쭉한 것은 끈이라기보다 로프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이사 올 때 미처 못 치우고 남은 쓰레기인가 싶었지만, 곧바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까지 어머니가 못 보았을 리 없었다. 게다가 오늘 저녁나절까지만 해도 분명 없었다.
- 다다미방에서 목격한 사람 형체의 목에서 일본식 장롱까지, 검고 길쭉한 것이 뻗어 있었다...
그때는 기분 나쁜 사람의 형체에 주의가 쏠려서 기억의 구석으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지금 검고 길쭉한 것만 나타나자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뱀신?
이 검고 길쭉한 것이 그것일까? 그러니까 사람 형체는 도도산에 산다는 뱀신의 앙화로 죽은 것일까?
- 쇼타는 어느새 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산에 손을 댔기 때문에 타츠미 가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갔다면, 그 산에 지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언제까지 괜찮을까?
집을 지은 지 3년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동안 이 집에 몇 가족이 살았을까? 그것을 알면 대충 그 계산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럴 수가...
이 마을 사람들이 타츠미 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새삼 느낀 쇼타는 점점 더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 센 할멈에게 손을 잡힌 채 멍하니 끌려가던 쇼타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폐허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눈앞에는 틈새로 잡초가 삐져나온 황폐한 돌계단이 이어졌고, 그 꼭대기에 기울어진 대문이 서 있었다. 그곳에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흐릿하게 '타츠미(辰巳)'라고 적힌 아주 훌륭한 문패가 걸려 있었다.
나가하시 촌의 타츠미 가...
예전에는 이 근방에서 떵떵거리던 지주의 저택이지만, 이 돌계단과 대문만 봐도 더 이상 왕년의 번영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 어쩌면 왕년의 타츠미 가가 누렸던 영화가 센 할멈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말이여, 본가인 햐쿠미(百巳) 다음가는 집안이었시야. 그러고 또 타츠미라고 불리는 집안이 있기는 혀도 우리가 제일이제."
이것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현관의 '타츠미'라고 적힌 문패 옆에 '햐쿠'라고 적힌 커다란 액자가 걸려있었다.
햐쿠(百)에 타츠미의 미(巳)를 붙인 건가?
센 할멈이 말하는 본가라는 둥 다음 간다는 둥 하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 집안이 친척 관계라는 것은 어린 쇼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계속해서 몇 명이나 되는 사람 이름이 튀어나온 것을 보면 아마도 몰락하기 전의 타츠미 일족에 대해 -혹은 햐쿠미 일가인가-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 센 할멈은 현관문을 열려고 하면서 이야기를 중얼중얼 늘어놓았다. 다만 문이 어찌나 뻑뻑한지 미닫이 격자문은 덜컥덜컥 흔들리기만 할 뿐 열릴 기미가 전혀 없었다. 문 위쪽 절반은 보통 유리, 아래쪽 절반은 젖빛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위아래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고, 게다가 무수한 금까지 나 있었다.
그런 문을 센 할멈이 힘주어 흔들 때마다 모든 격자의 유리가 산산이 깨져버릴 것 같아서 쇼타는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물론 현관문 유리가 깨져봤자, 집 전체의 쇠락한 모습을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다.
- 덜걱덜걱하며 한참을 저항하던 격자문은 굶주린 아귀의 배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리 실내라 해도 도저히 한낮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어두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들어갈 수 없다...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니, 들어가서는 안 된다...
어느새 쇼타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문과 씨름하느라 센 할멈은 이미 쇼타의 손을 놓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벗어날 수 있다.
얼른 뛰어서 도망쳐!
쇼타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집 안의 어둠에 매료된 것처럼, 점차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어둠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 "자, 어서 들어와분나."
센 할멈이 주름투성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보았다.
"들어오랑께. 니는 손님잉께 먼저 들어가그라이."
- [7월 31일, 월요일]
엄마는 '좀처럼 짐 정리가 끝나지 않는다'며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아빠는 회사에 출근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오빠하고 내가 거들었다.
리코는 거실에서 쿠리코랑 놀아주며 얌전히 있었다. 리코는 쿠리코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장 옆에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쿠리코는 '온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전에는 '잘 잤니', '안녕하세요'는 물론 우리 이름을 말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온다, 온다, 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온다'는 게 뭔가가 온다는 뜻일까?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쳤을까?
오빠는 짐을 다 정리하기 전에 엄마가 그림이나 장식품을 집안에 장식해 놓은 바람에 '정리하기 더 힘들다'면서 불평했다. '원래 그런 건 맨 마지막에 하는 법'이라면서 투덜거렸다.
오빠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그림이나 장식품은 대부분 교회에 관한 것들이어서 말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방을 빨리 장식하고 싶었지만, 저녁이 되자 몹시 지쳤다. 짐 정리를 하면서 오빠와 엄마 사이를 중재하느라 더 지친 것 같다. 오빠는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한다.
-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저 길 너머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마치 두 사람이 내 한 몸에 있는 듯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곧바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부적을 꽉 쥐었다. 그리고 언덕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눈앞에 멋진 경치가 펼쳐졌다. 눈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놀랄 정도로 정말 좋은 경치였다.
오싹하던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그대로 집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멈췄다. 저 산 위에 누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있다고 해도 그걸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대답도 해서는 안 된다고...
집까지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가파른 길이어서 그만 넘어져 언덕을 구를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집까지 내달렸다.
집에 돌아오니 쿠리코가 죽어 있었다.]
- "히미코도 이 산에 살고 있어?"
"맞아."
쇼타가 히미코라는 이름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옛 일본에 있었던 '야마타이쿠니'라는 나라의 여왕 '히미코'였다. 야마타이쿠니가 지배했던 곳이 긴키인가 규슈인가로 의견이 갈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설마 이 산이 야마타이쿠니의 일부였다든가...?
말도 안 되는 발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도 산이 그런 곳이었다면 이 지역은 고분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 중요한 장소를 전문 학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또한 고대 왕국의 여왕이 모모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히히노는 뭐란 말인가? 여왕을 모시는 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 쇼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모모미가 또다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또 있대. 곧 모모한테 인사하러 올 거래."
"히히노나 히미코 말고 또 있다고?"
"올 때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고, 마지막에는 전부 모일거래."
전부 모인다?
이제까지 봤던 사람의 형체들이 쇼타의 뇌리에 스쳤다.
- 신이 나서 떠들었다. 쇼타는 처음에는 조금 무리를 했지만, 그 이야기가 이미 아버지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어머니한테 확인한 뒤로는 나름대로 즐겁게 놀았다.
코헤이에게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같이 놀 수 없을 것 같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다만 가족과 어울리며 웃고 떠들 때 문득 코헤이는 지금 혼자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밤에 오카야마에 살고 있는 친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주 금요일 여기 와서 다음 주 초까지 머무르겠다고 했다.
모모미는 좋아하는 할머니 중 한 명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몹시 기뻐했다. 사쿠라코가 기뻐한 것은 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쇼타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이곳을 어떻게 생각할까?
- 사실 그 섬뜩한 두근거림에 대해 두 할머니에게 각각 한 번씩 이야기했다. 두 분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반응은 각각 달랐다.
오카야마의 친할머니 타에는 그럴 경우 주위를 잘 살펴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후쿠오카의 외할머니 키와코는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서 두 번 다시 관여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지금 생각하면 양쪽 다 옳은 판단이다.
- 아니야! 그 반대다!
문에 설치되어 있던 커다란 깔때기는, 밖에서 오는 뭔가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덧창과 창문까지 닫아놓은 것은 모처럼 불러들인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주의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그때 문득 자기 집에 있는 의미 없는 뒷문과 복도가 쇼타의 뇌리에 스쳤다.
설마... 그것은 산에서 내려오는 뭔가를 집 안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 자신의 해석에 경악하고 있는데, 쇼타는 어느새 안쪽 큰방 창가까지 밀려가 있었다. 지나온 작은방과 큰방 사이에는 먹다 남긴 편의점 도시락 상자와 컵라면 용기, 빵을 담은 비닐봉지 등 대부분 잡다한 음식물 포장 쓰레기가 흩어져 있었다.
틈을 봐서 도망쳐야겠어.
쇼타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안 봐도 되겠니?"
그런 쇼타의 생각을 읽은 듯 키미가 쪽지를 팔랑거렸다. 아니, 광고지 뒷면에 쓴 듯한 쪽지는 실내의 습기를 잔뜩 머금고 이미 흐늘흐늘한 상태였다. 빨리 읽지 않으면 글씨가 번져 못 읽게 될지도 모른다.
"야, 약속했잖아요."
- [오늘은 갈 데가 있어서 죄송해요, 하고 대답하자 또 놀러 온다고 약속했으면서, 하며 조금 화난 듯 말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언니 집에 갔다. 아이스크림은 아주 맛있었지만 얼른 먹고 할머니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언니가 "그 집에 가려는 거지?"라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하고 깜짝 놀랐다. 문께에 앉아 있는 언니 곁에 가보고 나서야 그곳에서 할머니 집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언니는 내가 할머니 집에 들어가는 것을 여기서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창문으로 그 집을 보면서 "기분 나쁜 집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할머니는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엄청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데 "우리, 점 볼까?"라고 언니가 말했다. 사실은 내키지 않았지만 한 번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로 카드라고 하는, 트럼프를 좀 더 길쭉하게 만든 듯한 이상한 카드를 사용했다. 각 장마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각각의 그림마다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 번만 할 생각이었는데, 점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한 번씩 전부 하기로 했다.]
- [침대 위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예수님 머리 위에는 비둘기가 있고, 그 발밑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림 속 예수님의 눈에서 검은 것이 흘렀다. 예수님의 두 팔과 두 다리에서도 검은 것이 흘렀다. 비둘기의 몸이 검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까마귀처럼 변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빠를 깨웠다.
아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더니, 내가 소리치자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그림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믿어달라는 심정으로 내가 본 것을 아빠한테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아빠는 그래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침대 위에 걸린 그림을 떼어내 보여주면서 "자, 아무것도 없지?"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예수님의 얼굴에서 검은 것이 흘렀어요"라고 말하자 "이런 거?" 라면서 웃고 있는 아버지의 두 눈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거기서 검은 것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자 두 팔을 뻗더니 내 팔을 꽉 잡았다.
그 순간 아빠의 온몸이 새까맣게 변했고, 이윽고 그것이 아주 작게 나뉘더니 붕 하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날다가 나한테 덤벼들었다.]
- [그 작은 것들이 모두 파리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알몸으로 욕실에 있었다. 엄마가 샤워기로 내 몸에 물을 뿌렸다. 엄마는 무엇 때문인지 나한테 새 잠옷을 입히고 침대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늘 지니고 다니는 십자가 펜던트를 벗어서 내 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방에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침대를 내려와 옷 주머니에서 할머니한테 받은 부적을 꺼냈다. 그것을 두 손에 쥐고 침대에 들어가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밤에 아빠가 내 상태를 보러 왔다.
나는 무서워서 비명을 질렀다. 아빠는 난처한 얼굴로 "내일 기운이 나면 모두 같이 어디 놀러 가자. 그리고 오늘 밤은 편히 자렴"이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지금 2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 리코가 깨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조금 전에 온 것은 정말로 아빠였을까?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다.
빨리 내일이 되면 좋겠다.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으니 아빠가 빨리 데려가주면 좋겠다.]
- [8월 14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열이 조금 났다. 엄마가 만들어준 죽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10시가 지나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니 거실에 아빠와 엄마, 오빠와 리코까지 모두 함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으니 더 누워 있으라고 엄마가 말했다.
아빠도 내일은 미에에 사는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이니 그때까지 다 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신사의 칸누시(신사의 우두머리-옮긴이)다.
할아버지가 오시는데 누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눕자 바로 잠이 왔다. 하지만 누군가 보고 있는 듯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뜨자 2층 침대 위에서 새까만 얼굴 두 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8월 15일, 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 기분이 좋았다.
리코가 어젯밤에 도도츠기와 도도 뿐만 아니라 히히코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리코는 재미있어했지만 나는 더 이상 재미있지 ...
- 모모미를 맞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쇼타는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식당과 거실의 경계에서 쇼타가 한 걸음만 내디디면 상대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노입니다."
그것이 입을 열었다.
- 쇼타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 다른 인격이 들어간 것은 틀림없이 도도 산 때문일 것이다. 뱀신의 영향이 틀림없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이상한 이름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토코의 여동생이 "언니는 아직이야?"라고 말했던 것은 도도츠기가 언니의 방에 아직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언니의 다른 인격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가'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 쇼타는 모모미를 왼팔로 안고서 서서히 계단 쪽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타타에와 히미코, 오른편에서는 히히노와 킷코가 천천히 다가왔다.
계단 아래로 몰리자,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에 올라가 버리면 더 이상 이 집에서 도망칠 수 없다. 하지만 반쯤 잠들어 있는 여동생을 데리고 이 자리를 돌파하기는 불가능했다. 현관이든 뒷문이든, 저들을 뚫고 도달할 수 없었다.
놈들은 히히노, 킷코, 타타에, 히미코의 순서로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층계참에서 붙잡힐 것 같았다.
"아빠! 저예요, 쇼타!"
열심히 불러보았지만 아빠는 무표정한 히히노의 얼굴로 계단을 하나씩 올라올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그 현상이란 물론 산 윗집에서 목격한 사람의 형체였다.
쇼타와 이케우치 토코가 목격한 것은 과거에 그 집에서 죽은 사람의 유령이 아니라, 이제부터 죽게 될 자기 가족의 미래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검은 형체였기 때문에 베란다에 서 있던 것이 소년(토코의 오빠)인지 소녀(사쿠라코)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고, 다다미방에 있던 것이 할아버지(토코의 할아버지)인지 할머니(타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타난 장소가 같았기 때문에 자신과 토코가 목격한 형체가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토코는 2층 침대에서 두 개의 작은 형체를 목격했는데, 그것은 토코 자신과 여동생 리코의 미래 모습이 아니었을까?
- 목매단다...
생각해 보면 차례차례 세상을 뜬 타츠미 가 사람들의 죽음도 목과 관련이 있지 않았던가.
- 그렇게 울면서 호소하자 할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예전부터 쇼타가 부모님과 누나에게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모모미에게는 깊은 애정을 느끼는 특이한 상황이 이어져온 것은, 지금의 이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쇼타는 할머니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뜻밖의 해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기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모든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최소한 쇼타가 그 사건의 충격에서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서 두 번 다시는 관여하지 마라.'
예전에 키와코 할머니가 말했던 대로, 그 마을에서도 그 산에서도 그 집에서도 벗어나 쇼타와 모모미는 지금 아주 먼 곳에 있었다. 두 번 다시 가까이 갈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모모미였다. 아직 어려서 진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무리였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히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 코헤이가 놀러 오면 분명 모모미에게도 좋을 것이다. 오봉 준비가 진행될수록 조금씩이나마 모모미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이었다. 잠에서 깬 모모미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쇼타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니 묘한 소리를 했다.
쇼타(翔太)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모모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오빠, 어젯밤에 하네타(羊羽)란 이름의 양이 나왔어."
| [미쓰다 신조] 죽은 자의 녹취록 (1) | 2026.07.07 |
|---|---|
| [박서련, 한유주, 한정현] 사물들 - 소설 에세이 앤솔러지 (0) | 2026.07.05 |
| [유재중, 김재은, 박해로, 지난, 정세호, 장은호, 우명희, 황태환, 김유라, 엄길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0) | 2026.07.04 |
| [백상준, 펭귄, 황희, 안치우, 박해로] 섬 그리고 좀비 (1) | 2026.06.30 |
| [미쓰다 신조] 괴담의 숲 (0) | 2026.06.29 |
| [미쓰다 신조] 화가 (0) | 202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