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서련 / 한유주 / 한정현
출판 : 아침달
출간 : 22.03.07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의 공기, 느껴지던 온도, 주고받은 말, 느리게 변해가는 표정까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때 그 장소. 그때 그 장식.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이들에게 제각각의 감정과 경험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사물들'.
<사물들>.
이는 세 작가가 모여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소설과 에세이 앤솔러지의 제목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조금 모호하다.
물론 각각의 작품 자체로서는 매우 흥미롭지만- 기획 의도가 잘 표현된 작품 들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제약이 되더라도- 차라리 공통된 사물을 주제로 정했었더라면.
그리고 약간 안심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한유주 작가의 <연대기> 완독에 계속 실패해왔다.
고민이 많았는데, <사물들>을 계기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와는 잘 맞지 않는 문체도 있다는 것을.
흥미로운 책이었다.
랜드마크 앞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사물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물인 사람은 여러 다른 사물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물 중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공통으로 의미 있게 감각하는 사물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그 사물에 얽힌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 기억은 특정 시대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경험일 수도 있고, 보편적인 생활에 가까운 경험일 수도, 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특별하거나 사소한 경험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사물을 특별한 것으로 감각하는 일이, 그 사물에 우리의 기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사물에 얽힌 기억을 꺼내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물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주목할 만한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엮은 앤솔러지다. 세 명의 작가가 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주제 사물과 관련된 소설과 에세이를 한 편씩 선보인다. 세 작가가 같은 주제-사물을 두고 펼치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우리가 그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기억을 건드리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변의 사물과 세계를 한 번쯤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물들>이 처음으로 제시하는 사물은 랜드마크 Landmark다.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지형이나 시설물, 혹은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나 발견, 발명품 등을 이르는 말이다. 탐험가나 여행자 등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닐 때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쓰였다. 사물로서의 랜드마크는 어떤 건물이나 조형물이 될 수도 있고, 작은 책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랜드마크를 통해 그 공간을, 그것이 포함된 다른 사물을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으로 인지한다.
상트 이즈 블러바드 모터 인이라는 모텔을 통해 붕괴되는 가상을 사유하는 박서련의 이야기,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로마까지, 여러 공간과 사물과 언어 사이를 주유하는 한유주의 화자, 그리고 무너지고 사라짐으로써 상징적인 집단적 상흔으로 남은 "그 백화점"에 관한 한정현의 기억을 함께 살펴보기를 청한다. 그들이 바라본 랜드마크를 통해 우리는 이전과 달라진 기억의 공간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2022년 3월 아침달 편집부
- 나는 어깨를 털며 로비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어디에 어떤 세력이 잠복해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어쩐지 경계심이 작동하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 억제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좀 더 경계를 풀어도 좋을 것이다. 시나리오상 이 구역에서는 적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주차장을 돌파하느라 그렇게 애를 먹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이런 구역을 나는 세이브존 Save Zone이라고 부른다. 세이프가 아니라 세이브.
- 어쩐지 이곳이 낯설지 않다.
나의 의식은 이곳에 처음 와본다고, 내 기억은 방금 전 지나온 끔찍한 주차장에서 이 로비로 곧장 이어진다 주장하고 있으나 나는 이곳에서 수천 번 리스폰되었을지도 모른다. 객실 어디에선가 무수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 나는 게임 속에 있다.
게임 밖에서 발생해 모종의 계기로 게임 속에 들어와버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게임 속 캐릭터로 기획된 인물로서, 내게는 유년기가 없고, 따라서 한밤중에 식은땀 범벅이 된 채로 깨게 만들 콤플렉스가 없다. 나는 나를 낳은 부모를 모르고, 따라서 갑자기 총알과 함께 패륜적 언사를 퍼붓는 개자식들을 마주쳤을 때에 동요할 이유가 없다. 나는 처음부터 성인이었고 이 세계는 애초부터 진창이었다. 꽤 편리한 기획이 아닌가. 기원도 없고 죽음도 없다. 국적을 모르고 내력을 모른다. 미션이 있고 인벤토리가 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는 언제나 불가사의하게도 탄창이 바닥나지 않는 총 한 자루가.
- ... 한편 내게는 딸이 있다... 고 짐작된다. 천진한 얼굴로 꿈에 나와서 마마? 다다? 하고 웃음 짓다 일그러지는 어린아이가 나의 딸. 최소한 혈육, 어쩌면 이웃집 아이일지도 모르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외양으로 미루어 세 살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할 줄 아는 말이 엄마 아빠밖에 없다는 것은 그 애의 발달이 현저히 느리다는 사실, 혹은 이 게임의 개발자에게 아동에 대한 이해도나 감수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꾸는 꿈의 내용이 영어 오디오와 한국 ...
- 나의 설명을 듣는 소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차츰 지워져간다. 소냐는 꽤 오래 침묵을 지키다 물어온다.
"지금도 보여요? 파란색 액자가?"
나는 고개를 젓는다. 파란색이 아니라 군청색이라고도 덧붙인다. 소냐는 다시 웃는다. 아까까지의 폭소, 내키는 대로의 웃음과는 다르게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당기듯 웃는다.
"농담이죠? 이렇게 생생하게 괴로운데 내 괴로움도, 이... 이 미친 세상도, 이게 다 만들어진 거라고요?"
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케이 씨 혹시 머리 다친 적 있어요?"
- 나도 늘 그게 궁금했다. 이게 게임이고 내가 주인공에 불과하다면 당연히 나와 이 세계 모두가 상품이고 무한히 복제되어 팔리고 있을 텐데, 나와 픽셀 하나하나가 똑같이 배치된 누군가가 이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세계를 헤매고 있다면, 그들도 나와 같은 불안과 고통을 느낄까?
- 망설이는 사이 소냐의 표정은 점점 더 굳는다.
미안해.
"이게 당신이 주인공인 게임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죽지 않겠네? 그렇지?"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걸로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예 죽지 않는 것은 아냐. 죽으면 마지막 세이브존에서 초기화되는 식이지.
- 아무 동요도 하지 않는 듯 보일 나를 소냐는 떨리는 손으로 쭉 겨눈다. 그렇지만 실은 나도 떨고 있다. 만일 수천 번 리스폰되었을 거라는 게 내 착각이라면? 내가 미션 보드라고 생각했던 것이 환각에 불과했다면? 사실 나는 한 번도 죽은 적 없고 그저 운이 좋아 이 미친 세계를 쭉 떠돈 것이었다면.
이게 현실이라는 소냐의 믿음이 옳다면.
- 그런 의심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혼란에 빠진 소냐가 갑작스레 취한 이상 행동 때문에 나도 동요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머리로는 그것을 알지만 한번 든 의심은 잘 떨쳐지지 않는다. 소냐 때문에. 아주 잠깐이지만, 이름이 있는 인물과 동행한 것이 처음 ...
<BLVD>
... 대한 믿음과 분리되지 않는다.
한편 나는 이제 학교와 교회가 아닌 다른 공간에 대한 꿈도 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나 현실 세계에는 물리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공간을 배경으로 꾸는 꿈도 그리 드물지 않다. y가 x를 확장해서인지 충분히 발달한 x가 y에 간섭해서인지는 분명치 않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근래 내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나의 정주 가능성이 되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지형지물, 오직 나 한 사람만의 랜드마크가 될 나의 집.
거기에야말로 아직 꿈에서밖에 가본 적이 없다.
박서련
- 땅거미가 진다.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한낮의 햇살에서 풀려나 제 색을 되찾는 시간, 그린포인트의 폴란드 식당에서 킬바사와 즈라지로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공원에서 개들이 달리고 소프트볼 시합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잡았어!" 흰 공이 빠르게 잡히고 환성이 터진다. 잔디, 구름, 어스름. 사위가 빠르게 어두워진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경계심이 일렁이고, 순간, 계단참이 밝아진다, 가로등들이 켜진다. 쓰레기통에 넘치는 쓰레기 더미 꼭대기에 농구화 한 짝이 있다. 왼쪽? 오른쪽? 나머지 한 짝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이는 자신의 오른발 바로 앞에서 1센트 동전을 발견한다. 허리를 숙여 동전을 줍고 몸을 일으킨 이는 조그만 슈퍼마켓 전면 유리창 안쪽 가판대에 진열된 오늘의 신문 일면을 보게 된다.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두 명의 사라진 소녀들, 혹은, 실종 이틀째. 달리는 사람은 달리고 있고, 걷는 사람은 걷고 있다.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왜인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딘지 모르게 간지러운 시간의 색, 푸르고, 중남미 주류만을 취급하는 상점에서 동양계 손님 하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이트럼 한 병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꼬모 에스따스?" 가게 주인이 놀리듯 묻고, 이틀 전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한 손님은 당황하면서도 기지를 발휘해 대답한다. "무이 비엔." 술병을 담기 위한 종이가방은 처음에는 길쭉한 직사각형이었다가 곧 길쭉한 직육면체가 된다. 들고 걷기에 적당한 무게를 갖춘 그것은 손님과 함께 조그만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민트와 설탕이 손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 구겨진 맥주 캔들, 벤치, 저녁식사 전조깅에 나선 이들 중 누군가가 외친다. "너 신발끈 풀어졌어!" 이들은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삼십 분쯤 뒤 브루클린 브리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쪽으로 달리고 있다면. 계속해서 달릴 생각이라면, 유기농 당근과 콜리플라워가 소박하게 진열된 또 다른 슈퍼마켓의 유리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이가 들고 있던 긴 우산이 출입구 바로 옆에 쌓여 있던 감자들을 쳐서 떨어뜨린다. "씨발!" 그가 외치고, 장바구니에 양송이버섯을 담던 손님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출입구 쪽을 돌아본다. 그런데 비가 오고 있는가? 하늘색이 검푸르게 짙어졌을 뿐, 비가 올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비는 이틀 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누군가가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사소한 사고를 발생시키는 장면과 이에 연쇄되는 장면들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 그런 것들이 삶을 재현하고 또 대표한다는 생각들. 흩어지고, 파란색, 연두색, 보라색 얼굴들이 지나간다. 이름 없이 작은 공원 한구석에 석재 체스판이 있고, 누군가 남겨두고 간 기물 하나가 원위치가 아닌 자리에 놓여 있다. 떼까마귀가 더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
- 록마주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선전으로 갈 것이다. 국경을 넘을 것이다. 아직 문 닫지 않은 카페에서 주인이 주문을 받는다. "예가체프 한 잔, 푸어오버로 부탁합니다." 카페 테이블들은 노트북을 펼친 사람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 일층 카페에 앉을 수 있다는 건 때로 행운이다. 아니, 매번 행운이다. 누군가가 대형 슈퍼마켓에서 영덕대게라 적힌 한국산 통조림을 집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대게가 욱일기 형태로 여덟 다리를 활짝 펼치고 있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발코니. 낮은 습도. 60퍼센트. 구름이 이동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전망대. 누군가가 식당 앞에서 번호표를 발급받는다. "우리 앞에 59명이 있다고?" 에스컬레이터들. 케이블카들. 들. 복수들. 바람이 드나들도록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고층 건물들. 태풍은 언제고 온다. "니세모노. 짝퉁시계." 누군가가 속삭이고, 누군가가 추락한다. 과거의 일이다. 118층에도 바가 있다. 유기농 럼과 하이네켄이 충돌하고, 음악이 있다. 광둥어와 북경어가 충돌하고, 간간히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가 뒤섞인다. 영화 같은 삶이 지나가면 영화 같은 삶이 이어진다.
<6월들>
- ... 잘 끝났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병이 제 몸을 불리고 있던 어떤 순간들에 불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 "내가 보이세요?”
이모가 저 말을 처음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엔 이모가 나를 놀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어린 시절 나를 혼내던 방법을 가지고 와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데는 물론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네 살 무렵부터 이모는 나를 맡아 키웠다. 엄마가 사고로 죽고 중동에 있던 아빠가 현지에서 재혼하면서부터였다.
- "그래도 형부 좋은 사람이야. 친자포기각서도 선선히 써주셨어. 그 권력 포기 못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게 한국 법인데 말이야."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연구해 온 이모답게 이모는 공장지대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여성들을 참 많이 봐왔다고 했다. 그들 중 일부는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주민등록을 말소한 사람도 있었 ...
-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이모가 무슨... 평생 온갖 까칠은 다 부리고 사신 양반인데... 아니, 선생님, 그러면 그, 코타르... 코타르 증후군의 증상은 그러면."
"글쎄요, 가족이라도 당사자만이 아는 슬픔도 있는 거니까요. 이 질환의 증상은 본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이들은 이미 자신이 장기가 사라졌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 당사자만이 아는 슬픔, 이라는 말에 나는 순간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낯설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는 존재라고 확신하는 병이라니... 그로부터 이모가 요양병원에 들어가기까지 1년여를 나는 자신을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죽은 이모와 함께 살았다. 자칭 영혼, 죽은 이모. 아니, 죽었지만 산 이모.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모는 그제야 자신의 '생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나 생전에 말이에요."
"응? 이모? 아... 그게, 제가 깜박했어요."
<지금부터는 우리의 입장>
- 그렇게 텔레비전 속 세상은 나에게 먼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다시 드라마가 시작되면 좋겠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엄마가 가볍게 내 등을 때렸던 기억도 난다. 아빠가 '아직 어려서 그렇지' 하고 다독였던 것도 기억난다. 이미 그때 우리 집 어른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누군가의 죽음에 가벼울 수 없던 사람들이었기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지켜보고 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갔더니 어른들이 하는 다른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어차피 백화점에 다 돈 쓰러 간 건데 뭐'라든가 '그 여자들, 그 시간에 백화점 몰려가서 뭐 했겠어' 이런 이야기들. 그때는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에도 '김여사'를 갖다 붙이곤 했다. '아줌마'는 그냥 욕이었다. ‘이모'는 식당 아주머니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여겨지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할 일 없는 여자들이 남편 돈에 기대 백화점에서 돈을 쓰다 바람나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보여주곤 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삼풍백화점의 희생자들을 그렇게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 그리고 그렇게,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삼풍백화점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학회에서 토론을 한 이후 나는 내내 내가 한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서울의 재난, 그리고 강남의 재난.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료들을 뒤적였다.
나는 삼풍백화점에 실제로 가본 적이 없다. 물론 앞으로도 난 그곳에 가지 못하고 가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기 전에 그곳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다른 건물이 들어서야 해서 위령비마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나는 이제 강남을 떠올리면 그 백화점 이름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한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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