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비채
출간 : 19.11.11
<검은 얼굴의 여우>는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첫 권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어지러운 정세 속 방랑하는 젊은 엘리트 '모토로이 하야타'를 주인공으로 기이한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시리즈. 다만 사건들은 인간의 이야기인 경우도 있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마물의 이야기인 경우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어떻게든 납득이 가능한 설명을 제공하려는 <도조 겐야 시리즈>와는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듯.
물론 일본 지방 고유의 풍습과 괴이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는 <도조 겐야>와 어지러운 국제 정세와 사회 현상 속 기이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는 <모토로이 하야타>는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고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현재까지의 발표작이 각각 흑, 백, 적이라는 점.
<검은 얼굴의 여우>
<하얀 마물의 탑>
<붉은 옷의 어둠>
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청'이 될 것이다.
참고로 본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죽은 자의 녹취록(구. 괴담의 테이프)>에 <검은 얼굴의 여우>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 책도 읽어보시길. <녹취록>의 미쓰다 신조가 <검은 얼굴의 여우>를 집필하는 동안 겪는 으스스한 일들이 단편식으로 담겨 있다. 처음에는 <도조 겐야 시리즈>로 쓰려 했었지만, 역시 새로운 시리즈로 발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개작했다고.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력 착취 같은 민감한 부분이 담겨 있지만 읽다 보면 집단으로서는 물과 기름이지만 개인으로서는 모두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미묘한 관계들은 후속작 <붉은 옷의 어둠>에서도 이어지는데, 각자의 입장 및 바람을 이해는 하지만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니 읽기 전 숙고하시기를.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리즈는 아니다.
먼저 호러나 미스터리 어느 쪽에도 확실하게 소속되지 않고, 주제나 사건들이 꽤 무겁고 사회적인 편이라 어떤 점에서건 입맛이 씁쓸해지게 된다. 비슷한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도조 겐야 시리즈>가 있기 때문에 비교가 되는 것도 있고.
다만, 내가 한국인 독자이기 때문에 불편해지는 바로 그 지점이, 반대로 일본인 독자에게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여러모로 미쓰다 신조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 권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시리즈.
그의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다가 찾아 읽고 싶어 졌을 때 시작하셔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끝.
- 객차를 끌고 가는 증기기관차의 검은 연기 너머 연지색으로 물든 저녁 하늘을 본 순간, 모토로이 하야타는 충동적으로 다음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가고시마까지 가는 차표였지만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오사카에서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숙집에서 퇴거한 그는, 조금 큼직한 손가방 하나에 짐을 꾸려 역까지 간 뒤에야 비로소 "자, 그러면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 지금부터 나는 정처 없이 떠돌게 되는 건가.
다시 생각해 보니 저 북쪽 이와테 현의 기타카미가 적당하겠다 싶었다. 옛날부터 사연 있는 자가 흐르고 흘러 도달하는 곳은 대개 북쪽 땅이다. 기타카미를 한자로는 '북쪽으로 올라간다'라고 쓰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저 북쪽으로 낙향한다'는 심경이 아닐까. 북쪽 나라는 어둡고 춥다는 고정관념도 영향을 주고 있으리라.
- 인공호수 '남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수에 놓인 다리 너머의 고지대가 환희령이고, 그곳에 세워진 새로운 시대의 배움터가 바로 건국대학이었다.
신경 역에서 대학까지 가는 내내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에 신입생으로서 만주로 간 모토로이 하야타는 얼마나 마음이 설렜던가.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는 비좁은 공간을 빼곡하게 메운 수많은 노점과 그 사이를 바느질하듯 바글거리는 노동자 느낌의 남자 무리뿐이었다. 어디에 눈길을 주어도 대륙의 광대함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농밀한 난잡함이 떠돌았다.
- 어째서 만주국 신경특별시가 떠오른 걸까.
하야타는 다시금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저녁 햇살은 색채라도 비슷했다. 실제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기억 속 석양과 일치했다. 하지만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역 앞 광경 중 어느 곳도 신경특별시와 유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건 패전 후 일본 각지에서 지긋지긋하게 본, 말하자면 낯익은 풍경이다.
환경이 아니라 심경일까?
억지로 공통점을 찾는다면 양쪽 다 하야타가 결의를 품고 처음 방문한 땅이라는 점이다. 다만 만주국 신경특별시에서는 희망에 불탔지만 여기서는 다 타고 남은 유해가 간신히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하야타가 극심한 격차에 새삼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기운 넘치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형씨 일거리 찾는 거 아뇨?"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하야타 곁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요, 그냥..."
남자는 어정쩡한 하야타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고는 거리낌 없이 하야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일을 할 거라면 우리 '야마'가 제일이야. 경험이 일천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거든.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다른 곳보다 힘도 덜 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심지어 급료도 짭짤해. 진짜 추천한다고."
- 일방적으로 말을 걸어온 모집꾼 같은 남자는 마흔 살 전후로 보였다. 주위 노동자에 비해 체격은 조금 밀리지만 거친 분위기는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다들 험상궂은 표정인데 그는 미소를 짓고 있다.
"여기서만 하는 얘긴데 아주 지독한 야마도 있어."
남자의 가느다란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 데 끌려가기 전에 날 만났으니 운 좋은 줄 아셔."
- 야마가 탄광을 가리키는 말이며 남자는 새 탄광부를 모집하는 모양이라는 것은 하야타도 알 수 있었다.
머지않아 일할 필요가 생기면 야마, 그러니까 탄광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야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전쟁 전부터 탄광부는 가혹한 조건에서 힘들게 일하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의 말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편한 노동은 결코 아닐 것이다.
- 나쓰메 소세키의 <광부>는 광산 노동자를 소재로 한 1908년 작품인데, 주인공 청년은 그곳 남자들을 "세상에 노동자 종류는 많지만, 그중 가장 괴롭고 가장 하등한 것" "인간이라 받아들일 수 없는 동물" "반인반수" "땅 파는 재주뿐인, 인간인지 흙덩이인지 알 수 없는 것" "인간 기계이자 기계 짐승" 등으로 간주했다. 비단 작품 발표 당시에 이 청년만이 가진 특별한 차별 의식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광부에 대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물론 광산과 광부에 대한 편견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였다.
- 탄광부 일을 해보자.
그럼에도 하야타는 문득 결심했다. 자포자기한 것도, 전부 체념한 것도 아니다. 옛날부터 탄광 일은 밑바닥 노동이라 멸시받으면서도 시대마다 국가의 산업과 경제를 훌륭히 지탱해 왔다. 그런 일을 하면 전쟁 중에 잃어버린 일본인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 "자, 얼른 이쪽으로 오라고."
하야타가 별다른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모집꾼 남자는 금세 군중을 헤치면서 걷기 시작했다. 하야타가 승낙했다는 듯 자신만만해 보였다. 어쨌든 하야타도 결심은 한 상태였으므로 남자의 태도에 불만은 없었다. 얌전하게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남자는 당당하게 앞서가면서도 계속 흘끗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게다가 눈빛이 날카로웠다. 하야타가 중간에 도망칠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술렁였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이내 짜증스러워졌다. 견딜 수 없이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북적이는 역 앞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 구석. 그곳에 낡고 지저분한 트럭이 몇 대나 세워져 있었다. 불쾌감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트럭 짐칸에 석탄 덩이와 함께 많은 남자들이 실려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체격은 튼실했지만 그림으로 그린 듯 하나같이 기개 없는 표정이어서 포획된 동물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생기가 없다.
감옥방.
예전에 읽은 하시 몬도(일본의 소설가)의 단편소설 제목이 문득 떠올라 하야타는 당황하면서 저도 모르게 경계했다.
다수의 노동자를 비좁은 방 하나에 밀어 넣은 뒤 모든 생활을 통제하며 값싼 임금으로 부려먹고, 저항이라도 하려 하면 폭력을 휘둘러 말을 듣게 만든다. 요컨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서 오가는 돈을 착취하는 구조가 감옥방이다. 전쟁 전 홋카이도에서 이루어진 도로나 철도 건설 때 감옥방이 유명했다. 그곳에서는 노동자를 '문어'라고 불렀기 때문에 '문어방'이라고도 했다. 열악한 의식주하에서 가혹한 육체노동을 강요당하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일이었다.
-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길게 찢어진 두 눈에 쭉 뻗은 콧날. 꼭 다문 입술에 얼굴상은 여자로 착각할 만큼 갸름했다. 동시에 왠지 미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 느낌의 정체를 좀처럼 알 수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오싹해질 정도였다.
"저기..."
하야타가 영문을 몰라 당황하면서도 입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가로막듯이 말을 이었다.
"인파 속에서 찾느라 고생했습니다.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쪽에는 제가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어서 가시죠."
그러면서 남자는 하야타의 팔을 붙잡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 "어허, 잠깐."
모집꾼 남자가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날카로운 시선으로 갑작스러운 난입자를 노려본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가만있지 않겠다는 기척이 온몸에서 풍겼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곱상한 남자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자연스러운 태도에 모집꾼 남자 쪽이 말문이 막혀버렸다.
- 곱상한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약간 붉은 기운이 돌았다. 차분한 태도와 달리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야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고 다시 숨을 삼켰다.
남자의 콧등에서 왼쪽 뺨에 걸쳐 뭔가에 베인 듯한 흐릿한 흉터가 있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흉터 때문에 용모에 요염함이 더해졌음은 틀림없다.
- 하야타도 마냥 넋을 잃은 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일부러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음을 깨닫고, 낯선 남성에게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에 편승하기로 했다.
"혹시 구마가이 씨에게서 들은 시각을 착각하신 게 아닐까 걱정하던 참입니다."
순간적으로 건국대학 동기 구마가이 신이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구마가이는 자기가 아버지와 형제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 거의 왕래가 없는 사촌 한 명과 꼭 닮았다며 하야타에게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눈앞의 남자를 보는 동안 어째서인지 구마가이가 떠올랐다.
하야타의 재치를 남자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구마가이 씨는 잘 계십니까?"
곧바로 말을 맞추기 시작해서 하야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 "아니, 전혀 다른 현의 구나바라라는 지방에 있어. 여기 야코야마에서는 꽤 멀지. 인근에는 악평이 너무 퍼져서 좀처럼 새 탄광부가 모이지 않으니 저렇게 다른 지방까지 출장 와서 외지인을 데려가는 모양이야."
남자의 설명을 듣고 하야타는 비로소 자신이 내린 곳이 야코야마라는 지역임을 알게 되었다.
"호쿠우치 갱에는 감옥방 같은 게 있습니까?"
"그렇게 부르지는 않지만 지금도 나야 納屋 제도가 살아 있는 곳이니..."
낯선 표현에 당황하자 남자가 알려주었다.
“나야 제도는 메이지 시대(1868년에서 1912년)에 생긴 건데 말이지."
- 탄광 갱내에서 하는 노동은 가혹하고 위험한 데다 사회적으로도 멸시받았기에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면 회사가 난처해진다. 그래서 '나야가시라'라고 부르는 알선업자가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를 모아 하나의 조를 만들고, 각 조 단위로 탄광회사와 계약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 요컨대 나야 제도란 안정된 인력 공급을 위한 체제다.
- 이 제도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대다수 나가시라가 사람을 모을 때 감언이설로 꼬드긴다는 것이었다. 보수는 높고 현장은 안정적인 데다 주거 환경도 우수하다며 아주 대우가 좋다고 강조했다. 물론 다른 야마보다 조건이 좋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한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끌려가보면 비좁고 지저분한 공동주택, 일명 '나야'에 들어가서 개인의 자유가 전혀 없는 상태로 소처럼 강제로 부려 먹힌다. 급여를 받아봐야 나야가시라에게 웃돈을 뜯기는 데다 이불 값이다, 식비다, 무슨 대금이다 하며 불합리한 비용까지 착취당해 수중에 남지 않는다. 그런 무시무시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탄광부는 탄광에서 일하지만 회사에 고용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가시라와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조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회사는 간섭하지 않는다. 아니, 하청 노동자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처음부터 관여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탄광부 중에는 탈주를 꾀하는 사람도 많았다. 흔히 '내뺀다'라고 했다. 다만 도중에 붙잡히면 본보기 삼아 린치를 당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주다.
- 감옥방과 다를 바 없는 체제가 전쟁 전 탄광에서는 버젓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조 내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때로는 살인사건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해서 회사 측도 골머리를 앓았다. 아무리 나야 제도가 자본 측에 편리해도 너무 문제가 많았기에 대형 탄광회사에서는 의외로 일찍부터 폐지에 착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소규모 탄광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기는커녕 인권 문제 때문에 전쟁 후에 폐지되었는데도 몰래 유지하는 곳도 존재했다.
- "응?"
"분명 앞으로 그 모집꾼과 얼굴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이렇게 역 앞에 올 일이 또 있다면, 절대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 그렇겠지."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 응."
"어째서죠?"
남자는 하야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뒤에 가만히 말했다.
"어떤 사람이 기억났기 때문이야."
"어떤 분인가요?"
그러자 잠시 공백이 있었다.
"... 아이자토 미노루라고 해."
갑자기 남자가 이름을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도착하자마자 그런 남자가 말을 걸어오다니 당신도 참 고생이 많군."
"정말 아이자토 씨 덕분에 살았지요."
"아니, 무슨 말을. 정말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아이자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모집꾼 남자가 말을 거는 당신을 봤을 때, 아주 오랜만에 정남선이라는 청년이 떠올랐어..."
"조선분이로군요."
하야타의 반응에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지 아이자토가 미심쩍다는 얼굴을 했다.
"저도 조선인 친구가 몇 명 있습니다."
하야타가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지만 쓸쓸한 미소만 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정남선과 나의 관계는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
"어떤 관계였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아이자토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좋을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아이자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시늉을 하다가 갑자기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을 보이더니 말했다.
"꼭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으려나. 당신과 그 남자를 봤을 때 느낀 그대로 말하면 될 테니."
상대의 말투에 하야타는 불현듯 불안을 느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러자 아이자토가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말하자면 정남선이 당신이고 알선업자가 나였지..."
- "많은 일본인이 제등 행렬을 벌이며 축하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국민은 전쟁의 실상을 몰랐습니다. 군부와 정부에게서 거짓 정보만 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이자토가 살짝 한 손을 들며 말했다.
"이야기 도중에 미안한데,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대강 알았어. 그렇다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 사람들은 징용이든 징병이든 타국의 전쟁 같은 데 협력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하야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랬겠군요.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당신이 그렇게 낙심할 건 없어."
의외의 반응 때문에 아이자토는 하야타라는 인물에게 이제까지 느낀 것 이상으로 흥미를 느낀 듯했다.
"이렇게 표현하면 조선 사람들이 화내겠지만, 빨간 종이(이차대전 당시 일본의 소집영장을 뜻하는 은어. 빨간 종이에 인쇄되어 있었다) 한 장에 전쟁터로 끌려가서 개죽음당한 일본의 젊은이도 징용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끌려와 가혹한 노동을 하게 된 조선의 젊은이도 본인 입장에서는 다를 건 아무것도 없겠지."
"그 말씀에 틀린 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 학교 성적이 좋았던 하야타는 일찍부터 교사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알기에 그는 고민했다. 진학하더라도 일하면서 통학할 필요가 있다. 입시를 치를 대학을 정할 때 일자리도 함께 알아봐야 한다. 일단 입학한 뒤에 생각하자고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가 좀처럼 믿기지 않는 어느 대학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재학 중의 비용은 나라에서 지불한다"라고 정해진, 만주국의 건국대학이었다.
- 1932년 일본제국은 '민족협화 民族協和의 왕도낙토'를 주장하며 중국 만주에 만주국을 건국한다. 민족협화란 일본계와 만주계(한족과 만주족), 그리고 조선계와 몽골계에 의한 민족자결을 가리킨다. 오족협화 五族協和 -건국대학에는 러시아계도 재학했다- 와 왕도낙토가 만주국의 건국이념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관료와 군벌, 그리고 다양한 이권에 이끌려 만주로 넘어온 기업 등이 이 땅을 완전히 일본의 괴뢰국가로 만들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식민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 이 모습에 분노를 느낀 제국육군의 이시와라 간지는 만주의 재건을 결의한다. 그는 '제국육군의 이단아'라고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미국과 백인을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대동아전쟁에는 끝까지 반대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에게 만주국이란 아시아인이 공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여야 했다. 그곳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 젊고 우수한 인재를 키워서 만주국의 가까운 미래에 희망을 걸자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 이시와라 간지는 건국대학을 창립했다. 물론 이시와라 한 사람의 힘만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정력적 활동이 없었다면 건국대학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1938년 건국대학이 개교한다. 일본 대학의 예과본과에 들어가기 전의 예비 과정에 해당하는 전기 삼 년과 학부에 해당하는 후기 삼 년, 총 육 년이 수업 연한으로 정해졌다. 1학년의 정원은 백오십 명으로, 그 반수를 일본인이 채웠고 삼분의 일은 한족과 만주족, 남은 육분의 일이 조선인과 몽골인과 러시아인이었다.
건국대학의 사명은 동아시아 다섯 민족의 우수한 자제를 한 곳에 모아 공동생활을 보내게 하며 교육해서 새로운 국가에 어울리는 인재로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재학 중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부 국가에서 지불했다. 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학은 전원 기숙사제이고, 물론 방세도 식비도 전혀 들지 않았다. 사비가 들기는커녕 교복과 교과서도 무상에 매월 약간의 용돈까지 지급되었다. 그야말로 고학생에게는 꿈같은 배움터였다.
물론 그렇기에 입학이 어마어마하게 어렵다고들 했다. 개교 이래 매년 합격자는 현에서 한두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문이 좁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꿈이 존재했다. 당시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이상이 있었다.
- 건국대학 학생들은 그렇게 간주했으므로 진로에 납득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눈에 거슬리는 대학을 짓밟기 위한 음모가 아닐까 의심까지 했다.
최종적으로는 대동학원에 석 달을 다니게 되었으나 결코 헛수고는 아니었다. 대동학원에서는 학생을 각 지방에 흩어진 관공서로 보내 그곳 실무를 체험하게 했는데 이 연수가 이후 1기생 업무에 도움이 된 것이다.
- 이윽고 모든 이의 부임처가 정해졌다. 자진해서 벽지 관공서를 희망한 일본인도 있었다. 건국대학에서 배운 대로 지방 농민과 만주국을 기초부터 다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부모가 걱정했지만 결의는 변하지 않았다.
그해 10월 대학과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징병유예가 철폐되었다. 이 년 전부터 유예범위는 좁아졌지만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 물론 건국대학 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야타는 학교생활 삼 년째를 맞이하지 못하고 학도출진병이 되었다. 그는 육군 선박부대에 입대했다. 통칭 '아카쓰키 부대'라 불린 이 부대는 육군의 해상수송을 지휘하는 조직으로, 하야타는 히로시마 우지나에 있는 육군 선박포병 교도대 敎導隊에 들어갔다.
- ... 말을 사용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신이 알아듣지 못할 우려가 있다.
대개 탄광이나 광산에서는 오야마쓰미노미코토 大山紙命를 수호신으로 여겼다. 농촌과 산촌에서 산신님은 일반적으로 여신이기 마련인데, <고사기>에서도 <일본서기>에서도 남신인 오야마쓰미노미코토가 산을 다스린다고 했다. 이 차이는 아주 흥미롭다. 다만 지명에 여우 '호 狐' 자가 들어가는 야코야마 野狐山 지방 탄광에서는 여우신을 모셨다.
이 신은 곡식을 관장한다는 여우신 이나리와는 조금 달랐다. 하얀 여우님과 검은 여우님, 두 신을 모셨기 때문이다. '백여우님' 혹은 '백신님'으로 모시는 여우신은 풍요의 신이다. 농촌과 산촌에서는 결실과 수확을 의미하는데 탄광에서는 당연히 석탄 채굴량 증가로 연결된다. '흑여우님' 혹은 '흑신님'으로 두려워하는 여우신은 흉작의 신이다. 여기서는 갱내에서의 모든 사고를 의미했다.
- 하얀 여우가면과 검은 여우가면을 모신 사당을 보면서 하야타는 대학에서 접한 '민속학'이라는 학문을 오래간만에 떠올렸다.
탄광에 처음 왔을 때 이 정도로 민속 채방 採訪에 어울리는 생생한 현장도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업무 사이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노트에 정리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학문은 가능하다. 건국대학에서 하던 실습과 마찬가지다. 하야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 기뻤다. 게다가 민속학이란 수집한 전승을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 아이자토의 심경은 추측하고도 남았다.
형을 연상시키는 조선인 청년에게 못한 배려를 하다못해 하야타에게는 해주고 싶다. 그러는 한편으로, 탄광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싶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정남선은 강제로 끌려와 탄광에서 일했지만 하야타는 본인 의지로 탄광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자토의 심정을 이해하는 만큼 하야타도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도 같은 탄광에서 일하고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아는 탄광부가 늘어난다. 머지않아 집까지 놀러 갈 정도로 친해지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야타에게는 그런 친구가 두 명 생겼다. 그중 한 명이 난게쓰 나오마사였다.
- 난게쓰는 마흔을 넘긴, 탄광 경력이 오래된 탄광부지만 넨네 갱에서는 삼 년째라서 이 갱의 고참은 아니었다. 이런 점도 하야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했지만, 나이나 근속연수에 관계없이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는 한 권의 책이었다.
- 아이자토와 1번방 작업을 마치고 갱내에서 올라와 목욕한 뒤, 독신자 기숙사 근처 식당에서 무료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목욕을 갓 마친 아이자토의 얼굴에는 대개 그 흉터가 흐릿하게 떠올라 있다. 사연을 물어도 "명예로운 부상이 되지 못한 상처라고 할까" 하고 쓸쓸하게 대답할 뿐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기된 그의 얼굴에 난 흐릿한 자국을 볼 때마다 하야타는 어째서인지 가슴이 술렁였다. 단정한 용모를 무너뜨리는 한 줄의 선이 묘하게도 요염하게 보였다. 잠깐 방심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보게 될 것 같았다.
- 그래서 언젠가부터 하야타는 목욕 후에 책을 읽게 되었다. 되도록 아이자토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도록. 사실은 바라보고 싶지만, 그것을 참기 위해서.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은 태어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독서 자체는 아주 좋아했으므로 이내 목욕하고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날 하야타가 읽던 책은 야나기다 구니오의 <산의 인생>인데, 그 모습을 보고 난게쓰 나오마사가 말을 걸어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집에 가볼래?"라는 권유를 들었다. 아이자토도 그러라고 해서 난게쓰의 탄주를 방문했는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다른 탄광부 방에서는 볼 수 없는 책장이, 작가는 해도 실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게다가 책은 책장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많아서 방바닥 여기저기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 난게쓰가 갑자기 데려온 손님을 소개하자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당황하며 인사하더니 집 안에 흩어져 있는 책을 서둘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쓰요, 진정해. 하야타 군은 책을 좋아하니까 신경 쓸 거 없어."
난게쓰는 웃으면서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야타를 향해 손짓했다.
-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말한 건 맨 처음 것만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야."
"사고를 당한 게 아니었기 때문... 가요?"
하야타의 지적에 난게쓰는 만족스러운 듯 끄덕였다. 하지만 곧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첫 번째 이야기를 띄엄띄엄 하기 시작했다.
- 쇼와 시대(1924년에서 1989년 초), 스무 살 전후의 난게쓰 나오마사는 선산부로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다만 좀처럼 호흡이 맞는 후산부를 얻을 수 없어 아쉬워하고 있었다.
선산부란 갱내 깊숙한 막장에서 채탄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선산부가 캐낸 원탄을 막장에서 반출해 탄차에 싣는 것이 후산부의 일이다. 궤도차가 없던 시대에는 장대 앞뒤로 매단 숯바구니나 '스라'라고 부르는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 혹은 양철 상자에 석탄을 넣은 다음 후산부가 직접 메고 운반했다. 이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사실 여성이 많았다. 선산부 아내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아이들이었다. 한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 부부거나 가족이었다.
그래서 난게쓰 같은 독신자는 짝이 될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선산부가 채탄에 힘을 쏟아도 막장에서 실어 나르는 후산부가 우둔하면 작업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난게쓰는 오랫동안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짝을 찾았지만 이 사람이다 싶은 후산부를 도무지 만나지 못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난게쓰는 기간갱도 4편의 바닥 막장이라고 불리는 가장 깊은 현장에서 혼자 채탄을 하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곧바로 돌아본 그는 꺄악 하고 여자 같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새까만 얼굴의 여우가 서 있었다.
- 산신님이 나타났나 두려워 떨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엎드릴 뻔했다. 그런데 헬멧에 달린 캡램프 불빛 속에 떠오른 여우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초라한 옷을 입은 인간처럼 보였다. 그것도 젊은 여자 같았다. 주뼛주뼛하며 다시 얼굴을 살펴보다가 여우가면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는 부끄러움에 난게쓰는 버럭 고함을 치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깊은 땅속에서 이 여자는 여우가면을 쓰고 뭘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전혀 다른 두려움이 엄습했다.
- 난게쓰의 놀라움이 두려움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여우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가면 아래로 엿보이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봤다가는 눈이 멀어버릴 거라는 공포심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음속 갈등과는 반대로, 크게 벌어진 두 눈동자는 그녀의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검은 가면 아래서 나타난 것은 여우님도 여우괴물도 아니었다. 투명한 듯 새하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이었다.
- 이런 미인이...
이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쓰레기통 속 장미 같았다. 탄광에서 일하는 여자도 많았고 개중에 젊고 실력 있는 여자도 있기는 했지만,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같은 여자라도 아예 그릇이 다르구만...
야마의 여자에게는 결코 없는 기품이 그 여자에게서 풍겨 나오고 있다. 게다가 기품 속에서 색향도 아른아른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땅 밑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니 난게쓰가 어리둥절해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당신의 후산부로 일하게 해 주시겠어요?"
예상 밖 제안에 난게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뜬금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금방 기쁨이 몰려왔다. 이런 미인이 짝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저쪽에서 제안해 왔다. 내게도 좋은 날이 왔다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왜 여우가면을 썼는지 몹시 신경 쓰였다. 게다가 하필 흉작의 신이라 두려움을 사는 검은 여우님이다. 그런 것을 갱내에서 쓰다니 도무지 제정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다 사소한 문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게쓰는 그런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 뭔가 볼 때마다 길흉을 따지는 것이 탄광부 아니던가.
- 흘끗흘끗 난게쓰가 가면으로 시선을 준 탓일까.
"이 가면 원래는 하얀색이었어요."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표면을 한쪽 손바닥으로 닦자 과연 그 아래로 하얀색이 드러났다. 원탄 때문에 검게 더러워진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손이 가면에서 떨어지자마자 도로 검어진 듯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어쨌든 하얀 여우님 가면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럼 이 정도 미인의 제안을 두고 마냥 고심할 필요도 없다.
- 정말이지, 좋은 여자와 만났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꼭 탄광 일에 관해서만은 아니었다. 깊은 땅속 어둡고 비좁은 막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안 어느샌가 두 사람은 남녀관계가 되었다. 그럴 때는 몇 군데나 있는 옛날 굴 중 한 곳을 이용했다. 채탄으로 생긴 동굴 가운데 방치된 것을 옛날 굴이라고 불렀다. 위험해서 진입은 금지되었지만 그래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갱내에 조명은 안전등과 캡램프뿐이다. 그런데도 마이리의 새하얀 피부는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요사스럽게 떠올랐다. 물론 노출된 얼굴과 팔다리는 석탄 때문에 검게 더러워져 있다. 그러나 풍만한 두 가슴에서 잘록한 허리를 거쳐 약간의 거웃에 덮인 음부까지의 하얀 빛깔이 눈부실 정도였다.
시커먼 먹물을 뿌린 것처럼 또렷한 암흑의 세계에 비치는 하얀 피부를 보자 난게쓰는 참을 수 없어졌다. 석탄으로 뒤덮인 검은 손이 탄력 있는 새하얀 살결을 더듬고, 풍만한 가슴을 주무르고, 요염한 넓적다리를 쓰다듬는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피부가 금세 검게 ...
- 난게쓰가 고개를 젓자 야마오가 알려주었다.
"지주 기둥에는 신이 모셔져 있어. 그래서 덮지 않고 죽은 사람을 옮기면 육체는 갱 밖으로 나가는데 영혼은 나가지 못하고 갱내에 머무르게 돼. 그 영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떠돌지. 요소요소에서 쇠붙이를 두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야. 죽은 사람에게 장소를 알려서 유도해주지 않으면 영혼이 갱내에서 길을 잃어서 육체와 함께 승갱 할 수 없게 돼. 자기가 죽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영혼만 땅속에 남는 거지."
"죽은 자의 혼이 갱내에 남으면 대체 어떻게 됩니까?"
안 좋은 예측을 하면서도 난게쓰가 조심조심 묻자, 야마오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해 보였다.
"그야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예를 들면..."
"갱도의 안전등이 꺼졌다 켜졌다 해. 갱목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하고, 갱도를 걷는데 저 앞쪽에 푸르스름한 불꽃이 깜빡이기도 해. 막장에 있는데 갑자기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든가. 더는 들어갈 일 없는 옛날 굴에서 깡, 깡, 하는 곡괭이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지. 자기 뒤쪽이나 앞쪽의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도 없어. 그리고 문득, 뭔가가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가는 거야."
- "사고를 일으키기도 합니까?"
"그게 제일 무섭지. 다만..."
야마오는 다시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다.
"때로 일을 거들어주는 경우도 있어."
"네?"
각오는 했지만 난게쓰는 동요했다.
"그런 경우에는 무슨 일을 맡고 있더라도 한몫 제대로 벌게 되지. 그래서 주위에서는 아주 이상하게 여기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본인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던 중에 말을 흘리게 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겠지. 다만 거들어주는 게 어디의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애초에 본인도 모르고. 게다가 갱내에서밖에 만나지 못한다고 하지. 그런데 그 녀석을 갱내에서 봤다는 탄광부는 역시 한 사람도 없어."
난게쓰가 묵묵히 있자 야마오는 빤히 응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무 늦기 전에 주위에 밝혀야 했던 거야."
"무슨 의미인가요?"
그렇게 물으면서도 난게쓰는 몸속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윽고 그 녀석이 거들어준 대가를 요구해 오기 때문이지."
- 난게쓰는 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지금도 오한이 느껴져. 그대로 갱내에 내려갔으면 그 뒤에 어떻게 됐을지..."
전율과 안도가 섞인,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난게쓰의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기에 하야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아니. 형씨에게는 시시한 괴담이었을까."
묵묵히 있는 신입을 배려했는지 상대가 머리를 긁기 시작해서 오히려 하야타가 더 당황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난게쓰 씨의 체험담이니까요. 게다가 옛날 탄광의 관습은 학생시절에 읽은 유메노 규사쿠의 단편 <사갱>의 묘사와 꼭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 "1922년에 <백발 꼬마>라는 동화를 발표한 후쿠오카 출신의 작가입니다. 다만 첫 작품 때는 필명이 달랐고, 1926년에 <신청년> 현상에 응모해서 2등으로 입선한 <아야카시의 북>부터는 탐정소설가로 간주됩니다."
"탐정소설이라 하면 전에 주에쓰 지방의 야마를 무대로 한 작품을 잡지에서 읽었지."
"오사카 게이키치의 <갱귀> 말씀이군요. 하지만 그쪽이 윤리성을 중시한 본격 탐정소설인데 비해 유메노 규사쿠의 작품은 대부분 기괴하고 환상으로 채색된 내용입니다."
-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뭔가요?"
"어쩌면 땅속에서 검은 여자가 다음 젊은이를 찾고 있어서, 그 오싹한 기척을 형씨가 민감하게 알아차린 증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
- 그런 남자들에게 담배를 팔고서 성냥으로 불을 붙여준 뒤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다음 손님을 찾는, 왼쪽 손목이 불편해 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다들 '기도'라고 부르는데, 그건 일본식 이름이고 사실 그는 조선인 박 씨였다.
- 그는 전쟁 중에 조선반도에서 실시된 대일본제국 국민징용령에 의해 전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왔다. 그때 일하던 탄광에서 탄차 탈선사고에 휘말려서 왼쪽 손목을 크게 다쳤다. 탄광에서 병이나 부상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된 자는 누구든 곧바로 쫓겨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 씨는 퇴원한 뒤에 그 문제를 아주 능숙하게 헤쳐 나온 듯하다. 어쨌든 자잘한 잡무를 혼자 떠맡았고 차차 탄광 내에서 자신의 일을 늘려나갔다. 그래서 모두 언젠가부터 그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전쟁 후 조선인 귀국이 많았을 무렵에는 어느 탄광에서도 고용해주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연줄을 이용해 누쿠이 탄광의 넨네 갱에 들어와 '기도'란 이름으로 옛날처럼 일을 시작했다. 조선 성씨인 '박 朴'의 한자를 분해하면 '목 木' 자와 '복卜'자가 되는데, '복卜' 자를 '호 戸' 자로 바꿔서 '기도 木戸'로 한 듯했다. 이곳에서도 기도는 직원, 광부, 탄광 주택에 사는 부부의 심부름 등을 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그런 기도에게 입갱 전 탄광부는 담배를 팔기에 딱 좋은 상대였다.
- 누쿠이 광산이 이 땅에 넨네 갱을 열기 전, 기라 고조는 여기서 '너구리굴'을 파고 있었다. 지금의 이나리 신사 주변에 오두막을 세우고 숙식하면서 채탄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무서울 정도로 한적한 장소였다는데 그 점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신사는 항상 깨끗하게 관리되지만 경내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잡초에 뒤덮인 산이 펼쳐졌을 뿐이라 정말 여우에라도 홀린 듯한 분위기가 있다.
- '너구리굴'이란 손으로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 석탄층에 뚫은 구멍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지표면에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석탄의 노두(광맥이나 석탄층 등이 땅거죽 위로 드러난 부분)가 드러나 보였다. 석탄 채굴의 역사는 이런 노천광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농민들이 어디까지나 장작 대용으로 채취했으므로 구멍 폭이 넓지도 깊지도 않았다. 이윽고 채탄을 목적으로 하는 자가 나타났고, 석탄층을 쫓아 땅속 깊숙이 구멍을 뚫게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 번듯한 탄광 같지만 실제로는 많아야 열 명, 적으면 세 명 정도가 작업하는 작은 탄광이 많았다. 아니, 작은 야마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까. 대형이나 중규모 탄광에서 이미 공기 착암기를 도입하는 시대에, 작은 야마에서는 곡괭이 한 자루로 석탄을 캤다. 갱내 조명도 어두컴컴한 카바이드등뿐이다. 기업처럼 자금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소규모 야마는 대부분도굴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작업할 수 없다는 사정도 있었다.
다만 넨네 지역은 원래 기라 고조의 조상이 소유한 땅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도굴이 아니지만 파낸 것은 너구리굴에 지나지 않았 ...
- "당신이라면 하쓰코를 시집보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깜짝 놀라 말을 잃은 하야타에게 하쓰요는 계속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자토 씨가 막 왔을 때도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 사람은 어딘가 그늘진 구석이 있지. 그게 대단한 매력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늘은 없는 편이 좋아."
일방적으로 멋대로 이야기하더니 깔깔 웃었다.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하야타가 주문한 정식 쟁반에만 작은 그릇에 담긴 요리가 붙어 나와서 그를 곤혹스럽게 했다. 아무래도 하쓰요가 덤으로 준 듯했다.
- 특별대우를 눈치챈 아이자토가 가만히 말했다.
"나도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지."
"그, 그러십니까."
하야타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하쓰요가 우스우면서도 난처한 존재로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셨나요?"
"고맙게 먹었지 뭐."
요컨대 사양 말고 덤으로 준 음식을 먹었지만 하쓰요와 관계를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뜻인 듯했다.
- 그런 경위가 있었기 때문일까. 하쓰요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 때도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평소에는 기운차게 행동하는 만큼 묘하게 귀엽게 느껴졌다.
- 처음에는 모두 그저 술버릇이 나쁜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기타다 주위에는 금세 행실불량한 사람이 모여들어 있었다.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하야타에게는 술버릇이든 성격이든 다를 바 없었다. 요컨대 하쓰코를 향해 던진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하쓰코가 불쌍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항의하려 하는데 또다시 아이자토가 작은 목소리로 말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싸움의 씨앗을 뿌릴 뿐이야."
"하지만..."
"야마에서는 흔한 장난에 지나지 않아. 저 여자도 그걸 아니까 상대해주지 않는 거고. 다시 문제 삼으면 틀림없이 저 여자만 곤란해질 거야."
- 지당한 의견이어서 하야타는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것도 아닐 텐데 기타다가 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느 쪽에선 여자가 아니라 남자끼리 꺅꺅거리고 있지 않나?"
"그게 어디일까요?"
스자키 유키노리라는 젊은 탄광부가 부추기듯이 맞장구쳤다.
"탄주 어딘가지. 곱상한 남자 둘이 같이 사는 방이던가? 방에서 자는데 그런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드는 거야, 글쎄."
기타다가 하야타, 아이자토와 같은 1호동에 산다는 건 모두 안다.
명백한 시비다.
"그런데 어느 쪽이 여자 역할인지 잘 모르겠단 말씀이야."
"그야 대학물 먹은 쪽 아닐까요?"
다시 스가자키가 장단을 맞췄다. 이 남자는 하야타보다 연하로 보였지만, 아무래도 하야타와 아이자토의 존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지금껏 몇 번인가 시비를 걸어왔다. 그래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언동이 아주 어린애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자토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진지하게 상대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느꼈을 정도다.
두 사람에게 무시당한 모양새가 되어서 스자키는 별로 재미가 없었으리라. 그런데 기타다 기헤이가 나타났고, 하야타와 아이자토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얼씨구나 하고 맞장구친 것이 틀림없다.
- 하야타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타다가 내뱉은 말이 귀에 들어온 순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대학에서 뭘 공부했는지 원."
하야타는 아이자토가 제지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시시한 얘기는 그만 좀 하지."
조용한 목소리가, 하지만 기타다 패거리가 입을 딱 다물어버릴 정도로 박력 있는 질책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니 오토리야 시게카즈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쟁 중에는 육군에서 오장(지금의 하사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근무했고, 인도 버마에서 '우'호작전(연합국 측에서는 임팔전투, 임팔작전으로 부른다)에 참전한 서른 전후의 남자였다.
- '우'호작전은 중국의 장개석을 원조하기 위한 연합군의 보급선 '원장루트'를 끊기 위해 인도 동부의 요충지인 임팔에서 결행된 군사작전이다. 그래서 연합군은 임팔작전이라고 불렀다. 너무나도 허술한 계획 탓에 후방 보급이 두절되어 일본군은 대패를 당했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작전의 생존자라는 사실만으로 여기서는 모두 오토리야에게 경의를 표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기타다조차 오토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무시무시한 얼굴로 노려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오토리야의 한 마디로 멋지게 정리되었다.
- 하지만 기타다는 그 후로도 트집을 멈추지 않았다. 하야타와 아이자토가 화를 내지 않으니 끈질기게 시비를 걸어온다. 하야타는 이미 인내력이 바닥났지만 아이자토 앞이라 어떻게든 견뎠다. 게다가 오토리야가 없을 때에는 그쯤 하라며 넌지시 기타다를 나무라는 도라니시 같은 고참 탄광부 덕에 참을 수 있었다. 물론 기타다가 언제까지고 시비를 걸어오면 하야타도 묵묵히 있을 수만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기타다는 그런 말을 들으면 의외로 간단히 물러섰다. 그 점이 하야타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아."
한 번은 납득한 듯했지만 우메자와는 이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럼 왜 기도가..."
"그때 우연히 기도가 1호동에 남아 있었겠지. 그래서 아이자토가 데리고 가버린 거야."
"거, 정말 무섭구먼."
그 모습을 보고 정말로 믿었는지는 읽어낼 수 없었지만, 우메자와는 명백히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하야타를 인식하고는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당신, 그때 아이자토의 집에 있었는데 괜찮았어?"
"맞아."
곧바로 기시타니도 찬성하면서 말했다.
"아이자토가 정말 데리고 가고 싶었던 사람은 분명 당신일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야타는 오싹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을 때부터 무슨 바보 같은 소리인가 하고 화가 났는데 어째서인지 전율을 느꼈다.
아이자토 씨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생전의 그에게서 그런 식으로 생각할 만한 언동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 아직 죽었다고 확인된 건...
- 잠시였지만 아이자토에게 -정확히는 기시타니가 말한, 갱 밖으로 올라온 그의 유령에게- 공포를 느낀 것이 하야타는 몹시 부끄러 ...
- "자살할 만한 이유도, 기도에게는 없지 않을까?"
"다친 곳도 아프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서... 라든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
난게쓰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날그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으면 만족하는 양반이었지."
- 갑자기 등 뒤에서 말이 들려와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기시타니와 우메자와가 서 있었다.
"기도는 검은 여우에게 끌려간 거야."
"아이자토의 유령이 아니고?"
우메자와의 딴죽에 기시타니는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갱내에서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자는 모오오두 검은 여우님이 되는 거라고. 야코야마뿐만 아니라 구나바라 쪽에서도 옛날부터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
"요즘엔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난게쓰의 지적에 기시타니는 느긋하게 끄덕였다. 사라진 미신도 기회가 있으면 간단히 부활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 하야타는 간신히 두 사람의 대화에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검은 얼굴의 여우나 아이자토의 유령을 진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탄광부에게 '여우'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떠올린 것이다.
- 1900년 봄, 어느 탄광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나서 탄광부 한 명이 전신화상을 입었다. 요양을 위해 집에 누워 있는데, 밤중에 갑자기 의사 두 명과 수많은 문병객이 찾아왔다. 여자나 어린아이도 섞여있었다. 간병에 지친 아내를 격려하는 등 가족에게도 아주 자상하 대해주었다. 그래서 시력이 안 좋은 아내는 남편 동료들이 뜻을 모아 문병을 왔다고 생각했다. 집에는 맹인인 남편의 동생과 부부의 어린 딸만 있었다.
램프 불빛밖에 없는 어둡고 좁은 방에서 두 의사가 탄광부의 붕대를 풀고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의 화상 당한 피부를 벗겨내는 치료법이었다. 극심한 고통에 탄광부가 비명을 질렀지만 의사들은 "곧 나을 테니 조금만 참으시오"라고 말할 뿐 피부를 계속 벗겼다. 이 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간신히 끝났을 무렵에는 날이 밝아왔다.
그런데 어느샌가 의사도 문병객도 전부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탄광부는 싸늘히 식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아내와 남동생이 울부짖고, 이웃 사람이 모여들었다. 소식을 들은 탄광회사의 상사와 의사도 달려왔다. 의사가 탄광부의 붕대를 전부 풀어보니 온몸의 가죽이 벗겨져 있었다.
이내 여우의 소행이라고 판명됐다. 여우가 인간의 생가죽을 구워 먹으면 천 년을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괴한 사건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긴 했지만 탄광주택 한복판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 난게쓰도 한숨을 쉬면서 화를 냈다. 쓰야 준비를 하는 회사 측의 대응은 정말 말도 안 되었다. 넨네 갱 창고에 있던 제단 등 필요한 제사 도구만 제공했을 뿐 직원은 아무도 거들러 오지 않았다.
식당의 기라 모녀, 난게쓰 부부, 하야타가 1호동 101호에서 임시 쓰야를 진행했다. 조문하러 찾아온 회사 직원은 노무과의 젊은 사원 한 명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는 분향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돌아갔다. 노무과장의 명령을 받고 회사 대표로 얼굴만 비쳤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렇다고 탄광부의 조문이 많았는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아니었다. 분향하러 온 사람은 하야타가 갱내의 스승으로 생각하는 오토리야 시게카즈, 하야타에게 기라 고조의 이야기를 해준 고참 탄광부 도라니시 스에키치, 노동조합 대표인 야마기와 노부하루 세 명뿐이었다. 아무리 기도가 광원이 아니라지만 너무 쓸쓸한 쓰였다.
회사에서 절의 주지를 불러주었지만, 경을 한 번 쭉 외더니 이런 곳에 오래 있어봤자 소용없다는 듯이 돌아가버렸다.
- "그 중놈은 불경도 제대로 욀 줄 모르는 것 같더만."
난게쓰의 비난이 지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독경에서 진지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하야타에게는 아주 슬프게 다가왔다.
"호네가미 骨噛에 엮이는 게 두려웠겠지."
도라니시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호네가미란 옛날부터 사용되는 탄광 용어로, 장례식에 관련된 일 전반을 가리킨다. 혼잣말 같은 말에 곧바로 하야타가 반응했다.
- 뭔가의 전조처럼 느껴져서 하야타는 움찔했다.
기타다 일행이 오기 전의 1호동은 아주 평화롭고 조용했다. 그렇게 스스로 타일러봤지만 이렇게까지 한산한 적은 없었다. 아이자도 하야타도 소란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탄광 주택은 벽이 얇아서 싫어도 옆집의 기도가 생활하며 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기타다 일행이 들어온 뒤로는 거기에 시끄러움이 더해져서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타다의 천박한 웃음소리나 니와의 품위 없는 목소리가 그리울 정도로 주위에 정적이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아무 소리도 없는 밤을 맞이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인지도 모른다.
- 어떻게든 다시 독서에 전념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해서 저도 모르게 책에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딱히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안쪽 작은방에 있는 시신과 제단 정도만 눈에 띈다. 제단에 공양된 사잣밥을 보자 탄광의 습속이 떠올라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 밥에 된장국 등을 끼얹어 먹는 것을 탄광부는 이상할 정도로 싫어한다. 국물에 젖어 밥알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갱내 낙반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입갱 전에 바느질을 하지 않는 것은 몸을 찌르는 행위 같기 때문이고, 굴뚝 연기가 두 갈래로 나뉘면 재해의 전조라고 두려워하며, 아침의 까마귀 울음소리는 불길하다고 간주했다. 갱내에서 쇠붙이를 의미 없이 두드리는 것, 휘파람을 부는 것, 손뼉을 치는 것도 금지였다. 쇠붙이를 두드리는 것은 죽은 자를 승갱 시킬 때라서, 휘파람은 머리관을 떠받치고 있는 산신의 기분을 해치므로, 손뼉은 갱목이 무게를 못 이기고 찢어지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 원숭이를 꺼리는 것은 산신이나 도박의 운이 떠나가기 때문(일본어로 '원숭이'와 '떠나다'는 발음이 같다)이다. 특히 도박을 하다 경관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포박당한다. 그 모습이 원숭이 재주꾼이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의 모습과 비슷해서 도박이 번성한 탄광에서는 원숭이를 기피한다고 한다. 그래서 탄광에 원숭이 재주꾼이 찾아와도 어린이들은 '원숭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를 어기면 어른들은 아무리 어려도 꾸지람했고 반드시 '야원 野猿'이라 부르라고 주의를 주었다.
- 하나하나 보면 사소하지만 몇 가지가 모이기 시작하면 기묘함이 느껴진다.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뭔가가 있기 때문일까. 물론 이런 습속은 대부분 미신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손뼉처럼 실제 위험과 관련된 것도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은 사라진 옛것도 함께 수집하면 탄광의 고유한 문화가 보이지 않을까. 하야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쓰야도 그야말로 절호의 채집 현장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소득을 바랄 수 없을 듯했다.
- 아니, 이건 기도 씨에게 실례야.
사잣밥에서 연상한 것을 시작으로 두서없이 사색하던 하야타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신경함을 부끄러워하며 초라한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옆방의 시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어딘가에서 찾아온 요괴처럼 보였다. 어제부터 이어지는 비가 사실은 부정한 비라서 새로운 마물을 불러들인 것 같았다.
내가 많이 지친 건가?
자신의 생각에 하야타가 쓴웃음을 지으려 했을 때, 그것이 휙 하고 돌아보았다.
... 검은 얼굴의 여우.
- 상대를 인간으로 인식했다고 무서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신사에 봉납된 여우가면을 얼굴에 쓰고 기도의 죽음에 관여한 인물이 눈앞에 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102호 앞에 서 있다. 101호에는 볼일을 마쳤으니 이번에는 옆집이라는 것인가.
그때 검은 얼굴의 여우가 스윽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또 한걸음,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한쪽 다리를 끌면서 다가왔다.
하야타는 뒷걸음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면으로 도전해서 승산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도망만은 치고 싶지 않았다.
- 비 내리는 저녁 특유의 어둠과 찢어진 우산이 드리운 그늘 탓에 몰랐는데, 아무래도 저 인물은 수건을 뒤집어쓴 다음 턱 아래에 묶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탄으로 더러워진 검은 얼굴이 좀 더 강조된 데다 무표정하기까지 해서 가면을 썼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자신의 어림짐작이 틀렸음을 깨달은 것도 잠시, 하야타는 다른 위화감을 느꼈다. 점차 가까워지는 검은 얼굴이 어쩐지 낯익은 기분이 든다. 그럴 리 없는데도 아는 얼굴처럼 느껴졌다.
어...?
그 정체가 짐작된 순간, 오싹오싹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현장의 분위기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쏜살같이 도망치지 않으면 때를 놓칠 거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하지만 하야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검은 얼굴이 다가오기만을 전율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 다음 순간, 하야타는 간신히 납득했다. 눈앞의 인물이 누구인지 확실히 이해했던 것이다.
"아이자토 씨의 형님 되십니까?"
"맞아, 미노루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라 다행이야."
무표정하던 상대의 얼굴이 금세 풀어지며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 안도했다는 분위기가 전해져 온다.
"아이자토 류이치라고 해."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본 하야타는, 건국대학의 구마가이를 떠올렸다. 자기 아버지나 형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거의 접점이 없는 사촌 중 한 사람과 빼닮았다던 옛 학우다.
- "본사 지시인가?"
나리타의 물음에 스이모리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괜찮겠어?"
의외라는 듯한 나리타의 눈치로 보건대 스이모리의 독단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짐작도 못 하고 있던 하야타는 스이모리의 다음 말을 듣고 문자 그대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렇게 해보고 문제가 없다면 아이자토 미노루의 시신을 올릴 거야."
"저, 정말입니까?"
스이모리가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하야타는 나리타에게 물었다. 스이모리에게는 물어봐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아이자토 씨의 구호와 카나리아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당신, 그런 것도 모르고 탄광부로 일하고 있었어?"
나리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은 설명해 주었다.
"카나리아라는 새는 가스에 아주 민감해. 그놈은 온종일 지저귀는데,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면 가스가 새어 나온다는 신호가 되지. 옛날부터 광산에서 사용되는, 살아 있는 가스 발생 탐지기야."
- "기도가 죽은 모습과 똑같을 뿐인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악의 같은 게 느껴져서 어째 좀 기분이 안 좋네."
"네, 그런 느낌이 들죠. 같은 장식을 해놓는 연쇄 살인사건처럼..."
"기도도 기타다도 살해당한 거라고?"
"타살이라면 범인은 검은 얼굴의 여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통된 살인동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불가해한 사건의 발단은 아이자토의 사고가 아닐까 추측되지만, 세 사람에게는 아무 공통점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며, 그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다고 하야타는 밝혔다.
- "이상한 소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하야타가 걱정을 이야기하자 난게쓰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말했다.
"내일 오전 중에 금줄 굿을 하기로 했어."
"신사에서 하는 굿의 일종입니까?"
흥미진진하다는 듯 하야타가 물었다.
"원래는 이나리 신사에서 봄과 가을 예대제 때 하는 액막이 행사인데,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하기로 결정됐어."
"그런 행사는 환영하고 싶군요."
- "야마 부지 안 건물에 특별한 금줄을 둘러서 넨네 갱에 가득 찬 재액을 씻어내는 신성한 행사야. 이번에는 틀림없이 탄주 1호동을 금줄로 빙빙 두르겠지."
"특별한 금줄이란 게 뭡니까?"
"보통 금줄보다 튼튼하게 만든 녀석이야. 액막이를 위해 둘러쳤는데 끊어지기라도 했다간 난리가 날 테니."
"그렇다면 기도 씨와 기타다 씨가 목을 맨 금줄도..."
"그래, 틀림없이 신사에서 사용하는 금줄을 썼겠지."
"그래서 성인 남자가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았군요."
하야타는 납득했다는 눈치를 보인 뒤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액막이 금줄 굿, 혹시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스이모리 과장 아닙니까?"
"아니, 탄광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요청이야."
- "두 번째 사망자가 생긴 데 동요하는 것 이상으로, 사망자가 기타다 씨라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예상도 못 했기 때문 아닐까?"
"그건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스이모리 과장은 기타다 씨가 죽은 일로 묻혀 있던 공포가 발굴된 듯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 홀로 남겨두다니, 역시 안 될 일이다.
"아이자토 씨를 다시 만날 때까지는 저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하지만..."
난게쓰는 계속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하야타의 얼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 집사람하고 다카코가 많이 실망하겠는걸."
그런 말로 웃으면서 마무리했다.
- 그날 밤 하야타는 평소처럼 1호동 102호에서 잤다. 한밤중에 땅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마물의 포효 같은 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자토 씨가 들은 것도...
그 소리가 이것이었을까 하고 잠에 취한 머리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 며칠간의 피로에서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 낡아 거무스름해진 노트. 그것은 아이자토 미노루가 전쟁 중에 조선에서 일본 탄광으로 데려온 정남선의 수기였다.
- [조선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431 정남선]
조선동포를 위해 지금까지의 경위를 노트에 남긴다. 나의 공부를 위해 일본어를 사용한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미안하지만 너그러이 보아주었으면 한다.
아이자토 미노루 선생과 만난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강제로 일본에 끌려왔으니 당연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분명 아이자토 선생과 만난 결과 나는 이렇게 일본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날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아이자토 선생과 알기 위해서는 일본 탄광에서 탄광부가 되는 것이 조건이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그때의 나는 아이자토 선생을 조금도 모른다. 아직 만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 승낙할 것이다.
- 일본에서 온 모집인의 모습은 똑같았다. 모두 코밑에 수염을 기르고 사냥모를 쓴 양복 차림에, 다리에 각반을 감고 가죽구두를 신었다. 시골 동포들에게는 멋지게 보인 듯했지만, 내 눈에는 졸부처럼 보여서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자토 선생은 달랐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같은 남자도 넋을 잃고 보게 될 만큼 멋진 차림새였다. 물론 선생은 그냥 겉모습뿐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분이었다.
- 아이자토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경애하는 형을 떠올렸다. 그저 용모가 비슷했다기보다는 풍기는 분위기가 닮았던 거라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자토 선생 역시 내게서 자신의 형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아주 놀랐다.
그때 나는 기쁘면서도 부끄럽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낯간지러운 마음이었다.
- "다만, 그렇기에"라고 선생은 말을 이으셨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 법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권리를 알아둬야만 한다. 탄광회사와 나눈 계약 내용에 대해서도 완전히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배가 일본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런 지식을 전할 테니, 제대로 공부하라고 선생은 말씀하셨다.
- 내 일본어 능력이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기뻐하는 나에게 선생은 충고하셨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동포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탄광회사에 반항한다고 간주되면 철저히 짓밟으려 할 것이다. 조선인 탄광부의 권리를 지켜주는 게 석탄 생산량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임을 회사에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될 수 있는 한, 내가 여러분과 회사 사이에 끼겠습니다."
선생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이 그때의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가.
-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어느샌가 상당한 불안도 품고 있었다. 솔직히 일본에 가까이 갈수록 불안은 더 커져갔다.
아이자토 선생을 사모하는 마음, 믿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어쩌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결의를 했을지 모른다는 느낌도 강해져 갔다.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하고 그대로 도망쳐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싹트는 지경이었다.
- 다만 일부러 적지 않은 사건이 딱 하나 있다. 몇 번이나 쓰려다가 망설임을 거듭한 끝에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나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굴속 암흑에서 뭔가가 이쪽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 예전에 이렇게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감각은 아니다. 처음 갱내에 내려간 동포들 다수가 비슷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느 정도 그 환경에 익숙해져도 여전히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는 자가 수는 적지만 존재했다.
그렇지만 혹독한 중노동이 계속되는 동안 대부분의 동포는 감각이 마비되어 그런 미묘한 기척을 알아차릴 여유가 점차 사라져 갔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옛날 굴 앞을 지나가는 상황 등에서 예전에 느낀 감각이 문득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새까만 어둠 속에서 뭔가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 어느 날 옛날 굴 앞을 지나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 세요."
오싹하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여자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부족해 일본인 여성도 갱내에 내려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장소를 담당하므로 갱내에서 절대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곳에 여자가 있을 리 없었다.
사실은 뛰어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갱내에서 그런 행동은 너무 위험하다. 자칫 넘어져 다칠지도 모른다. 게다가 솔직히 호기심도 있었다. 아니, 무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 나는 조심조심 소리가 난 쪽으로 캡램프를 비춰보고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곳에는 새까만 얼굴의 여우가 있었던 것이다.
- 아니, 동물인 여우가 아니다. 여우 얼굴을 한 누군가였다. 괴물, 귀신, 요괴, 유령 같은 말이 차례차례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 씨 아저씨에게 탄광에 얽힌 괴담을 들었기에 이게 바로 그거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탄광의 어둠 속에 둥지를 튼 마물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런데 마물이 얼굴에 두 손을 대더니 떼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 아래에서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이 튀어나올까 생각하니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았다.
등줄기가 다시 부르르 떨렸다. 전율했기 때문이 아니다. 새까만 여우 얼굴 아래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탄진이 떠도는 지저분한 암흑 속인데도 그녀의 피부는 비칠 듯이 새하얗기만 했다. 그 용모에 나는 한순간에 매료되고 말았다.
- 이후 나는 몇 번인가 같은 옛날 굴 앞에서 그 여성과 만났다. 밀회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가 말을 걸어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런 관계가 될 뻔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그녀가 옛 동굴 안으로 가자고 넌지시 청했고,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다. 딱히 상대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지만, 명백히 유혹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불현듯 아이자토 미노루 선생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분명 나는...
- 그 뒤로 그녀와 만날 기회가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뚝 끊겨버렸다. 같은 옛날 굴 앞을 지나도 목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고, 그곳에 그녀가 있다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대체 무엇과 만나고 있었던 걸까 생각하다가 문득 오싹해졌다. 유혹에 끌려 옛날 굴 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얼마 후 조선인 청년 한 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모리 쪽 사람들은 탈출 아니냐며 소동을 벌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갱내에서 없어졌다. 요컨대 갱구에서 내려갈 때는 분명히 있었는데 올라올 때는 없던 것이다.
부상당해 갱내에 남겨진 것이겠거니 하고 몇 사람이 흩어져 찾아보았지만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갱구 외에는 갱내에서 갱 밖으로 나올 길은 전혀 없다. 청년은 탄광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너희가 서로 짜고 탈출시킨 게 틀림없어!"
조선인 감독 히라야마는 트집을 잡으며 죽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스이모리와 니와는 청년이 없어진 상황에 대해 알자마자 묘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무슨 일만 있으면 연대책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쳤는데, 이때는 거짓말처럼 얌전했다.
- "그래, 틀림없어."
난게쓰의 맞장구에는 기원에 가까운 감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데 난게쓰는 이내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이자토 씨와 정남선 씨는 대체 어떤 관계였을까요."
난게쓰의 의도를 재빨리 눈치챈 하야타가 대신 입을 열었다.
"나, 나는 딱히 그런 관계를 차별할 생각 없어."
당황하는 난게쓰가 우스워서, 엉뚱하게도 하야타는 훈훈한 감정을 느꼈다.
"저도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정남선 씨가 갱내에서 여우가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가 뿌리친 사실을 생각하면,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까요? 그래도 저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정신적 친애의 교류였다고 생각합니다."
- "그랬지. 정남선 청년도 여우가면 여자와 만났어."
그러나 난게쓰는 수수께끼의 여자 쪽에 반응했다.
"여기서 나오는 여자는 그 검은 여자와 같은 여자일까?"
"정남선 씨에게 얽히지 않게 된 뒤 청년 한 명이 갱내에서 사라졌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 "어째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길게 찢어진 두 눈에 쭉 뻗은 콧날, 꼭 다문 입술. 여성스러운 아이자토 씨의 용모는 여우와도 조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금줄이 더해졌으니, 어린 마사코는 검은 여우님이라고 굳게 믿어버린 거죠."
"무리도 아니군."
- "그때 깨달아야 했습니다. 왜 갑자기 면도칼과 비누가 사라졌는가. 대체 누가 무얼 위해 가지고 나갔는가."
"아니, 그럴 때 그런 건 깨닫지 못하는 법이야."
- 하야타가 입을 다물자 난게쓰가 조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를 쫓아내지 않고 천천히 추리를 늘어놓은 건 옆집에 있는 류이치, 즉 아이자토 군에게 들려줘서 어서 도망치게 만들기 위해서 아닌가?"
입을 다문 하야타에게 난게쓰도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밤늦게까지 묵묵히 술을 마셨다.
- 다음 날, 하야타가 103호를 살펴봤을 때 아이자토 미노루의 모습은 없었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오랫동안 빈방이었던 것처럼 집 안에는 적막한 기운이 떠돌았다.
- 며칠 뒤 저녁, 난게쓰의 집에서 모토로이 하야타의 송별회가 열렸다. 난게쓰 나오마사, 그의 아내 미쓰요와 딸 다카코, 오토리야 시게카즈, 도라니시 스에키치, 야마기와 노부하루, 기라 하쓰요, 기라 하쓰코는 물론, 조금이라도 하야타와 인연이 있던 탄광부가 계속 드나들어서 좁은 탄광 주택의 방은 아주 시끌벅적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나?"
몇 명이나 같은 질문을 했지만 하야타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어디로 가려고?"
그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럼 여기에 있지 그래."
그렇게 말리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그때마다 하야타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 패전 후 일본이 어떻게 나라를 재건하는가. 다양한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다. 그 안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 탄광은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어느샌가 하야타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 간사이 지방에서 기타큐슈의 야코야마 지방까지 흘러들어왔고, 게쓰네 역 앞에서 아이자토 미노루와 만났고, 그 인연으로 탄광부가 되었다.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든다.
- 모토로이 하야타를 배웅한 모두가 그의 앞길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탄광에 남은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장래를 걱정해야 했다.
'검은 보석'이라 불리며 중요시되던 석탄산업이지만 그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세계 공황의 영향으로 수많은 탄광회사가 인력정리나 휴업을 해야 했던 과거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훌륭하게 ...
- 실은 전날 하야타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발신인은 '아이자토 류이치'였다. 황급히 읽어보니 약속 장소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편지에 적힌 시각, 지정된 부두의 어느 장소로 가자 아이자토 미노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제때 편지를 받았나."
"네. 하루만 늦었으면 못 올 뻔했지요."
아이자토는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거긴 그만두고 온 건가. 이제 어쩔 셈이지?"
금세 하야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야타가 자신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하자 일단은 이해해 주었다.
- "그건 그렇고, 자네의 재능을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는 곳은 그런 현장 말고 전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야."
그러나 바로 이렇게 덧붙인 것은 하야타의 이후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일까.
- "제 문제야 그렇다 치고, 아이자토 씨는 어떡하실 겁니까?"
"조선으로 건너갈 거야."
"조국에 돌아가시는군요."
한순간의 공백 뒤, 아이자토가 나직이 말했다.
"역시 눈치챘나.”
-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한 뒤 정남선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대체 나를 어떻게 할..."
"아무것도 안 합니다. 저는 그저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을 배웅하러 왔을 뿐입니다."
모토로이 하야타와 정남선은 잠시 서로 마주 보다가 거의 동시에 훗, 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어딘가 쓸쓸한 그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 "또 만나 뵙고 싶군요."
"응. 언젠가 또 만나자고."
십여 분 후, 연락선에 오른 정남선을 배웅하는 하야타의 모습이 부두 가장자리에 있었다.
- 몇 년 뒤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전 국토가 전쟁에 휩싸여 황폐해진다는 무시무시한 현실도, 전쟁 특수로 패전국인 일본의 부흥이 급속히 진행된다는 얄궂은 운명도, 이때의 두 사람이 알 방법은 없었다.
다만 가까운 장래에 어느 한쪽 나라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두 사람은 서로 꿈꾸고 있었다.
옮긴이의 말
미쓰다 신조라고 하면 '호러', 혹은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이라는 말로 수식되는 작가입니다. 저도 많은 독자분들처럼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며 <검은 얼굴의 여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무렵에는 미스터리, 그것도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 또한 강한 작품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양한 사회 부조리와 함께 '조선인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꽤 전면적으로 다룬 것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검은 얼굴의 여우>는 전쟁 후에 좌절한 젊은 엘리트 '모토로이 하야타'를 내세워 당시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바뀔 거라 기대하지도 않고, 부조리한 일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 불의에 강하게 분개하는 모습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주인공. 한국으로 치면 일제 강점기 시절의 (좌절한) 젊은 지식인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작품의 초반 전개는 매우 촘촘하면서도 묵직한데,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당시 시대 분위기 외에도 주인공의 희망과 좌절 또한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거듭된 좌절을 겪고 방황하다가 탄광에서 일하기에 이른 젊은 엘리트'의 배경 설명으로는 분량이 상당하고, 작품 속 '미스터리적인 주요 사건'의 해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검은 얼굴의 여우>에 대한 일본 독자의 서평 중에는 미쓰다 신조의 역사관에 의문을 표하며 '왜 미스터리에 이런 요소(사회적 테마)가 필요한가?'라고 묻는 글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소설에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드러나 있다고 (또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의 주요 소재 자체가 작가의 주제 의식을 반영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요컨대 선택한 소재 자체가 주제 의식을 어느 정도 나타낸다는 이야기지요. <검은 얼굴의 여우>는 소설이지 역사기록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다 보니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도 강해졌을 겁니다. 약간씩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모토로이 하야타의 이후 활약이 '도조 겐야'만큼이나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새 <검은 얼굴의 여우>를 접한 지 삼 년 정도 되었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조선반도' '만주국' '건국대학'... 지금이라면 훑어보기만 해도 살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단어들이지만, 2016년 당시는 (따지고 보면 감정이 좋은 시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특별히 반일 감정이 강하던 시기는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큼직한 국내 사건이 많아서 옆 나라에 특별한 관심을 줄 상황이 아니기도 했군요. 어쨌든 저는 '이 작품을 옮길 번역자는 정식으로 출판될 작품에 조선반도 같은, 시대성이 느껴지는 희귀한 어휘를 많이 써볼 수 있겠구나' 하고 살짝 나사 빠진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운 좋게 제가 이 작품을 맡은...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책을 선보일 무렵이 되니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양국 분위기가 경색되어 괜스레 식은땀이 흐릅니다.
긴 우여곡절 끝에 미쓰다 신조의 새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뿌듯합니다. 예민한 내용일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새 시리즈의 출발인 만큼 후속작에 대한 기대와 함께 조금 열린 마음으로 읽어봐 주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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