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출판 : 비채
출간 : 2010.08.06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번째 발표작은 아니지만, 작품 내 시간으로는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한국 번역 출간본 기준-
하지만 겐야가 관여한 첫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서의 겐야는 다카야시키에게서 '산마(山魔)' 이야기를 듣고 흥분하는 모습으로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당시의 사건은 결국 미제로 남고, 히메노모리 묘겐이 먼 훗날 당시를 회고하며 쓴 소설을 보고 '겐야'가 찾아와 해석하는 형식.
작중 시간으로는 <산마처럼 비웃는 것>과 유사한 시기이거나 <잘린 머리>가 조금 더 이르다.
<잘린 머리> : 괴상사에서 '작년 12월'에 발표된 에가와 란코의 <피투성이 혼사(婚事)의 신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루는 사건이 <잘린 머리>인 것으로 보인다. 겐야의 시점으로는 '작년 늦가을' 우연한 기회에 아부쿠마가와 가라스와 도조 겐야 두 사람은 히메카미 촌으로 향했으나, 도중에 열차에서 순사에게서 '산마' 이야기를 들은 겐야가 구마도의 부름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때 겐야는 리키히라를 만나긴 하지만 별다른 일 없이 돌아온다.
('가는 곳마다 기괴한 사건과 불가사의한 현상'과 마주하는 편인 도조 겐야는 '올해 1월'에 전(前) 공작 가문 영애 살인사건에 협조한다고 나와 있으나 관련 정발 작품은 없다)
<산마> : 이후 괴상사 편집부로 도착한 고키 노부요시의 원고 건으로 소후에 시노가 겐야와 만나는 것은 '올해 4월 초'. 여기서 겐야는 다시 부름산으로 향하기로 한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올해 6월'. 특수 가계 출신의 '사기리'가 등장하지만 겐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염매>에서의 언급도 있고, <염매>가 <미즈치> 이후의 일이다.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 '올해 6월'에 소후에 시노와 나라의 하미 지방을 다녀왔다'라고 나와 있다. 이후 '9월'에 편집부에 배정된 오가키 히데쓰구를 만나 그에게 소개받은 괴담을 조사하러 '당장 9월 하순'에 고라 지방으로 찾아간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도조 겐야가 자신이 경험한 가가구시 촌과 그에 얽힌 사건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소설로 발표한 것이 <염매>. 발표한 시기는 '쇼와의 어느 삼월달'이지만 작중 시간은 아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발표작이지만 사건의 시간 순으로는 상당히 후반.
<잘린 머리>는 괴이담보다는 추리 소설에 가깝다.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요코미조 세이시 느낌이 나는데,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재미가 있다. 또 독자와 추리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건 당시가 아닌 회고 소설을 통해 정보가 제공되므로 '본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자인지 남자인지, '무엇인지' 정의하기 힘든 손님이...
그런 점에서는 역시 미쓰다 신조.
<겐야 시리즈>는 내 최애 시리즈는 아니지만, 언제나 믿고 읽을 수 있는 시리즈다.
즐겁게 읽었다.
엮은이의 말
이것은 히메노모리 묘겐 씨가 과거에 <미궁 이야기책>에 발표한 <히메쿠비 산의 참극> 원고를 바탕으로 그 뒤 가필 된 유고 등을 엮은이가 정리,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이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성립된 공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에게 돌아가야 하며 (그 일부는 작중의 에가와 란코 씨에게도 부여되나), 엮은이는 무엇 하나 공헌한 바가 없음을 밝혀둔다.
쇼와 어느 정월달에
도조 마사야, 또는 도조 겐야
- 새하얀 원고지를 앞에 두고 저는 지금 예상치 못했던 당혹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 히메노모리 묘겐으로서가 아니라 본명인 다카야시키 다에코로서 이 글을 쓰려하기 때문일까요.
- 저는 이미 이 글을 한 편의 소설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즉, 어디까지나 작가의 시점에서 전쟁 중, 그리고 전후에 일어난 두 사건을 해명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부터, 또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30여 년 전, 전후에 창간한 탐정소설 전문 잡지 <보석>에 공모하기 위해 집필했던 처녀작 <머리가 무서워 못 간다>의 도입부를 쓰는 데 한참을 고민했던 그때 이후 처음 같습니다.
- 그래요, 우선은 제가 왜 이 글을 쓰려 했는지, 그 이유부터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겠군요.
발단의 하나는 문득 제 나이를 돌아본 데 있습니다. 쇼와의 치세도 이제 몇 해만 더 있으면 50년이 넘으려 하는 이때, 저는 제가 올해로 나이 예순을 맞이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말입니다만 놀랐습니다. 옛날로 치면 인생 50년, 그 세월을 벌써 10년이나 지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즈음은 60대가 되어서도 늙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제2의 인생을 즐기려는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그러나 이 시기에 제가 히메카미 촌의 기타모리 변두리에 은밀히 인생 최후의 거처를 정하고 이곳에서 하필이면 이 글을 쓸 결의를 한 것은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임을 인식했기 때문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써두지 않으면 앞으로 그런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에 시달렸던 것은 분명하니까요.
-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향후의 인생을 돌아본 것과 더불어 몇 가지 우연이 겹친 결과,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먼저, 제 나이를 돌아보고 돌연히 도회지 생활에 피로감을 느껴 여생을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 이어서, 뛰어난 본격 추리소설을 여러 권 발표하고 있는 에가와 란코 씨가 이번에 경사스럽게도 예순 번째 저작인 수필집 <석일환상소요(昔日幻想逍遙)>를 출간하고 그 속에서 20년 전의 그 사건을 언급한 것. 또 그 책에도 등장하는, 간사이에서 발행되는 월간 동인지 <미궁 이야기책>에서 되도록 특이한 내용으로 연재소설을 집필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작가 활동을 통해 쌓인 자료와 편지를 정리하다가 기타모리 주재소의 순사였던 망부(亡夫) 다카야시키 하지메가 이치가미 가에 얽힌 괴사건의 수사 상황을 기록해 둔 공책을 발견한 것 등이 하나가 되어 저를 이 글로 이끈 것 같습니다.
- 그래도 가장 큰 동기는 과거에 남편과 함께 살았던 히메카미 촌으로 돌아와 이 땅의 분위기를 다시 피부로 느낀 것이겠지요.
- '媛首村'이라고 쓰고 '히메카미 촌'으로 읽는 이 지방은 오쿠타마 깊은 곳에 개척됐을 때는 '히메카미 향(媛神鄉)'이라 불리던 지역으로, 분카(1804~18년)에서 분세이(1818~30년) 시대에 편찬된 <신무사시(新編) 풍토 기록>에는 '媛神村'으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媛上村'으로 바뀌고 니라야마 현에 편입되었습니다. 그 뒤로 메이지 7년(1874년)에 가나가와 현, 29년에 도쿄 부의 관할지가 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그렇기는 해도 촌의 경계선은 에도 시대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때마다 마을이 달라졌다는 의식은 조금도 없었을 테지요.
다만 그 과정에서 '媛上'가 '媛首'로 바뀐 모양인데, 이 개칭의 자세한 내막에 관해서는 이상하게도 자료가 없고, 심지어 전승마저도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을의 고문헌을 통해 대략 언제쯤 변경됐는지 그 연대를 추정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누가 무슨 이유로?'라는 커다란 수수께끼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기야 '上'에서 '首'로의 변경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받아들이기 쉬운 변화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뇨, 그 설명은 본문에서 하는 것이 좋겠군요. 뭐니 뭐니 해도 '首'라는 글자야말로 이 땅과 이 마을을, 히가미 가와 이치가미 가를, 전쟁 중과 전후의 기괴한 사건을 잇는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 히메카미(媛神)의 조상은 후지와라 가문, 또는 다치바나 가문이라고 이야기되는데,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승에 불과합니다.
와도 원년(708년)에 아가타이누카이의 스쿠네 미치요가 다치바나성을 하사받자, 이 재색을 겸비한 여걸은 순식간에 황실과 후지와라 가문과의 관계를 강화합니다. 이윽고 미치요의 자식인 가쓰라기 왕은 다치바나 모로에라 칭하고, 다치바나 가문은 세력을 확대해 갑니다. 그러나 후지와라 가문의 세력 회복에 의해 모로에는 실각, 모로에의 자식인 나라마로는 후지와라 가문의 타도를 꾀하다 도리어 붙들려 유폐를 당합니다. 그래도 다치바나 가문의 세력이 완전히 쇠퇴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라마로도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다만 모로에가 죽자 나라마로는 즉각 처형됐다고 이야기됩니다. 두 사람이 죽은 해가 같기에 그렇게 생각된 것이겠지요.
- 이런 권모술수의 세계에 몸을 두고 있었던 소장(少將) 다치바나 다카키는 자기도 말려들기 전에 도망칠 결심을 하고, 동국(東國)의 심산유곡으로 달아나 그곳에 히메카미 성을 세우고 요시노 산에서 안칸 천황(일본의 제27대 천황, 재위 기간은 531~535년)의 영을 모셔와 히메가미(媛守) 신사를 창건했다는 유래가 전해집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치바나의 본가에는 다카키요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어디까지나 신사의 유래요, 마을의 전승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히메카미 촌은 동서 17.5킬로미터, 남북 11.3킬로미터의 타원형입니다. 총면적은 102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데, 그 남북의 거의 중심에 '히메쿠비(媛首) 산'이 동서로 펼쳐져 있습니다. 산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고분처럼 둥글게 솟은 광대한 숲으로 위에서 보면 마을과 마찬가지로 타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히메쿠비 산의 북쪽이 기타모리(北守), 동쪽이 히가시모리(東守), 남쪽이 미나미모리(南守)라고 불리는데, 마을은 이 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편, 히카게 고개라고 불리는 산 서쪽이 바로 이 마을의 경계이므로 니시모리(西守)라는 지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야기가 조금 샛길로 빠집니다만, 같은 '媛首'가 마을일 때는 '카미', 산일 때는 '쿠비'가 됩니다. 저는 이 '首'라는 글자를 읽는 법의 차이가 어쩐지 이 산의 무서움을 암시한다는 생각이 옛날부터 자꾸만 듭니다만... ('카미'가 '신', '수호' 등의 뜻인 반면, '쿠비'는 '머리'라는 뜻이다).
- 양잠의 신 메묘 지장이 마을의 주 출입구인 히가시모리 큰 문 옆에 모셔진 걸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것은 최소한 분명합니다. 그 양잠이 가장 활기를 띄었던 것이 다이쇼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였습니다. 이윽고 서서히 중앙의 대자본에 밀려 생사(生絲) 경기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때도 이웃 마을처럼 쇠퇴하지 않은 것은 히가미 가의 덕이라고 두고두고 이야기되던 것을 저도 압니다.
- 히가미 가는 대대로 이 땅을 다스려온 마을의 대지주입니다. 히가미라는 성을 쓰는 집은 마을 안에 세 곳이 있는데, 소위 본가에 해당하는 집안을 이치가미라 부르고, 후타가미, 미카미가 그에 이어집니다. 이치가미 가와 후타가미 가는 '守'를 '가미'라고 탁음으로 읽지만, 미카미만은 '카미'라고 맑게 읽습니다. 이 호칭은 마을 내에서만 통용되는 옥호고, 실제 성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치가미 가가 기타모리를, 후타가미 가가 히가시모리를, 미카미 가가 미나미모리를 통치하며, 세 히가미 가가 마을을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는 역사가 있습니다. 원래는 히메카미(媛神)라는 성이었는데, 어느새 히가미(秘守)로 변했다는 전승도 마을을 '은밀히 지킨다'고 풀이하면 수긍이 갈지 모릅니다.
- 그런데 얄궂게도 이 히가미 가야말로 누군가의, 아니 분명히 신불의 가호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오쿠비 님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수백 년 전부터 히가미 가에 계속해서 지벌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 즉 히가미 일족의 장이 되는 사내아이에게...
- 그러나 글을 쓰고 보니 이 서술 방법에도 중대한 결점이 있었습니다. 주재소 순사라는 위치에 있기는 했으나, 남편은 어디까지나 타지 사람이었습니다. 즉, 어떻게 기술하든 사건을 바깥쪽에서 바라볼 뿐 안쪽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대로 글을 써나갈 수는 있다 해도 소설로서는 재미가 결여된 전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생각해보던 중에, 다카야시키 하지메 순사의 시점과 더불어 히가미 가의 내부를 잘 아는 인물의 시점을 채용함으로써 안과 밖, 양 방향에서 서술을 진행시키는 구성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이쿠타 요키타카라는 안성맞춤의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의 괴사건이 벌어지기 1년쯤 전에 이치가미 가에 온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로, 그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타지 사람이면서 이치가미 가의 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아이의 미묘한 입장은 다카야시키 하지메와는 또 다른 시점을 가진 인물로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 다만 걱정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키타카가 갖고 있을 어떤 성향에 관해서입니다. 태어나서부터 그랬는지, 이치가미 가에서 조주로 씨를 만나면서부터 싹텄는지,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애가 보통의 사내아이와 다르다는 것이 점차 느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 중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 애가 성장함에 따라, 또 그 애의 입에서 조주로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서서히 요키타카의 특이한 성향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과연 이 글에 써도 되는 것인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이미 요키타카의 시점이 이 소설을 성립시키는 데 불가결함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기술 방법을 채용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네 사정이 아니냐'고 하면 뭐라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만, 저는 그 애의 성향이 어디까지나 플라토닉한 연애였음을 생각하고 숨김없이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애의 언동, 특히 조주로 씨에 대한 언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저 이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 자, 이 글은 이번 '들어가기에 앞서'를 연재 첫 회로 하고, 두 번째는 이쿠타 요키타카의 시점으로 그리는 '1장'과 다카야시키 하지메 시점의 '2장'을, 세 번째도 두 사람의 장을 각각 하나씩 쓰는 식으로 연재 한 회당 두 장씩을 발표하고, 필요에 따라 '막간'을 마련하는 구성을 채택할 생각입니다. 집필하고 나서 독자 여러분이 읽으시기까지 대략 2개월이 걸리는데, 이 글의 경우는 그 시간차가 ...
<들어가기에 앞서>
- 히메카미 촌에 대한 요키타카의 기억은 여섯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중추(仲秋)의, 십삼야라 불리는 히가미 가의 기이한 의례에서 시작된다.
- 당시 일본은 대동아전쟁(제2차 세계대전) 중으로, 전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학도 출병이라 불리는 재학 징집 연기 임시 특례의 공포(公布)도, 학동 소개(疏開)를 실시하기 위한 학동 소개 촉진 요강과 제도(帝都) 학동 소개 실시 요령의 각의(閣議) 결정도 아직 행해지기 전이었고, 하물며 본토에 대한 공습 따위는 일반인으로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을 다스리는 히가미 일족의 장인 이치가미 가의 후도 옹이 이런 비상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십삼야 참배를 거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간토 오쿠타마의 심산유곡 한복판에 위치한 마을의 입지를 생각하면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도시에 비하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전시의 색은 아무래도 엷기 마련이었다.
- 하기야 전쟁 중이라는 상황만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가 정교일치의 국가 신도(神道)를 성립시키면서 신사에서 받드는 신은 <고사기>나 <일본서기> 속의 황통 계보와 관련된 신들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각 지방의 씨족신 신앙이나 민간신앙 등은 모조리 금지된 탓에 히메카미 당에 참배를 드리는 일조차 지금은 극히 곤란할 터였다.
게다가 히메카미 촌에는 당시 아직 전쟁의 그늘이 완전히 드리워지기 전이었다고는 하나, 시대는 신국(神國)이라 불리는 일본이 한창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려던 때였다. 또 시선을 가까운 곳으로 돌리면 마을에서도 적잖은 남자들이 출병해 있었다.
- 그런 상황에서 십삼야 참배를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히가미 가의 삼삼야(三三夜) 참배라 불리는 의례가 일족의 아이의 성장에 맞춰 10년에 한 번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 특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매년, 또는 매월 행하는 일상 신앙에 대한 의식이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다만, 그런 여러 외적 상황은 결국 후도 옹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후도 옹에게는 히가미 일족 중에서 자신의 가계가 이치가미 가로 존속하는 일이 그 어떤 것에도 우선되어야 할 중대사였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치가미 가의 명예를 대대로 자손들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
술만 들어가면 후도 옹이 꼭 하던 말이 그것이었다.
- 요키타카가 하치오지의 이쿠타 가에서 히가미의 이치가미 가로온 것은 바로 1년쯤 전, 다섯 살이 된 직후였다. 생각하면 이때 그의 인생에 큰 전기(轉機)가 찾아온 것이었다.
- 그것은 돌연히 찾아왔다.
요키타카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그날 밤, 낮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더니만 해질녘부터 느닷없이 내리기 시작한 빗속에 손님이 찾아왔다. 상대는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고 쫄딱 젖어 있었던 탓에, 어머니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현관 앞에서 손님을 상대했다. 그 때문에 요키타카에게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로 여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 손님이 돌아간 뒤 "누가 왔어요?" 하고 큰형이 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게, 글쎄 잘 모르겠구나"라고 중얼거리기만 할 뿐, 말이 종잡을 수 없었다. 요키타카가 형에게 "여자였어"라고 하자, "아니, 창문으로 얼핏 봤는데 남자던데. 소름 끼치게 아름답고 꼭 시동 같은..."이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 다들 잠자리에 들고 나서 얼마 지났을 무렵, 요키타카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보니 옆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방구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그쪽을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 어둠을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요키타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겁을 먹으면서도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남방으로 출정한 아버지가 이런 한밤중에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머니의 태도가 별안간 이상해졌다.
이윽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두 형과 누나가 일어나 건너왔다. 큰형이 어머니에게, 작은형과 누나가 요키타카에게 각각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찬가지로 "너희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부들부들 떨며 고개만 내저었다. 세 사람은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두 형과 누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응시하는 방구석을 몇 번씩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도 요키타카와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도 아버지를 볼 수 없었는지, 얼굴을 마주 보며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안 보이니? 보렴, 저기 아버지가 계시잖니. 머리가 없는 아버지가..."
어머니는 방구석의 어둠을 가리키면서 미소 지었다. 요키타카는 어머니가 그런 미소를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드는 미소였다.
- 며칠 뒤에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는지(요키타카의 눈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으나) 어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출병한 병사의 처로서 훌륭한 태도라고 동네에서도 평판이 났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머니에게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히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속은 다른 사람인 듯한...
- 이튿날, 어머니와 세 아이의 시체를 이웃집 주부가 발견했다. 네 사람 모두 낫으로 목을 베였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였다. 동기는 남편의 전사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으나, 어머니를 잘 아는 이웃 사람들은 석연치 않아 했다. 그러나 바로 비국민적 행위로 간주되어, 민중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당국에 의해 사건은 즉각 어둠에 묻혔다. 어머니를 칭송하던 동네 주민들도 태도를 싹 바꿔 멸시 어린 시선으로 이쿠타 가를 보기 시작했다.
- 이 섬뜩한 동반자살 사건에서 수수께끼였던 것은 막내 요키타카만 무사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와 두 형과 누나가 피투성이로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방구석에서 그는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도 완강히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른들은 너무나도 큰 충격에 자기 안에 틀어박히고 만 것으로 해석한 듯했지만, 이때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그날 밤 찾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뿐이었다. 그 의문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일의 원흉이고 발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아니라 '뭔가'가 찾아온 것 때문에 이쿠타 가는 비극을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의문의 방문객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면 그 화가 이번에는 가차 없이 자기에게 닥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골이 오싹했던 것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의례가 무사히 끝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인 조주로에게 전승에서 이야기하듯 화가 닥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계속해서 불안에 시달렸다.
거기에는 전날 별안간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한 하녀 스즈에에게 들은 불가해한 그녀의 어떤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미나 까닭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느낀 것은 흡사 영검한 신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를 드렸던 대상이 실은 끔찍한 마물이었다는 말을 들은 듯한, 그런 섬뜩한 기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주로를 지켜보고 싶었다.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집에서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은 오로지 그뿐이었다. 게다가 조주로는 시간을 내서 요키타카에게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년 탐정단(에도가와 란포가 어린이를 위해 쓴 추리소설 시리즈)의 활약에는 가슴이 설렜다. 아케치 고고로라는 명탐정도 나오지만, 요키타카에게 영웅은 소년 탐정단의 고바야시 요시오 단장이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사과처럼 뺨이 발그레한 고바야시 소년과 조주로가 겹쳐 보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단원과 단장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조주로가 그의 주인 중 한 사람인 주종관계였지만...
- 조주로와 히메코, 이 외모와 성격 모두 전혀 딴판인 남녀 이란성 쌍둥이가 어린 요키타카의 주인이었다. 옆에서 보면 두 주인도 아직 충분히 어리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키타카에게는 두 사람 다 어엿한 형이요, 누나였다. 게다가 이치가미 가에서 이 남매가, 아니 오빠가 얼마만큼 소중한 존재인지 가네 할멈이 단단히 가르쳐 ...
-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병약하다 보니 그 허세가 보고 있기에 측은했다. 게다가 속에서는 언제까지고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요키타카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후도 옹에게는 없고 효도에게 있는 것은 기껏해야 바람둥이라는 것뿐일지 모른다. 그러니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어린애라고 할 수 있는 히메코가 그런 태도로 나오면,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분한 것 같기도 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주인이라 해도...
- 다만 요키타카가 히메코에게 느끼는 이런 감정은 조주로에 대한 그의 감정의 역(逆)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 주인은 하인인 그를 다정하게 대해주었지만, 쌍둥이 여동생에게는 그 이상으로 마음을 써주었다. 두 사람이 받는 대우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그러나 그런 오빠에 대한 동생의 반응은 지극히 냉담했다. 그것이 또 요키타카를 심란하게 했다.
'히메코 님이 안 계시면 조주로 님은 좀 더 나를 봐주실지도 모른다.'
요키타카는 이따금 대담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었다.
- 이란성 쌍둥이라 그런지, 두 사람은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 조주로 쪽이 살빛이 희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용모인 데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맑았다. 그야말로 미소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용모였다. 그렇다고 히메코가 못생긴 것은 아니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는 여자답고, 오빠와는 다른 단정한 이목구비도 보통 같으면 충분히 미인으로 칭찬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주로와 나란히 서면 아무리 해도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이 대비는 그녀에게 불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두 사람의 차이는 외견뿐 아니라 성격에서도 나타났다. 얌전하고 차분한 조주로에 비해 히메코는 주장이 강하고 소란스러웠다. 똑같이 선이 가늘다 보니, 전자는 호감이 느껴지고 후자는 신경질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빠와 동생이 아니라 누나와 동생이었더라면 그나마 조금은 나았을 텐데."
하인이나 마을 사람들이 곧잘 그렇게 수군거리며 흉을 보곤 했다. 그러나 아들이 연약하고 딸이 기가 세다는 성질의 차이가 바로 히가미 가, 그중에서도 특히 이치가미 가에서 대대로 나타나는 저주받은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아들은 조주로라고 이름을 지음으로써 그 지벌을 물리칠 필요가 있었다. 딸에게 히메코(妃女子)라는 이름을 붙인 것 뒤에는 십중팔구 아오쿠비 님의 재앙이 전부 그쪽으로 몰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妃女'가 '媛(둘 다 '히메' )를 나타낸다고 보면, 꼭 비틀린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즉, 대를 이을 오빠가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원래라면 그를 향할 아오쿠비 님의 관심을 되도록 동생에게 돌리기 위해 '히메코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히메코가 병약한 것은 이 이름 때문이라 여겨졌다. 왜냐하면 이치가미 가의 남자아이가 약하고 여자아이가 기가 세다는 성격 차이는 그대로 신체의 차이와도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건강하지 못한 것은 원래라면 조주로가 짊어 ...
- 굽이굽이 감도는 포석이 깔린 참배길을 따라 한없이 가다 보면 우물이 나타난다. 다만 이 우물은 북쪽 참배길로 갔을 때만 만날 수 있다. 동쪽과 남쪽에는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 씻는 곳이 만들어져 있다. 우물과 손 씻는 곳 곁에는 각각 불제(祓除)의 신을 모신 사당이 보인다. 참배자는 이곳에서 부정함을 씻고 그 앞에 선 작은 도리이를 통과하는 것이다.
두 번째 도리이를 지나면 자갈이 깔린 경내가 나오고, 그 중앙에 북쪽으로 격자문이 배치된 히메카미 당이 있다. 내부에는 히메쿠비 무덤이라 전해지는 커다란 석비가 있고, 그 뒤에는 오엔 공양비라 불리는 작은 석탑이 모셔져 있다.
이 두 제신(祭神)이 바로 대대로 히가미 가를 수호하고 그와 동시에 지벌을 내려온, 아오쿠비 님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의 정체였다.
- 히메쿠비 무덤에 관한 최초의 전승은 덴쇼 18년(15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에 히메카미 향의 히메카미 성은 도요토미 군의 공세를 받았다. 그 결과, 성주인 우지히데는 자결, 그 자식인 우지사다는 히메쿠라(媛鞍) 산을 지나 서쪽 히카게 고개를 통해 간산을 신히 이웃 영토로 달아났다. 그러나 우지사다를 따라 달아나던 아오 히메는 산속에서 도요토미 군의 추격자가 쏜 화살을 목에 맞고 쓰러져서는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한다.
이 아오 히메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전부터 묘한 소문이 돌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시녀를 고문해 죽인다, 짐승의 날고기를 먹는다, 수상한 비술(秘術)에 심취해 있다, 아무 사내나 닥치는 대로 침소로 끌어들인다 등등.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도 우지사다가 무사히 달아난 것은 기뻐해도 아오 히메의 무참한 죽음을 애도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 그런데 히메카미 성이 함락되고 얼마 뒤부터 무서운 체험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어느 숯쟁이가 숯가마에서 히메쿠라 산의 원목을 써서 숯을 굽는데, 가마가 영 이상했다. 이상하게 여겨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원목이 사람의 뼈처럼 보였다. 게다가 살점이 타는 불쾌한 냄새까지 주위에 감돌기 시작했다.
숯쟁이가 혼비백산하는데, 돌연히 부슬비가 내리더니 엄청난 한기가 엄습했다. 주뼛주뼛 뒤를 돌아본 그의 눈앞에 녹슨 갑옷을 입은 피투성이 패주 무사가 서 있었다. 게다가 무사는 다시 한번 가마를 보라고 턱짓을 했다. 공포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가마 안을 다시 본 숯쟁이는 여자의 잘린 머리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섬뜩한 웃음을 띤 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뭉개지는 처절한 광경을 목격했다.
숯쟁이가 절규하며 얼굴을 돌리자, 뒤에 있던 패주 무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상반신이 피로 물든 머리 없는 여자가 자기에게 덤벼들려 하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마을로 도망쳐 돌아왔으나, 곧바로 고열로 쓰러져 며칠 뒤에 죽고 말았다.
- 한 번은 마을 사람 하나가 자욱한 안개비 속에 히메쿠라 산을 북에서 남으로 지나려 할 때였다. 어느 순간 괴상한 차림을 한 낯선 여자가 자기 앞을 걷고 있었다. 기모노를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쳤을 뿐인데, 바람도 불지 않건만 옷자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이런 산속에서 희한한 일이 다 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마을 사람은 겁이 더럭 났다. 발길을 돌리려고 몸을 틀자, 그곳에도 이상한 차림새를 한 여자가 있었다. 머리에는 사초풀로 엮은 삿갓과 두건을 썼는데 그 밑에는 얇은 속옷만을 길게 걸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이 황급히 앞을 돌아보자, 앞쪽 여자의 기모노가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밑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냥 머리만 허공에 떠 있었다. 그 머리가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마을 사람이 도망치려고 몸을 돌리자, 뒤쪽에 선 여자의 삿갓과 두건이 스르르 풀렸다. 그 밑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 없이 몸통만 걷고 있는 것이었다. 앞에서는 잘린 머리가, 뒤에서는 머리 없는 몸통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여자의 머리를 향해 곧바로 돌진했다. 그러고는 머리와 충돌하기 직전에 몸을 굽히고 그 밑을 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남쪽까지 도망쳐 그럭저럭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 후 밤이면 밤마다 산에서 잘린 머리가 온다고 헛소리를 되풀이하더니 한 달쯤 뒤에 훌쩍 종적을 감추었다.
- 그런 기괴한 체험을 하는 자가 마을에 속출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마을 사람들이 아오 히메의 시신을 찾아내 장사를 치르려 하자, 몸뚱이는 짐승에게 뜯어 먹히고 부패했는데도 머리만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고 전해진다.
- 새삼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아오 히메의 시신을 정중히 장사 지내고 석비를 세워 히메카미(媛神)님으로 받들기로 했다. 히메쿠라산은 어느새 히메쿠비 산으로 불리고, 히메카미 님도 자연히 '媛首'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 또 하나, 오엔 공양비의 이야기는 아오 히메의 전승에서 200년쯤 내려온다.
- 호레키 시대(1751~63년)에 히가미 가 당주 도쿠노신이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운 사이에 겨우 반년 전에 후처로 들어온 오엔이 하인과 눈이 맞아 달아났다. 그때 그들의 도주 경로가 약 200년 전에 아오 히메가 가려했던, 동서로 히메쿠라 산을 통과해 서쪽 히카게 고개로 내려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섬뜩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오엔의 경우는 고개를 넘는 데 성공했다. 정부(情夫)와 손을 잡고 히메카미 촌으로부터, 히가미 가로부터,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하인의 부정을 안 도쿠노신은 불같이 화를 냈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상관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사람을 풀어 두 사람의 행방을 찾게 했다. 그 보람이 있어 몇 달 뒤에 두 사람을 찾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도쿠노신은 강제로 두 사람을 끌고 오려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전부 없었던 일로 하고 용서할 테니 좌우지간 돌아오라고, 부정을 불문에 붙이는 듯한 말을 전하게 했다.
도쿠노신의 전갈을 듣고 두 사람은 놀랐다. 그리고 상의한 결과, 결국 오엔만 돌아가기로 했다. 하인은 주인을 배신하고 마님을 가로챈 마당에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돌아가겠느냐고 생각했으리라.
몇 주 뒤, 오엔을 태운 가마가 히가미 가에 도착했다. 가마가 집 정면에 서고 오엔이 내리려 했을 때였다. 그때까지 숨어 있던 도쿠노신이 즉각 칼을 들고 덤볐다. 그녀가 가마에서 머리를 내민 순간, 그 목을 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도쿠노신이 내리친 칼이 오엔의 머리 장식에 맞는 바람에 단칼에 목을 베지 못했다. 칼이 어중간하게 목에 박혀 그녀는 숨이 끊어지기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뒹굴었다.
오엔은 몸부림치며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고 한다.
"반드시... 반드시 손자 대까지, 칠 대 뒤까지 저주해주마..."
고통 끝에 죽은 오엔은 도쿠노신의 명령으로 마을의 무연묘지에 묻혔다. 매장에 입회한 사람은 무료사 승려와 사미승 뿐이었다고 한다.
- 그로부터 얼마 뒤에 도쿠노신의 전처가 낳은 맏아들 도쿠타로가 칠엽수 열매로 만든 떡을 먹다가 떡이 목에 걸려 질식사했다. 이어서 둘째 아들 도쿠지로가 말벌에 목을 쏘여 급사했다. 도쿠노신이 새로 얻은 후처는 뇌수가 없는 아이를 연이어 둘을 낳고는 발광해서 자해했다. 그 밖에도 집안에서 목이나 손목, 발목에 이상이 생기는 자가 속출했다.
겁에 질린 도쿠노신은 마을 무연묘지에서 오엔의 유체를 파내 히가미 가의 묘소에 정중히 다시 매장했다. 그래도 괴이는 잠잠해질 줄 몰랐으므로, 도쿠노신은 드디어 히메카미 당 안에 오엔의 공양비를 세웠다. '엔(淡)'이라는 이름에서 아오 히메(淡媛)와의 사이에 어떤 깊은 인연 같은 것을 그 나름대로 느꼈는지 모른다. 이윽고 히가미 가를 덮쳤던 공포는 서서히 가라앉았다고 전해진다.
- 당초에 아오 히메가 히메카미(媛首)님이라 불린다는 이유로 오엔은 엔카미(淡首)님이라 불렸으나, 발음이 어려운 데다 또 신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받들어 모시는 이상 똑같이 신이라는 의식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자연히 두 사람을 합쳐 아오쿠비(淡首) 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오 히메와 오엔에게 공통되는 '淡'자를 채용한 것이리라. 그것을 '아오'라고 읽은 것은 '엔'이 읽기 힘들다는 이유 외에 결국은 신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으로 받들어도 아오쿠비 님은 히가미 가에, 그중에서도 특히 이치가미 가에 지벌을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아오 히메가 목에 화살을 맞고 목이 베인 뒤로 약 400년, 오엔이 목을 베인 뒤로 약 2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오쿠비 님에 얽힌 지벌과 화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질 줄 몰랐다.
- 히메카미 촌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아이들 노래에 다음과 같은 기묘한 동요가 있다.
이기면 기쁜 꽃 한 돈
지면 분한 꽃 한 돈
히가미의 후계자 잠깐 와봐라
몸이 피곤해 못 간다
히가미의 며느리 잠깐 와봐라
머리가 아파서 못 간다
그건 됐다 됐다 어느 애 가질래
사내애 가질래
그건 금세 가 계집애는 어때
계집은 건강, 하지만 이치가미는 끊어져
그건 됐다 됐다. 어느 애 가질래
사내애 가질래
그건 금세 안 와 계집애는 어때
계집은 장수, 하지만 이치가미는 남지 않아
그건 됐다 됐다 어느 애 가질래
의논하자 그 애에게 묻자 그러자
-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꽃 한 돈' 비슷한 놀이를 한다(우리나라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유사한 일본의 아이들 놀이). '사내애'와 '계집애' 부분에 같이 노는 아이의 이름을 넣어 부르며 양편에서 아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 가사를 보면 히가미 가에서는 사내아이보다 계집아이가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내아이가 '금세 가고' ‘금세 안 온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어 당혹하게 되는데, 이는 원래 가사가 고쳐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둘 다 '금세 죽어'였다는 것이다. 또 '몸이 피곤해 못 간다'는 '몸이 약해 못 간다', '머리가 아파 못 간다'는 '머리가 무서워 못 간다'였으며, '그 애에게 묻자'는 '머리에게 묻자'였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의 '머리’는 아오쿠비 님을 가리키나 그렇게 쓰기는 곤란하므로 자연히 현재의 가사로 바뀌었다는 해석이 있다.
- 그런 히메카미 촌사람들의 마음(아니, 두려움이라 해야 할까)도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히가미 가 대대로 사내아이가 무사히 자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느새 아이들 입에서 참으로 섬뜩한 동요가 불리게 된 것이리라.
- 히가미 가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주의 적자인 맏아들이 가독을 승계하고 가문을 존속시켜 온 역사가 있다. 나중에 분가가 생겨 일족이 크게 셋으로 나뉘고 이치가미 가, 후타가미 가, 미카미 가라는 옥호를 사용하게 된 뒤로도 그 규율은 지켜졌다. 이치가미 가의 맏아들이 히가미 일족의 장이 된다는 것이 히가미 가에 전해지는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이치가미 가에서는 아들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대개 어렸을 때 죽고 말았다. 설사 소년기나 청년기까지 자란다 해도 병약하다든지 부상이 끊이지 않는다든지 했다. 그나마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들이 있어도 역시 선이 가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반대로 딸은 내버려 둬도 무사히 자랐다. 그렇기에 조주로와 히메코에 관해 하인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험담도, 마을 사람들의 히메코 명명에 얽힌 해석도 결코 단순한 야유나 농담, 무책임한 발언만은 아니었다.
- 이치가미가에서 대를 이을 아들이 자라지 못했을 경우, 히가미 일족의 장은 후타가미 가와 미카미 가의 맏아들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만약 그 권력을 후타가미 가에서 가지면 이치가미 가와의 입장이 뒤바뀐다. 즉, 그때까지 후타가미 가였던 집안이 이치가미라는 옥호를 쓰게 되고, 이치가미 가는 후타가미 가로 강등되는 것이다. 이는 미카미 가가 일족의 장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 다만 히가미 일족의 긴 역사 속에 이런 극적인 권력 교체가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제는 정말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위태로운 상황을 몇 번씩 맞이하면서도 늘 가까스로 이치가미 가의 자리를 유지해 온 것이다. 몸은 약해도 건재한 후도 옹이 그 가장 큰 증거일지 모른다. 물론 효도도 마찬가지다.
- 왜냐하면 먹물이 가득 찬 듯한 어둠 속에 흐릿하게 떠오른 불빛만을 응시하며 나아가다 보니, '저게 정말 초롱 불빛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그것치고는 좀 둥글지 않나, 너무 흐릿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겁이 더럭 났다. 앞쪽 어둠 속에 흔들거리는 것이 당장에라도 딱 멈춰 섰다가 이쪽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혹시 쿠비나시 아냐...?'
- 히메카미 촌에서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뭐니 뭐니 해도 아오쿠비 님이다. 그렇지만 과거에 히메카미 향이라 불리던 이 지역에 마을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은 아오쿠비 님 외에도 위패산 (위패 모양으로 생긴 산으로 이곳의 나무를 베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이나 산마(山魔)를 비롯해 예로부터 다수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쿠비나시라 불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이었다.
- 요키타카는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입매가 굳어 웃을 수가 없었다. 아오쿠비 님의 경우에는 예만 충분히 갖추면 마을 사람들까지 화를 입지는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 그러나 쿠비나시는 달랐다. 마주치기만 하면, 씌기만 하면, 도망칠 방도가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공포감이 있을 뿐이었다.
쿠비나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왜 이 지역에 나타나는지 등에 관해서 실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 정도로 두려워하는 존재이면서 정작 중요한 정체에 관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요키타카는 한층 더 발소리를 죽이고 남은 거리를 슬금슬금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기억으로는 우물까지 거의 다 가서 왼편에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큼 큰 석비가 있을 터였다. 이윽고 점찍었던 석비를 발견한 그는 숨기 전에 무심코 우물 쪽을 보다가 놀랐다. 조주로의 벌거벗은 뒷모습이 느닷없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우물 옆에 놓인 초롱 불빛에 희미하게 떠오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어, 어, 어째서?'
의례로 인한 긴장이 과한 나머지 주인의 머리가 이상해졌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몸을 정결히 하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냥 참배만 하는 것이라면 손만 씻어도 되지만, 십삼야 참배쯤 되면 역시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요키타카는 조주로의 나체를 봤을 때 받은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알몸을 본 것 때문에 동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알몸이 의외로 다부지게 느껴진 것이 충격이었다.
물론 평소에 집안일을 거드는 마을 아이들에 비하면 조주로의 몸은 아직 빈약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지금까지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 남성으로서가 아닌, 그렇다고 여성도 아닌, 말하자면 중성적인 매력이 별안간 산산조각 날 정도로, 남성이라는 성을 충분히 의식시키는 신체였다.
- 하지만 십삼야 참배니까 당연한 걸까...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의식의 의미를 요키타카는 똑똑히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히가미 일족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에게 중요한 통과 의례라는 사실은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조주로가 평범한 어른이, 그것도 아버지인 효도처럼 시시한 사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 요키타카에게 조주로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세상 사람들 눈에 조주로는 주인이요, 요키타카는 그를 섬기는 하인이다. 그 점은 잘 알고 있었고, 또 그 역할을 게을리할 생각도 없었다. 그것은 조주로 뿐 아니라 히메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치가미 가에서 자기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대한 대가이니까. 그런 도리는 이치가미가에 처음 왔을 때부터 가네 할멈이 확실하게 가르쳤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요키타카는 할 일만 하면 개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든 그건 본인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의 특수한 입장이 그런 생각을 낳았을 것이다.
하인이라는 입장을 떠난 요키타카에게 조주로는 이치가미 가에서 유일하게, 아니 히메카미 촌에서 단 한 사람, 그가 따르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고 물론 아버지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머니나 누나도 아니었다. 친구와도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을 한데 섞은 듯한 존재랄까. 하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설명이라 할 수 없다.
- 요키타카는 훗날 어린 시절에 품었던 조주로에 대한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그 감정은 흡사 첫사랑이 아니었던가. 그런 식으로 과거의 감정을 상기한 사춘기의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여섯 살의 그가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도 요키타카는 혼비백산했다. 게다가 충격은 조주로 때보다도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아, 아름답잖아...?'
조주로의 알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남성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던 것처럼, 히메코에게서는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성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물 옆에 놓인 흐릿한 초롱 불빛 속에 어슴푸레 떠오른 히메코의 나체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발달되지는 못했어도 어렴풋이 탄력이 느껴지는 엉덩이와 약간 봉긋하게 부푼 가슴, 그리고 무엇보다 탐미적이라 할 만큼 요염하고 섬세한 피부... 요키타카가 무의식 중에 아름답다고 느끼며 히메코에 대한 그때까지의 인식을 수정하고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 다만 그가 본 것은 그녀의 전체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아악!" 하고 그 입에서 소리 죽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흐릿한 불빛에 비추인 하얀 다리, 어린 나이에도 이미 요염한 엉덩이와 가슴, 그것을 가리려고도 하지 않는 양팔, 그리고 어둠처럼 캄캄할 뿐 아무것도 없는 목 위...
- 그랬다. 그녀는 머리가 없었던 것이다.
- 히메카미 촌을 돌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다양한 석비와 마두관음상이다. 그 석비 중에서 많은 것이 판도파(板堵婆)다. 소위 공양비인데, 납작한 석판 표면에 아미타여래 등 부처의 이름이 범자로 조각되어 있고 이어서 계명과 몰년, 고인의 사적(事績) 등이 새겨져 있다.
마을에 남아 있는 판도파는 대개 간토 무사의 것이라 여겨졌다. 그것도 신분이 있는 무사가 아니라 농병이나 향병 등 공양비라도 남아 있지 않으면 그 존재가 역사의 어둠 속에 파묻힐 뻔한 자들뿐이라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애가 그곳에서 느껴졌다.
- 실제로 오직 그것만을 삶의 목표로 여기며 오늘날까지 살아왔노라고 본인이 거리낌 없이 말하고 다닐 정도이니 대단한 일이다.
'친남매인데도..'
두 사람의 엄청난 관계를 알았을 때, 다카야시키는 구가 특유의 복잡한 인간관계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 후도(富堂) 옹은 아들이 셋 있었다. 맏아들 고쿠도(國堂), 둘째 아들 시도(强堂), 그리고 셋째 아들 효도(兵堂)다. 자기까지 넣어 '부국강병'이 되도록 후도 옹이 생각한 이름이었다. 당시 일본 사회를 반영하는 명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후도 옹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먼저 고쿠도가 일곱 살에 병사하더니, 이어서 시도가 다섯 살에 또 병에 걸려 죽었다.
이때만은 마을 사람들도 아오쿠비 님의 지벌을 말하기 전에 가즈에 부인의 집념이 아닐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히메카미 당에서 열심히 참배를 드리는 그녀의 모습을 목격한 마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기원했을까...
- 누나의 심상치 않은 동태를 안 후도 옹은 유모인 구라타 가네에게 어떻게든 효도만은 살리라고 엄명했다. 그녀도 목숨을 걸고 갓난아기를 길러 내겠노라고 맹세했다. 당시 상황을 아는 노인에 따르면, 두 사람은 농담이 아니라 거의 주술 싸움이나 다름없는 격한 응전을 벌였던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가네의 부적이 더 위력이 셌다고 봐야 하리라.
- 조주로가 혼사 쪽에서 올라가도 두 사람은 꼭대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소라 탑이라는 건물이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겠니? 이렇게 두 통로가 엇갈리게 되어 있는 거야."
조주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요키타카를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이상한 걸 만들었지요?"
조주로는 둘만 있을 때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능숙하게 구별해 쓰지 못하는 요키타카는 저도 모르게 정중한 어조가 되곤 했다.
"그건 말이지, 이 소용돌이 속을 지나는 데 액막이의 뜻이 있기 때문이야."
타인을 대하듯 다소 딱딱한 요키타카의 말씨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조주로는 건물의 놀라운 기능을 가르쳐주었다.
- 아오쿠비 님은 히가미 가의 남자에게, 그것도 특히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에게 지벌을 내린다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여자에게는 전혀 화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치가미 가에서 태어나는 여자 중에 드물게 미치광이가 나올 때가 있었다. 일상생활은 보통으로 영위하는데 그 언동에 이따금 광기가 비치곤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행(奇行)이 잦았다고 전해지는 아오 히메와 겹쳐져, 어느새 아오쿠비 님의 지벌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하인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히메코를 기이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본인의 거친 언동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대대로 출현하는 광녀의 존재 탓이 컸다. 그녀가 미쳤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은 누구나 늘 품고 있었다.
- 미친 여자가 이치가미 내부의 지벌이라면, 외부의 지벌을 받기 쉬운 것은 신부였다. 물론 이는 대를 이을 아들과 결혼하는 여자를 말한다. 후계자에게 지벌을 내린다는 부정적 감정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곳에는 극히 비틀린 애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자기가 죽일 상대방의 마음을 다른 여자가 빼앗아버리는 결혼이라는 의례가 아오쿠비 님의 노여움을 산다는 생각이다. 그런 해석이 완전히 받아들여지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치가미 가에 전해진다.
- 간세이 시대(1789~1800년)에 다른 지역에서 시집온 이치가미 가 후계자의 아내가 히메카미 당 참배를 소홀히 했다. 보통 혼례 전에 얼굴을 검댕으로 더럽히든, 두건을 쓰든, 초라한 의복을 입든 하고 어디까지나 정체를 감춘 채 먼저 참배를 한 뒤, 모든 의례가 끝난 다음에 이치가미 가의 정식 마님으로 다시 한번 화려하게 참배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것은 식에서 초야에 이르기까지, 요는 신부가 타지 사람에서 이치가미 가의 사람이 되기까지의 그사이가 아오쿠비 님의 지벌을 받기가 가장 쉽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 신부는 무시하고 말았다.
이치가미 가의 별채에서 초야를 치른 뒤, 신랑은 신부가 잠자리에 없음을 깨달았다. 놀라서 온 집안을 찾으니, 왜 그런지 헛방의 널문 한복판이 갈라져 있고 그곳에 머리가 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이래로 신부가 히메카미 당에 참배를 해도 괴이한 일이 계속된 탓에 이치가미 가의 후대 당주가 여러 종교가와 상의한 결과, 히메카미 당과 인접한 곳에 소라 탑과 혼사를 세웠다. 그때부터 히가미 일족의 남자가 처를 얻을 때는 초야에 반드시 혼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풍습이 어느새 삼삼야 참배에도 도입된 것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혼사가 셋 있는 것도 아오쿠비 님에게 혼동을 주기 위한 장치인 모양이다.
- 이 혼사는 그 용도에서도 명백히 알 수 있듯, 히가미 일족이 며느리를 들일 때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존재와 위력은 일부에서 일찍부터 유명해, 마물에 씐 가계에서 꼭 며느리를 들이고 싶을 때 히메쿠비 산 히메카미 당에서 초야를 치르면 그 어떤 마물도 쫓아낼 수 있다는 소문이 몇몇 지방에 돌았다. 그러다 보니 이치가미 가에서는 내밀한 문의를 받을 때가 이따금 있었다. 그런 경우 상대의 신원만 확실하면 거의 대부분 혼사를 제공했다. 똑같이 성가신 지벌에 시달리는 동지라는 의식이 이치가미 가에 있기 때문이리라.
- "어?"
그곳에서 어째선지 갑자기 초롱 불빛이 꺼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중 나선을 그리는 구조 탓에 히메코가 꼭대기에서 내리막 경사로에 접어들어도 불빛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요키타카가 볼 때 뒤쪽이 되는 남쪽을 지날 때는 별도로 치더라도, 북쪽에도 반드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벽에 난 격자창으로 불빛이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꼭대기에서 초롱이 꺼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그러니까 요키둥이는 초롱을 든 히메코가 히메카미 당에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단 말이지?"
요키타카가 이야기를 마치자, 조주로는 자신을 설득하듯 중얼거렸다.
"그게 쿠비나시... 아니, 아오쿠비 님이 아니라면..."
두 번째가 히메코라고 생각하면서도 요키타카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그 무서운 의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검토하는지 까다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조주로가 또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닐걸."
"어째서요?"
"아오쿠비 님이시라면 히메카미 당에 들어간 뒤에 히메쿠비 무덤으로 돌아가시지 않을까?"
"아, 그렇구나... 하, 하지만 쿠비나시라는 건요?"
"그것도 아닐 거야. 아오쿠비 님이건, 쿠비나시건 저 소라탑엔 못 들어가니까 말이야."
방금 전에 그 건물이 액을 막아주는 장치라고 조주로 본인에게 설명을 들었던 것을 떠올려 놓고도 요키타카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 "올라오는 기척은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러신 거죠?"
"그래, 맞아.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소라 탑까지 가서 불러 봤어. 그런데 대답이 없는 거야. 이상하다 싶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더니 아무도 없지 뭐야. 불 꺼진 초롱만 바닥에 떨어져 있고... 말이야."
마지막의 '말이야'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요키타카는 왜 그런지 오싹했다.
- 한시라도 빨리 히메코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은 우물이겠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예전에 사고도 있였고."
조주로는 메이지 초기에 십삼야 참배 중에 대를 이을 아들이 우물에 떨어져 목뼈가 부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히메코는 재계 뒤에 히메카미 당으로 갔으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조주로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우물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요키타카는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갔다.
- 두 사람이 물을 끼얹었던 우물 북쪽을 피해 동쪽으로 다가간 조주로가 초롱을 늘어뜨려 깊은 구멍을 비추었을 때였다.
"보면 안 돼!"
그는 곧바로 초롱을 끌어당기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바로 곁에서 같이 우물을 들여다보던 요키타카는 그 잠깐 사이에 그것을 보았다.
기다랗고 캄캄한 구멍 밑 우물물에서 이쪽을 향해 삐죽 튀어나온 하얀 두 다리를...
- 하지만 이때만은 달랐다. 효도의 말을 거스르겠다는 기분이 아니라 순수하게 호기심에서, 그것도 무서운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요키타카는 반대로 눈을 감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밧줄이 점차 올라옴에 따라 '아아, 안 되겠다. 더는 안 되겠다. 얼른 눈을 감아야 하는데, 안 그러면 엄청난 것을 보게 돼' 하는 공포도 느꼈다.
제사당에서는 냉정했던 이쿠코도 그와 비슷한 심정인지, 도중에 얼굴을 다른 데로 돌렸다. 효도도 시신을 보고 싶지 않은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현실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던 사람은 두 손으로 거적을 펴든 가네 할멈 뿐이었다.
- 이윽고 밧줄에 묶인 발목이 나타났다. 기둥 두 개에 각각 매단 등 잔불빛에 그 발목이 소름 끼치게 창백하게 보였다. 이어서 정강이, 무릎, 허벅지, 엉덩이가 나타났을 때, 요키타카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신의 피부에 무수히 많은 긴 머리카락이 흡사 기괴한 흡혈충처럼 빽빽하게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뭐지?'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는 속까지 메슥거렸다.
'히메코 님 머리에서 빠졌나?'
하지만 자연히 빠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양이 많았다. 그렇다고 본인이 잘랐을 것 같지도 않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터무니없는 발상이 떠올랐다.
'머리를 자른 게 아니라, 어쩌면 목을 베면서 머리카락까지 잘린 건...'
- 그 뒤의 기억이 없었다. 우물 속에서 뭔가가 나온 것 같은... 그것이 자기를 우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 같은... 아니, 몸에는 그 감촉이 분명히 남아 있었지만, 요키타카는 구태여 기억해 내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히메코 님이...'
이튿날, 서둘러 장례를 준비하는 가네 할멈을 거들면서도 요키타카의 머릿속에는 그런 의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기야 쿠비나시의 출현부터 시작해서 소라 탑에서 히메코가 사라진 것, 그리고 우물에서 발견된 것 등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수수께끼는 죽은 사람이 조주로가 아니라 히메코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조주로 님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지만...'
그런 기쁨을 덮어버릴 만큼 찜찜하고 시커먼 뭔가가 요키타카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 '역시 스즈에 씨가 한 그 기묘한 이야기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십삼야 참배 전날에 있었던 일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 그녀가 집 뒤쪽의 딴채 곳간('열어서는 안 되는 곳간'이라고도 한다)으로 불러냈다. 이름 그대로 낡은 곳간이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가족이나 하인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
"나, 오늘로 여기 그만둘 거야."
천연덕스러운 말투 때문인지, 요키타카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는 서서히 놀라 하치오지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이 집에서 십삼 년 동안 살면서 나도 여러 가지를 알았어. 물론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안 돼. 게다가 그때는 의미를 몰라도 나중에 깨닫는 일도 있으니까 말이야. 뭐가 좀 이상하다, 묘하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 기억해 두는 거야."
- 그런 요키타카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스즈에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내더니 더욱 놀라운 기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주로 님이랑 히메코가 태어난 날 이야기는 전에 자세하게 해 줬지? 별채 안에는 후키 마님이랑 가네 할멈이, 밖에는 효도가 있었고, 나는 으슥한 곳에서 훔쳐보고 있었다고. 그때 말이야, 실은 아주 기묘한 걸... 아니, 소름 끼치는 걸 봤지 뭐야."
"뭐, 뭔데요?"
요키타카가 무심결에 경계할 정도로 그녀의 말투에서 사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처음에 히메코가 태어나고 가네 할멈이 '딸입니다!' 했을 때, 효도가 웃더라고. 그야말로 만면에 추잡한 웃음을 띠고... 얘, 이상하지 않니?"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스즈에의 표정과 '얘, 이상하지 않니? 하고 묻는 어조의 기이함에 요키타카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이치가미 가의 당주가 딸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웃은 거야."
- 뭔가 알아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을 안 기분이었다. 하지만 스즈에가 하는 이야기의 불가해함은 요키타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네 할멈에게서도 히가미 가의 대를 이을 후계자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여러 번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 "나 말이야,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하지만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효도는 웃고 있는 거야... 그러고 나서 조주로 님이 태어나고 가네 할멈이 '아들입니다' 한 순간, 그 웃음이 슥 사라지더라. 내가 봐서는 안 되는 걸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등골이 오싹했어. 그러고서 효도한테 들키기 전에 허겁지겁 도망쳤지."
- "효도의 반응이 뭘 의미하는지 줄곧 수수께끼였어. 으음, 지금도 완전히 알아낸 건 아니지만...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 문제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 분명하다고 생각해. 내 생각엔 효도가 뒤에서 큰나리한테 반항하려는 게 아닐까 싶거든. 물론 후키 마님도 배신하고 말이지. 게다가 최근에 장차 히메코를 고지랑 결혼시키자는 이야기를 효도가 큰나리한테 하는 걸 들었어. 알겠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 조합인지를..."
애석하게도 요키타카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몹시 꺼림칙한 일이라는 것은 막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집에는 잊어버릴 만하면 미친 여자가 태어난다고 하지만, 효도도 머리가 이상하지. 그 인간이 하려는 짓은 짐승만도 못한 일이야.”
그렇게 내뱉듯 말하는 스즈에의 눈초리가 요키타카에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그녀야말로 약간 머리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니? 이건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야."
거기서 스즈에는 갑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왜냐하면 넌 조주로 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치가미 가에서 살 게 틀림없으니까. 그러니까 너한테 이야기해 두기로 한 거야. 알겠니? 표면만 보면 안 돼. 사물에는 반드시 이면이 있는 거야. 특히 거창하고 성가신 관습이 대대로 내려오는 이런 구가는 어느 날 갑자기 그것들이 붕괴해서..."
스즈가 별안간 조용해졌다. 요키타카가 올려다보자 창백한 얼굴로 그의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곳간 그늘에서 사람 그림자가 스윽 사라지는 것이 한순간 보인 것만 같았다.
"너, 넌 이제 가보는 게 좋겠어. 가네 할멈이 찾으면 곤란하니까. 난 좀 있다가 갈게. 아, 이거 부적이야. 너 줄게. 방금 한 이야기, 의미를 몰라도 기억해 두는 거야. 네가 크면 자연히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잘 있어."
스즈에는 작은 부적 주머니를 주며 빠른 말투로 말하고는 요키타카를 본채 쪽으로 떠밀었다.
-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스즈에는 친했던 하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치가미 가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요키타카 쪽을 쳐다본 듯한 느낌이 든 것은 기분 탓일까. 다만 불현듯 그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튿날, 십삼야 참배 중에 히메코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
우연이라 한다면 우연이겠지만, 요키타카는 거기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섬뜩한 우연의 일치를 느꼈다. 어째서 죽은 사람이 히메코였나? 그 무시무시한 대답이 스즈에의 이야기에, 아니 이야기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게다가 히메코의 죽음이 이제부터 일어날 진짜 재앙의 시작이 아닐까, 이윽고 엄청난 재화가 히가미 가를 덮치고 그가 좋아해 마지않는 조주로가 그에 말려들지 않을까 하는 예감마저 들었다.
- 다카야시키에게 유품으로 남기고. 요키타카가 남자아이다운 관심에서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물론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기타모리 주재소 선반 안쪽에 고이 모셔놓았다.
다만 놀랍게도, 후타미는 다카야시키가 출정해 있는 사이에 은퇴하고도 마을에 남아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한 듯했다. 거절한 모양새가 되기는 했어도 다카야시키가 자기에게 뒷일을 부탁하려 했다는 사실이 후타미 나름대로 마음에 걸렸는지 모른다. 하기야 새로운 단서를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답기는 했지만.
- 그리고 7년 후, 십삼야 참배로부터 계산해 10년 뒤의 히메쿠비 산에서 후타미 전 순사부장의 우려는 보기 좋게 적중되었다.
그것은 피해자의 신원은 처음부터 확실한데도 머리가 잘려 사라져 버린다는 대단히 기괴한 살인 사건으로 막을 올리게 된다.
- 이 지역에 돌아온 뒤로 저는 그때까지 밤에 집필하던 생활습관을 바꿔 아침부터 집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습관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일출과 더불어 일어나 원고지 앞에 앉고 해가 지면 만년필을 내려놓는 생활이 이런 시골에서는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데 즈음해, 저는 그날 아침 일찍 북쪽 도리이 입구로 히메쿠비 산에 들어가 포석이 깔린 참배길을 걸어 히메카미당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전쟁 중에 남편과 함께 히메카미 촌으로 옮겨와 10년 전에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산 자체에 발을 들여놓은 기억이 거의 없는 저에게 그것은 대단히 두려운 체험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집으로 돌아와 '1장'을 쓰기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참배길을 걸으며 저는 30년 전에 이치가미 가의 십삼야 참배에 침입했던 요키타카와 어느새 동화된 듯한 기분까지 맛보았으니까요.
하지만 경내를 걷다가 자갈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던 것이, 스스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약간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오른쪽 발목을 다쳤기 때문입니다. 발목... 아뇨, 역시 지나친 생각이겠지요. 이런 원고를 씀으로써 아오쿠비 님의 노여움을 산다면, 그 지벌은 당연히 머리 자체에 나타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발목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역시 너무나도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고 앞장까지 썼습니다만... 실은 이 '막간'을 시작하기 전에 머리도 식힐 겸 슬슬 뒷마당을 갈아놓을까 하고 괭이질을 하는데, 이번에는 왼손을... 네, 그렇습니다. 왼쪽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물론 익숙지 않은 밭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솔직히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엔 씨가 도쿠노신에게 참수된 뒤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가 잇따라 급사하고, 새로 얻은 후처가 뇌수가 없는 아이를 연이어 둘 낳은 뒤 미쳐 죽었을 때 집안에 목뿐 아니라 손목이나 발목의 이상을 호소하는 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손목과 발목도...
- 터무니없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말았군요. 방금 한 10분 동안 밖을 거닐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들어왔습니다. 저의 하잘것없는 부상보다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진척시키기로 하지요.
그나저나 전쟁이 끝나고 수년간, 미군의 점령 하에 1천만 명에 달하는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혼란기에 남편인 다카야시키 하지메가 무사히 소집해제됐을 뿐 아니라 기타모리 주재소 순사로 다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굶주림의 시대를 돌아보면 대단히 고마운 일이었노라고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 이 주술의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히메쿠비 촌에도 예로부터 전해지는 풍속은 있었지만, 그런 종래의 마을 풍습으로는 아오쿠비 님에게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후도 옹이 그 실적을 높이 사서 불러들인 사람이 가네 할멈입니다. 즉, 그녀는 산파 및 육아 전문가이자, 이치가미 가에게는 조주로 씨를 수호하는 경호인 같은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요키타카는 이치가미 가의 남존여비에 놀란 것 같지만, 예전에는 어디나 그랬습니다. 긴키의 어느 지방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저 집은 천 냥을 벌었다'고 하고 딸이 태어나면 '절반이다' 하고 유감스러워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 가네 할멈은 태어난 직후 목욕시키는 것부터 남녀를 차별했습니다. 조주로 씨의 경우 따뜻한 물로 적신 칼을 목덜미에 갖다 대고 마를 쫓아낸 데 비해, 히메코 씨는 그냥 목욕만 시켰습니다. 목을 의식한 것은 물론 아오쿠비 님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또 목욕물도 여자는 그냥 따뜻한 물이었던 데 비해, 남자의 목욕물에는 잉걸불을 부젓가락으로 집어 담그고 옻나무 잎을 넣었다고 합니다. 전자는 화상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액막이라는 것은 저도 알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조주로 씨에게만 하다니 철저하구나 싶어 그런 의미에서는 감탄했습니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옻나무 잎 대신 쑥이나 창포를 넣기도 합니다.
- 가네 할멈은 그 밖에도 다양한 액막이 주술을 행한 모양입니다. 히메카미당 경내의 자갈을 히메코 씨 머리맡에만 갖다 놓고 조주로 씨 곁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 것, 히메코 씨의 배내옷은 오래전부터 붉은색으로 아름다운 옷을 준비했으면서 조주로 씨에게는 출산하기 일주일쯤 전에 가네 할멈이 적당히 지은 누런색 누더기를 입힌 것, 처음 바깥 외출을 시킬 때 그녀의 얼굴은 깨끗하게 그냥 두었으면서 조주로 씨 얼굴에는 솥바닥에 들러붙은 검댕으로 가위표를 그린 것 등등.
- 이것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경내에 있던 자갈은 히메카미당에 속한다고 여겨지니 아오쿠비 님의 주의를 계집아이에게만 돌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히메코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사내아이를 지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배내옷도 보통은 출산 직전에 대충 지은 누더기를 입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미리 준비하면 불길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옷이 아름다우면 공연히 마물의 시선을 끌게 된다고 기피되었지요. 외출 시에 얼굴을 더럽히는 것은 아야쓰코라고 해서, 이 역시 귀신으로부터 갓난아기의 몸을 지키기 위한 액막이 주술입니다.
즉, 가네 할멈은 조주로 씨를 수호하는 장치를 몇 겹으로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대신할 희생양으로 히메코 씨를 이용한 것입니다. 매우 심한 처사이지요. 히메코 씨가 이치가미 가의 여자 치고는 병약했던 것도, 커서는 언동이 조금 이상해진 것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면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쌍둥이가 처음으로 맞은 삼삼야 참배(요는 삼야 참배이군요)에서 가네 할멈이 이때만은 두 사람을 뒤바꾼 행위겠지요. 조주로 씨에게 계집아이 옷을 입히고, 히메코 씨를 사내아이처럼 꾸민 것입니다. 물론 만일의 경우, 아오쿠비 님의 지벌이 대를 이을 아들 대신 딸에게 향하도록 한 결과로 보입니다.
- 요키타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은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조주로는 분명 기뻐해줄 테지만, 자신의 본심을 들킬 것 같아 무서웠다.
'내 본심...'
요키타카는 성장하면서 어느새 조주로에 대한 자신의 기분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 "아니, 특별히 급한 일은 아니었어. <그로테스크> 최신호가 도착했거든. 그걸 보여주려고."
바로 조주로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활판 인쇄된 A5판 괴기 환상동인지 <그로테스크>를 읽었을 때였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요키타카는 이 동인지를 알고 난 뒤 자신의 성적 취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해 흥미와 의문과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 <그로테스크>는 작가 에가와 란코가 발행인, 편집자 고리 마리코가 편집인이 되어 1년에 네 권씩 발행하는 계간 동인지인데, 업계에서의 평가도 높다고 한다.
에가와 란코는 전후에 창간된 탐정소설 전문지 <보석>의 공모로 데뷔해 눈 깜짝할 사이에 인기를 얻은 작가이면서도,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결코 남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별종인 듯했다. 듣자 하니 구(舊) 화족 출신으로 전후의 화족제도 폐지로 많은 동족이 몰락의 길을 걸은 데 반해 지금도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다만 가족은 모두 공습으로 죽는 바람에 혈혈단신이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후작님이라니까. 원래라면 전전의 하마오 시로의 ... "
- 조주로와 다카야시키 다에코의 영향으로 요키타카도 어느새 탐정소설을 읽게 되었다. 두 사람은, 특히 조주로는 꽤 많은 장서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읽을 책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 대단하다' 하면서 두 사람이 권해주는 책을 다 소화하기가 벅찰 지경이었다. 물론 요키타카에게 그것은 매우 즐겁고 기쁜 일이었다. 그런 행복한 독서 체험을 쌓아가던 몇 년 전, "으음, 요키둥이한테는 아직 좀 이르려나" 하고 망설이며 조주로가 내민 것이 <그로테스크> 창간호였다.
- "이 기자와 긴조의 <혼령 사는 사람>과 가고이케 아즈키의 <공포를 환시하는 여자>와 겐몬 나나미의 <고양이 할멈>이 괴기 단편이고, 이쪽 덴잔 아마구모의 <정신병원 살인사건>이 중편 탐정소설인데, 네 편 다 재미있으니까 읽어봐. 특히 <정신병원 살인사건>은 트럭이 정말 기상천외하다니까. 아, 하지만 그 밖의 탐미계열 작품은 취향이 아니면 읽지 않아도 돼."
조주로가 권해준 세 단편과 중편은 그가 말한 대로 재미있었다. 다른 작품들은 그저 그런 것이, 심지어 조주로가 쓰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독서의 즐거움과 개인적인 공상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정도로 충격을 준 작품이 고리 마리코의 <규방의 그늘>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난생처음 동성애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 10대 소년에게는 성에 관한 모든 것이 야릇한 금단의 화제였다. 그것도 요키타카처럼 어린 나이에 지방의 구가에 들어와 바깥 세계를 거의 모르고 하인으로 살아온 몸이라면, 동성애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 작중의 두 여자(구가의 사촌지간이라는 설정이었다)가 에가와 란포와 고가 마리코로 보이고, 나아가 조주로와 자기 자신처럼 보였다.
'아, 아냐 난 그런 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개운치 않은 감정에 이름이 붙여진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조주로 님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는 새삼 자문해 보았다. 물론 좋아한다고 그 즉시 대답했지만, 그것이 <규방의 그늘>에서 묘사된 것처럼 동성애인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자신은 결코 여성보다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조주로 만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 '만약 조주로 님이 그걸 아신다면...'
자신을 꺼리고 멀리하지 않을까. 요키타카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 이래로 그는 지금까지 해온 이상으로 정중하게 조주로를 대하려고 노력했다. 상대가 아무리 친밀한 태도를 보여도, 불현듯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자신을 억누르고 어디까지나 하인으로서 일관하도록 주의했다. 솔직히 괴로웠지만, 이윽고 아픔을 동반한 감미로움이라는, 요키타카로서는 믿기지 않는 감정이 ...
- 그러나 마리코는 동거 중인 수상한 소설가도 같이 가지 않으면 싫다는 조건을 내걸고, 또 관계하던 몹쓸 잡지의 편집실을 본가에 둘 것을 요구하며 앞으로는 자기도 작가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미쓰에를 비롯해 고리 가 사람들이 격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도 몹쓸 잡지의 동인 중에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였다. 그 순간, 고리 가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돌아오기 싫으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에가와 란코와 동거하는 것도 허락하겠다. 듣자 하니 원래는 화족이라 하지 않나. 뭐라더라 하는 잡지도 계속해도 된다. 작가가 되겠다면 그것도 네 자유다. 그렇게 모든 것이 그녀 뜻대로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소동을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마리코가 조주로에게 유쾌하게 써서 보낸 편지에 의해서였다.
- 그런 식으로 마리코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고리 가가 내건 조건은 하나뿐이었다. 조주로의 이십삼야 참배 사흘 뒤에 열리는 이치가미가의 혼사 모임에 그녀가 고리 가의 딸로서 참가하는 것이었다.
혼사 모임은 이치가미 가의 대를 이을 후계자의 신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맞선 자리였다. 신부 후보인 아가씨들 쪽에서 보자면, 히가미 일족의 정점에 설 장의 부인 자리를 노리는 싸움의 장이었다.
어쨌든 요키타카에게는 도저히 평온한 마음으로 있을 수 없는 날이 이미 내일로 다가와 있었다. 하기야 평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을 사람 전원이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그런 무서운 피의 참극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 "터주를 모시는 곳으로는 그 집의 부지 내 한 구석, 부지와 붙어있는 곳, 부지 뒷산, 부지에서 조금 떨어진 집안 소유의 산이나 전답 등이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부지에 가까운 경우는 그 집안이나 일족만 받들고 부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마을 전체가 모시는 경향이 없지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선 히메카미 당은 마을 안에서도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죠."
"'기왕 말 나온 김에'라고 하긴 뭐 하네만, 자네는 아오쿠비 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눈앞의 청년에게 호감뿐 아니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친근함마저 느끼기 시작한 다카야시키의 입에서 그런 물음이 저절로 나왔다.
"터주는 대개 선조나 일족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연신이나 일반적인 신을 모시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터주의 성립을 생각하면 역시 조령(祖靈) 신앙이 열쇠일 것 같죠."
도조는 괴담을 들려준 데 대한 보답인지, 싫어하는 내색도 하지 않고 다카야시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 "아닌 게 아니라 오엔은 이치가미 가의 선조에 해당되지만... 하지만 아무리 아오 히메도 모셔져 있다곤 해도, 그 마을 터주는 지벌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닌지..."
"네. 터주는 역시 수호신적인 성격이 가장 강하긴 하죠.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지벌이 세다는 것도 현저한 특징이거든요."
"저런, 전국적으로 그런 특징이 있다는 말인가?"
"네. 모신 방법이 나쁘다든지, 소홀히 했다든지 했을 경우는 물론이고, 저택 개축이나 주변의 수목 채벌 등에 기인한 화 등 일상생활 중에 주의해야 할 점이 아주 많답니다."
"하지만 아오쿠비 님의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아오 히메하고 오엔의..."
"그렇죠. 일종의 작은 신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 작은 신 신앙이란 건, 그런 지벌을 내리는 난폭한 원령 등을 그보다 상위의 큰 신격 밑에 모심으로써 진노를 가라앉히는 걸 말합니다. 하기야 히메카미 당에 그런 큰 신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평소 아오쿠비 님의 지벌 따위는 신경 쓴 적도, 믿은 적도 없는 다카야시키였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원령을 모시는 경우는 원래 그 거센 분노를 밖으로 향하게 하고 안에선 반대로 은혜를 기대하는 겁니다. 외부로 움직이는 힘은 방어력이 되어주고, 정중히 모심으로써 내부에선 복을 바라는 거죠. 그게 아무래도 히메카미 당에선 잘 기능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화가 생긴단 말인가?"
"민속학적 견지에서 지벌을 해석했을 때는 그렇다는 거죠. 다만 소라탑과 혼사의 존재가 있으니, 거기서 아오쿠비 님의 힘을 완화, 또는 흡수한다고 볼 순 있습니다."
"음, 그건 묘한 탑이지."
"아마 그 원형은 소라 당이 아닐까요. 소라 당이란 건 사이코쿠 삼십삼 개소나 시코쿠 팔십팔 개소의 관음상 사본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인데, 그 안을 듦으로써 참배를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이를테면 순례를 위한 장치거든요."
"원래가 종교적인 건물이로군."
"네. 다만 그걸 지벌을 끊어놓는 장치로서 개량한 셈이니... 그분은 여간내기가 아니시군요."
"세운 사람의 이름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안 나는군."
"순례라는 건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몇 번이고 반복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소라 당의 이중 나선은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어요. 또 동시에 모태회귀나 윤회전생을 유사 체험한다는 의미도 있죠. 즉, 원초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영원한 생을 반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원한을 남기고 죽은 이에게 최상의 진혼인지도 모릅니다."
"흠, 그렇군. 그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물론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잘 만들었군요."
- "혼사는 어떻습니까?"
연하라고는 하나 도조 겐야에 대해 호감뿐 아니라 존경심마저 품기 시작한 다카야시키의 말투는 어느새 다시 존댓말로 변해 있었다.
"혼사는 그 성격을 기준으로 분류할 때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한 만남의 자리를 제공하는 것. 둘째는 마을 청년단 등 같은 젊은 세대에게 인정받고, 또 부모의 허락도 받은 단계에서 둘이 지내는 것. 셋째는 정식 혼례에 사용하는 것."
"히메카미 당의 혼사는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기로는 맞선을 보기 위한 곳이니 첫째에 가깝습니다만, 그 상대방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째 요소도 찾아볼 수 있군요."
"그렇겠군요."
"또 혼사의 위치로 보자면, 처가 혼사, 시가 혼사, 숙소 혼사로 나뉩니다. 남자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경우엔 처가 혼사를, 여자가 시집가는 경우엔 시가 혼사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숙소 혼사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히메카미 당은 전형적인 시가 혼사입니다만, 마물에 씐 집안에서 혼인할 때처럼 특수한 경우엔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선 숙소 혼사이기도 하죠."
"역시 특수한 곳이군요. 히메카미 당을 비롯해서."
"말하자면 모든 게 이치가미 가의 대를 이을 아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 "각지에 전해지는 공놀이 노래에도 태어난 아기가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예가 있답니다. 시가 현에선 아들이면 '상경시켜 학문을 시키자'고 하는 데 반해 딸이면 '강변에 갖다 버리자'라는 가사가 있고, 아이치 현에선 아들이면 '땅바닥에 내려놓지도 않는다'면서 딸은 '거지와 한 패'라고 노래하고, 도야마현에선 아들은 '보물 같은 자식'인데 딸은 '밟아 뭉개라'라는 말까지 듣는단 말이죠."
"저런, 그런 몹쓸 소리까지..."
"물론 실제로 하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특정 지방에 전해지는 ... "
- "네? 아, 아뇨..."
돌연한 변모에 기겁한 다카야시키가 횡설수설하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못하자, 도조는 몸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산에 출몰한다는 이야기로 짐작컨대, 산의 마물인 산마(山魔)인 모양이군요. 산이란 존재는 예로부터 신앙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인간은 죽으면 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조령 신앙을 비롯해서 봄이 되면 산에서 신이 마을로 내려와 밭의 신이 됐다가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다시 산으로 돌아가 산의 신이 된다는 전승 등을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죠. 다만 그런 신앙 중엔 강의 신인 갓파(물가에 살고 머리 위에 물이 담긴 접시를 이고 있다는 상상 속의 동물)가 봄가을의 피안(춘분, 추분을 전후한 7일간)을 경계로 산의 신이 된다든지, 산의 신이 천구(天狗)의 별칭이라고 생각한다든지, 그런 괴이한 사건과 연결시키는 사고도 뿌리가 깊거든요. 그건 늑대, 원숭이, 뱀 같은 동물을 산신의 심부름꾼으로 본다든지, 또는 산신 그 자체라고 보는 것과도 맥락이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산할멈이라든지, 산할아범, 산꼬마, 산도깨비, 산남, 산녀, 깜둥이 등 산에 사는 요괴들도 관계합니다만, 산마라는 말은 방금 처음 들었군요. 좀 전에 하신 이야기엔 그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왔는데 이유가 뭐죠? 왜 그런 진기한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으신 겁니까? 으음. 이해할 수 없군요. 아니, 잠깐. 이 근방에선 그 정도로 흔해 빠진 거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게다가 나도 사, 산마에 관해 아, 아는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산에 사는 요괴라는 것밖에... 모, 모르기 때문에..."
노도처럼 몰아치는 도조의 박력에 겁을 먹은 다카야시키는 ...
- "도대체가 그런 석비 뒤에 숨어서 우리를 지킬 수 있겠어요?"
'저런, 들켰던가.'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안색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나코 씨도 알고 있었죠?"
다케코가 쐐기를 박으려는 듯 하나코에게 물었으나, 그녀는 모호한 표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다케코의 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가씨들의 신변이 위태로울 사정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이대로 가다간 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겠다고 생각한 다카야시키는 그렇게 물었다.
"어머! 아오쿠비 님의 지벌이 있잖아요!"
"뭐야, 그런 것 말인가. 바보 같은 소리를."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니죠. 실제로 마리코 씨가 머리 없는 시체가 됐잖아요."
단번에 형세가 역전됐다고 생각했던 그는 다케코가 그렇게 대꾸하는 통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이, 거기. 넌 누구지? 마을엔 어떻게 왔나? 여기엔 어떻게 온 건가?"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다카야시키는 순간적으로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중절모를 멋지게 쓴 양복 차림의 남자에게 힐문했다.
두 사람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 인물은 도회풍의 차림새가 가히 청년 신사라는 말이 어울릴 듯했다. 조주로와는 또 다른 수려한 용모는 양복을 벗고 여장을 해도 잘 어울릴 성싶었다.
'어째 허약해 보이는 녀석이로군.'
다만 어딘지 모르게 귀족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상이 다카야시키의 눈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게다가 살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남자의 모든 것이 수상쩍게 보였다.
- 그런데 남자는 다카야시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엉뚱한 방향만 보는 게 아닌가. 다카야시키는 노여움에 떨며 상대방에게 다가가 그 정면에 서려다가 퍼뜩 그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곳에는 요키타카가 있었다.
'왜 이 녀석이 요키타카를 보지?'
아는 사람인가 싶어 요키타카를 보니, 그의 의문이 전해졌는지 요키타카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아닌가.'
영문을 알 수 없어 또다시 남자를 다그치려는데 당사자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가와 란코라고 합니다."
"..."
목소리는 낮지만 그 음색으로 다카야시키는 상대방이 여자임을 알았다. 여장이 어울릴 성싶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장이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렇군. 남장미인이로군.'
- 이때 요키타카는 자기가 만들어낸 소년 탐정단이 활약하는 공상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오줌이 마려운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욕탕에 정신이 팔렸다.
불현듯 엿볼까 했다가 또다시 오싹했다. 뒷간에 가기가 무서운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상상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탕에 있는 누군가, 아니면 뭔가는 어쩌면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도 요키타카는 어느새 욕탕으로 가고 있었다.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앞섰는지, 단순히 무서운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실은 뭔가가 부른 건지 본인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거의 180도로 방향을 틀었다.
- 그때는 이미 소리가 그친 뒤였다. 하지만 꼼짝 않고 귀를 기울이니 물이 찰랑이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지 모른다.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밤바람 때문에 아무리 욕탕의 낌새를 살피려 해도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상상할 뿐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캄캄한 욕탕에서 욕조에 들어앉아 있는 그것의 모습을...
- 욕탕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하는 공포심으로 바뀌어갔다. 그래도 요키타카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 이제는 돌아갈 수도, 나아가는 방향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하물며 멈춰 서는 것은...
"앗!"
그때 오른발이 뭔가를 밟았다. 메마른 소리가 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나지막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스즈에는 말했다.
'그때는 의미를 몰라도 나중에 깨닫게 되는 일도 있으니까 말이야. 뭐가 좀 이상하다, 묘하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 기억해 두는 거야.'
'표면만 보면 안 돼. 사물에는 반드시 이면이 있는 거야'
그러나 스스로 나서서 그런 것에 관여하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이는 어렸어도 요키타카는 스즈에의 말에 든 언외의 의미까지 분명히 이해했던 건지 모른다.
- '설마 히메코 님이...'
조주로의 맞선 상대인 마리코를 살해하고 목을 베지 않았을까. 과거의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요키타카는 생각했다.
즉, 십삼야 참배 때 우물에서 끌어올려진 머리 없는 시체는 스즈에였다. 그리고 최소한 후도 옹, 효도, 조주로, 가네 할멈은 히메코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지난 10년간 그녀를 숨겨주었다. 그렇게 생각해 본 것이었다.
물론 모든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 분명한 사실은 가네 할멈이 밥상을 들고 '열어서는 안 되는 곳간'에 들어갔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히메코가 살아 있고 마리코를 죽였다면, 어째서 조주로가 사라졌는지가 설명된다. 아마도 그녀를 피신시키기 위해 같이 행동하는 중일 것이다.
- "그거 봐, 이상하지? 아오쿠비 님이 진심으로 지벌을 내리고 있다면 왜 얼른 멸망시키지 않는데? 아들만이 아니라 태어나는 애를 성별과 상관없이 족족 죽여버리면 그만이잖아?"
"그, 그럼 지벌이란 건 역시 미신..."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아오쿠비 님의 지벌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는 거야.”
"예? 그럼..."
"진심으로 지벌을 내리는 거라면 멸망시키면 그만 아니냐고 했지만, 만약 그 지벌이 엄청난 거라면 반대로 그 집이 무사히 존속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거든."
"왜, 왜요?"
자기도 그 답을 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요키타카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영원히 지벌을 내리기 위해서지..."
대답을 들은 순간, 예상하고 있었던 답이었는데도 찬물이 등줄기를 흘러내린 양 오한이 들었다.
- "란코 씨 같은 사람이..."
'이치가미 가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무심코 말하려다가 요키타카는 허둥댔다. 무엇보다도 조주로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 '내가 이 집 하녀로 일했더라면...' 하는 그런 뜻이야?"
"아, 아뇨.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렇구나. '그랬다면 네 편이 됐을 텐데' 하는 말이구나?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야. 예컨대 내가 히메코 씨의 입장에 있었어도 조주로 씨처럼 너를 대했을까. 스즈에 씨처럼 같은 하인이었다면 난 분명히 나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을 걸."
"그,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말이야, 너한테 내 비서가 돼달라고 하는 건 네 처지를 동정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 그야 나도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한테 그럴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나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거든. 과거를 돌아보고 그때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풀이해 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자기 장래를 생각할 때야. 그것도 너무 감정을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 "무, 무슨 말씀입니까?"
"목을 베는 이유 중 첫째는 주술적인 동기야. 인류학자가 아니니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머리 사냥 부족이 상대(이 경우는 적 전사가 되겠지만)의 머리를 원하는 건 자기가 쓰러뜨린 사내의 혼을 차지하는 게 목적이거든. 상대방이 가진 전사로서의 용맹함, 강한 힘 등을 자기 몸으로 흡수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여겨졌어. 자기가 쓰러뜨린 적의 목을 베는 건 그들의 세계에선 당연한 풍속에 불과해. 그러니까 적을 쓰러뜨리고도 목을 베지 않으면 그 편이 문제였을 거야."
"아아, 그렇군요. 그렇겠네요."
목을 베는 게 자연스러운 세계가 존재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요키타카는 전에 조주로가 보여주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말려서 쪼그라든 머리를 주렁주렁 꿴 사진을 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 그 경우는 주술적인 목적에서라고 해도 되겠지. 게다가 일족의 장이 죽었을 경우에도 목을 베서 남은 사람들이 지도자의 힘을 물려받으려고 하는 종족도 있거든. 즉, 아오쿠비 님 신앙이 있는 이 마을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이 말이야."
그녀가 하려는 말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요키타카는 그렇게까지 광신적인 자는 없다고 부정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문득 후키와 미나토리 이쿠코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보아하니 란코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 "즉, 동기는 알 수 없지만, 범인은 조주로 씨의 머리를 돌려줄 필요가 있었어. 다만 그냥 갖다 놓기만 해서는 심심하다고 생각했어. 자기 범행으로 마을은 난리가 났고 경찰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중이잖아. 아마 그런 식으로 재주를 부린 건범인의 여유라고 할지, 표현은 나쁘지만 장난 같은 게 아니었을까."
"세상에..."
"하지만 범인한테는 적어도 조주로 씨의 머리를 공개할 뜻은 없었다고 생각해.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당집 안이 아니라 좀 더 눈에 띄는 곳을 골랐을 테니까."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셋째 가능성도 있을 수 없어. 덧붙여 말하자면, 여기까지는 굳이 가리자면 특정 민족의 풍습이나 특정 국가 및 시대의 사회 제도에 기인하는 필연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동기가 중심이 될 거야."
"이번 사건에 들어맞을 동기는 이제부터 나온다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그래서 넷째는 애증일 경우."
"예? 미움 때문에 목을 벤다는 건 이럭저럭 이해할 수 있지만, 애정 때문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쇼와 십일 년(1936년)에 있었던 아베 사다 사건은 너도 알지? 범인인 여성이 아내가 있는 피해자 남성과 은밀히 밀회를 거듭하다가 상대방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살해하고 사랑하는 남자의 신체 부위를 잘라낸 사건 말이야."
- 그러나 면도칼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수수께끼였다. 구류 시에 신체검사를 충분히 했을뿐더러, 그 뒤로 면도칼을 입수할 기회는 절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취조를 맡았던 형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약간 기묘한 일이 당일 오전 중에 있었다고 한다.
그날 아침, 한 여자가 이와쓰키를 면회하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직원이 여자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했을 때, 누가 부르기에 돌아보았다. 그런데 자기를 부른 자가 아무 데도 없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니, 여자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의 여자가 경찰서 내에 침입한 흔적은 없었으려니와 구류 중인 이와쓰키에게 접근할 수 있을 리도 없으므로, 면회자가 관여됐을 가능성은 곧바로 부정되었다. 만일을 위해 이와쓰키의 가족 및 지인을 조사했지만, 해당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그녀를 만난 직원이 여자였다는 것 외에는 왜 그런지 상대방의 특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그 방문자를 봤다는 다른 직원이 여자가 아니라 이목구비가 단정한 남자였다고 한 탓에 찾으려야 찾을 방도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 결국 찾아온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섬뜩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 이렇게 해서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사망한 채로 목 찢는 살인마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와쓰키가 체포된 뒤로 새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경찰이나 세간이나 그가 범인이었음을 이럭저럭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수수께끼가 남았다고는 하나 사건은 일단 해결된 셈이었다.
그러나 히메쿠비 산 연쇄 살인사건은 아무런 진전도 없는 채 점차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져... 이윽고 미해결 사건이 되고 말았다.
- 이상으로 전쟁 중과 전후의 히메쿠비 산 사건에 관해 거의 다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한편, 쓰이카이치 시의 목 찢는 살인마 사건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므로, 앞장의 기술로 그치겠습니다. 게다가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많다고는 하나 일단은 범인이 잡혔고 사건은 종결되었으니까요.
-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두 사건에서 명암을 가른 것은 열쇠가 되는 인물이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목 찢는 살인마 사건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도조 가조 씨, 히메쿠비 산 사건에서는 도조 겐야 씨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에 다카야시키가 열차에서 만났을 때, 원래는 히메카미 촌을 방문하려고 했건만 남편이 이야기한 괴담 때문에 도중하차하고 만 그 인물 말이지요. 이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는 사실에서도 저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도조 가조(冬城牙城)씨의 이름은 본래 '刀城牙升'라고 씁니다. 도조 가는 공작으로 서임된 유서 깊은 가문인데, 가조 씨는 젊었을 때부터 이런 특권 계급을 싫어했습니다. 이윽고 장남인 자신이 ...
- 독자 여러분께서 다수의 편지를 보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장은 본래라면 '막간'이 아니라 '본문'에 해당됩니다만, 이제는 소설 형식을 취하지 않으므로 '막간'의 문체로 진행하겠습니다.
어제 본지의 발행처에서 여러분이 보내주신 편지와 엽서가 전송되어 왔습니다만, 그 수에 먼저 놀라고 이어서 환희를 느꼈습니다. 이런 서툴고 불완전한 작품에 대해 이렇게까지 답해주실 줄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밝은 기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래가기는커녕, 편지를 훑어보는 사이에 선뜩한 것이 목덜미에서 등줄기를 훑고 내려가 참으로 불편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사이에 자기도 목이나 목구멍, 또는 손목이나 발목을 다쳤다, 삐었다, 아팠다, 상태가 나빠졌다 등 불가해한 체험을 호소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반응이 있을 줄은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너무나도 뜻밖이라 제가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집필했는지 한순간 알 수 없어졌을 정도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분들은 '기분 탓일 것이다. 착각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수가 너무 많은 데다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사례도 있었으므로 저는 불안해졌습니다. 원래는 여기서 그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역시 그만두겠습니다. 흡사 전염성이 있는 질병을 퍼뜨리는 것과 같은 폭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 실은 저도 지난 회 '막간3'을 쓸 무렵부터 목 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 감기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더니만, 어느새 목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잔 듯한 느낌이었는데 점차 묘한... 그것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흡사 뭔가가 목을 잡아당기는 듯한, 그런 불쾌한 감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어느새 제 바로 뒤에 서서는 두 손을 살며시 뻗어 제 머리를 잡고 천천히 좌우로 비틀며 빼내려 하는...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듭니다.
- 이런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장 제목에 썼듯 독자 여러분의 지혜를 빌려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 보려고...
방금 누가 찾아온 것 같았는데요.
역시 착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아, 안 되겠습니다. 어젯밤에 독자 여러분의 편지를 읽은 뒤로 ㅡ...
- "효도 씨는 단순히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난 걸 기뻐한 겁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그러니까 두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성별이 뒤바뀐 채로 자랐다는 건가요? 뭘 꼭 그렇게까지..."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로 아오쿠비 님의 지벌은 절대적이었다고."
"네?"
"아니, 적어도 후도 옹과 효도 씨, 그리고 누구보다도 구라타 가네 씨는 그렇게 봤던 겁니다. 게다가 문제는 아오쿠비 님만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과거에 후도 옹에겐 아들이 셋 있었는데, 그중 둘이 어렸을 때 죽었죠."
"히메카미 당에서 열심히 참배를 드렸던 가즈에 부인의 일념 탓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누나의 그런 심상치 않은 동태를 안 후도 옹은 구라타 씨에게 어떻게 해서든 효도 씨만은 죽는 일이 없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구라타 씨도 목숨을 걸고 도련님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두 사람 간에 거의 주술 싸움이 벌어졌다는, 당시를 아는 노인의 이야기가 있었죠?"
"후도 옹은 가네 할멈에게 또다시 같은 걸 요구했다. 게다가 이번엔 갓난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과거의 체험에서, 어지간한 방책으로는 아오쿠비 님의 지벌과 가즈에 부인의 집념에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라타 씨는 아이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에 매우 중대한 액막이 주술을 건 겁니다."
"그럼 히메코 씨가 아들이고, 진짜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였다는 ... "
- "이유가 뭡니까?"
"요키둥이라는 이름은 조주로(여)만 썼기 때문입니다. 이 호칭이 들어감으로써 메모에 서명된 '조주로'는 뒤바뀐 조주로(남)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조주로(여)다. 즉 우물에 빠진 건 조주로(남) 쪽이라는 걸 효도 씨에게 알린 겁니다."
"그래서 효도 씨와 가네 할멈의 반응이 이상했던 거로군요."
"충격에 휩싸인 두 사람에게 미나토리 이쿠코 씨가 경내에 있는 조주로 씨(물론 조주로(여)입니다)의 존재를 일깨웠을 때, 구라타 씨는 '나리, 아직 조주로 님이 계십니다'라고 입을 잘못 놀리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건 조주로일 텐데 '아직'이라는 표현을 쓰고 만 겁니다. 그렇게 말하려면 '아직 히메코 님이 계십니다'여야 하죠."
"우물에서 시신을 끌어올릴 때 하인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만도 하군요."
"그전에 구라타 씨가 준비해 온 향과 초로 간단히 명복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염주를 갖고 있었던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어째서 불자 같은 것까지 필요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건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히메코(남)을 조주로(남)으로 돌려놓기 위해 제사당에서 구라타 씨가 자른 긴 머리채였던 겁니다."
"그렇군요. 요키타카가 조주로(남)을 조주로(남)으로 본 건 조주로(여)와 똑같이 머리가 짧았기 때문이군요."
"네. 얼굴은 어두워서 안 보여도 긴 머리채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 "그 뒤에 요키타카를 덮친 괴이한 일들은요?"
"그건 어떻게 봐도 요키타카 군의 망상이고 악몽이 아닐까요. 조주로(여)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마침 좋은 기회라 여기고 그 애를 위협했다는 해석도 성립되긴 합니다만, 조주로(여)가 요키타카 군을 귀여워했던 건 사실이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심한 짓은 안 했겠죠. 그보다 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 맛봤을 공포를 생각하면, 그 뒤로 그 애가 악몽을 꾸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나저나 용케 요키타카에게 들키지 않았군요. 히메코(남)이 죽은 뒤로 그 애는 조주로(여)의 전속이 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몸시중은 여전히 구라타 가네 씨가 맡았으니까요. 즉, 여자라는 게 들통날 장면에는 요키타카 군이 가까이 못 가게 한 겁니다."
- "결국은 요키타카에게 그... 특수한 성적 취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죠. 다만 에가와 란코 씨한테 이끌린 걸 생각하면, 동성애자는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성장한 조주로 씨를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미청년이라는 식으로 봤으니, 남장미인인 란코 씨한테 매료된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란코 씨가 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러고도 매료됐으니 동성애와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더니 도조 씨는 별안간 의미심장한 표정을 띠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 "요키타카 군이 히메카미 촌의 이치가미 가에 온 뒤 일 년 남짓 동안의 기억은 불분명하건만 십삼야 참배에서 있었던 일만은 선명한 영상으로 뇌리에 새겨진 건, 바로 그날 밤 요키타카 군이 이치가미가의 후계자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해석하는 건 너무 이상한 생각일까요?"
"하, 하지만 그 애가 알 리..."
"당연히 없죠. 그렇기 때문에 전 거기서 대단히 섬뜩한 뭔가를 느끼는 겁니다."
저희는 말없이 얼마 동안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 "아, 차를 새로..."
"아뇨, 됐습니다. 제가 하죠."
일어선 저를 한 손으로 제지하며 도조 씨는 자신의 뒤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켰습니다. 그리고 물이 끓자, 또다시 저를 만류하고 재빨리 차 2인분을 끓여 내주었습니다. 제가 굼뜬 탓에...
"죄송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쩔쩔매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뭐든 자기가 직접 하는 버릇이 붙어서 말이죠."
"아뇨, 그래도 손님이신데... 싶어서요."
"아,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대했는데, 어느새 한 식구처럼 되어 있다고 말이죠."
도조 씨는 붙임성 있는 웃음을 띠고 농담처럼 그렇게 말했지만, 분명 그것이 초면인 사람에게서도 괴이담을 끌어낼 수 있는 비결이요, 또 도조 씨가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 탐정으로서의 재능을 ...
- "즉, 남장미인이 아니라 여성의 필명을 쓰는 남성 작가라는 사실이 마리코 씨가 편지로 놀랄 거라고 알린 진의였던 겁니다. 그 사건에서 없어진 건 마리코 씨가 아니라 진짜 란코 씨의 머리였습니다."
"그럼 히메카미 당에 나타난 란코 씨는..."
- "정리해 볼까요. 조주로 씨의 시신을 자기인 척 꾸미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못 됩니다. 마리코 씨가 이곳 지리를 잘 알면 조주로 씨가 범인인 것처럼 보이게 해 놓고 바로 도망쳤겠지만, 그건 무리이거든요. 그래서 마리코 씨는 일단 조주로 씨와 자신을 바꿔치기한 다음, 이어서 란코 씨와 또다시 바꿔치기한다는 수단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면 조주로 씨는 고리 마리코 씨로, 에가와 란코 씨는 조주로 씨로 오인되고, 자기는 에가와 란코 씨를 대신할 수 있어요. 이 이중 바꿔치기 트릭은 위기를 넘기는 수단일 뿐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었던 마리코 씨에게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던 셈입니다."
"거기까지 생각해서..."
"순간적으로 이런 계획을 세운 사람이니, 장래의 일까지 내다봤을걸요."
"하지만 란코 씨가 남성이었다는 건 증거가 있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을 싫어하는 분이셨으니 성별을 감추는 것쯤은 간단했을지도 모르지만..."
"조주로 씨가 에가와 란코 씨에 관해 '옛날 같으면 후작님'이라고 설명했죠."
- "사례가 이 글의 '막간3'에 있습니다. 도조 가조를 묘사하면서 '장남인 자신이 호주가 되고 공작의 지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반발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즉, 작위는 그 가계의 적자가 아니면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조주로 씨는 이런 화족 제도를 몰랐습니다."
"그럼 란코 씨란 분은..."
"죽었다고 되어 있는 오빠 란도 씨겠죠. 다만 오빠가 누이동생을 대단히 예뻐했다는 이야기는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필명으로 죽은 동생의 이름을 쓴 겁니다. 그 '에가와 란코'라는 이름도 조금만 생각하면 묘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란코 씨가... 아, 앞으론 남성인 진짜 에가와 란코 씨는 에가와 씨라고 부르고 고리 마리코 씨가 변장한 가짜는 란코 씨라고 부르죠. 그 에가와 씨가 오빠가 아니라 동생 쪽이었다면, 두 사람에게 공통되는 '란'자를 남기기 위해 이름만은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수필의 이야기는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성을 '에가와'로 지었을까요?
“예? 하지만 그건 란포 선생의 연작에서..."
"그 란포 작품의 <공포왕>과 연작 <악령 이야기>엔 조주로 씨도 지적했듯이 그 이름도 '오에 란도'라는 탐정 작가가 등장합니다. 동생이 오빠를 애도하는 거라면 '오에 란코'라고 짓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남성의 이름인 '오에 란도' 그 자체를 쓰든지."
- "잠깐만요. 도조 씨는 설마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자신의 추리를 전부 버릴 생각이십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구라타 가네 씨가 쌍둥이의 성별을 뒤바꾸는 액막이 주술을 한 데서 시작해 십삼야 참배 사건에서 성별이 원래대로 돌아갔다가 얼마 못 가고 다시 뒤바뀐 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 십 년 뒤에 벌어진 히메쿠비 연쇄 살인사건의 이중 뒤 바꾸기 극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연쇄 살인의 범인은 고리 마리코 씨가 아니라 요키타카라고요?"
"십삼야 참배 사건도, 즉 진짜 조주로 씨의 살인 쪽도 말이죠."
- "왜죠?"
"왜라뇨... 도조 씨도 읽으셨으니 아시겠지만, 요키타카의 언동을 볼 때 어느 범행이든 절대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렇군요. 이 글로 보면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소설이잖습니까?"
- "소설적인 결말을 창조해 독자를 만족시키고 끝내는 것, 도조 겐야 씨의 추리를 선보여 범인이 요키타카였음을 밝힌 다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도조 씨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글쎄요..."
도조 씨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바로 정색하셨습니다.
"저라면 전부 딱지 놓겠는데요."
"왜죠?"
"물론 당신이 진범이기 때문이죠."
- "그러게. 혹시 절세의 미녀였다 해도, 그런 취향이 없으면 머리를 갖고 싶어 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도 아오 히메는 목이 베였습니다."
"어째서?"
"아마 아오 히메가 무사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아! 대역으로?"
"그렇습니다. 히메카미 성이 도요토미 군에게 함락됐을 때, 성주 우지히데는 자결했고 자식인 우지사다는 히메쿠라 산을 지나 히카게 고개를 통해 간신히 이웃 영토로 달아났습니다. 아오 히메는 그 우지사다를 따라 도망친 셈입니다만, 그때 우지사다의 차림새를 해야 했던 게 아닐까요?"
- "그렇기 때문에 적은 우지사다를 죽였다 생각하고 목을 벴습니다. 그런데 가짜라는 걸 알았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여자였단 말이죠. 분풀이로 아오 히메의 시신을 함부로 다루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어요."
"지벌을 내릴 만도 하네."
"숯쟁이가 숯가마에서 체험한 이야기에 처음엔 패주 무사가 보였건만 머리 없는 여자로 변했다는 괴이한 일이 있었죠? 아오 히메가 무사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괴담이라곤 해도 조리가 섭니다."
"괴담에 그런 해석을 붙이는 건 멋대가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납득은 가는 걸."
- "이건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오 히메가 무사의 차림새를 하고 우지사다가 여장을 했다면... 그렇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었다면..."
"뭐?"
"이 남녀의 오빠와 동생의 바꿔치기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두 사람 사이에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도조는 어딘지 모르게 태평한 분위기로 또다시 거실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당신도 피곤하겠네. 우선 차라도.."
"아뇨, 됐습니다. 이젠 직접 끓일 마음도 없고, 그렇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귀찮아서요."
그렇군. 도조는 이미 오래전에 눈치챘던 것이다. 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등 뒤로 돌아갈 기회를 두 번씩이나 노렸던 것을. 물론 다카야시키 다에코와 같은 운명을 걷게 하기 위해서.
-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역시 원고를 완성하는 편이..."
"뭐, 뭐라고?"
- 그런 까닭으로 나는 서재에 틀어박혀 여기까지 집필을 마친 참이다.
그나저나 거실에서 기다리는 도조 겐야라는 사내는 꽤나 묘한 인물이다. 연재가 흐지부지 끝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므로 확실하게 결말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기 이름은 밝혀도 되고 밝히지 않아도 되니, 좌우지간 누가 읽어도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을 제시하라고 지껄였다. 정말이지 별종 아닌가.
하기야 그러는 나도 완전히 꼬리를 잡히는 순간까지 히메노모리 묘겐, 곧 다카야시키 다에코의 문체를 흉내 내서 원고를 쓰고 있었으니... 역시 타고난 추리소설 작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조 겐야만큼은 아니다. 하여튼 성가신 사내가 나타났다. 취미와 실익을 겸한 괴담 수집에만 전념하면 될 것을, 미해결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공연한 참견까지...
- 괴담 수집.
그래, 그는 자기가 모르는 그쪽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예컨대 히메카미 촌의 우마노미 못 부근에 무서운 도깨비가 나온다고 마을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다는 이야기라든지.
그럼 그는 왜 그때 이 이야기에 달려들지 않았나?
나는 분명히 상대방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우마노미 못의 도깨비 이야기를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후타가미 가의 고지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역효과였다고 여겨져 초조해졌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거기서 도조 겐야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묘하지 않나.
도조 겐야...
그러고 보니 그는 자기 스스로는 한 번도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다카야시키 다에코와는 초면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완전한 지방 작가인 그녀와 늘 여행하는 그가 만날 기회는 좀처럼 없었을 터다. 사건 당시, 그는 마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초면이 아니라고 한 것이 나에 대한 말이었다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거실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인물은 정말 도조 겐야인가?
-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그 공포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녀석은 누구인가.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주 오래전에 만난 적이 있고, 도조 겐야보다 열 살은 더 젊어 보이고, 일련의 사건에 관해 지식과 흥미가 있는 인물이라면... 요키타카.
설마,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 그렇군, 복수인가. 조주로를 죽였을뿐더러 자기를 완벽히 속인 셈이니 복수하려고 하는 것도...
하지만 요키타카라면 어느 정도 옛날 그 얼굴이 남아... 얼굴?
옆방에 앉아 있는 남자... 아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남자였는지 아닌지 그것조차 모르겠다.
- 녀석이 오기 전에 비가 두 번이나 내렸다.
비... 물...
이 문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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