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15.07.03
수박, 배, 복숭아.
차갑게 먹을 수 있는 과즙이 많고 달콤한 과일들.
무척 좋아하지만 자주 먹지는 못한다.
손질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껍질을 깎고 자르는 수고 > 먹고 싶은 욕망 또는 먹었을 때의 만족감]
적어도 만족감이 수고로움과 같아지는 지점까지는 순간까지는 참는다 -기보단 그냥 있는다-.
이런 것도 귀차니즘에 들어갈 수 있을까.
<괴담의 집>은 전혀 다른 괴담인 줄 알았던 것들이 모여들어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괴담들은 시대도, 체험자도 달라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섬뜩함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미쓰다 신조'와 친분이 있는 편집자 '미마사카 슈조'-, 즉 '현실'에 해당하는 막간이 각 괴담 사이사이에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의 대화 역시 미스테리적인 재미가 있다-
읽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우부카타 사오리의 체험담, 무서웠던 건 어느 소년의 체험담이다.
전체가 파악된 뒤에도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는데, 아마 두 이야기가 가장 현대에 가까웠기 때문인 것 같다. 심리적 '거리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본문 중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그냥 옛날이야기라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어차피 남의 이야기다. 하지만 쿠루이메는 다르다. 말하자면 일상에서 느끼는 전율이었다.]
딱 이런 느낌.
미쓰다 신조의 <- 시리즈>가 아닌 작품들을 개인적 선호도 순으로 정리한다면.
<죽은 자의 녹취록>
<붉은 눈>
<괴담의 집> / <우중괴담>
<노조키메>
<일곱 명의 술래잡기>
이렇게 될 것 같다.
설명되지 않는 괴이의 농도 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명쾌한 설명이나 사건의 원인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역순으로 마음에 드시지 않을까.
끝.
드리는 말씀
이 책에 실린 다섯 가지 체험담에 대해서,
집필자 본인 혹은 친족인 분이 계시다면
편집부로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왠지 모를 섬뜩한 감각에 사로잡힌 경험이 없으십니까?"
- 진보초의 찻집 '에리카'의 구석 자리에서, 카칸샤(河漢社)의 편집자 미마사카 슈조(三間坂 秋蔵)로부터 그런 질문을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초봄이었다.
"이야기라고 하면, 역시 괴담인가?"
"물론입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힘차게 끄덕이는 진지한 태도의 그를 보고, 나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평소 같으면 쓴웃음을 지을 상황이지만 서로가 괴담을 몹시 좋아하는 것을 아는 만큼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 미리 말해두겠는데, 카칸샤라는 출판사도 미마사카 슈조라는 이름도 양쪽 다 가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대다수가 가상의 이름이다. 다만 진보초는 실존하는 지명이며, 에리카라는 가게도 존재하고 있으므로 전부 꾸며낸 것은 아니다. 실명을 대면 문제가 있으리라 판단한 이름만 가명으로 처리해 두었다. 가명 처리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모든 책임은 이 책의 저자인 나에게 있음을 적어두고자 한다.
- 단 대부분의 가명들은 되도록 원래 이름을 기초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너그램도 있고 암호의 치환법을 적용한 경우도 있다. 본래의 한자와 동일하거나, 혹은 반대의 의미를 지닌 글자를 찾아서 일부러 구성한 명칭도 있다. 다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본래의 이름이 지닌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서 바꾸는 것이었다.
-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오는 이름만을 단서로 원래의 명칭을 알아내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헛된 수색이나 노력일랑 그만두고, 이제부터 내가 기록한 오싹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즐겨주었으면 한다.
- '내가 기록한'이라고 거드름 피우듯 적었지만, 애초에 발단은 첫머리에 기록한 어느 편집자의 질문이며, 뒤에 게재될 이야기 대부분을 수집한 것도 그 사람이다. 게다가 즐겨달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이 어쩌면 독자의 주위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위협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미리 한 마디, 경고를 해두고 싶을 뿐이다.
- 4월 중순이라고 기억하는데, 어느 날 낯선 인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정확히는 코단샤 문고의 편집부에 내 앞으로 온 편지가 담당 편집자를 통해 전송되었다. 드물게 있는 졸작의 애독자에게서 온 편지인가 하고 읽어보니, 절반은 맞았다.
그는 중학생 때에 나의 데뷔작인 <호러 작가가 사는 집>(문고판은 <기관-호러작가가 사는 집>으로 개명되었다)을 읽고 완전히 나의 팬이 된 듯했다. 이후로 모든 작품을 실시간으로 읽어왔다고 했다. 올봄에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했으며, 배속부서는 다행히도 편집부, 더 나아가서는, 나와 한 번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취지가 깔끔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 '슈조'라는 수수한 이름을 보고 조금 연배 있는 인물을 상상했던 나는, 상대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임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이 편지 자체는 나를 몹시 기쁘게 했다. 졸작에 대한 그의 애정이 절절하게 문면에서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카칸샤라는 출판사의 이름이 아주 낯설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나도 작가가 되기 전에는 편집자였으므로 어지간한 발행처는 알고 있었다. 설령 문서를 내지 않는 출판사라도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적어도 인문 관련 서적을 다루는 출판사 중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가령 그런 발행처가 있다면 내가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 정도일 것이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인터넷으로 카칸샤를 검색해 보고 조금 놀랐다. 딱 그 생각대로였던 것이다. 서점에 가도 내가 걸음을 옮기지 않는 서가 쪽의, 특정 분야 전문출판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발행처의 편집자가 대체 나에게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집필 의뢰는 아닐 것이다. 그 회사가 내는 전문의 칼럼 정도라면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야가 너무나도 다르다. 호러 미스터리 작가인 나 같은 사람에게 의뢰하기보다 그쪽 분야의 전문필자를 기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아무리 신인 편집자라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출판사의 편집자라는 자리를 활용해서 중학교 시절부터 애독해 온 소설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다.
역시나 조금 망설여졌지만, 결국은 만나기로 했다. 결정타는 편지에 적힌 내 졸작을 향한 넘치는 애정과 그 이해도에 있었다. 그저 단순히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는 졸작을 몹시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기도 했다. 그중에는 확대 해석이나 오독도 보였지만 결코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몹시 흥미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해나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과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어느샌가 순수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편지에 적혀 있던 메일 주소로 면담을 승낙하는 취지의 답장을 보냈다. 답신은 금방 돌아왔고, 곧바로 날짜와 장소가 정해져서 나는 미마사카 슈조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 이 남자의 첫 인상은 아주 좋았다. 옛날이라면 미남자, 지금이라면 꽃미남이라고 불릴 만한 외모뿐만 아니라, 언동에서도 자연스러운 기품이 느껴진다. 역시나 긴장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미마사카의 경우에는 그 어색함조차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곧바로 내가 떠올린 단어는, 지금은 사어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호청년'이었다.
-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그의 빠른 머리 회전에 나는 솔직히 감탄했다.
"그렇다면 성씨가 '三'자로 시작하는 선생님과 제가 '두삼회'를 결성할까요?"
"그것도 좋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아! 도조 겐야군요."
한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미마사카의 얼굴 가득한 웃음을 바라보는 동안에 간신히 이해가 갔다.
- 졸작 중에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첫 작품으로 하는 '도조 겐야 시리즈'라고 불리는 작품군이 있다.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전후에 걸친 시대에 지방의 농촌이나 산촌, 외딴섬 등을 무대로, 그 지역을 민속채방 했던 괴기환상 작가이자 신출내기 탐정인 도조 겐야가 기기괴괴한 사건에 말려들어가는 이야기다. 일단은 내 대표작인 시리즈다. 이 도조 겐야는 방문한 곳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분명 미마사카는 그것을 떠올린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내가 도조 겐야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당황하며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이미 미마사카는 도조 겐야 시리즈에 대한 열띤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은 두삼회에 관한 화제 이외에는 모두 내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말았다.
- 다음에 만난 것은 거의 한 달 뒤였다. 저쪽에서 메일을 보내와서, 역시 진보초의 찻집에서 졸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실은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섯 번째부터는 찻집에서 커피가 아니라 비어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화제는 그때까지와 마찬가지로 졸작에 대한 것이었다. 요컨대 작가와 애독자가 화기애애하게, 각각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참고로 우리 둘이 만나는 것을 그는 '두삼회'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업무 협의라면 보통은 담당 편집자가 이쪽으로 와준다. 그 장소가 찻집이든 술집이든 비용은 상대방이 계산한다. 그러나 미마사카 슈조의 경우, 업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부러 만나러 가는 데다 술값 등의 계산은 이쪽에서 하고 있다. 미마사카의 명예를 위해서 미리 말해두는데, 2인분을 내려는 그를 제지하고 내가 멋대로 계산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봐도 경비로 처리할 수 없는 술값을 사회초년생에게 떠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 이해 4월부터 나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신작 <유녀(幽女)처럼 원망하는 것>의 집필에 착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세 시기, 태평양전쟁 발발 전과 전쟁 중, 전쟁 후의 유곽을 무대로 하여 같은 기명(妓名)을 지닌 세 명의 유곽 여인을 테마로 한 호러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자료수집과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또한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간신히 작업에 착수한 참이라 원래대로라면 외출도 자제해야 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이라고는 해도, 어슬렁어슬렁 진보초까지 외출했으니 -아니면 부리나케라고 해야 할까- 미마사카와의 한때가 딱 좋은 휴식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요컨대 나도 미마사카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치고는 많은 독서량과 우수한 이해력, 그에 더해 예리한 비평안을 가진 미마사카와의 대화가 무엇보다 즐거운 자극이 되었던 것이리라.
- 두삼회는 이렇게 지속되었는데, 역시나 반년이나 이어지자 거론할 만한 작품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내 저작물은 열아홉 권밖에 없었다. 한 번에 세 권씩 이야기한다고 해도, 남은 것은 앞으로 한 권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을 때의 화제를 미리 생각하고 있었는지, 일곱 번째 두삼회에서 미마사카 슈조는 천천히 이런 화제를 꺼냈다.
"괴담은 좋아하시죠?"
- 데뷔작을 포함한 초기 네 작품은 졸작 중에서도 상당히 메타 요소가 강하고, 또한 '작가 3부작'이라는 명칭이 있다. 왜냐하면 <기관-호러 작가가 사는 집>은 괴기소설을, <작자 미상-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은 탐정소설을, <사관장>과 <백사당-괴담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는 괴담을 테마로 하면서, 작가를 서브타이틀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백사당>에서 나는 자신이 괴담 애호가임을 공언하고 있었다. 또한 <도조 겐야 시리즈> 이외의 단편은 대부분이 실화괴담 스타일의 괴기소설이었다. 이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다.
- "응, 좋아하는데."
곧바로 대답하자, 미마사카의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반짝이가 시작했다.
"실은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괴담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간사이 지방에서 편집자로 계실 무렵에 취미로 실화괴담을 수집하고 계셨다는 것을 <붉은 눈>의 '괴담 기담·사제'를 통해서 알고 '아아, 나하고 똑같구나' 하고 아주 기쁘게 생각했지요."
"똑같지 않아. 자네는 고등학생 시절부터잖아. 나보다도 오래됐어."
- 참고로 <붉은 눈>은 내 첫 호러 단편집으로, '괴담 기담·사제'란 소설이 아니라 이 작품집을 위해서 쓴 칼럼이었다. 거기서 나는 과거에 수집한 네 개의 실화괴담을 소개하고 있었다.
- "그래도 7년 정도입니다. 선생님은 수집하신 지 좀 더 오래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글쎄..."
솔직히 이미 잊어버리고 있었다. 모은 이야기는 노트에 기록하거나 컴퓨터에 입력해서 남겨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집열은 이미 예전에 식어 있었다. 돌아보면 당시에는 창작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 반작용이 괴담 수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 "나에 대한 것보다, 미마사카 군이 모은 것 중에서 이거다 싶은 무서운 이야기가 있나?"
그렇다고 해도 괴담을 타인에게서 듣는 것은 여전히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재빨리 그렇게 물어보았더니 그의 두 눈이 더욱 요사스럽게 빛을 내기 시작하고...
그 뒤에는 괴담 대회로 변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괴담을 수집해 왔던 가락이 있어서인지, 미마사카의 이야기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가 하는 어느 이야기나 정말 무서웠다. 흔한 내용이구나 하고 방심하고 있으면, 믿기지 않는 전개를 보여서 간담을 서늘케 한다. 그런가 하면, 그때까지 들었던 적이 없는 참신한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야말로 우수한 화술과 양질의 화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쪽에 공포를 내던진다. 참으로 귀중한 체험이었다.
- 예전에 나도 모아봤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질 좋은 괴담'과 만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몇 사람이나 되는 이들에게 몇십 가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간신히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하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미마사카가 이야기하는 괴담은 아주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잠시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미마사카의 주변에 괴이를 직접 체험한 ...
- 이때 나는 미마사카 슈조에게 느꼈던 첫인상이 어느 정도 그 연기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실제론 "호사가"라고 불리는 인종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과 "호남아"라는 사실이 극히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성이 좋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에 대한 이 인상 변화를 달갑게 받아들였다. 동료의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달까.
- "그건 그냥 고딕소설이지 않습니까."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1764년 작)을 효시로 유행한 고딕소설은 중세의 성을 무대로 지하 미로나 감옥이 등장하며, 그곳에 소녀나 고아나 악당이 얽히고 근친상간이나 출생의 비밀이 복잡하게 뒤엉킨 인간관계가 그려지다가 이윽고 망령이 출현한다...라는 아주 비슷한 요소를 어느 작품이나 가지고 있었다.
미마사카의 질문을 듣고 곧바로 떠오른 것이 이 고딕소설 특유의 케케묵은 유형의 유령이었다.
- "농담이 아니라 서로 닮은 섬뜩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암살당한 두 명의 미국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를 둘러싼 기묘한 유사점이 먼저 떠오르는군."
"그건 확실히 꽤나 섬뜩하죠."
-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괴담 애호가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는 알고 있었다. 만일을 위해 암살당한 두 사람에 관한 섬뜩한 유사점을 항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에 선출된 해: 링컨은 1860년, 케네디는 1960년.
암살당한 장소: 링컨은 포드 극장, 케네디는 포드의 링컨 컨버터블 차 안.
암살당한 요일: 둘 다 금요일.
암살 방법: 둘 다 후두부에 총을 맞았다. 그것도 아내의 눈앞에서.
암살 시의 상황: 둘 다 한 쌍의 남녀가 곁에 있었고, 양쪽 다남성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의 행동: 링컨을 극장에서 쓴 부스는 헛간(이른바 창고)으로 도망갔고, 케네디를 창고 건물에서 쏜 오스왈드는 영화관(극장이라고도 한다)으로 도망쳤다.
범인의 도망: 부스도 오스왈드도 암살 직후에 경찰관에게 신문을 받지만, 어느 쪽도 의심받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범인의 말로: 두 명 모두 재판을 받기 전에 살해되었다. 양쪽 다 남부 출신.
대통령의 후계자: 모두 존슨이라는 이름의 부통령이 된다. 앤드루 존슨 부통령은 1808년, 린든 존슨 부통령은 1908년 출생.
대통령의 부인:양쪽 다 스물네 살에 결혼했다. 아이는 세 명 있었지만, 둘 다 남편이 대통령일 때에 한 명이 세상을 떠난 상태.
- "다만 이렇게 두 사건의 비슷한 점을 찾을 경우에는, 그런 점만을 너무 강조하게 될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역시나 미마사카는 그 부분의 문제도 이해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지적해 왔다.
"통설로는 부스가 1839년생이고 오스왈드가 1939년생이며, 링컨과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에 딱 100년의 간격이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생일에도 100년의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부스의 실제 생일은 1837년이지."
"하나라도 많은 유사점을 찾아내려는 마음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숫자를 조작한 걸까요?"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미디어는 -작가도 그럴지 모르지만- 그 정도의 조작을 할 수도 있지."
"소설이라면 전혀 상관없습니다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괴담에 그런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진지하게 화를 내는 미마사카를 보며, '이 친구는 역시 특이하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얘긴 입도 벙긋하지 않고 나는 말을 이었다.
"두 대통령이 모두 시민의 권리문제에 얽혀 있던 것이라든가 두 명의 존슨 부통령이 모두 남부 출신의 민주당원이며 덤으로 상원의원이었던 사실도 유사점으로서 세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지. 정치적인 배경의 공통점 같은 건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연대나 장소나 사건의 유사성 등에서 받는 임팩트에 비하면 그런 유사점은 너무나 인상이 약하니까요."
- "비슷하다는 키워드에서 그 밖에 떠오르는 얘기라면.. 대사건이라고 불러야 할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세부적인 사실이 과거에 쓰인 창작물의 내용과 아주 비슷했다,라는 섬뜩한 사례가 몇 가지 있는 정도일까."
그렇게 말을 잇자,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 "그건 <백사당>에서 소개한 타이타닉호 얘기로군요."
내 작품의 애독자인 만큼 미마사카의 반응은 역시나 빨랐다. 1912년 4월 14일 심야에 불침선이라고 불리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서 선복에 큰 구멍이 뚫려 단 세 시간 만에 가라앉아버린 해난 사고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2,300명의 승객 중 구조된 것은 3분의 1도 채 안 되는 705명이었고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이 비극이 일어나기 14년 전, 모건 로버트슨이라는 작가가 <Futility(헛수고)>라는 작품을 집필했다. 1898년에 사우샘프턴에서 처녀항해를 떠난 호화여객선이 빙산과 충돌해 선복에 큰 구멍이 뚫려 다수의 승조원과 승객이 죽고 배가 침몰한다는 이야기다. 이 사고가 일어난 달, 배의 길이와 배수량, 구명보트의 숫자, 승조원과 승객의 수, 빙산에 충돌한 속도와 그 상황까지 소설과 현실은 너무나도 흡사했다. 참고로 가공의 여객선도 불침선이라 불렸으며, 명명된 이름은 타이탄호였다.
하여간 이 호화여객선을 둘러싼 기묘한 이야기는 매우 많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광고하며 제작된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 <ONE STEP BEYOND>(1959~61)에도 '참사의 전조'라는 타이타닉호 소재가 있을 정도다.
- 참고로 섬뜩한 예언 같은 소설은 로버트슨의 장편소설뿐만이 아니었다. 1892년에 전직 신문기자인 W.T 스테드가 발표한 단편에도 타이타닉호의 비극과 아주 비슷한 해난 사고가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작가인 스테드는 이후 타이타닉호의 승객이 되어이 불침선과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함께한 작가라면 잭 푸트렐 쪽이 훨씬 유명하지만."
"어떤 작품을 쓴 분인가요?"
괴기환상 계통 외의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은 미마사카가 금세 흥미진진한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이런 모습은 역시나 편집자답다.
"오거스터스 S.F.X. 반 두젠 교수라는 긴 이름과 '사고기계'라는 별명을 가진 탐정이 활약하는 단편 미스터리가 유명해. 그중 <13호 독방의 문제>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지."
"제목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소설 <10호 선실의 문제>는 이 푸트렐과 스테드 두 사람이 타이타닉호의 선내에서 만난다는 구성이야."
"허어, 재미있어 보이는 설정이네요."
"푸트렐의 작품 중 내가 좋아하는 건 아내가 쓴 괴기단편에 푸트렐이 해결편 격의 후반부를 추가해서 완성시킨 중편, 일명 <환상의 집>이지."
- "읽은 것이 꽤 오래전이라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인데, 아내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차를 몰다가 길을 잃어서 어느 저택에 도착하지. 그곳에서 기괴한 체험을 한 주인공은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오게 돼. 그런데 나중에 문제의 저택을 찾으려고 해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대체 그 집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이야기였을 거야."
"그런 유령저택물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수수께끼에 남편 쪽에서 합리적인 해결을 덧붙인 거군요."
"게다가 사전에 부부 사이에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지."
"미스터리 작가의 진면목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남편분 말인데, 몇 살에 돌아가셨습니까?"
"서른일곱이야.”
"네에? 작가로 한창 꽃 피울 시기인데..."
"부인을 구명보트에 태우고 그 사람은 배에 남았어. 그때 부인에게 짐을 맡겼더라면, 하고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했지."
-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푸트렐은 잡지에 발표할 예정이었던 '사고기계' 시리즈의 신작 원고를 여섯 편이나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전부 바다 밑에 가라앉은 겁니까."
그 원고가 미마사카 본인은 잘 모르는 소설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마음에 와닿는 게 있었는지 그는 숙연한 얼굴이었다.
- "작가와 바다라는 조합이라면, 그 밖에 다른 예도 있지."
"누구의 어떤 작품인가요?"
다만 털어버리는 것도 빨랐다. 금세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와서, 나도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884년 사우샘프턴에서 미뇨넷 호라는 배가 출항했지. 승조원은 영국인 선장과 항해사 둘, 급사인 리처드 파커까지 네 명이었어. 이때 파커는 열일곱 살로, 가출해서 배에 탔다더군. 미뇨넷 호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목표로 항해했는데, 남태평양에서 허리케인의 습격으로 난파되고 말았어. 네 사람은 배에서 구명보트로 탈출했지만, 식량과 물까지 챙길 수는 없었어. 그래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마냥 표류하게 되었지. 선장은 제비 뽑기로 모두의 식량이 될 제물을 고르려고 했지만,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뉘었어. 그리고 표류 19일째에 참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신 파커가 착란상태에 빠졌지. 가만히 내버려 둬도 파커가 죽으리라고 생각한 선장은 파커를 식량으로 삼기로 결정했어. 잠든 파커를 살해한 세 사람은 그 시체를 먹고 살아남아 표류 35일째에 간신히 몬테수마 호라는 배에 구출되었어. 참고로 몬테수마는 아즈텍의 식인왕 이름이었지."
"우연이라도 해도 너무나 얄궂군요. 살아난 세 사람은 죄를 추궁당했습니까?"
"응. 하지만 반년의 중노동을 언도받았을 뿐이었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법적인 판단도 어려웠겠죠."
- "이 이야기를 듣고서 떠오른 작품은 없나?"
다시 묻자, 미마사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제가 당연히 읽었을 작품이려나요?"
"그렇다고 생각해. 적어도 작가는 그렇겠지. 어쩌면 이 작품은 안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으음, 항복입니다. 모르겠어요.”
다. 아쉬워 보이는 표정의 그에게, 나는 작가명 작품명을 말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이야."
"아, 그건 모르겠군요. 포는 <모르그가의 살인>이나 <검은 고양이> 같은 대표작밖에 안 읽었습니다."
안 읽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인 것은 너무나도 미마사카답다. 나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독서량인데도.
- "포가 문제의 작품을 쓴 것은 사건이 일어나기 47년 전인 1837년이었어. 소설에서도 남자 넷이 표류하면서 굶주림으로 괴로움을 맛본 끝에 제비 뽑기로 식량이 될 사람을 한 명 고르게 되지. 이 제비를 뽑은 것이 급사였고..."
"설마..."
"그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였어."
"... 섬뜩한 우연의 일치로군요."
"이런 종류의 인명의 일치 중에 가장 오싹한 것이..."
"죄송합니다."
갑자기 미마사카는 초등학생처럼 한 손을 들더니 말했다.
"실례입니다만,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라는, 왠지 모를 섬뜩한 감각에 사로잡히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피할 생각 같은 건..."
없다,라고 부정하려고 하다가 어째서인지 나는 흐릿한 한기를 느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한기를 공포로 바꾸었는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을 전하자, 곧바로 미마사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응?"
"제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괴담과 선생님 사이에."
- "괴이를 이야기하면 괴이에 이른다..."
"요컨대 지금, 자네와 나 사이에서 어떤 불가해한 부합이 발생하려 하고 있다고?"
"확인하는 건 간단합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이야기를, 자네로부터 들으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면서도, 미마사카는 왠지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이 이야기에는 두 명의 대통령에게 보이는, 그런 눈에 확 들어오는 우연의 일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점 쪽이 눈에 띈다고 할까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대도 장소도 인간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한 가지는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있는 시대고, 다른 하나는 상당히 옛날로 생각됩니다. 적어도 태평양전쟁 전인 것은 확실합니다. 전자는 간사이 지방 어딘가-오사카와 교토와 나라 이외의 주택이고, 후자는 간토 지방 어딘가의 마을이 무대입니다. 한쪽은 평범한 주부의 일기고, 다른 한쪽은 시골에 사는 소년의 경험담이죠. 이렇게 두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기에 더욱 신경이 쓰입니다."
- 그의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느끼는 한편으로, 나는 정체 모를 존재를 마주한 듯한 공포를 아주 약간이지만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괴담 애호가로서 기분 좋게 느껴야 할 감정일 텐데, 이때는 분명 달랐다.
이 불안함은 무얼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어째서 미마사카가 "이 이야기를 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는지 간신히 납득이 갔다. 평소 같으면 슬쩍 변죽을 울리는 것만으로 금세 알려달라고 그를 채근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무의식 중에 방위본능이 작용했으니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묘한 언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미마사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내 본능이 옳다면 그런 이야기에 관계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렇게 재미난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 "남겨진 자료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의 경위라고 해야 할까요. 문제의 속기원고가 만들어진 과정이 아주 특이해서... 아니, 그런 이야기는 원본을 읽고 나서 하는 편이 좋겠지요."
젠 체하는 미마사카를 재촉했지만, 그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추궁을 단념하고 두 가지 현물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 사흘 뒤, 미마사카로부터 봉투가 날아왔다. 그러나 내가 읽은 것은 두 달 이상이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하고 읽은 결과, 그가 느꼈다는 섬뜩한 감각을 나도 공유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째서 내가 무의식 중에 이 이야기들을 피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것도 나중으로 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니 우선은 독자에게도 문제의 일기와 속기원고 정리본을 읽게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다음이다.
- 이 두 이야기를 게재하기에 앞서 양해를 구하고 싶다.
우선 대학노트의 일기는 기록자인 어머니 가족이 이사를 마치고 간신히 한숨 돌린 듯한 날의 기술부터 발췌했다. 다만 제3자가 읽는 것을 전제로 적힌 글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 게다가 발췌까지 하였으니 더욱 그렇다. 거기서 독자의 편의를 위해 문장 내에 보충설명을 더했 ...
- [3월 30일]
역시 단독주택은 좋다. 그것도 신축에다가 넓기까지 하다. 넓다고 하자면 마당도 넓다. 그런데다 집 앞이 숲인 것도 마음에 든다. 창문 밖으로 나무들이 보이다니, 이 얼마나 복에 넘치는 일인가.
다만 폐공장인 듯한 건물의 일부도 보인다. 이런 주택지에 어울리지 않아서 유감이지만, 언젠가는 헐리겠지. 그때까지만 참기로 하자.
이사는 몹시 힘들었지만 정리가 거의 끝나서 한시름 놓았다. 카나의 방이 생긴 것이 특히 기쁘다. 벽지를 목장 무늬로 고르기를 잘했다.
"말, 소, 양, 토끼!"
-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연립주택 근처에 어머니끼리 알고 지내던 타케우치 가와 사에키 가가 있다. 전자의 딸이 유키이고 후자의 딸이 쥬리인데, 아마도 카나와 동갑내기로 여겨진다. 양가 모두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와 동거하고 있었는데, 유키와 쥬리는 할머니와 마치 친구처럼 사이가 좋았다. 카나는 그것을 늘 부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사 갈 때에 작별 선물로 카나는 타케우치 가의 할머니에게서 신부 인형을, 사에키 가의 할머니에게서 손거울과 빗을 받았다.)
- [4월 3일]
이 근방의 앤티크 숍에서 샀던 키 높은 서랍장.
작은 서랍이 많이 있어서 거실에 장식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엌에도 어울렸다.
냉장고나 찬장 근처에 두면 분명히 어색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놓아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인가 보다.
조미료 수납장으로도 쓸 수 있고, 파스타나 말린 미역, 떡처럼 한동안 보존할 수 있는 것을 종류별로 수납하기에도 편리하다. 이 서랍장을 사길 잘했다.
- [4월 7일]
마을자치회의의 회장인 쿠로다 씨가 인사차 찾아왔다. 옛날부터 계속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근방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공손히 인사를 했다.
"남편은 오사카, 저는 나라 출신으로, 이제까지 교토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 대해 잘 몰라서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만,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쿠로다 씨는 우리 집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도 긴키 지방이라고 하자면 긴키지요."
마치 관심이 딴 데 있다는 듯이 그런 대답을 했다. 하지만 쿠로다 씨의 시선은 여전히 우리 집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한 대답은 그냥 해본 말에 지나지 않고, 쿠로다 씨의 홍미는 어째서인지 우리 집에 있는 듯 보였다.
이 땅도 원래는 쿠로다 가의 소유였던 것일까. 그렇게 물어볼까 했지만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임대라면 집 주인에 대해 알 필요가 있지만, 여기는 우리 집이고 우리 땅이니까.
- [4월 8일]
이 집은 볕이 잘 든다. 부엌 이외의 모든 방에 햇살이 비친다. 그런데도 가끔씩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 [4월 28일]
카나에게 물어보았다. "이상한 소리 못 들었니?"라고. 고개를 젓긴 했지만, 그 애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카나가 알 리가 없는데. 하지만...
- [4월 29일]
카나가 부엌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와 찬장 사이의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로. 저건...
- [4월 30일]
그 소리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하자, "투둑투둑 소리는 '모래할멈'이고... 작, 작, 하는 소리는... '팥 씻는 옹' 아인가?"라며 웃었다.
양쪽 다 애니메이션 <게게의 키타로>에 나오는 요괴라고 한다. 정말 속 편한 양반이다. 즐거운 듯이 모래 할멈과 팥 씻는 옹이란 요괴의 설명을 시작하고 있으니.
다만 그런 요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이 어쩐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이번 재주가 있었다는 것을 오래간만에 떠올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 [5월 6일]
또 소리가 났다. 연휴 중에는 전혀 없었는데. 남편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는데.
- [5월 9일]
거실 커튼이 흔들렸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을 텐데.
- [5월 10일]
커튼이 흔들렸다.
그 순간, 누군가가 엿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커튼과 커튼의 틈새가 아니라, 커튼 너머에서.
물론 커튼 너머는 바로 창문이 있다. 그 사이에는 어린아이라도 서 있을 수 없다. 있으면 바로 알 수 있다.
천의 무늬 탓인가 했지만, 물고기 뼈 같은 디자인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봐도 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5월 13일]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다. 웬일로 밤중에 눈이 떠져서 화장실에 갔다.
남편을 깨우지 않도록 가만히 침실을 나왔다가, 화장실에 가기 전에 아이 방에 들르자고 생각했다. 살짝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보니 카나는 곤히 자고 있었다. 자는 얼굴이 어쩌면 그리 귀여운지.
방을 나오려고 했을 때,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창문을 확인했지만 커튼은 제대로 쳐져 있었다. 조심조심 바깥을 엿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당연하다. 2층이니까.
다시 방을 나가려고 하는데, 역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창문이 아니다. 벽 쪽이었다. 물론 아무도 없다. 아니, 실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벽 뒤도 아니다. 그 중간 정도.
벽지 너머...
문득 그런 기분이 들어서 등줄기가 오싹했다. 갑자기 몹시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황급히 1층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왔더니 밝은 곳에 있다가 나온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더듬어서 복도의 전기 스위치를 찾고 있는데, 그 소리가 들려왔다.
작, 작, 작...
이제까지 들었던 것보다도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게다가 이쪽에 다가오는 기척이 난다.
불을 켤 새도 없이 나는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계단의 난간을 잡자마자 큰 소리를 내며 뛰어올라갔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그 소리가 났다.
투둑, 투둑, 투둑...
이건 분명히 지붕 위에서 나고 있다. 이제까지 들어왔던 것보다 ...
- 거기에 쿠키를 곁들인 정도다.
간식을 먹은 뒤, 카나가 스스로 유토를 데리고 아이 방으로 놀러 가서 안도했다.
"좋은 집이네요."
노무라 씨는 우리 집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빈말이라고 해도 역시 기쁘기는 기쁘다. 왠지 우쭐해진다.
우리 가족이 이사 온 곳이 새로 지은 집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런 새로운 집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당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 [5월 29일]
남편이 또 요괴 얘기를 했다.
"있잖아, '야나리'라는 요괴가 있는데 말이지."
집안에서 창문이나 문, 미닫이문이나 장지문 같은 것을 덜걱덜걱 흔들어 소리를 내서 집에 사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요괴라고 한다.
"폴터가이스트란 거 있잖아? 그것의 일본판 같은 거지. 폴터 가이스트는 가구가 움직이거나 컵이나 접시가 날아다니거나 해서 겁나 위험하지만, 야나리는 그냥 소리만 낼 뿐이라 별로 해가 없지."
이 집의 묘한 소리도 야나리냐고 묻자, 남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 간식을 먹은 뒤에 카나가 아이 방으로 가자고 권했는데도 유토는 어째서인지 가기를 꺼려했다. 확실하게 "싫어"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떨떠름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없는 재미있는 장난감이 많이 있으니까, 자, 카나하고 같이 놀고 오렴."
노무라 씨에게 떠밀려서 간신히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돌아갈 때에 슬쩍 유토의 눈치를 살폈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묘했다. 게다가 줄곧 이마를 누르고 있다.
"이마가 아프니?"
설마 카나한테 맞은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해서 물어보았지만, 유토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로 들어와요."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노무라 씨는 전혀 깨닫지 못한 듯해서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6월 8일]
카나가 아이 방에서 혼잣말에 열중하고 있을 때를 노려서 슬쩍 물어보았다.
"누구하고 이야기하고 있니?"
그러자 카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키요."
"키요는 카나의 친구니?"
카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요는 어디에 있니?"
"저쪽."
카나가 가리킨 곳은, 아이 방의 벽이었다.
"벽 너머에 키요가 있어?"
카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울타리 너머."
카나가 말한 '울타리'라는 것이 벽지에 그려진 목장의 울타리인 것 같다고 깨달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벽 너머라는 대답보다 벽지에 그려진 울타리 너머라는 대답이 어째서 이렇게나 무서운 걸까.
- [6월 10일]
오늘의 카나는 텔레비전 뒤편의 틈새에 말을 걸고 있었다.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냐고 물어보니, "키요"라고 대답했다.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이사 오고 나서 조금 뒤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카나가 혼자서도 즐겁게 놀게 되었을 무렵이 아닐까.
다만 텔레비전 뒤의 어디에 키요가 있느냐고 묻자 "어두운 곳"이라고 말했다. 그 대답에 어쩐지 납득이 갔다.
- 의혹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토를 유괴했다고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거의 한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을 마쳤다. 인간의 뇌란 정말 대단하다.
"우리 딸아이에게는 키요라고 하는 상상 속의 친구가 있습니다만..."
그 소녀는 벽 안에 살고 있다는 것. 딸이 혼자 있을 때는 같이 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요즘에 아무래도 싸운 모양이라는 것. 그래서 키요가 화가 나서 벽 속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울어서 저 테이프를 붙였다는 것.
남자 형사는 당황한 듯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느낌일까.
그렇지만 여자 형사는 달랐다. 아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다.
다만 여자 형사가 별생각 없이 한, "듣기에 따라서는 완전히 괴담 같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소름이 확 돋았다.
지금 이때까지, 나는 이사 온 뒤에 체험한 우리 집의 다양한 일을 그저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라고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무섭다는 감정은 있었지만, 그것이 '마치 괴담 같은 체험'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번듯한 괴담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때서야 간신히 깨달았다.
- 이름을 들어 지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냥 읽으면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할 듯한 기사가 많았다. 다만 어느 잡지가 전혀 다른 견해를 취한 기사를 딱 한 번 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사라진, 현대의 카미카쿠시(갑자기 사람이 행방불명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옛 일본에서는 요괴의 소행으로 믿었다-역주).
그 기사는 노무라 씨에게는 '범행'이 불가능했음을 지적하고 사건의 불가해성을 문제 삼고 있었다. '유토 군은 카미카쿠시를 당했다'란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설명이 가지 않는 사건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추리가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아는 사람은 나 뿐일 것이다.
- (이 이후로 약 반년 간, 사건에 관한 기술은 하나도 없다. 그 전의 석 달간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일부러 적지 않았거나, 혹은 쓰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라는 의혹이 든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 점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해가 바뀐 다음 날짜까지, 일기를 생략했다는 사실만을 명기해 둔다.)
- [4월 17일]
또 아이가 없어졌다. 아마도 우리 집의 아이 방에서...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 내 이름...
... 머리가 좀 멍하다. 화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난 뒤처럼 어쩐지 머리가 무겁다.
기억하고 있다...
...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아마도 괜찮을 거다.
응.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 내 이름은 이시베 호타(石部 飽太). 나무를 깎는 도구인 대패 '포 飽'자에 태산의 '태 太'자를 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실력 있는 목공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이 이름을 붙였다.
목수 집안인데도 돌 석자가 들어간 '이시베'라는 성씨인 것이 우습지만, 내 조상님은 석재 가게를 하셨던 듯하다. 그래서 지금도 부탁을 받으면 묘비에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새기는 일도 ...
- 내가 기뻐하자, 누나가 비웃었다. 하지만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봐도 히죽히죽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시노즈카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서 "대답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하고 돌아섰다.
목수 일과 학교 공부. 나는 양쪽 다 좋아하니까 양쪽 다 잘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무서운 일...
이 마을에서 일어난 기괴한 사건...
카미카쿠시일까.
- 옛날부터 우리 마을에는 아이가 행방불명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게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이따금씩 있었다고.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늘 주의를 받았다.
"날이 저물 때까지 놀고 있다간, 아주아주 무서운 카미카쿠시를 당하게 된단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와야 해요."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소류고(蒼龍鄉)의 카가구시 마을이라는 곳도 카미카쿠시가 많지만, 우리 마을도 비슷한 정도로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들었다.
"만약 와레온나가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쏜살같이 도망쳐야 한다."
- 와레온나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마을에 출몰했던 괴물이다. 얼굴 한가운데에 커다란 균열이 가 있다. 이마부터 코와 입술을 따라 턱까지 삐뚤빼뚤한 금이 나 있는 것이다. 이 여자와 만나게 되면 아이는 어딘가 멀리 있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무서운 곳까지 끌려가 버린다.
- 카미카쿠시는 와레온나의 짓일까.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와레온나가 나타나기 전부터 마을에는 카미카쿠시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경우, 없어진 아이가 어느 때에 갑자기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와레온나에게 끌려가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 아이는 그냥 사라지게 된다.
- 그것은 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교는 이웃 마을에 있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 친구와 자주 놀다가 돌아갔다. 사실은 곧장 집에 돌아가서 바로 일을 거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몹시 야단맞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은 즐겁다. 깜빡 친구의 청에 응하고 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면 집안일을 거들게 된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몰래 논다는 것이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며 조금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학- 교가 세워진 이웃마을 외곽에 어른들이 '신케이(晨鶏) 저택'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집이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 마을이 나오는 장소에 그 저택의 넓은 부지가 있었다.
신케이라는 것은 새벽을 알리는 닭을 말한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다. 우리는 그 집에서 닭을 수십 마리씩 키우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치고는 학교를 오갈 때에 닭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이 이상했다.
우리 누나처럼 내 또래보다 큰 아이는 어째서 그곳이 신케이 저택이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그 점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술궂은 우리 누나라면 몰라도, 타츠키치 네 시즈코 누나까지 그렇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상당히 놀랐다. 시즈코 누나처럼 자상하고 남동생을 아끼는 누나는 이 마을 어디를 봐도 없는데.
- 다만 우리만 알고 있는 소문은 있었다. 누군가가 형이나 누나, 혹은 친척의 이야기를 주워듣고 짜 맞춘 이야기인 듯한데 마치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었다.
신케이 저택에는 아주 무서운 '열리지 않는 방'이 있다.
- 이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전에 할머니에게 들었던 '있는데도 없는 방'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신심이 깊으면서도 신령님이나 부처님이 나오는 옛날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늘 섬뜩하고 오싹한 이야기만 한다.
할머니 덕택에 나도 마을의 우지가미 님(氏神, 그 고장을 수호한다는 일본 신도(神道)의 신-역주)에게는 매일 참배를 한다. 그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겁이 나더라도 여차하면 우지가미 님이 도와주실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너무 무서워서 싫다.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듣고 마는데, 잘 시간이 되면 늘 후회한다. 밤중에 눈을 떠서 변소에 가게 될 때도 그렇다.
-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 옛날 옛날 오본(お盆,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일본의 명절-역주) 무렵, 한 남자가 소꿉친구와 함께 일하던 곳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산속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원래 걷던 산길로 돌아가려 해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허둥지둥하는 동안에 날이 완전히 저물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불빛이 하나 보였다. 이거 살았다 하고 기뻐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커다란 저택과 마주쳤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라며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노숙하는 것보다야 낫다. 대문 앞에서 친구가 사람을 부르자,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났다. 깜짝 놀라면서도 길을 잃었다고 말하니, 처녀는 친절하게도 저택에 들여보내주었다. 훌륭한 방으로 안내받고, 갓 데운 뜨끈한 목욕물에 들어가고, 맛있는 식사와 술을 대접받았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두 사람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처녀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하자, "재미있는 것을 보여드리지요"라는 말과 함께 저택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는 긴 복도가 있고 미닫이문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러나 어느 문에나 자물통이 매달려 있었다.
...
문도 포함해서 전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어느 문을 열까요?"라고 처녀가 물었다. 난처해진 남자가 늘어선 미닫이문들을 쭉 훑어보니, 딱 하나 자물통이 채워지지 않은 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젯밤에 친구와 함께 봤던 문과는 명백히 달랐다. 그때의 문은 좀 더 앞쪽에 있었다.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그 문이 먼 곳으로 움직여 있다. 하지만 "저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말해도 아마도 이 처녀는 "어느 것 말씀인가요? 그런 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만"이라고 대답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남자는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깊은 산속에 이런 저택이 있는 것일까. 처녀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죽 늘어선 미닫이문 안에 어째서 그런 풍경이 보이는 것일까. 왜 그중에 딱 하나만 잠기지 않았던 것일까. 그 문의 존재를, 어째서 처녀는 부정한 것일까. 친구는 그 문을 열었던 것일까. 그리고 안에 들어간 것일까. 그런 뒤에 어떻게 된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처녀가 권하는 아침식사를 거절하고, 남자는 도망치듯이 산속의 저택을 뒤로했다. 고향에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지만, 친구는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오래전에 할머니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 신케이 저택...
그렇다. 그 저택 근처에, 옛날부터 '기원(祈願)의 숲'이라 불리는 기묘한 숲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참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옛날에는 기묘한 바위의 숲이라며 '기암(奇巖)의 숲'으로 불렸지만, 재수가 없다며 기원의 숲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숲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깊지도 얕지도 않다. 가장자리를 따라서 걸어도, 둥글지도 네모나지도 않고, 상당히 삐뚤빼뚤하다. 학교를 오갈 때 다니는 길은 숲의 한 군데에 접한다. 거기에는 크고 작은 바위 두 개가 있고, 그 사이에 한 줄기 외길이 나있다. 길이라고 해도 제대로 다져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것은 길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였다. 그곳의 양쪽에 선 바위가 마치 문지기나 코마이누(狛犬, 신사나 절의 입구에 세워두는 한 쌍의 석상. 사자나 개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역주)처럼 보인다. 기암의 숲이든 기원의 숲이든, 양쪽 다 적절한 이름인지도 모른다.
이 두 바위 사이를 지나면 길은 구불구불 갈지자를 그리며, 정말로 뱀이 기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숲 속 깊은 곳을 향해 이어진다. 길의 양옆으로 삼나무, 모밀잣밤나무, 떡갈나무 등이 섞인 울창한 수풀이 마치 벽처럼 우거져서 길의 좌우는 거의 막혀 있다. 앞쪽의 시야도 아주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삐뚤빼뚤한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형태로 길이 뻗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곳에 몇 번을 와봐도 숲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할까, 숲 자체에 익숙해질 수 없는 탓이다.
- "어~이! 아직 숨어 있는 녀석은 있냐!"
그렇게 나는 외쳤다.
"타츠키치하고 히스케가 빠졌으니까, 다른 놀이 하지 않을래?"
사방팔방으로 돌아가면서 계속 외쳤다.
그런데 숲 속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대답이 없다. 이 숲 속에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어~이!"라고 외친 것을 후회했다. 산속에서 "어~이!"라고 부르는 것은 괴물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드시 "야~호!"라고 외친다. 그렇기 때문에 "어~이!"라는 부름에는 절대 대답해서는 안 된다. 대답을 하면 곧바로 괴물이 찾아온다. 그런 이야기를 어릴 적 잘 때에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 하지만, 여기는 산이 아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얘기하면서 나는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숨바꼭질은 끝났어. 이제 돌아가자!"
큰 소리로 말하려고 했는데 평소에 이야기하는 소리보다도 작아졌다. 애초에 숲에는 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목소리를 낸 것은 이 숲에 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길을 나아가고 있는데, 숲 중앙의 풀밭에 도착했다. 숲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반대로 깊이 들어와 버린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돌아갈 때에도 가끔씩 같은 실수를 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즐거웠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그곳에는 뭔가가 있었다.
- 여자...
나가주반(기모노와 비슷한 형태로 겉옷 아래에 입는 흰 속옷-역주) 같은 것만 몸에 걸치고 있는 긴 머리의 여자는, 풀밭 중심에 있는 둥근 바위 위에서 이쪽에 등을 돌린 상태로 웅크리고 있었다.
-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느샌가 그 사람을 향해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려고 했던 것일까,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했던 것일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곤란에 빠져 있다면 도와줘야만 한다는 친절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옴에 따라,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멀찍이에서는 길고 풍성한 흑발로 비친 머리도 가까이에서 보니 조잡한 직물처럼 흰머리가 섞여 있고, ...
- 나는 어떻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풀밭의 가장자리에 보이는 길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사실은 멈춰 서지 말고 숲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달려야 했다. 하지만 풀밭에서 나갔을 때에 꼭 확인하고 싶었다.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고 말았다.
풀밭의 한가운데에 있던 것은...
... 와레온나였다.
- 눈처럼 새하얀 무표정한 얼굴에 넓은 이마. 조금 치켜 올라간, 길게 찢어진 두 눈. 작지만 오뚝한 코, 반들반들한 두 뺨. 작지만 기품 있는 입술. 작고 갸름한 턱을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전부 손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는 정반대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다만 얼굴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삐뚤빼뚤하게 뒤틀린 금이 없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 와레온나...
처음에 든 생각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속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있었구나, 였다. 그 놀라움이 너무 커서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못 박혀 있을 뿐이었다.
막 가라앉으려고 하는 저녁 햇살을 뒤집어쓰며 흐릿하게 주홍빛으로 물드는 풀밭의 한복판에서, 천천히 와레온나가 앞으로 기울었다.
- 이럴 수가...
두 다리의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발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첫 갈림길은 오른쪽, 다음은 왼쪽, 그다음은 오른쪽을 고른다. 그 뒤에도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점점 숲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디 이대로 무사히 숲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빌면서 달렸는데도, 오른쪽 발에 뭔가에 걸려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른쪽 팔과 왼쪽 무릎이 까졌다. 그 아픔을 느끼면서도 급히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 뒤로는 숲의 출구를 향해 어떻게든 막무가내로 나아갔다.
이윽고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곳은 신케이 저택이 눈앞에 보이는 장소로, 평소에 학교를 오가는 길 근처였다.
안도하면서 통학로로 나갔더니, 숲의 문지기 바위 옆에 그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고생해서 숲 속을 빠져나오는 동안에 앞질러왔던 것이다.
- 빛에 흘끗 보인 순간, 나는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고리짝 안에서 내가 쥐고 있던 옷은, 격자무늬였다.
[움켜쥔 것이 격자라면 이젠 끝장이라네.]
와레온나의 노래는 이걸 말하는 것이었나. 하지만 고리짝 안에 들어 있는 옷의 무늬를 어떻게 알고 있던 걸까. 거기에 내가 숨고, 그 옷을 덮고, 격자무늬를 손에 쥘 것을 어째서 알고 있던 것일까.
운명...
오늘 기원의 숲에서 논 것도, 그곳에서 홀로 남겨졌던 것도, 와레온나와 만났던 것도, 신케이 저택으로 도망친 것도, 이 곳간에 들어온 것도, 고리짝에 숨은 것도, 격자무늬 옷을 덮은 것도, 전부 예전부터 정해져 있던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렇다면 도망칠 수 없다...
-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게 아닐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와레온나에게 덮어씌운 옷이 스륵 떨어졌다. 이어서 그것의 하얀 얼굴이 툭 하고 벗겨졌다. 그 아래에 나타난 것은...
와레온나의 진짜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절규했다.
- 진보초의 찻집에서 미마사카 슈조와 만난 뒤, 내가 두 개의 괴이담을 입수한 뒤로 벌써 두 달 이상이 지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어느 쪽 이야기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읽고 싶은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그저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집필에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이 해의 4월부터 6월 초순까지, 나는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제1부 <오이란(花魁, 유곽의 유녀 중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부르는 호칭-역주)-초대 히자쿠라의 일기>에 착수했다. 열세 살에 유곽에 팔려가고, 열여섯 살부터 손님을 받게 된 사쿠라코의 기명(妓名)이 히자쿠라다. 그녀의 일기라는 형식으로 서술하는 게 이 책 1부의 구성이다. 아무리 나 자신이 작가라고 해도, 솔직히 이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정말로 엮어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욱 집필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서 괴이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막상 쓰기 시작하니 평소 이상으로 몰두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도 집필 중에 이따금씩 느낀 고양감과는 또 다른, 전혀 다른 고양감을 느낄 정도였다.
다만 그렇게 되니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머리와 몸이 피로한 상태에 빠진다. 실제로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집필 중에는 자주 쪽잠을 잤던 기분이 든다. 휴식할 때 20분 정도 소파에서 쉬었지만, 늘 숙면했다. 잠깐 사이에 잠에 빠져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눈을 뜬다. 그런 매일의 반복이었다.
- 다만 집필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휴일에는 취미로 하는 독서나 DVD를 보는 등, 횟수는 적었을지 모르지만 평소처럼 지내고 있었다. 즉 두 가지 괴이담을 훑어본다는 행위를 그 안에 포함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실화괴담의 책을 읽고 즐기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으니까.
그렇지만 미마사카로부터 도착한 우편물은 여전히 자료 선반에 들어가 있었다. 두 가지 이야기의 내용을 알아버리면 어쩐지 곱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 탓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구체적인 상상을 한 것은 아니다. 뭔가 상상하려고 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를 못하니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분명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들에 홀리는 것을 두려워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괴이적인 의미가 아니다. 호기심을 자극받고 괴이담 애호가의 피가 끓어올라 정신없이 푹 빠져버린다. 그럴 위험을 걱정한 것이다.
- 이때의 나는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집필에 지장을 줄 만한 것이라면 뭐든 거의 반사적으로 피하고 있던 기분이 든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미마사카로부터 두 이야기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기피하려고 한 사실이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의 괴이담 수집 경험을 통해서도 명백하다. 언젠가는 읽는다 해도,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핑계를 대고 있었다는 기분도 든다.
- 이윽고 몹시 염려하고 있던 제1부가 완성되었다. 아직 퇴고가 필요하지만 우선은 안심이다. 제2부는 유곽의 여주인이었던 인물의 시점으로, 탐정 역할인 도조 겐야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기로 이미 결정해 두었다. 제3부는 유곽에 놀러 온 손님의 시점으로 그릴 생각인데, 이것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
- 나는 작품의 핵이 되는 아이디어와 주요 무대설정만 머리에 담아두고, 이야기 대부분은 직접 쓰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이 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당초에는 태평양 전쟁 발발 전인 제1부에서 전쟁 중의 제2부를 거쳐 전후의 제3부까지, 같은 기명 ...
- 스윽, 하고 그것이 일어섰다.
여전히 내리는 비와 밤의 어둠 때문에 잘 안 보였지만, 그 시커먼 뭔가는 마치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듯 비쳤다.
할머니?
처음에는 어린애인가 생각했지만, 눈을 부릅뜨고 보니 노파처럼도 보인다. 노인으로 보이는 그런 형체가 비틀비틀 지붕 위를 걷기 시작했다. 두 손을 전후좌우로 휘적거리는 참으로 기묘한 걸음걸이를 보이면서, 비 내리는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괴함과 의외성 탓에, 나에게는 아직 무섭다는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았다. 그저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말았다는 의식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대체 저런 것이 저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목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춤추고 있다.
노파처럼 보이는 형체는, 비에 젖은 하이츠의 지붕 위에서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움직이면서 춤추고 있던 것이다.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가 퍼지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계속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보게 되어버린다. 그 동작 전부를 눈으로 쫓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그 움직임이 멎었다.
- 그런 뒤에 나는 하이츠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런 뒤에 이곳은 입주자가 적다는 것, 집세가 싼 것을 언급하고서 마치 지금 막 떠올랐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몇 번인가, 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조금 난처했던 적이 있어요."
"무슨 소린가요?"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최대한 정확하게 그 소리를 재현했다.
"아아, 그건 빗소리겠죠."
그렇지만 집주인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지 않는 밤에도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요."
- 놀라 되묻는 나를 보고, 집주인 할머니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니요?"
"해는 없으니까요."
"네?"
"어른에게는 해가 없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집주인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등줄기에 한기를 느꼈다.
"그래서 애를 데리고 있는 집은 우리 연립에 들이지 않고 있답니다."
- 확실히 카도누마 하이츠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룸 연립주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곳과 같은 규모의 연립주택은 역에서 하이츠까지 오는 동안에도 여럿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건물 앞에서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대부분이 아주 어린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뒤집어보면, 원룸 주택이라도 아이가 크기 전까지는 부모와 셋이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고생쯤 되면 역시나 자기 방을 원할 것이다. 방의 수가 늘어나면 당연히 집세도 오른다. 그러니까 자녀가 어릴 적에는 되도록 집세가 싼 원룸에 살면서 저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카도누마 하이츠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물건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아이가 있는 가정의 입주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어째서?
당연히 그 점에 의문을 느낀 나는 집주인 할머니에게 왜 아이를 들이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요전에도 부동산 업자분이 간사이 지방에서 이사 올 예정인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만, 이라고 연락을 해왔지요. 이곳을 보여주었더니 몹시 오고 싶어 하던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거절했답니다. 전에 토카이(東海) 지방의 부부도 있었는데, 아이의 나이가 아슬아슬하다 싶었지만 역시 거절했죠."
그렇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니, 처음 만나든 아는 사람이든 이렇게까지 타인의 얼굴을 응시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실례일 텐데.
"어, 왜 그러시나요?"
나는 조금 정색하며 물었다.
"별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또 집주인 할머니가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 제아무리 나라도 조금 어조가 강해졌다. 아무리 나이 든 분이 상대라고는 해도, 어쩐지 바보 취급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집주인 할머니의 말에 나는 또다시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학생은 꽤나 동안이니까요."
- 그날 밤도 무사히, 이만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때였다.
차락, 작, 차락, 작.
옆방인 205호실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잠에 막 들려던 차에, 확 잠이 깨버렸다.
지붕 위의 소리가 나지 않게 되어 안도하던 것도 있어서, 나는 화가 났다.
싸아아, 싸아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쪽의 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소리에 불쾌감이 치솟았다.
쿵, 쿵.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가볍게 벽을 두드렸다. 화가 났다고는 해도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다는 이성이, 이때까지는 아직 있었다.
쿵!
그런데 이쪽의 노크에 대한 응답은, 저 너머에서 벽을 세차게 후려치는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나는 침대 위에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곧바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이쪽은 조용히 끝내려고 "좀 시끄럽습니다" 정도의 노크를 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해 마치 불평을 하듯이, 벽을 후려치다니!
- 하지만 어째서?
다양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나는 더 이상 무서운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들어가고,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철저히 무시하고 자려고 노력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참고 견디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나는 이사했다. 집주인이 보증금과 사례금을 그대로 돌려준 것에는 놀랐지만, 새로운 집을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부모님이 두 번째 이사비용을 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도누마 하이츠와 같은 집세에 새로운 집을 찾아보았지만, 찾은 것은 학교에서 멀찍이 떨어진 역 근처의 3평짜리 연립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연립'이라는 호칭에 딱 어울리는 건물로, 갑자기 가세가 기운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평범하고 정상적인 집이었다. 결국 나는 그 연립주택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 다음으로 미마사카 슈조와 만난 것은 10월 초순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제2부 '오카미(女將, 여관 등의 여주인을 뜻하는 호칭-역주)-반도 유코의 이야기'와 잡지 <쟐로>에 실을 단편 <의인(椅人)처럼 앉는 것>을 쓰면서 대만의 황관(皇冠) 출판이 주최하는 제2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의 수상식에 참석하는 등, 나름대로 바삐 지내고 있었다. 10월에 들어서부터는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제3부 작업에도 착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는 동안에도 그 세 가지 이야기가 늘 머리 한구석에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번씩,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문득 떠오른다. 그런 기분 나쁜 체험을 어느샌가 반복하고 있었다.
- 슬슬 그 친구와 만나서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평소의 비어바에서 미마사카와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했다. '만나자'가 아니라 '한잔 하자'로 한 것은 내 나름의 작은 저항일까. 무엇에 대한 저항인지는 접어두고.
- 반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미마사카는, 평소와 같았다. 서로 좋아하는 메이커의 맥주와 안주를 적당히 주문하고, 한동안 대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의 집필은 순조로우신지요?"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는지, 이야기가 일단락되었을 때에 질문을 해왔다.
"며칠 전에 3부에 들어갔지. 유곽 손님의 시점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그걸 신인 작가로 바꾸기로 했어."
"어째서죠?"
"제1부가 오이란이고, 2부가 유곽의 오카미. 전부 유곽 내부의 사람이야.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여성이지. 그래서 3부는 외부인인 남자로 할 생각이었어. 다만 그렇게 되면 손님이든가, 출입하는 상인이나 업자 정도밖에 없지. 후자는 이야기에 관여하게 만들기에는 조금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어. 전자라면 단골손님으로 설정할 경우, 유곽에도 유녀에게도 깊이 얽히게 만들 수 있지."
"그렇군요. 제3부의 시점으로서는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 어째서 변경할 필요가 있었는가,라고 질문하는 미마사카의 얼굴은 그야말로 편집자의 그것이었다.
"너무 생생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의 포인트는 그곳에 있다고 전에 들었습니다."
"유곽과 유녀의, 말하자면 생태에 대해서는 제1부에서 충분히 그려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파악하는 것이 제2부가 되지. 그렇기 때문에 제3부에서는 유곽과 유녀로부터 좀 떨어진 시점이,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의 설정이 필요해진다. 뭐, 그렇게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신인작가로 했을 경우에도 손님이란 입장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렇지.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가게를 사서 세 번째 유곽의 경영자가 된 여성의 조카라는 설정으로 했어."
"그렇군요. 작가라면 첫 대나 둘째 대의 유곽에서 일어난 사건에 흥미를 가져도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응. 작가로 한 다른 이유는 거기에 있어. 단순한 손님일 경우, 세 번째 가게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떨지 몰라도 과거의 두 가게에서 일어난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사할 동기가 딱히 없는 거니까. 어째서 이 사람은 그렇게까지 열심인지 이상하게 여겨지겠지. 유곽의 손님이라는 입장을 생각하면, 대개 관여하기를 꺼리게 될 테니."
"사건의 용의자가 될 처지라 그 의심을 풀기 위해서라..."
"물론 그런 설정도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3부의 시점인물을 일부러 사건에 관여시켜야만 하게 돼."
"주객전도가 되어버리는 거군요."
역시 이해가 빠르다.
- "그것 하고, 사소한 이유지만 제1부를 오이란의 일기, 제2부를 오카미의 이야기로 했으니 제3부는 일기나 이야기와는 다른 형식으로 하고 싶었어. 거기서 생각한 것이 작가의 원고라는 형식이야."
"선생님다운 고집이군요."
씩 하고 미마사카가 웃어서, 나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세 가지 이야기를 읽고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기에, 이쪽도 느낀 그대로 대답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있어. 쏙 닮았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아. 하지만 완전히 무시하기는 망설여져. 결국 참으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이고, 정신을 차리고 보 ... "
- "훨씬 무게를 둬야만 해. 그것이 미스터리에서의 미싱링크야.”
"같은 것을, 세 가지 이야기에서도 해보시려는 겁니까."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이번에는 내가 끄덕였다.
"두 가지 이야기가 비슷한 것뿐이라면 우연으로 끝낼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이 세 가지로 늘어나면 말이 달라지지. 게다가 세 가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흐릿한 유사점이라는 것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빼다 박았다고 할 수준은 아니어도 비슷하지 않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정도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뒷맛을 남기지. 이런 것은 정말 성가시다고. 우리처럼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나는 일단 이쯤에서 맥주를 추가로 주문하고서 말을 이었다.
"우선은 세 가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지."
- "찰스 호이 포트(Charles Hoy Fort)라는 이름의 미국 뉴욕 주태생의 작가를 알고 있나?"
"아뇨, 유명한 작가입니까?"
"소설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초현실 현상 연구의 선구자격인 존재로 그쪽 방면에서는 알려져 있어. 어쨌든 H. P. 러브크래프트가 그 작품 속에서 언급하는 인물이니까.”
"굉장한 사람이잖습니까."
아무래도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이 그에게 먹힌 것 같다.
- "포트는 유산을 상속받은 것을 기회로, 일을 그만두고 조사에 몰두하게 돼. 런던으로 이주했을 때는 대영박물관에서, 뉴욕 주로 돌아가서는 뉴욕공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어떤 것을 계속 조사했지."
"그 정도로 열심히 대체 뭘 조사한 겁니까?"
"있을 리 없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서야."
"러브크래프트가 언급할 만하군요."
흡족한 듯이 납득하는 미마사카를 보고 있으면, 이쪽까지 절로 미소를 짓고 싶어진다.
- "포트가 조사한 막대한 양의 괴현상 중에서, 그 사람이 '천공의 사르가소 해'라고 이름 붙인 믿기지 않는 유사 사건이 있어."
"사르가소 해라면, 그 지역을 지나가던 비행기나 선박이 홀연히 사라지기로 유명한 그 마의 해역이군요."
"멕시코 만류나 북대서양 해류 등의 네 가지 해류에 둘러싸인 해역으로, 사르가소라는 해조가 많이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지. 이 해조류가 떠다니다가 모여들기 때문에 '달라붙는 바다'라고도 불리는 모양이야. 마의 해역에 어울리는 별명이지. 그렇다고 해도 사르가소 해는 역시나 알고 있었나 보군."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용으로 나온 그쪽 방면 책에서 읽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괴한 것에 푹 빠져 있었던 모양이구먼."
"선생님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아니, 내가 호러 쪽에 빠진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야."
- "1876년 미국에서는, 켄터키 주의 어느 마을에 하늘에서 고기 조각의 비가 내렸어. 용기를 내서 먹어본 사람에 의하면 사슴고기나 양고기 맛이 났다고 하더군. 1892년, 앨라배마 주의 콜버그에 하늘에서 장어의 비가 내렸지. 96년, 루이지애나 주의 바톤 루주에 하늘에서 다수의 죽은 새들이 떨어졌어. 들오리나 딱따구리 등의 여러 새들이 섞여 있었는데, 카나리아 비슷하지만 카나리아는 아닌 기묘한 새도 있어서 꽤나 섬뜩했다는 모양이야.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사례로는 1973년, 아칸소 주의 어느 골프 코스에서는 하늘에서 작은 개구리의 비가 내렸지. 영국에서도 1954년, 버밍엄에서 무시무시한 숫자의 개구리가 떨어졌다더군. 그 밖에도 많은 것이, 하늘에서 물고기의 비가 내린다는 사례지."
"천공의 사르가소 해라는 표현은, 거기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믿기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겁니까."
"응. 꽤 괜찮은 네이밍 센스지."
- "포트는 사례를 모으기만 하고 특별히 현상의 검토는 하지 않은 겁니까? 즉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한 번 회오리바람 등에 휘말려 하늘로 올라간 것이 나중에 떨어진 것뿐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죠."
"그런 사고방식은 옛날부터 과학자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회오리바람이나 화산의 분화에서 이런 괴상한 비의 원인을 찾는 해석이지. 다만 이러한 현상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은, 하늘에서 떨어진 개구리에 진흙이 묻어 있던 것도, 물고기에 해조류가 얽혀 있던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야."
"그래서는 회오리바람설도 화산 분화설도 통하지 않겠군요."
"포트는 이렇게 생각했지. 저 넓은 하늘 어딘가에 여러 가지 것을 빨아들이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저장되었던 것이 폭풍이 나비에 의해 지상으로 쏟아지는 거라고."
"그것이 천공의 사르가소 해인가요."
"가령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째서 개구리만이, 어째서 새만이 같은 종류끼리 모여서 떨어지는가를 설명하지는 못해."
- "내가 기피한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즐기고 끝...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딱히 근거가 있던 것은 아니야. 다만 왠지 모르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이유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던 거지."
"그 시점에서는, 말하자면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말씀입니까."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는다면 그렇게 되려나."
- "세 가지 이야기를 읽어보신 뒤에는 어땠습니까?"
"그게 말이야..."
그렇게 입을 열다가 나는 말이 막혔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몹시 망설였지만, 어쨌든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상대는 미마사카 슈조다. 틀림없이 이해해 줄 것이다.
"역시 표현을 정확히 못하겠는데,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기시감입니까."
- "하지만 애초에 세 가지 이야기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아. 그런 이야기들의 어디에서 기시감을 느낀 걸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내가 지금 뭔가를 빼먹은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고..."
"상당히 미묘한 감각이군요."
"가장 있을 법한 가정은, 내가 예전에 세 가지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별개의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거나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었는데, 현재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경우겠지."
"네 번째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갑자기 흥미를 드러낸 미마사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고, 그런 쪽이 아니라는 기분도 들어.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읽은 소설 중에 유사한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고..."
"누군가가 체험한 괴담도 아니다. 작가가 창작한 소설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미마사카는 앗 하고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참고문헌이 아닐까요?"
- "지방의 전승인가."
"네. 그렇기에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괴담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기억의 밑바닥에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이야기를 접하는 것으로, 잠들어 있던 기억이 ... "
- 해가 바뀌어 나는 4월에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을 출간했다. 이제까지의 도조 겐야 시리즈와는 다른 분위기이기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솔직히 조금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다행히 많은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여주었다. 그 평가들에 내가 얼마나 기뻤고 또 기운을 얻었던가.
- 이 해의 4월 하순부터 나는 <노조키메>라는 신작에 착수했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노조키메>의 '서장'을 읽으면 알 터이니 여기서는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본 작품은 예전에 내가 수집한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는 괴이담과 어느 민속학자가 학창 시절에 체험했던 무서운 사건의 기록인 <종말 저택의 흉사>를 나란히 실어서 구성한, 아주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 메타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내 초기 작품군인 <작가 3부작>과 조금 비슷한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입장이었던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이 작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만 이 책의 집필 중에 줄곧 내 머릿속의 한구석을 점하고 있던 것은, 그 세 가지 이야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밖에도 유사한 이야기를 더 모아서 그것으로 한 권의 책을 엮겠다는 미마사카 슈조의 계획 자체가 흘끗흘끗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 왜냐하면 <노조키메>와 미마사카의 기획이 여러 면에서 비슷했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기획을 흉내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성이 비슷하다고는 해도 그것 자체에 독창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루는 이야기만 똑같지 않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다만 그렇더라도 미마사카에게 미안한 마음 역시 다소 있었다. 아무리 내용이 다르다고 해도, 실화 계열의 괴담 분야에서 유사한 구성을 지닌 책이 연이어 나온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후자가 따라한 것처럼 비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후승낙 같아서 미안하지만 신작의 집필 중에 이제는 익숙해진 진보초의 비어바에서 미마사카를 만나서,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마사카는 난색을 표하기는커녕 매우 기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 무섭다든가 두렵다기보다, 하여간 왠지 섬뜩해서 기분이 나쁜 것이다. 실은 이러한 감정이 가장 성가신지도 모른다. 읽고 있을 때에는 그리 대단치도 않은데, 나중에 서서히 효과를 발휘한다. 정신이 들고 보면 영문을 모르는 채로 어째서인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무래도 미마사카 역시 그런 상태에 빠진 듯하다.
- 네 번째 이야기의 출현에 흥분한 나는, 며칠 동안 자료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어쩐지 수상하다 싶은 서적이나 책자, 재래식 장정본, 인쇄된 종이의 뭉치, 신문이나 잡지의 스크랩, 수기로 적은 서류 등을 하나씩 정성 들여 검토해 나갔다. 꽤나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나도 상당히 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보람이 있어서, 사흘째 되는 저녁에는 끝내 해당되는 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어째서 그 서적을 기억하지 못했는가. 알고 보면 참으로 시시한,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 츠루미 마나부라는 이름이 들어간 46배판의 상제본 <내 인생에 새기다>는 쇼와 3년생(1928년-역주)인 저자가 70대 중반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작성한 원고를 제본한 사가본(私家本)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자비출판 서적으로, 가령 일반 서점에 진열되었다 해도 일부 지역뿐이었을 것이고 인쇄부수도 적어서 서점에 놓이는 기한도 짧았을 것이 틀림없다.
- 그런 책이 왜 내 자료실에 있었는가. 아마도 어딘가의 고서점에서 발견하고, 내용을 확인해 보니 태평양 전쟁 전부터 전쟁 후까지의 풍속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일단 사두자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제 어디서 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통독했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발췌독도 제대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분명 고서점에서 집어 들고 팔락팔락 넘기는 중에 '제14장 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서, 그 자리에서 대충 읽어봤던 것이 아닐까. 그때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세 가지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 아주 기묘한 기시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목적이 있어서 산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 책의 존재 자체를 잊고 말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 정도일 것이다.
- 곧바로 나는 <내 인생에 새기다>의 제14장을 다시 읽었다. 재독이 틀림없었지만, 대부분은 기억에 없는 문장이었다. 그저 막연히,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접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적혀 있는 내용에는 전율했다. 이것이 진짜 원흉 아닐까.
- "이 책의 14장에 기록된 내용은 '신케이 저택'과도 우부카타 사오리의 체험과도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시대가 태평양 전쟁 전이라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신케이 저택'과는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 그렇게 말을 잇다가 미마사카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그러나?"
그 눈치가 너무 신경 쓰여서 나는 상당히 강한 어조로 물었다.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나?"
실은 짚이는 것이 이쪽에도 있었다. 그러나 설마 하는 마음도 강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그것은 내 기분 탓이다.
하지만 명백히 그는 뭔가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이쪽도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억지를 써서라도 미마사카를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
- "설마, 그쪽에서도?"
"아무래도 우리 모두 같은 체험을 한 것 같군."
"그럴 수가..."
"지붕이지?"
미마사카의 말문이 막혔다.
"그 책을 읽고 있을 때, 지붕 위에서 작은 돌이 떨어지는 듯한 아주 기묘한 소리가 들렸어. 아닌가?"
"... 그렇습니다.”
- 코우시 님이란 미츠코의 집에서 사람들이 믿고 있던 듯한 신의 이름이다.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 인생에 새기다>의 14장보다, <미츠코의 집이란 무엇이었나>의 7장 쪽이 훨씬 사악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원고를 읽고 있을 때, 혹은 읽은 뒤에도 특별히 이상한 일은 없었죠."
"우리는 그런 쪽의 감각이 둔하니까."
"그런 것은 둔해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앙화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이라도 그 뒤에 <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를 읽으면..."
"주변에서 기묘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는 사람도 생긴다... 고 봐야 할지도 모르지. 딱 우리처럼."
- "뭐,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전화로는 안 돼. 만나서 이야기하지."
미마사카가 말하는 '짚이는 것' 따윈 하나도 없었지만, 이 이상 그를 너무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으므로 마치 있는 듯한 척을 했다.
- 그날까지 어떠한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한다.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정도다.
그렇게나 여유가 있을까요, 라며 미마사카가 걱정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해 두었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다른 괴이를 만난다고 해도, 맨 처음에는 소리뿐일 것이다. 그 이상의 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이 해석에만 의지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미마사카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 이제부터 연속해서 싣는 것은 우부카타 사오리가 쓴 <미츠코의 집은 무엇이었나>의 제7장에 해당하는 <셋째 딸의 원고-미츠코의 집을 방문하고서> -이 장의 타이틀은 미마사카와 둘이 결정했다- 그리고 츠루미 마나부의 <내 인생에 새기다>의 제14장 <노인의 기록-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 -'노인의 기록'이라는 표현은 역시 두 사람이 생각해 보고 결정했다- 의 전문이다.
- 또한 전자를 읽는 동안이라도, 즉 후자까지 읽어나가지 않았더라도 일상생활 중에는 들은 적 없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면 일단 이 책을 덮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라고 여기에 미리 경고해두고 싶다.
물론 어떠한 실질적 해는 없다고 믿고 있지만, 개인차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만일을 위해 덧붙인다. 그것으로 소리가 멈추고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면, 아마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으로 해주기 바란다.
- 감사의 마음으로 먹은 것은 그 이상의 양식이 된다.
허락을 얻고 입에 댄 것은 절반의 양분이 된다.
멋대로 훔쳐 먹은 것은 배를 뒤틀리게 한다.
- 어쩐지 초등학교의 급식실에 붙어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특별히 이상한 얘기가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있는 동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안 어울린다...
그렇게 말해야 좋을까. 식품창고 같은 방에 붙은 문언으로서 딱히 잘못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집에 모여 있는 사람은 대부분 어른뿐이다. 일부러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아이에 대한 호소 치고는 문장이 어렵다. 이 벽보의 존재 자체가 아무리 봐도 묘하다.
- 선반 사이를 빠져나오니 문이 보였다. 그 앞에 멈춰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한동안 그 너머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 있는 기척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문 앞에서 멈춰 선 채로 상당히 오랫동안 망설이고 있었다. 이 너머로 발을 들인 뒤로는 돌이킬 수 없다,라고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까.
- 횡의 선이 이쪽을 향해 펼쳐져 있는 듯 보이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비쳤다.
어째서 저곳만?
별채의 구석 벽으로 끌려들어 가듯이 나머지 복도를 나아가서 건물에 발을 들이려고 할 때, 나는 다시 멈춰 섰다. 그리고 주욱 실내를 둘러보고 또다시 그 자리에 못 박혔다.
자신이 본 광경이 곧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정면의 벽 오른쪽 구석에 어머니가, 왼편 벽 거의 중앙에 아버지가, 돌아본 뒤쪽 벽의 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시오리가, 왼편에 카오리가 각각 벽에 머리를 처박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정확히 적자면 머리가 완전히 파묻혀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고, 언니들은 얼굴이 반씩 묻힌 모습이었다.
- 물론 언뜻 본 것만으로 내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네 사람을 본 순간, 이미 때가 늦었다고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상태가 너무나도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 관련된 참고문헌을 여러 번 읽어보기도 했다. 어쨌든 오류가 없도록 주의했다. 내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확한 연월과 장소와 관계자에 대해, 그 경위까지 포함해서 상세히 기록하려고 노력해 왔다. 본장의 뒤에 적을 예정인 장도 물론 동일한 자세로 작업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것들은 예외로 둘 수밖에 없다. 당사자의 가족이 지금도 그 지역에 살고 있을 경우에는 다대한 폐를 끼치게 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메이지에서 다이쇼를 거쳐 쇼와 시대 초기까지의 수십 년간 추고쿠 지방의 모 마을에서 세력을 떨치던 모 가(家)라고만 적어둔다. 나머지는 그 집안이 조모의 먼 친척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덧붙일 수 있는 정도일까.
- 그럼에도 조모는 이따금씩 떠올랐다는 듯이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참고로 내 어린 시절에 조모는 '그녀'를 몇 번이나 '쿠루이메(狂女)'라고 불렀다. 아마도 미친 여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을 위해 몇 종류의 <차별어 사전>을 조사해 보았지만, 해당하는 말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 조모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해서 평소부터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무섭고 신비하며 기묘한 내용이 많았다.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괴담을 좋아했던 것도 아마 조모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막내라는 이유도 있어서 더욱 귀여움을 받으며, 정말로 많은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조모에게는 쿠루이메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그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필자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무섭게 느껴졌다. 조금의 교류도 없는 먼 친척이라고는 해도, 묽게나마 피가 이어져 있던 것은 사실이다.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자 중에 '쿠루이메'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그 녀석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 그런 말을 했다. 어떠한 일을 했다고 듣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나도 미쳐버려서 같은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조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늘 그런 기분 나쁜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옛날이야기라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어차피 남의 이야기다. 하지만 쿠루이메는 다르다. 말하자면 일상에서 느끼는 전율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당시의 필자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포였다. 게다가 조모는 듣는 이가 어린아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수위가 높고 심각한 이야기를 태연히 하곤 했다. 물론 그런 내용을 필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흉측함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전해졌다. 필자가 진심으로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 정도로.
- 조모에 의하면 쿠루이메는 그 탄생부터 기묘한 사연이 있었다. 소원한 먼 친척의 사정에 어째서 그렇게까지 정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의 밑바닥을 뒤지면서 어떻게든 조모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 어느 날, 모가의 당주와 나이 차가 꽤 나는 열세 살 난 여동생인 키요코가 행방불명되었다. 그 지방에서는 옛날부터 카미카쿠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대다수는 좀 더 나이가 어린 아이가 대상이었고, 대부분은 사라진 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키요코는 실종된 지 일주일 뒤에 발견되었다. 마을사람들이 '산신(山神) 사당'이라고 부르는 낡은 사당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담력 시험을 하던 어린아이 중 한 명이 발견했다.
- 그곳은 혹처럼 솟아 오른 작은 산 위에 오두막 정도 크기의 사당이 우두커니 서 있는 장소로, 평소에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적적한 장소였다. 그 사당에서 무엇을 모시고 있는지는 마을의 노인들조차 몰랐다. 그래도 마을 우지가미 님의 예대제(例大祭, 일본의 신사에서 1년 중 정해진 날에 치르는 큰 제사-역주) 때에는, 그 사당에도 신주가 공양되었다. 그것이 그 사당에서 이루어지는 유일한 행사였다.
- 키요코는 심신이 모두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행방불명되었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일주일 전 해질녘, 산의 무너져가는 돌계단 근처를 지날 때에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시야가 깜깜해졌다. 정신이 들고 보니 사당 앞에 쓰러져 있었고, 모르는 사이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여우에게 홀렸다"라든가 "산신의 짓이다"라며 저마다 수군거렸다. 다만 키요코가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 소문도 점차 사라져 갔다. 카미카쿠시를 당한 아이는 드물게 발견된다고 해도 대개는 반쯤 실성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몸뚱이는 멀쩡해도 정신이 망가져버린다. 그런 아이들에 비하면 키요코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었다. 모가가 마을의 유력자였던 점도 있어서 묘한 소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 그렇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마을 사람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소문을 듣게 된다.
"아무래도 그 집 딸이 아이를 뺀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체 그 아비는 누구인가"라는 범인 찾기가 마을 전체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용의자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마을 남자가 아니라 외지인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외지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내,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기묘한 소문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비는 산신이 틀림없다."
- 모 가는 침묵을 지켰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용인들에게는 지금까지 이상의 함구령이 강요되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디에서랄 것도 없이 키요코의 생활은 새어나갔다. 그것은 새로운 소문이 되어서 마을 안에 퍼졌다.
"배가 불러옴에 따라서 머리가 이상해지고 있다. 그래서 불쌍하게도 끝내 창고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
- 이윽고 키요코는 창고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였다. 산후조리가 끝난 뒤에 키요코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조모도 모르는 듯하다.
아이는 이름도 붙지 않은 채로 나이 든 여자 고용인에게 맡겨져 창고 안에서 키워졌다. 출산 시에 한 번 울었던 이후로는 전혀 울지도 웃지도 않아서, 돌보는 여자 고용인들이 기분 나쁘다며 잇따라 일을 쉬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는 네 살이 되어서도 걷거나 말을 하지 못했기에 심신에 심한 장애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 그런데 어느 날의 해질녘, 갑자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카미카쿠시가 아닐까 하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모 가의 고용인들이 총동원되어 수색한 결과, 산신 사당 앞에서 자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한 걸음도 걷지 못했을 텐데, 유아에게는 절대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산의 돌계단을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걷다가 넘어졌는지 이마가 쩍, 하고 깨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이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 고용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아이는 갑자기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디어디 집의 지붕 위에서 춤추는 것이 있다."
그것이 첫 말이었다. '어디어디'란 것은 마을에 사는 모 씨의 집이었는데, 그날 밤에 주인이 갑작스런 고열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아이의 말을 들었던 자들은 모두가 섬뜩하게 생각했다. 다만 아직 이때까지는 우연으로 여기고 있었다.
- 그러나 그 뒤에도 아이는 예언처럼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계속 말했다. 그것도 그 전부가 섬뜩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았다.
"어느어느 언덕을 기어가는 것이 있다."
낙석 때문에 절벽 아래에서 마을 사람이 다쳤다.
"마을 축제에서 벌레를 먹는 것이 있다."
마을 축제 뒤에 마을 사람 여럿이 복통을 호소하며 드러누웠다. 집단 식중독 같은 것이었을까.
"어디어디 연못에 가라앉는 것이 있다."
문제의 연못에서 마을 아이가 빠져 죽을 뻔했다.
"어디어디 인근을 방문하는 것이 있다."
그 지역에서 한집 씩 순서대로 노인이 숨을 거두어 줄초상이 났다.
"어느어느 소나무에 매달린 것이 있다."
마을에서 유명한 소나무에 떠돌이 약장수가 목을 맸다.
- 당주가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요치는 다섯 살 무렵부터 수개월에 한두 번 꼴로 마을 여기저기로 외출을 나가게 되었다. 물론 수행원도 함께였다. 하지만 이 역할을 모두가 싫어했다. 마을 유력자인 모가 출신이었으므로 마을 사람들도 겉으로는 요치를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참으로 섬뜩한 예언을 하는 아이라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꺼렸다. 수행원은 그런 마을 사람들의 양면성을 물론 알고 있다. 결코 자신을 향하는 감정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역시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요치와 함께 산책하는 것만으로 울적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이 수행원 역할을 모두가 두려워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아이들도 부모에게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당사자를 눈앞에 두면 놀리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하고 싶어진다. 그런 아이들 중에 그 '피해자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헛간에서 태어난 헛간순이."
"아비 없는 호로자식. 마물의 아이. 사토루의 새끼."
"네 어미는 미친년.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아무리 부모에게 주의를 받았더라도 어린아이들은 가차 없다. '아비 없는 호로자식'은 개인적으로도 차별어 이상 가는 심한 모멸의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대성을 생각해서 일부러 사용했다. '미친년'도 마찬가지다. 독자의 양해를 바란다.
'사토루'라는 것은 요괴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조모에게 들은 다른 옛날이야기에서 '괴물 사토루'가 나왔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 밤에 산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데, 사토루라는 괴물이 나타나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괴물은 외눈박이었다. '기분 나쁜 녀석이 나타났구먼'이라고 나무꾼이 생각하고 있으려니. "너는 지금 기분 나쁜 녀석이 나타났구먼, 이라고 생각했지?"라고 괴물이 말했다. '우와, 어떻게 알았지?'라고 나무꾼이 놀라자, "너는 지금 우와, 어떻게 알았지,라고 생각했지?"라고 괴물이 말했다. '뭐지, 이 녀석은? 무서워!'라며 나무꾼이 떨자, "너는 지금 뭐지, 이 녀석은? 무서워,라고 생각했지?"라고 괴물이 말했다. '안 되겠다. 도망치자'라고 나무꾼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려 했지만, "너는 지금, 안 되겠다. 도망치자,라고 생각했지?"라고 말해서 도망칠 기회를 잃고 말았다.
- 이 괴물은 인간의 사고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해도 곧바로 맞춰버린다. 이 상태가 반복되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가고, 이윽고 폐인이 된다. 사토루는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 어쩔 도리가 없어진 나무꾼이 아연실색하고 있는데, 파박! 하고 갑자기 모닥불의 장작이 터졌다. 사방으로 튄 그 파편이 우연히 사토루의 외눈에 닿자, 괴물은 깜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인간이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갑자기 하는 무서운 생물이다"라고 말하며 도망쳤다. 이리하여 나무꾼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사토루'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깨달을 '오(悟)' 혹은 '각(覺)' 자를 쓴다고 한다. 마을 아이들이 이야기한 '사토루의 새끼'란 모가의 요치가 지닌 일종의 예지능력을 야유한 표현이 틀림없다. 독심술과 예지는 전혀 다른 현상이긴 하지만, 당시의 마을 아이들에게는 구별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 험담을 듣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요치는 묵묵히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 때는 수행원이 마을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다만 말로만 호통칠 뿐, 결코 진심은 아니다. 그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기에 점점 요란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심술이 요치의 산책 때마다 이어졌다. 그때마다 험담을 하는 몇 명의 마을 아이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대개 같은 4인조가 잠복하고 있다가, 나무나 바위 뒤편에 숨어서 놀려댄다. 때로는 조약돌이나 나뭇가지도 던졌지만, 일부러 빗나가게 던지는지 맞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수행원이 방패가 되는 것을, 아마도 마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물론 어디에 가더라도 수행원이 함께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치의 곁에 있으면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어느어느 집의 연못에서 수많은 개구리가 출몰한다.
강가에 수많은 물고기 시체가 떠밀려온다.
카마이타치(갑자기 피부에 낫으로 베인 듯한 상처가 나는 현상. 옛 일본에서는 족제비의 짓이라고 믿었다-역주) 비슷한 현상이 마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몇십 마리나 되는 새가 갑자기 하늘에서 죽은 채로 떨어진다. 일몰 직전의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사람의 형체와 만난다. 어두운 밤이 되면 "와앙" 하는 무서운 우는 소리가 마을을 쓸고 지나간다.
뭔가 변고가 일어날 때마다 요치의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마을에 늘어났다. 다만 모 가까지 불만을 제기하러 갈 정도의 담력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령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당주의 분노를 사서 쌀쌀맞게 쫓겨나는 결말을 맞았다.
"요치 때문이라는 증거라도 있는가!"
그런 호통을 들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은 있었지만 요치의 힘으로 재기했다. 그래서 당주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조금씩이었지만 확실하게, 사업은 명백히 기울기 시작했다. 기사회생을 노린 대책도 전부 실패했다. 이렇게 모 가는 천천히 몰락해 갔다. 상당한 부채를 떠안게 되어도 당주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요치에게 의지해서 한몫 벌었던 과거의 성공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 무엇보다 섬뜩했던 것은 모 가의 쇠퇴와 함께 그녀의 용모가 급속히 쇠해갔다는 소문이었다. 요치의 믿기지 않는 노화가 그대로 집안의 성쇠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직 십 대 소녀일 텐데, 그녀의 얼굴은 마치 노파 같았다고 한다.
- 이 이야기를 조모에게 들었을 때 필자는 아직 철없는 어린애였다. 따라서 모 가의 사업이란 말을 들어도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요치의 특수한 능력 덕분에 모 가가 큰돈을 벌었다고 이해했을 뿐이다. 그래도 조모가 계속 이야기한 말은 진심으로 오싹했다.
"마성의 존재란 말이다. 한두 번은 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일이 생기게 해 준단다. 그렇게 추어올려주다가 갑자기 밑바닥으로 뚝 떨어뜨려. 정말로 사악한 존재는 이것에 몇 년씩 시간을 들이지. 당사자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 "따라서 신케이 저택의 주민도 그 소년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요컨대 그 원고는 강령회 같은 자리에서 죽은 자인 소년이 영매사의 입을 빌어 말한 이야기의, 말하자면 속기록이었던 게 아닐까...라고 뭐, 그렇게 생각했지."
"소년의 그 이후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용케 거기까지 추리하셨군요."
계속 청취의 자세를 취하고 있던 미마사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무리지. 게다가 추리라고 해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 "우선 자네 조부님의 도락 중에 전국의 유령의 집 탐색과 강령술 실천이 있었던 것. 속기원고의 정리본이 끼워져 있던 외국책의 타이틀이 <The Spiritualism of Haunted Houses (흉가의 심령술)>였던 것. 소년에게서 체험담을 듣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 듯하다는 것. 이 원고에서는 상당히 손질이 가해져 있는 듯 보인다는 것. 속기원고의 성립 자체가 아주 특이하다고, 자네가 일부러 이야기했던 것."
"그렇군요."
- "처음부터 당주는 결계 같은 기능을 지닌 감옥의 격자를 설치했던 걸까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어. 우연히 격자라는 물건이 그런 역할을 발휘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파악하면, '격자' 저편에 있는 정체 모를 존재...라는 공통점이 생겨나지."
미마사카는 조금 생각하는 몸짓을 하더니 말했다.
"그런 경우, 이번에는 두 번째의 '이차원 저택' 이야기만이 붕 뜨게 됩니다만, 여기서의 '격자'란 기묘한 노래와 옷의 무늬니까요."
"그 저녁에 있다고 소문이 났던 '열리지 않는 방'이 실은 감옥이었다고 해석하면 여기에도 격자가 있다는 얘기가 되지."
"열리지 않는 방이 감옥이었다는 근거는요?"
"신케이 저택의 '신케이'란 아마도 '신경에 거슬린다'라고 할 때의 그 신경을 뜻하는 신케이(神經)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야."
"와레온나가 쿠루이메였다..."
- "메이지 유신은 많은 것들을 불러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이 문명개화지. 옛 일본의 습속이나 신앙이나 미신 등은 전부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되었어. 귀신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보이는 건 너의 정신, 신경이 이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게 되었어. 모든 것은 뇌에 병이 있어서라는 얘기지. 산유테이 연초(三遊亭 円朝, 메이지 시대의 라쿠고(落語) 대가. 에도시대의 괴담들을 바탕으로 괴담집을 썼다-역주)의 괴담집인 <신케이카사네가후치>의 '신케이'는 실은 이 '신경'을 가리키고 있어. 다만 엔초는 <신케이카사네가후치>의 첫머리에 그러한 정신론자를 야유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민중 레벨에서는 그러한 계몽이 지방에 퍼져갔다. 그래서 소년이 살던 마을에서는 쿠루이메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 있는 저택을 신경 저택, '신케이(神經) 저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은 역시나 곤란하다. 그래서 한자 발음이 같으면서 그럴싸한 단어인 '신케이(晨鷄)'로 바꿨다...라는 말씀입니까."
"아마도."
비약된 추리지만 상황 증거는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 "게다가 언뜻 보기에 다른 네 가지 이야기와는 따로 떨어진 듯 보이는 두 번째의 '이차원 저택'과 가장 강하게 연결되는 것이 다섯 번째의 '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이니까.”
"아, 이마의 상처인가요."
"와레온나의 이마에는 처음부터 커다란 금이 가 있었어. 한편 요치는 어릴 적에 이마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고, 출산했다고 여겨진 뒤에 갑자기 가면을 쓰게 되었지."
"... 그렇군요. 모 가의 요치가 쓴 가면이 신케이 저택의 와레온나에게 전해졌다고 생각하면, 두 개의 이야기는 연결되지요. 와레온나란 그 가면을 쓴 모습이었다..."
"기모노와 머리카락은 지저분한데 얼굴만은 아름다웠다고 ... "
- "애초에 긴키의 '키(畿)'는 고대의 수도를 가리키고 있어. 옛 일본의 나라와 오사카, 교토에 수도가 세워졌기 때문에 그 '키'에 '가깝다'라는 의미에서 긴키(近畿)지. 그곳에 현재의 미에현과 시가현, 와카야마 현과 효고 현을 더한 지역을 긴키 지방이라고 부르고 있지."
"그렇다면 쿠로다 씨가 이야기한 '긴키'의 '키'란 현대의 수도인 도쿄이며, 문제의 집이 위치한 치바 현도 도쿄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도 긴키 지방이라고 하자면 긴키지요'라고 말했다, 그런 말씀입니까."
"물론 단정할 만한 단서는 없어. 하지만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연결되어 있던 세 집에 또한 집을 추가할 수 있게 돼."
- "오사키 가하고는 반대야."
"또 반대입니까."
미마사카는 놀라면서도 어이없다는 눈치였지만, 곧 내 해석을 깨달은 듯 말했다.
"그렇군요. 그 학생이 '출경(出京)'이란 말을 썼었죠. 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도쿄에서 지방으로 나가게 된 것을 한탄하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텍스트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학생이 대학에서 지망한 전공은 인문학부의 사학과였던 게 아닐까. 본가에서 가지고 온 책에는 역사 관련이 많이 있었어."
| [미쓰다 신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1) | 2026.08.03 |
|---|---|
| [미쓰다 신조] 산마처럼 비웃는 것 (0) | 2026.08.02 |
| [미쓰다 신조]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0) | 2026.08.01 |
| [미쓰다 신조] 노조키메 (0) | 2026.07.30 |
| [미쓰다 신조] 붉은 눈 (0) | 2026.07.29 |
| [미쓰다 신조] 작자 미상 上/下 -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 (0) | 202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