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미쓰다 신조 / 심정명
출판 : 비채
출간 : 25.08.25
몸이 무겁고 자도 자도 졸리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하루 정도 심하게 앓고 끝나나 싶었던 감기가 긴 무기력증과 노곤함을 남기고 갔다.
... 잠깐.
나는 원래도 그렇지 않았던가...?
아니, 기분 탓일 것이다.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과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일단 나는 <하에다마> - <염매> 순이라고 본다. 이유는 더 나중에 발표된 <하에다마>에서 <염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신조는 작품마다 직전 또는 직후의 다른 작품을 언급하기를 즐기는데, <하에다마>에서는 부름산만 나올 뿐 가가구시 촌이나 마귀 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하에다마>는 고라 지방에 관한 네 가지 괴담으로 시작한다. 네 괴담은 각각 바다, 망루, 대숲, 뱀길에서 일어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는 묘하게 바다, 하늘, 산, 땅을 오간다는 마물 네 자매를 연상케 한다. 결국 모두 똑같은 '하에다마' 님이지만 어디로 갔느냐에 따라 하에다마 님이 되기도, 하에다마· 님이 되기도 하는 걸까...
먼 바다로 흘려보내는 보타락도해 공양과 하에다마 님 축제는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과도 이어진다.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하는 절박함, 지금보다는 나아지길 바라는 절망에 가까운 희망.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차라리 괴담이길 바라게 되는 풍습으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은 한국 기준 11년 만에 발간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최신권이었다.
출간 소식을 꽤 늦게 알게 되었지만, 알게 되어서 감사했다. 이 책을 발견한 덕분에 잊고 있던 '미쓰다 신조'를 떠올리고 다시 읽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알게 되면 소비할' 정보는 일단 '알려져야' 힘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마게팅과 홍보는 소비자에게도 필요한 활동이 아닐까. 넘쳐나는 홍보와 광고의 물결로 피로하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감격의 복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고로.
비채 출판사의 출간 예정작 목록에 미쓰다 신조의 <흉조처럼 꺼리는 것>과 <기명처럼 바치는 것>이 들어가 있다.
교고쿠 나쓰히토의 <전 항설백물어>까지도.
많은 기대와 관심이 모여 예약구매와 구매가 되어 다음 시리즈 출간으로까지 이어지길.
도우토도, 도우토도, 도우토도, 동동...
- 안타깝게도 고스케의 집에는 조각배를 새로 장만할 여유 같은 건털끝만치도 없었다. 가족이 먹고사는 게 고작인데 새 배라니 허황된 꿈이다.
"고기잡이라 해봤자 어차피 문어나 잡으니 말이지."
이럴 때 고스케는 으레 이렇게 중얼거리며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 설사 번듯한 조각배를 손에 넣은들 그것을 활용할 만한 어업은 공교롭게도 이 고장에서는 결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마을은 바다에 면해 있었다. 남쪽 면은 전부 바다다. 하지만 뿔처럼 튀어나온 두 개의 곳에 둘러싸인 데다 해변에서 난바다까지 암초지대가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대형선을 가질 수 없었고 충분한 크기의 항구도 짓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어업도 앞바다에 한정된다. 자연히 갯바위 어업이 중심이 되는데, 그중 하나가 문어잡이였다. 특히 초가을에 잡히는 '뼈 없는 문어'는 마을 어부들에게는 무척 귀중했다. 바다가 날뛰기 시작하는 겨울철이 되기 전에 어획량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필사적이었다.
- 옛말에 "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마라"라고 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며느리한테 먹이기는 아깝다는, 며느리 구박의 일종이다. 완전히 같은 의미로 "여름 문어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마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 반대가 뼈 없는 문어다. 즉 맛있지 않다는 말이다.
문어에 뼈가 없는 것은 당연할진대 이런 이름이 붙은 것도 아마 미각 때문일 것이다. 문어는 여름이 끝나는 시기가 되면 해안의 얕은 여울로 와서 산란을 한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산란 후에는 영양부족에 빠진다. 이것이 뼈 없는 문어에 해당하니, 절대 맛있을 리 없다. 분명히 말해 맛이 없다.
그렇다 한들 도쿠유 촌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고마운 음식이었다. 고스케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단, 아직 어린 그에게는 이 문어잡이조차 버거웠다. 바다에 조각배를 띄우는 것만으로도 늘 필사적으로 애써야 했다.
- 마을 어부 대다수는 갯바위 어업밖에 못하는 스스로를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워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난바다로 배를 젓는 사람이 수년에 몇 명씩은 반드시 나오지만 누구든 보기 좋게 실패한다. '다이난 大難'이라 불리는 난바다 쪽 해역에는 매우 복잡한 해류가 지나고 있었다. 조각배로 거기에 나가는 것이니 처음부터 성패는 뻔했다. 살아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고, 돌아오지 않은 어부도 벌써 여럿이다. 그러다 보니 다이난 구역에서도 어부의 조난이 특히 많은 곳을 언제부터인가 '과부터'라 부르게 됐다.
- 난바다에서의 무모한 고기잡이에 비하면 앞바다에서 하는 갯바위 어업은 안전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고스케에게는 드넓은 바다에서 하는 과혹한 어업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배가 낡아서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숙함 때문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르쳐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미 없다. 형들은 타지로 고용살이를 나가서 벌써 몇 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마을 어부들에게 청하면 가르쳐주지만, 당연히 육친 같을 수는 없다 보니 마음고생이 상당했다. 마을 전체가 가난하고 다들 언제나 굶주려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어 잘 잡는 법을 전수받기도 어지간히 어려웠다. 결국 방해가 되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 마을 사람들이 기아로 괴로워할 때면 하에다마 님이 당식선 唐食船을 보내주신다.
더 어릴 적에 고스케는 이 전승을 믿었다. 당식선이란 먹을 것을 가득 싣고 바다 저편에서 온다는 전설의 배다. 여름이 슬슬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추위와 굶주림이 도래하는 겨울이 되기 전에 그 배는 나타난다고 한다.
지금은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진즉에 당식선이 나타났을 것 아닌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건 오지 않는다. 대신 이 시기에는 마을에서 어쩐지 여자아이가 없어진다. 매년은 아니지만 결코 드문 일도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도 언짢은 얼굴로 "살기 위해서다"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여자아이는 살기 위해 사라진 건가? 하지만 대체 어디로, 어째서, 왜...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솟아났다.
- 게다가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다 해도, 이 시기에는 '가선 家船'이 돌아와서 마을 인구가 늘어난다. 가선이란 글자 그대로 배 자체를 집 삼아 바다에서 사는 어민을 가리킨다. 배가 집이고 집이 배인 것이다. 평소에는 해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하지만, 백중날이나 정월처럼 특별한 시기에는 일단 출신지로 돌아오는 이들이 많다. 그것이 도쿠유촌에서는 폭풍우가 들이치기 전인 딱 지금 시기에 해당한다. 돌아온다고 한들 먹을 것이 없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
- '하에다마 님 주변은 절대 안 된다'라고 정해져 있을 뿐, 어업이 금지된 영역이 명확하지는 않다.
하에다마 님 근처에 구역이 있는 어부들은 무척 곤란했다. 금어 구역을 침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하에다마님 가까이 갈수록 어획량은 늘어난다. 그래서 누구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고기를 잡았다. 그렇다 한들 이 행위는 대단히 위험했다. 늘 배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까딱 잘못하다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하에다마 님의 신역 神域에 들어가고 만다.
- 한 어부는 갯바위 어업에 열중한 나머지 조각배 조작을 소홀히 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퍼뜩 바다에서 얼굴을 들었더니 하에다마 님께 꽤 다가가 있었다. 황급히 돌아가려 하는데 수면에 두둥실 떠 있는 희고 동그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찬찬히 뜯어보고 있자니 그것이 어부를 물끄러미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눈 코 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사람의 잘린 머리가 해수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 같다.
오싹해진 어부는 황급히 조각배 방향을 돌려서 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필사적으로 노를 젓는 동안에도 그것이 내내 응시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부는 결코 눈길을 주지 않았다. 혹시라도 쳐다봤다가는 그것이 쫓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사람의 잘린 머리 같은 이 새하얀 것을 하에다마 님 근처에서 목격하는 어부가 그 뒤에도 나왔다. 마을 노인들은 "그건 '망것'임이 분명해"라며 무서워했다. 바다에서 죽은 인간이 성불하지 못하고 나타나서 동료를 늘리기 위해 바다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것이 망것이다.
- 물이 얕은 암초지대가 이어지는 도쿠유 촌 앞바다에서는 하여튼 난파되는 배가 많다. 그중에는 하에다마 님께 선체 옆구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무참하게 침수되어 가라앉는 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승선해 있던 사람은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
"하에다마 님을 모시는 건 망것을 잠재우기 위해서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뒤에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가르쳐주었다.
"마을을 굶주림에서 구해주시는 당식선 주위에도 실은 망것이 우글우글 달라붙어 헤엄치고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야 된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 물어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너는 명심해 두라고 할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좋게만 들리는 이야기도 때로 그 뒤엔 다른 면이 있는 법이야."
- 하에다마 님 암초 부근이 절호의 어장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장소라는 것도 할아버지의 이 말에 딱 들어맞았다.
나한테는 구역이 없어서 다행이야.
하에다마 님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순간만큼은 고스케도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구역이 하에다마 님 근처여서 더욱 그랬다. 집안의 구역이 남아 있다면 굶주릴 걱정도 조금은 덜했을 테지만 무서운 건 역시 무섭다.
- 그런데도 지금 고스케는 모르는 사이에 뿔위곳을 넘어 만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 고즈만과 다이난 사이의 해역은 '삼도장'이라 불린다. 삼도천 강가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이듯 삼도장도 평온한 만 안쪽과 위험한 다이난의 딱 경계선 같은 공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기다란 곳 반대편에 왔을 뿐인데 마치 드넓은 바다에라도 나온 듯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고즈만과 마찬가지로 이 부근 수심도 아직 얕을 텐데, 엄청나게 깊은 바다 위를 조각배로 표류하는 듯 조마조마하다. 무엇보다 북서쪽 방향에 솟아 있는 절벽의 모습은 별세계라 착각할 정도로 기괴했다.
- 불안해져서 조각배 뒤쪽을 올려다보니 뿔위곶 끄트머리에 서 있는 망루가 고스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마을 사람의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겠지만,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망루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습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방 절벽 위에 외따로 선 에비스 님 사당을 우러러보고 있는 편이 차라리 더 나았을지 모른다. 다만 문제는 그 가파른 암벽 아래편에 있었다. 두껍고 검은 판자를 뜯어서 몇 장씩 포개어놓은 듯한 암벽과 바다가 접하는 밑부분에, 구멍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결코 크지는 않지만 조각배라면 넉넉히 들어갈 만한 동굴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다루미 동굴'이라 불리는 그 동굴 안에 난파선 사망자들의 주검을 마을 사람들 손으로 매장했기 때문이다.
- 마을에 묘지가 없지는 않다. 매장지가 따로 있음에도 난파선 사망자는 전원 다루미 동굴에 묻는 것이 규칙이었다. 타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앙화를 겁냈기 때문이다. 특별한 연유가 있는 고인들을 자신들의 조상과 함께 공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새로운 매장지로 다루미 동굴을 선택했고, 이와 동시에 하에다마 님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 그런 이야기를 고스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서 여러 번 들었다. 단, 늘 똑같은 내용은 아니었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조금씩 어려워진다. 그리고 무서워진다.
"하에다마 님의 진정한 무서움은 조만간 싫어도 알 날이 올 게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그때의 얼굴이, 되도록이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달갑지 않았다. 평소의 할아버지는 인자해서 아주 좋아했지만 매년 하에다마 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만은 마치 딴 사람처럼 꺼림칙했다. 어린 고스케가 반드시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 할아버지는 다루미 동굴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고스케는 그 이야기를 딱 한 번 들었다.
동굴 안은 횃불 불빛이 없으면 칠흑같이 어둡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소나무 줄기나 뿌리로 만드는 보통 횃불이 아니라 대나무 횃불이 쓰인다. 죽세공으로 생긴 대나무 찌꺼기를 단단히 묶어서 한쪽 끝에 ...
- 그것에게는 해저의 어떠한 기복도 전혀 문제가 아닌 듯했다. 아무리 성가신 암초가 앞길을 막아도 쉽사리 넘으면서 계속 나아간다.
아까 그 잘린 머리.
그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고스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간신히 달아났다고 생각했건만, 실은 바닷속에서 줄곧 쫓아오고 있었음을 알고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것에게는 목 아래가...
제대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린 머리뿐인 존재도 무섭지만, 사람을 닮은 형태인데 사람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 쪽이 더 무시무시할지 모른다.
그런 정체 모를 무언가가 바다 밑을 흔들흔들 걷고 있었다. 이쪽으로 육박해 오고 있었다.
빨리 달아나야 돼.
이번에는 굳어지지 않고 대단히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갈고랑이장대를 바닷속에서 올려 바닥에 둔 뒤 노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거기서 퍼뜩 당황했다.
어디로 달아나야 되지?
평소 같으면 해변을 향해 필사적으로 저어 가서 서둘러 조각배를 뭍에 끌어올린 다음 집까지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무시무시한 사태를 초래하면 어떡하나.
저것이 집까지 따라오면...
아무리 그래도 바다에서 나가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러나 저것은 만 안쪽으로는 못 들어올 거라는 판단이 이미 틀렸다. 같은 실수를 ...
- 그만 유귀버섯을 따고 말았다. 암귀버섯은 맛있지만 유귀버섯에는 독이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둘은 꼭 닮았다. 평소에 버섯 채집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간이 가능하다지만 어부인 할아버지에게는 무리였다. 덕분에 고스케의 어머니가 유귀버섯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실수를 깨달은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사안초를 달여 먹였다. 사안초는 약초의 일종인데 단독으로 쓰면 독이라 여겨진다. 다른 식물과 섞음으로써 겨우 사용 가능하다. 수면제도 되지만 취급을 잘못하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였지만 할아버지는 사안초만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결과 유귀버섯 독이 중화되어 어머니는 살아났다고 한다.
- 독으로 독을 없앤다.
그런 속담이 있는 것을 할아버지의 이 이야기로 알았고, 하에다마 님을 본 순간 떠올린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물론 고스케도 주저했다. 까딱하다가는 독이 배가 되어 스스로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하필이면 어릴 때와 재작년 이렇게 딱 두 번, 가을 초입에서 초겨울에 걸쳐 거센 바람이 부는 한밤중에 하에다마 님 쪽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포효소리에 잠에서 깬 경험이 그의 뇌리에 확 되살아났다.
오오오, 으아아.
이런 비명 소리 같은 굉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겁에 질린 고스케는 엉엉 울었다.
- 달아나듯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그날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던 어부들뿐이었다.
"하에다마 님뿐만 아니라 다루미 동굴에도 절대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어."
"정말로 무서운 곳이야."
"갯바위 어업만 제대로 하면 그렇게 걱정할 일도 없을 게야."
고스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다들 마음대로 떠들고 있다.
이윽고 마을 어부들을 통솔하는 사람이 다시금 주의를 환기하여 그날 고기잡이는 중지됐다. 불만을 터뜨리며 고스케 탓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각배를 다시 띄우는 어부는 전무했다. 하나같이 하에다마 님 암초를 몹시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다음 날부터 고스케는 아예 고기잡이를 하러 나갈 수 없어졌다. 고즈 만에서는 하에다마 님 가까이 가지 않고, 만 바깥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조각배에 탈 수가 없었다. 설사 타고 바다로 노 저어 나간다 한들 도저히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다 밑에서 새하얀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런 상상을 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더는 무리였다. 집에서 해변까지는 갈 수 있어도, 조각배 옆에 서봤자 거기서 발이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보다 못한 나이 많은 어부가 고스케에게 말을 건넸다.
"어느 지방 어부든 바다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면 대개는 길조라고 생각들 해. 당장은 무리라도 고기를 잡고 돌아가는 길에는 꼭 건져주겠다고 하고 그 대신 대어를 약속받는 거지."
"죽은 사람한테요?"
놀라서 되묻는 그에게 어부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비스 님은 알지?"
"사사메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요."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당식선을 불러오는 고마운 신이시지. 하지만 원래는 보물선을 타고 계시는 칠복신 중 하나야."
당식선은 사사메 신사의 유래에도 기록돼 있다. 음식을 가득 싣고 이국에서 찾아오는 배를 말한다. 그 배를 불러들이는 것이 에비스 님이었다.
- "그와는 별개로 어부가 바다에서 발견한 표류 시체도 '에비스'라 부르며 섬기는 풍습이 각지에 있단다."
"대어를 가져다주니까요?"
"그래, 그렇다고 들었다.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죽은 사람을 발견한 해역에 돌아가면 잘 기다리고 있다더구나."
"... 그 죽은 사람이요?"
단박에 믿을 수는 없었지만 어부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네가 봤다는 것도 근본을 따져보면 '에비스'다. 즉 대어를 약속해 주는 존재야. 그렇게 생각하면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는 게 조금 아깝다 싶지?"
- 어부의 이야기 덕분에 고스케는 가까스로 조각배에 탈 수 있었다. 그렇다 한들 처음에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기가 두려웠다.
갈고랑이장대 끝의 빨간 천을 흔들고 있으면 해초 속에서 뼈 없는 문어가 아니라 그 흰 얼굴이 쑥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나서 좀체 집중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어잡이는 순조로웠다. 신기할 정도로 척척 잡힌다. 장소를 옮기지 않았는데도 처음에 조각배를 세운 뿔위곳 근처에서 눈 깜짝할 새에 어롱이 가득 찼다.
그게 에비스 님이었다니...
고스케는 잠깐 휴식하면서도 여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어를 만났다. 그 증거가 가득 찬 어롱이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어롱을 들여다보다가 뼈 없는 문어 사이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흰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며칠 뒤 고스케는 형들과 똑같이 고용살이를 하러 나갔다. 세월이 지난 뒤 마을에 돌아오는 일은 있었어도 다시는 바다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 네 가지 괴담, [창해의 목: 에도시대]
- 조넨은 도쿠간사 竺磐寺 산문 山門에서 나와 긴 돌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북쪽 뒤편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한 구에 산이, 남쪽 전방에는 ...
- 마을에서는 육상으로 짐을 운반하는 일이 과혹하기 그지없었다. 짐꾼이라도 고용하면 모르지만 일당이 비싸다. 마을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남은 것은 남쪽의 트여 있는 바다인데, 조각배 밖에 쓸 수 없어서야 대량 운송은 무리다. 실로 사방팔방이 다 막힌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생업은 옛날부터 하나같이 어정쩡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면에서 농민들이 경작하는 계단식 논밭도 직인들이 가내에서 하는 죽세공도, 어부들이 날씨가 거친 초가을부터 초겨울에 해변에서 하는 자염도, 그리고 앞바다의 갯바위 어업도, 결코 그것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진정한 농민도, 죽세공 직인도, 어부도 없었던 셈이다. 누구나 여러 가지 일을 겸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우선하기에 사원은 있어도 묘지는 없다. 매장에 적합한 토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미 계단식 논밭을 일구었다. 고인의 평안을 추구하려면 그전에 살아 있는 사람의 안녕이 필요하다.
그러면 죽은 마을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매장되는가.
- 뿔밑곳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간 곳에 있는 난바다에 오우 섬이라 불리는 무인의 땅이 있다. 별칭이 묘지섬인 데서 알 수 있듯 여기에 도쿠간사의 묘지가 있었다. 아니, 섬 일부를 매장지로 쓴다기보다 섬 자체가 무덤이었다.
오우 섬을 이용하는 것은 도쿠유 촌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두꺼운 벽 같은 바위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 옆에 있는 시아쿠촌도, 또 그 동쪽 옆에 있는 이시노리 촌도, 이 섬에 묘지가 있었다. n
- "조만간 때가 되면 싫어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주지의 본심 같았다.
"제가 미루어 헤아리는 것은 도저히 무리입니까?"
그래서 조넨도 구태여 물었는데, 주지는 잠깐 침묵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면 모르지는 않을게다."
하지만 침묵하는 동안 주지의 표정이 묘하게 무서웠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했을까.
틈만 나면 우선 이 점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무서운 얼굴'에서 출발한 연상을 통해 이 마을에는 '무서운 장소'가 꽤 많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 마을을 내려다보는 험준한 구에 산.
마을 난바다에 떠 있는 매장지 오우 섬.
대숲 미로가 있는 사사메 신사의 대숲 신사.
고즈만의 거대하고 둥근 바위를 모신 하에다마 님.
에비스 님 사당 아래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다루미 동굴.
- 바로 떠오른 것만도 이만큼이나 존재한다. 게다가 구에 산에는 산귀가 얼쩡대고 오우 섬에는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며 대숲 신사에는 마물이 나오고 하에다마 님과 다루미 동굴에서는 망것이 바닷속을 걸어 다닌다... 하고 사람들은 남몰래 두려워했다.
헤이베이 정에도 마의 장소는 있었지만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도쿠유 촌에 이만큼이나 점재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 조넨은 이 의문을 골똘히 파고들다가 퍼뜩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인가?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싫든 좋든 모두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 도쿠유 촌 사람들은 그렇게 생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다른 마을보다 촌 내부의 단결력이 강해졌다. 거기에는 도쿠간사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래서 이 마을은 신불분리와 폐불훼석의 외압에도 결코 영향을 받지 않은 것 아닌가.
조넨은 당초에 느끼던 불안이 싹 사라지고 가슴에 걸린 것이 내려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곧장 새로운 의문이 솟았다.
- 도쿠간사 주지나 사사메 신사의 신관 그리고 마을 노인들에게 이 땅에 전해지는 갖가지 괴이한 존재에 대해 듣다가 그는 묘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사메 신사의 제신은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와 에비스 님이다. 이 신사가 모시는 하에다마 님도 실은 에비스 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부들 사이에서 바다에서 발견된 주검은 '에비스'라 불린다. 이 '에비스'가 성불하지 못하고 귀신이 되면 바다에 출몰하는 망것이 된다고 한다. 이 망것이 오우 섬에 건너가면 밤중에 날아다니는 도깨비불로 화한다는 듯하다. 이 도깨비불이 육지까지 날아와 대숲에 들어가면 마물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마물이 구에 산에 올라가면 이번에는 산귀로 변한다고들 하는 것이다.
- 난바다까지 암초가 많은 얕은 물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가는 바닷속 바위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운이 나쁘면 죽을 것이다.
대체 뭘 위해...
나는 이런 위험에 몸을 맡기고 있는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머리가 혼란스러운 사이에 널빤지 끝에 도착했다.
거기서 무릎을 꿇고 정좌하는 것이 또 대단히 무서웠다. 평형감각을 잃고 단숨에 추락한다. 이번에는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선상태에서 우선 쭈그렸다가 양쪽 무릎을 동시에 짚으면서 정좌한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일련의 동작이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의식하면 할수록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정말로 알 수 없어진다.
... 생각하지 마.
무심결에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날의 수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듯 정좌한다. 그뿐이다.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 일상적인 장면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을 들이면서도 조넨이 정좌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평소 수행한 덕택임이 분명하다. 그에게 자각은 없었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주지의 가르침에 구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진정한 고생은 그 뒤부터였다.
전망널 끝에 앉아 서서히 두 눈을 감았지만, 추락의 공포가 노상 머리를 스치는 상태에서 명상 같은 것이 될 리가 없다. 절 본당에서 부처님 앞에 정좌하는 것과는 당연하게도 사정이 전혀 다르다.
- 이래서야 명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념뿐이야.
저도 모르게 눈을 뜨니 저녁 해에 물들어 둔탁하게 빛나는 드넓은 바다가 느닷없이 눈에 들어왔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아서 황급히 시선을 내리자 시야 오른쪽 구석에 다루미 동굴이 보였다.
억지로 두 눈을 감고 머리를 든다.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의도적으로 호흡한다. 한동안 들이쉬고 내쉬고 반복하다 보니 아주 조금은 평상심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사실만으로 커다란 수련을 하나 달성한 셈이다. 분명 신관은 이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천천히 두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적동색으로 반짝이는 창해가 점점 넓어지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전에 본 것과 같은 경치인데 이토록 기분이 다를 수 있나. 완전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저녁 어스름의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사이에 불현듯 조넨의 뇌리에 떠오른 말이 있었다.
보타락도해 補陀落渡海.
수행자가 작은 목조선에 올라타서 그대로 바다 저편으로 떠나는, 몸을 던지는 수행이다. 다만 선내에 음식은 전혀 없다. 또 배에 돛이나 노도 없기 때문에 항해를 전혀 할 수 없다. 배면서도 결코 배가 아닌 존재라 하겠다. 그저 물결의 일렁거림에 따라 떠다니며 일념으로 불로불사의 나라를 지향하고서 성불하기 위함이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강제로 보타락도해를 당하는 수행자도 드물게 있다고 들었다.
- 그런 일만은 절대 겪고 싶지 않다...
모처럼 가라앉힌 마음이 또다시 술렁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조넨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금 고요한 기분을 느끼려 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오른쪽 대각선 아래편이 어쩐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기서 꽤 떨어져 있는 곳에서 왠지 묘한 기척이 느껴진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다루미 동굴이었다. 아까 시야에 언뜻 들어온, 절벽 아래에 입을 벌린 으스스한 동굴이다.
왜...
그런 게 신경 쓰이는가? 머리를 숙인 자세로 왼쪽 대각선 아래에 눈길을 주면 만 반대편에 하에다마 님 암초가 보일 터다. 조금 전에는 우연히 오른쪽에 시선을 주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아주 조금 눈에 들어왔을 뿐인 다루미 동굴이 왜 마음에 걸리는가.
이대로는 명상을 할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넨은 다시 두 눈을 뜨고 고개를 숙여 오른쪽 대각선 아래를 봤다.
그러자 새까맣게 입을 벌린 동굴 구석, 해수면에 닿을락말락한 부근에 뭔가 회색빛을 띤 것이 둥실 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꽤 작게 보이지만 둥글었다. 그런 정체 모를 것이 동굴 출입구 가장자리에 보인다.
저건...
게다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쪽도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들기 시작했다. 망루 전망널 위에 앉은 조넨을 그 영문 모를 무언가가 일념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
- 또다시 뭔가가 방해한다. 지금 막 스스로 내린 결론이 역시 마음에 걸리는가? 아니, 그게 아니다. 저것 자체에 묘한 기시감이 있기 때문 아닌가?
바다를 떠다니는 회색의 둥근 것...
그건 다루미 동굴 안에서 나타났다...
"앗."
조넨은 소리를 내는 동시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주지에게 들은 마을 옛날이야기 가운데 에도시대의 괴담이 있었다. 고스케라는 아이가 조각배로 갯바위 어업을 하러 나갔다가 거기서 괴이한 존재와 조우하는 이야기다.
거기 나온 게...
희고 동그란 사람 얼굴 같은 것이었다. 그게 다루미 동굴 앞 해수면에 둥둥 떠 있는 것을 고스케가 목격한다.
... 비슷하지 않나?
색깔은 흰색과 회색으로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황급히 아래쪽에 눈길을 주지만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모양이다.
하지만...
고스케도 같은 체험을 하지 않았던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고 안심했더니 실은 바다 밑에서 그를 향해 이동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것은 바다 밑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조넨이 앉아 있는 전망널 바로 밑을 지나는 참일 수도 있다.
- 제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는 전망널 위에 누워 있고 주지가 그를 단단히 누르고 있었다.
"이, 이건 대체..."
"겨우 정신이 들었느냐?"
주지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양팔의 힘을 뺐다.
"그, 그럼 아까부터 제 이름을 부르고 양 어깨를 누른 건..."
"나다."
다시 숨을 내뱉으면서 주지가 불평하기 시작했다.
"네가 무턱대고 날뛰어서 까딱 둘 다 떨어져 죽을 뻔했다."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사죄하는 조넨을 일으키더니 주지는 신중한 발걸음으로 그를 망루 오두막으로 이끌었다.
- 해는 진즉에 졌는지 어느새 사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여기서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무사히 오두막까지 돌아간 뒤에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같은 제자를 둬서 나도 정말 고생이구나."
아직도 구시렁구시렁 불평하는 주지에게 싹싹 빌면서도 조넨은 망루에서 겪은 믿을 수 없는 체험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역시 망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명상을 행하는 어려움을 새삼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 제자를 걱정해 상황을 살피러 온 주지의 행동과 문제의 망상이 중간부터 합쳐지는 바람에 이런 사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구해준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은 순순히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조넨의 이야기를 대강 들은 뒤에 주지가 믿을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내가 마을에서 볼일을 끝내고 슬슬 절에 돌아가려 하는데 호라이 씨가 오지 뭐냐. 늘 덤덤하고 무슨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사내가 보기 드물게 겁에 질린 눈치인 거야. 내가 '왜 그러나' 물었더니 곶 쪽을 몇 번씩 돌아보면서 '방금 전에 망루로 흔들흔들 걸어가는 회색빛을 띤 무슨 묘한 걸 봤다' 하고 호소하더구나. 나는 바로 '이거 큰일이군' 생각했지. 그래서 이렇게 올라왔네만..."
-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조넨은 헤이베이 정의 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환속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그에 관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 네 가지 괴담, [망루의 환영: 메이지시대]
- 해독제 장수 다키는 눈앞의 단애절벽에 나 있는 엄청나게 좁은 길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망연히 바라보았다.
설마 구렁이길이라는 곳이 이렇게 지독한 길이었다니...
짊어지고 있던 고리짝을 엉겁결에 내려놓고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이런 이야기를 유키코를 재워준 집의 이미 어부를 그만둔 노인이 슬쩍 들려주었다는 모양인데...
얼토당토않은 할아버지네.
동그란 절단면이 반쯤 이지러진 구멍처럼 보이는 암벽 길을 눈앞에 두고 다키는 투덜거렸다. 정말 그 노인이 여기를 지나가본 적이 있을까? 오래전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냥 유키코에게 했을 뿐 아닌가? 생각해 보면 어부 일을 하던 노인이 이곳을 지날 만한 용건은 한 번도 없었을 것 같다. 자신의 지나친 사려 부족을 그녀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렇다고 해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 짓을 하면 하루를 통째로 허비해 버린다. "그 집 사람들한테 받았어"라며 밀감을 하나 나누어 준, 닷새 뒤에 가이류 정에서 합류할 유키코를 위해서라도 여기는 어떻게든 이겨내야만 한다.
- 게다가 좌우 대나무 상부에는 웬 금줄이 쳐져있는 것 아닌가.
뭔가 모신 곳이라는 뜻인가?
다키는 한동안 출입구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혹시나 하고 나머지 부분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공간 외에는 대나무가 원을 그리듯 자라고 있을 뿐 달리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 안에 대체 뭐가...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들여다보려 해도 빽빽해서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출입구라 여겨지는 장소로 돌아와 봤지만, 역시 새까매서 그 중심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금줄이 쳐져 있는 걸 보면...
대숲 안쪽에 모셔져 있는 건 무슨 신이라는 이야기다. 즉 신사를 수호하는 대숲인 셈일까?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 다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여기서는 참배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고장에 가면 신사나 불각뿐 아니라 도조신(민간신앙에서 마을 어귀, 길 등을 지킨다고 믿는 신)이나 지장에도 꼭 참배하는 마음가짐을 스승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지역 신들에게 여기서 장사를 하겠습니다 하는 인사를 꼭 하여라."
그것이 예의라고 했다. 참배를 등한히 했기 때문에 행상이 통 안 풀린 해독제 장수가 과거에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자신만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망설여졌다. 눈앞에 입을 벌린 대숲 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아무래도 들지 않는다. 금줄을 몇 번씩 올려다보며 여기에는 신이 계신다고 스스로를 타일러도 이상하게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지나치기는 꺼려졌다. 아니, 절대 안 될 일이다. 행상을 하러 간 곳에서는 화장을 금지하고 연애를 금하는 등 해독제 장수의 규칙과 마찬가지로, 스승의 가르침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것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 다키는 금줄 앞에서 인사를 한 다음 주저할 대로 주저하다가 짊어지고 있던 고리짝을 내려 원형 대숲 옆에 걸쳐 세웠다. 좁아 보이는 참배길로 들어가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짐을 두고 가지는 않겠지만 여기서는 괜찮을 것이다. 거기다 원형 대숲은 그렇게 크지 않다. 중심에 사당이 모셔져 있다 한들 왕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금줄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도리이 같은 두 대나무 사이로 슬며시 발을 디뎠다.
... 자그락.
참배길에 깔린 굵은 자갈이 발밑에서 울리는 동시에 시야에 빠르게 그늘이 졌다.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통 나뭇잎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와 어두컴컴한 정도일 텐데, 졸지에 새까만 어둠 속에 던져진 기분이다.
- 아궁이 신 이야기였다.
옛날 옛적 어떤 마을에 농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도조신의 숲 안쪽에서 비를 피했다. 말을 탄 사람이 지나가다가 마을에서 두 번의 출산이 있으니 같이 가서 이름을 지어주자고 도조신에게 권했다. 하지만 도조신은 지금은 비를 피하는 손님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말을 탄 사람은 홀로 마을로 향했다.
얼마 지나서 말을 탄 사람이 돌아왔다. 그리고 본가에서는 남자아이가, 분가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단, 여자아이에게는 복이 있는데 남자아이에게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둘을 부부로 만들면 잘 풀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농부는 급히 마을로 돌아갔다. 자기 집에서는 남자아이가, 옆 분가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난 뒤였다. 그는 분가와 상의해서 장차 아이들을 혼인시키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부모들끼리 한 약속대로 결혼했다. 농부가 도조신의 숲에서 들은 대로 집안은 점차 번창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이 아내 덕분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마음에 안 드는 점만 늘어갔기 때문에 어느 날 팥찹쌀밥을 지어 붉은 소에 매단 다음 아내를 태워서 먼 들판으로 내쫓았다.
아내는 붉은 소에 탄 채 울면서도 행선지를 소에게 맡기고 있었더니 산속 외딴집에 도착했다. 집주인은 친절해서 여러모로 돌봐주었다. 달리 갈 곳도 없어서 결국 그녀는 외딴집에 시집갔다. 그러자 집 살림살이가 순식간에 좋아졌다. 고용인을 몇 명씩 두게 되어 아무런 부족함 없는 신분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남편의 집은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대대로 이어받은 전답까지 내놓아야 할 형편이 된 그는 영락해 소쿠리 장수가 됐다. 소쿠리 장수는 여기저기 행상을 다녔지만 좀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어느 때 산속의 번듯한 집을 찾아갔더니 남아 있던 소쿠리를 전부 사주었다. 다른 데서는 여전히 팔리지 않기 때문에 그 뒤로 그는 매일같이 산속 집에 가서 소쿠리를 팔았다.
어느 날, 늘 소쿠리를 사주는 안주인이 소쿠리 장수의 얼굴을 지그시 보면서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몰락했소. 전 부인의 얼굴도 잊어버렸소"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도 눈앞의 여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 내쫓은 아내임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거품을 물고 죽어버렸다.
그녀는 그를 불쌍히 여겨 시신을 부뚜막 뒤쪽 봉당에 묻고 모란떡을 만들어 올렸다. 그러고 있는데 집안 식구가 고용인을 데리고 돌아오자 "오늘은 부뚜막 뒤에 아궁이 신을 모신 것을 축하하러 모란떡을 지었으니 마음껏 먹어라"라고 말했다.
- 그 후 그 지방 농민의 집에서는 아궁이 신을 모시게 됐다고 한다. 다키의 본가도 부엌에 아궁이 신을 모셨기에 친숙한 신이었다. 그런데 신의 유래가 갑작스럽게 죽은 농민의 시신이라니 충격이었다. 게다가 죽은 이유가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엾게 여긴 전처도 모실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남들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전 남편의 송장을 남몰래 묻어버린 행위가 참으로 무서웠다.
- 그런 의견을 다키가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더니 이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은 웃으면서 말했다.
"신이 되신 스가와라 미치자네 공과 다이라 마사카도 공도 신분이 다르다고는 하나 농민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인간이었어. 게다가 두 사람은 앙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걸 잠재우려 신으로 모셨지. 하지만 아궁이 신이 된 농민은 달라. 과연 무서운 건 어느 쪽일까?"
- 듣고 보니 그 말이 옳다고 일단 수긍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역시 아닌 것 같았다.
미치자네 공과 마사카도 공의 신은 원래 신분을 따지기 이전에 애당초 존재 자체가 멀었다. 하지만 아궁이 신은 대개의 집 부엌에 모셔져 있다. 서민의 생활에 단단히 녹아들어 있는 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꺼림칙한 유래가 있었음을 알면 어쩐지 무서워진다. 무리한 반응도 아닐 것이다.
- 그런데 다키도 독립해 행상을 다니면서 각지의 전승을 접할 기회가 늘자 아궁이 신 이야기가 결코 특이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 지방에서만 특별히 모시는 신 중에는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내력을 가진 존재가 뜻밖에 많았다.
- 이 대숲의 신도 어쩌면...
아니, 상대가 신이면 그나마 낫다. 여기에 끔찍한 요괴가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아궁이 신 이야기를 가르쳐준 여성에게서 꽤 기분 나쁜 전승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 각지를 늘 이동하는, 하늘과 산과 바다와 땅에 깃든 마물 네 자매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과 만난 자는 ...
- 모르는 사이에 두 발이 앞으로 나가고 있었던 듯하다.
... 부르고 있어.
양팔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꼬르륵.
게다가 왠지 갑자기 배에서 소리가 났다. 그런가 싶더니 갑자기 엄청난 공복감이 느껴졌다. 삽시간에 한쪽 배가 아파올 정도로 급격한 허기였다.
확실히 이제 곧 점심때다. 도쿠유 촌에 도착하면 우선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공복감을 느끼는 건 묘하지 않나.
역시... 여기 이상해.
굶주린 배 속 깊숙한 곳에서 오싹하는 공포심이 올라온다. 덕분에 공복감이 일순 사라졌다. 공포는 굶주림조차 능가하는가?
하지만 곧 배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귀에라도 홀린 것처럼 아무튼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다.
시장 귀신.
그때 다키는 스승에게 들은, 산속에서 인간에게 빙의해 아사시키는 요괴가 문득 떠올랐다. 이것에 씌면 배가 고픈 나머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까딱 잘못하면 죽고 만다. 살기 위해서는 소량이라도 좋으니 뭔가 음식을 입에 넣어야 한다. 그러니 도시락을 먹을 때는 반드시 조금 남겨놓으라고 했다.
앗, 하지만...
- ... 삭, 삭.
누군가가 발바닥을 스치듯이 초지를 걷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짓말...
오래된 사당 격자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나와서 초지를 걸어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런 광경이 선연히 보이는 듯하다.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등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 삭, 삭, 삭.
발을 끌 듯이 걸어오는 모습이 흡사 공복 때문에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싹했다.
대나무에 두 손을 짚은 채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비틀거렸다.
... 자그락.
참배길의 굵은 자갈을 밟는 두 다리도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한 발씩 앞으로 내디딘 것은 바로 뒤에 다가오는 무언가의 기척이 너무나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싫어, 싫어, 싫어.
다키는 마음속으로 몇 번씩 고개를 크게 저었다. 반 광란 상태로 계속 저었다.
저것에 따라 잡히면 나는 분명 이상해진다.
이 압도적인 공포심이 힘을 주었다. 초지에서 미로로 들어가 몇 걸음 걷자 금세 오른쪽 직각으로 꺾인다.
- 다키는 고리짝을 다시 짊어지고는 들판 뒤로도 이어지는 대숲에 들어갔다. 솔직히 이제 대나무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여기를 지나지 않으면 도쿠유 촌에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새로운 대숲을 빠져나오니 신사의 경내였다. 사사메 신사라고 되어 있다. 역시 대나무와 무슨 관계(사사메 신사의 '사사 笹'는 조릿대를 가리킨다)가 있는 걸까?
과연 고민이 되었지만 그 지역의 신사와 절은 무시할 수 없다. 평소처럼 인사를 해두어야 한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단 경내에서 나가 도리이 앞에 섰다. 거기서 몸차림을 정돈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경내로 들어간다. 손 씻는 곳에서 입과 손을 깨끗이 한 다음 참배길 가장자리를 걸어 배례전까지 갔다. 방울을 울리고 새전을 조용히 새전함에 넣고는 절을 두 번 하고 나서 손뼉을 두 번 친다. 그러고는 마을에서 행상하는 것의 허락을 구하고 성공을 빌었다.
- 참배한 뒤에 다키는 경내 옆에 서 있는 '가고무로'라는 문패가 달린 집 앞에서 예의 바르게 안내를 청했다.
신관이 나오기에 해독제 행상에 대해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들을 소개해준다고 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전에 도시락을 먹고 싶다고 부탁하자 흔쾌히 몸채 툇마루를 내주었다.
다키는 집안일 거드는 여성에게 차를 얻어 점심을 먹었다. 거기에 신관이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에 자연히 오는 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구렁이길에서 왔다고 설명하자 그는 꽤 놀랐다.
"몇십 년도 더 전부터 마을에는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없는 ... "
- 유키코가 "설마..." 하고 주저하면서 대숲 이야기를 했더니 그 말을 들은 마을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다키는 제물로 바칠 음식을 가지고 오겠다고 그것에게 약속을 해버렸어. 그러니까 그 애는 거기로 돌아갔을 거야."
- 도쿠유촌 사사메 신사의 신관에게 황급히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다키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래도 신관은 나중에 상태를 보러 대숲 신사에 갔다고 한다. 그것이 예의 대숲의 명칭이었다. 그러자 사당 앞에 찬합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다만 안은 비어 있었다. 구석구석까지 핥아먹은 것처럼 밥풀 하나 없었다.
그런 연락이 왔을 뿐, 그 길로 다키는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 네 가지 괴담, [대숲의 마: 쇼와시대(전전)]
- 이지마 가쓰토시는 헤이베이 정에서 유리아게 촌까지 이어지는 쿠에 산 산길을 차를 몰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처음에야 녹음이 울창한 출퇴근길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여유라고는 아예 없다. 일하느라 지친 상태에서 앞으로 두 시간 정도 신경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출퇴근을 위해 왕복하는 비포장 산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폭이다. 혹시라도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어느 한쪽이 다른 차를 기다리기 위한 대피소까지 후진해서 돌아가야 할 판이다.
- 이윽고 구보사키가 고생고생해서 평화장 집주인의 아들에게 '하에다마'에 관한 소문을 자세히 듣고 왔다. 왜 어려웠느냐면 그런 이야기가 외지인 사이에 퍼지면 마을의 인상이 단숨에 나빠지기 때문이다. 닛쇼방적 사원뿐 아니라 관계자나 가족까지 조만간 정이 될 이 지역에 불러들이려 하는데, 지금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면 지장이 생긴다고 오가키 가를 비롯한 마을 유력자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 '하에다마'라는 것은 한자로 '蠅玉'이라 쓴다. 고라 지방 서쪽 끝에 위치한 도쿠유 촌에서 오래전부터 두려워하는 요괴다. 그것이 도쿠유 촌 배후에 있는 구에 산을 타고 유리아게 촌의 쿠에 산까지 넘어와서 길에 바위를 떨어뜨리거나 나무를 쓰러뜨리는 등 갖가지 괴이 현상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하에다마·는 고라 땅에 외지인이 들어왔을 뿐 아니라 산과 숲의 개발까지 계획되고 있다는 데에 대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기괴한 모습까지 산속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 모양새가 목격한 인물에 따라 다른 것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다. 하지만 전혀 그만둘 낌새가 보이지 않아서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연달아 발생한 작은 화재나 식중독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 "애초에 하에다마·란 게 뭔데?"
이 중요한 의문에 집주인 아들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소문을 캐낸 구보사키의 감으로는 일종의 '토지 신'이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를 얼추 듣고 나서 이지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예로부터 그 지역에서 모시던 신이 외지인의 침입과 토지 개발에 진노했다. 그건 이해가 되는데 우리나 마을 사람들이 겪는 현상이... 구체적인 사건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 그날 마에카와의 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이지마의 의견에 찬동을 표한 것은 그 방의 주인 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고개를 숙여버렸다.
하지만 구보사키 만이 금방 고개를 들더니 의미심장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릴 적에 마을 변두리에 있던 오래된 사당을 길을 넓히기 위해 딴 곳으로 옮겼거든. 마을 늙은이들도 그 사당에 뭐가 모셔져 있는지 모를 정도로 옛날부터 있었다더라고. 그런데 사당을 이전한 다음 날에 거기서 가장 가까운 집 할멈이 돌연 세상을 뜬 거야. 며칠 뒤에는 둘째로 가까운 집 갓난아기가 갑자기 죽었고. 그리고 또 며칠 뒤에 셋째로 가까운 집에서 감기로 누워 있던 부인이 느닷없이 눈을 감았어."
구보사키는 이지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겠어?"
"사당에서 가까운 집부터 순서대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가."
바로 대답한 이지마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구보사키는 더 불쾌한 지적을 했다.
"게다가 죽은 건 그때 그 집에서 가장 약해져 있던 사람이야. 그래서 우연처럼도 보였지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더군. 급히 사당을 원래 장소로 되돌리고 신관에게 새로 참배를 해달라고 했어. 덕분에 네 번째 집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일은 없었지."
"그것과 똑같은 일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야?"
"외지인인 내가 단언은 못하지. 하지만 하에다마· 이야기는 우습게 여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 이지마는 황급히 부정했지만 마에카와는 달라진 기색이 없었다. 마을 사람뿐 아니라 동료들까지도 구제 불능의 미신가라고 어이없어하는 듯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강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했지만 실은 같은 평화장 주민인 노조키 렌야라는 사내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노조키라는 희귀한 성씨를 가진 이 인물은 저서도 있는 이단의 민속학자로, 취재를 위해 고라 지방에 체류 중이라고 한다. 방값은 내지 않은 모양이다. '연구를 위해서'라고 집주인을 설득해서 완전히 무상으로 쓰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게다가 평화장의 방은 어디까지나 베이스캠프로 사용하고, 듣자니 평소에는 각 마을의 신사나 절이나 유력자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한 푼도 치르지 않은 채 말이다.
- 노조키가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지는 마에카와도 몰랐지만, 아무래도 무류의 애주가들이라 죽이 맞는지 곧잘 둘이서만 술을 마시곤 했다. 그래서 싫다는 마에카와를 시켜 억지로 하에다마· 이야기를 물어보게 했는데, "너희 때문에 '그런 걸 믿느냐'라며 나까지 웃음거리가 됐잖아"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노조키는 묘한 대사도 입에 담았다.
"'하에다마' 같은 요괴가 존재할 리 없지만 '하에다마'가 무시무시한 건 사실이야."
- 무슨 뜻이냐고 마에카와에게 물어도 "내가 어떻게 알아?" 하며 화를 낸다. "선생님은 학자니까 분명 무슨 생각이 있겠지"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
평화장 집주인 아들에 따르면 노조키 렌야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캐내는 데는 무척 열심인 주제에 제 의견을 물으면 바로 입을 닫는다고 한다. 그런 것이 취재인지 몰라도 상대방에게 정보를 얻기만 하고 자신은 뭐 하나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다른 마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듯하다. 또 노조키는 왠지 가키누마도루와도 접촉 중이어서 그 점이 유리아게 촌 사람들의 불안을 묘하게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 이지마는 해가 차츰 저물어가는 쓸쓸한 뱀길을 달리면서 아까부터 이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노조키 렌야는 차치하더라도, 구보사키와 같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그들을 마에카와가 차가운 눈으로 보는 것도 둘 다 이해가 되는 만큼 이지마는 난처했다. 자신은 아직 산길 일부가 진창이 된 현상밖에 겪지 못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꽤 으스스한 일이라 느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하수 같은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하에다마· 소문을 무턱대고 믿을 정도의 ...
- 이지마는 마음을 다잡고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덕분에 다음 골짜기 쪽 대피소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그곳을 의식하지 않고 잽싸게 지나가려고 했을 때였다.
어라.
아까와 똑같은 외관을 한 그것이 거기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런 무서운 광경이 순식간에 두 눈동자에 뛰어 들어왔다.
마, 말도 안 돼...
전전 대피소에서 여기까지, 그것이 이지마의 차를 추월해서 앞지를 수 있을 리 없다. 첫째로 그것은 차가 없다. 아니, 설사 있었다 해도 완전히 외길이다. 그에게 전혀 들키지 않고 여기에 먼저 올 수 있을 리 없다.
아니면 숲 속을...
그것은 최단거리로 이동한 걸까? 멀리 돌아가는 뱀길보다는 확실히 숲으로 오면 거리가 짧을지 모른다. 그렇다 한들 숲에는 나무가 무수히 떼 지어 있으며 바위가 굴러다니고 덤불이 무성하다. 더군다나 높낮이 차도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보다 자칫하면 몇 갑절은 힘들지 않겠는가.
그것이 인간이라면... 그렇겠지만.
대피소에 도착하기까지의 몇 초 사이에 이런 의문과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지마는 액셀을 세게 밟아 단숨에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두 개 정도 커브를 꺾은 부근에서 곧장 속도를 늦췄다는 것이다.
적어도 쫓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 네 가지 괴담, [뱀길의 요괴: 쇼와 시대(전후)]
- 작가와 편집자 조합은 물론 드물지 않다. 취재 여행에 나서는 전자에 후자가 동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제로 올해 6월에 소후에 시노는 나라의 하미 지방을 방문한 도조 겐야를 따라갔다. 거기서 그가 미즈치 님 의식에 얽힌 신남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 것도 평소와 같았다. 단, 그전과 달랐던 점은 그녀도 사건의 여파로 대단히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 그 경험으로 이골이 났을 테니 소후에 군도 앞으로는 내 민속 탐방에 동행하지 않겠지.
겐야는 남몰래 이렇게 생각하고 안도했다. 딱히 소후에 시노가 싫어서는 아니다. 본인에게 말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그녀만큼 '재색을 겸비한 편집자'도 없다고 실은 예전부터 경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말해주면 좋겠으나 그럴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 말을 하면 소후에 군은 틀림없이 우쭐댈 거거든.
- 시노가 스스로를 '지'라고 말할 때는 기분이 무척 좋거나 반대로 꽤 화가 났을 때인데, 그런 경우에는 일단 좋은 일이 없다. 겐야에게 칭찬을 받으면 그녀는 분명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그러면 뭔가 소동이 일어나서 그도 속절없이 휩쓸려 들어간다. 이런 전개가 눈에 보이는 만큼 겐야로서도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일 잘하는 소후에 시노가 곁에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 한들 그녀에게 문제의 버릇이 있는 한 가급적 동행을 저지하고 싶었다.
- 그런데 시노는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겐야의 여행에 따라오려고 한다. 아무리 눈치껏 "여인의 다리로는 좀 힘들 거야"라고 넌지시 거절해도 통하는 법이 없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우는 소리는 절대 안 할 거니까요"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그런데도 으레 여행 중에는 엄청나게 언짢아한다. 왜냐하면 겐야가 가는 곳이 왕왕 벽지였기 때문이다.
하여간 가는 것만도 힘든 지역이 몹시 많다. 가장 가까운 역까지 전차를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탄 다음 그 뒤로는 마차에 좀 흔들리면 된다...로 끝나면 오히려 횡재다. 거기서 또 장장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만 하는 전개도 드물지 않다. 거기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길이 엄청난 험로거나 한다.
딱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폐도처럼.
- 물론 겐야는 이런 지독한 산길에 익숙했다. 뿐만 아니라 좋아했다. 인간의 영위가 남긴 흔적이 지금껏 남아 있으나 정작 중요한 사람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땅을.
그런 장소에 서면 그는 으레 어떤 감개를 느꼈다.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했을까? 그들은 왜 없어졌을까? 대체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 다만 개중에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곳도 존재한다. 그 지방 사람들이 이른바 '마의 장소'로 두려워하는 곳이다. 사람의 출입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는 땅이다.
이 폐도에는 그런 기색이 없나?
구렁이가 주르르 기어간 흔적 같은 비탈길을 올려다보면서 겐야는 문득 생각했다.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도 같았다. 어째서일까 고개를 갸웃하다가 퍼뜩 뇌리에 다른 산길이 떠올랐다.
부름산의 구렁이 비탈길...
- 올해 4월, 도조 겐야는 고도 지방 구마도의 집락을 방문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흉산이라며 두려워하는 부름산이 있었는데, 눈앞의 폐도와 똑같이 가운데가 움푹 팬 비탈길이 역시나 산으로 뻗어 있었다. 그곳을 동네 사람들이 '구렁이 비탈'이라 불렀던 것이 겐야는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는 여섯 지장님의 동요에 빗댄, 참으로 처참한 연쇄살인사건과 조우했지.
이렇게 회고한 순간, 그는 기분 나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이것은 이번에도 사건에 휘말릴 전조인가? 눈앞의 비탈길은 그런 무서운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인가?
- 겐야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단지 산길의 형상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다. 첫째로 이 폐도에는 부름산의 구렁이 비탈에서 느낀 꺼림칙함이 없다. 완전히 쇠퇴하여 잊힌 슬픔이 느껴지지만 적어도 마적인 것에 위협받는 무서움이 감돌지는 않는다.
내가 어떻게 됐나?
겐야는 다시금 산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태평하게 그런 데서 뭘 멍하니 서 계시는 거예요?"
소후에 시노의 원망 담긴 목소리가 비탈길 아래에서 들려왔다.
- 신흥 출판사에서 다섯 달 조금 못 되게 서점을 도는 업무를 하다가 이번 9월에 편집부에 배정된 뒤였다. 이 출판사에서 겐야는 연구서 <민속학에 나타난 괴이 현상>을 본명으로 출판했다. 그때 편집 담당자의 후임이 오가키 히데쓰구였다. 그는 학생 시절에 곧잘 은사에게 도조 겐야에 대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무라에게 소개를 부탁해 겐야에게 만남을 청했다. 후에 시노가 아무런 연줄도 없이 불쑥 만나러 왔던 과거 사례와 비교할 것까지도 없이, 이 절차에서 히데쓰구의 타고난 성실함이 느껴진다.
도조 겐야로서는 은사의 소개도 있는 데다 출신 대학 후배다. 흔쾌히 수락하고 만나봤더니 두 번째 책 집필을 의뢰해 왔다. 그때 잡담을 하다 오가키 히데쓰구가 고향에 전해지는 괴담을 이야기했는데, 겐야가 그것을 덥석 물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 괴담은 전부 네 가지였다. 겐야가 <창해의 목>, <망루의 환영>, <대숲의 마>라 명명한 세 가지는 고라 지방 서쪽 끝에 위치한 도쿠유 촌이 무대로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와 전전의 괴이담이다.
나머지 하나인 <뱀길의 요괴>는 히데쓰구가 나고 자란 유리아게 촌에서 닛쇼방적 공장이 있는 헤이베이 정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무대로 요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무척 불가해한 체험담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현재진행 중인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겐야는 당장 9월 하순에 고라 지방을 찾아가기로 했다. 먼저 유리아게 촌에 가려 했는데, 히데쓰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라 지방에서 맨 처음에 개척된 도쿠유 촌으로 향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히데쓰구는 듣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이번 건을 회사 출장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완의 소유자다.
"취재 여행으로 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랬다면 선생님 경비도 저희 회사에서 전부 댈 수 있었는데요."
고개를 숙이는 오가키 히데쓰구를 보고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우수한 편집자가 되겠다 싶어 겐야도 무심결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도 이번 여행에는 동행자가 생겼다. 그렇지만 히데쓰구는 고라 지방 출신이다. 도쿠유 촌 사사메 신사의 가고무로 간키 신관과도 안면이 있다고 한다. 단순한 길 안내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두루두루 취재에 도움이 되어줄 것 같지 않은가.
전환이 빠른 겐야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건을 전해 들은 괴상사의 소후에 시노가 두 사람을 진보정의 카페 '에리카'로 불러내더니 웬걸 자신도 동행하겠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 "노숙이니까 욕탕도 없고 볼일도 덤불 속에서 봐야겠지. 하늘이 흐리면 밤은 그야말로 칠흑같이 캄캄해 자고 있으면 바스락바스락, 삭삭... 하는 소리가 곧잘 들려. 분명 야생동물이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거겠지만 실제로는 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무, 무슨 뜻이에요?"
"뭔가 다른 정체 모를 존재일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거지."
"..."
"깊은 산속에는 지금도 인간이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존재가 있는 것 같거든. 그런 게 밤이 되면 모여들어 자고 있는 옆으로 슬며시 다가오지."
시노는 완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무지막지하게 위험한 곳에 소후에 군처럼 수월폐화(달과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 정도의 미인)에 천향국색(천하제일의 향기와 빛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며 선자옥질(신선의 자태에 옥의 바탕, 심신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 칭송해 마땅한 여성을 나는 도저히 데려갈 수가 없어."
"서, 선생님... 그렇게까지 지를..."
시노는 완전히 감동해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둘의 여행이 되었을 터다.
그런데 여기서 오가키 히데쓰구가 쓸데없는 한마디를 입에 담고 말았다.
- 히데쓰구는 바로 이해한 모양이지만 시노는 아니었다.
"모닥불을 피워도 연기는 나는데요."
"하지만 그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건 아니야. 여기서..."
겐야는 도쿠유 촌 방향을 가리켰다.
"마을은 아예 안 보여. 그 말인즉슨 마을에서도 이 봉화터를 보지 못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봉화를 피울 때도 상당한 높이까지 연기를 상승시킬 필요가 있어. 평범한 모닥불로는 그런 연기는 못 내거든."
그러자 히데쓰구가 비로소 깨달았다는 얼굴을 했다.
"즉 모닥불과 달리 봉화는 나뭇가지나 잎을 태우는 게 아니군요."
"물론 마른 풀 같은 건 쓰지만 수지를 다량 포함하고 있는 관솔이나 솔잎이 주가 되지."
- 겐야의 지적에 히데쓰구는 수긍이 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솔잎을 태웠다가 연기가 심하게 나서 두 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애용하는 수첩에 열심히 메모한다. 이번 민속 탐방 동안 그는 도조 겐야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민속학 지식을 전부 기록해서 공부할 생각인 듯하다. 참고로 수첩 맨 앞쪽에는 겐야에게 들은 탐정소설 강의가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 "응. 그 연기를 이용한 게 '솔잎 태우기'라 불리는 고문이야. 여우에 홀린 것을 씻을 때에도 솔잎 태우기를 썼지."
"연기에 숨이 막혀서 여우가 떨어지는 거예요?"
히데쓰구의 어조는 과연 반신반의였다.
"그렇게 생각됐던 셈인데, 실제로는 여우에 홀린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경우도 많았어."
"어머, 무서워라."
시노가 겁먹은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런데 선생님, 왜 봉화는 한자로 '늑대의 연기 狼煙'라고 쓰는 거예요?"
"역시 소후에 군,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야."
겐야가 곧장 칭찬하자 시노는 "헤헤" 웃으며 부끄러워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히데쓰구도 흥미가 있는 듯해서 겐야는 설명했다.
"관이나 솔잎보다 더 중요시되던 게 실은 늑대 똥이거든."
- "연기가 하늘로 똑바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늑대 똥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야."
"진짜요?"
시노의 추궁에 겐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전승이니까 진위 여부는 모르지. 하지만 굳이 '늑대의 연기'라 쓴 것을 보면 무슨 효과는 있었을지도 몰라."
"흠. 재미있네요."
희미하게 남아 있는 아궁이의 돌무더기 흔적을 한동안 바라보던 시노는 갑자기 퍼뜩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 잠깐만요, 선생님. 그 말인즉슨 이 부근에 느, 늑대가 나온다는 거잖아요!"
- "여기 경치랑 거기가 비슷한 가요?"
"확실히 콘월에도 이런 단애절벽이 있어. 게다가 해안에는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거나 구멍이 뚫린 바위가 여기저기 솟아 있기도 하고."
"하에다마 님이잖아요."
시노가 기운차게 지적했지만 겐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그 풍경을 본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책에서 얻은 지식에 지나지 않아. 이 풍경을 보고 바로 연상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 그러네요. 그 외에 비슷한 점은 없어요?"
"굳이 꼽자면 민간전승이 많다는 점일까. 유명한 아서왕 전설은 아니지만 켈트 민족의 땅이기도 한 콘월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요정 이야기가 전해지니까."
"어머, 귀엽네요."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시노에게 겐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요정이라 해도 개중에는 사악한 것도 많아. 결코 사랑스럽기만 한 존재가 아니야."
- 불만스러워 보이는 시노와 달리 히데쓰구는 조금 납득이 간다는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은 제게서 사전에 도쿠유 촌의 세 가지 괴담을 들으셨지요. 그리고 지금 이 풍경을 보셨고요. 그 때문에 선생님 무의식이 무시무시한 전승과 암초지대의 조합에서 예전에 책에서 읽으신 콘월 ... "
- 출렁다리를 건넌 뒤에는 길에도 양옆 낭떠러지에도 보기 좋게 돌이 깔려 있어서 단숨에 사람 사는 마을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단, 어느 돌에나 이끼가 끼어 있어서 아직 산속에 붙잡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십 몇 년 전까지는 출렁다리 이쪽이 마을이고 저쪽이 산이라는 명확한 구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던 것이 조금씩 산에 침식되기 시작했다. 우선 출렁다리가 먹히고, 이어서 돌을 쌓은 길이, 그리고 낭떠러지가 마찬가지로 산의 영역으로 화한 듯하다.
-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산이 완전히 패배하는 날이 온다.
마지막으로 출렁다리를 건넌 겐야는 반사적으로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들을 괴롭히면서도 무사히 잘 통과시켜 준 자연에 감개를 느꼈다.
헤이베이 정이 헤이베이 시가 되고 도쿠유 촌에서 유리아게 촌까지가 합병되어 고라 정이 됐을 때, 다섯 마을의 배후에 있는 산들은 개발되어 필시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
이 돌길 풍경도 사라지는 건가...
습기가 축축하게 차고 어둠침침해서 결코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장소였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풍취가 있었다. 옛날 옛적 구난도를 지나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출렁다리와 그 너머에 깔린 돌길과 낭떠러지를 보며 분명 진심으로 안도했으리라.
- "그 글자가 붙는 장소의 지형은 산이나 골짜기일 때가 많아. 바위를 뜻하는 '이와 岩'는 오래전에는 '이하'라 읽혔어. 이게 '유하'로, 이어서 '유후'로, 그리고 '유'로 음운이 변한 거지. 나머지는 '유'에 유령의 '유'나 석양을 뜻하는 '유히 夕陽'의 '유'를 끼워 맞춘 데 지나지 않아. 저녁놀이 바다를 이토록 아름답게 물들이는 땅이니까 석양의 '석'을 차용해서 '도쿠유 촌 犢夕村'이라고 썼어도 별로 상관없었던 셈이지."
"즉 유령의 '유' 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거예요?"
"응, 그렇게 되지."
"뭐야, 오가키 군이 괴담을 들려주고 도쿠유 촌의 한자를 알려줬을 때 얼마나 무서운 곳일까 하고 좀 기대했단 말이에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소후에 시노는 상당한 겁쟁이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만큼 겐야는 이쯤에서 놀려주고 싶었지만, 자제심을 발휘해서 그만두었다. 가을의 황혼은 길게 느껴져도 방심하면 금방 어두워진다. 놀고 있을 여유는 없다.
- "잠깐 돌아가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히데쓰구가 갑자기 발길을 돌리려 해서 겐야는 놀랐다.
"지금? 말도 안 돼. 수첩을 찾아 돌아올 즈음에는 해가 완전히 져버려. 아니,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서둘러 다녀오면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고 온 장소도 모르는데?"
"몇 군데 짐작 가는 곳이 있으니까 분명 괜찮을 겁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관두는 편이 나아. 산에서 뭔가 분실했을 때는 그날 중에 찾으러 돌아가면 안 된다는, 산일하는 사람들의 법도도 있거든."
"왜죠?"
시노가 물어서 겐야가 대답했다.
"분실물을 찾으러 돌아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야."
- "명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설명해 보자면 하루 일이 끝나서 지쳐 있을 때 더 피로해질 만한 행위는 자제하는 편이 좋다는 조상들의 지혜겠지. 그러니까 오가키 군도 내일 가는 편이 나아."
히데쓰구는 겐야의 충고에 순순히 따랐다.
- 도중에 마을 사람 몇몇과 마주쳤는데 다들 히데쓰구를 알고 있었다. 그가 잘 모를 때도 대개의 상대방은 "아아, 유리아게 촌 오가키씨 댁의..."라며 잘 안다는 얼굴을 한다. 그가 도쿄의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다들 아는 듯하다. 유리아게 촌에서도 유명한 오가키 가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마을 사람 누구 하나도 히데쓰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결코 겐야와 시노에게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무시한다기보다 두 사람의 존재가 신경 쓰여 어쩔 줄 모르겠지만 부러 참고 있는 눈치다.
실제로 히데쓰구가 마을 사람과 서서 이야기할 때 옆을 지나는 사람들은 겐야와 시노를 대놓고 빤히 본다. 하지만 그들이 눈길을 주면 시선을 획 돌려버린다. 대단히 흥미가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걸까?
그 증거로 히데쓰구가 두 사람을 "이쪽은 제가 신세 지고 있는 작가 도조 겐야 선생님과..."라고 소개하자마자 다들 말을 걸어왔다.
- "예로부터 고라 지방에서는 사사부네를 공물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다만 유리아게 촌처럼 그 풍습이 이제는 쇠퇴해 버린 마을도 있어요.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은 역시 도쿠유 촌일까요."
"죽세공이 성한 어촌답죠?"
"그렇군."
시노가 동의를 구하자 겐야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에도 그는 어쩐지 사사부네를 줄곧 곰곰이 보고 있었다. 왠지는 그도 모른다.
소후에 군의 감상은 딱히 틀리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시노의 손바닥에 놓인 사사부네가 묘하게 신경 쓰인다. 그녀가 지장 발밑에 돌려놓은 뒤에도 겐야는 좀체 눈을 떼지 못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에도가와 란포 선생이 중학생 때 친구와 <중앙소년>이라는 동인지를 냈는데, 그때 필명이 '사사부네'였다는 생각이 나서."
시노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이런 지식을 늘어놓았지만 물론 겐야가 마음에 걸린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통 모르겠다.
- 마을을 서쪽으로 빠져나가자 긴 계단과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어느 쪽으로도 사사메 신사에 갈 수 있지만, 히데쓰구는 전자를 선택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도리이가 있고, 그곳을 통과하자 오른편에 손 씻는 곳이 있었다. 세 사람은 거기서 손과 입을 헹구었다. 그런 다음 참배길을 신문 神門까지 걸어가서 배례전에 인사를 올렸다.
- "신관님 댁은 경내 서쪽입니다."
다시 히데쓰구의 인도로 참배길을 반쯤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돌이 깔린 길을 더 걸어가자, 낡았지만 차분한 풍치가 있는 커다란 단층집 앞으로 나왔다. 문패에는 '가고무로'라고 붓으로 써놓았다.
"계십니까?"
히데쓰구가 미닫이문을 열고 다소 긴장한 어조로 안내를 청했다. 그러자 하얀 통소매 옷에 심홍색 하카마(일본 전통의상에서 기모노 위에 입는 느슨한 하의) 차림을 한, 아직 성인이 아닌 듯 보이는 청초한 분위기의 귀여운 여성이 안에서 바로 나왔다.
"스, 스즈카케 씨, 오랜만입니다."
히데쓰구가 갑자기 수줍어하는 것을 겐야도 시노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터지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데 여성이 현관 바닥에 무릎 꿇어앉고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잘 오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새삼 겐야를 봤는지 뽀얗고 예쁜 양 볼에 희미한 홍조가 확 떠올랐다.
선생님은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어도 역시 괜찮은 남자니까.
시노는 마음속으로 몰래 자랑스러워졌지만 문득 옆의 겐야에게 눈길을 주고는 저도 모르게 "정신 차려"라고 한마디 할 뻔했다. 평소에는 여성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가 보기 드물게 가고무로 스즈카케를 넋을 잃고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생니임!
- 시노가 소리치며 손을 들기도 전에 안에서 남자 하나가 나왔다.
"앗, 기지 씨..."
히데쓰구가 곧바로 이름을 입에 담았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이상하다. 단, 그것은 기지라 불린 서른 전후의 남자도 어쩐지 똑같았다. 히데쓰구를 힐끗 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금 마침 돌아가시려던 참이었어요."
스즈카케의 태도도 어딘지 어색하다. 세 사람이 하나같이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 그 자리의 공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 "스즈카케 씨라, 참으로 기분 좋은 울림을 가진 이름이네요."
그런 상태를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겐야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갑자기 시노에게 말을 붙였다.
"소후에 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 앗, 네. 뭐라고 할까요. 엄청나게 사랑스럽고 굉장히 청량할 것 같은 이름이네요."
이 감상에는 스즈카케도 쿡 웃었다.
"확실히 그렇군."
겐야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소후에 군, 스즈카케라는 건 실은 산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의복 위에 입는 삼베 법의를 말해."
"... 옷 이름이라고요?"
"나라 오다이가하라의 오미네 산이 스즈카케의 발상지지. 수행승은 도를 닦는 사람이니까 여기서 둥산 수행을 해, 구난도 같은 건 상대도 되지 않는 혹독한 산지로 들어가야만 하지. 거기는 산 한쪽 면이 스즈타케, 즉 조릿대로 덮여 있어. 길이 험한 정도가 아니야."
- "대단히 불가해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수수께끼였지요 그곳 대숲에도 사당이 있고 집구석 신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게 천마라 불리는 천구 같은 존재로..."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이야기하는 겐야 옆에서 시노가 얼굴을 내밀고 신관에게 사죄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겐야의 귀에는 물론 그녀가 사죄하는 말 따위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천구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본서기>입니다. 수도의 하늘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간 유성을 '비유성 시천구야 非流星 是天狗也'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저것은 유성이 아니라 천구라는 거지요."
"도조 선생님은 본인이 모르는 요괴의 명칭을 입에 담은 상대방에게 하여튼 정신 못 차리고 이야기를 거는 버릇이 있어서요..."
"하긴 앞서 중국에서 천구는 흉사를 알리는 별이라고 간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일본에 전해졌겠지요."
"이렇게 되면 선생님은 좀처럼 멈추지를 않아요."
"그 뒤에 천구라는 이름은 <대경>이나 <우쓰보 이야기>에 보이듯 헤이안시대부터 빈번히 등장하게 됩니다. 하기야 <우쓰보 이야기>에는 '저 먼 산에서 누가 소리를 내며 논단 말이냐. 천구의 짓이겠지'라고 되어 있으니까 자연계의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천구가 쓰였음을 알 수 있지요."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걸 그 자리에서 다 말씀하실 때까지 이 이야기가 장장 이어지곤 하죠."
- "시간이 지나 <곤자쿠 이야기>에서 천구는 불교에 적대하는 일종의 마물로 등장합니다. 이때까지는 어디까지나 불가사의한 존재였는데, 여기서 불적 佛敵이 되는 셈이에요. 하기야 이 책은 불교 설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점은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가마쿠라시대일까요"
"흥미로운 것은 <헤이케 이야기>의 '천구라 하는 것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고 새이되 새가 아니며 개이되 개가 아니니 팔다리는 사람머리는 개 좌우에 날개가 돋아 날아다니는 존재니라'라는 기술입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천구의 상과 꽤 가까울지도 몰라요. 또 이 책에는 '꼴사납도다. 도모야스에게는 천구가 씌었다, 하며 비웃음을 샀다'라고도 돼 있는데, 천구가 인간에게 빙의한다고 여겨졌던 셈입니다. 게다가 오만한 승려는 '성불하지도 못하고 지옥에도 떨어지지 못하여 이러한 천구라는 존재가 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상태면 당분간은 안 끝나겠네요."
"그 뒤의 <겐페이 성쇠기>에도 교만하고 무도한 법사는 천구로 전락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냥 한마디로 천구라 해도..."
"이 폭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관심을 원래의 괴이 현상으로 돌려야만 해요."
이제까지 겐야와 시노 두 사람에게 번갈아가며 눈길만 돌리던 간키 신관은 퍼뜩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죽마라는 건 비축한다는 한자를 쓴 '축마 蓄魔'('죽마'와 일본어 발음이 같다)라고 꽤 오래된 일지에 나와 있었던 게 지금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 때문에 도쿠유 촌은 몇백 년에 걸쳐 해안을 따라 몇 번씩 동쪽으로 더 동쪽으로 다른 마을을 만들어 이주해 갔다고 한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도쿠유 촌 다음에 개척된 곳이 옆 마을인 시아쿠 촌이 아니라 가장 멀리 떨어진 유리아게 촌이라는 점이다. 그 뒤로는 시아쿠 촌, 이시노리 촌, 이소미 촌이 순서대로 만들어지고 이윽고 다 첫 마을로 이루어진 고라 지방이 탄생했다.
- "고라 오 인방이라는 모임은 옛날부터 있었어. 각 마을 대표라지만 면면은 제각각이지. 나 같은 신사의 신관이 있나 하면 시아쿠 촌은 의사, 이시노리 촌은 촌장, 이소미 촌은 절의 주지, 유리아게 촌은 에도시대부터 마을 정사를 보던 부농 출신, 이런 식으로 다 달라."
유리아게 촌의 부농 출신이란 물론 오가키 히데쓰구의 조부인 오가키 히데토시를 말한다.
"단지 다들 조상이 도쿠유 촌 출신이라는 것뿐..."
"즉 새로운 마을을 개척할 때 중심이 돼서 움직인 사람들 각자의 자손인 거군요."
"그렇지. 그래도 별로 특별한 권력을 얻은 건 아니네. 그 집의 후계자가 된 것만으로 좋든 싫든 고라 오 인방에 들어가 버리거든."
"그렇긴 해도 실은 고라 지방의 숨은 권력자이거나 한 건 아닙니까?"
겐야는 농담처럼 물었지만 본심은 진지했다.
지방에는 왕왕 그 땅에서만 통용되는 조직이나 계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로 민속 탐방의 성패가 크게 갈린다는 사실을 그는 경험으로 배웠다.
- "고라 오 인방의 선조가 각 마을의 시조에 가깝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감사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였지요."
"이 주위의 대숲이 사사메 신사의 땅이듯 다른 오 인방의 집도 저마다 마을 북쪽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네. 히데쓰구의 조부인 오가기 히데토시는 유리아게 촌 쿠에 산이고. 그러니까 다섯 마을을 연결하는 큰 도로가 뚫리면 그 땅의 대금이 각자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셈이야."
"허, 과연."
꽤 현실적인 이야기인 만큼 보통은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관이 담박하게 하는 말은 듣고 있으니 되레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겐야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대숲이 없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애당초 마을 합병이라는 건 나라의 정책일세.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어찌 되는 일이 아니지. 그러면 처음부터 받아들여서 조금이라도 마을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또 오래된 배례전도 겨우 보수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편이 낫다 이 말이지. 그렇게 되면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 님도 분명 용서해 주실 거야."
"사사메 신사의 주제신인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는 소위 '예능'의 신이신데..."
이렇게 말을 꺼내다 겐야는 퍼뜩 깨달은 모양이다.
- "아마테라스 대신이 아마노이와토 동굴에 숨었을 때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는 조릿대 잎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는 기술이 <고사기>에 있지요 야나기타 구니오 선생도 <무녀고>에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무녀가 춤을 출 때 손에 드는 물건 중에 조릿대가 있는 것도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의 조릿대 잎에서 온 거고요. 즉 대숲에 둘러싸인 데다 '사사메'라는 명칭을 가진 신사의 제신이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인 건 정곡을 찌르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얼추 이야기한 다음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건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숲 신사는 대체 어떻게 되나요?"
"대숲 신사 자체를 남기는 건 무리겠지. 사당만 다른 장소로 옮겨서 다시 모시는 게 좋을지도 몰라."
간키 신관은 대답과 동시에 걸음을 딱 멈추었다.
"여기가 대숲 신사일세."
- 그 말을 듣고도 겐야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고는 눈앞을 유심히 보고 그곳에 자라 있는 것이 대나무가 아니라 키 큰 잡초 무리임을 깨달았다.
"대숲 신사 주위는 분명 들판 같은 장소였던 게...?"
"옛날에는 그랬던 모양이지만 내가 신관이 되기 전부터 이미 이런 상태였네."
"이 안의 사당도..."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잘 모시고 있지. 그래봤자 몇 달에 한번 여기 올까 말까지만."
- "거기에 인어 전설이라도 전해지나요?"
"응. 제너라는 마을의 교회에는 중세 때 만들어진 '인어 의자'가 예배당 한쪽 구석에 놓여 있거든. 그 의자 옆 판에는 빗과 거울을 손에 든 인어가 새겨져 있어."
"와아. 어떤 이야기가 있는데요?"
"옛날 옛적 그 교회에 언젠가부터 일요일이면 아름다운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부인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찬미가만 부르고 금방 돌아가버렸지. 하지만 마을 사람 모두 신비한 노랫소리에 홀린 나머지 아무도 그녀의 태생을 물어보려 하지 않았어."
"노래를 듣기만 해도 만족이었다는 거군요."
"다만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이 돌아간 뒤에는 그녀가 앉았던 의자가 늘 젖어 있었어."
"... 괴담이잖아요."
"하지만 미성을 가진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부인만이 아니었어. 교회지기의 아들 매슈도 그야말로 훌륭한 찬미가를 불렀지.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서로 끌리다 이윽고 사랑에 빠졌어."
"좋네요."
아사한 시신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도 잊고 시노는 황홀해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자취를 감춘 거야."
"야반도주예요?"
의문에는 답하지 않고 겐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마을 사람들은 달 뜨는 밤이 되면 만에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
- "즉 부인은 인어였고, 그가 동료가 됐다는 건가요?"
"여기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져 와. 어떤 배가 만에서 닻을 내리고 있었더니 파도 사이에서 인어가 나타났어. 그러고는 선장에게 '당신 배의 닻이 우리 동굴을 막고 있습니다. 매슈와 아이들이 갇혀서 밖으로 못 나오고 있어요. 부디 치워주세요'라고 부탁했지."
"역시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었군요."
"이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오랜 수수께끼가 풀렸다며 기뻐했어.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얻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좋은 이야기잖아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렇긴 한데..."
겐야의 의미심장한 말투에 시노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슨 뜻이에요?"
"예를 들어 매슈 부모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은 소중한 아들을 꾀어서 데리고 간 지독한 여자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자유연애잖아요."
"게다가 상대는 인어야. 부모 입장이라면 무작정 축복할 수 있을까 어떨까."
- "더욱이 인어 전설은 이런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야. 그 노랫소리로 남자를 사로잡아 바다로 유인한 다음 파도 사이로 가라앉혀버린다는 이야기도 많아. 즉 마물로서의 인어지. 실제로 콘월의 다른 ... "
- 대숲 신사에서 일어난 변사 소식이 벌써 온 마을에 퍼졌구나.
겐야는 이렇게 확신했다. 주재순사 요시마쓰가 퍼뜨렸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파수를 서는 데에는 마을 청년단이 협력하고 있다. 대숲 신사 밖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다른 청년단원이 접촉했을 가능성은 꽤 높지 않을까.
게다가 피해자는 흡사 <대숲의 마> 이야기와 관계있는 것처럼 다름 아닌 아사를 했다. 그런 외지인의 시체가 두 외지인의 방문에 맞춘 듯이 발견되었다.
긁어 부스럼이다.
마을 사람들이 설사 이렇게 생각했다 한들 무리도 아니다.
겐야는 마을 안의 길을 가능한 한 기척을 죽이고 걸었다. 그가 눈에 띔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몇 미터 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 피로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그렇게 했다.
덕분에 도쿠간사 돌계단 아래까지 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 겐야가 천천히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자니 어제 여기 도착해서 내려다본 광경이 불현듯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래서 반쯤 올라갔을 때 마을의 아침 풍경을 눈에 담으려고 고개를 빙 돌리다가....
거기서 굳어졌다. 이어서 등줄기에 오싹하는 오한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디지 않은 것은 실로 행운이었을지 모른다.
마을 도처에서 몇 개나 되는 눈이 겐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직후에 싹 사라졌다. 집에 있던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고 길에 있던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으며 배 위에 있던 사람은 바다로 얼굴을 돌리는 식으로, 모든 시선이 곧장 다른 곳을 향했다.
.... 이거 큰일인데.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민속 탐방 같은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다. 물론 지금껏 폐쇄적인 마을은 그야말로 여러 번 경험했다.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을 겐야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경우는 사정이 좀 너무 다르다.
- 유리아게 촌 평화장을 베이스캠프로 민속학자라는 수상쩍은 남자가 뭔가 조사를 하고 있다. 그 노조키 렌야가 왠지 도쿠유 촌에 나타났다. 얼마 안 돼 이번에는 같은 학문에 종사한다는 작가가 자못 어울리지 않는 미인 편집자와 함께 찾아왔다. 동행한 사람은 유리아게 촌의 오가키 히데쓰구다. 그의 조부인 히데토시는 사사메 신사 신관 가고무로 간키와 무슨 불화가 있다는 말이 들린다. 히데쓰구 자신도 가고무로 스즈카케를 둘러싸고 마을 다케야의 기지 마사루와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상한 말썽이라도 생기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고 걱정하던 차에 노조키 렌야의 변사체가 대숲 신사 안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사인은 아사 같다. 저 대숲 신사에서 하필이면 굶어 죽다니, 어떤 무서운 일을 당한 건가?
마을 사람들의 심중을 헤아리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 "그래서 주지스님으로 변장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인 척했다기보다, 요는 그 학자로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신관이나 스즈카케를 맞닥뜨리면 그런 건 금세 들통나. 그러니 어디까지나 설핏 눈에 띄었을 때를 뭐, 대비한 거겠지. 멀리서 보는 정도면 얼마든 속일 수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일종의 위장복인가요."
"말 한번 잘하는구먼."
"그렇게까지 해서 노조키 씨는 대체 뭘 조사하고 있었을까요?"
"글쎄. 사사메 신사의 비밀일까?"
"그, 그런 게 있습니까?"
저도 모르게 다가서는 겐야에게 주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비밀을 들킨 신관이 대숲 신사의 마물을 부려서 그 학자를 아사시켰다고 하면 댁은 어떻게 하겠나?"
"네...?"
"거처를 여기로 옮기겠나?"
이렇게 말하며 호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아 겐야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 "
만약에 말입니다. 사사메 신사에 바깥소문을 꺼릴 만한 비밀이 있었다 해도 그게 새어나가는 정도로 마을 합병이 무산되는 일은 일단 없어요. 시, 정, 촌 합병을 추진하는 건 어쨌든 나라니까요. 그리고 합병만 성사되면 관광지화 이야기도 아마 착착 진행될 겁니다."
"그러면 신사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비밀일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마사루 씨는 아무것도 모르고요?"
구루메의 날카로운 지적에 마사루는 어물거리다가 말했다.
"그 비밀은 신관이나 주지 같은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거야."
"잠깐만 괜찮을까요?"
겐야는 일단 양해를 구하고 말했다.
"요코미조 세이시 선생의 탐정소설에 <팔묘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오, 그 제목은 잘 알지. 내가 전에 읽은 전 하마오 시로의 <박사저택의 괴사건>이지만."
반기듯이 말하는 마사루에게 야는 그쪽을 읽은 사람이 더 드뭅니다, 하고 마음속으로만 받아쳤다.
- "사백 년 전에 아마고 일족의 패잔무사 여덟 명이 마을에 옵니다. 처음에는 환대하던 마을 사람들도 머지않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자금에 눈이 멀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독이 든 술을 먹인 다음 최후의 일격을 가해서 돈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런데 살해당한 패잔 무사의 앙화인지, 사건에 가담한 마을 사람들이 죽기 시작해요."
- "네. 용의자를 밝혀내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밀실 수수께끼 풀이는 탐정 작가 선생에게 맡기기로 하지."
"앗..."
겐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이것으로 경찰의 수사 상황을 기탄없이 알려달라고 해도 되겠다 싶어 저도 모르게 헛된 기쁨을 느낄 뻔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런 건 이야기할 수 없네"라는 말이 돌아올 것 같아 두려워졌다.
결국은 아무런 약속도 받지 못하고 겐야는 대숲 신사의 밀실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 "하하하. 이거 나도 아직 쓸 만하구먼."
신관은 의식을 올릴 때 입는 조에(종교의식 때 갖춰 입는 흰색 의복)에다 하의 역시 하얀 하카마 차림이었다. 머리에는 에보시(신관 등이 제를 올릴 때 쓰는 검정 모자)를 쓰고 오른손에는 홀을 들었다. 지금까지 지저분한 승복을 입은 모습이었던 만큼 이때의 신관이 어찌나 번듯해 보였는지.
"봐, 똑똑히 들었지? 아가씨가 '성스럽다'고 하신다."
옷 갈아입는 것을 도운 듯한 옆의 스즈카케에게 신관이 연신 자랑을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그런 조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나무랐다.
"할아버지, 너무 들뜨지 마세요."
그렇다 한들 거기에는 조부에 대한 크나큰 애정이 있어서인지 전혀 화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몹시 귀엽게 느껴진다.
- "하에다마 님 축제를 관장하는 사람은 역시 신관님이시군요."
겐야의 확인에 당사자는 히쭉 웃었다.
"아니, 아니, 우리는 명예직 같은 걸세."
"엇, 하지만..."
"옛날 옛적에는 하에다마 님 축제도 사사메 신사의 신관이 관장했지. 하지만 배가 발달함에 따라 고즈 만에서 난파가 줄어드니까 아무리 해도 축제 자체가 형해화돼. 본래의 진혼이라는 역할도 자연히 흐려지고. 그리 되면 축제 내용도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어. 그 방면에 대해서는 신사에 남아 있는 일지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게야. 그래 결국 나 같은 불량 신관도 대충 맡아볼 수 있을 만한 축제가 됐다 이거지."
"겸손하십니다."
"아니, 아니 무슨. 그래도 축제니까 나도 옷은 갈아입어야지."
신관은 현관에서 아사구쓰(신관 등이 갖춰 신는 검은 신발)까지 챙겨 신고 다소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계단을 내려갈 때는 본인보다도 겐야 일행이 꽤나 마음을 졸였다.
"어라. 스즈카케 씨는?"
"옛날부터 여인은 축제 관계자가 되지 못하네."
겐야의 의문에 신관이 간단히 대답했다.
"소후에 군이 견학해도 괜찮을까요?"
"마을 사람이 아니면 아무 문제도 없어."
- 못 알아볼 정도로 변신한 신관이 마을 안을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넨다. 그렇다고는 하나 마을 사람 누구와도 서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은 이제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뒤에서 겐야 일행이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인가.
마을을 빠져나가자 벌써 눈앞은 고즈 만이었다. 하얀 기모노 차림을 한 마을 사람들이 몇십 명이나 이미 바닷가에 나와 있다. 확실히 여성의 모습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조차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전원이 성인 남성이다.
여인 금제인 축제는 다른 지방에도 있지만, 왜 아이들까지 제외되었는가?
겐야가 신기하게 여긴 것은 그 점만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남자들이 있는데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다. 축제가 시작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잠잠했다.
폭풍 전의 고요함일까?
그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며 겐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너무 활기가 없다. 왜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을까?
- 그 외에도 시선을 끈 것이 있었다. 크고 작은 돌로 만든 즉석 아궁이다. 거기에 불을 성대하게 지피고 가마솥을 올려놓았다. 그런 아궁이가 해변 서쪽에서 동쪽으로 여러 개 흩어져 있고, 그 앞에는 입을 다문 마을 사람이 한 사람씩 서 있었다. 게다가 아궁이 수가 기묘하게 고르지 않았다. 뿔위 쪽이 적고 뿔아래 쪽이 명백히 많았다.
"저건 소금을 굽고 있는 겁니까?"
"오호 용케 아셨구먼."
겐의 물음에 조금 감탄한 눈치로 신관이 대답했다.
- "본격적인 자연과는 달리 작은 어촌에서는 간략화된 방식으로 직접 쓸 만큼만 소금을 만드는 경우가 있거든. 우선 여러 개의 평평한 상자에 해변의 모래를 넣어. 다음으로 통에 뜬 바닷물을 그 상자에 붓지. 그러고는 상자를 천일에 말려서 모래를 건조시켜. 건조된 모래는 바닷물로 씻어. 그렇게 해서 생긴 염분이 진한 물을 저렇게 가마솥에 끓여. 그러면 소금을 얻을 수 있는 거지."
"헤. 재미있네요."
겐야는 시노 쪽을 보고 있던 얼굴을 다시 신관에게 돌렸다.
"자염도 하에다마 님 축제의 일부입니까?"
- "희한하게 또 잘 알아. 그래서 누구나 좀 외포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지 않나, 나는 그렇게 보네. 마을에 여유가 없을 때는 사사메 신사에서 돌보네. 지금 호라이 씨는 스즈카케가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고."
거기서 신관은 느닷없이 겐야를 시험하는 어조로 말했다.
"말 나온 김에 초대 호라이 씨 말인데 선생은 그 정체가 짐작이 가시나?"
겐야는 조금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혹시 <창해의 목>의 고스케 군인가요?"
"이거, 미처 알아 모시지 못했구먼."
신관은 멈춰 서더니 짐짓 고개를 숙였다.
- 단순히 기뻐하는 시노에게 겐야는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말했다.
"신관 님이 저렇게 물어보신다는 건 적어도 내가 그 인물을 알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어. 그러니까 맞히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다만..."
겐야는 신관을 향해 차분히 물었다.
"정말입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나는 신빙성이 있다고 보네."
"이대째부터는요?"
"글쎄, 그건 모르겠네. 참고로 지금의 호라이 씨는 여인일걸."
깜짝 놀란 겐야가 반사적으로 암벽 아래를 돌아보자, 허름한 오두막의 창문으로 눈 하나가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 세 척은 암초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겐야를 제외한 남자 전원이 일제히 기묘한 소리를 냈다.
도우도토 도우도토, 도우도토, 동동...
배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몹시 으스스한 소리다. 게다가 구호 소리는 첫 번째 돌 때보다는 두 번째 돌 때, 두 번째 돌 때보다는 세 번째 돌 때 하는 식으로 점점 높아진다. 그러다가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의 절규가 되더니 딱 그쳤다.
- 그런 뒤에는 해변에서 나온 조각배를 사이에 끼운 형태로 하에다마 님 입 앞에 세척이 모였다. 그러고는 유리아게 촌에서 맞이한 작은 당식선과 다루미 동굴에 모셔져 있던 망선을 커다란 당식선 좌우에 새끼줄로 묶어서 새로운 배 한 척을 만들었다.
- "저게 원래 당식선의 모습이네."
해변에서 온 조각배가 합체한 새 당식선을 끌고 고즈 만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며 신관이 겐야에게 가르쳐주었다.
"저 당식선은 더 먼 바다에서 흘려보내나요?"
"그렇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거야."
- 겐야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만약 돌려보낸 배가 되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아무런 악의도 없었지만, 신관의 대답에 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때는 반드시 마을이 멸망하겠지."
- "이거였구나."
도조 겐야의 중얼거림에 미도지마 경부가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왜 모리와키 형사님이 신관 님의 추락을 타살로 의심했는지가 제개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현장에 남겨진 사사부네에 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깨달았어요."
이렇게 대답한 뒤 미도지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경부님은 이게 연쇄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 두 개의 사사부네로?"
꽤 부정적인 말투치고는 겐야의 지적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기색이 느껴졌다.
- 그날 해 질 녘까지 이루어진 다루미 동굴 삼도천 수색에서도 가고무로 간키 신관은 발견되지 않았다. 도조 겐야는 이곳 어부들을 조금 의심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진심으로 그 강을 뒤졌을지...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그도 다루미 동굴 삼도천에는 터무니없는 공포심을 느꼈다. 외지인도 무의식 중에 두려워하는 강을 동네 어부들이 만족스럽게 뒤져볼 수 있을까? 설령 한다 해도 동굴 출입구 부근 정도지, 안쪽까지는 좀처럼 무리 아니겠는가. 신관은 분명 마을 사람들이 경모했겠지만, 그것과 이 일은 별개이리라.
- 주머니에서 만년필형 손전등을 꺼내 불을 켰다. 이 천주머니는 그와 친한 편집자들이 '괴기소설가의 탐정 7도구'라 부르는 물건으로, 그 외에도 밀초와 유황 성냥, 작은 나이프와 줄과 펜치, 노끈, 철사와 자석 등이 수납돼 있다.
- 겐야는 횃불 불빛이 닿지 않는 동굴 안 어둠을 만년필형 손전등으로 밝히면서 모래땅 경내 주변부터 조각배가 세워진 동굴 입구까지 천천히 돌아갔다. 아무리 어둠 속이라 한들 몰래 숨어 있는 듯한 사람은 없었다. 다루미 동굴 안에는 틀림없이 겐야뿐이었다.
그래도 여러 번 왕복하면서 놓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상상을 해버릴 것 같았다.
- 호라이는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줄곧 다루미 동굴을 감시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온 것은 사바오의 조각배였다. 타고 있던 사람은 물론 도조 겐야다. 어제저녁에 오두막을 방문한 겐야를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참고로 마사루도 스즈카케도 혼자였고, 그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무슨 짐 같은 것이 실려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 "다루미 동굴에 드나든 건 그, 그 세 척뿐이었다는 겁니까?"
흥분한 겐야의 물음에 무라타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미도지마를 보았지만 경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인지 "맞습니다"라고 인정했다.
"이것으로 그녀의 혐의가 더욱 굳어졌군."
미도지마의 시선 끝에는 아무리 봐도 아픈 사람으로만 보이는 스즈카케가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범행은 불가능합니다."
"본인한테 따져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애초부터 경찰은 발자국 없는 살인 같은 것은 검토하지 않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있으면 그 인물을 추궁해서 직접 범행 방법을 알아내면 그만이다. 그런 방침인 것이리라.
- "당식선이란 인신공양 할 여자아이를 태운, 보타락도해의 목조선이 아니었을까? 어업을 만족스럽게 할 수 없어서 너무나 가난했던 도쿠유 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으로서 그런 소름 끼치는 풍습을 자행했다고 한다면..."
그녀는 황급히 노트에 눈을 떨구었다.
"그럼 봉화터나 조망고개나 망루는 대체 뭘 위해 있었나요?"
"목조선을 띄워 보내는 것을 외지인에게 목격당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겠지. 특히 난바다를 지나는 것이 번의 범선일 경우는 관리가 탔을 가능성이 높아. 아무리 다른 번 사람이라 해도 상대는 관리야. 온 마을이 작당해서 인신공양하는 것이 들켰다가는 무사히 넘어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에다마 님 축제가 열리는 시기가 비정기적인 이유는요?"
"태풍을 기다렸기 때문이야. 완전히 와버리면 곤란하지만 바다가 조금은 거친 편이 목조선을 띄워 보내기 쉬우니까."
- "바닷가에서 소금을 구운 건 어째서일까요?"
"혼백을 보내기 위한 불의 일종 아닐까? 아궁이 수가 뿔위보다 뿔 밑곳 쪽이 많은 건 거기에 하에다마 님 암초가 있기 때문이야. 그곳을 목표로 해변에서 목조선을 띄웠겠지."
"축제에서 신관님과 선생님의 조각배가 출발한 곳도 바로 그 위치였죠."
"하에다마 님 축제의 참가자가 남자 뿐인 것도 이걸로 이해할 수 있어. 어머니들에게는 너무 괴로우니까."
같은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시노는 말이 없었다.
-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속담의 의미는 소후에 군도 알지?"
"그야 뭐..."
"바람이 세게 분다 → 모래 먼지가 일어난다 눈이 아픈 사람이 속출한다 → 세세한 작업을 못하게 된 직인들이 나온다 →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생계도구를 샤미센으로 바꾼다 → 샤미센용으로 고양이가 잡힌다 → 천적이 없어진 쥐가 대번식한다 → 쥐가 마음껏 통을 갉아먹는다 → 그 결과, 통장수가 돈을 번다. 이런 흐름이야."
- "그거야. 과거장에는 일반 상선 사망자 기재가, 일지에는 그것이 난파한 사실의 기재가 전혀 없었어.”
"..."
"번의 범선만 난파하고 일반 상선은 전부 무사하다니, 그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
"그럼 어째서 일반 상선에 대한 기록이 일절 없을까?"
"..."
"왜냐하면 당식선이란, 고즈 만의 암초지대와 계절의 폭풍우를 이용해 도쿠유 촌 난바다를 지나는 상선을 좌초시키고 승무원을 전부 죽인 다음 선적됐던 값어치 있는 짐을 빼앗아 극빈한 자신들의 양식으로 삼기 위한 배를 가리켰으니까."
- "봉화터나 조망고개나 망루의 진정한 역할은 사냥감을 찾는 거였어. 동시에 실수로라도 번의 범선에는 손을 대지 않기 위한 조심도 겸했지. 해변에서 공물로 올리는 소금을 구운 건 물론 아궁이 불꽃으로 상선을 꾀어들이기 위해서야. 나라모토 씨의 어선을 타고 유리아게 촌에 가서 해변에서 휘두르는 회중전등 신호와 초롱 불빛을 봤을 때 내게는 그게 사건을 해결로 이끄는 광명처럼 보였는데 실로 그랬던 거지. 고의로 난파당한 상선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악마의 빛이었던 셈이야. 그냥 횃불을 피우지 않고 소금을 구운 건 혹시라도 ... "
- "분명 인어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배가 난파한다는 전승을 가리킨 거라고 생각해. 내가 조망고개에 섰을 때 영국의 콘월을 연상한 건 무의식적으로 도쿠유 촌의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
"선생님이라면..."
"지금 문득 생각났는데, 학창 시절에 읽은 서양 아동문학 중에 콘월이 무대인 작품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벼랑 위에서 석유등을 흔들어서 마찬가지로 난바다를 지나는 배를 유인한 다음 좌초시킨다는 범죄가 그려진 이야기였지. 그 책이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다가 이 지방의 지형을 보자 불현듯 떠오르려 했는지도 몰라."
"그때 생각이 났더라면 당식선의 수수께끼를 더 빨리 푸실 수 있었을까요?"
"... 글쎄. 르네상스기의 덴마크에서 정부가 한자동맹 도시들과 안전하게 교역하기 위해 석탄을 태우는 등대를 요소에 설치했더니, 일부러 위험한 장소에 등불을 켜서 지나가는 배를 난파시키고 하물을 약탈하던 해적들이 '등대 때문에 우리 생활이 위협받는다'라며 반대했다는 일화가 있었다는 게 이제야 떠오를 정도니까."
- "당식선과 인어에 대한 해석이 그거라면,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없어지는 건 대체 어떤 이유죠?"
"마을이 극빈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팔려간 거 아닐까? 어린아이인 고스케는 아직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 등줄기가 오싹한 공포를 느낀 히데쓰구는 그 자리에서 갈팡질팡했다. 움직일 수 있는 차를 황급히 찾아 오 인방 중 하나인 시아쿠 촌 요네타니의 의원에 서둘러 달려간 다음 도쿠유 촌의 이상한 상태를 알리고 나서 겐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네 마을의 유력자들과 유리아계 촌에 남아 있던 현경 사람들이 도쿠유 촌으로 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도 이때 겐야의 뇌리에 떠오른 건 간키 신관과 나눈 대화였다.
[만약 돌려보낸 배가 되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반드시 마을이 멸망하겠지.]
- 도쿠유 촌의 불가해한 집단 실종 사건이, 같은 곳에서 일어난 괴담 살인사건과 함께 이윽고 미궁에 빠질 것이라고는 아무리 도조 겐야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후 최대의 미해결 사건으로서 후세까지 기분 나쁜 수수께끼를 남기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 [미쓰다 신조] 백사당 - 괴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1) | 2026.08.06 |
|---|---|
| [미쓰다 신조] 사관장 (0) | 2026.08.06 |
| [미쓰다 신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1) | 2026.08.05 |
| [미쓰다 신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1) | 2026.08.03 |
| [미쓰다 신조] 산마처럼 비웃는 것 (0) | 2026.08.02 |
| [미쓰다 신조]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0) | 202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