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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클레온] 예술이라 부르지 마! - 아이처럼 생각하고 창조하는 10가지 방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8. 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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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스틴 클레온 / 진주 K. 가디너
출판 : 중앙북스
출간 : 26.05.22


       


유레카.

이 책은 나의 죄책감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는 마법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너무 심심해서 뭐라도 하고 싶어질 때까지.

 

그러고 보면 최근 나는 생산성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것 같다. 

누워서 빈둥대는 걸 좋아하는데, -딱히 다른 걸 하지는 않으면서도-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일어나서 뭐든 해야 하는데'라고 괴로워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겨도, 당장 해야 할 것들은 아니라며 미루기만 하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다.

어떤 놀이든 거절하는 친구와 즐겁게 놀 수 있을까?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되, 호기심이 생기는 일에는 무조건 '예'만 하기로 정했다.

보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보고, 재미가 없어지면 바로 끄고.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즉시 하고, 지루해지면 멈추고. 

 

며칠 전 읽은 <기분 리셋>은 조금 멀게 느껴졌는데, -'기분을 좋게 유지해서 생산성을 높이자'가 '더 일해라'로 느껴졌던 게 아닐까-

<예술이라 부르지 마>는 '네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외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드러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오펜하이머>를 보고 -봐야지 봐야지 하고 3년 만에-

포트폴리오 정리도 하고

리뷰 정리도 하고 있다. 

-심지어 운동도 했다-

 

'쉬어! 놀아!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면 그러기 싫은 청개구리 심보 때문인 것 같다.

 

결과 : ... 좋은데? 

 

 


   

 

① 매뉴얼은 휴지통으로! 
예술이라 부르지도 말자 / 모를 때가 더 낫다 / 누구도 아무것도 모른다 / 혼자 터득하라

② 너무 진지하게 굴지 말라
누가 재미있게 놀고 있나 / 희극으로 여겨라 / 기꺼이 광대를 연기하라/ 많이 질문하라 / 어쩌다 보니 정착된 나만의 방식을 고수해도 괜찮다

③ 시간, 공간, 재료를 확보하라

탐험할 수 있는 시간 /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 / 널려 있는 재료들

④ 망쳐도 괜찮다!

해선 안 될 것 같은 짓을 저질러라 / 실패작을 산처럼 쌓아라

⑤ 마법을 믿어라

변장 놀이와 엉뚱한 의식 / 우주가 보내는 메시지

⑥ 뇌를 벗어나 생각하라

몸의 소리를 들어라 / 감정을 동력으로 삼아라

⑦ 아웃풋에 문제가 있으면 인풋을 살펴라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다 / 취향을 파악하라 / 우리는 모방을 통해 배운다 / 집착을 소중히 여겨라 / 도서관에 가자

⑧ 아이와 소통하라!

네 살짜리 아이가 막힌 곳을 뚫어주리라 / 아이들의 시각을 배우자 / 어린이책을 읽자 / 탐구형 어른이 되어라

⑨ 세상에 헛수고란 없다

시간낭비 끝에 기발한 작품이 남는다 / 지루함은 피트스톱이다 / '나가기' 해도 괜찮다 / 창밖으로 뛰어내릴 필요 없다.

⑩ 비전이 없어도 괜찮다

미래를 등져라 / 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자 /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자




- 내 삶에 끼어든 이 꼬마 예술가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어느 순간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나는, 정작 자신에게는 그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았을까. 유아 교육서를 읽다가 문득 이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스스로를 위해서는 하지 않지? 왜 나는 시간을 내서 놀지 않지? 나는 왜 지겨워도 참는 거지? 나는 왜 핸드폰 그만보고 밖에 나가서 놀라는 말을 아이들에게만 하고 나 자신에게는 하지 않지?

- 언젠가 가수 피오나 애플 Fiona Apple이 인터뷰에서 유아 교육서를 많이 읽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애플은 아이 가질 계획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교육서를 읽는다고 했었다. 진행자가 '그렇게 읽을 때, 애플 씨는 부모 입장이면서도 아이 입장인 건가요?'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음, 실은 항상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요."

- 부모의 자식 사랑과 견줄 만큼 충분한 사랑을 자신에게 쏟을 수 있도록, 그러한 방법을 모두가 터득하길 바라며 이 책을 쓴다. 우리 내면에 여전히 존재하는 순수하고 독창적인 아이가 자유롭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 창작을 하다 보면, 심리학자 머리 스타인 Murray Stein이 말했듯 '내 정반대 편에 서서 가장 신랄한 비판을 하고 제일 엄격하게 따져대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는다. 작업 초창기의 활력, 즐거움, 자유 같은 것들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는 꼭 부담스러울 정도의 성공을 이뤄야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목표치에 한참 밑도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미도 없고, 작업은 막히고. 그저 관성대로 손만 움직이고 있는 상태가 된다. 뒤처지는 느낌에, 꺼내 쓸 에너지도 없다. 쓸 만한 작품을 다신 뽑아내지 못할 듯한 예감이 든다. 
 

- 두 아들과 보낸 시간은 이런 감정들 속으로 가라앉던 내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독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당시에 내가 깨달은 교훈들을 적어보겠다.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어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느냐다."

-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부모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히 터득하기는커녕 매번 이게 맞나 싶어 쩔쩔맨다. 지난번에 쓴 책이 다음 책을 써주지는 않는다. 전에 통했던 방식이 이번에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건 모든 작가에게 예외 없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심지어 거장이라고 불리는 작가들에게도 말이다. 

- "누구도 아무것도 모른다."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골드먼 William Goldman이 할리우드를 가리키며 한 이야기다.

"영화 업계 전체를 통틀어, 다음에 어떤 작품이 먹힐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매번 추측하며 움직일 뿐이다. 운이 따르면 '그럴싸한 추측'까진 가능하겠지만."

- 내친김에 이야기하자면 할리우드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렇다. 하물며 세상사 전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느 것 하나를 깊이 알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살다 간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마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모두, 아무도 장인이 될 수 없는 세계에서 일평생 기술을 갈고닦는 도제와 같다."

-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의외로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올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말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도 된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아무것도 모르니 내 길을 개척해 내 방식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 벌루 Belew는 음반을 반복해 들으면서 귀로만 기타를 익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제프 백 Jeff Beck이나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처럼. 당시 벌루가 좋아하던 음반들 상당수에는 특수음향효과가 잔뜩 들어 있었으나 그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래서 결국 이소리들을 이펙터 페달이나 고가 장비 하나 없이 손가락만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 수많은 실험을 거치며 이런 다짐을 했다고 한다.

"기타로는 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소리들을 꼭 기타로 내보고야 말겠다."

이 시대의 젊은 뮤지션들처럼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면 과거의 벌루는 오늘의 벌루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 오히려 우리에게 부족한 건 그런 발견을 해낼 때의 희열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 위한 시간이다. 각종 실험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겪고, 길을 잃고, 좌절에 맞서면서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붙잡고 하나하나 가르칠 때마다
아이는 혼자 터득할, 생전 없을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빼앗긴다."

- 장 피아제 Jean Piaget


- 아이들은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안다.
재미라는 게 뭐였는지 기억은 나는가?

- 언젠가 이브 바비츠 Eve Babitz를 주제로 쓴 에세이를 읽고 있다가, 대체 왜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을 본 나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본인이 즐거워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삶 자체도, 그리고 글 속에서도!"

- 요즘 세상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에게는 재미를 어떻게 찾는 건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거리에 나갈 때면 누가 유명한지, 누가 대단한 작품을 걸어놨는지 따위의 조건을 더는 살피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는 제일 재미있게 작업하는 것 같은 인물을 찾는다. 

 

"작업에서 재미를 찾기로 했다.
내가 즐거워야 그 기분이 독자에게도 전달될 테니까."

- 에드 엠벌리 Ed Emberley

 

 

 -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범고래의 공격을 받아 배가 망가진 후, 의지할 것이라곤 구명보트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가족이 37일간 표류했던 실화를 아버지의 입장에서 적은 책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아버지에게 생존팁이라도 좀 얻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문명사회에서 얻은 성격 요소 중 실제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그 책에서 로버트슨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고도로 발달한 해학이다. 해학이라는 감각 덕분에 조난자는 그 절망적인 상황을 직시하고도 웃음을 터뜨린다. 삶의 지표였던 문명적 코드나 성향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폭파된 상황임에도 조난자는 해학에서 버텨낼 힘을 얻는다."

- 이 지혜는 내 경험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전염병과 사망 소식이 떠돌던 우울한 시기였음에도, 우리 가족의 삶을 희극으로 여길수록 상황이 나아지는 듯했다. 왁자지껄하게 웃고 흥겨워하는 소리로 집 안을 채울수록 우리에겐 활기가 돌았다.

 

- "바보 같고, 실없고 정신 나간 짓처럼 느껴지겠지만 코미디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도구다." 

코미디언 멜 브룩스 Mel Brooks는 이렇게 말했다.

"웃을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 감각만 건재하다면,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 인생을 비극이라고 여긴다면, 그 자체로 이미 실패의 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생존 희극 The Comedy of Survival>에서 조지프 미커 Joseph Meeker는 서구 문명 전체가 비극의 구조를 본떠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이미지를 정해두고 그대로 뜯어고치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고통을 견뎠다. 그럼에도 결과는 대개 처참했는데, 미커는 이 재난의 시대에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으로써 인류가 희극의 문법을 따를 것을 제시한다. 매 순간 놀이하듯 즉흥적으로 대처하고, 앞에 놓인 현실에 온전히 집중하며, 상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 예술성에 관한 이야기는 흔히 비극으로 전해지곤 한다. 자고로 예술가의 전기란, 비범한 인물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통 속에 사는 (그러다 죽기도 하는) 영웅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던가.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도 모든 역경에 맞서는 영웅적 과업에 뛰어든다. 피와 땀, 눈물을 흩뿌리며 예술적 신념을 관철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어떤 서사에 기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매뉴얼이 바뀐다. 예술을 비극이라고 여기는가? 그 말인즉슨 작품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의 엄청난 재능이 있어야 하며 고통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을 한답시고 자기 인생은 물론, 주변 사람들 인생까지 기꺼이 망가뜨리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 희극을 서사로 선택하면 어떤가? 희극의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로, 어떠한 목적이나 방향에 대한 확신 없이 우왕좌왕하며 삶을 살아가고, 그러다 어느새 어처구니 없는 사건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그들은 수없이 실패하지만 끝까지 장난기를 잃지 않고 재치에 기대어 버틴다. 애드리브가 판을 친다.

 

- 가진 걸로만 최고의 광대가 되려면, 광대의 정의를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멍청하고 경솔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스터리 Mastery>의 에필로그에서 조지 레너드 George Leonard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하는 광대는 떠돌이 광대나 궁정의 어릿광대, 타로 카드의 '근심 없는 광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타로점에서 광대는 0번 자리에 있는데 숫자)은 다양한 종류의 생산이 일어날 수 있는 비옥한 자리를 상징한다. 즉, 텅 빈 상태가 되어야만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

- 진심으로 자신을 광대로 여기고 역할을 수행하려면 상당히 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

- "대충 이런 말로 시작해 보길 추천한다.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먼 Philip Seymour Hoffman의 조언이다.

"온 힘을 다해 단순해져라. 아니, 백지가 되어라. 언젠가 도움 되거나 쓸모가 있을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받아들이려면 빈 곳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 광대 역할을 잘 해내려면, 처음부터 '모른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계속 내뱉어야 한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영감이 무엇이라 확실히 정의할 순 없지만, '모르겠어'의 반복에서 탄생하는 것은 맞다."

-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시를 쓰거나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단순한 말과 시선부터 다시금 의문을 품고 사색할 수 있도록 순수를 길러야 한다."

개러스 매슈스 Gareth Matthews가 <철학, 그리고 유년 Philosophy and the Young Child>에서 했던 이야기다.

"오래 공부했으면 아는 건 많을 테고, 어쩌면 세련된 감각까지 지니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지닌 자의 말만 믿게 되고, 그러다 보면 취향이 깃든 안목을 잃는다. 생각에 거품이 잔뜩 낀 자들이 포장해대는 번지르르한 말만 예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 의심 없이 당연시해 온 전제를 재검토하기 위해서, 모든 사회에는 아이의 눈으로 간단한 질문을 던져줄(아이의 눈이 되는 것 자체가 엄청 어렵다!) 맨발의 소크라테스가 필요하다." 

- 과학자, 예술가, 창의성이 빛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특히나 도드라지는 인물들은 정답을 많이 아는 것보다 질문하는 과정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일본의 기업가이자 도요타 창립자인 도요다 사키치 Sakichi Toyoda는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단순한 접근법을 하나 만들었는데, 마치 내 아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베껴온 듯하다. '왜?'라고 다섯 번 반복해서 묻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이 '왜요?"라고 두세 번 묻고 나니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색하고 낯설어지지 않던가? 아이들은 반드시, 몇 번이고 묻는다.)
그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망설임 없이 꺼내자.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것이 위대한 업적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연필을 쥐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그 마법 같던 드로잉 선의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펑, 하고.
창작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상당히 빈번하다. 어쩌다 보니 정착되어 버린 나만의 방식으로 아무 문제 없이 잘 해나가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서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던진 선한 의도가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어지럽히고 흔들어놓는 주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심술궂은 사람들의 비난은 무시하면 그만인데,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 많은 창작자에게 반복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그들에게는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작은 마법, 일종의 불꽃같은 것이 있는데, 대개 어설프고 해괴하며 어딘가 어긋나 ... 

-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다."

아이들이 놀이에 푹 빠지는 순간과 같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을 잊기 위해선 오히려 시간을 계속 생각하고 시간과 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목적 하나만으로 시간을 치밀하게 계획하게 될 것이다.

- 나는 스스로를 위한 '놀이 시간'을 계획하는 편이다. 정기적으로 달력의 일정 구간을 통째로 비워 노는 시간으로 정해둔다. 그 구간에는 작업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끄적거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 누군가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다 자란 어른들 상당수는 논다는 말을 일하는 것의 반대말로 생각해서 그 가치를 깎아내리곤 하니까. 하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논다'의 반대말은 '일한다'가 아니다."

놀이 연구가 스튜어트 브라운 Stuart Brown의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논다'의 반대말은 '우울하다'이다."

- 최근에 놀아본 적이 없다면, 그런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브라운은 "우리가 놀고 싶은 본능을 뿌리칠 때 수면 부족과 유사한 놀이 부족 play deficit 상태가 된다"라고 했다. 갚으려면 한참 걸리는 놀이의 빚이 생기는 것이다.

"오랫동안 놀지 않으면 마음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놀고자 하는 본능을 멀리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심신이 무너지며 번아웃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으로 삶이 불행해진다. 

- 노는 시간을 따로 낼 필요성이 와닿지 않고 더 합리적인 구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기업의 연구개발 부서에 시간으로 투자하는 셈 치면 어떨까? 생산성에 도움이 되든 말든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빈둥대며 실험하는 것이 전부인 시간. 그럼에도 요긴하게 쓰일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 '쉬는 날이 오면, 나는 아무 일도 안 할 거라고, 그저 작업실에 들러서 조금 놀기만 하다 올 거라고' 굳게 다짐하는 편이다. 대개 그런 날이 '작업해야 해!'라고 나를 채찍질한 날보다도 훨씬 더 작업량이 많다. 아무 이유 없이 콜라주와 시를 잔뜩 만들어보기도 하고, 작업노트를 끄적거리다가 끝내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운이 정말 좋은 날엔,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시간 밖에 있다.

 

"몇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질 만큼
당신을 사로잡았던 어린 날의 놀이는 무엇인가?
평생의 과업을 찾기 위한 열쇠가 그곳에 있다."


- 카를 융 Carl Jung

 


- 스와츠웰더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걸 똑같이 느낀 것 같다. 식당부스석에 파묻혀 있다 보면 마법 같은 뭔가가 일어난다는 것. 법이 바뀌어 캘리포니아주가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자 스와츠웰더는 식당 부스석을 구입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자기 집에 설치해 버렸다. 좋아하던 작업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소박한 공간에는 긴장을 풀어주는 힘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창작자 중 상당수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작업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 친구 제이슨 폴란 Jason Polan은 타코벨 Taco Bell에서 그림 그리길 즐겼고, 데이비드 세다리스 David Sedaris는 젊었을 때 아이홉 IHOP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 매트 뒷면에 글을 끄적이곤 했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가 봅스빅보이 Bob's Big Boy 식당에 상주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봅스빅보이 식당을 찾았다." 

<큰 물고기를 낚는 법 Catching the Big Fish>에서 린치는 이렇게 서술한다.

"밀크셰이크 한 잔을 시켜 앞에 두고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식당에는 안전한 공기 같은 것이 있다. 커피나 밀크셰이크를 홀짝이면서, 어느 순간 기괴하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가도 식당의 안전한 공기 속으로 기필코 돌아오고 만다."

- 창작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공간은 이런 곳이다. 마음껏 헤매고, 그러다가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곳. 이 두 가지가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안전한 구역 말이다.

- 아이들에게는 갖고 놀 물건이 많아야 하며, 그건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갖고 노느냐에 따라 아이디어의 형태가 정해진다. 흔히들 예술을, 아이디어가 먼저 생기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적당한 재료를 찾게 되는, 말하자면 일방통행로처럼 순서가 정해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재료를 갖고 놀다가 아이디어가 샘솟게 되는, 반대의 경우도 빈도가 덜하다고 볼 순 없다.

- 재료는 갖고 놀기 좋아야 하며, 나와 딱 맞는 재료를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예술가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는 창작자와 재료의 만남이 운명 같은 것이라 여겼다.

"재료는 어떻게든 말을 걸어온다. 소리를 이용하든, 촉감을 이용하든, 딱딱하고 부드러운 정도를 이용하든 관심 끌기에 성공한 다음엔 자신을 써서 뭐라도 만들어 달라고 애원한다."

운명의 재료를 만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창작이라는 일은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열망이라기보다,
뭔가가 되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것에 더 가깝다.
말하자면 재료의 계시를 받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 우리 집 애들을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할 때 창의력이 폭발하는 것 같다. 온종일 남들에게 "독서하세요! 당장 그리기 시작하세요! 곡을 써보세요!"라고 종알거리는 나조차도 집에 오면 "책 좀 그만 읽어! 그림 그리지 말라고! 음악을 왜 지금 만들어? 이 닦고 잠이나 자!"라고 외치다가 저녁 시간을 다 보내니 말이다.

- 인간의 딴짓(실없이 장난질하고, 기어이 사고를 치거나 꾀부리며 도망 다니는 모든 일탈행동)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딴짓을 하려고만 하면 전구의 불이 켜지듯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쳐흐르지 않던가? 코로나19로 모두가 집에 갇혀 지내던 시절, 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빼먹으려고 써먹은 방법 중 몇 가지는 너무 기발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학업용 노트북에 공동 작업용 구글 문서를 띄워놓고 썼다 지웠다 하면서 실시간 채팅을 한다든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미리 녹화해서 줌 화면에 눈속임영상으로 띄워둔다든지. 

- 잠시라도 그 아이들처럼 굴어보자. 꽤 즐거울 것이다. 진중한 업무는 제쳐두고 못된 짓도 좀 해가면서, 해선 안 될 것 같은 짓만 골라 해보는 거다.

- "작업실에 가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시작하려 애쓴다."

예술가 닉 밴톡 Nick Bantock의 문장을 옮겨본다.

"시켜서 하는 일이라거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뒤로 미뤄둔다. 단 20분이라도,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나는 한 술 더 떠서 해선 안 될 것 같은 짓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제안하려 한다. 눈을 감고, 이제껏 살면서 만나본 인물 중에 제일 깐깐하고 꽉 막힌 윗사람 한 명을 떠올려보자. (그게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실망시키거나 기겁하게 할 작업의 목록을 쫙 뽑아보는 것이다. 그중 하나를 골라 타이머를 20분으로 맞추고, 만들기 시작하면 된다. 

- 각자의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유치한 짓을 저지르자. 세상 바보 같고 틀려먹은 것처럼 보이는 짓 하는 동안 아주 신날 것 같은 짓을 하자.

- 목록을 떠올리기가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세상만사 따분하고 심드렁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시간을 때우려고 해 본 몇 가지 딴짓을 적어본다. 공책 한 페이지가 가득 차도록 밴드 로고들을 낙서해대기. 잡지에서 손에 잡히는 페이지들을 한 움큼 오려내어 공책에 덕지덕지 붙이기. 취향 참 이상하다고 쳐다볼 만한 음악을 일부러 골라 시끄럽게 틀어놓고, 거울 앞에서 도취한 채 기타 치는 시늉하기.

그렇게 놀고 나면 기분이 어떤지, 남은 하루 동안 그 즐거운 기분을 작업에 끌어올 수 있을지 살펴보자.

- 이쯤 되면 아이들이 진즉에 깨우쳤을 진리를 당신도 깨달았을 것이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들으려 노력하는 건 하나도 재미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은 혼날만한 짓을 할 때 훨씬 더 즐겁다.

- 두 아들과 놀면서 자연히 깨닫게 된 진리가 하나 있다. 창조적 영감은 개인이 소유한 조건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들어가 머무는 장(場)의 형태에 더 가깝다는 것. 영감에 맡긴다는 말은 결국 내면을 뒤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는 기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 된다.

-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창작 놀이가 벌어지는 시공간을 '마법의 원 magic circle'이라고 불렀다. 마법의 원은 우리를 임시 세계(일상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가상의 놀이 공간)로 보내는 차원 이동게이트 같은 존재다. 

- 예술가는 어린아이와 닮았다. 이들 관점에서 상상과 현실 사이에는 미세한 선이 하나 그어져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기운과 눈앞의 실재를 나누는 장막은 투명하리만큼 얇고, 예술가는 이 두 세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창작의 장으로 들어갔다가도 사뿐히 복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각 세계의 대기권을 지날 때마다 이동 자체가 꽤 덜컹거린다는 것. 운이 좋아 덜컹이지,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 이 급격한 전환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바꾸기 위해 나만의 의식을 만들어볼 수 있다. 의식은 엉뚱할수록 좋다. 그래야 별다른 저항 없이 놀이의 장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의식들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원을 그려준다. 장난기 많은 자신 곁으로 데려다주는 차원 이동 게이트가 되어주는 것이다.

- 변장 놀이를 적극 추천한다! 의상의 힘은 꽤 강력하다. 앞치마든 점프슈트형 작업복이든, 우리의 몸은 평소와 다른 옷을 걸칠 때 그 소재를 즉각적으로 느끼고 한판 벌일 시간이라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놀이' 시간이 되면 의상을 입고, 멈출 시간이 되면 벗는 것이다.

- 배우가 소품을 이용해 역할에 몰입하듯, 우리도 소품을 이용해 보자. 작업하는 공간에 둘 만한 부적을 하나둘 모아보는 것이다. 행운을 가져다줄 장난감도 좋고, 사연이 깃든 특별한 물건도 좋다. 한 독자는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미술 도구 중 일부를 쓰는데, 작업할 때 할아버지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나 역시 먼저 떠난 친구의 영혼이 붓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 나는 작업실 분위기를 살짝 으스스하게 연출하기를 좋아한다. 으스스한 초자연적 요소들은 우스꽝스러운 의식의 사촌 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상의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벌레인 나는 책점 bibiomancy을 치기도 한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다음 할 일에 대한 계시를 받는 것이다. 오직 이 목적 하나를 위해 작업실에 종이 사전 한 권을 두기도 했다. 뭘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때는 눈을 감은 채 무작위로 책을 펼쳐 손가락으로 콕 찍고는 눈을 떠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부분을 읽는다. REM의 보컬인 마이클 스타이프 Michael Stipe도 책을 무작위로 펼쳐서 보이는 단어로 밴드 이름을 정했다. 방법이 무엇이든 먹히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든 창조적 영감에 몸을 맡기면 된다.

 

- 자기만의 엉뚱한 의식으로 승부를 보거나, 다른 예술가들이 용기 있게 고백한 비법들을 몇 개 훔쳐 와도 좋다. 그림책 작가 에드 엠벌리 Ed Emberley의 방법을 좋아하는데, 직접 시도해보진 못했다. 엠벌리는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소파에 누워 '발로니 샌드위치!'를 세 번 외쳤다고 한다.

 

"우주는
우리 인간이 통찰력을 키워 알아봐 주길 침착하게 기다리는
온갖 마법 같은 일로 가득하다."

- 이던 필포츠 Eden Phillpotts

 

 

어른이 되는 순간이 오거나 누군가의 입방정 때문에 또래보다 먼저 깨닫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은 마법을 믿는다. 특히나 아주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온갖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데, 무생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일상의 모든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즐겁게 놀면서 맘껏 상상하고, 때로는 다른 존재가 된 척 흉내도 내본다. 이미 세상이 신비로운 마법으로 가득한데, 이런 것들이 대체 얼마나 쉬울까?

 

- 아이들은 마법을 믿기에 어디서든 마법을 찾아내며, 마법을 믿는 예술가들도 아이들과 똑같이 마법을 탐지해낼 수 있다. 작가 헨리 밀러 Henry Miller는 예술가를 안테나를 지닌 사람, 즉 '이 세상을 둘러싼 기류에 자신을 연결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니 우리도 안테나를 세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 안테나를 높이 끌어올려 우주가 보내는 메시지를 수신하고, 그 안에서 징후를 읽어내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감각들을 옮겨내자. 

- 아이디어가 대체 어디에서 오길래 이러는 걸까? 우리가 세상을 창조적 영감을 발들일 공간으로 이해하기로 했듯 아이디어 또한 우리가 소유하는 사물의 개념보다는 우리를 방문하는 손님으로 여기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뮤지션들이나 작곡가들은 특히나 이런 '마법적 사고'에 밝은 편인데 닉 케이브 Nick Cave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내면에 숨어 못 나오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해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 아이디어를 내 안으로 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되어있다면 그 아이디어가 다른 집을 방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른의 눈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마법적 사고는 정말로 효과가 있다.

 

- <빅매직 Big Magic>에서 엘리자베스 길버트 Elizabeth Gilbert는 이렇게 말했다.

"망상에 기대어 살아야만 한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어차피 그래야 한다면 도움이 되는 망상을 고르는 일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 세상 모든 일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을 얻기 위해 호기심을 증폭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사실은 우주가 내게 보내는 신호이며, 조사해야 할 단서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마법 모드'로 지내다 보면 우연히 벌어진 일에서도 의미를 찾게 된다. 세상에 그저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지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은 영적인 감각을 타고난 존재라
무엇을 보아도 낯설게 느끼고 신기해한다.
그런 감각은 어른이 되고 세속적 삶에 안주하게 되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 재닛 맬컴 Janet Malcolm

 

 

-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쥘과 오언은 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두 아들은 남들이 일부러 보여주는 것들엔 관심이 없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이라든지 영화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양질의 인풋을 고르고 골라 수없이 들이밀어도 아이들은 좋아하는 척조차 해주지 않았다. 실은 내가 좋아하는 티를 내면, 그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더 질색했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의 이런 태도가 바람직한 방향이긴 했다.

- 나는 좋아하는 책과 음악, 예술, 영화를 스스로 찾아 즐기는 두 아이의 방식이 진심으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 우리는 성장하는 내내 '좋은 취향'을 정해주는 말들을 듣고 자라서 자기가 정말로 뭘 좋아하는지는 혼동하게 되기가 쉽다. 다른 사람이 좋다는 말을 하면 따라 좋아하기가 일쑤고, 그것도 아니면 취향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려면 뭘 좋아하는지부터 확실히 알아야 한다.

"'나는 대체 뭘 좋아하는 걸까?' 아티스트들이 하는 일 대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내게 이 질문은 살면서 궁금해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북극성 같은 존재다. 언뜻 보면 사소한 질문 같아도, 결국 '나는 어떤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 나도, 내 취향을 모르겠을 때 작업이 제일 힘들어진다. <뉴욕타임스 The New York Times> 같은 매체에 좋은 평가가 실리거나 지인들이 추천해 준 책들을 열심히 읽다 보면 나만의 취향에서는 훌쩍 벗어나 있을 때가 많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좇느라 시간을 쏟다 보면 어느 순간부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 올빼미 한 쌍이 새끼 올빼미를 키워내는 모습을 지켜보자. (추신: 나는 이걸 모두 해봤지만 강요하지 않겠다.)
내 모든 걸 걸어보자.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집착은 느닷없이 나타난 것만큼이나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금세 다른 관심사로 채워진다.
어느 날은 올빼미였다가도, 그다음 날은 자전거다. 이 모든 탐색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재능은 값어치가 없다.
집착이 더 중요하다.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  존 발데사리 John Baldessari



- 슬하에 자녀가 없거나, 있지만 같이 놀 상황이 안 된다거나, 둘 다 아닌데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혼자 있고 싶다거나 이런 경우라면 아이 없이 어린 시절에 접속할 간편한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동네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는 아동 도서 코너를 방문하는 것이다.

- <다 커버린 당신이 여전히 어린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Why You Should Read Children's Books, Even Though You Are So Old>에서 저자 캐서린 런델 Katherine Rundell은 '어린이 책을 읽으면 잃어버렸단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던 보물을 되찾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 "어린이 책을 펼치는 행위는 어떠한 공간에 진입하는 것과 같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이의 눈으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런델은 이렇게 적었다.

"되돌아가는 길을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이 거대해 보이고, 매일매일 신기한 것 투성이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길. 아직 생각의 가지가 잘리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상상력을 흔해빠진 부록처럼 여기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길 말이다."

- 런델은 어린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숨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익숙한 현실에서 낯선 것들을 찾아내는 훈련에 가깝다고 말한다.

"불가능, 또는 기적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기억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두 겹의 눈을 얻는 것이다. 지금의 눈과 어린 시절의 눈을 모두 써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심장박동, 일출과 일몰, 달의 위상 변화, 계절의 흐름 같은 것들 말이다. 자연에는 직선도 없거니와 그 리듬도 한 방향으로 뻗지 않는다. 자연의 리듬은 둥글게 순환하고 물처럼 흐르며 끊기는 곳 없이 이어진다. 날카로운 모서리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시작과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 달력과 시계를 발명한 인류는 시간을 쪼개고 잘라 수량화된 덩어리들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 해, 한 달, 하루, 한 시간, 1분, 1초... 이러한 현대사회의 시간은 그 목적이 산업화와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맞춰져 있다. 이 개념 아래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늘 부족해서 허덕이게 되는 귀중하고 값비싼 자원이다.

- 두 아들과 놀다가 정신 차려 보니 내 시간은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시계와 달력이 만들어낸 생산성이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멀어지는 방향으로 말이다.

"시간은 본래의 모습대로 느리게 흘렀고, 하루하루가 아득히 길고 여유로우며 자유로웠다. 어린 날의 여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에드워드 애비 Edward Abbey가 집필한 <사막의 고독 Desert Solitaire>에서 발견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드디어 충분한 시간이 생긴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괜찮을 만큼 아주 가끔만 할 일을 해도 좋을 만큼."

나와 두 아들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므로, 같이 낭비했다. 아주 달콤하게.

- 현대사회는 시간 낭비를 대역죄라도 짓는 것처럼 취급하며 가만히 쉬고 있으면 이상하다는 눈으로 흘겨본다. 그들 시선에 일 잘하는 사람은 곧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창작자들은 늘 바쁠 수가 없다. 작정하고 온종일 창작자들을 지켜봐도, 관점에 따라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고 비칠 수도 있다. 아니면 뭔가를 하긴 하는데, 학창 시절에 교실에서 했다가는 크게 혼날 일들만 골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멍하니 딴생각하고 있는가 하면 한시도 가만히 못 있고 꼼지락댄다. 종이에 뭔가 끄적이고 있어서 봤더니 심심풀이 낙서일 뿐이고, 창밖엔 뭐가 있는 건지 시선이 자꾸 그리로 간다. 얼핏 봐서는 뭐라도 진행이 되긴 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 하루가 끝나고 한 달이 가도, 때로는 1년이 넘을 때까지도 어떤 시도가 시간만 축내는 일이었고 어떤 실험이 도움이 된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일이라도 훗날 돌아보면 꼭 필요했던 과정인 경우가 꽤 많다. 

-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How to Do Nothing>의 저자 제니 오델 Jenny Odell은 학기마다 학생들을 만나면 이렇게 조언한다고 적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처음부터 예상 소요 시간의 두 배를 잡아두는 게 좋아.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고 느끼는 시간이 반일 테니까."

- 낭비할 시간을 확보하자. 머릿속에서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지우는 걸 추천한다. 빠르든 느리든 자기가 원하는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헛짓 그만하고 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은, 당장 할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맞서 싸우자. 당신의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진심을 다해서 낭비하길 바란다.

 

 

 




- "놓아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필요를 느껴 찾아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다."

고든 매켄지 Gordon MacKenzie가 <거대한 털 뭉치 주위를 맴도는 궤도를 찾아서 Orbiting the Giant Hairbally>에 적은 내용이다.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펴게 되면서 당신은 다른 가능성을 두드릴 자유를 얻었다."

- 세상에 헛된 경험은 없다. 정말 맞지 않는 일이라면 과감히 때려치우자! 그 일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면 이제는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그만두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포기의 가치를 몸으로 익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내려놓는 것이다. (바라건대 이 책은 아니길!) 책을 5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별 감흥이 없다면 미련 없이 덮고 다른 책을 찾자. 진도도 안 나가는 책을 붙잡고 뭉그적대는 것보단, 똑같은 시간 동안 재밌는 책을 술술 읽어나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것들부터 꾸준히 내려놓는 법을 연습하다 보면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도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영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기민하게 반응하고, 재빨리 올바른 방향을 찾아 핸들을 꺾을 수 있다.

 

 

"우리는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는 내려놓고, 확신이 없을 때는 포기한다.”

- 애덤 필립스 Adam Phillips



-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은 아니다. 오늘 잘 통했던 방법이 내일은 전혀 먹히지 않을 수 있다.

- 이제 좀 알 것 같더니, 어김없이 당혹감을 마주하게 된다.
곧 벌어질 일이라고 그 무엇을 상상했든, 현실에선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예술가는 우리를 상상력의 한계 너머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본 적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가볼 생각조차 못 했던 영역으로 대담하게 발을 내디딘다. 당신도 그 길잡이가 되어보고 싶다면, 낯선 땅으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지도에도 그려지지 않은 곳을 탐험해야 한다. 가고 싶지 않았던 험난한 길을 만나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머릿속에 든 건 싹 다 잊어라. 어린 시절처럼 무지의 상태로 돌아가자. 만족스러울 만큼 시간과 공간, 재료를 확보하라. 세상살이의 모든 부담과 책임을 따돌리고 숨바꼭질을 즐겨보자. 실패작을 산처럼 쌓아라. 마법을 믿어라. 뇌를 벗어나서 생각하라. 집착을 소중히 여겨라. 필요하다면 아이를 한 명 빌려라 삶을 희극으로 여겨라. 유머 감각을 지켜내라. 예술이라 부르지 말고, 뭐라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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