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루젼 2021. 7. 2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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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루이스 캐럴 / 휴 호턴 / 이소연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출간 : 2010.02.18


 

여러 번 읽어 익숙하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나는 어린 굴들과 험프티 덤프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린 굴들은 디즈니의 영향인 듯)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섞인 부분들을 정리할 겸 이번에는 텀을 조금 두고 읽을 생각이다.

 

한국어 판은 펭귄 판의 원서에서와 같이 평론가 '휴 호턴(Hugh Haughton)'의 서문과 주석을 그대로 싣고 있다. 

이 책으로 골랐던 것은 사실 삽화가 '존 테니얼(John Tenniel)'의 그림과 함께 읽고 싶어서였는데 생각보다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사진가로서의 '루이스 캐럴'과 그의 취향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들이 있지만, 나는 수필 원고 정도로 알고 있었던 초본 <땅속 나라의 앨리스>나 <무대 위의 앨리스> 등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이 판본을 읽었었다면 조금 더 빨리 찾아 읽지 않았을까 싶어 조금 아쉽다. 

 

앨리스는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이미지로 유명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명하기 힘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들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너무 예전에 허투루 읽었던 것 같아 <주석 달린 앨리스>도 다시 읽을 생각인데, 아직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연결을 기대해본다.

 

순수하게 '아이만을 위한 이야기'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것이 원형을 담고 있느냐의 논의와는 별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가 그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같은 원리로 성인들에도 충분히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 "넌 시들기 시작한 거니까. 시들기 시작하면 꽃잎이 너저분해지는 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장미꽃이 말을 이었다. 앨리스는 이런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질문을 던졌다.

 

- "... 사람들이 몸을 굽혀서는 '다시 일어서 보렴!'이라고 말해도 소용없어. 난 고개만 들고선 이렇게 말할 거야. '그럼 지금 내가 누구죠? 그걸 먼저 이야기해 주세요. 만약 그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어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계속 여기 주저앉아서 다른 사람이 되길 기다리겠어요.' 그런데... 아. 세상에!"

 

- 그러고 나자 앨리스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여기 있습죠! 사과를 캐려고 땅을 파고 있습니다요, 나리!"

(정원사로 나오는 패트가 아일랜드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봐서 이는 분명 아일랜드식 말장난일 것이다. 프랑스 사람이라면 '땅에서 나는 사과', 즉 '폼 드 테르' (불어로 감자라는 뜻)를 캘 수 있을 것이다.)

 

- "음, 아직 모르실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언젠가 번데기로 변했다가 나비로 변하게 되실 텐데, 그때가 되면, 좀 괴상하다고 느끼실 거예요. 그럴 것 같지 않으세요?"
"아니, 전혀."
 

- "노크를 해도 소용이 있을 턱이 없지.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는 내가 문에서 봤을 때 너랑 같은 쪽에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안이 무척이나 시끄러워서 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 "노크하는 것도 어찌 보면 괜찮을 수도 있지. 우리 사이에 문이 있다면 말이야. 예를 들어 네가 안에 있는데 노크를 한다면, 나는 너를 바깥으로 나가게 해 줄 거야."

 

- "쯧쯧, 얘야, 모든 일에는 교훈이 있는 거란다. 찾아내기만 하면 말이지."

 

- "그렇구나. 그것의 교훈은 이거야. '아,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 그것은 사랑이도다. 사랑이도다."
"누군가 말하길, '세상이 돌아가는 건 모두가 각자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라고 하던데요."
앨리스가 속삭였다. 
"아, 그래! 둘 다 똑같은 뜻이구나."

 

- "그것의 교훈은 '의미를 중시해라. 그러면 소리는 알아서 따라온다.'야."

(리뷰자 주 : 정말 의미가 소리에 우선하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실제로는 정확한 어법과 발음을 매우 중시했다. 즉 소리도 '정확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네 말이 맞아. 그리고 이것의 교훈은 '네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대로 행동하라.'라는 거지. 더 간단히 말해 보자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어떤 모습으로도 스스로를 생각하지 마라. 이전의 너의 모습, 이전의 그랬을 법한 너 자신의 모습은 남들이 본 그보다 더 이전의 너의 모습 말고는 다른 것일 수가 없으니까."

(리뷰자 주 : 보이는 모습대로 행하라는 보이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까? 과거부터 남들이 보아온 대로, 자신이 쌓은 평판 그대로가 곧 자신이라는 것 같기도 하고, 왕년에는 어떠했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이렇게 모든 것에서 교훈을 찾으려 한 공작부인이 하트 여왕의 뺨을 때린 것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돼지 아기 장면부터 떠올려보면 더욱 기이하다.)

 

-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더 커지는구나.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정직한 사람이 보통 하듯이 서명을 했을 것이 아니냐."

 

보리사탕

단 건 잘 못 먹지만 많이 달지 않다고 하니 좀 궁금

 

 

더보기

  - 앨리스 책을 읽는 것은 왜곡된 서사와 무의미한 설명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독자들은 끊임없이 앨리스와 왕이 각각 채택한 서로 모순되는 두 입장, 즉 앨리스처럼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과, 왕처럼 '어떤 의미'라도 해독해 내고자 시도하는 입장 사이에 붙들리게 된다. 의 미를 잃는 것처럼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아무런 수고 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동시에 기쁨을 가져온다. 하지만 훌륭한 난센스 언어들이 그러하듯, 의미를 잃는 것 역시 의미를 발견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 캐럴과 같은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마틴 가드너는 붉은 여왕 학파의 대표자로서, 그가 쓴 험프티 덤프티적인 <주석 달린 앨리스>는 지성 세계 전체를 참고 삼아 앨리스 책을 해석하고, 역으로 앨리스 책을 토대로 지성 세계 전체를 풀이한 유일무이한 저작이다.

 

- 나보코프는 이 책을 러시아어로 옮겼고, 프랑스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초현실주의 꿈의 주요 교본으로 채택했으며, T. S.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W. H. 오든은 이 책의 애독자였다. 최근에는 피터 애크로이드가 이 책을 소설의 모범으로 칭하기도 했다. 앨리스 책은 단순한 면에서는 아동소설이지만 실험적인 면에서는 모더니즘의 등장을 예고하는 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 그는 "연대기 편집자는 이 날을 흰 돌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디에스 미라 빌리스'라고도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 "전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쨌든 난 내가 말하는 걸 생각해요. ㅡ어차피 그거 둘 다 같은 거잖아요."
앨리스가 급하게 대답했다.
"전혀 같지 않아! 아니, 차라리 '내가 먹는 걸 본다'랑 '내가 보는 걸 먹는다'랑 같은 거라고 말하지 그래.”
모자 장수가 말했다.
"아니, 차라리 '내가 가진 걸 좋아한다'랑 '내가 좋아하는 걸 가진다'랑 같은 거라고 말하시지."
3월 토끼가 덧붙여 말했다.

 

- "M으로 시작하는 것들, 그러니까 쥐덫(Mouse-traps), 달(moon), 기억(memory), 많음(muchness) 같은 거 말이야. 말할 때 '엇비슷한 것들(much of muchness)'이라고 말하잖니. 넌 '비슷함'을 퍼내는 걸 본 적 있니?

(리뷰자 주 : 우물 안에서 퍼올리는 것들. 물 위에 비친 것, 위험, 부정형, 깊은 무의식 등 의미심장하다.)

 

- "그리고 모두들 어찌나 크게 싸워대는지, 자기가 말하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예요. 특별히 규칙 같은 것도 없어 보이더라고요. 규칙 같은 게 있다 해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가 다 살아서 돌아다니는데,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몰라요. 예를 들어, 다음번에 쳐야 하는 아치가 경기장 저 끝에 가 있다니까요. 여왕님의 고슴도치를 크로케에서 써야 하는데, 지금 그 녀석은 내 고슴도치가 오는 걸 보더니 도망가 버리고 없어요.”

(리뷰자 주 : 현실 세계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 아름다운 수프, 맛난 초록 수프가 
뜨거운 수프 그릇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네! 
저렇게 맛 좋은 수프에 누군들 안 덤빌 수가 있을까?

(리뷰자 주 : 초록색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 <영국의 민요와 자장가 동요>(1849)(캐럴은 할리웰의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를 쓴 동요 수집가 J. O. 할리웰은 서문에 '고대 자장가 동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 서문에서 "하찮은 어린애들 책이라 해도 중세 로맨스에서부터 내려오는 책인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오래된 고대 신화에서 연유한 이야기인 경우도 종종 있다. 가장 단순한 동요도 오늘날 독일, 덴마크, 스웨덴에서는 여전히 불린다. 그 노래들은 놀랍게도 그들의 위대했던 고대와 먼 기원을 드러내고 있다."

 

- "필연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란 없다. 하나의 단어는 화자가 그 단어를 통해 의미하는 바를 뜻하며, 청자가 그 단어를 통해 이해하는 바를 뜻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나는 친구를 만나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그 친구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다른 언어로는 이 단어가 어떤 끔찍하고 이상한 개념을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 고위 중산층 집안의 아이였던 앨리스 역시 캐럴처럼 '바른 영어'를 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언어와 논리의 규칙을 깨는 난센스의 즐거움은 언어의 관례적인 정확성을 존중하는 믿음에 근거한다. 아이서 바우먼은 캐럴이 얼마나 "정확한 발성법을 중히" 여겼는지를 회상한 바 있기도 하다. (아이서 바우먼, <내가 아는 루이스 캐럴>, 런던, 1899, 88쪽) 1892년 여동생 메리에게 쓴 편지에서 캐럴은 메리가 문법을 틀리게 쓴 글을 두고 나무라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른 영어와 정갈한 글쓰기는 고급한 기술이란다. 그건 규칙을 외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훌륭한 영어로 쓴 글을 많이 읽어서 음악적으로 듣는 '귀'를 훈련할 때만 습득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내 생각에 요즘 책에 나오는 틀린 영어들은 대부분 신문 때문인 것 같구나. 요즘엔 정확한 영어로 쓴 소설 찾기도 어찌나 어려운지! 정확하게 쓴 소설을 찾으려면 50년도 더 넘게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게다. 이게 바로 내가 오래된 책들을 좋아하는 이유란다. 월터 스콧, 제인 오스턴, 에지워스의 작품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이 쓰는 영어는 매우 정확하거든, (<루이스 캐럴의 편지> 2권, 916)

 

- 앨리스를 위해 쓴 수고 판본에는, 앨리스의 사촌들의 이름인 거트루드와 플로런스로 나온다. "정말 플로런스로 바뀐 게 틀림없나 봐!"를 "정말 메이벌로 바뀐 게 맞나 봐!"로 바꾼 덕분에 리델 집안이 당황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지만, 지명 이름을 딴 농담의 맛을 살릴 수는 없었다.

(리뷰자 주 : 그 외에도 크로켓 채, 버섯의 상하와 좌우 등등 세세한 부분들이 변했다.)

 

-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어느 부인 댁을 방문했는데, 그 댁 남편분께서는 간헐적인 정신착란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지요. 그래서 고통과 관련된 화제는 모두 피하기를 원했지요. 하지만 어느샌가 제가 그만 저도 모르게, 미쳐버린 한 남자에 관한 우스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 됩니까!
 

- 앨리스가 되풀이해서 하는 질문인 ''난 누구지?'라는 질문의 다른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앨리스를 "뱀'으로 보는 비둘기의 터무니없는 분류는, '뱀'을 자신이 낳은 알을 먹는 동물로 정의하는 점을 볼 때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 예쁜 정원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돼." 앨리스는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결심한다. 아마도 이 장면의 배후에는 창세기에 나온 최초의 '아름다운 정원'과 '뱀'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앨리스는 성 비둘기 이야기에서처럼 자신이 나무에 있는 뱀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둘기 입장에서는 앨리스를 약탈자로 보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살면서 많은 여자애들을 봐왔지만, 그렇게 긴 목을 한 애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비둘기는 이렇게 말한다. 윌리엄 엠프슨은 이 모든 이야기가 앨리스를 기이한 남근적 이미지로 보이게 한다고 말한다.

(리뷰자 주 : 혹은 상승하는 뱀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뱀은 아래에서 오는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까지 내려오다니, 하고 불평하는 비둘기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 궁금한 점 : 우리가 꿈을 꿀 때면 으레 그러하듯 희미하게나마 현실을 의식하면서 잠에서 깨려 애쓰기도 하고, 또 일상에서는 미쳤다고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광기를, 잠에서 깬 현실과 꿈속 세계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꿈을 꿀 때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잠은 그 자체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현실처럼 꼭 실제와 같은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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