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한국영화감독조합] 데뷔의 순간 - 영화감독 17인이 들려주는 나의 청춘분투기

일루젼 2021. 10. 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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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국영화감독조합
출판 :  푸른숲
출간 :  2014.11.28


내가 샀을 법하지 않은 책이 발견되면 당황스럽다.

<데뷔의 순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GV 빌런 고태경>과 연결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아카데미와 도제, 예술과 상업의 경계.

그리고 내가 보는 것을 타인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열정 - 그리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

가장 주된 감각은 시각적 자극이겠지만- 영상은 구도와 색채를 넘어서서 음악, 대사, 서사와 장면 배치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제각각의 심상을 남긴다. 감각은 공유될 수 없지만 매체는 공유될 수 있다. 

 

17인의 감독들이 자신의 데뷔작과 영화 철학, 영화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입담 좋게 풀어낸 글이다. '영화를 하기로 했으니 이번 인생은 망쳤다'라며 섣불리 영화판에 뛰어들지 말라고 만류하는 듯 하지만, 결국 가만히 읽어보면 '나는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들이다. 내가 어떻게 (영화를) 만났고, 어떻게 (영화와) 연애를 해왔는지,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절절한 속풀이들이다. 

 

영화 산업에는 치명적인 시기일 것이다. 호황기에도 '충무로의 연출부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세계 7대 미스터리'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더욱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환경, 그 이전에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찾을 수 있는 환경은 꿈만 같은 이야기일 뿐일까? 빛의 춤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본다. 

 


   

 

- 물론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막 잘 되지는 않았다. 그게 가장 큰 아이러니다. 한눈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파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그 우물이 마음먹은 대로 잘 파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 그런데 문제는 그 어떤 시도라도 해봐야 그걸 알 수 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영화 일'이라는 게 책상 앞에서 머리를 굴리는 것만으로는 그 세계를 조금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옆에 동료를 두기를 권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남들보다 더 힘들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거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더 불안했고 막막한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나눌 수 있는 동료와 자신을 발전시켜줄 수 있는 경쟁자들을 옆에 두어야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극복해내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거다. 언제나 주변에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 

 

- 어떤 결심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 살다 보면 선택의 기요틴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선택에 따라 내 목은 잘리게 돼 있다. 매번 영화감독이 처한 상황도 그런 것 같다. 기요틴에 목을 들이밀고 칼날이 떨어지기 전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지고 긴장되지만, 어차피 결과가 나오면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 또한 사라진다. 중요한 건 미련 없이 그다음을 준비하는 태도다. 당신은 진정 그 순간을 즐길 준비가 돼 있는가. 

 

-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건 그냥 흘러가버린다. 돌 위에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남는다. 영화를 찍는 것은 돌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다.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영화를 찍어야 한다." - 허우 샤오시엔

 

- 지금 당신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살면서 결코 '버리는 시간'이란 없다. 당신이 무의미하다고 느낄지도 모를 그 시간이 바로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일 수 있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 2006년 작고한, 거의 80세 넘어서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영화는 머리나 가슴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다리로 찍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야외 촬영이나 밤샘 작업이 많은 영화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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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하는 17명의 영화감독을 만나면서, 전공과 무관하게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저마다 어울릴 법한 친구와 교육기관을 찾아다닌 이야기부터, 실제 '데뷔'라는 이름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기까지 하염없이 시나리오를 써나가고, 애초에 꿈꿨던 야심과 욕망을 포기할 수밖에 었던 좌절의 기록까지 생생하게 들으면서, 뭔가 꿈을 잃어버린 것 같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런 가운데 단체행동으로 다 함께 연출부를 그만두었다가 혼자 몰래 복귀하며 곽재용 감독 등에 칼을 꽂았다고 회고하는 박찬욱 감독, 세상에 알려진 자신의 데뷔작인 단편 <백색인> 앞에 숨겨진 인형 애니메이션이 있었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봉준호 감독, 무려 칸영화제에도 초청됐던 자신의 데뷔 작이 '당시에는 투자사도 배급사도 버린 '쓰레기'의 삶을 살았다'고 이제야 털어놓는 장철수 감독의 사연 등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 책에 실려 있는 것처럼, 오래전 풋풋했던 사진들과 함께 만나 본 그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소중한 깨우침의 시간을 줬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은 "한 우물만 판다고 해서 그 우물이 잘 파지는 것은 아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완 감독은 "감히 '예술'을 떠올리기 힘든 생존의 절박함으로 인해 내게는 사춘기라는 게 없었고, 그것이 내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의 박찬욱 감독은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다른 그 어떤 것도 내 시야에 들이지 않았다",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영화는 결국 나라는 인간의 '속병'을 치유하는 일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은 "인생에서 시행착오를 낭만이라 부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기가 바로 당신의 청춘이다", <키드캅>의 이준익 감독은 "픽사리의 연속이야말로 진짜 인생이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은 "대부분의 이십 대 시절은 원래 바보 같고 거지 같으니,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부딪혀라"라고 했다. 배움 이상으로 훈훈했던 것은, 17개의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는 상상의 우정 때문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자책하던 그 순간,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순간이 있듯, 가슴 떨리는 데뷔의 순간이 모든 감독들에겐 존재한다. 그것은 설렘과 매혹, 무한한 끈기와 지옥 같은 좌절감,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와 과도한 확신, 그리고 불타는 열정과 미친 애정이 동반된 광신도적 순간이다. 그런 초자연적 경험을 겪으며 몇몇은 영광스럽게, 대부분은 상처투성이로 첫 번째 데뷔작을 찍고 영화감독으로 '입봉' 한다. 하지만 앞길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보장된 것은 전혀 없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속한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어느 날 갑자기 영화의 신으로부터 호출을 받고 창작의 자유와 기쁨이란 빨간약을 삼킨 채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 산업의 밑도 끝도 없는 매트릭스로 뛰어든 대한민국 영화감독들이 모인 단체다. 거창한 대의명분을 지닌 결사체도 아니고, 으리으리한 사무실이나 조폭 같은 단결력도 전혀 없다. 솔직히 이익 단체다. 하지만 감독 개인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영화를 감독 혼자서 절대 찍을 수 없듯이, 올바른 영화 생태계의 조성 없이는 제대로 된 영화가 세상에 나올 리 없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감독들의 올바른 역할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으싸으싸 하며 첫 단추를 끼웠지만, 나아가 영화계 모든 스탭과 시스템의 합리적 구조, 아울러 관객들이 다양하고 매력적인 영화를 올바른 극장 환경에서 볼 수 있도록 땀 흘리는 것이 진정 제대로 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칸에서 화려한 레드카펫을 밝은 유명 감독부터 전세방을 빼서 영화를 찍은 인간 승리의 감독까지, 현재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우리나라 영화의 감독들이 속해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아직 별로 거창하진 않지만 앞으로 혹시 대단한 조직이 된다 해도 늘 잊지 않을 것이다. 각자 이 악물고 데뷔작을 찍던 그 처음 순간을! 설렘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기억을 헤집어 이 책을 쓰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 쉽게 말해 이 영화판이란 게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단계를 밟아나가는 도제제도도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혼 들리는 가운데 무게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또 지금이야 촬영감독, 조명감독이라 부르지만 그때만 해도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라 불리는 사람은 오직 영화감독 단 한 명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 외에는 촬영기사, 조명기사라 불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화계의 산역사인 분이 나를 감독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내겐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물론 술김에 별생각 없이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웃음) 거의 아들뻘이나 다름없는 나를 감독이라고 불렀다는 것 자체가 현장에서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 한마디로 내가 진짜 감독이 된다거나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간의 말 못 할 내 고생과 노력에 대한 합격통지서 같은 말이었다. 뭐랄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 게다가 스크립터 일이라는 게 현장에서 장면 연결을 가늠하는 절대 기준이어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가령 주인공이 담배 피우는 장면에서, 앞의 컷에서 2센티미터쯤 피웠다면 다음 컷 또한 그 상태에서 피우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컷을 찍을 때 감독이 "아까 배우가 어디까지 피웠지?"라고 물으면 모든 스태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런 것들을 다 알고 기록해둬야 한다.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그 길이뿐만 아니라 담배연기가 날아간 방향까지.(웃음) 

 

- "어, 나는 네가 무슨 학교를 나오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볼 거야. 적어도 3년은 진득하게 일해야 조금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뻤다. 이제 충무로에서 1년 일했으니 앞으로 9년 더 일해서 10년을 채워야 뭔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3년이라고 하신 거다.(웃음) 

 

- 첫 번째 선생님이 박광수 감독님이었는데, 트라이포트를 세우고 촬영 가방을 든 채 세 바퀴 돌도록 시키셨다. 카메라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카메라는 아무 데나 막 세우면 안 된다, 고심 끝에 카메라를 세운 그 자리가 바로 세계 안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라는 말씀이었다. 

 

- 어차피 내가 그런 짓은 못 한다고 거절해도 누군가 그 작업을 할 텐데, 그나마 내가 해서 덜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싶었다. 물론 너무나 후회되는 일을 한 거지만, 변명을 하자면 그땐 그런 사명감에 불탔었다. 

 

- 그게 바로 좋은 B무비가 갖춰야 할 덕목인데, 그걸 향해 나아간다고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 애통해할 일은 아니다. 다만 잘할 수 있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지. 

 

- 물론 여기에는 '평균치'라는 것도 없어서, 얼마큼 참고 버티며 기다리라는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누구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 아니, 어쩔 때는 미친 듯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데뷔까지의 기다림의 시간, 그 5년의 시간 동안 나도 바뀐 거다. 그러니까 당신 마음속에 자리한 그 어떤 호기심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자'로 바꾸면 된다. 

 

- "돈도 없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요?"라고 묻자 그는 "너도 몸이 튼튼하니까 피 팔면 돈 생기겠다"라고 말했다. 자기는 그렇게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또 내가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기쁨과 미학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떻게 영화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저 '사랑합니다'라고 열 번 외쳤더니 어느 순간 작품이 나왔다"고 했다. 당시 나는 농담 같은, 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담고 있던 그의 말을 듣고 미칠 것 같았다. 

 

- 또한 여러 솔깃한 제안들을 다 뿌리치면서까지 '연출부-각본-입봉'이라는 우노필름의 데뷔 코스를 밝았던 것도, 딱히 진득한 '의리'였다기보다 '남들 하는 것처럼 흘러온' 안전한 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눈팔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청난 실패나 대단한 도전이 없는 나의 데뷔 이야기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으라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밀려와도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해 걸을 수밖에 없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 예전부터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말에 반감이 있었다. 아니, 나무를 먼저 봐야지 어떻게 산을 봐.(웃음) 아직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나 다람쥐, 그 사이의 갈대나 대나무에 관심이 많다. 그런 나를 가볍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대중을 위해 만드는 영화와 나의 욕망을 따르는 영화, 그렇게 연출의 두 갈래 길이 있다고 한다면 난 이미 후자를 택해버렸다. 물론 그 두 가지를 쉽게 오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 밑바닥 정도가 아니라 그 밑바닥 구덩이까지 파고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바로 그 반대편에서 영화가 너무 사랑스러워졌다.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영화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에 이런 고민이나 고통마저도 축복으로 느끼자고 생각했다. 영화가 지긋지긋한 마음과 반대로 너무 사랑스러운 마음, 그 이중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 활어처럼 파닥거리던 시간이 꽤 길었다. 감정 통제가 잘 되지 않으니까 한동안 무조건 선글라스를 쓰고 외출하던 때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일시적으로 지쳐서 거부하는 마음이 큰 것이었지 근본적으로 싫은 것은 아니었다.

 

-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고 싶은 걸 하라! 그리고 그것만 해도 된다. 그러니 전혀 걱정하지 마!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하고 싶은 게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한다. 거리낌 없이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게 된다. 나는 이십 대 초반까지 평생 해야 할 '지랄'을 다 해버렸다. 그랬더니 이제는 별로 지랄할 게 없다.(웃음) 하루도 조용할 날 없었던 집 얘기를 계속했지만, 그럼에도 다행이었던 것은 식구들 중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들 자기 문제가 더 급하고 심각했으니까.(웃음) 나는 입시가 뭔지도 몰랐다. 물론 보기 싫은 걸 보고 산다는 것은 괴로웠지만 통제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어떤 사람들은 적응을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식의 대화법이 더없이 편했다. "야 인마, 이게 괜찮다고 생각해? 책임질 수 있어?" 그러면 "왜 내가 책임져요?" 그러면서 대들고, 뭐랄까 양아 끼가 은근히 흐르는 인간미랄까? 나는 사실 제대로 교육받고 매너 좋은 사람의 섬뜩함보다 적당히 양아스럽지만 뒤끝 없는 게 더 순수하게 느껴졌다. 온화한 얼굴을 하고서는 뒤에서 칼 가는 그런 사람들과는 체질적으로 맞지가 않다. 이성이나 지성이 결코 압도할 수 없는 야성이 지닌 한 방의 매력이 있지 않나. 

 

- 요즘처럼 뒤로 호박씨 까는 것보다는 대놓고 비열한 게 더 멋진 것 같다. 최근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를 보면서 짜릿했던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인본주의를 깔아뭉개기 이전 인간이 지닌 졸렬함과 치졸함과 비열함이 멋이기도 했던 시대 말이다. 지금은 멋을 가장한 비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 정리 못 하는 내가 정리해보자면, 종점이 보이는 인생은 불행하다.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왔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몰라야 그릴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만드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야 신이 난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은 지겹다. 그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촬영 현장에서 리허설이나 테스트도 잘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약속만 정해두고 느낌대로 간다. 그런 상태에서 촬영한 첫 번째 테이크가 주는 짜릿한 쾌감이 있다. 그런 식으로 무조건 지르고 본다. 아티스트는 바로 불 지르는 사람이다. 그걸 끄는 게 스탭이라는 테크니션들이다. 불이 어떻게 번질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작업이 가치 없는 것이라면 아예 불조차 붙지 않을 테니까. 주변의 테크니션들을 믿고 멋지게 불을 붙일 생각만 하면 된다. 그런 가운데 극단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대학교 4학년쯤 되면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텐데,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길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저 '난 조직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아'랄지 '남이 나한테 그게 어울려 보인다고 했어'라는 생각 정도로는 안 된다. 이게 싫고 저게 싫어서 가지를 쳐나가다 보니 영화감독이라는 미래가 남았다가 아니라, 이게 진짜 나의 길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절대 버틸 수 없다. 한국 영화계가 활황이라고는 하지만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여전히 불투명,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한 작품의 성패가 가르는 희비는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영화감독은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 때의 희열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있지 않을 때의 초조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지금도 힘들 때면 오래전 치악산의 한 민박집에 틀어박혀 미래를 고민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날의 심사숙고에 대해 앞으로 언제까지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 '결국 버티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함께 준비하다가 다른 일을 찾는 친구들을 보면 각기 저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이유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거절당할 때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지?'라며 이해가 안 되는 순간도 많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촬영을 시작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데 도대체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 하는 걸까, 화가 날 때도 많았다. 분명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고 배웠는데 결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는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말의 허상이랄까. 그러면서 나를 포함해 그런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진실되게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껏 세상을 살며 느낀 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 말에는 이 정도 뿌렸으면 이만큼 되돌아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특히 자신만만하고 의욕 넘치는 젊은 날에는 원하는 만큼 회수하지 못할 때 쉽게 분노하거나 괴로워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어쨌건 뿌려야만 거둘 수 있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뿌리지 않는다면 그냥 거기서 끝이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더 많이 더 넓게 뿌려야 한다. 

 

- 그럴 때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자기 확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최대한 남들이 갖고 있는 것만큼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아무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 그런 다음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야, 아니 지어야 한다. 영화는 공산품처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마음으로 계절이 바뀜에 따라 정성껏 돌보며 짓는 것이다.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배운 것은 그것 하나다. 무엇을 '만든다'는 것이 아닌 '짓는다'는 마음가짐이다. 

 

- 무척 친하긴 하지만 봉준호, 임필성처럼 '영화 운명론자'들을 보면 '종자'가 다르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영화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라, 영화를 어느 날 '입양'한 사람이니까.(웃음) 물론 그런 태도가 지금의 나와 내 영화의 어떤 성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의 깊이나 에너지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하는 거다.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이 뒤늦게 나를 좀 힘들게 하는 면도 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영화 자체를 진심으로 즐긴다기보다 내 목적을 위해 영화를 이용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웃음) 가령 봉준호가 <설국열차>를 찍는다고 했을 때, 나는 당연히 기차 안의 계급갈등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너무나 해맑은 얼굴로 "기차 저 끝 칸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한 칸 한 칸 전진하는 게 너무 신나지 않아요?" 그러는 거다. 또 한 번 '아, 우리는 종자가 다르구나'라고 느꼈다.(웃음) 

 

-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내부적으로는 관객 50만 정도만 들면 성공이라는 평가였다. 대범한 척했지만 실제 촬영을 앞두었을 때의 긴장감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사를 지내는 날, 태어나서 한 번 도경 험하지 못한 공포를 느꼈다. 투자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돼지머리 앞에 절을 하는데 "아, 불쌍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내가 여태껏 팔린 시나리오도 없고, 주목받은 단편을 만든 적도 없는데. 도대체 뭘 보고 나와 이 영화에 투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크랭크인 날, 등에 땀과 함께 그런 공포가 흘러내렸다. 매일 한 시간 일찍 현장에 가서 감독으로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영환 촬영감독과는 다음 작품인 <타짜>도 함께 했는데, 어느 날 현장의 나를 보더니 "이제는 (한 시간씩 일찍 오고) 안 그러나 봐?" 하면서 웃더라. 

 

- 지난 20년 넘게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과연 내가 재능이 있는 건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아무도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이 길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들은 한 선배가 이렇게 얘기했다.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것 자체도 너의 재능의 일부"라고. 재능은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그래도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면, 어쨌든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시작해보고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 물론 그 확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치밀한 '점검'은 필요하다. 

      

- 물론 <고스트 맘마>를 통해 내 안의 의외의 멜로적 성향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우쭐해하며, 오직 그것만 확장시켰던 것이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잠재운 계기가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전혀 다른 것을 해보는 용기도 필요했다. 나는 아직 그것을 찾는 중이다. 이 세계의 그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많은 젊은 친구들이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장점이자 단점인 게 너무 많고, 기회이자 함정인 게 너무 많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때때로 점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확실성의 매력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것이다. 답을 빨리 얻으려고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올바른 질문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원하는 답을 얻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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