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맨리 P. 홀 / 윤민 / 남기종
출판 : 마름돌
출간 : 2018.08.20
강의를 기반으로 한 책이라, 구어적 표현이 많아 조용한 새벽에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스르륵 읽힌다.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 듯 하다.
실천을 통해 아는대로 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닌 듯 하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까지 모두 체험적으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이 이해한 바와 다르지 않을 때,
그래서 더이상 그에 대해 의식할 필요가 없어질 때,
그것이 '안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 반감을 품습니다. 남이 해주는 조언과 경고를 듣고 내가 바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면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내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편견, 나의 오지랖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실 해법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해법이 여러모로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고 불편하기 때문에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 7일 중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진정성을 일상에서 꾸준히 실전하고 있습니까?
- 종교의 가르침과 신도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삶과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종교는 일상에서 신 god과 선 good을 발견하는 안목을 키워 줍니다.
- 자연은 인간이 오로지 야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약간의 야망 ambition과 원대한 열망 inspiration을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게 훨씬 더 나은 삶입니다.
- 열망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고 야망은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줄어들며,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도 사라집니다.
- 우리는 평온과 고요함으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고통뿐입니다.
- 예전에는 시대의 흐름을 대충 따라가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안전하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대세에 역행하는 소수의 괴짜들 외에는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집단에 기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불안해하고 있고, 우리의 모든 습관과 행동에는 긴장감이 배어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집단적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치통의 경우처럼 방치하면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일과, 건강염려증 환자의 심리적 착각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알아서 사라지는 일의 차이점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켜야 할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평안의 기도 Serenity Prayer> 중
- 그럼 이번에는 실제로 위기가 닥쳤다고 가정해 봄시다. 우선 사려 깊은 생각과 두려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행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대중적인 발상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주장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제명에 죽지 못하고 일찍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내 앞에 이미 와 있는 문제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면 사태는 더욱 악화됩니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피하려고만 하면 고난을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걷어찰 뿐 아니라, 다음에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합니다.
- 소크라테스와 공자도 명확한 목표 없이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억지로 하는 수련이나 운동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관심과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인생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운동 자체가 운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표가 없으면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면서도 자기 생각만 하게 됩니다. 취미 활동의 목적은 자기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거봐, 내가 뭐랬어? 결국 내 말이 옳았지?'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날을 고대하며 살기보다는, 위기가 찾아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알찬 인생을 더 선호합니다.
-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원죄(또는 유사한 개념)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방적 피해자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 합니다. 내 탓이 아니라고 계속 부인하는 것입니다.
-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년, 10년, 5년 전의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없다면, 그 기간 동안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리뷰자 주 : 그래서 성장이 멈췄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럭저럭 해왔다고, 다시 할 정도는 아니라고 느껴서... 물론 아쉬운 점들도 있지만.)
- 케케묵은 악습을 타파하고 초월하는 것과, 건설적으로 살아갈 용기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사회의 관계를 거칠게 잘라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내가 진짜로 세상보다 뛰어나서 그렇게 한 것이라면 내적으로 성장했다는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수의 비난, 심지어 박해와 순교까지 감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나은 게 아니라 단지 다르기만 한 것이라면 무원고립 상태에서 존엄을 지키며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 나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정답은 '나의 느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입니까? 기본적으로 행복합니까? 문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그 후에는 다시 행복한 상태로 잘 복귀하고 있습니까? 본인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까? 아니면 대체로 불행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띄엄띄엄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 창의적이고, 건설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타인이 내 생각에 동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남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역시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면 상대방도 똑같이 나를 개조하기 위해 기를 쓸 것입니다. 갈등만 지속됩니다. 걱정, 두려움, 증오심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추방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 하나만큼은 걱정하는 집단에서 탈퇴하여 삶의 신비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건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은 외면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남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남을 돕기 전에 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나의 걱정거리를 남들과 나누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새로운 걱정거리를 찾아내는 것 역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 인간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내면의 신성을 체험하는 순수한 용도로 만들어진 종교 기관들이 신학의 덫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신학은 믿음을 표준화하고, 인간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종교관과 무관하게 기관에서 정한 교리와 정책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종교가 점차 신학으로 변질되면서 고대의 사제들은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신학자는 교리와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만든 틀에 신앙을 가두고, 오로지 자기가 정한 교리만이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개혁의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항상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맞서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교육입니다.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은 처음에는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겨 보면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지혜'가 알고 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뭐든지 다 된다고 부추기는 에고의 '자만심'이었음을 깨닫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 종교는 나와 나의 내면, 나라는 존재의 배후에 있는 신성과의 관계를 아우르는 사적 체험입니다. 종교를 인간과 신성의 관계로 보는 관점을 '신비주의 mysticism'라 칭합니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인간이 신성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신비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신성을 접하기 위해 중재인(사제)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임의로 정해 놓은 개념과 전통(교리)을 따라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나의 진정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내 안의 참나를 접견하고, 그 신성으로부터 미덕의 힘과 영적 위안을 얻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의 핵심입니다.
- 상황 판단이 모호한 경우에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편이 낫습니다.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분리한 상태에서 조용히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면 만사가 손해가 아닌 가치의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하며, 차분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놀라운 통찰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도 보이고, 작은 다툼이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목격하게 됩니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은 결국엔 쓰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탑이 무너진다고 해서 인류가 멸종하여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태도로 무너진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요한 과제가 주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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