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스피노자의 정신] 세 명의 사기꾼 모세 예수 마호메트

일루젼 2021. 10. 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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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스피노자의 정신 / 성귀수
출판 :  아르테 arte

원제 : Traite Des Trois Imposteurs
출간 :  2017.08.29


 

시원하게 읽었다. 당시에 이런 저작을 발표하다니, 굉장한 배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로 괴소문을 몰고다닐 법한데, 신랄하지만 날카로운 번득임이 있다. 

일단 글 자체가 깔끔하면서도 재미있다. 앗차하는 사이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절묘한 문장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3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정확한 작자는 미상이지만 스피노자 외 몇 명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괴문서 <세 명의 사기꾼>에 대한 언급을 읽었다. 마침 이 책을 서가에서 본 기억이 나 읽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미묘한 감정이 있다. 

 

책 자체로는 신앙과 관계없이 읽어볼 가치가 있는 문헌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신앙이 불편해진다면, 이 정도의 공격에도 방어할 수 없는 신앙은 맹신이 아닌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물론 나는 첫째, 방어할 수 없었고 둘째, 신앙이 있다기에는 미약하다. 익숙한 체계가 있다 정도다.) 

 

내가 미묘해진 지점은, 저자는 매우 신랄하게 종교를 공격하는 듯 하지만 유신론 자체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종교적 지도자들의 행태와 교리의 헛점을 짚고 있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특정 종파에게는 다소 우호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으며, 때로 어떤 독설은 반어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가 파훼를 위해 정리해놓은 부분들을 읽음으로써 오히려 비난 대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도 있겠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만들어진 신>이 '신을 믿는' 그 자체를 꼬집었다면 <세 명의 사기꾼>은 큰 틀에서 '신성'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빈정거림보다는 날카롭게 절개하는 느낌이라 신선하고 유쾌했다.

 

즐거웠다.   

 


 

- 때는 17세기 말. "사상도 얼어버린다"는 북구의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 궁전에서는 당대 제일의 지성적인 군주로 유명한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제나저제나 희소식이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데카르트를 개인교수로 초빙할 만큼 학예와 철학에 조예가 깊은 여왕으로서는, 근래 들어와 부쩍 유럽 전역을 들쑤시듯 떠돌고 있는 흉흉한 괴소문에 여간 호기심이 쏠리는 게 아니었다. 도무지 진원이 파악되지 않는 괴소문은 어느 정체불명의 문헌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슬 시퍼런 검열을 피해 오로지 수사본 형태로만, 그것도 유럽의 극히 제한된 지식인 그룹을 중심으로 웬 끔찍한 내용의 문헌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크리스티나 여왕은 문제의 수사본을 단 한 부라도 구해 가져오는 사람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거금 3만 리브르를 지불하겠다는 약조를 내걸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누구 하나 "여기 대령했나이다" 하며 시원스레 고해 오는 자가 없었다. 결국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괴문헌과의 인연은, 여왕이 사촌오빠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로마로 영구 이주해 순수한 문예 애호가로 생을 마치는 1689년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만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1712년,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상 최초로 문제의 수사본이 정식 서적으로 출간되는데, 그 부수는 모두 합해 고작 일흔 권, 21세기의 독자인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다시 그로부터 9년이 더 지난 1721년 재판을 찍으면서 몇 가지를 좀 더 치밀하게 수정, 보완한 텍스트이니 그 감회가 특별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 진실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정작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진실을 탐색할 능력이 없다고 믿거나, 아예 그런 노력을 기울일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이 우스꽝스럽고 부질없는 견해들로 득실거린다 한들, 어차피 그런 것들이 풍미하는 게 다 무지 때문인 바,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실제로 신성이나 영혼, 정신과 관련한 잘못된 생각과 그로부터 초래되는 온갖 오류들의 근원에는 다름 아닌 무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날 때부터 지녀온 선입관에 안주하고 돈으로 사람을 움직여 일련의 고정관념을 옹호함으로써, 결국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무조건 대중에게 설파하고자 하는 게 요즘 만연하는 관례요, 추세라 하겠다. 

 

- 한데 꿈이란 극히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며, 나아가 일종의 마비상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속에서 신이 자기에게 말을 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라면 터무니없는 허풍쟁이거나 아예 정신이 나간 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 또한 너무 순진한 멍텅구리가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척 보면 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꿈을 신탁으로 믿고 있으니, 설사 신이 꿈을 통해서, 혹은 환영이랄지 그 밖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어떤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왜냐면 바로 그 누군가가 어떤 사기꾼에게 속았다거나 스스로 망상을 품었을지도, 그도 아니면 일부러 남을 속이려고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알기로, 옛 계율에서는 예언자들에게 오늘날과 같이 막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지 않았다. 

 

- 이상이 바로 꿈이라든지 영감, 황홀경, 비전, 계시 같은 것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신에 대하여 갖고 있는 소견들이다. 저들은 그런 것들을 우리가 믿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그런 모순덩어리들을 온전히 믿으려면, 모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황소가 자기들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낸 신이라고 믿었던 자들처럼 어리석고 아둔해야 할 것이다.노예근성 속에서 미신에 사로잡혀 성장한 사람들의 잠꼬대 같은 몽상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마무리하는 뜻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도록 하자. 무지가 바로 거짓에 대한 섣부른 믿음을 초래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오늘 이 시대를 지배하는 모든 오류들이 생겨났다. 

 

- 자신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믿지만, 실상은 상상한 것에 불과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하나의 질서를 생각해낸다. 역시 상상한 그대로가 현실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자고로 인간이란, 오감을 통해 사물들을 느낄 때, 그것들을 생각으로 그려내기 쉬운가 어려운가에 따라 제대로 질서가 잡힌, 혹은 엉망진창 흐트러진 상태로 믿어버리기 십상이다. 요컨대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게 하는 걸 반기다 보니까, 혼돈보다는 질서의 근거가 있다고 쉽사리 믿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질서가 인간의 상상력이 조작해낸 결과가 아닌 다른 무엇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신이 질서를 통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인간에게처럼 신에게도 상상의 기능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인간적 상상력에 편의를 도모해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소위 상상의 힘을 훌쩍 뛰어넘는 세상사가 부지기수며, 심지어 그 빈약한 상상력 자체를 혼란에 빠뜨려버리는 일들 또한 허다한 마당에, 신이 가장 상상하기 쉬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창조했노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전한 바대로 위대한 마법사의 자손이기도 한 저 유명한 모세라는 인물은 온갖 피부병과 나병으로 이집트 전역을 초토화한 끝에 파라오의 칙령을 이끌어내,결국 히브리 민족을 해방한 지도자였다. 그는 앞서 언급한 기만의 책략을 누구보다 교묘하게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 한데 나는 여전히 많은 대중의 신앙심을 좌지우지할 만큼 뚜렷이 각인되고 있는 모세나 마호메트보다 예수가 결코 자신의 역량을 어설프게 가늠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 막상 자신들이 설교하는 종교의 강령들을 지킬 생각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기도취와 안락함, 쾌락과 오만을 만족시켜준 그 자리가 무슨 완벽의 경지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있는 꼴이다. 

 

- 세상에는 이른바 시대를 이끄는 주류로서 엄청난 명성과 신뢰를 누렸던 종교가 다섯 개 존재한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거의 연속적으로 시대를 이어가며 차례차례 나타났는데, 놀라운 점은 발생지점이 거의 같은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 반면 그리스 유형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의식과 전례를 갖추고 있다. 다만 그 역시 민족과 주창자들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예컨대 본래의 그리스인들이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감화를 받은 경우, 이집트인들이 신관들의 지도를 받은 경우, 켈트족이 드루이드 승려들의 가르침을 따른 경우, 그리고 로마인들이 무녀들의 신탁서와 누마 폼필리우스의 법전에 의존한 경우, 페르시아인들이 마법사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인도인들이 바라문과 나체 고행자들의 계도를 따른 경우, 모두 제각각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 즉 그가 나타나기 전부터 멕시코의 모든 점쟁이들이 이제 곧 재림할 토필친에 대해 예언을 해왔기 때문에 마침 코르테스가 토필친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피사로가 페루에서 겪은 일 또한 그런 것이었다. 그가 페루에 발을 들여놓자 그곳 백성들이 환영했는데, 피사로를 비라코차가 자기들의 임금을 구해주려고 내려 보낸 존재로 오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보다 한참 전 샤를마뉴 역시 점쟁이들이 예언한 것처럼, 어느 낡은 우상 하나가 손에 쥐고 있던 묵직한 열쇠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에스파냐를 순조롭게 침략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아랍인들 혹은 사라센이라 부르는 족속이 훌리오 백작의 인도 아래 에스파냐 왕국을 침범해 들어올 수 있었던 일에도 비슷한 사정이 있었다. 

 

- 신은 극히 단순한 존재이거나 무한정한 외연 자체로서 자신 안에 포함되는 모든 것과 닮아 있다. 말하자면 그냥 물질 자체가 되겠는데, 결코 정의롭지도 자비롭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질투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결론적으로 벌을 내리는 존재도, 보상을 해주는 존재도 아니다. 

 

- 징벌이나 보상 같은 개념은 우리를 무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뿐이며, 신이라고 하는 극히 단순한 존재를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 만들어진 별의별 이미지를 통해서 머릿속에 그려넣어줄 따름이다. 반면에 지적 사고 과정과 상상력의 농간을 혼동하지 않을 만큼 이지력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자들, 그릇된 교육에 의한 선입관을 과감하게 떨쳐낼 수 있는 사람들은 신에 대하여 건전하고 명쾌한 개념을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다. 이들은 신을, 그것이 무차별하게 만들어내는 모든 존재들의 근원으로 보고 있으며, 이때 모든 존재는 신이 보기에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보다 결코 낫거나 못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 해도, 신이 만들어내는 데 있어 구더기 한 마리나 한 송이 꽃보다 더 각별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 따라서 자신의 이성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혼이든 신이든 악마든 결코 보통 사람들이 떠드는 식으로는 믿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거창한 단어들은 하나같이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겁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단어들과 결부된 허무맹랑한 개념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그 오류의 근원으로 우리와 함께 탐색해 들어가 본다면, 그래서 모든 허구의 자리에 진실을 대입해볼 용기가 있다면, 위와 같은 주장에 쉽사리 동의하게 될 것이다. 

 

- 혹자는 영혼이란 정신 혹은 비물질적인 어떤 실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신성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누구는 이것이 지극히 섬세한 공기라고 했고, 누구는 더운 바람이라고도 했다. 불이라고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과 불의 혼합물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저들이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체라고 하면,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곧장 증발하거나 사라지고 말 미세한 요소들의 혼합물이라고 했다. 신체의 모든 부분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는 혈액의 극히 섬세한 구성물질 속에 내재되어 있어, 뇌 속에서 고유한 실체가 추출된 뒤 각 신경계를 통해 뻗어 나간다는 설도 있었다. 이 같은 설에 의하면, 영혼이 생성되는 장소가 곧 심장이며 뇌는 영혼이 가장 고귀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인 셈이다. 혈액의 보다 투박한 구성요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완전 정제되는 곳이 바로 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로부터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이 바로 고대 철학자들이 영혼에 대해 품고 있던 중요한 생각들이다. 이제 그것들을 보다 뇌리에 와닿게 하기 위해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리뷰자 주 : BBB를 생각해보면 정확한 표현이다.)

 

- 이들 철학자는, 알고 보면 언제나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의 근원이 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비물질적인 실체로부터 온 우주가 생명을 부여받는다고 믿었다. 물론 그 실체야말로 그를 구성하는 모든 영혼들의 원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혼이라는 것들은 워낙 순수한 데다 형체를 무한정 초월하기에 직접적으로 육체와 결합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다만 아주 어렴풋한 형체부터 시작해 조금씩 투박한 형체를 거치는 식으로 계속해서 구체화되어 가다가, 마치 지하 감옥이나 무덤 안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처럼, 급기야는 동물의 감각적인 몸뚱어리와 결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의 죽음이 곧 육체의 삶이 되는 셈이며, 그 안에서 영혼은 마치 매장된 듯이 묻혀 있어, 자신의 가장 고귀한 기능을 극히 미약하게 밖에는 발휘할 수가 없다. 반대로 육체의 죽음은 영혼의 삶이 되는데, 이때 영혼은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해 물질을 벗어버림으로써 처음 생겨났던 세계의 영혼과 결합한다. 결국 이와 같은 생각을 따를 경우, 동물의 모든 영혼은 동일한 본질을 가지며, 그 기능이 제각각인 것은 각자가 취하고 있는 육체의 서로 다름에서 기인하는 것이 된다. 

 

- 이상 열거한 사람들은 모두 무형적이고 비물질적인 영혼을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보다시피 그들 사이에서 이렇 다할 일치점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그리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 “영혼이란 몸이다”라고 가르친 사람들을 만나볼 차례다.

 

- 페레퀴데스는 시로스 섬 태생으로 로마의 여섯 번째 임금인 세뤼우스 툴리우스 치세에 살았다. 키케로(<투스쿨라나룸 담론> 제1권)에 의하면, 그는 영혼불멸을 주장한 최초의 철학자였던 것 같다. 생전에 피타고라스는 그를 추종하며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폭정 하의 이탈리아에까지 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 플라톤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필롤라우스, 아르퀴타스, 티마이오스 등이 포함된 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들과 교류한 뒤, 영혼불멸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사상에 심취하는가 하면, 그런 이해의 바탕이 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 이들 두 부류의 철학자들은 유령에 대한 견해에서 상반된 입장을 취하면서도 그것에 부여하는 이름에서만큼은 서로 합치한다. 즉 모두가 예외 없이 다이몬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 이후 알렉산드리아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다이몬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 역시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를 유용하게 써먹었다. 다만 그리스인들처럼 선한 정령과 악한 정령에게 모조리 다이몬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지는 않았다. 오로지 악한 정령에게만 그 이름을 적용했으며, 선한 다이몬에게는 따로 성령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그런 영을 지닌 자들을 예언자(선지자)라 불렀다. 나아가 그들은 크나큰 선으로 인식되는 것을 성령이라 부름과 동시에, 그와 반대로 지독한 악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에는 악령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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