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자나 프라일론 / 홍은혜
원제: The Bone Sparrow
출판 : 라임
출간 : 2018.04.05
제노사이드는 끝나지 않았다.
생과 사를 가르는 선택을 강요당하며 어디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로힝야 사람들의 이야기.
동화는 아름다운 만큼 처절하기도 하다.
호주 난민 수용소의 보고서들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라는 저자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난민 이슈에 관해서는 독일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가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민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기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프간 등 대규모 전쟁 이슈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들은 더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원주민들과의 이슈가 있어왔던 호주에서조차 상황이 이러한가 싶은 생각이 들어 오싹했다.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다면,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장 나의 오늘과 내일도 불안정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주위를 둘러볼 여력은 없다,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바라볼 것도 없이, 3대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이들이 몇 시간이면 닿을 곳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것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인간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어쩌면 그런 것들을 외면하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현재가 이토록 팍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꿈을 꾸어야 그 다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 "아주 먼 옛날, 이 세상에 바다밖에 없을 때 고래 한 마리가 살았어. 온 바다에서 가장 큰 고래였지. 나이는 우주만큼 많았고, 몸은 이 나라만큼 거대했어. 고래는 밤마다 바다 위로 떠올라서 달에게 노래를 읊어 주었지. 그러던 어느 날..."
- 누나는 내가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마음을 잡아 줄 수 있는 추억이 한두 가지쯤 있는 거다.
- 행운은 그것을 믿는 사람을 찾아가는 법이니까.
- 떨어지는 별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진실을 속삭일 때
텅 빈 들판에서 바람이 메아리에게 입 맞출 때
대지의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닿을 때
너는 그곳에 있을 거란다.
바다가 불러 준 노래와 세상의 마음을 바람이 어루만져,
그늘 속에 흐트러뜨린 채 숨겨 놓아도
나는 너는 볼 수 있단다.
우리는 날개를 펼치고 영원한 집으로 날아갈 거야.
다 함께 날아갈 거야.
- 그때 멀리서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 세상의 어떤 곡보다 아름다운 노래가 가슴속을 가득 채우며 점점 크게 들려왔다. 퀴니 누나한테는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수피, 저 소리 들리지?”
엄마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아서, 정말로 나에게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몸을 기대자, 고래의 노래가 온몸으로 파고들더니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엄마가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바다에, 저 반짝이는 빛 아래에..."
- 이런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제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느라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가두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노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록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언젠가 꼭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 엄마는 음식을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다. 설사 음식에서 파리나 벌레 같은 게 나오더라도 단백질을 먹을 수 있으니까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한 번은 밥에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이가 나온 적이 있었다.
"엄마, 이것도 운이 좋은 거예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자, 엄마가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수피에게도 이가 하나 필요하다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선 한참을 웃었다. 지나치게 오래 웃는 것 같았다.
-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있지."
그러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계속 말을 이었다.
"쥐들한테 초콜릿을 좀 줘. 그러면 네가 미안해한다는 걸 알 거야."
(리뷰자 주 : 동물들에게 초콜릿은 매우 해로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카오의 특정 알칼로이드가 독성을 띠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가 몇 번이나 반복되지만, 저자가 이것을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문어의 습성과 형태에 대해 상당히 상세한 정보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오히려 달콤한 꿈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으로도 읽힌다.)
- "난 문어는 안 먹어. 문어가 미래를 보잖아. 자기가 잡아먹힌다는 걸 미리 안다니, 얼마나 끔찍한 기분일까? 넌 문어 먹어?"
뱅글뱅글 소용돌이를 다 그린 다음에 지미한테 연필을 돌려주며 대답했다.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어. 아니, 안 먹은 것 같아. 사실 우리는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지 정확히 모르니까, 어쩌면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핫초코를 단숨에 들이켰다. 뜨거운 핫초코가 배 속까지 내려가는 걸 잠자코 기다렸다. 지미는 연필 끝을 질경질경 씹으면서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문어를 먹었으면 대번에 눈치챘을걸? 문어는 심장이 세 개에다 피가 파란색인 거 알아? 게다가 문어 다리는 잘려도 또 자라고, 스스로 생각도 한대. 문어가 얼마나 똑똑한지, 미로도 통과하고 퍼즐도 풀고, 심지어 미래도 점친다니까!"
지미는 내가 그린 소용돌이가 동그랗게 말린 횟수를 세었다.
- 전에는 한 번도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퀴니 누나가 무슨 말인지 알겠냐고 물을 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을 알기 때문일까? 수용소 내부에 퍼지고 있는 슬픔 가득한 분노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을까? 한편으로는 누나의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도 고칠 수가 없으니까. 아는 게 더 힘들었다.
- 엄마 목소리는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며 꿀처럼 달콤했다. 따뜻한 빵에 꿀과 버터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날은 수용소에 손님이 왔을 때뿐인데, 그런 날에는 엄마 목소리가 더욱더 듣고 싶어졌다. 특히 엄마의 노랫소리가.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엄마는 자주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하나같이 밝고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였다. 몇몇 노래는 로힝야 말로 불렀는데,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하진 못해도 듣기에 참 좋았다. 바람과 같이 날리고 별 사이를 헤엄친다는 노랫말도 있었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불러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어둠을 환하게 밝힐 수 있어요'라는 노랫말도 있었다.
- 사다리에서 삐죽 튀어나온 못에 팔이 긁혔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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