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제프리 버튼 러셀 / 김영범
원제 : (The)Devil : perceptions of evil from antiquity to primitive Christianity
출판 : 르네상스
출간 : 2006.03.22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시리즈 3권 <루시퍼>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달라서, 혹시 역자가 바뀌었는지 확인까지 해보았다.)
'악마'라는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며, 역사적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 정의되어 왔는가를 살펴본다. 이에 관해 본격적으로 신학적으로 접근했던 중세 기독교 이전까지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루시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기독교 안의 이원론과 일원론 사이의 충돌, '절대적이고 전능한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악도 신의 창조물인가?'에 관해 보다 명쾌하고 간략하게 핵심 쟁점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기독교의 경우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오히려 모호한 지점이 있었기에 이 부분을 파고듦으로써 '악마'의 개념 또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 깊었다.
이번에 주르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와 아이온을 더듬어나가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에녹서의 일부를 읽고 연결해서 읽게 되어 수월했던 면도 있었다.
참고문헌 중에서도 더 연결해서 읽고 싶은 자료들이 있는데, 독어부터는 조금 많이 망설여진다... 일단 목록에는 킵.
저자의 다른 저서들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생긴다.
-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신학이 아니라 역사다.
- 스스로가 악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악을 저질렸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위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의 악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다.
- 개념의 역사를 통해 구성된 악마에 관한 진실은 악마를 이해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접근방식이다. 우리는 악마 자체뿐만 아니라 인간이 악마를 이해하는 방식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악마가 자신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을 때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뛸 때보다는 덜 섬뜩하다."
- 융과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는 의식적인 현실의 저변에 깔린 무의식의 구조를 밝히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융은 이 구조를 '전형'이라고 불렀다. 초기 연구에서 그는 이미지와 연관해서 전형을 생각해냈고, 후기에는 구조와 관련지어 좀 더 깊이 있게 전형을 연구했다. 융은 전형이 가지고 있는 내용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반면에 레비-스트로스는 전형을 이루고 있는 형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책에서 나는 구조보다는 내용에 관심이 있으므로 구조주의적 입장보다는 심리학적인 입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신화나 꿈을 이해하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의미(융)나 구조(레비-스트로스)를 통찰할 수 있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과거의 문명이나 지나간 개념에 대한 유산을 갖게 된다. 어떠한 역사도 지나간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고 (현재와) '관련' 되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사산 시대의 주르반 교도들은 비록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조로아스터와 그의 직계 후계자들보다 더욱 과도기적인 입장으로 회귀했다. 주르반 교도에게는 하나의 원형적인 원리, 주르반(Zurvan), 즉 무한한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주르반은 유일자이며, 모든 것을 의미하며, 자기 안에 선과 악, 남성과 여성,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 질서와 무질서를 담고 있는 대립물의 일치다. 주르반은 홀로 영원히 사는 존재다.
(리뷰자 주 : 주르반과 아이온의 연결성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오르마즈드는 우주에 네 개의 생명의 표시를 놓아두어 이제 물질적 세계 안에 생명을 창조한다. 식물, 불, 최초의 수소(혹은 거세한 수소), 이상적인 사람. 이 사람 가요마르트(후기 조로아스터교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으로 인류의 조상)는 빛나고 완전하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소우주다. 그리고 오르마즈드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 아후라 마즈다는 물질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여섯 개의 아메쉬 스펜타(Amesh spentas, 팔라비어로 amahraspands), 즉 선한 마음, 진실, 순종, 헌신, 청렴, 그리고 불멸을 창조했다. 스펜타 마이뉴와 함께 이러한 영들은 아후라 마즈다 주변에 일곱 개의 평의회를 구성한다. 이 일곱 개의 평의회라는 것이 다신교와 일신교 사이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아메쉬 스펜타가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창조된 것인지 신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들은 신이나 천사로도 간주될 수 있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형이상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역사적인 용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노력해왔다. 역사학자로서 나는 하나님의 정신이나 악마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고, 악마의 객관적인 존재를 문제삼지 않고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악마의 개념을 연구할 뿐이다.
- 'Divine'은 인도-유럽어의 어근 deiw에서 온 것으로, '하늘' '천국' 또는 '신'을 의미한다. 이 어근은 이란어의 daevas, 인도어의 devas, 라틴어의 divus로 파생된다. 'Devil'이라는 말은 독일어의 Teufel과 네덜란드어 duivel이 같은 어원인 것처럼 라틴어 diabolus에서 유래한다. 또한 이 라틴어도 '헐뜯는 자' '비난자'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diabolos에서 유래된 것이고 '헐뜯다'라는 의미는 diaballein에서 유래된 것이다. diaballein의 어원적인 의미는 '내동댕이치다' 더 나아가 '반대하다'이고, 원래는 인도유럽어의 어근 gwel, 즉 '날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Demon'은 그리스어 daimonion-원래는 daimon-즉 '악령'에서 유래한 것인데, 한편 이것은 daiomai, 즉 '나누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그리스어의 daimon은 '자비로운'이라는 뜻도 되고 악의가 있는 이란 뜻도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호메로스는 daimones라는 말을 '신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 나는 <마법의 역사>에서 종종 잘못 이해되었던 논점을 이 책에서 전부 명확히 하고 싶었다. 즉, 역사적 증거가 '실제' 로 있었던 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있었던 일이라고 믿었던 증거는 상대적으로 분명하다. 개념 -사람들이 있었던 일이라고 믿었던 것- 이야말로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진실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구성하고 개념화하는 의식의 영역으로 옮아가듯이, 개개인들이 지각하게 되는 악을 통해서 우리는 악의 보편성을추론하게 된다. 아시리아 병사의 죽음을 통해 아시리아 전쟁의 공포, 더 나아가 모든 전쟁이 주는 공포의 개념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안네 프랑크가 겪은 고통을 통해 잔인한 독재정권 하에서의 공포스러운 삶을 의식하게 된다. 네이팜탄의 공격을 받는 베트남 아이들의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파괴하는 무분별한 이데올로기로 인한 고통을 알게 된다. 이제 보편적인 악의 관념이나 개념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론적으로 정의될 수는 없는데, 개개인이 겪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알게 되면 우리의 의식에 곧바로 호소하기 때문이다. 악의 보편성을 의식하게 되면 악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게 된다. 악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 어디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은 모든 장소, 모든 시간, 그리고 모든 분별 있는 개개인의 삶에 간여해왔다.
- 우리는 사람들마저도 무생물 정도로 바꾸어버렸듯이 우주를 단지 무생물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악의 본질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에 가해진 고의적인 폭력으로 남는다. 모든 악 가운데 은밀하고 제도화된 악이야말로 가장 나쁜 것이다.
- <월든 2(Walden Two)>에서 이 공동체의 지도자 프레이저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기 위해 '긍정적인 공권력'이라는 입장을 제창했는데, 이는 스키너가 <자유와 존엄성을 넘어(Beyond Freedom and Dignit)>에서 23년이 지나서도 수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인간의 행위가 결정되도록 가치를 결정하는가?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학살할 목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스키너는 이러한 문제를 사실로 인정하고 "문제는 통제 일반으로부터가 아니라 특정한 통제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통제를 말한 것인가? 스키너는 문제를 교묘히 빠져나가, 윤리 의식이 부족하더라도 인간은 어느 정도 도덕적 또는 윤리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왔다고 주장한다. 스키너의 이론체계가 가지고 있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스키너의 이론 체계로부터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스키너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냈기 때문이다.
- 악마를 이해할 때 심층 심리학적인 입장, 특히 융의 견해가 가장 시사적이다. 융은 심리 발달을 개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처음에 자신에 대한 혼돈스럽고 미분화된 생각만을 갖는다. 그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차로 선과 악의 입장을 분별한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키워가며 악을 억압한다. 이러한 억압 과정이 너무 지나칠 경우에 그 삶의 그림자는 괴물처럼 되어 결국 폭발해 그 사람을 압도해버린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세 번째 단계, 즉 조정의 단계가 있는데, 여기서 선과 악이 모두 인지되고 의식의 차원에서 다시 조정된다.
- "악마는 인격화된 악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 악마란 누구이며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답을 얻으려면 목적과 방법론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주제의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면서 진지하게 악을 역사적으로 연구해온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구스타프 로스코프(Gustav Roskoff)는 뛰어난 연구를 남겼지만 벌써 1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뛰어난 학문적 가치를 지닌 최근의 연구를 꼽자면 헨리 앙스가 켈리(Henry Ansgar Kelly)의 <악마, 악마학, 그리고 마법(The Devil, Demonology, and Witchcraft)>,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 <악마(The Devil)>, 허버트 해그(Herbert Hagg)의 <악마를 믿다(Teufelsglaube)> 정도다.
-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과학적인 가설과 여호와가 내 앞에 놓은 공허 사이를 연결하지 못했다. -액셀 룬드
- 항상역사 연구의 목표는 개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가 취하는 이러한 방식은 선험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마치 희망과 두려움, 사유와 감정을 가진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현재의 개인들을 만나듯이 과거에 살았던 개인들을 만난다.
- 지금까지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악마는 객관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②악마는 역사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③악마에 대한 역사적 정의는 그 자체로 실존적인 악의 정의와 관련해서 얻어질 수 있다.
④악마란 사회 속에서 악으로 이해되는 인격화된 무엇이다.
⑤악마라는 개념은 이러한 인격화를 이해하는 전통으로 이루어진다.
- 그렇다면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악마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살아가면서 개개인들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힘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사람은 그러한 힘을 자신의 정신으로 감각하고 언급한다. 이 과정을 지각이라고 한다. 사람들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구조를 가진 매우 특화된 뇌를 물려받는다. 뇌는 그러한 구조를 정신에 전달하고, 정신은 뇌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보편적이고 상속된 패턴은 무의식의 구조를 구축한다.
- 헨리 프랑크포트(Henri Frankfort)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신화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단순한 환상은 아니다. 진정한 신화는 전설, 무용담, 우화, 동화와 구별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정한 신화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 신화는 '당신'...의 비밀을 누설한다. 신화는 추상적인 사유를 가리려고 신중하게 고른 외투에 불과하다."
- 혼돈은 종종 뱀이나 용으로 표현된다. 보루네오의 다야크족은, 이 세상은 꼬리를 물고 있는 물뱀이 만드는 원 안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태초의 뱀은 음과 양의 움직임처럼 끝없는 원 안에서 스스로를 쫓는 우로보로스처럼 대립물이 합치된 것이다. 뱀은 치료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고 해를 줄 수도 있다. "뱀이라는 상징은 다소 혼란스럽다. 그러나 뱀에 관한 모든 상징들이 지향하는 중심 사상은 똑같다. 즉, 뱀은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므로 불멸한다는 것이다. 뱀은 달이 지닌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달과 마찬가지로 생산력, 지식(예언 능력), 심지어 불멸성까지도 줄 수 있다." 신들은 뱀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삼아 초승달 모양으로 된 뱀을 지니고 있고, 달 모양을 하고 있는 뱀은 밤, 죽음, 월경, 다산성(남근 승배적인 측면이 뱀의 다산성에 추가되기도 한다)과 연관된다. 악마와 뱀이 동일시되면 악마는 다시 질서와 생명을 사로잡고 있는 괴물과 연관되어 이 속박에서 풀려나려면 살해되어야만 된다.
- 서양의 전통에서 일반적으로 뿔은 악마를 연상시키지만,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대체로 뿔은 다산성을 의미한다. 뿔은 초승달과 결부되는데, 달은 기본적으로 성장이라는 관념을 의미하며, 월경과 연관되어 다산성을 의미한다.
- 포세이돈은 수소의 뿔이나 삼지창과 연관된다(오늘날에도 할로원의 악령들이 뿔이나 '갈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고대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뿔을 가루로 만들어서 최음제로 사용한다고 알려졌고, 생식 능력이 흘러나오는 부러진 뿔은 코누코피아, 즉 풍요의 뿔을 의미한다. 수사슴이나 다른 야생동물들의 뿔도 사냥감이 충분하게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뿔은 또한 태양 광선과 결부되어 순수한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산에서 내려온 후 모세는 케렌(qeren)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뿔 또는 그의 이마에서 뿜어 나오는 강력한 광선을 의미한다. 뿔 모양으로 된 모자 -예컨대 중세의 왕관이나 미트라, 또는 주교관 등- 는 그것을 쓴 사람의 권위를 나타낸다. 뿔 모양의 표지들은 손으로 만들어졌고, 벽이나 문에 부착되어 안전과 보호를 도모했다(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말편자와 비교해 보라).
- 모세의 뿔은 본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기독교에서는 모세의 뿔을 유대인들과 뿔을 지닌 사탄 사이의 가상의 동맹으로 여겼다.
(리뷰자 주 : <3천년 기독교 역사 2>에서는 모세의 뿔은 오역이라고 주장한다.)
- 동서양에 나타나는 악령들의 특이한 역할은 지옥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을 괴롭히면서 신의 정의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엠마-오(Emma-O)를 섬기는 이만 사천의 악령 종복들이 신의 심판대 앞으로 불행한 영혼들을 끌어내는 일을 맡는다. 서양에서처럼 빈번하게 이러한 존재들은 기괴한 형체를 가지고 있으며, 무서운 도구들을 사용해서 고문을 했다. 서양에서처럼 중국과 일본에서도 이 악령들의 지위가 신에게 고용되어 봉사하는 자들인지 아니면 신에게 잡혀 수감된 자들인지, 저주를 받아 자신들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기만 하는지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리뷰자 주 : 엠마-오는 염라-오, 즉 염라대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서양에서 악마의 개념이 형성되는데 이집트 문명보다는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 문명이 직접적으로 더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문명을 곧바로 계승한 수메르 문명은 히브리와 가나안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가나안 문명은 미케네와 고대 그리스 문화에 선행하는 이스라엘 문명과 미노아 시대의 크레타 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북서쪽의 셈(시리아) 문화가 대체로 그리스와 유대 문명에도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 이 문화들이 어느 정도까지 섞여 들었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수메르-아카드 종교와 아시리아-바빌로니아 종교 사이의 연속성으로 미루어보면 이 문화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정도다. "아카드인들의 신화(바빌로니아인들과 아시리아인들의 신화)는 주로 수메르인의 원형에서 유래한다."
-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적 사유는 이집트와는 다른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공포에 대한 생각이다. 우주(질서)는 항상 예고도 없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질서가 재생되고 재건되어야 했다. 인간 사회는 자연보다 훨씬 더 무질서했다. 왕이 변하지 않는 우주를 관장하는 신이었다고 생각한 것이 메소포타미아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 이들 종교에서 전제하는 신이란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전능하며 선하다. 그러나 신의 권능은 또 다른 원리나 세력, 공에 의해 어느 정도 제한된다.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에서는 이원론이 명확히 드러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는 이원론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암암리에 드러나고, 그 대부분도 이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의 이원론과 이란의 이원론은 한 가지 결정적인 측면에서 다르다. 이란의 이원론은 두 개의 영적인 원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한편 영 자체는 선하다고 여기는 그리스적인 관념을 빌려온 기독교에서는, 반대로 물질을 악으로 여긴다. 조로아스터가 끌어들인 이원론은 악마의 발달사에서 혁명적인 자취를남겼다. 그 이유는 악이라는 절대 원리를 전제해서 최초로 명확하게 악마를 악의 원리가 구현된 것-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또는 아리만(Ahriman)-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 조로아스터교에는 적어도 네 개의 중요한 갈래가 있다. ①조로아스터 자신의 가르침, ②마즈다교의 가르침, ③주르반교의 가르침과 마즈다교(조로아스터교)의 이교적 분파, ④점차 정통에서 벗어나 결국 헬레니즘기의 미트라교를 낳는 데 도움을 준 마기(Magi)의 가르침이다.
- 마즈다교가 유대 사상과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신학이 사산 시대 -사산 시대는 예수 탄생 후 200년이 지나서 시작되었다- 에 가장 번성했음은 확실하다. 물론 마즈다교가 이미 수세기 전부터 유행하고 있었지만, 기독교도에게 알려질 정도로 널리 확립되기는 어려웠다. 악, 지옥, 그리고 부활 등에서 이란적인 개념과 유대-기독교의 개념이 매우 유사한 것은 상당한 정도로 문화적인 전파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란의 사상이 에세네파 -특히 <공동체의 규칙(Manual of Discipline)>에- 와 그노시스파 -이알다바오스(Ialdabaoth)라는 신과 아리만의 유사함이 인상적이다- 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이란의 종교에서 정립된 악마의 개념은 더욱 모호한 일원론적인 영역으로부터 선과 악이 날카롭게 대립되는 이원론적인 구분으로 급박하게 옮겨간다.
- 그런데 이러한 교의에서 발견되는 이원론은 이란의 이원론과는 다르다. 이란의 이원론은, 하나는 빛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어둠에서 나오는 두 개의 영적인 교의, 이원론은 신성한 영혼과 티탄의 몸에 갇혀 있던 악 사이의 투쟁을 가정했다. 오르페우스교에서 물질과 영혼, 몸과 마음의 이원론이 최초로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이것이 기독교, 그노시스파, 그리고 중세의 사상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고, 악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디오니소스가 선이고 티탄이 악으로 가정되는 한, 정신은 선이고 육체는 악이 된다. 이러한 해석은 헬레니즘 시기 내내 계속되는데, 이란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는 동안 물질과 육체는 악한 영의 영역에, 정신은 선한 영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원론 -오르페우스교의 이원론과 이란의 이원론- 이 합쳐져서 몸과 살은 우주적인 악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신에 스며들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다수 의견은 명확하게 이러한 견해를 거부했으며, 그노시즘을 비롯한 각중 이단을 판단하는 가장 완고한 판단의 증거로 삼았다.
- 그리스의 영들을 다루면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힌다. 대체로 데블(Devil)과 동의어로서 항상 부정적인 함축을 동반하는 '데몬(demon)'은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에서 유래했는데, 다이몬은 반드시 악한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리아스>에서 다이몬은주로 테오스(theos)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오디세이아>에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빈번하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호메로스 이후의 다이모니온(daimonion. <소크라테스의 변명>, <테아이테토스> 등에서는 소크라테스의 태도 결정에서 대개 금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내적인 신의 소리, 마음속으로부터의 경고를 의미한다. '실존의 본질적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과 같이 여전히 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호메로스 이후 다이몬은 대체로 신보다는 열등한 영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 용어가 중립적이거나 적어도 양의적인 의미에서 악이라는 의미로의 변화가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를 인도하는 영은 '데몬(demon)'이었다- 의 시대까지만 해도 완전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러한 변화는 플라톤의 제자 크세노크라테스(Xenocrates)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는 나쁜 악령들과 선한 신을 구분했고, 모든 악한 것 또는 신들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인 성질을 악령에게 전가했다.
- 플라톤과 그 추종자들은 다양한 입장의 이원론과 일원론 사이에서 동요했다. 플라톤주의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원리의 산물이고, 하나의 원리에서 퍼져나온다는 신념에서 일원론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일원론은 우주 안에 다루기 힘든 요소 -하나의 원리가 가장 낮은 차원에서 발산하는 요소와 유일자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요소- 를 가정하면서 제한된다. 이렇게 가장 낮은 단계이거나 독립적인 요소는 대체로 물질로 나타난다. 플라톤의 이원론 역시 오르페우스교적인 물질에 대한 불신과 두 가지 대립되는 영이라는 관념(간접적으로 이란으로부터 유래된 것일 수도 있는)이 합쳐진 것이다. 플라톤은 관념적인 세계가 물질적인 세계보다 훨씬 실재적이고 결과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면서, 관념적이고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대립시킨다. 그 후로 서양의 전통에서는 존재가 비존재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거의 언제나 계속되었다.
-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우주를 관장하는 원리는 유일자였다. 유일자는 완전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를 다양하게 인식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우주가 형상들로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유일자는 자신의 실체로부터 누스(nous), 즉 정신 플라톤적인 이데아 세계를 유출한다. 누스 안에는 이 우주에 있을 수 있는 모든 형상들로 충만해 있고, 모두가 완전히 영적인 것이다. 누스는 처음으로 유일자가 유출한 것이고 유일자의 뜻에 따른 것이기도 하면서 형상의 세계를 완성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도유일자가 처음으로 유출한 것은 결코 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필연적으로 누스는 자신을 유출한 유일자보다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난점이 내재하게 된다. 두 번째 유출을 통해 누스는 프시케(psyche), 즉 세계-영혼을 만들어낸다. 프시케는 스스로 생각하는 누스다(신의 말씀, 즉 로고스(logos)는 스스로 생각하시는 아버지라는 기독교의 이념과 비슷하다). 프시케의 유출도 유일자의 뜻이었으므로 모두가 좋았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 유출이 발생하여 프시케는 물질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여기서 감각 대상들은 최초의 질료와 이데아 또는 형상이 혼합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물질세계가 유출된 것도 유일자의 뜻이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이 유출된 것도 유일자의 뜻일 뿐만 아니라 유일자로부터 나온 것이며, 유일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실체로부터 나온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무로부터 물질적인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인 교의나 물질은 신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분리된 원리라는 이념의 흔적을 플로티노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물질은 신이 유출한 것이고 따라서 선하다. 그러나 플로티노스는 물질이란 전적으로 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히브리인은 자신의 종교가 본질적으로 일신교적인 요소가 있다고 계속 주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이원론으로 이행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일신론자였고, 단 하나의 신이 있었으며 그 이름은 야훼였다. 이 신은 전능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신은 전적으로 선했으므로 악은 신의 본성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악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러한 악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인은 이원론으로 방향을 옮겨야 했다. 일신론에서 멀어지는 어떠한 행위도 심각한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던 히브리인은 자신의 종교에 스스로 무엇을 끌어들인 것인지 완전하게 인식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경외서에서도 악마의 기원이나 본성이 전적으로 악이라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명시적인 일원론과 암묵적인 이원론 사이의 긴장 관계야말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특성이 되었다.
- 신의 아들들의 멸망을 묵시론적으로 설명한 것 가운데 가장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유력한 것은 <에녹 상(First Book of Enoch)>이다. 이 책에서 에녹은 지상과 지옥(Sheol)에까지 돌아다니며 감사를 책임졌다.
- 감시 천사들(Watcher angels) -지금 불리는 것처럼- 에게는 "이름이 셈야자(Semyaza)라고 하는 지도자가 있다. 특히 종말론 시대에 악마의 이름은 벨리알(Belial), 마스테마(Mastema), 아자젤(Azazel), 사타나일(Satanail), 삼마엘(Sammael), 셈야자 또는 사탄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이름들은 기원도 각기 다르고, 그 이름들이 나타내는 존재들도 그 기원이나 역할들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점차로 그 이름들은 하나로 합쳐진다. 악마는 영적인 존재가 되어 악의 기원과 본질을 인격화하면서, 이제 악마라고 하면 단 하나의 존재만을 상정하게 되었다. 오로지 사탄이라는 이름에만 집중되었던 이전의 연구들은 이러한 사실을 감추어왔다.
- 먼저 그들의 타락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카인이 아벨에게 죄를 짓기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고, "죄는 이 땅에 내려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에녹은 단언한다.
(리뷰자 주 : 에디오피아의 에녹서에서는 야렛의 시대에 타락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었나?)
- 두 개의 다른 예언서가 이 신화에 중요한 부분으로 추가된다. <루벤의 성서>에는 결국 마녀에 대한 전승 지식에 중요한 내용이 될 세부 사항들이 실려 있다. 이브가 아담을 유혹했던 것처럼, 여자는 매혹적인 화장과 머리 모양으로 감시 천사들을 유혹해서 죄의 짐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에게 떨어진다. 영적인 피조물인 감시 천사들은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편들과 관계를 가질 때 그들은 여자로 나타난다. 감시 천사들과 관계를 가진 후 여자들은 남자의 씨를 받아 이상한 종을 임신한다. 이러한 몽마에 관한 변형된 신화가 중세 마법의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마녀는 남편과 침대 안에 있다고 생각되는 동안에도 잔치(revels)를 벌인다.
- 두 번째로 신의 본성이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구분된 것은 말락 야훼의 경우다. 말락 야훼는 신의 밀사 또는 사자다.
- 히브리 사상의 동향을 살펴보면, 그들이 만족스러운 신론을 얻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의 의지가 신적인 본성에 연관되는 한, 어떤 의미에서 신은 전쟁이나 역병, 고문 등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선한 구주와 신이 혼동되면, 신론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왜곡된다. 내적인 불일치가 신화적으로 표현되고, 신화적으로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다루가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랍비교의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이 밖에도 기독교 신론들이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지만, 충분하게 악마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어떠한 신론도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 같다. 악마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제거하려는 여러 세대에 걸친 신학자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악마라는 개념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실 기독교는 반이원론적인 종교다. 기독교는 두 개의 우주적인 원리가 영원히 대립한다고 주장하는 완전한 이원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감추어진 조화라는 일원론의 자위적인 개념도 대체로 거부한다. 일원론과 이원론 사이의 긴장 관계는 기독교 신론의 모순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 관계가 창조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용이 형식의 틀에 긴장을 가할 때마다, 새로움이 전통이라는 구속에 압박을 가할 때마다 창조적 발성이 나오는 것이다. 물은 용기에 담겨 있을 때 마실 수 있다. 이원론 아니면 일원론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에 의지하지 않고 악의 문제를 정면으로 엄밀하게 다루면서, 기독교는 악마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 인간의 타락이라는 교리보다 훨씬 더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이는 것은 없다. 원죄라는 교리는 구약성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랍비 문 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예언서에 약간 비치기는 하지만, 신약성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공관 복음서 어디에도 원죄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리뷰자 주 : 반대가 아닌가 싶은데, 확인해 볼 문장.)
- 짐승의 도상은 사탄의 도상이 성립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용이나 바다짐승들은 모두 열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속성들은 이후에 나타난 전통에서는 악마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이후에 나타난 악마는 비록 배나 엉덩이에 얼굴이 붙어 있기는 해도 머리가 여럿인 경우는 거의 없고, 뿔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3:11)에 따르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은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고 용처럼 말을 한다. 악마의 모습은, 뿔이 없는 것, 뿔이 하나인 것, 뿔이 여럿인 것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는데, 도상학의 전통에서는 왜 뿔 두 개 달린 이미지로 고착되었을까? 그 답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형상이 다른 뿔 두 개 달린 형상들에 어울렸다는 것이다. 악마는 뿔 달린 야생 동물들, 판이나 사티로스(satyr), 그리고 다산성과 초승달과 연관되었다. 그리고 게렌(qeren), 즉 모세나 그 밖의 여러 인물들에 부여된 권능의 뿔도 두 개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원시 기독교와 섞여 악마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것으로 영원히 고착되었다.
- 가나안에서 악의 영 모트는 죽음과 불임을 상징한다. 이란의 아리만은 파괴자이며 사기꾼이고, 탐욕과 욕망이 인격화된 것이며, 어둠의 군주, 거짓의 지배자, 그리고 거짓 자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대 종교 안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여성적 원리의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악의 원리가 여성으로 인격화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 이집트의 세크메트, 가나안의 아나트, 그리스의 헤카테 이들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란의 음녀 예, 그리고 거짓의 영 드루이는 여성 악령으로 나타나지만, 대장이며 남성인 악의 원리 아리만 휘하에 소속된다. 헬레니즘 시대의 여성 다이아드는 냉혈한으로 규정되었다. 기타 다른 여성 악령들 -릴리투, 라바르투, 고르곤, 세이렌, 하르피이아, 그리고 라미아스- 은 악의 원리라는 높은 단계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하위 존재들이었다.
- 기능주의란 기존의 사회에 봉사하는 관념의 기능에 따라 관념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관념을 사회구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그렇게 얻어진 관념을 다시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데 이용하는 지식사회학과 역사적으로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론들은 개념을 연구하는 역사가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영향력을 받고 미셸 푸코가 역사적 사유 안으로 확대시켜 조르주 뒤메질이 종교사의 영역으로 편입시킨 구조주의는, 사태가 진행되는 다양한 방식으로부터 사태가 진행되는 방식의 '구조'를 추상해내고자 한다. 이 구조는 그 자체가 실재(reality)이며, 외견상 다양하게 보이는 움직임(activity)의 저변에 깔린 숨겨진 의미 감춰진 코드를 드러낸다. 구조주의는 전체를 규정 -예컨대, 요리- 하고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기존 사회에서 요리의 의미는 요리를 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관습, 절차, 그리고 맛 기호들 사이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개별자들의 실재성을 소거하면서 의도적으로 탈개별적이고 불연속적인 계기를 통해 구조를 분석하고, 시간의 추이에 따른 발전과정을 다루지 않으므로 탈역사적이다.
- 에드문트 후설은 태양을 지각하는 행위인 노에시스(noesis)와 지각된 태양 노에마(noema)를 구별했다. 우리가 알 수 있고 아는 현상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는 대로 태양을 보는 것, 노에시스와 노에마 사이의 긴장을 통해 '반사된 것'이다. 악마의 전통에 따라 악마에 대한 나의 지각을 통합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악마에 대한 지식이 구축된다. 신의 개념을 밝히는 데도 같은 방법을 적용할지 나는의문을 제기해왔다. 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비록 '신'은 악마보다 더 복잡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나는 신 그 자체에 대해 뭔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신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추이를 살펴본다면, 신의 역사가 씌어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종교사가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런 계획을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다.
- 프레이저는 이 신화를 잘못 이해했다. 두무지/탐무즈는 죽었다가 소생하는 신은 아니다.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소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것은 그의 부인 이난나/이슈타르다.
- 염소 이외에도 당나귀, 돼지, 늑대, 개, 수탉, 토끼, 고양이, 황소, 말 등이 세계의 여러 종교에서 빈번하게 다산성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악마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특이하게도 뱀만은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서유럽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다산성의 상징 녹색인간(Green Man) 역시 악마의 이미지와 동일시된다. 이와 연관된 현대적인 해석에 관해서는 Kingsley Amis, The Green Man(New York, 1970) 참조.
- Robert Gordis, Book of God and Man(Chicago, 1965) pp.69-71은, 신과 사탄이 나누어진 것은 마즈다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훼와 유일신을 동일시하면 지나친 단순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가장 초기의 성서적인 전통 가운데 하나는 야훼주의적 전통인데, 이들은 유일신을 야훼라고 칭한다. 그러나 엘로히스트들은 엘로힘(Elohi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후자는 대체로 '하나님(Lord)'이라고 번역된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의 언어학적인 기원보다는 오히려 독일어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야훼나 엘로힘이라는 두 용어 모두 모세 5경의 편집자들에 의해 하나의 존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동화되었다. 하지만 두 개의 용어가 다르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야훼주의자들이나 엘로히스트들이 글을 쓸 때 같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자명하지 않다. 마치 엘로히스트들이 유일신을 복수로 간주한 것처럼, '엘로힘'이라는 말은 수적으로 복수라는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체로 나는 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할 때는 엘로힘이라는 말보다는 야훼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 이 문제를 가장 명쾌하게 지적한 사람은 바로 융이었는데, 그의 저작을 이어받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악마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했다. Rivkah Scharf Kluger, <Satan in the Old Testament(Evanston, II, 1967)>는 저자의 처녀 때 유럽식 이름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 그녀의 저작은 탁월했지만, 두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확실한 근거보다는 융의 해석을 더 많이 취했다. 그리고 경외서나 묵시록에서 히브리 인들이 악을 인격화한 것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나는 이 장을 서술하는 데 Kluger의 저작에서 매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의 저작은 융의 사유를 이용해서 개념의 역사를 해명하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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