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맥스 하인델 / 윤민 / 남기종
출판 : 마름돌
출간 : 2018.11.26
맨 처음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서였다. 좋아하는 스토리를 꼽으라면 <니벨룽의 노래>를 떠올릴 정도로 브룬힐데와 지크프리트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한 번도 저자가 바라본 관점으로 해석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책은 바그너의 오페라들과 사를 구노의 파우스트(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해나간다. 상징과 숨겨진 의미를 바라보는 시각은 때로 신선하고, 때로 익숙하다. <로엔그린>의 경우 중심적으로 사용된 '백조' 심볼에서 <백조 왕자>나 <백조의 호수> 등 다른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연결성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로엔그린>이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하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접해본 적이 없어 이 기회에 한 번 찾아보려 한다.
사실 바그너는 그 자신의 반유대주의와 히틀러의 선호로 인해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해석은 다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일부 해석에 있어서는 처음 접하는 관점들이 있었다. (달의 입문자와 베르단디의 경우가 그렇다.)
운명의 실을 잣는 세 노른은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들이기도 하다. 실을 뽑고 직물을 짜고 천을 자른다는 형태는 운명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주신들과는 독립되어 있다는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시간, 개인, 사소한 사건들을 의미하는 실을 엮어 하나의 큰 형태를 만든다는 개념. 이런 관점에서는 다 엮인 실의 끝을 끊어낸다는 행위는 저자의 의견처럼 '빚'을 청산한다는 의미가 더 어울릴 듯하다. 전체가 이어지는 순환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다시 헤쳐서 풀어내고 감아내야 할 듯 하지만, '끊어낸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일이다.
- 고급 지식을 얻으려면 하위 지식부터 습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육신과 물질 세상의 원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물질 너머의 영적 세상과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최고의 가르침이다. 영적 성장의 사다리 끝에 안전하게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이다. 확실한 발판이 없는 상태에서 계단을 건너뛰려 하면 반드시 중심을 잃고 넘어지게 되어 있다. 많은 구도자들이 발을 헛디뎌 쓰러진 파우스트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장미십자회의 우주 창조론>과 가톨릭 교회의 라틴제례 의식과 관련한 장미십자회의 철학을 통해 설명했듯이, '이름'은 '소리'다. 대상이 누구든, 이름을 정확하게 발성하면 그 이름으로 불리는 지성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비주의 의식에서도 입문자가 각 단계에 이를 때마다 특정 진동의 영역에 거주하는 영혼들을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를 전수한다. 조음기(tuning fork)가 음의 진동에 반응하듯이, 파우스트가 대지의 영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자 그의 의식이 열리면서 대지의 영을 영접하게 된다. 파우스트의 체험은 그만의 독특하고 희한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구도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 예상치 못한 죽음은 대단히 큰 고통을 동반한다. 루시퍼 영은 이처럼 격렬하고 강한 감정을 양식으로 먹고 산다. 감정을 에너지원으로 섭취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강도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인간의 저급 야망을 자극하여 밖으로 배출되는 에너지를 훔친다. 인류는 아직 기쁨과 사랑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강하게 표현하는 수준으로까지 밖에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느낌과 감정은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구도자의 영혼은 남을 해치려는 마음도 없고 지극히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의 약점을 인지하고 영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혹의 시험을 받고 통과해야 한다. 유혹 앞에서 굴복하면 암포르타스처럼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을 통해 양심이 계발되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솟아나게 된다.
- 아는 것이 많아지면 책임도 이에 비례하여 커진다. 영적으로 많이 성장한 사람은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도 더 향상된다. 일상에서도 사람의 인격에 따라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기준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 지은이 맥스 하인델 Max Heindel(1865~1919)
덴마크 태생의 미국 기독교 신비주의자, 점성학자, 작가, 연사. 본명은 칼 루이스 폰 그라스호프 Carl Louis von Grasshoff로, 독일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코펜하겐으로 이민한 아버지가 덴마크 여성과 결혼하여 낳은 2남 1녀 중 장남이다. 6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자랐다. 16세에 출가하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조선소에서 기술을 배웠고, 무역 증기선의 수석 엔지니어가 되어 유럽과 미국을 자주 오가며 견문을 넓혔다. 1895년부터 1901년까지 뉴욕 시의 컨설팅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1903년에 일자리를 구하러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신지학자 찰스 W. 레드비터의 강의를 듣고 신지학협회 Theosophical Society에 가입하였으며, 1904~1905년에 LA 지부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906~1907년에는 샌프란시스코부터 출발하여 시애틀에 이르는 순회강연을 진행했다. 1909년에는 장미십자회와 기독교 신비주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장미십자회의 우주 창조론 The Rosicrucian Cosmo-Conception>을 출간했다.
- Cain.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동생 아벨 Abel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알려져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내용과는 달리,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 따르면 가인은 루시퍼의 편에 섰던 대천사 사마엘 Samael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Lucifer. 유대교 전설에 등장하는 타락 천사로, 흔히 사탄과 동일시되는 존재. 엄밀히 말하면 루시퍼는 인간의 야망을 자극하는 불같은 존재이고, 사탄은 인간의 행동을 방해하는 얼음 같은 존재다. 저자는 <파우스트>를 다루는 장에서 루시퍼와 메피스토펠레스를 혼용하고 있다.
- Region of Concrete Thought. 장미십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주는 물질 세상 Physical World에서부터 신의 세상 World of God에까지 이르는 일곱 개의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생각의 세상 World of Thought은 아래부터 세 번째 위치에 있다. 생각의 세상은 또 추상적 사고의 영역 Region of Abstract Thought과 구체적 사고의 영역 Region of Concrete Thought으로 나뉜다. 생각의 세상은 영 spirit과 육 body이 만나는 지점으로, 간단하게 설명해 추상적 사고의 영역에는 관념 idea이 있고, 구체적 사고의 영역에는 원형 archetype이 있다. 각 세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저자의 대표작 <장미십자회의 우주 생성론 The Rosicrucian Cosmo-Conception>에 나와 있다.
- 그의 육신(활성체)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입문 과정에서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 먼 훗날, 지구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 영이 세상으로 귀환할 때 예수의 활성체는 다시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도 지금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에테르를 의복으로 삼을 것이며,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인류는 기독교보다 상위에 있는 종교를 통해 아버지에 대해 더욱 깊게 배우게 될 것이다.
- 괴테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앞에 처음 나타나는 장면을 통해 "영은 항상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야 한다."는 신비주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지금 정상적인 입문의 과정을 밟고 있지 않다. 입문의 자격도 얻지 못했고, 스승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진리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엉뚱한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 따라서 뿔 하나(머리)가 위를 향하고 있는 별 문양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구도자를 상징한다. (★)
- 바그너는 <종교와 예술 Religion and Art>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가 인공적으로 변하는 순간, 예술이 나서서 종교의 정신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는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심볼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예술가는 상징적인 의미를 인식하고 그 안에 숨겨진 깊고 심오한 진리를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이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사제는 종교의 우화를 역사로 받아들이며 목숨을 걸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창작물로 내세우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오늘날의 종교는 가르침의 본체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교리의 심볼로 계속 덧칠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있는 신성한 진리를 시야에서 가려버리고 교리를 믿도록 강요하는 인공적인 조직으로 전락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종교계는 예술계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종교에 속박된 예술은 신도들에게 경전의 우화를 역사적 사실로 내세우기 위해 물신 fetish과 우상 idol의 형상에 의지해야만 했고, 높은 차원의 이상은 펼칠 수 없었다. 예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화의 가르침을 이상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데, 지금은 우화의 중심에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신성한 진리를 구속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 모든 종교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영혼은 새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영 역시 예수가 요단강에 몸을 담고 세례를 받던 당시,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의 육신 안으로 들어갔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생명나무 위그드라실 아래의 호수와 성배 전설의 호수에서 백조가 헤엄치듯이,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 따라서 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적 영향력을 상징하며, 백조의 죽음을 보고 많은 기사가 슬퍼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진리는 여러 단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신화는 최소한 일곱 가지의 유효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물질적, 문자적 관점으로 해석했을 때 파르지팔이 암포르타스 왕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백조를 죽인 자신의 활을 꺾어버린 것은 그가 영적 이상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기 위해 살생하는 사람은 진정한 연민의 감정을 품을 수 없고 인류의 진화에도 기여할 수 없다. 남을 해치지 않는 삶이야말로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 Levites.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 레위 Levi의 후손 중 남성을 일컫는 말. 유명한 레위인으로는 구약시대의 주인공 급인 모세 Moses, 아론 Aaron, 에스겔 Ezekiel, 이사야 Isaiah, 예리미아 Jeremiah 등을 들 수 있다.
- Orthodox religion. 종교기관에서 정한 교리를 준수하며 종교활동을 하는 것. 기독교의 교리는 325년부터 787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열린 공의회를 통해 제정되었다. 제1회 니케아 공의회(325년), 제1회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에베소 공의회(431년), 칼케돈 공의회(451년), 제2회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553년), 제3회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680-681년), 제2회 니케아 공의회(787년).
- 신들은 우여곡절 끝에 프라이아를 돌려받지만, 그녀는 이제 순수한 사랑의 여신이 아니었다. 노리개 취급을 받으며 유린당한 프라이아는 껍데기만 남았고, 사물의 표면을 꿰뚫고 내면의 본질을 볼 줄 아는 직관의 소유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이 구도자들을 벨중 'wälsung'이라 부른다. 첫 번째 음절은 '선택하다'를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wählen' 또는 스칸디나비아의 'vaelgo'에서 유래되었다. 두 번째 음절은 '아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벨중은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열망하는 아이들', 즉, 내면의 신성한 본능을 따르며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주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하지만 신들이 거주하는 구역에는 우르다르부른느 Uroarbrunner라는 샘이 있고, 그 옆에서 세 명의 노른 Norns 또는 운명의 여신 Fates들이 생명의 물을 긷고 있다. 이 물은 영적 원동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위그드라실의 잎을 신선하고 초록빛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세 노른의 이름은 각각 우르드 Urd, 스쿨드 Skuld, 베르단디 Verdande다. 우르드는 '과거', '태고의', 또는 인간과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동정의 상태'를 의미하는 독일어 'ur'에서 유래되었다. 그녀는 우리가 과거에 만든 운명(원인)의 실을 베틀로 계속 돌린다. '현재'를 상징하는 두 번째 노른, 스쿨드의 이름은 '빚'을 의미한다. 그녀는 우르드가 실의 형태로 보내는 과거의 운명을 받아 우리가 이번 생에서 갚아야 할 빚을 실로 만든다. 그다음에는 세 번째 노른, 베르단디가 스쿨드로부터 과거와 현재가 담긴 실을 넘겨받는다. 베르단디의 이름은 '~되다'를 의미하는 독일어 'werdende'에서 유래되었다. '미래'를 상징하는 베르단디는 인간이 이번 생에서 갚은 빚을 상징하는 실을 받아 하나씩 잘라버린다. 노른의 아름다운 심볼리즘은 우리가 전생에서 만들어낸 원인이 이번 생에서 결과로 나타나고, 그 빚을 갚으면 카르마의 채무 관계가 완전히 청산된다는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리뷰자 주 : 조금 다른 정의.)
- 즉, 노른은 신들의 하수인이 아니다. 인간의 운명은 신들의 변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법칙이라는 자연의 규율에 의해 정해진다는 가르침이 바로 노른 심볼리즘의 핵심이다.
- 육신의 베일이 살아있는 현실을 시야에서 가려버리는 물질 세상보다 훨씬 높은 곳, 환각적인 형상으로 인간을 현혹하며 현실을 왜곡하는 욕망과 허상의 세상을 초월하는 곳에 선 영혼이 느끼는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숨김없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주 만물의 원형이 하나가 되어 장엄한 천상의 합창곡(피타고라스가 언급했던 '천체들의 하모니')을 부르며 어우러지는 '구체적 사고의 영역'에 접근해야 한다.
(리뷰자 주 : https://youtu.be/AV8Jh9X8Q30 실제로는 들을 수 없지만, 변환한 천체의 소리들.)
- 영지주의 전통에서는 이 영혼의 각인을 '영광의 예복 Robe of Glory'이라 표현했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저자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삶에서 배운 교훈과 경험을 지니고 이승을 떠난다.
- 인류의 진보와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자연의 기억을 탐구하는 영혼은 언젠가는 자신의 전생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포도밭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진정한 일꾼은 헌신의 길에서 한눈을 팔지 않으며,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위해 정도에서 이탈하는 법이 없다. 입문자도 첫 번째 입문식에서 호기심으로 영의 힘을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교육받으며, 그 이후에도 사원을 방문할 때마다 귀에 딱지가 들러붙을 정도로 이 중요한 가르침을 반복 학습한다.
- 영적 힘의 올바른 활용과 오용은 백지 한 장 차이며, 입문자가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힘의 활용에 대한 제약은 더욱 커진다.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열의 아홉은 이렇게 묻는다. "영안을 갖고 유체이탈을 하는 능력을 갖춘다 한들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게 제약이 많으면 그 힘을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힘은 소중하며, 그 힘의 사용에 대한 책임은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 이 전설의 핵심 주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단 하나이며, 그 죄를 지은 사람은 속죄와 회개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 천사들의 지배자인 여호와는 달의 시대 Moon Period 최고의 입문자이며, 달의 힘으로 인류의 성장을 지도하는 존재다. 그는 생성(생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임신할 수 있게 하는 신으로, 달의 빛을 활용하여 길일에 출산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에게 새끼를 선물한다.
- 전설에 따르면 루시퍼가 모세의 시신을 두고 대천사 미카엘과 겨뤘을 때, 그의 왕관에서 가장 값진 보석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이 아름다운 보석은 '일릭서 Elixer'라는 이름의 에메랄드였다. 결투 당시 이 보석은 심연으로 떨어졌지만 천사들이 다시 회수했고, 이 보석으로 구세주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정화의 피를 받은 성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선 이 보석이 에메랄드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에메랄드는 초록색 보석이며, 초록은 파랑과 노랑을 섞은 것이므로 세 번째 원색인 빨강의 보색이다. 물질 세상에서 빨강은 인간을 흥분시키고 활기를 북돋우며, 초록은 열을 식히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열망의 세상에서는 색의 효과가 반대로 뒤집어진다. 빨강이 아닌 초록이 활성화되어 인간의 욕망과 감정에 불을 지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루시퍼의 왕관에서 떨어져 나간 보석의 색은 초록이다. 이 보석은 현자의 돌과 정반대의 극성에 있으며, 영혼 간의 순결한 사랑을 상징하는 흰색 돌과 달리 인간의 욕망을 끌어당기고 섹스를 위한 사랑을 부추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보색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언어에도 색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다. 영어에서는 질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불순한 사랑을 '초록 눈의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리뷰자 주 : https://youtu.be/ZtaMjcBFHFo 무맥락이지만 좋아하는 곡.)
- 의지는 영혼의 남성적 속성이고, 상상력은 여성적 속성이다. 의지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는 영혼이 남자로 태어나고, 상상력이 더 강할 때는 여자로 태어난다. 자연계의 지속적인 순환이 보장되는 무지개의 시대에는 이처럼 인간도 남성과 여성의 육신을 번갈아 걸치며 태어난다. 하지만 남자로 태어나든 여자로 태어나든, 모든 인간의 육신에는 반대 성의 흔적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따라서 인간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 Dweller on the Threshold, Guardian on the Threshold. 물질 세상에서 상위 세상으로 넘어가는 여정에서 대면하게 되는 영적 세상의 문지기. 문지방 수호자는 끔찍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오로지 오이디푸스 Oedipus처럼 용기 있는 영웅만이 스핑크스 같은 이 괴물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이 문지방 수호자를 '내면의 적대자', '갚지 못한 카르마', '죄의 육신', '장애물', '부정의 영', '내면의 악' 등으로 불렀다. 영적 성장을 위해 문지방 수호자의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악마를 극복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회색 마법사 간달프가 모리아의 폐광에서 내면의 악마 발로그를 물리친 후 백색 마법사로 거듭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역시 문지방 수호자의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비유라 할 수 있다.
- 우리가 물질 너머의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대면해야 하는 '문지방 수호자'는 항상 반대 성을 가진 생명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런데 그를 자세히 보면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탕한 삶을 산 사람에게는 문지방 수호자도 끔찍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파르지팔이 쿤드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그녀는 추녀로 변한다. 그 시점의 쿤드리는 파르지팔 앞에 나타난 문지방 수호자다. 그 문을 통과해야만 성창을 손에 넣을 수 있다.
- 단순히 참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식적으로 원해서 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비주의자들의 말대로 '내면의 여성을 찾아야 한다.' (물론 여성의 경우에는 반대로 내면의 남성을 찾아야 한다.) 내면의 여성(또는 남성)을 발견한 후에는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처럼 순수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바그너가 창작한 모든 오페라 중 <로엔그린>처럼 보편적인 인기를 두루 누리고 있는 작품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봤을 때 아주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악 또한 <파르지팔>, <니벨룽의 반지>, <탄호이저>처럼 신화와 전설을 주제로 하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매우 우아하다. 물론 방금 언급한 작품들도 감상자에게 강력한 영적 작용을 하지만(감상자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봤을 때 폭넓은 애호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유럽보다 신비주의 정신이 취약한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인기가 떨어지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로엔그린은 얘기가 다르다. 로엔그린은 기사도 정신이 정점에 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로엔그린 전설의 핵심은 영적 세상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믿음이 없는 자는 결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 하지만 믿음이 확실하면 다른 부족한 점들도 얼마든지 아우르고 보완할 수 있다.
- 즉, 백조는 내면의 힘을 계발하고 의식 수준을 상승시킴으로써 영적 세상을 포함한 여러 세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을 갖추게 된 입문자를 상징하는 심볼이다.
- 다시 말해, 진정한 스승은 구도자가 진심으로 기도했을 때 모습을 나타내며, 구도자가 세상을 버리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스승은 지도를 갈망하는 구도자에게 손을 내밀고 진리의 검으로 거짓을 정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스승의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후에는 제자의 절대적인 신뢰를 요구한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므로 마치 불로 의식 속에 영구적으로 각인시키듯이 새겨듣기 바란다. 구도자의 기도(말로 하는 기도뿐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겠다는 열망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를 듣고 나타난 스승은 자신이 스승의 자격과 제자를 돕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임을 명백하게 입증하며, 그 후 제자는 절대적으로 스승을 신뢰해야 한다. 이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로엔그린의 핵심 메시지다.
- 입문을 희망하는 구도자는 스승을 받아들이기 전에 스승이 제자에게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는 그리스도의 말처럼, 스승도 자신이 맺은 열매를 보여줘야 한다. 진짜 스승은 제자가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량을 드러낸다. 제자보다 많은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신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그다음에는 스승에 대한 절대적 신임이 요구된다.
- 엘자처럼 약속대로 스승을 섬기지 않은 구도자는 아무리 진심으로 회개하고 눈물을 흘려도 이번 생에서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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