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병선 / 루이스 캐럴 / 존 테니얼
출판 : 오월의 봄
출간 : 2015.12.15
수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앨리스라는 신선한 설명에 한 번 읽어보았다.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좀 더 기대되는 점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뿐이었다. 저자는 <앨리스의 놀라운 세상 모험>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구분해서 표현하고 싶어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용적으로 흥미로운 해제들이 많았다. (저자가 주석이 아닌 해제라고 표현했으므로 이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으나 번역에 있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는 앨리스의 대사들을 존대와 하대로 구분해서 번역한 기준이다. 대체로 인간형 캐릭터에게는 존대를 하고 동물형 캐릭터에게는 하대를 하는 편인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공손하게 표현했다는 설명이 있는 경우만 존대를 한 것도 아니라 아주 의아했다. 티파티에서 삼월 토끼에게는 하대를 하지만 이상한 모자(저자는 모자 장수가 아닌 모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에게는 존대를 하는데, 글쎄, 나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둘째는 동일한 문장을 본문에서와 해제에서 다르게 번역한 부분인데, 다양한 번역의 맛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 같지는 않았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최대한 맛을 살린 번역을 하기 위해 다듬은 것이 본문일텐데, 그렇다면 그것을 해제에서도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셋째는 tortouise를 민물 거북, 남생이로 번역한 것인데... 둥글고 큰 등껍질을 가진 육지 거북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는 마틴 가드너 외 다른 주석에서도 다룬 부분인데 굳이 남생이로 바꾼 이유가 있을까?
넷째는 whiting을 명태로 부른 부분이다. 명태도 대구과이긴 하지만, 대구로 번역하는 것이 조금 더 맞지 않았을까 싶다. 입에 꼬리를 물고 빵가루를 묻힌 형태로 요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앨리스>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형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작품이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매혹적이고, 거는대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여러 번 읽어도 좋다는 점도.
이번에도 즐거웠다.
-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토끼가 "맙소사, 맙소사! 늦었어!" 하고 혼잣말을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그런데 토끼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들여다보더니 서두르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벌떡 일어섰다. 조끼를 입은 토끼나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앨리스는 들판으로 토끼를 쫓아갔다. 다행히 놓치지는 않았다. 녀석이 산울타리 아래 커다란 토끼 굴로 슝 하고 사라지는 게 보였다.
- "게임이 전혀 공정하지 않아요." 앨리스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자기 말이 안 들릴 정도로 중구난방 다퉈요... 규칙도 전혀 없는 것 같고. 아니 있다 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구요... 다 살아 움직여서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모르실 거예요. 가령, 내가 다음번에 통과해야 하는 기둥 문이 운동장 저쪽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식이라구요... 지금도 여왕의 고슴도치를 제칠 뻔했는데, 내가 친 고슴도치가 굴러가자 달아나버렸어요!"
-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는데." 짝퉁 거북이 말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리폰이 냉큼 대꾸했다. "다음 연으로 가볼까?"
"아무리 그래도 발가락은?" 짝퉁 거북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가 어떻게 자기 코로 발가락을 쫙 펼 수 있다는 거지?"
"춤의 첫 번째 자세예요." 앨리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사태 전반이 몹시 곤혹스러웠다. 화제가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음 연으로 가자구." 그리폰이 조바심을 쳤다. "'그의 정원을 지나쳤지'로 시작하지, 아마?"
앨리스는 시어가 몽땅 틀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앨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정원을 지나쳤지. 그런데, 올빼미와 표범이 파이를 나눠 먹는 광경이 눈에 띄었네."
표범의 몫은 파이 껍질, 그레이비, 고기 조각.
반면 올빼미는 접시만 달랑.
이윽고 파이를 다 먹자,
올빼미는 요긴한 숟가락을 챙겨가도 좋다고 허락받았지.
하지만 나이프와 포크뿐인 표범은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네.
파티 끝.
"그걸 외우는 게 다 무슨 소용이지?" 짝퉁 거북이 입을 열었다.
- 오이 묘상은 오이 모종을 키우는 시설물입니다. 아직 어린싹이므로 저온이나 비바람 따위의 악천후로부터 지켜줘야 하는 것이지요. 오이의 원산지는 인도입니다. 3000년 전부터 재배된 것 같습니다. 이 작물이 영국에 전해진 것은 14세기 말이라고 합니다. 대우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이, 17세기에는 소나 먹으면 딱 알맞은 식물이라며 카우 컴버(cowcumber)라는 별명으로 멸시당하기도 했다네요. 아무튼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도 오이를 먹었습니다. 그냥도 먹었겠지만, 빅토리아 시대에는 샌드위치 충전재로 썼습니다. 이름하여 오이 샌드위치(cucumber sandwich)! 오후에 하는 다과회 (tea party) 때 함께 나왔는데, 상류 계층이 저녁식사 전 간식으로 선호하면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죠. 음식사가 들은 오이 샌드위치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발명품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양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오이는 물이 95퍼센트입니다), 하층 계급은 이 음식을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했으니까요. 파인애플 해제에서도 보았듯이, 고위도 지방 영국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였습니다. 에드워드 치세기에야 풍부한 석탄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온실 재배를 통해 사시사철 생산할 수 있었죠. 빅토리아 시대에 오이 샌드위치가 호화롭고 부유하게 사는 것과 직결된 이유입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희곡 <정직한 게 중요해(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를 보면, 왜 하찮은 상대에게 오이 샌드위치까지 준비하느냐고 타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컨대, 마구 돈을 쓰며 과시하는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이 고급 식문화는 인도와 아프리카와 호주의 식민지 개척자들에게로 빠르게 퍼집니다. 인도에 파견된 식민지 관리들은 오이 샌드위치가 그저 단순한 고향의 맛 이상임을 즉시 깨닫습니다. 열대의 무지막지한 더위를 식혀주는 데 이 다즙성 채소가 톡톡히 한몫을 했으니까요. 오이가 3000년 만에 오이 샌드위치로 다시 인도에 상륙한 것입니다.
- 루이스 캐럴도 라파엘전파 및 다른 많은 빅토리아 시대인들처럼 중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1875년에 찍은 사진들은, 여자한테 사슬 갑옷을 입히고 잔다르크처럼 자세를 취하게 한 내용이었는데, 이는 라파엘전파가 애정하는 주제였죠. 테니슨과 월터 스콧 경한테서 가져온 인용문으로 사진 설명을 달았다는 사실을 보태야 할 것입니다. <앨리스의 놀라운 세상 모험>으로 발전하는 1863년의 필사본인 <앨리스의 지하 세계 모험>에서 캐럴은 중세식 서체를 사용합니다. 제목이 적힌 페이지는 마치 채식 수고본 같습니다. 캐럴과 라파엘전파 공히 꿈이라든가 자극 역치 상태에서 발휘되는 상상력의 잠재력에 깊이 매혹되었습니다.
- 한마디로 시간의 축합(縮合, condensation)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래에서는 다윈의 플롯이란 책을 쓴 빅토리아 시대(1837~1901) 문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질리언 비어(Gillian Beer)의 2011년 강연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볼 때, 현시점에서 가장 탁월한 앨리스 해석이자, 수학자란 도지슨의 정체성을 복원했고, 그래서 웅숭깊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 휴대용 시계는, 루이스 캐럴이 앨리스를 쓸 당시에 이미 인간의 버젓함과 가치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시계는 복잡한 기술을 창안해낼 수 있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을 대변하기도 했죠. 하지만 공장에 설치된 시계와 더불어서, 휴대용 시계는 산업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철도와 기차 시간표가 보편화됐고, 영국 전역에서 시간이 통제됐죠. 말쑥한 차림의 흰 토끼가 진지하게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삽화를 떠올려보십시오. 시간에 대어 가지 못하는 토끼, 근심과 불안.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시간을 통제하는 사회와 그 사회가 제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 아래 놓인 개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와 매우 닮았죠. 본문의 해제에서 바로 그 '오래된 현재' 빅토리아 시대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해설해놓았습니다. 이런 고찰을 통해 우리 시대와의 충돌과 결탁이 드러났으면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복잡한 관계라는 걸, 당대인들은 점점 더 이해해가는 중이었습니다. 사진술이란 것도 보면, 그 기술로 시간과 장소가 동결돼, 옮길 수 있게 됐죠. (루이스 캐럴이 사진술을 일찍부터 열렬히 신봉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크로노미터가 바다에서 시간을 기록했고, 식민 영토를 지도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과 공간이 합쳐졌고, 산업과 과학과 기술의 변화상 속에서 시간의 속성이 탐구됩니다.
- 헤르만 폰 헬름홀츠, 베른하르트 리만, 게오르크 칸토르, 윌리엄 로언 해밀턴,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이 사안을 드잡이 했고, 혁신적인 개념과 이해 방식을 제출합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수학과 과학에 미증유의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루이스 캐럴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기도 했습니다. 도지슨은 수학자이고 논리학자였죠. 그는 상당히 괴로운 논쟁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클리드적 질서 속의 시공간 개념이 보편적이 아니라 국부적일 뿐임을 암시하는 논쟁이 비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헬름홀츠는 기하학의 공리들을 논한 에세이에서 리만을 언급합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기하학 체계가 토대를 두고 있는 공리들은 필수 불가결한 진리가 아니다."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 도지슨이었고, 열렬한 유클리드 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수학자 도지슨이란 정체성에 기초한 <앨리스> 분석은 20세기에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도는 20세기 후반에야 겨우 시작되었고, 그 성과를 정리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작은 사명입니다. 바로 그것이 한국어 공동체에서 앨리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고 말입니다.
- <앨리스>에 주석을 단 것으로 명성이 드높은 마틴 가드너(MartinGardner)는 운문 형식의 쥐 이야기(tale)가 쥐꼬리(tail) 모양인 것에 주목하며, 영문학 사상 가장 전형적이며, 널리 알려진 상형시(calligram)일 거라고 말합니다. 언급하는 대상 또는 주제와, 시 자체를 형태적으로 유사하게 제시하는 문예상의 시도를 가리켜, 상형시(구상시, 도형시)라고 합니다. 중국어의 한자가 상형문자에서 출발했고, 서예(calligraphy)를 즐기는 분들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런 관례와 활동이 낯설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학급 문집이나 졸업 앨범 제작에 참여해본 분은 상형시를 쓰거나, 글자 자체를 구성 요소로 해 시각 이미지를 꾸며보기도 했을 겁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매우 빈번한 관행이라는 것이죠.
- 문자의 조형성에 주목한 문화권에서는 이런 시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형시 작가로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를 들 수 있겠습니다. <칼리그람(Calligrammes)>이란 상형시집을 냈을 정도니까요. 스티븐 컨(Stephen Kern)이 쓴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192쪽에서 그의 상형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폴리네르가 에펠탑 모양으로 쓴 상형시도 유명합니다.
- 말이 나온 김에, 영국 전통의 오이 샌드위치 제조법도 알아보지요. 버터를 가볍게 바른 흰 빵을 삼각형으로 자릅니다. 물론 빵 껍질도 제거해야죠. 오이를 준비하고, 물기를 적당히 빱니다. 그 오이를 얇게 자른 다음, 소금과 레몬 주스를 약간 뿌립니다.
- 허나 작품 <앨리스>가 수학적 영감에 기초했음을 파악해보려는 최초의 깊이 있는 시도는 위스콘신 대학교 밀워키 캠퍼스의 헬레나 피시오(Helena Pyeior)일 겁니다. 그가 1984년 하트 잭 재판 에피소드를 빅토리아 시대에 나온 한 대수 책과 연결했으니까요. 저는 마틴 가드너의 <주석을 단 앨리스>에서 수학적 내용을 그리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가드너가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오랫동안 수학 퍼즐을 연재해서일까요? 일부 독자가 상기한 두 책을 통해 수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볼 때, 착각 같습니다. 아마도 논리학의 방법과 추론의 규칙 따위를 머리로 만지작거린 경험을 얘기하는 걸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논리와 추론도 수학의 내용이니까요).
- 아무튼 2009년 말에 드디어 같은 옥스퍼드 대학교 후배인 멜라니 베일리(Melanie Bayley)가 작품 <앨리스>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심화합니다. 2009년 12월 16일 자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발행된 <앨리스의 대수학 탐험: 호기심 해결(Alice's Adventures in Algebra: Wonderland Solved)>에서 그가 발견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 문학적 해석의 영역을 논하는 중이니, 멜라니의 '해석' 또는 멜라니의 '이론'이라고 해야겠군요. 아무튼 저는 멜라니의 이론에 강력하게 끌립니다. 이하의 해제에서는 주로 멜라니의 이론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도지슨 씨가 '앨리스' 이야기를 쓰던 19세기에 수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요. 그의 직업이 수학 교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웃을 때 이빨과 잇몸이 드러나면 누구한테나 쓸 수 있다." '체셔 고양이처럼 활짝 웃다(grinning like a Cheshire cat)'란 이 직유 표현이 루이스 캐럴에 의해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더 나아가 앨리스 독자가 있는 곳이라면 이제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 사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안건은 투명 고양이 모티브일 것입니다. 역시 여기에도 여러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체셔의 낙농업자들이 생산한 치즈의 주형(틀)이 한때 웃는 고양이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치즈를 고양이 모양으로 만들면 골칫덩어리 쥐가 겁을 먹을 수도 있을 거라는 발상이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 그렇게 생산된 고양이 치즈를 사람들은 꼬리 부분부터 잘라먹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소리 없이 활짝 웃는 고양이 머리만 남았겠지요.
- 계속해서 두 번째 가설을 봅시다. 한스 헤이버먼(Hans Haverman)은 캐럴이 달이 이우는 것에서 고양이가 사라지는 착상을 했을 거라고 합니다. 서서히 사라지는데,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활짝 웃는 입과 닮았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캐럴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아마추어 사진가였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사진술은 여전히 미흡했습니다. 실수로 이중 노출을 하거나 현상을 잘못하면 사진을 망치기 일쑤였죠. 1800년대 후반에 영국에서 유행한 심령사진 따위를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런 경험에서 캐럴이 투명 고양이, 사라지는 고양이를 발안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아무 데도 없는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유명한 비유인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edinger's cat)와도 연결됩니다.
- 고양이는 가축(domestic animal) 일까요. 아닐까요? 반려동물이라구요? 영국 방송국 BBC <호라이즌(Horizon)>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The Secret Life of the Cat(고양이들의 내밀한 삶)"을 유튜브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고양이 집단이 개처럼 가축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위 선택의 결과죠.
- 횡설수설 다과회에 대한 멜라니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데, 무척 흥미롭습니다. 수학사의 당대 전개를 아는 분이면, 혹할 만합니다. 윌리엄 로언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이란 에이레 출신 수학자가 있습니다. 1865년에 죽었는데, <앨리스>가 출판된 직후입니다. 해밀턴이 1843년 그 유명한 4원수(quaternion)를 발견했지요. 개발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이 체계가 추상 대수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맡습니다. 각종 회전을 대수로 계산하는 게 가능해졌거든요. 알다시피(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가정하면), 복소수(complex number)는 기재항이 둘입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4원수 체계는 기재항이 넷입니다. 해밀턴은 오랫동안 항을 3개 설정하고 연구했습니다. 공간의 각 차원에 하나씩 배분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들의 회전이 평면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고심 끝에 네 번째 항을 설정하자, 그토록 찾아 헤매던 3차원 회전이 나타났죠. 하지만 해밀턴도 그 추가 항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도 이 기재항이 뭔가를 의미해야 함은 분명해 보였지요. 해밀턴이 1853년 <4원수 강의(Lectures on Quaternions)>를 출판하는데, 그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씁니다. "내가 볼 때, 이 여분의 공간 단위는 시간과 결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 생각이 지금도 여전하다."
- 멜라니가 지적합니다. 해밀턴의 수학과 이상한 모자의 다과회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죠.
- 해밀턴의 발상을 염두에 두면서 7장을 읽어보세요. 횡설수설 다과회의 세 참석자가 4원수의 세 기재항이라는 생각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네 번째 기재항인 시간이 빠져 있지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 세 등장인물은 탁자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깨끗한 컵과 찻잔 받침을 찾아 돌뿐이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이걸 보자면, 해밀턴이 운동을 계산하려던 초기 시도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평면에서 회전하는 한계에 부닥치지요. 마침내 그가 시간 차원을 보탤 때까지는 말입니다. 앨리스가 무리에 합류했지만, 이상한 모자와 삼월이와 겨울잠쥐는 탁자 돌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앨리스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죠.
-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매년 2월 2일을 성촉절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동지와 춘분의 중간쯤 되는 날에 동면에서 덜 깬 그라운드호그를 잡아 가두고는, 이 설치류가 자기 그림자에 놀라는 모습을 관찰하죠. 고대 켈트족의 민간전승에 따르면, 그 움직임을 통해 봄이 일찍 올지 아니면 3월 말에나 올지 예측할 수 있다는군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 말입니다.
- 이제 겨울잠쥐가 해주는 '당밀 우물' 얘기로 넘어가 보죠. 당밀(糖蜜, treacle, molasse)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듯합니다. 화밀(花蜜), 그러니까 꽃꿀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탕무나 사탕수수에서 사탕을 뽑아내고 남은 검은빛의 즙액"이라고 나옵니다. 검정색의 달짝지근한 현탁액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당밀을 뜻하는 영국 영어 '트리클(treacle)'은 원래 뱀한테 물린 상처, 독물 중독, 기타 여러 질병에 처방되던 약물이었습니다. 한때 '해독제, 특효약, 직방'이란 말로 쓰였다는 얘기입니다. 이후로 '트리클'이란 기표와 '당밀'이란 물질이 결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죠.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에서 그 옛날의 치료 효과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치료 효과가 있는 물이 나온다는 우물을 사람들이 '당밀 우물'이라 부른 이유도 이제 짐작이 됩니다. 이런 식의 민간전승은 거의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 산재한 각종의 광천 및 온천이 로마 시대부터 원기를 회복하는 데 좋다고 격찬을 받았지요. 한편 빅토리아 시대에는 온천욕에서 해수욕으로 휴양과 오락의 방법이자 장소가 서서히 바뀌어 갔습니다. 왕실이 유행을 주도했고, 관련 전문가, 곧 의사의 대중 안내서도 발간되었죠. 마틴 가드너가 자신의 저서 <주석을 단 앨리스>에서 '당밀 우물'이 실제로 캐럴 시대에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근처 빈시(Binsey)라는 곳의 당밀 우물이 중세 내내 치유의 기적이 실현되는 인기 있는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사람들은 다과회(茶菓會, tea party)를 즐겼습니다. 차를 비롯한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즐기며 기분을 전량하는 오후의 여흥 활동이자 의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차란 음료가 유럽과, 특히 영국에서 차지한 독특한 지위가 중요했습니다. 차의 원산지가 중국이고, 아득히 먼 동양의 진귀한 음료를 마시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죠. 1840년대에 영국 사상 가장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티타임인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가 생겨납니다. 사냥을 나선 남편을 기다리다가 허기를 느낀 베드포드 공작부인이 공복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차와 간식을 내오도록 시켰고, 그것이 애프터눈 티가 시작된 계기라고 합니다. 공작부인 애너 러셀(Anna Russell)이 친구들과 손님들에게 이 다과회 개념을 소개하고 참여시키면서, 애프터눈 티가 유행처럼 번져나갔죠(재배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오이를 집어넣은 샌드위치도 이때 먹었습니다). 사회적 ‘구별 짓기'와 '따라 하기'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렇게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저녁 만찬 전의 우아한 차 시간이 사교로 정착을 합니다.
- 신흥 중간 계급인 부르주아들이 거기에 가세합니다. 공업 및 상업 활동을 통해 경제력을 갖춘 부르주아들도 당연히 상류층의 그 여흥을 따라 하고 싶어 했습니다. 다구(茶具)가 널리 보급되고, 차 가격이 싸진 것이 거기에 일조했지요. 마지막으로 노동자 계급에게 하이 티(High Tea)가 보급되면서, 영국은 온 국민이 차를 마시고 즐기는 민족이 됩니다. 노동자 계급의 후생을 염려하던 위로부터의 개혁가들이 금주 운동을 벌였고, '술이 아니라 차를'이란 구호가 제창됩니다. 공장에서는 휴식 시간에 맥주 대신 홍차를 제공했습니다. 홍차는 손쉽게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음료였고, 공장은 난방이 안 되던 시절이었죠. 각성 작용을 하는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으면 열량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고, 그 효과는 공장주에게도 보탬이 되었습니다. 일과를 마친 노동자는 퇴근 후 선술집이 아니라 귀가해서 하이 티를 즐기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죠. 하이 티에서는 푸짐한 저녁식사와 함께 홍차를 마셨습니다. 왜 '높다'는 뜻의 '하이(high)'란 말이 붙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고, 사실 잘 모릅니다. 다만 명확히 해둘 것은, 미국 사람들을 포함해서 흔히 오해하지만, 하이 티는 간단한 다과회가 아니라 든든한 저녁식사였습니다. 19세기 말에 영국인들은 계급을 초월해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 <먹거리의 역사>를 쓴 마궐론 투생-사마(Maguelonne ToussaintSamat)는 빅토리아 시대의 차 문화를 이렇게 적습니다. "부유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차를 달여서 식욕을 돋운 후에, 훈제 생선, 죽, 달걀과 베이컨 등으로 된 넉넉한 아침식사를 먹었다. 낮 동안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한 잔의 맛있는 차가 필요했고, 오후 네 시경에 케이크, 롤빵, 샌드위치, 머핀, 핫케이크, 설탕절임 등을 먹는 애프터눈 티나 조금 늦은 시간에 먹는 저녁식사에도 차를 마셨다. 저녁식사에는 오후의 다른 음식과 점심 메뉴에 등장한 것도 함께 먹었다."(<먹거리의 역사> 하권, 299쪽)
- 로알드 달(Roald Dahl)이 1982년에 다시 쓴 <빨간 모자>는, 주인공인 '빨간 모자'가 권총으로 늑대를 쏴 죽이고, 녀석의 가죽을 외투로 걸칩니다. 19세기와 다른 20세기 방식이죠. 이 이야기의 교훈,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어린 여자아이를 속이기가 쉽지 않다.
-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실내 유희 겸 게임을 소개해야 할 듯합니다. 일명 응접실 게임(parlor game)이라는 것인데요.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과 미국의 상층 및 중간 계급이 이 실내 유희를 무척 즐긴 것으로 전합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서 여가 시간이 더 많았고, 해서 다양한 유희가 만들어졌습니다. 실내에서 소규모의 남녀 무리가 여흥으로 즐길 거리가 필요했던 거죠. 크리스마스 때 트리 주위에 다 함께 모여서 선물 상자를 풀어보는 것이나 보드 게임(boardgame)도 이 '팔러 게임'의 잔재입니다. 상당한 정도의 활동량과 운동능력을 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 라파엘전파의 교리는 회화와 시와 장식 미술에서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윌키스는 라파엘전파 원들이 열광한 주제와 이미지 들인 중세주의, 거울, 꿈, 천진난만한 아름다움(아름다운 어린이)을 루이스 캐럴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캐럴을 라파엘 전파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둘의 공통점을 몇 가지만 추려보도록 하지요.
- 근대 자본주의가 사회구조를 이렇게 변화시켰고, 동화 역시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참조항 삼았으며, 이들 이야기 중 많은 것에서 자선과 성실함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가 아이들에게 주입되었습니다. 서순은 어린이 책의 사명이 다음과 같았다고 봅니다. "순종과 순응, 종교적 도덕성의 원칙을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주입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야 했다. 다시 말해 어린이 책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체계적으로 세뇌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일부 어른들의 인식 모형 속에서", 어린이는 때리거나 꼬드겨서 교육해야 하는 작은 야만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의 '작은 노동력', 곧 '꼬마 일꾼'에 비한다면 좀 나아진 것일까요? "어린이 책은 그렇게 국가 건설에서 한몫을 했다. 어린이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도덕을 흡수해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조국과 그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는 작은 시민, 꼬마 애국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2권, 267쪽)
- "1870년에 이르면 사실상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평균 일곱 살이면 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 동요 내용이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느끼신다면 과학적 인문학 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분석합니다. 일단 다루는 주제가 광범위하고, 그래서 경이롭습니다. 선과 악, 탄생과 죽음, 부모와 자식, 괴물과 영웅, 엄마와 아기, 우주선과 유니콘, 실제와 공상이 결합되는 것을 보노라면 아이들이 인간의 조건을 정면으로 드잡이 한다는 느낌이 들지요.
- "기차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치고, 못된 여자아이가 감옥에 가고, 아기 토끼가 불장난을 하다가 집을 홀라당 태우고, 남자아이가 활을 쏴서 가족을 몰살하고, 또 다른 남자아이가 대포로 사람 눈알을 포탄처럼 쏘고, 사냥꾼이 아기 세 명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아이들이 마녀의 배에 칼 189개를 꽃아 죽입니다."
- 빅토리아 시대의 학교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아주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처음에 모래 쟁반에다가 손가락이나 막대를 이용해 글씨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계속해서 일곱 살쯤 되면 석판에다 쓸 수 있었죠. 석판은 채석장에서 캐낸 점판암으로 만들었습니다. 테두리에는 나무를 댔고요. 글씨를 쓰는 데는 석판용 연필인 석필을 썼습니다. 석필은 학교 건물 벽에다 대고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었고요. 석판은 깨끗이 닦아내고 되풀이해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이보다 유리했습니다. 아이들은 천이나 스펀지를 가지고 등교해야 했습니다. 물에 적셔서 깨끗이 닦아야 또 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은 침을 뱉고 소맷동으로 닦아내는 걸 좋아했죠. 정말 좋아했습니다. 좀 낡긴 했지만 영국 사람들이 여전히 사용하는 표현인 "석판을 깨끗이 닦다(to wipe the slate clean)"란 어구가 여기서 기원했거든요.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죠.
- 표기한 단어들의 출현 빈도를 확인해보고자 한 것이죠. 하지만 읽은 선 그래프를 감상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구이긴 해도, 엔그램에는 아직 한계가 많았습니다. 시종일관 낮은 순위를 기록한 mote, speck, thimbleful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개 단어 중에서 Atom이 꼴찌이긴 했어요(등위를 소개하면 trace > dust > bit > particle > minimum > atom). 엔그램뷰어는 1800년부터 2012년까지 출간된 영어 책 800만 권에서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를 조회하는 도구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 단어의 여러 뜻을 구별하거나 맥락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는 빼고 책만을 대상으로 만든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저작권이 가세하는 바람에 단어의 출현 횟수만 헤아리는 구조인 것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 사실 이렇게 빅 데이터(big data)를 가공하고 연구하는 활동은 21세기 들어 새로 출현한 분야죠. 연구자들의 집단적 노력이 거듭되면 놀라운 가능성 속에서 분명 우리는 새롭고, 혁신적인 통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무척 감질나는 상황이네요. 하지만 이 정량적 도구가 매우 참신한 수단이란 것은 분명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100년을 산다 해도 800만 권은 고사하고, 8,000권도 읽기 힘들 테니까요. 요컨대 우리가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만 있다면, 사태의 진실에 조금쯤 더 다가설 수 있겠죠.
- 어거스터스 드 모건(Augustus De Morgan)은 그의 1849년 저서 <삼각법과 이중 대수(Trigonometry and Double Algebra)>의 제2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추상 대수(symbolical algebra)를 요약하고 있는 그 내용을 볼까요. "산술과 대수의 언어 및 기호는 이 장 전체에서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No word nor sign of arithmetic or algebra has one atom of meaning throughout this chapter). 이 장의 주제는 상징들 및 그것들의 조합 법칙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상 대수가 구축된다." 약 15년 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가 하트 잭 재판을 방해합니다. 흰 토끼가 낭독한 시가 말이 안 된다며 끼어드는 것이죠. 앨리스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I don't believe there's an atom of meaning init!)" 드 모건의 대수 교재와 캐럴의 <앨리스의 놀라운 세상 모험>에 아톰(Atom)과 의미(Meaning)란 단어가 공히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 여기서 장 지오노(Jean Giono)의 동명 소설과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을 떠올리시는 독자분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욕망 또는 애욕을 다스리기 위해 분투하는 기병의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지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이야기가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앨리스 시절과 불과 30년 차이뿐이니까요. 도지슨은 "나는 마음속으로 죄를 지었다"고 말했으며, 그런 성향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일기를 보면 캐럴은 자신을 경멸합니다. '간절히 기도드리나니, 저를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심지어는 그의 수학 저술을 봐도 이런 갈등과 투쟁이 읽힙니다. 침대에 누워서 수학에 몰두하면, "불경한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증오스럽고, 괴롭다. 그런 바람과 욕망이 깨끗하고 순수해지는 것이 바로 수학이다." 삼각법을 논한 책에서 이런 격정을 토로하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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