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아사오 하루밍] 나는 고양이 스토커

일루젼 2022. 2. 10.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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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사오 하루밍 / 이수미

원제 : 私は猫スト-カ- 完全版
출판 : 북노마드 
출간 : 2015.09.22 


일본인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는 고양이 스토킹 에세이.

 

생활 반경 안에서 길고양이들을 관찰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발상이 귀엽다. 일본 안에서 여행이라면 몰라도, 몰타 섬까지 가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에게는 주변의 의심을 사거나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길고양이들을 만나더라도 간식은 주지 않고, 멋대로 데려온다거나 억지로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이해가 간다. 다양성의 공존이 더 나은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강제와 설득보다는 이해와 감화가 필요하다는 이상주의에 가까운데, 사실 이런 생각마저도 결국은 나의 가치관에 상대를 끌어들이고 싶다는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들이 부딪치며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때때로 아득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비가 오는 날에도 추위와 불편을 무릅쓰고 고양이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저자에게 감탄했다. 내 경우에는 어쩌다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는 건네는 정도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만남을 위해 무작정 외출한 적은 없었다.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흉내내 보고 싶기도 한데 이 근방에 고양이 골목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찾아나서지 못해서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봄부터는 느긋한 산책을 즐겨봐야지. 

 

이 책은 한 권 전체가 고양이를 발견한 이야기,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한 이야기, 마주쳐서 생긴 일화 이야기들이다. 재미난 일화나 놀라움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냥 고양이가 너무 좋은 한 사람이 '고양이!!' 거리는 걸 구경하는 맛인데, 그런 것이 싫지 않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고양이는 자기가 세계를 지배하는 지구 상에서 가장 대단한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기르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고양이는 인간을 위해 길러지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지배자인 고양이도 때로는 고양이끼리만 모여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쉬면서 고양이 제왕학에 대해 토론도 하고... 그러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다. 지난번에는 왜 눈에 띄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다. 여태까지 본 적 없는 특이한 색깔의 건물이어서 이런 집에는 고양이가 없을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한 탓이다. 보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선입관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한다. 이 집 앞을 몇 번이나 지났는데.

 

- 구로카와 씨는 '어감'이 사람에게 주는 인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인공지능 개발에 참여했을 때 로봇이 하는 말이 사람에게 엄한 인상을 주는 이유에 대해 연구하면서, 말할 때의 어감이 듣는 사람의 감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그 이론을 활용한 예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광고 문구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라벨이나 POP 카드를 보고 '왠지 좋은 느낌'이어서 수많은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곤 한다. 그 순간의 왠지 좋은 느낌은 '왠지'가 아니라 상품 제공자가 완벽하게 의도한 '좋은 느낌'일 수 있다. 구로카와 씨는 좋은 기분이나 느낌을 이렇듯 과학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 나도 슈퍼마켓 진열대 앞에서 무의식 중에 뇌를 조종당하여 수없이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연애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구로카와 씨는 그런 내용이 담긴 연애 서적을 몇 권이나 썼다. 그 책들에 품위 있고 요염한 도시 여자의 언행에 대한 글이 가득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순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뒤돌아 다시 나오고 싶어졌다. 내 말투에서 배어 나오는 결핍이나 과잉을 모두 분석당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진찰대에 오르는 듯한 기분으로 구로카와 씨를 만났다. 사실은 그런 하찮은 걱정보다, 구로카와 씨가 고양이를 기른다고 귀띔해준 담당 편집자 S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미칠 지경이었다.  

 

- "고양이는 집 안에서 가장 쾌적한 장소를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고양이랑 같이 자면 왠지 좋은 분위기'에 감싸이는 것 같아요. 고양이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껴요. 분위기를 통해 자기 기분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양이에게 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존엄함과 우아함을 고양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분석해보면 배울 만한 게 있을 것 같아요." 

 

- 여태껏 이런 길은 걸어본 적이 없다. 아저씨는 햇볕이 잘 드는 곳, 돌계단 위, 숨기 편한 장소 등,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공간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고양이를 철저히 아는 사람의 걸음걸이라고 할까? 나도 이 경로는 역에서 집까지 가는 지름길이기에 잘 알지만,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 들어서면 늘 보던 마을도 미지의 마을이 된다. 고양이를 찾아 걷다가 '오늘은 평소의 배 이상 걸었네' '꽤 멀리까지 온 것 같은데?'라고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큰길로 나가보면 익숙한 교차로일 때가 많다. 그럴 땐 이미 알고 있는 곳인데도 고양이가 굉장히 먼 곳으로 안내해준 듯한 기분이 든다. 

 

-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좁은 범위 안에 있었던가? 고양이가 나의 딱딱하게 굳은 감각을 부드럽게 펴준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실을 고양이가 깨닫게 해 주었다. 고양이 덕분에 내 마음가짐이 확실히 변했다. 

 

- 오후 네시가 조금 넘었을까? 이 시각이 되면 내 몸 안의 피가 교체되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하루 종일 침울했던 날은 괜스레 흥분되고, 왠지 들떴던 날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 기분이 가라앉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심한 감기로 앓아누웠을 때 체온계가 가장 높은 수치를 가리킨 때는 늘 오후 네시였다. 오후 네시는 내 몸에 이변이 일어나고, 까마귀는 친구를 부르고, 고양이는 슬슬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시각. 이렇듯 오후 네시는 무언가가 교체되는 시각이다. 빠져나가는 흐름과 밀려들어오는 흐름이 교차하는 시각.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자세를 낮추면서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순간, 불빛을 등지고 있던 내 그림자가 크게 움직여 고양이를 덮치고 말았다. 히말라야의 브로켄 현상인가? 앗, 하고 동요하는 사이에 그만 고양이를 놓치고 말았다. 아아, 실패했다...  

 

- 몰타 섬은 도로마다 신호등이 거의 없다. 차들이 슝슝 속도를 높여 달린다. "몰타 섬에는 왜 고양이가 많아요?"라고 S 씨에게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 섬에 들어올 때 고양이를 데리고 왔어요. 대항할 만한 생물이 따로 없으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 같아요. 몰타에는 또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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