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김대식] 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일루젼 2022. 2. 1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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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대식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2.01.21

이 도서는 동아시아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메타버스'라는 표현은 이미 여기저기에서 접해왔지만, 제페토나 로블록스 안에서의 활동이 확장된 온라인 게임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다. 현실과 동일한 가상공간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매매가 아이템 현질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아날로그 세계에서의 사건이 연동되는 디지털 세계라면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간결하고 직관적인 설명으로 현재의 상황과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어준다. 메타버스에서 가능한 '정보의 체험', 즉 몸을 가진 embody 정보는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현실'이라는 것이 개인이 체험적으로 감각하는 정보의 집합체이며, 그것을 다른 개체와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에 '현실'이라는 공통된 믿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각자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쉽게 변화할 수 있는지, 또한 얼마나 쉽게 선입견 속에 갇힐 수 있는지를 설명한 다음, 그렇기에 '다수가 공통으로' '메타버스'를 경험하게 될 때 그것이 충분히 하나의 현실적인 세계가 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현실이라는 세계 역시 하나의 가상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높다는 역설적인 설명을 통해서.

 

이를 위해 맹점, 트록슬러 효과, 머신 러닝, 메타 휴먼, 하이퍼텍스트, 검은 호문쿨루스까지 뻗어나가는 다양한 배경지식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각각을 연결하는 저자의 시각이 무척 신선했다. 종교전쟁의 시발점으로 인쇄술의 발달을 꼽았다는 점이나, Z 세대의 뇌는 '결정적인 시기'부터 디지털 세계를 경험하며 형성되었기에 그들에게 '고향'이라는 감각은 아날로그 세계보다는 디지털 세계 쪽이라는 주장 등이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메타버스'가 출현한 현 시기는 과거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처럼, 아날로그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떠돌던 유목민인 현 기성세대가 디지털 세계에 정착할 Z 세대와 잠시 공존하고 있는 과도기적 시기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지금의 변화가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과거의 예를 비유 삼아 보여준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변화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대항해시대'의 큰 파도 위에서 출렁이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휩쓸려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할 작업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메타버스를 우리의 현실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

 

 

- 이 모임에서 도달한 커다란 결론 하나를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팬데믹 이전과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매번 크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관찰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팬데믹 이후에 두드러진 트렌드 대부분이 팬데믹 이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팬데믹이 발생하기 5년에서 10년 전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들이 급격하게 가속화된 결과라는 점입니다. 

 

- 말하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뇌가 만들어 낸 착시 현상입니다. 물론 실제 세상은 존재하겠지요. 분명 우리 바깥에 무언가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언가가 우리 눈에 지금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인풋 input이 아니라, 우리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 즉 아웃풋 input입니다.

- 믿기 어려운 내용이기에, 천천히 한 번 증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다음과 같이 질문해 봅시다. 현실은 모두에게 동일할까요?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 또는 모든 사람에게 현실이 동일하게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비슷하게는 보이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도장을 찍은 적도, 사인한 적도 없지요. 그저 이 현실에 태어났을 뿐입니다. 따라서 원리적으로 현실과 구별할 수 없는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 확률은 매우 작습니다. 그리고 그 확률은 10억 분의 1입니다. 이것이 보스트롬의 주장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오리지널이든 시뮬레이션이든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의 현실이 시뮬레이션이라면, 이 현실에서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나는 이 시뮬레이션의 플레이어 player일까 아니면 NPC일까? 플레이어라면 다행입니다. 여러 현실들을 시뮬레이션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NPC 중 하나라면, 현실은 한층 더 우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안에 정해놓은 파라미터나 코딩에 따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실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불가피하게 '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  다시 말해, 그들은 사전에 노랑 팀 선수들과 빨강 팀 선수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선수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현실을 해석하는 우리 뇌 안의 강력한 알고리즘, 바로 편 가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편과 남의 편으로 가르는 편 가르기는 뇌과학적으로 인간이 지닌 일종의 착시인데, 이는 우리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가장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편 가르기의 극단적인 형태는 자신과 그 밖의 이들을 가르는 것일 텐데, 이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한편 자신의 생각이 지닌 오류는 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믿음이 틀리더라도, 편 가르기와 그에 따른 현실의 왜곡이 이를 인식하기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 'AI'는 더 이상 인공지능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인공 인플루언서 artificial influencer, 즉 소셜 미디어에서 주목받고 광고에 출연하는 가상의 인물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메타 휴먼 meta human'으로도 불리는 이 디지털 휴먼 digital human들 가운데 한국의 래아와 로지, 일본의 가상 모델 이마, 미국 기업 브러드 Brud의 미켈라가 대표적입니다. 

 

- (다시 영화 <매트릭스>에 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매트릭스>에는 TCP/IP를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빈트 서프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매트릭스를 설계한 아키텍트라는 프로그램입니다.) 

- 월드와이드 웹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정보에서 다른 정보로 건너뛸 수는 없을까?' 하이퍼텍스트 hypertext라는 개념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줍니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또 다른 작품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El jardin de senderos que se bifurcan>에서는, 현실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이렇게 갈라진 길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정보가 저렴해지고 현실이 하나로 묶이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2000년대까지 우리는 그렇다고 믿었습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지식도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내는 정보가 대부분 거짓이라면? 이 경우에는 빠르게 늘어나는 정보가 급격히 증가하는 허위 정보를 의미하기에, 사회 안에서 지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사회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인류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 15세기 이전까지 책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가죽 위에 글자를 한 자 한 자 눌러쓴 것이기에, 책 1권의 가격이 지금의 돈으로 약 1,0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책 10권을 가지지 않은 집이 드물지만, 당시에는 부유한 집이 아니라면 이만한 양의 책을 가지고 있기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책이 귀했기에,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책을 훔치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묶어놓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웃지 못할 일이지요. 그런데 1440년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며 인쇄 부문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에 따라 책의 수량이 급격히 증가해 1,000만 원이었던 책의 가격은 10만 원, 나아가 1만 원으로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당대에도 엄청난 일로 여겨졌지요. 대항해시대와 맞물려, 책을 통한 교육의 보편화로 인해 인류가 계몽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인쇄 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기술자들, 책을 집필한 학자들은 진실이 보다 쉽고 빠르게 전파되리라고 짐작했는데, 실제로 만연해진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짜 뉴스였습니다. 

 

- 독일의 신학자인 마르틴 루터 Martin Lather와 그의 추종자들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반대하며 반기를 일으킨 만큼, 그들은 교황을 악마로 묘사한 그림들을 퍼뜨렸습니다. 물론, 가톨릭 신자들은 반대로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을 악마라고 선전했지요. 인쇄기술에서 일어난 혁명이 진실의 대변인이 아닌 탈진실의 선동자로 쓰인 것입니다. 정보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거짓을 퍼뜨릴 수 있는 가격도 떨어지자,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진실이 아닌 거짓을 퍼뜨리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유럽에서는 역사상 가장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는 종교전쟁들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의 우리는 500여 년 전의 역사를 잊고 살아가지만, 어쩌면 15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이 지닌 낙관과 오늘날 우리가 지닌 낙관은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뷰자 주 : 신선하다.)   

 

- 처음에는 인터넷의 발명으로 책 1권의 가격이 1만 원에서 0원으로까지 떨어지자, 모든 사람이 무료로 양질의 교육을 받고, 과학이 대중화되며,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것은 명백한 진실들이 아니라 온갖 필터 버블 filter bubble과 다중 현실이지요. 필터 버블이란, 인터넷 서비스 생산자가 이용자의 선호도에 맞추어 이용자에게 정보를 선별적인 제공함에 따라 이용자가 스스로 선호하는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거품은 인간의 본성을 잘 반영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인간은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낱낱이 조사해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자신의 믿음과 부합하는 정보는 받아들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지닙니다. 

 

- 트위터에서는 정보가 어떻게 교환되고 있을까요? 그림 30에서 파란 동그라미와 빨간 동그라미는 각각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를 나타내며, 이때 동그라미의 크기는 정보 교환의 양을 의미합니다. 그림 30에서 잘 드러나듯이, 민주당 지지자들은 서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공화당 지지자들 역시 그들끼리 막대한 정보를 공유하지만, 파란 점과 빨간 점 사이에서는 정보교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 사회는 이미 2개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니까? 무의미한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임의적으로 노랑 팀과 빨강 팀 가운데 한 팀을 응원하는 경우조차, 우리는 세상을 서로 달리 지각한다는 점을? 하물며 어떤 집단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둘 이상으로 쪼개진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서로 세상을 아주 다르게 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전혀 다른 현실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특히 인터넷에서라면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라지 못했을 뿐, 결과적으로 필터 버블은 우리가 지난 1만 년 동안 정성껏 불려놓은 현실이라는 눈덩이를 2개 또는 3개로 쪼개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뇌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편한 곳에 머물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Z 세대의 고향은 아날로그 현실이 아닌 디지털 현실, 즉 인터넷입니다. 다시 말해, Z 세대의 뇌는 인터넷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지금 한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Z 세대 그리고 그 이후의 알파 세대의 진정한 '고향'은 대한민국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날로그 현실보다 디지털 현실에서보다 편안함을 느끼며, 오프라인 모임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로 도피하고자 합니다. 사회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인 활동도 대부분 그들의 뇌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디지털 현실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출생한 Z 세대의 일부는 이미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로 떠올랐습니다. 

 

- 우리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때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냥 나일뿐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철학적 미스터리도 없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단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뇌과학적으로,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납작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뇌에는 검은 호문쿨루스 homunculus라는, 자신의 몸을 표현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얼굴을 알아보는 영역이 있고 색을 알아보는 영역이 있듯이, 자기 몸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마이클 머츠니크 Michael Merzenich 교수는 우리 뇌의 호문쿨루스가 경험에 따라 확장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자신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면 정체성이 비대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왜소해진다는 발견이었습니다. 

 

- 이것이 무슨 말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최근 들어 뇌과학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이론들은 인간의 뇌가 현실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나라는 정체성이 단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 나의 인간관계 또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 학습 가능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현실이 일종의 착시인 것처럼 나라는 정체성도 일종의 착시인 셈이지요. (아닐 세스 Anil Seth의 <당신 되기 Being You>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정체성이 학습으로 얻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를 이해하는 데는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로 유명한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Richarl Dawkins의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개념이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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