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폴 발레리 외]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일루젼 2022. 2. 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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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폴 발레리 외 / 김진경, 김진준, 김출곤, 박술, 서대경, 이주환, 이지원, 정수윤, 최성웅, 최승자
출판 : ITTA (읻다)
출간 : 2018.09.05 


        

시집은 아직도 내가 쉽사리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다. 조금만 난해하다는 평을 받아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게 되는데, 시를 글이 아닌 노래로 인식하면서 아주 조금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 읽었던 공감각 관련 도서들에서 많은 시인들이 실제로 단어에서 색이나 맛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후 많은 부분을 내려놓은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시에서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감각이다. 명징함은, 적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닌 듯 하다. 그래도 한 두편씩 마음에 와닿는 시편이 생기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 나만의 언어를 꿈꾸고 찾아왔던 내가 어떻게 외국 시와 만나게 됐고 또 그것을 좋아하게 됐을까. 이 시 선집을 엮는 작업은 이런 질문에서 비롯했다. 나는 우리말로 옮긴 외국 시를 읽는 게 정말 좋았다. 내 모국어의 많은 말들이 상처를 지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을 주고받는 일은 사람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 말이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선 사람을 베는 날이 되고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말을 견디기 위해 글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배우는 장에서는 말에 대한 억압에 시달렸다. 소위 문학적인 말과 문학적이지 않은 말을 구분해야 했고,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기 이전에 주입된 판단 기준들이 나의 언어를 강박과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역된 외국 시와 만나게 되었다. 번역된 외국 시를 읽으니 한국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즐거웠다. 나만의 특별한 언어를 갖게 된 것 같았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최대한 그 본연의 호흡에 가깝게 옮기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거친 리듬이 좋았다. 그것은 내가 찾고자 했던 어떤 언어의 진정성에 닿아 있었다.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 기욤 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 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네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범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었다
원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모음들
- 아르튀르 랭보

 

A 검정, E 하양, I 빨강, U 초록, O 파랑: 모음들,
내 언젠가 너희의 드러나지 않은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를 빙빙 돌며 날아다니는 파리들, 
그 눈부신 것들로 덥수룩이 뒤덮인 검은 코르셋

어둠의 물굽이 E, 천진한 증기와 천막, 자랑스러운
빙하의 창, 백색 군주들, 우산처럼 펼쳐지는 떨림들
I, 붉음들, 내뱉은 피, 분노 속에서, 혹은 회개하는 
도취 속에서 아름다운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웃음

U, 순환하는, 짙은 푸름의 바다 그 신성한 전율
동물들 흩뿌려진 목장의 평화, 천착하는 큰 이마
연금술이 깊이 각인을 새기는 뭇 주름들의 평화

O, 날이 선 기이한 소리로 가득한 지고의 나팔,
온갖 세계와 뭇 천사들을 꿰뚫고 가로지른 고요:
-O 오메가, 그분의 두 눈이 발하는 보랏빛 광선.

 

 

도스도옙스키, 명징에 맞선 투쟁
- 레온 셰스토프

 

한 오래된 책이 '죽음의 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 전신이 눈으로 뒤덮인 그는 인간에게 내려와 육체로부터 영혼을 거두고자 한다. 이 모든 눈들이 천사에게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내 생각에 그 눈들은 천사를 위하지 않는다. 가끔 죽음의 천사는 자신이 너무 일찍 도래하였음을, 아직 인간이 제 기한을 다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럴 경우 천사는 인간의 영혼을 가져가거나 그 영혼에 자신을 내보이지도 않고서, 자신의 몸을 뒤덮은 눈들 가운데 한 쌍을 인간에게 남겨둔다. 그러면 인간은, -다른 인간들처럼 제 본래의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이요- 새롭고도 낯선 것들을 알게 되며, 옛것들을 다르게,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이계'의 거주자처럼 보게 되는데, 즉 그는 사물들을 '필연적'이 아니라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모든 감각기관과 심지어 우리네 이성은 일상적인 바라봄과 밀접히 연결되었으며, 또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인간 경험 전반이 결부된 바, 새로운 바라봄은 우스꽝스럽고 공상적인 것으로 비쳐 흡사 상궤를 벗어난 상상의 산물과도 같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이는 곧 광기가 될진대, 다만 이 광기는 철학과 미학에서 문제 삼고 또 필요한 경우 에로스며 집착이며 황홀이라는 이름으로 묘사하고 정당화하는 여감이요 시적인 광기가 아니라, 미치광이를 가두는 감금실에서 취급하는 광기를 이른다. 바야흐로 두 바라봄 사이의 투쟁, 출구가 뭇 시작만큼이나 문제적이고 비의적인 투쟁인 것이다. 

 

 

 

폭류경 暴流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사오니,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 아나타핀티카의 제타바나 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한 천인이 밤이 깊어지자 아름다운 자태로 제타바나 숲 전체를 환히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세존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서서 천인은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존사시여, 당신께서는 어떻게 폭류를 건너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넜습니다."

"존사시여,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너셨습니까?"

"벗이여, 가만히 있을 때에는 가라앉으며 애쓸 때에는 휩쓸려갑니다. 이와 같이, 벗이여,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넜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뵈었도다, 

완전한 열반의 바라문,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세계를 향한 집착 건너신 분."

 

이렇게 천인은 말했다. 대사께서 인정하셨다. 그때 천인은 '대사께서 나를 두고 인정하셨다'라고 알고, 세존께 예를 올리고 오른돌이를 하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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