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질리언 라일리] 미식의 역사 -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예술에 담긴 음식 문화사

일루젼 2022. 3. 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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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질리언 라일리 / 박성은

원제 : Food in Art
출판 : 푸른지식 
출간 : 2017.01.16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 - 음료의 문화사>와 <음식의 제국>,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를 적절히 혼합한 듯한 책이었다. 쉽게 읽히는 문장은 장점이기도 했지만 단점이기도 했다. 실제로 먹어본 것이 아닌 맛이나 당대 상황에 대한 가치 평가가 섞인 부분들이 꽤 있었고, 식재료의 명칭이나 맞춤법 오타들이 종종 보여 아쉬웠다. 

 

하지만 다양한 그림(주로 회화를 다루고 있었다) 속에 표현된 식문화에 대한 고찰은 흥미로웠다. 상징주의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식재료, 요리, 먹는 법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방식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각각의 재료 중심으로 단락을 구성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시대 흐름을 따르는 구성이긴 했지만 지역, 시대, 인물적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책의 구조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었다. (이 점은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에서는 장점이기도 했다.)

 

오이와 사과를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연결한 해석이 눈에 띄었는데, 왜인지에 관해서는 깊게 설명해주지 않아 추가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외에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의인화된 전쟁을 묘사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끝.


   

 - 고대인은 즐거움은 더욱 크게, 해악은 더욱 작게 하고자 의례나 의식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포도주를 즐기는 좋은 방법은 유리병에 담긴 투명한 액체를 크리스털 술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에는 다양한 재질의 유리잔 외에도 금속잔, 도자기잔, 가죽 잔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크라테르 krater라 부르는 도자기 그릇에 마셨다. 크라테르는 장식이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이나 검은색 바탕이어서 포도주색과 잘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는 큰 그릇에 물과 포도주를 섞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사용하는 포도주와 잔치가 열리는 지역에 따라 혼합 비율이 다양했다. 섞어 마시면 취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는데, 효과가 그리 큰 것 같진 않다. 

- 고대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식사 중이 아니라 식사 후에, 혹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식후 음주 잔치 또는 향연 symposion에서 마셨다. 능숙한 솜씨가 필요하면서도 좀 유치한 코타바스 kottabos라는 놀이가 있었다. 크라테르 바닥에 남은 포도주를 장식물에 뿌려 듣기 좋은 소리가 나도록 정확히 맞추거나 식탁 중앙에 놓는 장식물 위에 떠 있는 접시를 가라앉히는 놀이다. 손잡이가 두 개인 크라테르를 오른손으로만 다루면서 자세는 낮추어 작은 용기에 액체를 튀기는 것은 창을 던지는 것만큼 굉장한 것으로 여겼다. 포도주는 도기 암포라, 목통, 가죽 용기 안에 담았는데, 그 용기가 포도주의 맛에 영향을 미쳤다. 수지성(樹脂, 나뭇진과 같은 성분 역주) 성분으로 도자기 그릇 안쪽을 코팅하면, 밀폐가 더 확실해진다. 또 레치나(retsina, 수지 향을 첨가한 그리스산 포도주 -역주)의 애호가는 잘 알듯이 의외의 흥미로운 맛이 난다. 

- <아피키우스>에서 설명하는 고대 로마의 노동자 계급인 부엌 노예는 그들이 섬기던 식도락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서 비슷한 점이라고는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피키우스는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 '아피키우스'가 쓴 책은 아니다. 샐리 그레인저 Sally Grainger가 영감을 받은 실용적인 조리법을 모아 펴낸 <아피키우스>라는 이름의 책을 말한다. 조리법을 모아놓은 책인 <아피키우스>는, 가장 큰 새우를 찾아 기원후 1세기에 지중해를 여행했던 집요한 미식가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Marcus Gavius Apicius와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어 보인다. 다만 그가 까다롭고 부유한 미식가로서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고대의 식사는 고급스러웠으며, 특히 로마인은 지나칠 정도로 미식을 추구했다. 아피키우스의 기록을 카롤링거 Carolinger 왕조 시대에 번역한 문헌을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바르톨로메오 플라티나 Bartolomeo Platina와 그의 친구들이 알게 됐다. 이들은 15세기에 토가(toga, 고대 로마의 남성이 시민의 표적으로 입었던 겉옷 -역주)를 입고 지하묘지에서 이교도의 연회를 재현하기를 즐겼다. 아피키우스의 담긴 조리법 설명은 당시 요리사들의 말투처럼 상스러웠지만, 음식 자체는 은은하고 맛있었다. 세련된 시인과 우아한 저술가는 천박한 상놈 같은 요리사가 이렇게 호화로운 음식을 만든다는 것에 경악하면서도 그 맛에 겸허해졌다. 실제로 로마의 음식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극작가와 시인이 기록한 강한 양념과 특이한 성분을 우리가 잘못 해석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중세에는 칼로 죽임을 당하거나 은밀하게 독살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에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만찬에는 필수적인 의식이 생겼다. 독이나 오염 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만찬이 열리기 전에 먼저 뚜껑을 열어 음식을 맛보거나, 포도주잔에 포도주를 부어 미리 맛보는 치밀한 행동을 해야 했다. 중세에는 식기 진열장에서 만찬용 그릇을 꺼내 포도주와 함께 주인에게 가져가는 술 따르는 하인이 있었다. 담당 하인이 화려하게 장식한 뚜껑을 들어 잔 위로 냅킨을 흔들고 나서 공식적인 감식가에게 내밀면, 그가 먼저 맛을 본 후에야 군주가 포도주의 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주방에서 상에 내갈 음식을 얹어 두는 작은 탁자나 음식과 술이 놓인 상은 이탈리아에서는 크레덴자 credenza라고 불렀다. '크레덴자'라는 단어는 믿음, 신뢰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방에서 하인들은 만찬을 즐길 하객보다 먼저 음식과 포도주를 꼼꼼하게 맛보았다. 

 

- 부엌에서 만찬을 차리는 상까지 음식을 가져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화려하게 수가 놓이거나 장식이 달린 냅킨으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덮어서 과장된 몸짓으로 상 위에 놓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길고 화려하게 수가 놓인 리넨 식탁보의 세련된 치장도 만찬 의식의 일부가 됐다. 식탁보와 접시 위에 둥글게 빙빙 돌려서 놓은 긴 냅킨은 실용적이면서 식탁을 아름답게 꾸미는 효과도 있었다. 크레덴자는 평평한 표면 위로 솟은 선반의 계단식 단으로 이루어졌다. 음식을 담는 접시는 선반 위에 올려두는데, 비싼 물건을 과시하기에 알맞은 구조였다. 만찬이 계속되는 동안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 접시들을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 누가 봐도 혹독해 보이는 이 식단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중동의 일상적인 음식인 타불레 tabbouleh를 보면 된다. 타불레는 적셔서 빻은 밀과 잘게 썬 신선한 향초를 섞어서 소금, 레몬즙,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 음식으로 오늘날 유명한 레바논 요리법 중 하나다. 이렇게 밀을 다루는 과정이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에서는 일반적이라서 이 음식은 레바논 지역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곡물을 반숙한 다음 말려서 굵게는 곱게 찧거나 빻아서 끓인다. 혹은 이 경우처럼 부드러워질 때까지 적신 다음 잘게 썬 향초와 양념을 넣어 섞는다. 

 

- 14세기 말경에 밀은 <중세의 건강 서적>에서 영양가 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권장됐다. 우리는 볶아서 빻은 밀로 만든 수프와 우아한 식사의 일부로 물만으로 삶은 밀 요리도 봤다. 오늘날 중동지역에는 송아지 정강이, 채소, 불거(burghul 혹은 bulgur, 쪘다 말린 밀 -역주)로 만든 아르메니아 Armenia 식 수프나 밀을 하룻밤 적셔서 뼈에 붙은 고기와 함께 요리해서 만든 이라크 북부식 아침 요리같이 은둔자에게도 익숙할 비슷한 재료를 사용한 조리법이 있다. 떠돌아다니는 은둔자가 말리거나 빻은 밀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면서 야생 향초와 샘물과 섞어 타불레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면,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 수도승과 평신도 모두 교회가 정한 검소와 금욕 원칙을 지켜서 고기를 먹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유제품이나 달걀도 먹지 않았으며 허용되는 음식의 양도 제한했다. 이것은 40일 동안의 사순절 기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특정한 날, 주로 금요일에 적용되고 속죄나 회개의 날에도 적용됐다. 성 베네딕트의 현명한 계율을 바탕으로 한 <성 베네딕트 규칙서 The Rule of St. Benedict>는 사역과 기도의 공동생활을 하고자 했던 기독교인 집단에 지침을 제공하고자 16세기 중반에 쓰였다.

 

- 사순절은 대속·속죄·금욕의 시기지만, 몹시 가난한 사람이 아니면 허용된 날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금욕과 탐욕적 태도 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순절의 고난 전에 있는 사육제에서는 풍성한 계절 음식을 즐겼다. 역설적이게도 겨울은 밖에서 하는 고되고 힘든 노동을 멈추고 찬장에 가득 채워진 음식을 즐기는 좋은 계절이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는 새로운 식량이 준비되기도 전에 식량이 줄어들었다. 비축해둔 마지막 식량을 한꺼번에 폭식하고 나면, 심어놓은 곡식이 잘 자라 일찍 수확한 농작물이 신선한 재료로 부엌에 들어올 때까지 암울하고 궁핍하게 지내야 하는 시기가 뒤따랐다. 그림이나 판화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기쁨과 고통, 빈약한 요리와 기름진 요리를 과장했는데, 주로 원기 왕성하게 먹는 쪽에 치중했다. 폭식이 7대 죄악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교훈적 이야기는 과식을 비난하지만, 풍요를 기리는 의식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1559년 브뤼헬 Breughel the Younger, Pieter Brueghel이 그린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은 폭식과 금식을 기괴하게 묘사했다. 

 

- 이보다 훨씬 이전에 사육제와 사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 중세 에스파냐에서 나왔다. '이타 Hita의 수석 사제'라고 불린 후안 루이스 Juan Ruiz가 1330년에 쓴 허구를 가미한 자전적 시화집 <좋은 사랑에 대한 El Libro de Buen Amoror>이다. 이 책에는 사육제와 사순설 사이의 전쟁을 생생하게 다룬 부분이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그의 즐겁고 신나는 운율과 미식을 다룬 내용, 초기 에스파냐 요리법에 관한 정보를 담은 생생한 자료를 딱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 육욕의 왕 돈 카르날 Don Carnal은 사순절과 금욕의 여왕 도냐 쿠아레스마 Doia Cuaresma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카르날은 동물계에서 나무와 철로 만든 꼬챙이로 무장하고, 커다란 도마를 방패 삼은 닭, 자고, 오리, 거세한 수탉, 뚱뚱한 거위와 토끼를 보병으로 데려온다. 양고기 덩어리, 돼지 족발, 햄,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활로 삼고, 비프스테이크가 기마대로 나왔다. 새끼 염소, 새끼 돼지는 꽥꽥거리면서 위아래로 날뛰었다. 장면마다 구운 치즈를 질 좋은 적포도주로 씻어 내리며 다그쳤다. 전채 요리인 화려하게 장식한 꿩과 공작새는 호화롭게 양념하여 치장하고 소형 무기로 가득 채웠다. 거기에 수많은 부엌 냄비, 구리 가마솥, 프라이팬, 장식적인 그릇이 있다. 낡은 생선을 찌는 냄비는 여기에 없다. 

 

- 이븐 시나 Avicenna, Ibn Sina와 아베로에스 Averves, Averroes는 가지의 해로운 속성과 그 처리 방법을 깊이 생각했다. 가지는 실없는 말과 해로운 농담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우리를 슬프고 울적하거나 우울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금에 걸어서 버터나 기름에 담갔다가 튀겨서 풍부한 식초, 시큼한 감귤류 습이나 석류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 마티올리는 1568년에 맨드레이크(mandrake, 과거에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여겨졌던 마취제에 쓰이는 유독성 식물 -역주)와 관련하여 가지를 설명했다. 또한 가짓과 식물 중 하나인 포모도로 pomodoro, 즉 황금빛 사과와도 연관 지어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황금빛 사과란 토마토를 뜻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처음 생산된 토마토가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 앞쪽에는 작지만 울퉁불퉁해서 시선을 끄는 오이와 사과의 상세한 정물 묘사가 있다. 이 오이와 사과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서 이야기를 주도한다. 아스콜리피체노의 시민들은 오이를 그리스도의 순수함과 순결함의 상징으로, 사과를 성모 마리아의 생식능력으로 쉽게 인식했다. 오이는 선지자 요나의 상징으로 본다. 요나가 고래 배 속에서 사흘간 있었던 고난을 그리스도가 사흘 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한 것의 예시였다고 인식했다. 요나는 니네베 주민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속죄와 용서보다 그에 따른 응징을 더 큰 기쁨으로 즐겼다. 오이는 신이 이런 요나에게 분노한 것을 나타낸다. 꾸짖음을 들은 요나는 성벽 바깥에서 머리 위로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부루퉁하게 앉아 있었다. 신은 식물, 아마도 박 종류의 하나를 빨리 자라게 해서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줬다가 나무를 없애려고 벌레를 보내 요나를 절망하게 했다. 그리고 도시 전체의 구원보다 고작 나무 한 그루에 집착하는 이 성난 노인을 벌했다. 사과는 물론 아담이 따 먹어서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선과 악의 상징이 된 선악과나무의 열매다. 하지만 사과도 성모 마리아의 구원하려는 중재에서는 다른 의의를 담고 있었다. 크리벨리가 이 과일들을 중앙에 놓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이 과일들을 이탈리아 마르케의 비옥한 땅, 해안, 완만한 언덕, 초원, 좀 더 가파른 아펜니노 산맥에서 난 산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한 견과류, 과일, 꽃은 크리벨리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 석류는 비단길을 따라 페르시아와 인도의 히말라야 산맥으로부터 보급됐다. 에스파냐에 아랍인이 정착하면서 유입되어 널리 재배됐다. 그라나다 Granada 시는 11세기에 새로운 도시로 통합된 교외 지역인 가르나타 Gharnata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라나다라는 과일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이 과일 pamegranate은 도시의 상징이 됐다. 아랍어로 룸만 rumman인 석류는 중세 이탈리아 음식 로마니아 romania에 사용됐다. 이 음식은 이름 때문에 꽤 혼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음식은 루마니아 포도주나 로마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데, 일부 저술가는 착각하기도 했다. 중세 아랍의 요리 문헌에서는 룸마니 Rummaniya라는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견된 15세기 초 문헌에는 로마니아를 만드는 법이 기록돼 있다. 베이컨과 양파를 다져서 넣고 닭고기와 함께 볶는다. 껍질을 까지 않은 아몬드를 빻아서 넣어 걸쭉하게 하고 설탕과 양념, 달콤 새콤한 석류즙을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젓는다. 알 바그다디 Al Baghdadi의 <요리책 Kitab al-Tabikh>에는 룸마니야 요리법이 있다. 양고기에 양파, 가지, 박, 양념을 넣고 끓인 다음, 말린 박하와 갓 짠 신 석류즙과 마늘로 맛을 내서 요리를 마무리한다. 

- 데메테르 Demeter의 딸이자 봄의 여신인 페르세포네 Persephone는 지옥에 있을 동안 석류 씨를 먹도록 하는 꾐에 빠져 매년 넉 달 동안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벌을 받았다. 딸을 잃은 슬픔에 데메테르는 땅 위의 것들을 기르는 일을 소홀히 하여 겨울이 오게 했다가 봄에야 생명이 되살아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석류는 비옥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상실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에서 아기 예수가 들고 있는 과일은 그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생식능력을 상징하는 용도로 쓰였다. 많은 씨는 교회의 전능한 권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겼다. 

 

- 16세기 피렌체의 학회였던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 Accademia della Crusca 회원들의 문장이나 상징은 프란체스코 리돌피 Francesco Ridolf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파니노(panino,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역주)에 들어 있는 살라메 같이 생겼다. 리피오리토 Rifiorito, 즉 '재생'이라는 이름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것은 번 안에 든 차가운 고깃덩어리 같은 모양인데 일종의 시각적 유희다. 실제로는 은빛으로 변색한 금박 레이스를 갓 구운 롤빵 안에 밀어 넣어 효소가 금빛으로 빛나도록 되살리게 하는 작업으로, 깔끔한 살림살이의 요령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것이 되살아나다 Perche la sua bonta si disasconda"라는 좌우명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란체스코 리돌피, 팔라(pala, 의식용 삽)



 - <초콜릿의 역사적 진실 The True History of Chocolate>에서 소피 코 Sophie Coe는 초콜릿의 화학작용이 너무나 복잡해서 효능을 과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아즈텍 Aztec 족 의식에서 사용한 용도와 관련하여 과장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누탈 고사본 Nuttall Codex을 보면 1051년에 어느 전쟁 영웅이 그의 아내로부터 거품이 있는 카카오 한 잔을 건네받는다. 이런 음료는 높은 곳에서 액체를 부어 거품을 풍성하게 해서 마셨다.

 

- 17세기 치아파스 Chiapas에서 사용한 고대의 용도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에스파냐 현지의 귀족은 통치자가 신과 소통하려고 무아지경 같은 상태를 경험하고자 이 성스러운 음료를 사용했던 옛날을 기억하는 멕시코 원주민 하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음이 틀림없다. 뱀 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환영을 보여주는 성스러운 연기가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대성당에서 피우는 향처럼 신도들의 머리 주위를 맴돌았다. 제의를 입고 도구를 갖춘 영향력 있는 사제나 통치자는 이런 연기에 정신을 팔지 않고 조상의 혼, 신령과 소통했다. 연기를 피우고 자극을 주는 이 음료에서 주요 성분은 초콜릿이었다.

 

- 초콜릿은 치아파스 대주교 돈 베르나르도 데살라자르 Don Bernardo de Salazar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교구 주민 중 한 사람에게 살해됐다. 대주교의 신자 중 여자들은 미사 중에 거품이 풍부한 초콜릿 잔을 받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대주교는 이것을 금지하려 했다. 신자들은 이 습관을 버리기를 거부했다. 공동체 내에서는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대주교가 독살로 갑자기 죽자 논쟁도 끝났다. 신자 중 한 여인이 하인 중 한 명을 매수하여 초콜릿 비커에 독을 넣으라고 시켰다. 이후 치아파스 시는 초콜릿으로 유명해졌다. 

- 이 책에서 언급한 시기 이후의 음식과 요리는 다른 요리책에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분석한 예술 작품들은 분명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다. 더 오래된 시대는 역사적인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음식 역사에 대한 탁월한 여러 연구를 살펴보았다. 고고학, 인류학적 발전과 찬란한 문화를 다양한 문명이 남긴 예술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웨트왕 묘지는 예술품을 매개로 이 책에서 발휘된 상상력에 힘입어 즙이 많은 새끼돼지구이와 장식들로 재탄생했다. 최근에 있었던 바이킹 장신구 전시는 값싼 장신구나 브로치를 만들었던 장인만큼 당시 바이킹 요리사도 능숙하게 요리를 잘했을지 궁금하게 한다. 베로네세가 그린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은 귀족은 스카피의 복잡하고도 세련된 요리와 어울린다. 약초나 건강 안내서에 있는 세밀한 식물 묘사들은 당시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이를 쑤시는 모습, 잔디 언덕에서 느릿느릿 걷고 있는 토끼, 세례 요한의 머리 뒤로 보이는 직물 식탁보도 당시 일상적인 모습을 엿보게 한다. 저지대 국가의 전형적인 정물화나 풍속화는 당시 원예학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여러 종류의 당근, 세 가지 종류의 커다란 양배추, 통통한 아스파라거스 줄기와 부드러운 어린 콩같이 음식과 식재료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주의를 이골이 날 만큼 넘치도록 보여주기도 한다.

- 미식가들은 미술 작품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미술 작품을 둘러보고 감상하며 상세하게 살펴본다면 다른 역사서로 독서를 심화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속에 묘사된 요리를 직접 해보는 건 어떨까? 

 

힐데가르트 폰 빙겐 - 네 가지 체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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