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손힘찬]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일루젼 2022. 4. 2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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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힘찬(오가타 마리토)
출판 : 스튜디오오드리 
출간 : 2021.02.08 


       

최근 읽었던 책에서 '손힘찬'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보고 찾아 읽었다. 가벼운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묵직했다. 

 

저자는 어린 날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 가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 그로 인해 겪은 따돌림 등등 평탄하게 살아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되어 지나간 어린 날들을 돌아본다. 그때의 경험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었는지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본다. 고통이 성장시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고 말하면서. 

 

일상적이고 가벼운 책을 기대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상당히 몰입해서 읽었다. 읽는 내내 문장이 참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안에서 여러 번 되뇌어 다듬어진 것 같은 느낌. '아,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듬어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겠구나,라고도. 

 

누군가가 과거의 기억은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진짜 극복한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한다. 이야기를 꺼내는 게 꺼려져 없었던 일인 척한다는 건 아직은 아프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때로 어떤 상처는 너무 아파서 쏟아지기도 한다지만,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선택한 단어들은 그 자체보다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 

 

또 누군가는 충분히 감정을 느껴줘서 소화한 기억들은 흐릿해진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는 더이상 영향력이 없어진, '한 때 그랬던 적이 있었지' 정도의 기억이 된다고. 때때로 꿈을 꿨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나와는 멀게 느껴진다고. 

 

지금의 나는 많은 '버튼'들을 없애온 끝에 만난 모습이라고 느낀다. 많은 것들이 변한 것도 같고, 그대로인 것도 같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게 살아온 것 같은데. 스스로가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야 타인에게도 그렇게 해줄 여유가 생긴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버튼들이 더 있겠지만,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씩 찾아서 없애가며 감사를 표하다 보면 조금은 더 평안해지리라 생각한다. 

         

'나다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보다 많은 아픔이 줄어드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 최근 들어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내가 생각보다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대학생 때는 책을 쓰겠다는 꿈을 위해 2년 간의 휴학을 망설이지 않았고, 스카우트되어 입사한 첫 직장을 10개월 만에 박차고 나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하며 글을 썼다. 꿈을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왔던 그간의 시간을 생각하면 나라는 인간이 수동적이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균형이 조화롭지 못했다는 점이 수동성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나는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나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알아가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모습을 한 가지로 규정해둘 필요는 없다. 나답다는 틀에 나를 가둬놓고 그것을 벗어나면 나답지 않았다고 자책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다소 불편하지만 상황에 맞게 나를 포장하는 순간. 상대에 따라 새로운 나를 보여주는 순간 등 모든 순간의 내 모습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여러 모습의 나, 그것이 모두 나임을 인정하는 일이 나답게 사는 길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인생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의문에 늘 휩싸여 있었다. '왜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항상 나보다 여유롭고 풍족해 보였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도 혼자 비교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확대 해석, 피해망상... 모든 사람이 미웠고 어떤 일도 하기 싫었다. 경쟁에서 뒤처진 것 같아 숨고 싶기만 했다. 그저 힘없이 '할 수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 비참했던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면서 습관처럼, 버릇처럼 그 말에 기댔다. 그저 그 말을 붙잡고 버텨냈다. 돌아보니 그 말이 나를 살렸다. 그래서 잘된 사람들이 힘든 시기에는 그저 버티라고, 오래 살아본 어르신들이 그리도 악착같이 버티라고 조언했나 싶다.

 

- 나는 지금 내 모습이 몹시 마음에 든다. 과거의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닌, 오늘의 나를 인정하는 모습.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내일이면 오늘 또한 과거가 되겠지만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로 우리를 기록하고 싶다. 

 

- 나는 여행할 때 여유 속에서 그 여행의 의미를 발견하는 편이다. 원래 느긋한 성향이라 너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와 성향이 다른 누군가는 이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배운다"라는 중국 명언처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여행의 경험을 소화하면 된다.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평소 속해 있던 집단과 자연스레 분리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주어진 역할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직장인, 주부, 부모, 자녀, 아내, 남편, 선배, 후배 등 사회적인 페르소나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연스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아주 편안한 상태이며 행복한 고민이다. 만약 이 작업이 혼란스럽다면 그건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떠난 장소에서 사회적 호칭이나 위치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보면 어떨까.  

 

 - 여행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려울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대신할 방법으로 청소를 추천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으로도 청소는 여행과 유사한 효과를 보인다. 그 바탕이 '비움'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기존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평소 머무르던 환경을 바꿔 기분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청소도 마찬가지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공간을 변화시켜 마음을 환기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필요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산다. 입지 않는 옷, 읽지 않는 책은 물론 언젠가 쓸 거라 생각하고 쟁여둔 물건들, 대량으로 판매해 어쩔 수 없이 사들인 냉동식품, 세일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에 주문한 생활용품 등 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 먹지 않는 음식들이 한정된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방안에 옷가지와 온갖 쓰레기, 읽다 만 책과 언제 쓸지 모를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면, 심한 말이지만 그 사람의 정신상태 또한 정리되지 않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나답게 살기 위한 여덟 가지 방법.

여행, 청소, 운동, 독서, 글쓰기, 명상, 휴식, 코칭. 

 

-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돌아보니 매우 분명히 보이더군요. 그러니 지금 여러분이 미래의 점들을 연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저 현재와 과거만을 연관 지어볼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여러분은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어떤 식으로라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가슴에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애플 창업자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한 졸업 연설이다.

 

- 책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경험과 통찰이 가득 담겨 있는 보물상자와도 같다. 페이지를 펼치면 공감과 위로를 만나기도 하고, 평소에 생각했던 것에 대한 확신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독서의 역할은 제각각 유의미한 동시에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 우리에게 곤란한 점이 있다면 독서를 통한 깊은 몰입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독서량 부족 현상은 매해 심각해지고 있는데 솔직히 책 외에 재미난 콘텐츠들이 너무나 다양하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책 읽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꾸준히 독서를 이어가는 사람도 여전히 있지만 그 숫자는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이용자에 비하면 현저히 적다. 

 

- 하지만 나는 명상의 효용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마음 챙김과 같은 명상은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위한 훈련이다. 감정 소모와 집중이 필요할 때 에너지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생각을 비우고 기를 모으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잡생각, 잡념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인 것이라 명상을 한다고 사라지진 않는다. 나 또한 명상할 때, 생각이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경험을 하지 비워진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는 적었다. 생각이 사라진다는 건 명상에 관한 고정관념이자 편견이다. 명상은 생각을 없앤다기보다는 수용과 인지, 그리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면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의 저자 앤디 퍼디컴은 책에서 "명상은 마음을 통제하려 애쓰지 않고 한걸음 물러나 수동적으로 주의 집중하는 법을 익히면서 그와 동시에 마음을 자연스러운 알아차림 상태에 두는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그는 이때 자각을 강조한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지 조용히 호기심을 가지고 살피며 알아차리기 위해 스스로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마인드풀니스 명상 창시자인 존 카밧진 박사가 명상을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비판단적인 특정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게 왜 중요할까? 우리 정신이 꽤나 산만하기 때문이다. 산만하다 못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일조차 어렵다. 생각은 흩어지고 주의는 흐트러져 집중력 또한 쉽게 떨어진다. 유도 명상 전문가 타라 브랙은 명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명상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우리는 관심을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하는 근육을 주로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명상의 99퍼센트가 딴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건 나머지 1퍼센트다." 명상은 자신의 생각,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다음에 몰입을 하면 성공이다.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영향력을 지녀 세상과 연결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본인만 겪었을 거라 생각하는 일을 타인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상대에게 공간과 인민을 느낀다.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 연구팀이 부상, 자연재해, 사별, 관계 파탄 등 인생에서 역경을 헤쳐나간 경험과 타인에게 느끼는 연민의 정도에 대한 실험을 한 결과, 인생을 살면서 역경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크고, 자선단체에 기부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람은 큰 사건이나 사고를 겪고 나면 그 고통과 상처로 인한 충격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트라우마가 생긴다. 당사자에게는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감정'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즉 인생에서 큰 고비를 겪어본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도와주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자존감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사고와 가치관에 의해 생기는 의식이 자존감이라면 굳이 높낮이를 따져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비교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 여기서 중요한 건 내 자존감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지을 것인가다. 나는 자존감을 개인의 의식이며,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가치관이라 정의한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자존감 높은 사람의 특징이다. 자존감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경우가 많으며, 자기 평가에 기반하기 때문에 높고 낮음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 않다. 자기 평가로 결정되는 게 자존감의 높낮이라면, 자존감이 결국 기분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거라면 얼마나 허무한가. 그러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면 꾸며낸 자신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답게 살고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닐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하나씩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난 자존감을 다른 말로 '나다움'이라 말하겠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 언뜻 추상적 일지 몰라도 이보다 더 확실한 표현은 없다.

 

- 이렇듯 내가 특정 분야를 못하는 것과 나의 소중함, 가치는 다른 이야기다. 만약에 어느 한 분야를 못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또 내세울 수 있는 것을 발견해 강점으로 키우고 확신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 사회적 역할이 생길 것이고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 성취감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변인이 내게 비난을 한다고 해도 그 말대로 된다는 법 역시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내가 멍청한 것과 수학을 못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 말이다. 

 

-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소개한다.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짜증 내지 마라.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하나 나타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속이 복잡한지, 우울한지, 기쁜지, 벅차오르는지, 무덤덤한지 솔직하게 드러난다. 자세히 바라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내 마음 상태가 이상하다 느껴지면 한 번쯤은 살펴보자. 내 마음이 뭐라고 말을 건네는지, 그 신호가 잡히면 외부든 내부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칭찬이나 인정 역시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무슨 일을 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누군가에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필요한 물음표가 될 수 있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를 쓰기 전에는 이 책으로 나의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전달하려 했는데 다 쓰고 나니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사색으로 돌아오게 되었음을 알게 됐다. 


-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쓴 글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는 내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준 고마운 책이다. 이제 여러분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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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함부로 조언하거나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서 충고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해.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다며 감정을 평가하거나 폄하하고 묵살하는 일, 도대체 언제까지 우울해하고 있을 거냐, 약을 평생 먹고 지낼 거냐면서 몰아세우는 일은 특히 더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섣불리 이해한다거나 언제 낫느냐며 호전을 압박하는 것도 삼갔으면 좋겠어.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주고 함께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니까. 나 역시 내가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가장 고맙거든." 

 

- 주변을 둘러보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지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트라우마를 외면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굳이 불러내 곱씹는 것이 과연 옳을까?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간혹 당신 안의 무언가가 어린 시절의 당신이 울고 있다고, 혹은 그 시절 당신의 표정이 몹시 슬퍼 보인다며 말을 건넬 것이다. 나 또한 유년 시절의 내가 굉장히 안타깝다는 감정이 고개를 들 때가 있으니까. 

 

- 단지 과거일 뿐이라고 부모님의 부족함과 나의 미성숙함으로 빚어진 일이고 이미 지난 일이니 그저 묻어두거나 잊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말이 맞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도 그저 가끔 과거를 되새기면서 우울해하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감사한 건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참 고되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경험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상대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는지 궁금해하는 사람, 그렇게 성장한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제는 다행히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좁은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공부하는 이유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다. 

 

-  본인의 의식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나의 가치관은 알게 모르게 주변 환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내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그런 나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으면 그 편견과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렇듯 나답게 사는 것과 인간관계, 우리는 이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가수 아이유의 콘서트에서 고민 상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 팬이 아이유에게 물었다고 한다. 
"제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데 그렇게 해야 할 이유 또한 모르겠고요. 아이유 씨의 노래를 들으며 힐링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저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잘하는 일을 찾아야 할까요? 아니면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을까요?"
이 질문에 아이유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데 정답은 없다, 나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행복하겠다고,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결정에 따른 책임과 감수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가수가 되고 나서부터는 절대로 음악을 취미 생활로 둘 수 없게 됐어요. 예전에는 음악 듣는 게 좋아서 '나는 가수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가수가 되고 나자 '우와, 이 음악 너무 좋다!'라면서 순수하게 즐길 수 없더라고요. 어떤 음악을 듣더라도 항상 분석하게 되고 일에 접목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마음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 맞는 말이다. 그녀 역시 데뷔 후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에 하는 고민이지 않은가. 버리기 힘든 욕심이겠지만 내려놓아야 한다. 선택을 한다는 건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치열하게 하든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두든지 해야 할 것이다. 일은 '실력'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실력이 갖춰진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고 그에 맞춰 진행된다. 보통의 관계에서는 필요할 때 찾는 사람보다는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만 일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마운 이가 되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은 즉 '증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실현도 좋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계나 책임져야 할 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떳떳하지 않을까. '열심', '성실', '열정' 같은 단어들은 모두 좋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나의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보일 수 있는지, 무엇보다 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등은 꽤 현실적인 이야기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이런 걸 따져야 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 이유는 노력했는데도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런 계산이나 분석에 미숙해 좌절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 화가 피카소,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가 등장했던 시기에는 살롱 문화가 꽃피고 있었다. 살롱은 신분, 계급, 직업과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대화하는 공간을 말한다. 내가 찾은 곳은 현대판 살롱이었다. 이 소셜 살롱 모임에는 독특한 규칙이 존재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다름을 인정할 것. '님'이라는 호칭을 준수하며 평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것. 비난, 무시, 강요를 삼갈 것. 무엇보다 나이와 직업을 공개하지 않는 시스템이 새로웠다. 상대를 평가하고 위계와 서열을 만드는 일을 애초에 차단하는 점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 나는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이 살롱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을 오갔다. 이동하는 내내 기대감에 부풀어 힘든 줄도 몰랐다. 멤버들과 대화하면서 각자의 가치관을 나누었고 때로는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되찾았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특정한 주제에 관해 토론하기도 하며 생산적인 대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남이 듣기에 좋은 이야기를 억지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 "제가 읽은 소설이나 자서전을 보면 작가들은 대부분 삶이 불행했어요. 그렇지만 힘찬 님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부모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축복을 바라며 건넨 그 말 한마디로 굳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개인의 인정 욕구는 부모나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채워진다. 혹은 소중한 친구나 동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사랑을 주고받기는커녕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럴 땐 환경을 새롭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환경이란 주변 사람을 말한다. 일상을 완전히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를 만들고 그 만남을 지속한다면 분명히 달라진다. 그렇게 하면 매일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몸소 경험했다.  

 

- 상대방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홀대한 대가는 크다. 그게 '우리'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행복의 모양은 저마다 다르지만 내가 사랑 덕분에 행복을 느낀다면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마땅히 필요하다. 가끔 사랑을 명분 삼아 자신의 가치관에 상대를 끼워 맞추려고도 하는데 그건 건강한 사랑으로 보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일은 상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방식이고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물리적 폭력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 우리는 모두 이러한 갈등 해결 방법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적용하지 않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만의 방식, 방어기제, 상처 탓을 하며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 개인의 성장은 분명 의지력에 달려 있지만 주변 사람도 의지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의 성장을 함께 나누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거실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다. 어떤 만남을 통해 맺은 인연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면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떤 관계든 나를 한결같은 태도로 지켜봐 주는 사람, 때로는 불편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나의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기회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들려면 나만을 지키느라 날카롭게 세운 가시를 내려놓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사랑에는 어떤 형태든 조건이 따른다. 이유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시절은 걷기만 해도 칭찬이 쏟아지던 갓난아기 시절뿐이다. 그때 우리는 대부분 온전한 사랑을 받는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점점 어떠한 자격을 갖추기를 끊임없이 요구받는데, 비극적이게도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며 살기도 한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철저한 경쟁 사회이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감정을 평온히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앞서가는 사람을 질투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은 사랑만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러한 경험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뀌어가는 마음과 그 마음이 가득해 일상이 달라지는 기분은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이나 타인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성과를 올리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 나를 알기 위한 방법들을 알고 있는 것과 실천은 다른 문제다. 우리는 생각보다 꽤 가혹하게 자신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인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그 방법을 택했을 때 나에게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지 세심히 관찰해보자. 여기 소개하는 여덟 가지 방법들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 트라우마, 좋지 않은 기억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 "버릴 수 없다는 생각부터 버려라",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라는 비움에 관한 명언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의 저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 제대로 버리는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삶의 만족감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건을 버리고 공간을 비우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일까. 먼저 물건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저 물건이 언젠가 필요할 거야', '저 옷을 입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저 책은 꼭 읽어야 해, 나중에'라는 생각은 물건을 쌓아놓을 구실일 뿐이다. 

 

- 두 번째로, 당장 쓰거나 입거나 읽지 않을 물건은 모두 버리거나 나누거나 기부하라. 그렇게 없앤 물건이 필요한 순간이 오더라도 그 물건을 어떻게든 다시 마련할 수 있다. 빌리거나 나누어 받아도 되고, 더 간단하게는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 세 번째로는 비우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물건이 사라지면 공간이 생긴다. 넓어진 공간이 주는 여유와 한가함을 만끽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즐겁다. 공간을 활용해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요가나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다. 작은 식물 하나를 들여놓고 초록의 상쾌함을 누릴 수도 있다. 아니, 아무것도 놓지 않고 텅 빈 공간이 주는 충만함을 즐겨도 좋다.

- 마지막으로, 작게 시작하라. 버리는 일이 심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방법을 몰라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공간을 나눠 시작해보면 좋다. 오늘은 책상에 있는 물건, 내일은 침대 주변의 물건, 그다음 날은 옷장, 또 그다음 날은 책장을 정리하는 식으로 구역을 나눠 그 구역에 쌓인 물건부터 정리해보는 것이다. 작은 성취감과 개운함은 꾸준히 정리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깨끗해진 방, 나아가 여백의 편안함으로 꽉 찬 집을 선사할 것이다.

- "트레이닝을 받으며 들은 말 중에 '장이 제2의 뇌'라는 얘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장과 뇌가 개별적인 신체 기관이라 생각했는데 연관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미국의 의학박사 에머런 메이어가 쓴 <더 커넥션>이라는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장과 뇌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면서 장에 사는 미생물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죠.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체내의 80~90퍼센트가 장의 신경세포로 만들어진다고 해요. 머릿속의 뇌보다 생산해내는 양이 많아요."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요?" 
"맞습니다. 우울감을 느낄 때 뇌가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장 건강도 영향이 큽니다. 우울한 사람들을 보면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어요. 인스턴트식품에는 섬유질이 포함된 채소가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장내 유익균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으면 장이 건강하지 못하고 세로토닌 생성도 어려워 우울한 감정을 쉽게 느끼죠.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에 항우울제만큼이나 식단 교정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히는 걸 보면 결코 사소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에요." 

 

- 현재가 점이라면 미래는 선이다. 미래는 현재의 점들이 모여 결국 완성된다. 이와 동시에 현재는 과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선으로 볼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하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죽기 직전까지 그러하다면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처럼, 나의 현재 모습은 결국 과거의 선택으로 완성된 것이며 나의 미래 모습은 현재의 내가 만들 것이다. 

 

- 세상에 좋은 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모든 주제에 관한 전문가의 지식을 책에서 찾을 수 있고, 그 비용은 결코 비싸지 않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때 간단한 검색으로 답을 얻으려고 하는 건 쉬운 길이지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의식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들은 주어진 선택지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통찰과 발견을 통해 얻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샤워하거나 산책할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책이라는 페이지에 적힌 문장들은 마치 보물지도와도 같으며, 거기에는 내 사고를 숙성시켜주는 생각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다른 무언가와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고 독서에만 몰입하고 있다면 뇌는 오롯이 문제와 해결의 자료들을 재조합하고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이나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는 쉼을 제공할 수 있다.) 

 

- 버클리대학교 교육대학원 학장 데이비드 피어슨은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서와 작문을 지속하면 여러 조합의 전략을 얻게 됩니다.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얻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려운 내용을 습득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독서는 평범한 사람이 천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자 노력에 날개를 달아줄 전략이다. 

- 좋은 독서는 건강한 식사와 같다. 좋은 독서의 첫 번째 방법은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좋은 책을 선정하는 데 일반화된 기준은 없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책이 인간의 세계관과 같다면 그 모양은 우리의 얼굴 모양처럼 가지각색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알아야 할 건 본인의 취향이다.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정 모르겠다 싶으면 서점에 가보자. 대형 서점이든 동네 서점이든 서점에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가득하다. 베스트셀러부터 최근 나온 신간, 주목할 만한 분야별 도서까지 매대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 깊이 있는 문학작품, 의욕을 고취시키는 자기 계발 도서, 취미와 학습을 도와줄 잡지나 수험서 등 서점을 한 바퀴 돌아보며 끌리는 책을 찾아보고 책과 친해지면 좋다. 혹은 도서관에 가서 다양한 분야로 분류되어 있는 서가를 산책하듯 둘러보면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좋은 독서의 두 번째 방법은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 것이다. 오디오북, 팟캐스트, 유튜브 등이 떠오르면서 책을 읽어주거나 요약해주는 통로도 늘어났다. 이러한 콘텐츠는 책을 접하고 싶지만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기가 부담스럽거나 바쁜 상황일 때 이용하면 좋다. 물론 책을 직접 읽는 것과는 다른 행위라 봐야 한다. 글을 마주하고 한줄한줄 시선을 옮겨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독서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사고를 훈련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인풋이 이루어져야 한다. 읽기가 되지 않으면 쓰기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쓰더라도 사고의 지구력이 달려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표현력이 부족해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비슷비슷한 생각과 이야기만 늘어놓게 된다. 제대로 읽는 습관은 내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책을 읽을 때는 나만의 속도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색은 책 속을 여행하며 이루어진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좋은 독서의 세 번째 방법은 생각을 숙성시키며 읽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아무 책이나 가져와서 몇 페이지 읽어보라. 그다음에 책을 덮고 이완된 뇌를 잠시 쉬게 하라. 과거의 기억과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순간에 집중하자. 차분한 음악을 틀어놓고 눈을 감아도 좋고 샤워나 목욕을 해도 좋다.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2001년에 뇌영상 장비를 통해 인간이 몽상 상태에 잠겨 있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인지 활동을 중단한 상태를 '디폴트 모드 default mode'라고 말했다. 소위 멍 때리고 있는 상태다. 멍 때리듯 생각을 멈추면 뇌가 휴식 상태에 돌입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정보를 정리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뇌 속에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한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 멀티 태스킹이 유용한 능력으로 평가받는 요즘 세상에서 멍 때린다는 건 이질감이 들 수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필요하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 창의력은 뇌에게 휴식을 주었을 때 선물처럼 생겨난다. 책을 읽고 생각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종종 책장을 과감하게 덮고 생각에 잠겨보자. 지혜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각을 쥐어짜나 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산물이다. 

 

- 독서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마지막으로 읽은 내용을 다른 형태의 글로 표출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람들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꼭 병행하라고도 하며, 아무리 권위 있는 저자의 글이라 해도 걸러 들으라고 덧붙인다. 책의 좋은 문장을 필사해 간직하는 것도 매우 좋다. 나도 노트에 인생 문장을 수십 가지 적어놓았다. 문장들을 간직하기까지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글이 나온다. 획일화된 글쓰기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명작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당신만의 스토리를 마인드맵 펼치듯 자세히 풀어보기 바란다. 

 

-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정리해보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고, 자신의 상처를 표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기획서를 작성한다거나 논문, 보고서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쓸 때도 있다. 미국의 온라인 라이프 매거진 <덤 리틀 맨>의 기사에서 힐링 글쓰기의 네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 첫 번째,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을 적어보라. 나를 화나게 하고,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을 전부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당한 억울한 일, 내 의견을 무시하는 상대, 거리의 소음이나 불친절한 상점 직원 등 여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써보자. 불교에서는 '분노'를, 자신의 손에 쥔 숯불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던지는 행위라 정의한다. 그런 만큼 화가 나면 따라오는 말과 행동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화가 날 때마다 무차별적으로 화를 분출하는 건 올바른 방법이라 볼 수 없다. 특히 감정은 전염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화가 나면 그 감정을 글로 한번 적어보자. 글로 써보면 '나'와 '화'를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다. 

 

- 두 번째는 걱정거리나 근심거리를 모두 적은 다음 심호흡을 해보는 것이다. 노트에 현재 걱정하고 있는 일이나 대상을 모두 적은 다음, 노트를 덮고 심호흡을 해보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일을 해도 좋다. 가능하다면 실외로 나가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몇 분, 몇십 분,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적어놓은 것들을 다시 살펴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벗어나 있을 것이다. 

- 세 번째 방법은 감정을 상세히 묘사해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둘러싸고 느꼈던 감정을 묘사해보자. 그저 '기분이 나빴다', '울고 싶었다', '기뻤다'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눈물이 날 것 같았는지, 그런 모습이 마치 어떤 경우와 같았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별 때문에 상처받아 일상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마치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상실이 크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같은 묘사는 흔히 소설을 포함한 문학 작품에 많이 등장하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참고해도 좋다. 

- 네 번째는 분노, 좌절 등을 쓴 종이를 버리거나 태우는 방법이다. 자신이 써놓은 글을 다시는 볼 수 없도록 불태우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시련을 극복하는 모든 과정이 그렇지만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을 끊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려움을 떨치면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분노 실패로 인한 좌절은 환대하기 어려운 손님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하는 귀중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 분노와 좌절은 좋거나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버거운 감정일 뿐이니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도록 하자. 그렇게 행동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뇌는 어려움을 넘겼다고 인식한다. 감정은 복잡할지 몰라도 뇌는 의외로 단순하다. 

 

- "진심에서 나온 단호한 거절은 상대방에게 맞추고 심지어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무심코 한 승낙과 비교하면 훨씬 가치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다. 즉 자신이 허용할 수 없는 범위, 용납할 수 없는 부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자신만의 기준에 대해 한번 써보도록 하자. 우리가 감정으로부터 늘 뒤통수를 맞는 이유는 대상을 둘러싼 감정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노라는 감정 역시 그 대상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면 쉽게 다룰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입 모아 말한다. "화가 난다는 감정은 자신의 영역이나 한계를 설정하고 침입자를 내쫓는 데 사용하는 감정이다." 화가 나는가? 그렇다면 기억하자. 분노는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쫓아내는 항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 어릴 적 나는 가정환경 탓에 자존감이 낮고 회피 성향이 강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 게임이라는 온라인 세상으로 도망쳤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으로 풀었다. 게임을 하는 도중이나 자고 일어났을 땐 고민에서 벗어난 기분을 느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객관적인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 채 방어적 태도만 지니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 상태에서 좀처럼 달라지지 못했다. 쌓인 감정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건강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만의 방법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잘 쉬는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것. 그것은 더 잘 일하기 위해, 더 잘 관계 맺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늦게라도 깨달은 덕분에 아마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쉼의 방법에 대해서 꾸준히 연구할 듯하다. 

 

- 뇌를 쉬게 해야 하는 이유는 책 <정리하는 뇌>에 잘 나와있다. 저자인 대니얼 J. 레비틴이 말하길, 우리가 몽상을 할 때 뇌가 진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여유를 즐기거나 날씨가 맑을 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 등이 진정한 휴식이다. 즉 내부에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외부에 맡겨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뇌에서 어떤 생각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으면 어떤 장소에 있든 뇌를 쉬게 할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언제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 현재 머물러 있는 위치를 점검한 후에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해야 한다. 괴롭다고, 막막하다고 피하기만 하면 그 문제는 산더미처럼 커져 삶을 점점 침식해 갈 것이다. 내가 심리상담학을 배우고, 그중에서도 코칭을 집중적으로 배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 미래 지향적인 태도, 무엇보다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비즈니스에 날개를 달아줄 도구가 필요했다. 

- 코칭이란 '개인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가리킨다.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나는 왜곡된 수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스스로를 무의식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회피 성향 탓에 끊임없이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문제를 마주하고 싶었다. 건강한 마음과 이성을 지닌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모든 사람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코칭 철학은 내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불행하고 무미건조하게 삶을 바라보던 내게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말라며 희망을 건네준 친구와도 같았다.

 

- 그렇다면 셀프 코칭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핵심은 피드백이다. 나 또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피드백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융합코치협회 대표인 곽동현 코치의 말에 따르면, 피드백은 반성이나 과제 수행, 느낀 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분석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게 되는 방법이라 했다. 

 

-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자신이 가진 자원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코칭이 필요하다. 그렇다. 코칭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결국 실천해야 할 것들과 대화하는 강력한 도구다. 

 

- 질문 2: 그렇다면 지금 이 사업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 : 사업에는 늘 위험 요소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온라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무자본 창업의 형태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다. 그러니 사업이 잘되지 않아도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물론 내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을 테니 무조건 손해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불안감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음으로 바꾸고 싶다. 즐겁게 일하고 배우면서 사업을 성공시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 질문 3 :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현재 하려는 사업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궁극적인 목표와 현실이 연관이 있는가?) 
대답 : 나는 경제적 자유를 거머쥔 작가가 되고 싶다. 물론 글을 평생 쓸 생각이지만 글을 쓰는 일로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더 잘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금전적인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마음껏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면 가보지 못한 세상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 질문 4 : 그렇다면 지금 하는 사업은 작가로서 잘되기 위한 과정이라 볼 수 있나? (목표 확인)
대답 : 그렇다. 나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목표를 이루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 질문 5 : 무엇으로 사업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생각인가?
대답 :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팀 페리스가 "성공은 복잡하지 않다. 그냥 1천 명의 사람을 지극히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진정한 팬이란 '당신이 만드는 건 뭐든지 사주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당신이 만든 거라면 사주는 골수팬.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팬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랑해주는 1천 명의 고객, 팬을 확보하고자 한다. 창작하고 싶은 소설이나 만화가 있지만 그전에 내가 쓸 수 있는 책은 모두 써보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브랜드 가치가 만들어질 것이고 이게 어쩌면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방향과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 

- 누구에게나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가끔 통증이 느껴지더라도 그때만 참고 모른 척 살면 당장은 편하다. 그러나 상처는 더 커지고 깊어진다. 더 늦기 전에 아물 수 있게 치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를 애도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라 작은 상처에도 무방비하게 무너지지만 어떤 순간엔 놀랄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처를 헤집는 고통을 견디고 자신을 되찾는 일은 세상을 버티는 든든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 앞에서 엄마와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괜찮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정리해놓고 보니 짧고 간략한 과거의 일들인데도 이렇게 글로 써 세상에 드러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각오가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 상처를 치유하고 엄마하고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던 이유는 충분히 애도했기 때문이라 자부한다. 미국 정신분석학회는 애도를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 과정. 주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일컫는다'라고 정의한다. 

 

- 이런 환경 탓에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성향으로 자랐고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십 대 시절에도 내 속에 있는 응어리와 상처를 꺼내본 적이 없다. 철저히 가면을 썼으며 그것은 어린 내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모습과 골라 쓰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무의식을 직관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내 무의식은 과거의 상처가 크게 자리해 더 이상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회피 성향을 띠었고 이러한 성향은 상처를 마주하지 않고 묻어두는 습관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사회심리학자로 상실과 외상을 주제로 연구한 존 H. 하비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되찾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주장한다. 그 말 그대로,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르게 다가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됐다. 나를 거세게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명 깊게 글을 읽었다며 응원해주는 독자도 있었다. 세상과 끊어졌던 고리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외적·내적으로 회복했다. 트라우마가 된 과거 사건과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마치 나와 경험 사이에 틈이 생긴 듯해 그 경험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뱀인지 밧줄인지 구별할 수 있는 관점과 시야를 확보한 덕분에 그 사건들을 이전에 비해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어떤 관점을 가지려면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두려움 없이 그 상황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내실을 다지면 마음의 여유는 자연스레 확보된다. 비록 상처투성이가 되어 도망치는 한이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것처럼, 관계를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회복할 기회는 온다. 그 믿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당신의 그 상처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계획적이면서도 체계적인 과정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지는 막연한 것이 아니며 또 무조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 번은 삼십대로 짐작되는 C가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C는 자신이 꿈꾼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지금이 행복한데 최근 들어 자신의 아이를 볼 때마다 상반되는 감정이 들어 괴롭다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그런 탓에 부모와 제대로 된 애착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그런데도 자신이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허나 모든 이야기에 '갑자기'란 없다. 단지 덮어둔 것뿐이다. C의 경우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마주할 생각을 못 했는데, 자녀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유년 시점이 소환된 것이다. 

 - 비록 우울한 날들이 많았을지라도, 불확실한 오늘과 미래를 살아가더라도 내게는 나를 붙잡아줄 기억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이 내 삶을 움직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의미 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내게 의미 있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반면에 상처받은 기억이나 무의식 또한 우리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칠 때가 있다. 앞서 언급한 C의 사례에서도 그렇듯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과거의 슬픔들이 끊임없이 나를 덮친 것 또한 이유가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무의식(잠재된 기억)이 의식화(몰입)할 때 장기기억장치를 활성화하게 되는데 이때 기억의 이면에 존재하는 처리하지 못한 슬픔이나 우울감이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상처를 이겨내려 애쓰는 걸까?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의 상처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면 또 다른 상처가 닥쳐도 비교적 유연하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외면하면 그 상처로 거듭 상처를 받고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상처를 꼭 상처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힘, 면역력을 키우는 기회로 여기면 좋다. 이 방법으로 독서와 글쓰기, 타인과 교류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스스로 닫힌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정말 희박하다. 괜찮다. 한 번 겪은 일을 두 번 겪으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알고 있다. 꽁꽁 숨겼던 상처를 드러내면 그런 모습에 오히려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을.  

 

- 어느 날 독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작가님, 제발 희망 고문하는 글은 그만 써주셨으면 해요."
이런 말은 사실 내 글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들은 흔한 말 중 하나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들어보기 위해 답장을 보냈다.
"제가 언제 희망고문을 했다는 거죠?"
"희망고문 맞죠. 작가님의 글의 취지는 알겠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잖아요. 대표적으로 저 같은 사람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직접적으로 도와주진 못하겠지만 이야기는 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나요?"

"저는 너무 억울해요. 왜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도저히 용서가 안돼요." 

 

- 상처를 마냥 묻어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속에 담아두기에는 그 슬픔이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을 테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달래주며 설득했다. 너무 억울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지 않았냐고.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끊임없이 내게 신호를 보냈을 텐데, 난 그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다. 내가 마주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야 그 아이, 아니 나를 마주하고 대화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를 끌어안으며 과거의 내가 호소하는 울음에 같이 울었다. 그저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슬피 우는 나를 떠나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떠나보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 발목을 붙잡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밝은 미래를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니까. 

 

-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과거는 존재한다. 우리는 마음속에 그 과거를 품으며 살아간다. 설령 그것이 짓밟힌 꿈이라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었고, 부족했을지 몰라도 그런 과거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자. 일단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인간은 알 수 있는 만큼 대처할 수 있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지길 원한다면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주체적으로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심리학에 열등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당사자인 아들조차도 약한 육체 탓에 열등감에 시달렸다.   

 

- "인간은 평생 동안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여 자기 자신에게 보상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열등감은 보다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아들러의 이 말로보면 열등감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인 셈이다. 열등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확실한 신호다.

 

-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변화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타인이 나보다 뛰어난 부분에 대해 자신을 나무라는 건 별 소득이 없다. 열등감은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비교를 통해 분석이 끝났으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시선을 돌릴 차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보완해야 할 부분,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자. 자신의 성공을 위한 에너지로 쓰일 때 열등감이란 감정은 제 역할을 한다.

 

- 자존감을 지키는 일, 자존감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은 다들 알고 있지만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실제 방법에 관해서 고민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다섯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 첫 번째는 글 쓰는 시간을 반드시 갖는 것이다. 나의 훼손된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도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우울하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는 그것들을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제대로 마주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 두 번째는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나와 같은 시기에 직장을 다녔던 친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어느 날부터 업무에 대한 회의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더니 안정적이지 않은 조건에서 더 이상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공무원이 되겠다고 노량진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종종 연락하며 지냈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역시 쉽지 않은 듯했다. 난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고 지지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합격 발표날짜가 지난 후에도 소식이 없었다. 소식이 없으니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조심스레 연락을 해봤지만 며칠 동안 답변이 없다가 어느 날 얼굴을 보자며 답장이 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애써 슬픔을 감추는 듯 보였다. 친구는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잘 안 됐어." 친구는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합격만 바라보며 견뎌왔던 지난 시간들이 자꾸 생각나 서럽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 실제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질문하면 98퍼센트가 위로를 해준다고 한다.   

 

-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그렇다면 방금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어떨까? 대부분 표정부터 어두워질 것이다. 아마 상상조차 하기 싫어서 페이지를 넘기거나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어보라. 중요한 이야기다. 스스로를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겸손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폄하하는 태도다. 왜 이런 모습이 보이는 걸까. 간단하다.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라도 친구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우리는 대부분 위로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게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 좀처럼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래 남 일이 아니라 자신과 상관있는 일이면 충격이 큰 법이다. 이건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심리라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나를 질책하고 깎아내리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울까. 그게 얼마나 어렵고 추상적인 느낌인지 나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스스로를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은 해주자. 당신이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준 그 따뜻한 마음으로, 아니 그 반만큼이라도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자.  

 

- 연인에게 이벤트를 해주듯 내게 맛있는 식사, 선물 등 의미 있는 것들을 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나에게도 선물을 해주자. 편안한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도 좋지만 근사한 옷도 입어보고 사소한 일이라도 성취를 이룬 내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선물하자. 그렇게 하다 보면 무의식에는 스스로가 무언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는 야박하다는 것은 남에게는 잘해주면서 자신에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더 늦기 전에 나에게 관심을 갖자.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받길 원하는지. 

 

- 세 번째는 독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독서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면 유튜브, SNS, 책, 전문가의 강의, 상담 등 뭐든 좋다. 자존감에 관한 문제는 일반화해서 해결법을 찾아내기 어렵다. 개개인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생각과 경험이 모두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어떤 솔루션을 제시해도 "그 방법은 내게 맞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이야기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이에 대한 답도 반드시 있다. 답이 없는 문제라면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 내리면 된다.   
 

- 가면을 쓰며, 정체성을 숨기면서 전전긍긍하는 게 최선이었을까. 우리는 살면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이, 주어진 조건에서 결단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선택하면 선택한 대로 피하면 피하는 대로 아쉬움과 후회, 혹은 그 사이에 있는 남아 있는 미련 등 크고 작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한다. 물론 이미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 글에서 말한 대로 나는 둔감했고 겁쟁이였다.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고 정당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과거는 내게 여전히 현재라는 선물을 건네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짧은 일화에서 나는 내 과거를 늘 정체성을 부인하고 겁에 질려 있는 실패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원고를 정리할 때 메모장에 적어놓았던 내용들을 발견하기까지는 말이다. 메모장에는 내가 생각한 자존심의 정의가 적혀 있었다.  

 

- 언제 적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이겨내기 위해 살아왔던 나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우울한 내면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실례를 범할 뻔했다.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내가 나의 프라이드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 자존심만 강하고 완고함까지 보이면 자만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늘 고려해야 할 건 균형 감각이다. 자존감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나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알게 모르게 자신의 품위를 낮춘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 우리의 하루는 기대가 넘치다가도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걸려 힘겹게 넘어간다. 거기서 얻는 아쉬움, 쓰디쓴 피드백은 자극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자신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는 이만하면 됐어'라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이 정도로는 부족해. 더 해야 해'라고만 생각하면 여유가 머물 곳이 사라진다. 누구는 그런 적당함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큰 성공 없이 평범하게 지내는 것 같아도 자신의 확고한 라이프스타일과 규칙, 그 안에 틈틈이 여유를 챙기는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삶의 여유는 자신과의 대화, 긍정에서 나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단순히 힘든 일이 있어도 낙관적으로 사고하며 낙천적인 태도를 고수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긍정은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옳다고 믿는 것, 더 나아가서 좋게 평가할 줄 아는 걸 뜻한다. 한마디로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 속에서도 특정한 관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는 순간에 긍정은 시작된다. 

 

- 무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위기이자 기회다.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믿을 것인가를 정하고 나면 사람은 그 믿음대로 살아가게 된다. 좋든 나쁘든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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