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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16

[박서련]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저자 : 박서련출판 : 창비출간 : 2024.10.08       얼마 전 을 만족스럽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고자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더니 전작 에 이은 가 메인에 떠 있었다. 맞다. 그 책의 저자도 박서련 작가였지. 가끔 문장에서 눈을 떼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잘 읽히지 않아 헛도는 게 아니다. 이미 읽었음에도, 그 의미를 파악했음에도 문장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몇 번이나 되읽으며 그 맛을 음미한 뒤에야 겨우겨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는 그런 문장들로 쓰인 책을 만나면 매우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무척 행복해한다. '읽는다'는 주체적 행위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갑갑함이 괴롭지만, 그보다는 쉽게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곱씹어 읽게 하는 문장을- 표현을 만..

[정세랑]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저자 : 정세랑 / 최영훈출판 : 창비출간 : 2019.06.21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모두 경험해 본 세대-라고 하면 대략적인 나이대가 나올 것이다. 당시 나는 하교길에 하천을 따라 난 둑길을 걷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훨씬 가까운 보도블럭 길을 두고도 그리로 다녔던 걸 보면 진심이었던 것 같다. (철로를 건너고 싶을 때만 블럭 길로 갔다) 바로 옆이 아파트 단지라 완전한 시골이었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런대로 자연적인 삶을 잘 누릴 수 있었다.   둑에서 하천으로 내려가 천변에서 놀다 들어가는 게 일과였다. 메밀을 찾아 씨를 쪼개보기도 하고, 송사리나 개구리, 물잠자리 등을 잡으며 뛰놀았던 기억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곤충들을 쉽게 만지지 못하는 새가슴이 되었지만) 매일 ..

[신해욱] 해몽전파사

저자 : 신해욱 출판 : 창비출간 : 2020.02.29       소설이면서도 산문시 같았던 글.  는 꿈을 모으는 한 여성('진주 씨')과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 '나'의 이야기다. '나'의 성별은 모호하지만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그녀들은 꿈을 채록하고, 꿈에 관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진주 씨가 운영하는 '해몽전파사'는 이름과는 달리 해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꿈을 모을 뿐이다. 어떤 해석도, 분석도 달지 않는다. 그래서 에는 46개의 꿈이 날 것에 가까운 상태로 실려 있다.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꿈은 작중 '나'의 표현마따나 '박제'되고 '번역'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꿈들은 가만가만 읽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나가 버..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저자 : 구병모출판 : 창비출간 : 2009.03.30        한 발짝씩 늦는 느낌이다. 뭔가가 유행일 때는 한켠에 비켜서있다가, 시들시들 잊혀졌을 즈음에야 뒤늦게 뛰어드는 느낌? 2 페이즈가 되어서야 진입하는 거라고 포장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겸연쩍다.  예전에는 '인디병' 비슷한 게 있었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 같으면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던 삐뚤어짐. 그래서인지 '베스트셀러'라거나 'top 10'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기를 쓰고 피하려 했었는데, 이제 중년에 접어들고 나니 뭐가 유행인지조차 잘 모르게 되어 버렸다. 여기에는 시대적인 변화도 한 몫하는 것 같은데, 채널들이 워낙 다양하게 분산되다 보니 이전처럼 '국민적 대유행'이 힘들어진 것도 한 요인 아닐까.    흰소리를 길게 ..

[박서련]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저자 : 박서련 출판 : 창비 출간 : 2022.04.10 아... 미친 것 같다...!! 행복한 클리셰 비틀기. 어른들을 위한 현실적 동심 파괴와 블랙 유머. 아니, 미쳤다. 박서련 작가님, 사랑해요. 내가 이 작품에 대해 뭐라 더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만 한 달여. 결론은 그냥 한 줄이다. 를 읽읍시다. 생활에 찌든 사회인이여.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 짓눌린 현대인이여. 우리 모두, 그래, 까짓것 마법소녀가 됩시다. 글쎄... 개개인에게 와닿는 바는 다 다르리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클리셰만 모아놓은 글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한순간을 위해서 지난했던 그 길고 질척한 과거가 필요했다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 한순간을 느껴봤다면. 는 무척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될 ..

[김려령] 트렁크

저자 : 김려령 출판 : 창비 출간 : 2015.05.29 아. 정말 좋았다.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굳이 풀자면, 쓱쓱 넘겨보던 피드에서 '공유-서현진 조합이 성공했다'는 내용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도 정극도 잘 소화하는 둘이지만 색감이 좀 다르지 않나? 어딘가 우울한 느낌이 들어가야 잘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인데 좀 묘하네- 하고 생각하다가 무슨 드라마인지 찾아봤다. 넷플릭스 제작의 로, 원작 소설이 있다고 했다. 드라마는 못 보더라도 소설은 읽어볼 수 있지. 어라? 의 김려령 작가네? 그때부터 살짝 진심이 되었던 것 같다. 를 재미있게 읽었었지만, 동시에 내게 남은 저자의 이미지는 청소년 성장물을 잘 쓰는 작가였다. 그런데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트렁크가 발..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저자 : 장류진 출판 : 창비 출간 : 2019.10.25 생애 첫 교통사고를 겪어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부상자가 있었던 사고라 모쪼록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대로 출근해서 정상 근무를 하면서 생각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에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나를 계속해서 일터로 보내는 것은 누구인가? 먹고사는 일의 지난함과 신성한 노동의 보람과 기쁨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것들은 정말, 나의 마음가짐에만 달린 문제인가? 등등의 잡생각이 들어 조금 심란했다. 사고의 순간은 놀랍거나 무서웠다기보다는, 그저 현실감이 없었다. 실제로 경험한 순간이 아니라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기분과 느낌을 과거에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일종의 해리의 순간을..

[은희경] 중국식 룰렛

저자 : 은희경 출판 : 창비 출간 : 2016.06.30 이후 10여 년 만에 만난 은희경이다. 그리고 긴 시간을 잊고 지냈던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한 문장마다 눈을 뗄 수 없게 끌어당기고 후려쳐댔다. 개인사를 많이 겹쳐 읽게 되었다. 40여 년이 가까워오는 시간 동안 나는 대체 뭘 하며 보내왔나 싶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겪고 느껴왔었다. '그녀는 자신이 서울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까페가 안국역 쪽에 있다면서 장소까지 스스로 정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를 검색해보니 까페가 아니라 독일 생맥주를 파는 술집이었고, 레지던스 호텔 1층에 있었다.'라는 두 문장을 읽자마자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 붉은빛의 간판. 이름은 조금 시간을 들여 다시 확인해야 했지만, 나는 확실히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손원평] 튜브

저자 : 손원평 출판 : 창비 출간 : 2022.07.22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크게 변했던 건 언제입니까?"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 출근하고 퇴근하는,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오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나날들. 그런데도 조금씩 나빠지는 상황과 아무 걱정 없이 해맑아 보이는 과거 어느 순간의 나. 손원평의 신간 는 겹겹이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떠돌다 자기도 모르게 가라앉아가는 이들에게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보여준다. 당신이 잊고 있을 뿐, 누구에게나 지푸라기는 있다고.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푸라기를 모아 엮어 나가다 보면 튜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설의 주인공인 김성곤 안드레아는 몇 차례나 거듭되는 사업 실패 끝에 이혼을 목전에 둔 ..

[천선란] 나인

저자 : 천선란 출판 : 창비 출간 : 2021.11.05 고르는 책마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계속 소설만 골라 읽고 있는 중이다. 비문학 책들도 기다리고 있지만 아마 한동안은 소설 쪽을 계속 읽지 않을까 싶다. 일상이 출렁이고 있다. 작년에 일을 줄인 이후로 시간적 여유를 즐기며 지내왔는데, 예기치 않은 제안이 들어와 다시 일이 늘어나게 될 것 같다. 신청해둔 미술 수업을 유지할 방법을 고심 중이다. 좋은 일인데,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청소년들이긴 하지만 청소년 문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편견들, '사회란 그런 거다'라는 암묵적 동의 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법들은 그것을 낯설게 보는 이를 소외시킨다. 배우는 것과 생활하는 것 사이의 괴리..

[이랑]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저자 : 이랑 출판 : 창비 출간 : 2020.08.06 를 즐겁게 읽었었다. 나에게 '이랑'은 음악가보다는 '만화가'나 '작가'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이랑'이 사는 세계는 보다 섬세하고, 날카롭고, 부서지기 쉬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아슬함이 태연한 척 툭툭 던지는 유머 사이 사이에 녹아들어 있어 더욱 매력 있고, 또 안타깝다. '이길보라'의 에서였던 것 같다. 이랑이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자 돌연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하더니 보험 판매를 시작했다고. 우리들은 예술인이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금융도 잘 알아야만 한다고. 그러므로 이제부터 자신은 '금융예술인'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그의 작업과 활동들은 그에게는 '좋아서 하는 일'이자 그의 생계가 달린 '직업'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언니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저자 : 정세랑, 김인영, 손수현, 이랑, 이소영, 이반지하, 하미나, 김소영, 니키 리, 김정연, 문보영, 김겨울, 임지은, 이연, 유진목, 오지은, 정희진, 김일란, 김효은, 김혼비 출판 : 창비 출간 : 2021.09.17 어쩌다 보니 언니들의 편지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쌓인 편지들이 엮여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구석 어귀에 작게나마 이름자를 올리게 되었으니 종이로 다시 읽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 저는 '언니'라는 호칭이 참 싫었더랬습니다. 직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뜸 저를 '언니'라고 부르면 당황하곤 했어요.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존칭은 쓰기 싫고, 얕잡아 부르는 듯한 그 특유의 어조가 너무 싫었거든요. 해서 사적 자리에서는 부러 잘 쓰지도 않던 '희야'라는 말을..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baume

저자 : 헤르만 헤세 / 안인희 출판 : 창비 출간 : 2021.06.01 추석에 어울리는 책이었다. 눈 앞에 헤세가 바라보던 것 같은 숲과 정원은 없지만, 나름대로의 식물들을 보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읽기 좋았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헤세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을 좀 더 확실하게 명시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듯 하다. 폴커 미헬스의 편집 판에 실린 것도 아니라는 점도. 그 점을 확실히 해두더라도 충분히 멋진 그림들인데. 동물과는 사뭇 다른 식물의 춤들을 멍하게 바라본 게 언제였더라. 아주 어릴 적에 사랑했던 강둑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와 그 당시의 풍경들을 떠올려보면 너무 아름답게 기억되어서- 마치 현실이 아닌 꿈이었던 것만 같다. 지금 다시 그렇게 풀숲을 ..

[박한선, 구형찬] 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저자 : 박한선, 구형찬 출판 : 창비 출간 : 2021.04.05 잘 모르겠다. 차라리 두 명의 공저자가 챕터를 나누어서 쓰고 각각을 분리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섞으려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되면서 산으로 간 느낌. 미생물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과학 도서로 읽기에는 인문적인 메시지가 너무 강하다. 차라리 항체와 균 분류 부분을 대폭 들어내고, 감염병 시대와 현 시대를 겹쳐보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논하는 글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엘리아데, 프로이트, 마빈 해리스부터 진화심리와 구달과 정약용과 파라셀수스까지 방대하게 오가지만, 저자들의 결론은 '감염'의 완전 박멸은 있을 수 없으니 면역과 병원..

[최상희] 마령의 세계

저자 : 최상희 출판 : 창비 출간 : 2021.06.25 장기와 마녀라니. 신기한 조합이라 생각해 가볍게 읽었다.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적절하다. 즐겁게 후루룩 읽을 수 있다. 장기의 룰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체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읽었다. 예전에 에서 체스 오류를 발견하고 문의해서 정정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설명하는 대로 따라가며 읽다보니 이상해서 발견했던 것인데, 이번에도 대국을 그려보며 읽어볼까 하다가 가뿐히 포기. 청룡과 은여우, 장기와 마녀라니. 이 조합에서라면 만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 이랑은 순발력이 뛰어나다. 바꿔 말하면, 당장 해결해야 할 눈앞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묘주는 전체 흐름을 읽는다. 당장은 내주더라도 조용히 기다려 결정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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