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5.11.29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5.12.29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6.01.27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6.03.14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6.04.18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6.05.18
저자 : 유메마쿠라 바쿠 / 오카노 레이코 / 이주련
출판 : 서울문화사
출간 : 2006.06.19
<계류자들>에서 <음양사> 발췌를 접한 후로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음양사>와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둘 중 먼저 손이 닿는 것부터 읽고자 했는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만화 쪽을 먼저 재독하게 되었다.
재독의 즐거움은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일 때의, '익숙함 속의 새로움'에서 나온다. 그러나 흔히들 잊곤 하는 것은 동시에 과거에는 느꼈던 감흥의 소실 또한 존재한다는 것. 기록을 남겨 두지 않으면 예전의 나는 이런 것들을 생각했고 이렇게 느꼈었구나 하는 것은 '무(無)'가 된다.
전체를 읽은 후 하나의 글로 쓰고자 했기에 읽는 데도,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몇 번이고 다시 들춰보며 어떤 때에는 작화에, 어떤 때에는 대사에 감탄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며 읽었다. 바쿠의 <음양사>를 다시 읽은 후에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지만, 바쿠 쪽이 좀더 일본 자체의 영묘함과 세이메이와 히로마사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레이코의 <음양사>는 세이메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진리'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그래서인지 바쿠 쪽에는 등장하지 않는 '마쿠즈'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미들필라와 여성성 원리를 엮기 위해서는 주요한 여성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마다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영검 수리 이후부터의 작품은 완전히 오카노 레이코 만의 <음양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0권에서 세이메이가 히로마사에게 '아마는 자네와 내가 춤을 춰도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 대사가 딱 들어맞는다. 굳이 세이메이가 아니고 히로마사가 아니어도 되는 이야기였다. 아,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담겨 있는 메시지의 보편성이 강해지면서 그것을 담아내는 캐릭터들의 개별적 특성보다 상징성이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다만 너무 넓게 연결하고 싶어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본편 전개보다는 부록으로 담아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저자가 말하는 중심기둥은 오른기둥과 조금 더 닮아있다. 오시리스와 호루스는 구분되었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즐겁게 읽었다.
최근 들어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들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어떤 영향력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하나씩 다시 읽어보려 한다. 가을이 기다려진다.
사족. 오카노 레이코 쪽이 훨씬 성숙한 그림체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사사키 노리코의 느낌도 조금 난다. 아. <헤븐 Heaven?> 읽고 싶네.
1권
- 아베노 세이메이를 당시 음양사의 제 일인자라 불리던 카모 타다유키가 제자로 삼은 이유는 <콘자쿠모노가타리>(헤이안 시대 설화집>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스승인 타다유키는, 어린 세이메이의 눈 속에 남달리 불가사의한 재기가 번뜩임을 때때로 엿보았을지도 모른다.
- "스승님! 스승님! 멀리서 뭔가 옵니다!!"
"이놈! 오긴 뭐가 온다고 소란이야. 쉬시는데 방해하지 마!"
"와요, 오고 있습니다. 무섭고 괴상한 것들이 떼로 몰려옵니다!!"
- 이때부터 타다유키는 세이메이를 애제자로 삼아 곁에 두고, 단지의 물을 옮겨 담듯, 자신이 알고 있는 음양도의 전부를 세이메이에게 전수했다고 콘자쿠모노가타리는 기록하고 있다.
- 바람에 떠도는 구름처럼 초연히 흘러간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 "돌아오는 길에 카츠라기의 치하라산에 들렀습니다."
"엔노교자 님의 길상초사(吉祥草寺)에 다녀오셨군. 도읍에서의 가지기도는 천태•진언의 밀교가 독점하고 있지만, 치하라산의 수험도 무시 못 하지."
"제 생각도 그러하고... 이런 저런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문 앞의 수상쩍은 두 노법사가 옷자락을 붙잡더니 이 몸을 내놓으면 술법을 가르쳐준다지 뭡니까. 그런 식의 수법엔 아주 진력이 납니다. 게다가 한 노인은 귀가 어두운지 어두운 척을 하는 건지, 얼굴을 코앞까지 이렇게 가까이 들이대고선."
"흔히 있는 일이지. 그래서 좀 놀려줬는가?"
"제가 음양사임을 알고 술법 겨루기를 하자기에, 노인네가 괴상한 주문을 외는 사이 궁둥이를 걷어차 주었지요."
"소문과 달리 고약한 젊은이군. 그래서 그런 자랑스러운 얼굴로, 법사를 놀리러 일부러 치하라산까지 간 거로군."
- "코야의 신비로운 물이라더군요."
"역시 자네도 물이라 생각하는군."
"그야 술은 물이 생명이니까요."
"일리가 있군 그래."
"사실은 치하라산에 간 목적은 물 때문이지? 코야도?"
"아닙니다. 코야엔 술을 알아보러."
"주술?"
"아뇨, 그냥 술요."
"자네라면 술 핑계를 대며 필요한 건 확실히 챙겨 왔겠지."
- "가까이서 엿듣고 싶은데 세이메이 님이 가만 둘리 없겠지?"
"자칫하면 네가 주살의 제물이 될 수도 있어."
- '흐음... 시험에 들었군.'
"한 번 죽여 보게나."
"죄를 지으란 거군요. 어차피 같은 살생이라면 우아한 방법이 좋겠군. 후-"
- "네다섯 마리의 내장을 날려 보내서 네다섯 명의 적까지 만들었군."
- 이 사람, 미나모토노 히로마사는 더없이 관현의 길을 사랑한 당상관이며, 다이고 천황의 첫째 황자, 카츠아키 친왕의 아들이다.
"괜찮다. 안심해라. 연의 솔밭 쪽이 아니라, 주작문 쪽에서 들리니까."
"꺄악-! 거기도 어제 시체를 먹는 노파가 나타났었어요."
"도둑이 문 위에서 켜고 있는 거겠지. 따라오너라!"
-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이래 봬도 악기 다루는 솜씨는 상당하지."
"아츠타다 님보단 못하실 걸요. 열심히 하는 건 인정하지만요. 생물소리, 딱따구리 소리를 듣고자 삼 년이나 밤마다 오사카의 세미마루 법사의 거처에 다녔을 정도니까. 분명 마음은 열정적인 분이겠죠."
"이만 물러가거라. 이 친구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 "그게 뭔데?"
"자네한테 이런 방면의 얘기는 별로 흥미 없을 걸세."
"도대체 어떤 방면의 얘기인데?"
"저주."
- "저주는 저주 아닌가?"
"글쎄... 그야 그렇지만, 문득 저주란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 "모기였군... 어쩐지 내 덕에 혈색이 좋았던 거로군. 알았네. 술은 내가 따라 마실 테니 저주 얘기나 해주게."
- "히로마사...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저주란 뭘까."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저주...?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자네가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까 말했잖나. 이름 말이네."
- "자네의 세이메이, 내 히로마사라는 이름?"
"그래. 산이나 바다, 나무나 풀, 그런 이름들도 저주의 하나라네. 저주란 곧 존재를 속박하는 거야. 사물의 근본적인 실체를 속박하는 게 바로 이름이지. 이를테면 자네는 히로마사라는 저주를, 나는 세이메이라는 저주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일세.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네.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지."
"어렵군. 내게 이름이 없다면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인가?"
"아니, 자네는 있어. 히로마사가 없어질 뿐이지."
- "자네는 조심성 없게 호락호락 본명을 밝히고 대답을 했기에 주문에 걸린 거네, 히로마사."
- "어제 비파 연주는 정말 훌륭했네."
"..."
- "비파에 빙의 됐는가?"
"그래."
"그 말도 주문이었나?"
"몰랐었나? 부드러운 말만큼 효력 있는 주문은 없지. 그리고 조금 불행한 자의 연주가 아름다운 법이지."
- "아, 당신은!! 무... 무서워요!"
"타마쿠사, 무서워 마라. 생긴 건 저래도 다정하고 착한 남자란다."
"세이메이 님, 오늘 밤은 약속하신 대로 절 돌려보내지 말아 주세요."
"그런 거였군."
"알았으면 됐네."
"못 말리겠군. 주상께는 공무라고 말씀드리지."
"은혜 꼭 갚겠네."
"별말씀을..."
- "자, 우린 뭘 할까? 타마쿠사."
딱-!
털썩.
"내가 워낙 바쁘신 몸이라."
- 소설을 만화화하는 것에 난 전부터 반대였다.
그건 내 소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모든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다. 이제까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들 중에 재미있는 작품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약간의 예외도 있긴 하지만, 소설이 재미있다고 꼭 만화도 재미있으란 법은 없다. 이 두 가지는 다른 표현형식의 것이기 때문이다.
- 처음부터 만화화를 전체로 한 원작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소설의 만화화는 원작자, 만화가, 출판사 모두에게 커다란 위험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내게도 자주 만화 원작을 써주지 않겠냐는 의뢰가 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거절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난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면 소설로 쓰고 싶기 때문이며 그게 내 본업이기 때문이다. 이미 써버린 작품들 중엔 -내 소설을 원작으로 만화화할 경우엔 조건이 붙는다. 그 조건이란 것은 내 쪽에서 만화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얘기를 특정한 만화가가 써줄 수 있다면- 이런 내 억지가 통해 만화화된 작품도 몇몇 있다.
-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작자 쪽에서 꼭 그 만화가가 이 이야기를 만화화해줬으면 하는 작품을, 그 만화가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를 자기 손으로 만화화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특히 만화가가 그 소설을 만화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소설의 만화화가 재미있는 작품이 되는지 대한 조건이다. 왜냐하면 만화가에겐 이미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편집자의 권유로 원작을 읽고 그것을 만화화하는 경우와는 느낌이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음양사>의 경우는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케이스가 되었다.
- 만일 <음양사>가 만화화된다면, 내 이미지로는 애초부터 오카노 레이코 이외엔 그 누구도 거론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내부 사정이 있던 터에 문예춘추사의 편집자가 '오카노 씨가 <음양사>를 만화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요’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때 스콜라에서 내게 만화 원작을 쓰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원작은 아까도 말한 사정으로 쓸 수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스콜라의 편집자에게 '오카노 레이코 씨가 <음양사>를 만화화하는 건 어떨까요?'라는 얘기를 던져, 즉시 오카노 씨를 설득해 본작품이 스타트하게 된 것이다.
- 사토 감독과 둘이서 그 자리에 없는 날 놀리며 즐거워하곤 한다. 그래도 귀엽고 미인에다, 어딘가 기묘하기까지 하다. 그 기묘함을 뭐라고 할까. 재능이라고 할까 단순한 성격이라고 할까. 그 재능을 똑 부러지게 단정 지을 수가 없다. 그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이야말로 재미이며 오카노 레이코다움이다. 그 기묘함은 틀림없는 오카노 레이코의 무기이다. 그리고 초능력이니 음양도에 대한 이 이야기의 작가로서의 태도가 나와 닮았다.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초능력이니 마법이니 마물 퇴치 같은 한때 유행했던 다른 많은 만화와는 맛과 차원이 다른 작품이 되었다. 백귀야행 첫 회 신을 봤을 당시 난 흥분했었다. 내 손에 든 만화에 전혀 새로운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창조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래야만 한다. 만화의 새로운 표현이 출현하는 현장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 현장에 원작자로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더할 수 없는 행복과 희열일 것이다.
- 유메마쿠라 바쿠
2권
- "미안하군.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았소?"
"다, 당신, 어떻게 뒤에서...?"
"글쎄..."
"에잇!"
- "세이메이... 이봐... 자네, 진짜 세이메이 맞나?"
"보고도 모르겠나."
"정말 진짜 세이메이야? 자네 집에선 언제나 희한한 여자나 쥐 같은 게 나오니, 자네 얼굴을 한 자가 나와도 단박에 자네라고 믿을 수가 없어."
"세이메이 맞네."
"그래? 그렇다면 들어감세."
"이봐, 히로마사. 자네 그렇게 의심하면서, 내 얼굴을 한 자가 세이메이라고 하는데 그걸 믿나?"
"세이메이 아닌가?"
"내가 언제 세이메이가 아니라고 했나?"
"됐네. 어디 장난이 한두 번이라야지. 일단 들어가겠네."
- "역시 진짜는 여기 있었군."
"왔나, 히로마사."
팔랑-
"어때? 역시 내가 진짜였지?"
"내가 알 게 뭔가."
- "오호, 버섯이로군."
"화가 치미는군. 둘이서 이걸로 한잔할까 해서 왔는데 돌아가겠네."
"화내지 말게, 히로마사. 그 대신 이건 내가 직접 구워주지."
"자네가? 됐네. 여느 때처럼 식신한테 시키면 되잖나. 이봐, 화났다는 말은 거짓말이네. 자네를 난처하게 해 주려고 그랬을 뿐이야."
"정직하군, 히로마사는. 신경 쓰지 말고 거기서 기다리게나."
- '여전히 인기척이라곤 없는 집이로군.'
"다 구웠네."
"미안하군, 세이메이. 마시세!"
"오오, 다 구웠구나. 마시세."
풋!
- "자네가 식신한테 시키라는 말에 혹해서."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세이메이..."
"화내지 말게, 히로마사. 나도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몸이 하나라 힘에 부친다네."
- "지금도 실은 걸리는 일이 하나 있어서, 조사를 시작했더니 관둘 수가 없지 뭔가. 하지만 자네가 왔으니 안 마실 수가 있나."
"자네는 진짜 세이메이가 확실하지?"
"확실하네."
"아까 나를 맞이한 건 자네였나? 버섯을 구운 건?"
"나야. 그렇다고 했잖나. 버섯은 식신이 구웠고."
"상처받았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내가 나라고 했을 땐 나네."
"알게 뭐람."
- "듣고 싶나?"
"듣고 싶군."
"도읍에 걸린 저주에 관한 거네."
"도읍에? 헤이안 도읍이 저주에 걸렸단 말인가?"
"놀랄 것 없네. 보통 도읍을 정하는 자는 도읍을 온갖 악질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주술을 펼치지. 일반적으로 도읍의 사방을 성수로 수호케 하는 사신상응의 주술이란 게 있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르면, 북쪽엔 산이 있어 현무가 살며, 동쪽엔 강이 있어 창룡이 살며, 서쪽엔 큰길이 있어 백호가, 남쪽엔 큰 연못이 있어 주작이 산다네. 그런 땅이 도읍으로 바람직하지. 이 헤이안 도읍에도 그것은 있다네. 북쪽 현무가 후나오카산, 동쪽 청룡이 카모강, 주작은 오구라 연못, 백호는 산잉, 산요도. 또한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에 해당하는 히에이산에 연력사를 두어 귀문을 봉인하고, 북쪽은 귀선신사(貴船神社)와 안마사(鞍馬寺)로 봉인하고 있지."
"그 얘기라면 예전에 나도 들은 적이 있네."
"현재 나도 여기서 궁궐의 귀문을 봉인하고 있지."
"부... 분명히 여긴 궁궐의 간(동북)... 그... 그렇군. 대... 대단해."
- "그럼 궁궐은 겹겹이 철벽 같은 수비를 받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뜻이지? 다행이군. 마시세."
"그렇긴 하네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네."
"무슨 소린가? 날 불안하게 하지 좀 말게."
"쉽게 말하자면 이 헤이안 도읍을 정한 칸무란 사내는, 음양도에 심취했달까 음양도와 관련이 깊은 신선 사상에 심취했달까, 즉 그쪽 방면에 민감한 사내였지."
"아니, 천황을 감히 사내라고 부르다니."
- "보여주지. 내가 옮겨온 것이 있네. 이게 후지와라네. 여기도 다양한 주술이 걸려 있지만 형태를 좀 보게. 사방육조의 장방형 도읍의 약간 북쪽에 정방형의 대궁궐이 있지. 그리고 이쪽이 바로 헤이안이야. 동서로 팔방, 남북으로 구조, 그리고 북변, 열두 궁성문을 지닌 대궁궐."
"이봐! 세이메이, 이건 좀 다르지 않나? 대궁궐은 북변을 지나 북단과 일조로까지일 텐데."
"현재는 그렇지만 이건 칸무 천황이 궁을 지었던 당초의 것이라네. 이 저택 남쪽 토어문대로도 칸무 천황 시대엔 일조대로라고 불렸지. 그리고 대궁궐은 정방형이고, 일조로 이북 북변은 공터였다네. 그러면 대궁궐 내 보의 비율은 사종오횡이 되네."
"흠, 그래서?"
"히로마사, 이건 구자 주법이네. 구자 주법이란 원래 대륙의 신선수행 중에 신산을 헤치고 들어가는 수행자가 신선의 가호를 빌며 호신을 위해 외우는 주문이지. 우리나라엔 밀교 주법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네. 임(臨), 병(兵), 투(鬪), 자(者), 개(皆), 진(陳), 열(列), 전(前), 행(行)이란 주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전쟁에 임하는 병사, 싸우는 자 모두가 진열을 갖추어 앞으로 나간다는 의미지. 이건 태가에 전해지는 구자 주술이네. 언가에는 전쟁에 임하는 병사, 싸우는 자 모두가 진열을 깨고 앞으로 나가라는, 적을 쳐부수는 주문으로 변해 전해지고 있지."
- "음양도에서는 주작, 현부, 백호, 청룡의 네 신과 구진, 제태, 문왕의 신선, 삼태, 옥녀의 성신의 이름을 주문으로 외우지. 외우면서 사종오횡의 인을 끊지만, 주로 산시(山尸), 귀(鬼), 즉 악귀와 요괴를 쫓는 주문으로 쓰이고 있네."
"세상에. 대궁궐에 그런 주문이 걸려 있다는 건가?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자네 모친의 조부이신 소선공 후지와라노 모토츠네 님이시지."
"뭐? 호리강의 증조부말인가?"
"모토츠네 님은 일찍이 극락사를 세울 만큼 총명하고 그쪽 방면에 해박하신 분이지. 조사해 보니 대궁궐은 죠간 18년(서기 876년)에 극심한 화재로 대극전 등이 소실됐고 북문까지 불타버려서..."
- "모토츠네 님은 간 5년(서기 863년) 27세 때 좌중장이며 우중장인 후지와라노 츠네유키와 함께 신천원에서 어령회의 제주를 지내셨지. 그건 반역을 이유로 죄 없이 처형된 사자들의 영혼을 위로, 진정시키기 위한 제로, 도읍 사람들이 신천원에 모여 아악료 등에서는 춤, 스모, 잡기, 말 타기 등이 실시되었으며, 그때 모셔진 영혼이 다름 아닌 칸무 천황으로 하여금 나가오카를 버리게 한, 어머니가 같은 형제 악령의 우두머리인 사와라 친왕 등 6인의 영혼이었지. 모토츠네 님은 그때 당연히 칸무 천황과 사와라 친왕과 나가오카에 대해 조사했음에 틀림없어. 나가오카 궁의 설계를 보면 구자 비밀 주문을 알아챘을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헤이안 도읍에 신선 사상의 구현을 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 "왜냐하면 대궁궐에 사종오횡을 실시했을 때 모방했다는 장안의 수도를 능가할 수도 있으니까. 계획대로만 된다면 세계최강의 도읍이 되는 거지. 게다가 도읍의 위치는 장안의 정동쪽, 당나라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지. 후지와라 가문으로서는 완벽한 조건이었지."
"세이메이, 흥미진진한 얘기로군."
"그렇지. 칸무 천황은 물론 모든 것을 고려하여 도읍을 정했겠지. 눈치를 챈 모토츠네 님에게는 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주문으로 보였을 테고. 당나라는 둘째치고 악귀, 요괴로부터 도읍을 완벽하게 지키는 주문을 안다는 것은 후지와라 가문의 번영으로도 이어질 일이지."
-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어. 지금도 요괴는 횡행하고 재앙도 줄기는커녕 늘어만 가."
"왜지? 이상하잖아."
"그건 말이네. 구자의 비밀주문은 원래 신산에 들어가기 전에 수행자가 외우는 주문이기 때문이지. 즉 신산에 오른다는 것은, 몇 겹의 이계를 넘어 정점에 달하는 것이야. 구자의 비밀주문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주문이지."
"모르겠군. 다른 세계란 뭔가?"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몇 겹의 세계가 겹쳐져 생긴 거나 마찬가지지. 마치 이 종이를 겹치듯이 말이네. 그리고 각각에 속하는 세계란 정해져 있지. 우리가 현재 사는 도읍의 세계, 그 위에 귀신들이 사는 세계. 그것들은 보통 상태에선 섞이지 않지. 하지만 어떠한 주문으로 말미암아 출입구가 열렸을 때, 혹은 섞였을 때 같은 세계에서 다른 세계에 사는 자들끼리 만나게 되지. 오른손과 왼손의 손가락이 어떤 위치에서 서로 얽히듯이."
-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스승이신 타다유키 님이, 주작대로에서 백귀야행과 맞닥뜨렸을 때 스승님은 구자의 주문을 써서 동행하던 우리들을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셨지. 귀신들은 우리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우리를 찾아내지 못했어."
"대체 뭔가, 세이메이? 그 구자의 비밀주문이란 게 도대체 뭐야?"
"즉 구자의 비밀주문이란 악귀악령을 쫓는 주문이 아니라, 다른 층,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주문인 거지. 즉 대궁궐을 사종오횡으로 만듦으로써 다른 층,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버린 거야. 도읍은 평면적으로는 사신상응의 주문이나 귀문 봉인으로 지켜지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대궁궐의 다른 세계 간은 구멍투성이야. 게다가 평면적으로는 봉인돼 있기에 귀신들은 도읍 밖으로 나갈 수도 없지. 빌어먹을 악귀악령이 횡행할 따름이지."
- "그게 사실은... 나리히라 녀석이 주상께 거짓말을 하고 여자한테 간 거거든. 그날 밤은 보름달 밤이라 그 달을 바라보며 청량전에서 작은 시가 향연이 열렸던 건 알고 있겠지. 달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는 달을 노래하기로 했지. 나리히라도 그 시가 향연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네. 그런데 그 친구가 깜박 잊고 여자와 밀회 편지를 주고받고 말았지 뭔가."
"삼중약속이었군. 여자를 택하셨다... 배포가 크군."
-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형상을 기억해 분위기만이라도 얼추 비슷하면 합치할 것 같지 않은 것일지라도 머릿속 한편에 자리를 잡아버리는 모양이다. 영부와 음양도의 자료 속에 있는 구자 기호 "▦"를 봤을 때 주문이나 기호로서가 아닌 x와 y에 의한 좌표로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임, 병, 투, 자, 개, 진, 열, 재, 전'이라 주문을 외면서 좌표를 그리는 걸까! 평면으로도 공간으로도 보이지 않는데...
- <음양사>를 그리기에 앞서 먼저 헤이안 도읍의 스케일을 조사했다. 주작대로, 폭 85m. 난다 긴다 하는 대도적이라도 이 대로를 가로지르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주작대로에서 발 빠르기 경합을 벌이는 자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북쪽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긴 대궁궐, 그리고 남쪽으로 난 넓은 주작대로, 그 좌우로 동시와 서시, 홍려관, 동사와 서사. 왠지 조금 야하다.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북을 밑으로 하면 사람의 얼굴, 그렇게 생각하자. 그러나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대궁궐, 어디선가 본 듯한 비율... 동서로 4개, 남북으로 5개. 그래, 구자의 좌표다. 폭 240m의 배수로 구자를 자르면 딱 맞다. 역시 지나치다...
- 현재 신경이 쓰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모 사의 편집자가 이하라 사이카쿠의 책을 가져왔다.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긴지 몇 초 후 문득 시선이 멈춘 두 줄의 문장. '세계의 모든 남자들은 미인이다. 여자들 중에 미인은 드물다'라고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했다. 그것은 <남색대감>의 한 구절이다. 왜 그런 문장을 몇 초 만에 찾아냈지? 너무 심난하다.
- 또 하나 걸리는 것. 카모노 야스노리의 아우, 요시시게노 야스타네. 그는 음양사 카모노 타다유키의 차남으로 태어나 일찍이 가업을 버리고 문장박사 스가와라노 후미토키의 제자로 들어갔다. '지정'이란 저택에 살며 문예교실을 열어 <지정기>라는 수필도 남겼다. 훗날 출가해 내기상인 적심이라 불린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우치사유>속에서 내기상인은 푸닥거리를 하는 법사 음양사를 보며 '불제자의 몸으로 어찌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업을 짓는가'하며 호통을 치고 있다. 그게 너무 이상하다. 이 인물은 음양사를 싫어한 게 아닐까? 카모노 타다유키의 차남이기도 한 사람이 왜? 야스노리, 세이메이, 야스타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꾸만 심난하다.
- 원작인 유메마쿠라 바쿠 씨의 <음양사>를 읽었을 때도 심난했다. 너무나도 은밀한 정경에 심히 심난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은밀한 세계는 생각도 못해낼 것이다. 이 다음 원작을 가지고 그릴 일이 있다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그때 일본사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다. 4년 정도는 공부해야 하겠는데... 헉, 하지만 <음양사>를 그리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역사 공부를 하는 동안 이 마음이 다른 일본사 통의 만화가로 싱크로 해 <음양사>를 가로챈다면...! 다시금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죽었다 깨어나도 쓸 자신은 없지만, 일단 바쿠 씨에게 이 마음을 전해둬야지. 그 마음은 순식간에 스콜라 편집부 귀에 들어가 즉시 만화화 얘기로 번졌다. 이렇게 기쁠 수가. <음양사>는 내 차지다. 흐흐흐...
- 오카노 레이코
3권
- "사위도 같은 병으로 죽고 말았지. 타다스케의 처도 이미 세상을 더난 뒤라, 아야코와 둘 뿐인 타다스케에게는 각별한 손녀야. 뭐든지 해주고 싶어."
"응."
"그런데 쿠로카와 누시의 정체는 뭘까?"
"글쎄. 잡아보기 전엔 정확히 말할 수 없지."
- "자네 나치의 폭포를 본 적 없는가?"
"있네."
"흐음."
"그게 뭔가?"
"흐음이니까, 흐음이라 한 거네. 흐음."
"알 수가 없군. 뭐가 '흐음'이란 거야? 어째서 북산의 도사가 여색에 빠진 것과, 요시노쿠마노산의 수행자가 나치의 폭포를 보고 수행을 관둔 게 같은가?"
- "삼라만상에 비하면 우리 따윈 하찮은 존재가 아닌가, 히로마사. 하지만 그걸 인정했다고 수행을 포기하거나 저버려서는 안 되지. 분명 우린 삼라만상에 대적하지 못하나 그 삼라만상도 우리에게 대적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걸. 인간이든 삼라만상이든 존재하는 데는 다 의미가 있으니까. 사실은 왜 그때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났을까. 왜 폭포 앞에 나타났을까. 왜 폭포가 여자 거기로 보이는 걸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야만 하네. 그건 왜 지금 이렇게 자네와 함께 우마차에 흔들리며 카모를 거슬러 오르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무슨 의미가 있는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다 의미가 있는 거라네, 히로마사. 사람과 사물과의 만남도, 어떤 지식을 얻는 것도, 사람이 뭔가의 재능에 뛰어난 것도 말이지."
"그럼 타다스케가 가마우지를 길들여 고기를 잡는 재능에 뛰어난 것도 의미가 있는 건가?"
"아무렴 그렇지."
- "아아,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그들 자신이 풀 일이지.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게."
"그러는 자네는 뭔가?"
"풋, 나는 그게 직업이거든."
- "호감 가는 생김새는 아니군."
"뭐?"
"눈썹이 길어. 저러니 손녀의 앞날이 걱정되겠지."
"그렇긴 하지만... 왜?"
"제대로 된 이가 거의 없어."
"이보게. 사람은 인품으로 판단하는 거야. 완고하지만 기개 있는 좋은 영감이야. 혹 그건 아까 그 전조 얘기와 관계가 있는 건가?"
"아니, 그냥 첫인상일 뿐이네."
"..."
- "난 쿠로카와 누시보다도 무서운 사람입니다."
"부디 아야코를..."
"타다스케 님, 잘 들으십시오. 이건 당신이 수달 모자를 죽인 인과응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과 수달 일가와는 그런 인연이었던 거죠. 당신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고, 쿠로카와 누시도 해야 할 일을 한 것뿐.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습니다. 나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그것으로 된 겁니다. 아야코 낭자는 아직 어려 요 몇 달간의 일은 잊고 금세 기운을 되찾을 겁니다."
- "세이메이, 사람이 수달 새끼를 낳을 수가 있나?"
"못 낳을 것도 없지. 사람과 짐승의 인과의 근본은 같으니까. 하지만 걸려 있는 저주가 다르기에 보통은 섞이지 않는 법이지."
"아아아. 쿠로카와 누시가 물고 간 그건, 아야코가 낳은 쿠로카와 누시의 새끼 맞지? 잘 자라기나 할까?"
"글쎄... 뭐 나도 여우 새끼라고들 하니까."
- "히로마사,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게 어디 있겠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거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데는 다 의미가 있는 거라네."
"그건 그렇고 그 약은 뭔가? 타다스케에게 전한 꾸러미는?"
"이거야. 마약이라네. 마의 암꽃이지. 스님들이 자주 쓰는 방도지. 좋게도 나쁘게도 사람을 홀리거든. 하지만 이런 땐 귀중한 보물 같은 거라네. 행복한 꿈이라도 꿀 테지."
"아아..."
- "세이메이, 자네는 따뜻한 친구야."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히로마사?"
"아니... 자네는 따뜻한 남자라구. 음..."
"생뚱맞게 그런 소릴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난감한가? 통쾌한걸."
"흥... 그건 그렇고 자네 꼴이 엉망이군. 어둡길 다행이네."
"그러게. 엉망이군."
- "히로마사, 부탁하네. 동정 따위로 쓸데없이 여자 집에 드나들지 말게. 푸-하하하."
"쓸데없이? 동정? 자네야말로 뭔가?"
"마약 관리차원이라고나 할까. 난 이레 동안 사후 치료를 해줬을 뿐이네."
"으으으음."
"히로마사, 우리보다 약해 보이는 자들은, 사실은 우리가 걱정해줘야 할 만큼 약하진 않아.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강한 면도 있지. 좋은 공부가 되지 않았나?"
- "자네에겐 미안하네만 북을 울리며 걷는 동안, 내 머리 속엔 온통 그 후의 연회 생각뿐이라네."
"히로마사, 연말에 거행되는 많은 제는 다 봄을 맞이하기 위한 주술이라네. 대한 전날 밤 열두 궁성문에 토우동자라는 흙으로 만든 소와 복숭아 가지를 든 동자상이 세워지지. 동서남북 각 문에 청백적흑황색의 소가 놓여지고. 그것도 목화토금수 음양오행에 근거한 '음'기를 쫓고 봄을 맞이하기 위한 주술이라네. 그 궁성의 사각에서 행해지는 진화제도 마찬가지야. 새 불을 지핌으로써 '화'의 기운으로 '금'의 기운을 녹이고 봄의 '목'의 기운을 살리는 거지. 그리고 그믐날 유시에는 물의 더러움을 씻는 오오하라에와 요오리 의식이 행해지고, 그 마무리로 추나제를 지내지."
- "추나제는 음양사가 '악귀', 즉 '음' 기를 퇴치하는 제문을 읽어 '역귀'를 궁성 곳곳에서 내쫓고, 눈이 넷 달린 황금가면을 쓴 방상씨가 창과 방패로 '역귀'를 찌르고, 뒤를 이어 왕경이 복숭아나무 활과 갈대 화살로 쏘아 내쫓지. 죽은 코레마사는 매년 추나제에서 그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상씨를 맡았던 거구였어. 노리유키도 그 다음으로 건장한 거구였지. 방상씨는 보통 대사인 중 덩치가 큰 자가 맡게 되거든. 누군가 방상씨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
- "그래서 짚이는 것이 있어 추나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 난 몰랐었네. 그렇다면... 그렇구나."
'뭐야? 나랑은 상관없었잖아. 겐죠도 스케 공주와 마주친 것도 그냥 단순한 수난이었나...'
- "그 여자는 특히 원한이 많아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거네. 아까 모토가타와 귀신들과 주작 남쪽으로 내려갔네."
- "예전에, 추나제는 한 해의 마지막 축(丑)일에 음기가 극에 달했을 때 지내는 봄맞이 '주술'이라 했지만, 이 소도 극에 달한 '음'을 상징하지. 그래서 이걸 궁성 밖에 두어 겨울의 한기를 내쫓고, 마지막엔 박살을 내어 마무리를 하지."
- "자네, 뭘 태운 건가?"
"양귀비라네."
"그건 마령을 쫓는 액막이로 스님들이 쓰는 방법?"
"하하하하."
- "부적을 좀 붙여두세. 정월 초하루부터 소란을 떨면 곤란하니까."
"그런 게 효력이 있을까?"
"별로 효력은 없네."
"그렇게 대충해도 되는 거야? 자네, 정말 음양사 맞나?"
"히로마사, 음양사는 귀신이 있기에 필요한 존재지."
- "그런데 세이메이, 사실은 자네도 모르는 건 있지?"
"있고말고."
"갑갑하지 않나? 갑갑하지?"
"히로마사, 난 이유는 몰라도 상대가 그걸 '말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알 수 있다네. 그럴 땐 이유를 묻지 않으려 하지."
"자네는 속 깊은 친구야, 세이메이."
"그런가? 가랑눈이로군."
4권
- "아름다운 밤이로군."
[이제 그만 들어가지 그래? 히로마사.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건가?]
"세이메이?"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런. 또 새로운 얼굴이군."
"주인님은 서쪽 별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드리지요."
- "방황이 너무 길었던 것 아닌가?"
- "흐음."
"당나라의 염 승무라고 하면, 비파의 시조라 불리는 돌아가신 후지와라노 사다토시 님의 스승이며 겐죠의 원래 주인이야. 당에서는 비파박사로 통하지."
"대단한 사람이군."
"응. 그 영이 나타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그런데 바로 어제, 주상께서 밤에 홀로 물소 뿔 발목으로 겐죠를 켜고 계시는데, 그림자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내려와 차양에 앉더라는 거네. 누구냐 물었더니 '대당나라의 비파박사 염 승무이다. 연주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나도 모르게 이끌려왔다'라고 하더래. 주상이 겐죠를 내밀자 '이 비파의 원래 주인은 나다, 제자인 사다토시에게 내린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악기를 타고 음악 얘기로 밤을 지새며 주상께 현상과 석상의 비곡을 가르쳐줬다 하네. 참으로 놀라운 얘기 아닌가?"
"음."
"피리의 명수인 아사나리 경에게도 아름다운 얘기가 있지. 언젠가 '육왕'을 불며 퇴궐을 하는데, 달빛이 아름다운 밤에 육조를 지날 무렵 신장이 일척쯤 되는 소인이 육왕 차림을 하고 수레 앞에서 춤을 추고 있더라네. 아사나리 경이 수레를 세우고 육왕을 한 곡 불며 지나가자, 그 육왕은 춤을 추며 동쪽 신사로 들어갔다고 하네."
- "역시, 범상치 않은 음악 소리엔 영험이 나타나는 법이야. 나도 음악을 사랑하는 자로서, 그와 같은 얘기를 들으면 찡 하다네. 그런데 세이메이, 왜 나한텐 그런 영험이 없는 걸까..."
'!'
"그... 그건 말이네. 자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 "동궁 노리히라 친왕의 거처엔 사콘이란 유모가 있었는데, 그녀가 기지를 발휘해 동궁 소속의 무녀를 불러 단지를 되찾았다더군."
"아베노 타카코지?"
"알고 있어?"
"사콘이 적극 추천해 이례적으로 동궁의 무녀가 된 재능 있는 무녀지."
"자네 일족인가? 하지만 입김이 든 단지를 원했던 거면 왜 비향사에 나타나 코레마사 등을 죽인 걸까? 혹 그건 다른 귀신의 소행인가?"
"스케 공주의 짓이야, 히로마사. 들어보게. '요오리 의식'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지난 해의 몸의 더러움을 공물에 옮겨 부정을 없애는 의식이지. 그 공물은 더러움이자 몸의 일부이기도 해. 그것을 가로채 저주를 내리면 효과가 크지 않겠나?"
- "추나제 때 궁궐 안을 돌다가 스케 공주의 원령을 만났는데, 내가 가면을 벗자 기겁을 하며 달아나버렸어. 세이메이,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서운가? 귀신도 기겁할 만큼?
'!'
"... 어떤 의미에선 귀신에게 무서울 수도 있지."
"왜?"
"자네는 멋진 사네니까."
"으으음..."
"히로마사, 다정다감함이나 소박함은 귀신들이 무서워하는 것이지. 귀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야. 다정다감하게 대해주고 약속을 지켜주는데 상대를 어찌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런건가? 난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네."
"그게 바로 자네다운 대단한 면이지."
"그렇구나..."
- "한 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오늘은 꼭 가야 할 데가 있다네. 자네가 올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지. 함께 갈 텐가?"
"내가 같이? 그래도 돼?"
"히로마사라면 상관없지. 자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한둘쯤 있을 거네."
"그렇다면 가세나."
- "그건 그렇고 세이메이, 자네가 아까 다정다감함이나 소박함은 귀신들이 무서워하는 거라 했지?"
"그래."
"말해두는데 난 결코 스케 공주한테 다정다감하게 대한 적이 없어. 그냥 얼떨결에 약속을 하고 말았고, 약속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키는 성격이라서."
"나도 아네, 히로마사. 귀신은 정이 넘치는 사람을 노려. 정이 없으면 파고들 틈도 없는 법이지."
- "뭐? 그렇다고, 난 야박한 사람도 아냐! 자네와는 달라!"
"히로마사, 정은 동요야. 동요는 사람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고, 귀신은 거기를 파고들지. 자네의 순수함엔 동요가 없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 "세이메이. 누가 우리 모습을 보면 뭐라 생각할까?"
"글쎄 모르지."
"도읍에 사는 마성의 인간이 마치 영계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일 테지."
"사실이 그렇다면 어쩔 텐가?"
"겁주지 마, 세이메이."
"자네도 알다시키 온 궁궐에 내 어미가 여우라는 소문이 파다하지. 당상인들 중엔 내게 꼬리는 없는지 하인을 시켜 미행을 시키는 자도 있다네. 히로마사, 내가 지금 세이메이로 보이나?"
"헛소리 집어 치워, 세이메이!"
"하하하. 하하하하."
"겁주지 말래도. 칼을 뽑아들 뻔 했단 말이야."
"진심인가? 무섭군."
"미쳤어? 무서웠던 건 바로 나야!"
- "난 진심이란 말이네. 진짜 요물이라면 아무리 자네라도 칼을 뽑을 수밖에 없을지 몰라!"
"저런. 하지만 요물에도 종류가 많지. 사람에게 화를 입히는 것도 아닌 것도 있거든."
"마찬가지야!"
- "안심이 되는군."
"안심이 돼?"
"자네는 소박하고 순수하지만, 요물의 대부분은 상식이 통하는 놈들이 아냐. 그럴 땐 가차없이 베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지. 부탁하네."
"세이메이, 부탁하고 싶은 건 나라구. 아까처럼 날 겁주지 말아주게. 난 자네를 좋아해. 자네에게 칼을 들이대고 싶진 않아! 하지만 자꾸 겁을 주면 무심결에 칼에 손이 가고 말 것만 같아. 그러니 세이메이, 너무 겁주지 마. 정녕 자네가 요물이라 할지라도."
- "만약 정체를 밝혀야 한다면, 천천히 해주게나. 그러면... 침착할 수 있을 거네."
"... 미안했네."
- "명심해, 세이메이. 설령 자네가 요물이라 할지라도, 나, 히로마사는 자네 편이야."
"자넨 정말 멋진 친구네."
- "좌대신 마코토 님이라... 관현악에도 뛰어나시다 들었는데... 엇, 세이메이? 수레 소리가..."
"알아차렸나?"
"알아차렸냐니? 세이메이, 이 수레는 가고 있는 거야? 서 있는 거야?"
"잠깐. 보는 건 좋은데 뭘 보든 결코 소리를 내서는 안 되네. 자칫하면 누군가가 보러 올지도 모르네."
- "또 겁주는 건가? 세이메이."
"겁을 주는 게 아냐."
"귀신이 오는 거야?"
"귀신은 아니지만 귀신이기도 하지."
"오면 어쩔 건데?"
"내 모습은 안 보인다네."
"내 모습은 어떤가?"
"아주 뚜렷하게 보이지."
"그럼 난 어떡해? 존승다라니도 외울 줄 모른단 말이야!"
"걱정말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 "다가오는 놈이 기(己)이니 흙의 정령이겠군. 이 놈은 아마도 자네에게 인간의 몸으로 왜 이런 곳에 있냐고 물을 거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게나. 전부터 전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용한 약이 없냐고 친구에게 물어보자 우울증에 효험이 있다는 약초를 주었습니다. 그건 미치광이 풀을 말린 것으로 달여서 세 잔 정도 마시자,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여기 넋이 나가 앉아 있지 뭡니까. -라고 대답하게."
"알았네... 그러면 되는 건가? 또 다른 걸 물으면? 미치광이 풀이란 게 뭐지?"
"무슨 말을 물어도 같은 답만 되풀이하면 돼."
"정말 그러면 되는 거야?"
"그렇대도."
똑똑.
- "명심하게, 히로마사. 이제 밖으로 나갈 텐데 자네는 내 곁을 떠나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되네. 만일 말을 했다간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못 하겠다면 우마차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순 없지. 자네가 입을 다물라면 개가 창자를 물어뜯는 한이 있어도 입다물고 있겠네."
"좋아. 다녀오마, 아야메."
- "우리 가문의 선조는 아메노오시오히노미코토이시다. 대황제가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돌 화살 통을 지고 큰 칼을 차고 검붉은 옻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옆에 끼고 천자 앞에서 지휘하셨고, 대부 히오미노미코토와 함께 진무 천황의 동천을 추종해 야다가라스의 뒤를 좇아 산을 넘어, 케이코 천황의 대에 오오토모의 성을 하사 받았다. 카네무라는 부레츠 천황을 모셨고 그의 아들 이와와 사데히코는 바다를 건너 멀리 신라와 고려에서 용맹을 떨쳤고, 임신난 때에는 텐무 천황을 모셨다. 우린 유라쿠 천황 때부터 대대로 금문 수호의 명을 받아, 내병이라 불린 가문이다. 대역죄라니 당치도 않다."
"하지만 후지와라노 타네츠구의 암살을 꾀해 그대 조부인 츠구토는 처형되고 아버지 쿠니미치는 사도로 유배됐지."
"크으윽. 그래서 난 유배지에서 태어났다."
- "난 사람들로부터 천재라 불렸다."
"그렇다. 아버님은 천재시다. 뭐든지 알고 계신다."
"토모노 나카츠네는 어서 나와 황명을 받들라!"
- "여긴 자네 집의 서쪽 별채가 아닌가?"
"음. '북변 대신'이라고도 불렸던 좌대신 미나모토노 마코토 님이 사셨던 곳이지."
"뭐? 그럼 이 쟁은 마코토 님의 연주솜씨?"
"음. 얼마 전부터 들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네."
"그랬구나... 그래서 아까 자네 집에서 병사에게 포위당하는 꿈을 꿨었구나... 이게 마코토 님의 쟁 연주로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내는 자가 반역을 꾀했다니...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그렇겠지. 입장이 다르면 생각도 다른 법이지. 어쨌든 나야 잘 알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중에 악인은 없는 법이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이렇다니깐."
"왠지 술 생각이 간절하군."
"서쪽 별채에서 쟁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아볼까?"
"좋아."
- "잠깐만, 세이메이. 서쪽 별채로 가는데 꼭 동문까지 돌아가야 하나?"
"당연하지."
"고개를 돌리면 서쪽 별채로 돌아가게 할 순 없나?"
"그건 혼령 세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이 세상, 즉 인간 세상에선 그리 간단한 일은 아냐."
"세이메이, 자네는 쉽게만 사는 줄 알았는데."
"하하하..."
- "내 나이?"
"자네는 젊어 보일 때도 있지만, 가끔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일 때도 있어. 그런데 실제로 너무 어리면 억울하잖아. 특히 오늘 같은 자네를 보고 있으면 나이를 감을 잡을 수가 없다네. 나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일일이 신경쓸 필요 뭐 있는가."
"필요 있어. 대충 짐작만이라도 가게 해줘. 주상과 비교해서 주상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그래. 주상보다는 위일 거네."
"그렇구나. 그럼 나랑 비슷하구나."
'...'
"히로마사, 깜짝 놀랐네."
"왜? 나랑 나이가 비슷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일로 놀라봤자 하나도 안 기뻐."
"아니, 나이 얘기 말이야. 오늘 밤에 올 손님 얘기인 줄 알았거든."
"손님? 누가 오는데? 사람인가?"
"그게 말이네. 뭐랄까..."
"혹시 또,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자인가?"
"시들지 않는 꽃이라네."
- "자네, 인어고기에 관해 들은 적이 있나?"
"그걸 먹은 자는 늙지 않게 된다는 얘기?"
"그래... 와카사에서 있었던. 삼백여 년 전의 일인데 그 인어고기를 먹은 여자가 있었지."
"정말 늙지 않아?"
"안 늙지. 심지어 여간 해선 죽지도 않지."
"놀랍군. 그런 자가 정말로 있다니."
"불로불사엔 불로불사의 삶이란 게 있는 법이지. 나이도 들고 죽기도 하는 보통 사람들과 얽혀 살려 하면, 그 몸에 불순한 생명력이 쌓이게 되지. 스승님은 그걸 화사(花蛇)라 부르셨네. 화사는 삼십 년에 한 번은 그 몸에서 쫓아줘야 하지."
"아아."
"내가 그 여자를 만난 건, 삼십 년 전 비구니 차림의 그 여자가 스승님인 타다유키 님 댁에서 화사를 쫓을 때였네."
- "설마... 히로마사, 나가봐야 할 때가 됐네. 미안하네만 그 칼을 들고 함께 가주겠나?"
"가긴 가는데, 손님은?"
"안 와!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네. 찾아내서 화사를 쫓아줘야만 해.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할 텐데..."
- "그 화사를 쫓지 않으면 큰일나나?"
"몸에 쌓인 화사는 몸을 잡아먹고, 그녀 자신도 귀신으로 변하고 말지."
- "아니, 가겠네. 이 칼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럼 나도 필요하단 뜻이겠지. 다만 부탁이 있네."
"뭔가?"
"자네, 내 모습을 한 식신도 만들 수 있나?"
"못 할 것도 없지만."
"식솔들이 걱정하면 안 되니 악기라도 연주하고 있게 해주겠나?"
"사흘 정도 화금이나 뜯게 해볼까."
"잠깐. 날마다 바꿔주게. 비파와 피리로... 악기 연주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러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네."
"알았네. 하츠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 "뭐야, 마음만 먹으면 내 식신도 만들 수 있잖아? 대단하군."
"삐쳤는가? 히로마사."
"삐치기는 무슨."
- "단... 내가 검을 뽑으라 하기 전까진 뽑지 말아주게. 내가 베라 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주게. 부탁하네."
"음... 알았네."
- "그건 대체 뭔가?"
"'나우대명신고문'이란 축문이네. 코야까지 올 생각은 없었기에 갑작스레 이것밖에 준비하지 못했지."
"그렇게 미덥지 못한 물건인가?"
"천만에. 극진히 읽으면 천변지이를 일으키고도 남을 물건이지."
"세이메이 님, 아마노 신사에 도착했습니다."
"가세나."
"음."
'귀신 얘기만 나왔다 하면 힘이 들어가니 천직이 따로 없군.'
- "제 몸은 샘물. 감로와 감로끼리 싸운들 끝이 나지 않습니다. 어서 깨끗이 하지 않으면, 신사의 주인이 분노하실 겁니다."
- "세이메이 님."
"오랜만이오."
"이렇게 흉측한 모습을 보여,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소. 삼십 년 전에 만났을 때 그대로요."
"세이메이 님이야말로, 이십 년 전과 똑같으십니다."
"..."
'뭐...?'
- "비구니, 난 기다리고 있었소. 그대에게 화사가 쌓이는 것은 그대 자신이 이유였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어떤 자도 그대를 건드릴 수 없었을 텐데. 그깟 삼백 년이 뭐기에."
"어쩜... 처음 뵀을 때, 당신은 어린 아이였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절 죽여주실 분이라 여겼던 당신이 제가 기다리던 절 살려주실 분이셨군요."
"내가, 말했잖소."
"용서하세요, 세이메이 님. 이제 이 몸은 갑니다."
- 니우츠히메 신사. 와카야마현 이토군 카츠라기마찌 카미아마노에 소재. 아마노 대신사라고도 불린다. 홍법대사 쿠카이가 코야산 수행원 중 하나로 금강봉사를 창설하면서 신사의 제신으로 니우츠히메 신과 코야 태자대신의 두 신을 코야산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쿠카이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기록한 <어유고>안에는 니우츠히메 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뒷산에 니우츠란 이름의 여신이 있다. 그 신사 부근에 열지기 정 도되는 저습지가 있는데 사람들이 오는 족족 상해를 입는다. 바야흐로 내가 코야산에 오르는 날에 신을 모시는 자에게 부탁해 다음과 같이 고하게 했다. '나는 신의 길을 가는 자로 오랫동안 뛰어난 복과 덕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
- 신사 북쪽, 키노강을 따라 중앙 구조를 띄며 신사는 우뚝 솟은 고생대의 지층 위에 서 있다. 그 지질 구조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예로부터 신사에 전하는 축문 '니우명신고문'은 실로 놀랍다. 또한 대신사 내에 있는 거울 연못에는 옛날 대신사에 참배하러 왔던 와카사 국의 야오비구니가 팔백 살을 먹고도 연못에 비친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와카히루 여신의 거울을 물속에 던져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와카사는 회춘의 물이며 니우는 수은이다. 이 두 가지는 불로장생과 깊은 관련이 있어 흥미롭다.
- 칸에이 4년 5월 거울 연못의 흙을 파내자 연못 바닥에서 일보경이 발견되었고 같은 해 6월에 제자리에 두어 보존했다. 그 후 타이쇼 시대에 연못을 개수할 때 거울은 다시 납골 항아리 같은 단지에 동 거울이 겹쳐진 상태로 발굴되어 현재는 대신사 내 수장고에 고이 보존되어 있다.
- 원작자인 바쿠 씨만 허락한다면 '불로불사의 비구니'를 이 세상 모든 샘물에게 바치고 싶다.
- 오카노 레이코
5권
- "좀 도와주게. 이런 꼴론 집에도 못 가."
"이런, 소금이 달라붙어 있군."
"염탕이야!"
"유목 냄새도 진동을 하는군."
"부동호마야!"
- "어딜? 무슨 일인가?"
"그게 말이네... 간밤에 갑작스럽게 부탁을 받은 거라서... 이유는 자네가 와주면 말해준다더군. 웬만해선 내게 부탁을 할 만한 분이 아냐. 한 장래가 촉망되는 분에게 신변상의 위험이 닥쳐서 의논을 하고 싶다고 하네."
"하필 왜 나지?"
"나와 자네의 사이를 알고 있거든. 물론 신변상의 위험이란 귀신에 관한 일이야."
"히로마사, 그 정도로는 날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으으음... 난처하군..."
- "사실은 오늘 자네를 '데려간다'고 약속을 해버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사연을 듣고 올 걸 그랬군... 묻지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고 얼떨결에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네."
"혹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귀족 집안의 여자인가?"
"으으음... 못 들은 걸로 해주게. 서경에 살고 있는 내 사촌 누님이야."
"..."
"역시... 안 되겠나?"
"아니. 다만, 자네 사촌 누님에 관해서는 들은 기억이 없군."
"가줄 텐가?"
- "그런데 세이메이. 그러면 못 써."
"뭐가?"
"마쿠즈 말이야."
"아아... 깨어나서 내가 없어진 걸 알면 또 토라지겠지."
"넓은 저택에 떨렁 혼자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너무 무심하네. 어린 여자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잘도 돌아다니는군"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식신이라도 붙여두든지."
"마쿠즈는 식신이라면 질색을 하지. 간섭 당하는 게 싫은 가 봐. '혼자가 좋아. 최악의 상태가 재미있어.' 이러더군. 결론은 혼자서 노는 걸 좋아한단 소리지."
"최악의 상태가 좋다고? 그래서 혼자 저주 인형놀이를 하는 건가?"
"그렇지. 멍청하게 결계 안에 걸려드는 먹이를 기다리는 것도 같고."
'자네 같은...'
- "호오... 식신도 쓸 줄 아는군."
"하지만 세이메이, 법사란 나름대로 엄격한 수행을 한 자들이지. 수행자나 성인에 얽힌 아름다운 얘기들이 얼마나 많다고. 생황의 석실에 틀어박혀 수행을 하던 스님에게 푸른빛의 옷을 입은 동자가 감로를 들고 나타났다거나, 향의 연기를 타고 하늘로 오른 대사의 얘기 같은 거 말이야.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난 괜스레 찡 하다네. 어쩌면 난... 이렇게 매일 악기나 만지고 밤낮으로 술만 퍼 마시며 살지만... 나도 수행을 해야 하는 몸이 아닐까..."
"이봐, 히로마사! 수행자란 모름지기, 그 사람 본연의 인간... 아니, 혼의 형성 단계에서 부족한 것이 있기에 수행이나 고행을 하는 거지. 미완성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 수행자들의 기행에 얽힌 얘기에 솔깃하지 말고 잠자코 고행을 하게 내버려두게. 그게 피차 미완성인 자들끼리의 배려라고 하는 거라네."
- "기본적로 수행을 하고 안 하고, 주술을 알고 모르고는 차이가 없네. 제각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
"하... 하지만."
- "이런, 눈이 마주치고 말았군. 무서워라."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걸. 역시 자네, 같은 업종의 사람에게 적의를 품고 있군."
"적의는 무슨... 하지만 믿지는 않지. 믿을 만한 자가 여간 해선 없거든. 수행자니 술사니 법사니 떠들어대는 자들만큼 수상한 건 없지. 나도 포함해서 말이야."
- "부탁하는 자의 착각을 이용해, 상대를 속이는 도둑놈들이야."
"중이라고 다 믿을 수야 있나."
"히에이나 코야의 중들은 오히려 혈통 좋고 학식 좀 있다고 세상물정 모르고 설쳐대는 무례한 놈들이지. 설령 귀신을 부리든 법술을 쓰든, 어차피 인간이야. 구린 놈은 본색을 부정할 수가 없지. 그 세계에서는 필요한 존재니까. 다 그런 거네. 그건 그렇고 대낮에 거리를 거니는 것도 오랜만이군. 까맣게 잊고 살았네."
- "아수라장이 따로 없군. 어둠 속의 온갖 귀신들, 악귀들, 악령들이 내겐 훨씬 이해하기 쉽지."
"자네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내 가치관이 흔들리는군."
"그런가?"
- "잠깐. 그쪽 길로 가세나."
"길을 바꾸면 토시히로가 우릴 못 찾아."
"걱정 말게. 그 녀석이라면 찾고도 남네."
- "토시히로. 수레는 어떻게 됐느냐?"
"죄송합니다.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기는 했는데, 대궁대로를 지나는 도중에 소납언 카네이에 님의 하인들과 형 카네미치 님의 하인들의 승강이에 말려들어, 수레가 꼼짝도 못하게 됐습니다."
"뭐야?"
"길을 바꾸길 잘했군. 우리도 말려들 뻔했지 뭔가."
- "재미있군. 자네 사촌 누님 집에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군."
"재미있어?!"
"뻔한 거 아니겠나? 이건 우리가 갈 필요가 없든지 우리가 가면 곤란하든지, 둘 중의 하나란 소리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
"그래서 가겠는가? 말겠는가?"
"물론 가고말고."
- "소문이 자자한 음양사, 세이메이를 꼭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선, 식식을 마음대로 부리고 그 방면엔 도가 튼 달인이라고 두려워들 한대요."
"여자들 사이의 소문으로는 귀신을 쫓은 다음에 꼭 사후관리를 해준다던데... 어떤 사후관리일까...? 궁금해 못 살겠네. 우후후."
"어머, 이시미도 참... 오호호호호."
"그런 수상쩍은 자가, 돌아가신 다이고 천황의 손자이신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니."
"히로마사 님이라면 남녀 사이의 '은밀한 일'에 둔하기 짝이 없기로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그런 분이 그런 쪽엔 도가 튼 음양사와요...?"
"히로마사 님은 낭만이 있는 전상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쉬운 이별의 아침을 고하며, '아... 님이여... 이 소매에 묻은 하얀 구슬은?' '이슬은 이별의 눈물이오.' '아아, 사랑하는 내 님이여...' 소매를 적시고 있을 때에도 피리를 안 놓는다질 않나."
- "왜 삐딱한 거야? 세이메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상대 남자가 카네이에 님이라서?"
"..."
"아무리 이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집안이라 해도, 백귀야행은 물리쳐도 열병까지는 못 물리칠 수도 있잖아. 나리 공주는 그걸 걱정하는 거야. 자신의 집으로 오는 도중 백귀야행을 만난 남자가 걱정은 되지만, 드러내놓고 찾아갈 수도 없기에 우리에게 부탁을 한 거야. 그런데 자네는 매정하게 뿌리쳤어. 그러고도 음양사라 할 수 있나? 정말 자네는 너무 매정하네. 귀신은 물론 사람에게도 말이네. 하다못해 남의 얘기를 들을 때만큼은 걱정스러운 얼굴도 못 하나?"
"히로마사. 의뢰인 앞에서 설사 생전 처음 보는 듯한 것을 보더라도, 놀란 기색을 드러내선 안 되네. 난 스승님께 그렇게 배웠네. 그건 음양사의 예절이지. 그리고 내가 항상 냉정한 건 직업병이라네. 악귀, 악령, 귀신을 대할 땐 적이 돼서도 아군이 돼서도 안 돼. "
- "내 마음의 동요는 상대의 동력원이 되는 법이지. 제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야. 반드시 내가 염원을 이루겠다는 둥 반드시 악귀를 제어하겠다는 둥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는 건 오히려 위험해. 하물며 정 따위를 주면 적의 함정에 빠지는 거지. 귀신의 힘이 날 이기면 귀신에게 말려들어 이용을 당해. 반대로 귀신이 약하면 나 자신이 자아내는 망상에 휘둘릴 수도 있네."
- "본래 제사란 여차여차 이런 제사를 올리니 이걸 어떻게 좀 해달라, 이건 좀 막아달라는 식의, 인지를 초월한 힘에 대한 계약과도 같은 것이지. 내 의도대로 일을 움직이고 싶다면, 신은 물론 귀신, 악귀, 악령을 대할 때 이 몸은 항상 중립을 지켜야만 한다네. 가능하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면, 설사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 몸은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 있지. 이건 귀신을 부리고 어둠을 장악하기 위한 음양사의 철칙이란 거네."
- "난 온건파지. 무모하게 덤비진 않아. 히로마사, 내게도 목숨은 아깝다네."
'으으으음...'
"그 정도로, 카네이에 님은 위험한 건가?"
"..."
- "나리를 걱정해서, 이 편지를 나리께 전해드리라 했습니다."
"엥?! 아베노 세이메이?!"
- "그러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군."
- "으으음... 심려를 끼쳤구려. 히로마사 중장. 미안하게 됐네. 세이메이에게 잘 전해주게나. 이 카네이에는 세이메이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고 있다고..."
- "올 필요 없다지?"
"그래. 다 자네가 말한 대로였어. 미안하네, 세이메이."
"뭐가 말인가?"
"자네를 매정한 친구라고 미워할 뻔했네."
"신경쓰지 말게. 카네이에 님의 뇌물이나 한 잔 맛볼까?"
- "물론이네. 내가 가면 거짓말은 들통이 날 테니 일을 크게 벌여 카네이에 님에게 망신을 주려던 꿍꿍이였지."
"... 아무도...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
"토키 공주님이 알려주지 않았나."
"뭐? 토키 공주가?!"
"오중장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님의 얘기를 해서, 은근슬쩍 카네이에 님의 일은 거짓이었다고 암시를 준 거야."
"뭐?!"
- "그 귀신에게 여자를 잡아 먹힌 남자의 얘기는 돌아가신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님의 얘기야. 근래에 궁궐에서 유행하는 책을 아직 읽지 않았나? '이세 이야기'라는 책인데 무척 재미있다네. 사실 그 얘기는 그게 끝이 아니지. 여자의 이름은 타카이코이고, 장차 황후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공주라네. 사실은 나리히라 님은 여동생이 납치당한 사실을 안 공주의 오빠에게 추적을 당한데다, 폭풍우까지 만나 공주를 빼앗기고 말았지. 아침이 되어 보았더니 숨겨놓았던 공주가 사라지고 없었지. 나리히라 님은 땅을 치며 원통해했지만, 나리히라 님의 체면에 빼앗겼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귀신에게 잡아먹혔다고..."
"아아..."
"이슬의 시까지 지어 애절한 비련의 이야기로 둔갑을 시킨 거라네."
"하나같이, 지어낸 얘기였군... 왜 진작 내게 말해주지 않았나?"
"휴우..."
'농락당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까?'
- "무슨 일이야?! 세이메이. 화... 화살이 아닌가!! 어떻게 여기에 화살을 쏘아 넣을 수가 있지?!"
"사물에 대한 결계는 쳐놓지 않았거든."
"아직 이 부근에 있을지도 몰라."
-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자네가 가면 가장 곤란한 건, 바로 카네이에 님 본인 아닌가?! 하지만 난 이미 카네이에 님을 만나고 왔어. 카네이에 님 말고도 백귀야행을 만난 일이 거짓말임이 탄로나면 곤란한 자가 또 있나?"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어지는 법이지. 어쩌면 거짓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지도 몰라.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걸."
"세이메이."
"거기서 기다려주게.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 "세... 세이메이? 언제부터 거기에?"
"이 화살을 쏜 장본인에게 돌려보내려고. 활을 쏘아주게, 히로마사."
"나... 나더러 쏘라고? 어떻게 하는 건데?"
"자네 화살 되쏘기를 모르는가?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쏘아주게. '이 화살은 아메노마카고 화살이며 아메노하하 화살이다. 이 화살을 내 집에 쏘아 넣은 자는 이 화살로 인해 화를 입으리라.' 히로마사, 이 방향이네."
- "분명히... 공주님이 홀로 밤을 지내신 날은, 이 날밖에 없긴 했죠."
"이... 이게 그 정도로 뛰어난 시인가요?"
"네?"
"위험한 장난도 할 줄 아는 바람둥이 같으면서도, 보잘것없는 음양사라는 입장을 버리지 않는 게 괘씸하구나."
"공주님, 안 됩니다."
- "간다 안 간다 변덕을 부리지 않나. 더군다나 자네는 무슨 일이든 설사 머리 위에 벽력이 떨어진들 기필코 해내고야 말겠지. 늘 나만 난처하지."
"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미 모두 필연이지 우연이 아니라네, 히로마사. 뭔가를 하려거나 또는 어디론가 가려다 막혔을 경우, 그건 내가 갈 필요가 없든가 내가 나서면 곤란한 자가 있든가 둘 중 하나지. 그럴 땐 예민하고 주의 깊게 일을 진행하려 애쓰지. 쓸데없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상책이야. 다만 자네가 잊어선 안 될 것은 나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겐 현상의 일부라는 것일세. 내가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움직임으로써, 낭패를 보는 자도 있다는 소리야. 재미있지?"
- '내가 한 게... 시 점인가? 제비 점인가? 공주의 얼굴을 본 순간 무심결에 말이 튀어나왔어. 분명 서조이긴 하나 젊은 나이에 기이하게 돌아가시겠군. 얼떨결에 여의주를 주고 말았어. 역시 대낮엔 돌아다닐 게 못 돼. 되는 일이 없어. 아직도 대낮이군."
"세... 세이메이..."
"! ... 언제까지 그걸 뒤집어쓰고 있을 건가? 밤이 될 때까지 더는 필요 없네."
'진작 말할 것이지.'
- "어디 치토쿠 놈이 뭘 불렀는지 구경이나 할까. 호오... 기예천이라... 놀랍군. '신의 숨결은 나의 숨결. 나의 숨결은 신의 숨결.' 숨결로 다시 날려주마. '이곳에 재앙을 내리는 악귀, 악령들아. 원래의 주인에게로, 썩 돌아가라.'"
'이런 젠장, 이미다케...'
- "아베노 세이메이!"
"딱하기도 하지. 우리에게 기예천을 쓴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을. 히로마사, 이제 됐네. 귀신은 갔어."
(역주 : 기예천. 기예를 수호하는 여신. 시바 신(대흑천)의 발주에서 화생한 천녀라고 하며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다.)
- "찌-잉. 아름다운 곡이야."
"이제 두 형제가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지."
"자네, 대체 뭘 한 건가?"
"귀신들을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냈지."
"그럼 피리는 이제 안 불어도 되겠군."
"아니, 계속 부는 게 좋을 거네. 하츠네, 이걸 카네미치 님에게 드리며 주인님이 요즘 종이가 떨어져 불편해하더라 전하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이봐... 밖에 아직도 뭐가 있는 건 아니지? 세이메이..."
"히로마사, 신에게도 겉과 속, 음과 양의 모습이 있어 변모하곤 하는데, 자네 피리 소리에 아름다운 손님들이 내려오고 계시는군."
- "이세 이야기를 읽었거든."
"아아."
"나리히라는, 멋진 사내야."
"..."
"그리 생각지 않나?"
"그래. 멋진 사내지만, 애처로운 사내이기도 하지."
- "타카이코 님 때문인가?"
"글세.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엉망이었어. 그 남자는 헤이죠 천황의 장남인 아보 친왕의 오남, 나리히라 왕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지. 신적으로 내려간 황손인 자네와 마찬가지지. 그런데 쿠스코의 변으로 조부 헤이죠 천황은 실각하고 죠와의 변으로 부친 아보 친왕은 밀고자라는 오명을 써 출세길이 막히고 말았네. 그 탓에 초관도 못하고 25세까지 머리도 올리지 못했지. 게다가 수려한 용모에 용감하고 명석하고 발군의 노래 솜씨에다 마음씨까지 비단결 같았으니 당해낼 자가 없는 팔방미인이었지. 필시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을 거야. 하다못해 노래 재능이 없다든가 신분이 낮았더라면, 고리타분하게 말고 좀더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군."
"그런 그가 어디서 만났는지 실세 집안의 공주 후지와라노 타카이코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 그 당시 좌대신 후지와라 요시후사가 세이와 천황의 후궁으로 들이려고 애지중지 키웠던 공주와의 엄청난 사건이었지. 나리히라는 후지와라의 딸을 농락해 가문에 먹칠을 하려는 계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 황제의 외척의 자리를 노리던 요시후사는 양자로 맞은 타카이코의 친오빠 모토츠네와 함께 두 사람을 억지로 갈라놓고 말았지. 입궁을 한 타카이코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홉살 연하의 세이와 천황이었네. 자식을 셋이나 낳긴 했지만, 천황은 허구한 날 발가벗은 기녀들과 춤이나 추고 여자에 미쳐 있는 사이 요시후사와 모토츠네가 정치판을 휘어잡는 바람에 27세의 나이에 황위에서 물러났지. 그 다음 천황이 된 요제이 천황은 타카이코가 낳은 사다아키라 천왕이지만, 제 맘대로 주무를 수 없다고 판단한 모토츠네에게 미치광이로 몰려 퇴위 당하고 말았어."
- "세이메이. 내가 어릴 때의 일인데, 요제이 천왕을 뵌 적이 있어.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라 들었지. 그런데 세이메이. 은근슬쩍 얘기를 내게 빗대고 있지 않나? 모토츠네 님은 내 어머니의 증조부시고, 세이와 천황의 후궁인 타카이코 님은 내가 신봉하는 관현인인 사다야스 천왕의 모친으로 두 분 다 내겐 인연이 깊으시지. 난 참 난감하네."
"나리히라 님도 난감했겠지. 그래도 그 남자는, 고리타분한 남자라고 떠들든 팔방미인이라고 떠들든 만엽의 흐름을 이은 예술가야. 우리보다 대담하게 많은 주변의 남여상열지사를 장대한 시로 남겼지. '아리와라노 나리히라의 뛰어난 감수성은 시들어가는 꽃이 빛깔도 없이 향기를 남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나리히라의 시를 키노 츠라유키가 고금화가집에서 평하고 있지. 실로 정곡을 찌르는 평이긴 해. 그러나 나리히라 님의 마음은 잣대가 다른 츠라유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겠지."
- "가치관에 차이가 있는 자가 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법이거든. '생각나는 대로 말해선 안 된다.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만년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지.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은 시로군."
"남의 일 같지 않다니?"
"아니, 나리히라와는 다른 의미에서 말이네."
"도대체 어떻게 다른데? 내게 못 할 말이라도 되나?"
"난감하군, 히로마사. 말을 삼가겠다는 게 물론, 자네에게 못 할 말이란 뜻은 아니네. ... 그러나 때로 난 매우 조심스레 사실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무대 위의 광대처럼 듣기 좋게 큰 소리로 떠드는 자를 따르지."
- "그런 자들은, 아마도 내가 하는 말보다 치토쿠처럼 목청껏 떠들어대는 게 더 그럴싸하게 들리겠지.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야."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 지 모르겠네. 무대 위의 광대가 뭘까...'
"훗. 히로마사, 다른 술도 마셔보겠나? 오늘은 술이 골고루 갖춰져 있네. 골라보게."
- "세이메이 님! 방금 카네이에 님 댁에서 요리마사 님이 선물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래. 동쪽 별채로 옮겨놓거라."
"뭐?"
"이쪽이다."
"조... 좀 전에, 있던 술이 카네이에 님 댁에서 받은 선물이 아닌가?"
"아닐세."
"그럼 누... 누구한테?"
"카네미치 님 댁에서지."
-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거절할 이유도 없기에 받아뒀지."
"자네 앙숙인 두 집안에서 이중으로 받은 거야?"
"듣기 좀 거북하군 그래. 애당초 내키지도 않는 사건에 날 말려들게 한 건 자네라구."
- "이로써 카네이에 님과의 계산도 끝이 났군. 내가 나서지 않아도 해결될 사건이었지. 그래서, 이런 하찮은 일일 땐 두 배로 사례를 받고 있다네."
6권
- "마쿠즈 게 아니라, 내가 요 며칠간 심취해 있던 거네."
"뭐? 자네 거야? 어쨌든 자네가 목공도 아니면서 며칠씩이나 동그라미만 그리고 있었어?"
"히로마사, 그건 말이네. 이걸세."
"아아... 아마노마이 때 쓰는 조멘의 두 볼에 찍는..."
"아니네. 그건 삼파지."
"아... 그랬지. 미안하네."
"이건 태극도라네."
- "당나라의 회남자의 저서 천문훈을 보면, 천지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혼돈무차별의 시대, 태초가 있었다. 태초는 우주를 만들고, 우주는 기를 만들고, 그 기가 청량한 자는 하늘이 되며, 탁한 자는 땅이 된다. 그 하늘의 양기와 땅의 음기에 의한 상승과 하강의 유동이 만물을 만든다. 즉, 이 백과 흑의 구육형이 각각 음양도의 극의의 상승하는 땅의 기운과 하강하는 하늘의 기운을 의미하는 거지."
"대단하군. 이 그림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잇었군."
"히로마사, 아직 감탄하기엔 일러. 사실 이 그림에는 더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거든."
- "우리 음양사들은 천지의 이치를 훤히 깨달아야만 하지. 하늘과 땅의 이치란 즉 음과 양이며, 목화토금수의 오행이란 뜻이지. 오행은 만물의 시작이며 형용은 조화를 돕기에 먼저 이름을 지어 그 이름에 따라 채용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거지."
"이름?!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그 얘기는 조금 있다 하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이름 얘기가 아니네, 히로마사. 지금 한 얘기는 음양료의 교본 <오행대의>의 첫머리라네. 그 교본 속에 오행의 상생에 대해 기술된 부분이 있지."
-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고 하지."
"??"
"즉, 이 그림은 말이네. 이 바깥 가장 커다란 원이 하나, 즉 태극을 의미하며, 중간의 두 원은 음과 양의 양극. 하나인 태극은 둘인 양극을 낳고, 둘인 양극에서 셋인 물체가 생기며, 셋인 물체가 만물을 만든다. 그것은 하나에 의해 점인 하늘이 생기고, 둘에 의해 평평한 면인 땅이 생기고, 셋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이 생긴다는 뜻이네. 종이 위는 평면이라 셋은 표현할 수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태극의 중심을 통과하는 수직선을 그음으로써, 넷, 즉 사시(순환하는 계절), 시간이 생기며... 수직선과 태극 아래의 접점을 중심으로, 양극 두 원의 상하의 선에 접하는 곡선을 그리며 그 모든 접점을 이으면... 이 두 곡선과 태극과의 접점과 수직선과 태극 위의 접점은 태극을 정확히 오등분하지. 정오각형. 즉, 이것은 오행이지. 만물의 형체의 시작인 다섯 성질을 가진 기, 목화토금수가 되는 거네."
- "즉, 목은 불타 화를 만들고, 화는 타서 토를 만들고, 토는 숙성해 금을 만들고, 금은 녹아 수를 만들고, 수는 스며들어 목을 만든다는 오행의 순환상생의 그림이지. 그리고 오행에는 상생 외에 대립해 서로를 죽이는 상극이란 관계도 있지. 그 순서대로 이어가면... 목은 토를 이기고, 토는 수를 이기고, 수는 화를 이기고, 화는 금을 이기고, 금은 목을 이긴다. 그러면 잘 보게. 상극의 그림은, 훌륭한 오망성이 되지."
"놀랍군. 태극이 오망성이 되는 거군."
'뭐가 뭔진 몰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는군.'
"이 오망성에 심취해서, 괘서를 몇 개나 부러뜨렸지 뭔가."
"점치는 일에 쓰는 괘서를? 신성한 물건이잖아?"
"나도 모르게 그만. 같은 길이의 막대 다섯개로 완성되는 거라서 말이야. 자세히 보면 이 별 모양 속에 같은 모양이 여러 개 들어 있지. 길이와 모양이 궁금해서 무심코 신성한 물건을 부러뜨리고 말았네. 왜냐하면, 이 오망성의 모양을 구성하는 선을 짧은 순서대로 이어가면, 이 또한 놀랍게도 소용돌이가 되거든."
"오망성이 소용돌이가 된다고?"
"그래. 태극도 안에는 음양오행과 우주의 소용돌이가 들어 있는 거지. 따라서 양극이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모습도 납득이 가네."
"놀랍군."
"음. 황홀할 지경이지."
- "그래. 또 십이지와 십간도, 오행에 의해 성립 돼. 오행 목화토금수의 음양을 따서,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라고 날에 이름을 붙여 십간(十干)이라 부르며, 하늘에 일이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점을 치며, 그리고 자축을 만들어 열두 달에 이름을 붙여, 땅에 일이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점을 치지. 이건 만물을 만드는 세 형태이지만, 정오각형의 땅의 수인 12면. 희한할 정도의 수의 부호, 10이라는 하늘의 수만 생각해내면 그 깊이에 빠져들지. 다시말해, 천지의 모든 현상의 과거에서 현재의 뒷모습이나 미래까지를 읽어낼 열쇠가 이 태극도 하나에 숨겨져 있다는 뜻이네. 하지만 히로마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뭘?! 자네의 혼잣말을 말인가?! 내가 대체 누구한테 말을 하겠나?!"
"아니, 괘서를 부러뜨린 일 말이네. 음양사 축에도 못 낄 놈이라고 호들갑을 떨 놈이 있을테니."
"... 비밀로 하겠네."
"고맙네."
- "자,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짚어 볼까."
"못 말리는 녀석..."
- "이건 나무를 낳는 봄이 양기가 점차 길어지고 음기가 쇠하는 시기이며, 또 불을 낳는 여름이 양기가 최고조로 길어지고 음기가 가장 쇠하는 시기이며, 쇠를 낳는 가을은 음기가 점차 길어지고 양기가 쇠하는 시기이며, 마지막으로 물을 낳는 겨울이 음기가 최고조로 길어지고 양기가 가장 쇠한다는 오행에 대응해. 각각 식물이 씨앗에서 시작해 씨앗으로 귀결하도록 성쇠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지. 자(子)는 '새 생명'이 종자의 내부에서 움트기 시작하는 상태, 축(丑)은 '새싹'이 종자의 내부에 생겨 아직 자라지 않은 상태라는 식으로 말이네."
- "여섯 번째인 사(巳)는 만물 '번성'의 최고조이며, 일곱 번째인 오(午)는 만물에 '쇠잔'이 일어나기 시작한 상태이며, 열 번째인 유(酉)는 만물 '성숙'이 최고조인 상태. 열두 번째인 해(亥)는 생명이 끝나고 종자 속에 생명이 '내장'된 상태를 표현하고 있지. 그리고 황혼 시 두기 즉, 북두칠성 모양의 끝이, 십이지의 세 번째 초목의 발아를 나타내며, '인(寅)'의 방위를 가리키고 있는 약 이십칠일 간이 인의 달, 즉 정월이며, 묘(卯)의 방위를 가리키는 달이 묘월이라는 식으로 차례대로 열두 달에 이름이 붙여진 거네."
- "인월, 묘월, 진월은 봄철로 목기가 왕성한 계절이네. 지금은 그 진월의 양기가 움직여 번개가 번쩍이고 진동하며, 초목이 성장하는 계절의 끝자락이지. 따라서, 설사 알몸으로 바깥을 돌아다니고 싶어지든 마음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어지든, 조금도 이상할 건 없네."
"... 내... 내가 싱숭생숭하다는 건, 그런 게 아냐."
"하지만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설렌다지 않았나."
"그건 아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술을 마실 때의 얘기지. 지금은 아냐!"
"그래? 그럼 왜 싱숭생숭한 걸까?"
"내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푸른 창공을 유유자적 나는 작은 새의 목소리를 안주 삼아 황홀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자네는, 그걸 안주 삼아 황홀경에 빠져 있기 때문이야."
"아... 그래. 그런 거였나?"
"자네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지 몰라도, 난, 자네가 가끔 내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를 나도 이해할 수 있게끔 얘기해주는 건 알고 있네."
'정말 이상해.'
"하지만 그런 것을 황홀경에 빠져 바라보며, 내가 있는 것도 잊은 듯 혼자서 어려운 얘기를 시작해버리면, 난,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존재인가 까닭 없이 긴장해. 가슴이 두근거린다구."
"그런 뜻이었군. 미안하게 됐네."
"미... 미안해?!"
- "쳇."
"하지만, 히로마사. 당나라의 신 중에 우리나라의 이자나기, 이자나미처럼 나라를 탄생시킨 복희와 여와라는 남녀 신이 있었지.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당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림 속에서 두 사람은 각각 곱자, 즉 컴퍼스와 직각자를 들고 서로 주시하고 있지. 그러니 내가 컴퍼스와 정십이면체를 들고 술을 마신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건 없네. 신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심오해."
'흠...'
- "도원이란 곳은, 지금은 귀족의 별장지가 되었지만 원래는 이름 그대로 복숭아 밭이었지. 장소는 궁궐의 귀문이었네. 귀문 봉인을 위한 도원이었던 셈이지."
"뭐? 또 귀신의 짓인가?"
"글쎄..."
- "그나저나 대납언 타카아키라 님이라면, 서궁에 초호화 저택이 있는데 왜 굳이 도읍의 귀문인 도원 같은 데서 살고 계신 거지?"
"자네의 백부님인데 그것도 모르나? 그 도원의 저택은 구조에 있는 우대신 모로스케 님의 별장이네. 사랑하는 딸 아이미야 님의 부군인 타카아키라 님을 위해 수리까지 해 바치셨지. 자네도 피리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세상사에도 관심 좀 기울이고 살게나."
"뭐야? 난 필률도 불 줄 안다구."
"..."
'흥.'
- "모로스케 님도 못 말리셔. 어떻게 귀신이 득질대는 귀문의 별장 같은 데서 사랑하는 딸과 타카아키라 님을 살게 할 수가 있으신지."
"아직 귀신이라 결론이 난 건 아냐."
"뭐야? 쇠뿔에 호랑이의 하반신이라서 축인 아닌가?! 도원은 궁궐의 귀문 봉인을 위해서라고 자네가 말했잖아."
"그야 그렇긴 하지만 귀문은 귀문일 뿐, 꼭 귀신이라곤 할 수 없지."
"하지만 귀문은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잖아?! 정말 헷갈리게 만드는군."
"히로마사, 귀문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네가 말하는 귀신이 사는 문은 당나라에서 전해진 '산해경'이란 불경에 나오는 거네. 거기에 설명된 귀문이란, 동해에 도사쿠란 산이 있는데 그 산 정상에는 가지가 삼천리까지 뻗은 커다란 복숭아 나무가 있기. 그 동북쪽에 있는 문을 온갖 귀신들이 모여드는 귀문이라고 하며 천제의 칙명으로 신토와 우츠루키라는 형제가 지키고 있었네. 만일 사람에게 해를 끼친 귀신이 있으면 갈대 밧줄로 묶어, 호랑이 밥으로 던졌지."
"..."
"이 설에 의해 히에이산이 헤이안 도읍을 지키는 귀문진호의 영산이 된 거네."
"거봐. 귀신이 모여드는 곳이 맞잖아."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산해경'에 나오는 거네. 이것만으론 귀신이 모이는 '축인'의 설명으론 부족할 테지. 축인은 일반적으로는 귀신과 연관된 곳이라고 꺼려들 하지만, 히에이산은 원래 도읍이 되기 전인 이 땅, 야마시로국에 살았던 하타 씨 일족에겐 성지였지."
- "히에이산에 있는 사명봉, 그게 마치 태가 밀교의 사명보살인양 생각들 하지만, 사실은 도래민족인 하타 씨 일족의 신앙인 도교의 신, 동명군, 남명군, 서명군, 북명군, 사명군을 뜻하며 그 사명봉과 도읍의 서쪽을 흐르는 차크노강의 서쪽 연안 역시 하타 씨와 관련이 깊은 마치오 대신사의 연결 선상에는, 하타 씨와 연관된 카모미오야 신사와 삼주조거가 있는 코노시마 신사가 있지."
- "이 선은 정확히 북동과 서남을 잇는 간곤선이 아닌 동쪽에 가까운 인신선이지만, 그건 이 선이 사명봉에서 하지의 태양이 떠오르는 선이며 그 태양을 숭배하기 위해 삼주조거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선이며, 그 반대로 마츠오 대신사는 동지의 석양이 지는 곳이라네. 하지의 태양인 타다사스산 즉, 히에산 그게 바로 히에이산인 거지. 그리고 물론 이 선상에 궁궐도 자리잡고 있는 거네."
"뭐? 구... 궁궐이 있다고?!"
"물론. 궁궐이 세워진 곳은 원래, 돌아가신 죠구 성덕태자께 오모히카네신, 하타노 카와카츠의 저택이었지. 자신전 앞에 있는 귤나무, 그건 카와카츠의 저택이 있을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 키지마 신사의 삼주조거의 하지의 태양과 동지의 석양을 숭배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문의 방향, 기둥의 각 등 모든 방향에 하타 씨 일족의 성지인 아타고산과 나라비가 구릉, 후지미 신사가 자리잡고 있어."
- "즉, 천도 전인 이 야미시로국 카츠야군이란 곳은 하타 씨 일족의 손에 주술적인 조정이 끝났다는 뜻이지."
"그... 그랬던 거야?!"
"그래. 카와카츠가 빙긋이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군. 주술적 기술에도 빈틈이 없는 하타 씨가 태양을 숭배하는 성지로서 사명군을 한데 모아 제를 지냈지. 내가 걱정하는 건, 부정을 철저하게 꺼리는 방위 '동북', 즉 '간방'이란 뭘 뜻하는 걸까 하는 거네. 음양도에서는 항시 방위인 '공간'과 날과 해와 사계인 '시간'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지. 즉 '공간'에서 말하는 '간방'이란 축과 인 사이인 동북쪽을 가리키며, '시간'의 흐름에서는 '음'의 기운이 최고조인 축과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인 사이, 즉 '음'과 '양'의 성쇠가 끝나는 곳이자 시작되는 곳이기도 해. 날로 치자면 축과 인의 사이이며, 해로 치면 12월인 축월과 섣달인 인월 사이이며, 사계로 치면 겨울과 봄의 사이이지."
- "'역술'에서도 '간방'은 만물이 끝을 맺는 곳이자 시작을 이루는 곳이기에, 만물만상은 '간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그렇다면 '간방'이란 '음', 즉 음기가 최고조인 곳이니 온갖 귀신들이 모여든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 핵심은 이음매야. '음'과 '양'의 이음매이며 '생'과 '사'의 이음매란 소리야. 축에서 인으로의 이행은 재생을 의미해. 죽음이며 탄생이며 환생과 변화의 의미를 지니지. 그렇기에 신성시 되었고 재생의 주술로서 '음'인 귀신을 '양'인 인(호랑이)의 밥 신세로 만들기도 했던 거네."
"아~ 그게 바로 그런 뜻이었군!"
"복숭아는 열매도 모양도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에서 가장 강하고 건실한 기운인 '금'이기에, 변화의 '간방'을 불변불동의 '금'의 기운으로 지키는 거야."
"그렇군! 그럼 귀신은 한 예에 불과했던 거로군! 그래서 자네가 꼭 귀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 거였군. 그럼 이번 타카아키라 님의 일은, 어떻게 된 거지?!"
"어린아이의 손이 나온 기둥이 저택 어디에 있었는지, 자네는 알고 있나?"
"침전 동남쪽에 있는 기둥이라 들었네만."
"음. 동남쪽은 '손(巽)'의 방위로 '목'의 기운이며, 기둥 또한 '목'의 기운이지. 거기에 뚫린 구멍은 '수'의 기운이며, 거기서 나온 어린 아이의 손은 '수'의 기운과, 신체인 '토'의 기운을 포함해. 이걸 오행의 '상생'과 '상극'으로 설명하자면, '수'는 수생목으로 '목'의 기운을 도우며, '토'는 목극토로 '목'에게 먹히지. 이는 목의 기운의 기세를 나타내며, '목'은 '양'의 시작이며 '양'의 번영으로, 결론은, 서조라네."
- "하지만 타카아키라 님은 서조임을 깨닫지 못하고, 변괴로 여겨 화살을 쏘고 말았어."
- "그나저나 히로마사 중장은 몹시 편한 차림새군."
"그... 그게..."
"됐고, 이게 그 문제의 기둥이네."
- "너무하잖아. 이 차림으로 와도 괜찮다고 해놓고선."
"나는 신경 안 쓴다는 소리였지."
- "그거솓 사내아이입니다. 개구리가 나온 후에도 역시 화살을 쏘신 듯한데, 화살을 쏘았다고 뱀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절 부르시기 전에 이미 술사를 부르셨던가, 뭔가 수를 써놓으신 모양이군요."
"으으음..."
"동남쪽 기둥의 구멍에서 어린아이의 손이 나와 화살을 쏘시고, 사람의 손가락이 떨어져 역시 화살을 쏘시고, 개구리가 나와 또 화살을 쏘셨다면, 다음엔 시체가 나올 법도 한데 뱀이 나오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절 시험하시는 것 같지도 않은데."
- "뱀은 손방의 '목'의 기운이지요. 타카아키라 님, 이건 길조입니다. 사람의 손가락이나 개구리는 '죽음'과 '음'의 극치와 연관되는 '토'의 기운이지요. 그 기운이 저절로 호전됐다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뭔가 있었을 터이니 숨김없이 말씀해주시지요."
"이 도원의 제는 내 아내, 아이미야의 아버님이신 우대신 모로스케 님에게서 물려받은 거라네. 모로스케 님은 내 누님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아이미야를 매우 어여뻐하시지."
"하지만 괴이한 일의 원인은 코하기이지 아이미야 님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곤란하다는 거네."
"즉 서조가 아이미야 님이 아닌, 코하기 때문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군요."
"나 또한 아이미야를 매우 사랑하고 있네. 내 아내이며 조카이기도 하지. 하지만 아이미야는 아직... 세이메이, 코하기 뱃속의 아이의 아비는 바로 날세. 하지만 이 도원에서, 이 일이 밝혀지면 큰일이네."
'호... 혹시 여긴 내가 있어선 안 되는 자리 아냐?'
"토우 가문이 권력을 거머쥐려하는 이 시국에, 미나모토 가문에 대한 세상의 비난이 얼마나 세찰지는 히로마사도 잘 알 걸세. 현재까지 모로스케 님과 내 관계는 원만하네. 하지만 모로스케 님의 자식들, 코레타다, 카네미치, 카네이에 녀석들은 자기 출세에만 서슬이 퍼렇고 유직을 중요시하지도 않지. 미나모토 가문이 정사에 끼어들어 입이라도 열라치면, 피리라도 물려 입을 다물게 하자는 속성을 가진 놈들이지."
"아니... 어떻게 그런..."
"히로마사, 말 안 해도 다 아네. 물론 음악도 중요하지. 세상을 다스리는 정사란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올바르게 치러져야 비로소 이뤄지는 법. 따라서 음악을 포함한 의례, 행사, 제사 이 모두가 중요한 일이지. 모로스케 님도 유직고실을 중요시하고 계셔 우린 마음이 잘 맞는다네. 하지만 주위에는 그런 우리 사이를 틈만 나면 갈라놓으려는 놈들뿐이지. 매우 민감한 관계라네."
- "모로스케 님은 어린아이의 손에 대한 소문을 들으시고서는, 그대의 선배를 보내셨더군."
"카모노 야스노리 님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이미 개구리가 나왔을 때였지. 코하기가 임신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네와 똑같은 말을 하더군. 하지만..."
- "집안에 넘치는 '토'의 기운을 없애려면 도원 저택의 '간방'을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건 나리의 후세를 없애는 일과도 연관되니 토우 가문이 쾌재를 부를 겁니다."
- '한심하게시리 또 남의 연애사 뒤치다꺼리로군. 너무도 뻔한 길조를 허투루 만들어 버린 사연이기에 오긴 왔는데... 월대로군. 타카아키라 님의 서궁 저녁에 있는, 달을 바라보는 전각.'
"알았습니다. 수를 생각해보지요."
"고맙네."
- "설마 시체는 아니겠지? 세이메이."
"듣기만 해도 오싹합니다."
"글쎄요."
'뭔가 석연치가 않아. 이건 내가 발견해야 마땅한데...'
"열어보아라."
"치하루, 열거라."
"네."
"세이메이... 이게..."
'이걸 뽑으면서, 뭔가가 발동을 한 건가.'
- "무슨 사연이 있는 여인이겠지만, 이 부근에서 비구니가 되어 죽은 젊은 여인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나저나 신기하군. 썩기는커녕 놀랍게도 좋은 향기가 나다니..."
- [제 아비는... 하타 도만이란 자입니다.]
[축에서 인으로의 이행은 재생을 의미하지. 죽음이자 탄생이며 환생을 뜻해. 그건 하타 일족의 신앙이기도 하지.[
'하타 일족...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 "그래... 건(乾)의 바람이야. 선천인가?"
- 복의 시대 황하에서 나타난 용마 등의 털결이 별자리를 나타냈다. 복의는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하도'를 그렸다. 그것은 후에 하강하는 하늘의 기운과 상승하는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팔괘 '선천도'의 토대가 되었고, 우왕이 홍수를 다스렸을 때 낙수에서 나타난 영검한 거북의 등껍질에 그려진 글에서 우왕 또한 큰 깨달음을 얻어 '낙서'를 썼다. 이것은 후에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의 작용을 나타내는 '후천도'의 토대가 되었다.
- 둔덕이 있는 '곤-서남쪽'은 대지, 모체, 사체이며, 사체를 티끌로 만든 것은 '건-북서쪽'의 바람이며, 이것은 후천도 감(坎), 간(艮), 진(震), 손(巽), 이(離), 곤(坤), 태(兌), 건(乾)이며,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이것은 선천도이며, 선천의 북서는 '간방'이며 '간방'은 산이며 후세를 남길 남자이며, 남자가 어미를...
- '금잔만이 남았다. 영원히 썩지 않는 몸... 건의 바람... 선천의 '간' 즉, 산은 후천의 '건'인 금을 만든다. 정말 완벽한 이치다. 관속의 비구니는 카타아키라 님과 코하기와도 상관이 있지만, 이건 나에 대한 계시이기도 하다.'
- '지당하신 말씀.'
"도원에서 일어났던 괴이한 사건들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정치 적수들에게 코하기나 아이미야가 희생당하는 일도 없을 테지. 내 서궁의 정원도 근사하다네. 월대는 알고 있는가?"
"네. 소문으로만..."
"거기서 내다보는 경치도 장관이지, 세이메이."
"..."
- "젠장. 완벽하게, 당했어."
'월대도 안 내놓고 모든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했어. 헛수고만 했어.'
"세이메이, 이건... 결국 기둥 구멍에서 나온 어린아이의 손도 코하기한테 씌었던 귀신도 그 땅에 묻혀 있던 비구니의 짓이 되는 건가?"
"... 그렇게 되는군. 그러는 편이 코하기도 마음이 편하겠지."
"흐음. 하지만 세이메이. 여자가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손만 잡아보면 알 수 있나?"
"뭐? 소음의 급소 맥 말인가? 상식인데. 그것도 몰랐는가?"
"..."
'상식이라 할 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 모체의 맥이 참인지 거짓인지 잉태한 아이가 여자아인지 남자아인지가 일족의 명암을 가르는 법이니까. 맞아. 내가 열변을 토하며 '간방'이 얼마나 신성한 방위인지 설명해봤자, 그걸 이해하는 자는 드물지. 세상 사람들은 '간방'에다 귀신이니 악령이니 차원이 낮은 세계를 갖다 붙이기 일쑤지.'
"왜 그래? 세이메이."
'그러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테지.'
"뭐가 웃기냐니까."
"봄이 먼 듯한 느낌이 드는군."
"..."
- '하지만, 난 이러고 있을 수 없어. 이러고 있어선 안 돼.'
- "그 도적을 죽인 노리미츠 님이 이 다리에 오신다고, 다리 점에 나와 있었지만 정작 오신 건 돈에 혈안이 된 사기꾼이었지요. 진정한 영웅호걸인 분이 아니시곤 공주님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으으음..."
"그래서 유모는 고민 끝에 내게 도움을 청하러 왔던 거네."
"그랬군. 그나저나 내가 여길 올 거라는 걸 용케도 알았군."
"무슨 소리. 내가 자네가 오도록 손을 써놓았지. 타다마사 님과 카게나오 님의 저택에 식신을 보내어, 밤새도록 '다리에 사람을 보낼 거면 히로마사를 보내라'라고 속삭이게 했지."
"으음..."
'마치 내가 품위도 체면도 아랑곳 않는 사람이라고 비방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 "아직도 모르겠네."
"잘 들어보게, 히로마사. 저기 계신 분은 오늘 밤, 백 년 만에 아기를 낳으시는 거네."
"흐음."
"훌륭한 피리 연주였네, 히로마사. 신비로운 음악이더군. 자네의 피리 소리는 아까처럼 정령을 돕기도 하지만, 매혹시키기도 하지. 조심해야 해."
"사실은 말이야. 이 피리는, 보통 피리가 아냐. '엽이'라는 이름이 있어. 아마 아까 그 백사 같은 정령이 지니고 있을 법한 물건이야. 내가 만든 피리와 바꾼 거야."
'그런 사연이 있었군.'
"시험해봤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불지를 못해. 자네도 시험해보겠나?"
"아니네. 자네밖에 불 수 없는 피리라면, 나도 만지지 않겠네."
- "세이메이. 날이 밝기 전에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함께 가주겠나?"
"그럼 서둘러야겠군. 여름 밤은 짧으니까."
- <오망성 제도법>
중심 O, 반경을 OA=1로 하는 원을 그린다. 직경AA'와 BB'를 교차시킨다. BB' 위에 중심을 둔 OA의 1/2를 반경으로 하는 두 원을 접하도록 그린다. 두 원의 내부원에 접하는 곡선 CD를 점 A'를 중심으로 그린다. 같은 내부의 원에 접하는 곡선 EF를 점 A'를 중심으로 그린다. 외부원과 곡선 CD의 접점을 각각 GH라 하고 AGEFH의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완전한 내접 오각형이 완성된다.
또 내부원의 원주는 안에 생기는 태극도의 백과 흑의 꼬리를잇는 원(구옥형)의 외주와 같지만 구옥형의 면적은 각각 외부원의 면적의 1/2이며 여기에서 1이 2를 만들게 된다.
- 신성기하학에서 정오각형은 생명의 상징이다. 또한 대각선을 그음으로써 오각형 내부에 만들어진 오망성에 들어가는 선은 모두 황금비율로 분할된다.
- <오행대의>
수나라의 소길에 의해 선출된 <오행대의>는 <주역> <신찬> <음양서> <황제금궤> 등과 나란히 음양료의 필독서였다. 그 중에 <일자론상생>이라는 오행상생에 대해 기술한 장의 서두를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말 그대로 제도해가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오각형, 또 일본에서는 세이메이 길경문이라 불리는 오망성이 완성된다.
- 하늘은 하나를 낳고 북방의 수의 시작이며,
땅은 둘을 낳고 남방의 화의 시작이다.
인간은 셋을 낳고, 동방의 목의 시작이고, 시간은 넷을 낳고
서방의 금의 시작이며 오행은 다섯을 낳고 중앙의 토의 시작이다.
또한 하나에 의해 하늘이 생겨나고, 하늘을 만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둘에 의해 땅이 생겨나고
셋에 의해 인간이 생겨나고 넷에 의해 시간이 생겨난다.
오행은 모두 하나에 의해 생기며 오라는 숫자에 이른다.
토는 가장 마지막에 생기며 다섯을 얻음으로써 오행이 완성되게 된다.
- <하도>
역에 의한 1•3•5•7•9 다섯 개의 홀수를 천양의 오행으로 삼고, 2•4•6•8•10 다섯 개의 짝수를 지음의 오행으로 삼아서로 작용하며 만물이 생생화육함을 의미하는 그림이다.
- <낙서>
1•9는 수, 화로 북, 남에 위치하고 3•7은 목, 금으로 동, 서에 위치하며 2•4•6•8은 토, 목, 금, 토로 서남, 동남, 북서, 북동 사방의 네 모퉁이의 방위이지만 사방의 양수는 네 모퉁이의 음수를 통합함을 의미하는 그림이다.
- 하도는 숫자 55에서 생기며 낙서는 숫자 45에서 생긴다. 즉 음양오행의 이치의 수이다.
- 1•6이 서로 작용하여 북방의 수가 생겨나고, 3•8이 서로 작용하여 동방의 목이 생겨나고, 2•7이 서로 작용하여 남방의 화가 생겨나며, 5•10이 서로 작용하여 중앙의 토가 생겨나며, 4•9가 서로 작용하여 서방의 금이 생겨나며, 수미연환하여 일대원상을 이루고 있다. 즉, 1•3•5•7•9의 합은 천수인 25이며 2•4•6•8•10의 합은 지수인 30으로 합해서 55가 된다.
- 양수는 북방의 1을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돌므로 이를 천원의 수인 3으로 곱하면 동방의 3이 되며, 동방의 3에 3을 곱하면 9가 되며, 남방의 9에 3을 곱하면 27이 되며, 20의 영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사방의 7이다. 음수는 서남의 2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돌므로 이를 방지의 수인 2로 곱하면 동남의 4가 되며, 동남의 4에 2를 곱하면 동북의 8이 되며, 동북의 8에 2를 곱하면 16이 되며, 10의 영수를 제외한 수가 북서의 6이다. 즉, 5를 중심으로 가로, 세로, 대각선 어떤 각도에서 헤아려도 세 수의 합은 반드시 15가 되는 '마방진'이 완성된다.
- <선천도(先天圖)>
복의 선천 팔괘 방위. 복의가 하도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의 기운이 땅을 향해 하강하고 땅의 기운이 하늘을 향해 상승하고 그 양자가 대기 중에서 만나 그 힘에 의해 만물이 생성된다는 천지자연의 본질도.
- <후천도(後天圖)>
문왕 후천 팔괘 방위. 주나라 문왕이 선천도를 토대로 만든 천지자연의 변화활동도.
- 역은 복의가 천지의 이치를 깨달아 팔괘를 만들고 후에 이를 포함해 육십사괘를 완성시켰다. 괘는 양을 나타내는 |와 음을 나타내는 ¦의 두 종류의 점괘로 만들어진다. 팔괘란 세 괘를 조합해 만들어진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의 여덟 괘로 각각 천, 택, 화, 뢰, 풍, 수, 산, 지를 상징하고 있다.
7권
- "2 곱하기 2인 사각의 방지에 19 곱하기 19집이면, 361집. 정확히 하늘을 일주하는 숫자로 천원을 나타내지. 하도(河圖)의 수인 55에 낙서(洛書)의 수인 45로, 하낙 미분 미변도도 만들 수 있어. 칸칸의 집으로 헤아리면 9 곱하기 9, 81이 네 개. 네 시로구나. 하도, 낙서 자체도 균형에 맞게 만들 수 있고... 십이궁도 이십팔수도 만들 수 있어. 목성의운행도 아주 좋아. 병법인 팔진도도 만들 수 있어."
- "정말 잘 만들어졌어. 흥미로운걸. 그렇다면 이 아홉 개의 별은 구성귀인. 감, 곤, 진."
- "오호, 술이 아니냐? 그래서 날 불렀구나. 기특하게도... 술로 대접을 해주겠느냐?"
"이봐, 기다려! 넌 이 집의 주인이 아냐! 들어오려거든 신발을 벗어."
"감히 내게 그런 말을! 난 원령이다."
"원령이면 더더욱 예의를 차릴 줄 알아야지!"
- "세이메이, 전부터 거슬리는 게 있는데. 자네가 식신을 부리는 건 좋은데 악취미 기질이 있는 거 아닌가?"
"아아..."
"자기한테 별일을 다 시키면서도 태연하기 짝이 없군."
"내가 곁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심하고 맘놓고 선잠도 잘 수 있지."
"그렇단 말이야?"
"그렇단 말이네."
"그건 순 거짓말이야. 내 취미야."
- "아니..? 발 너머에 누... 누가 있는가?"
"아니. 신경쓰지 말게."
"으으음."
"계속 얘기나 해보게."
- "우... 웃었나? 세이메이."
"내가 웃은 게 아냐."
"우... 웃었잖아. 다 들었어."
"내가 아니래두."
"너무 하는군."
- "그런데 마쿠즈, 관공이 내려오기 전에 넌 뭘 하고 있었지?"
"바둑판으로 놀고 있었어."
"그건 아는데 뭘 하며 놀았냐구."
"아아... 구성을 만들고 있었어. 마침 별의 수가 아홉 개가 있길래. 감... 곤..."
"그만 둬라. 바둑을 장난감으로 생각해선 안 돼. 진은, 벼락이야. 그래서 관공을 붙들게 된 거지."
"그럼, '진'이란 돌을 두면 또 영감이 오는 거야?"
"마쿠즈, 집 좀 그만 태워라. 벼락이 여러 번 떨어져서 평판이 안 좋아."
"모레는 안 불러도 올걸 뭐. 어떻게 약 올려 줄까. 후후후훗."
- "마쿠즈, 이기지 말고 져주렴."
"싫어. 난 좌방에 걸었는걸."
"그러냐... 하는 수 없군. 상중인 황후마마한테나 가봐야겠다."
"재미있겠다."
- "아름다워라."
- "'명황월궁에서 노닐다'라는 식의 수법이군요. 당나라의 현종 황제가 8월 15일 밤에 도사 라곡원을 따라가 월궁에서 노닐었다는 고사가 유래지요. 축에서 묶여 옴짝달싹 못 하지만, 절묘한 소용돌이로군요. 에~ 바둑은 신이 만드신 성스러운 놀이라고도 하죠. 국이 방정함은 땅의 이치의 상징이며, 길이 정직함은 신명의 덕이며, 돌에 흑과 백이 있음은 음기와 양기로 나뉘기 때문이며, 돌을 널리 펼치는 건 천문이 된다고 고문서에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치만, 바둑의 본성도 모르고 바둑을 두는 바둑광들도 많은걸."
"바둑에는 위에는 천지의 상징이 있으며, 다음은 제왕의 통치가 있으며, 안에는 오패의 권력이 있으며, 아래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왕들은 수양이 덜 된 아들들에게 먼저 바둑을 가르치곤 하죠. 하지만 전쟁보다 더 아래에는 단순한 놀이라는 함정이 있지요."
"아하하하하. 아아... 또 소용돌이다."
- "히로마사 님, 괜찮으십니까? 대회장으로 옮기기 전에 준비된 시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십시오."
'난 잘할 수 있을까. 시 대회 때 겨뤄지는 우방의 시 스무 편은 안 보고도 줄줄 낭송할 수 있을 만큼 외우긴 했는데...'
"이 두 마리의 거북이 등껍질 속에 시가 적힌 색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봄시 열 편, 여름시가 다섯 편, 사랑시가 다섯 편입니다. 낭송이 끝난 후에는 휘파람새의 시는 새들에게 물리고, 벚꽃의 시는 벚꽃 가지에 달고, 사랑시는 고기잡이 배의 횃불에 답니다."
"으으음."
'이렇게 복잡한 걸 시 대회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마... 만일... 이걸... 잊어버리면 적당한 데다 둬도 되는가?"
"안 됩니다."
"하지만 어두워지면 이렇게 작은 색종이에 적힌 글씨가 안 보이게 될 테고, 설령 깜빡하고 휘파람새의 시를 두견새에게 물렸다고 한들, 아는 건 나 뿐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도 않잖나?"
'아냐. 나도 모를 판이야.'
"히로마사 님은 멋이란 걸 모르시는군요?"
"아...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흐흥."
- "좌방은 황매화 잎에 모든 시를 적는다고 하니, 우리 우방의 꾸밈새가 훨씬 돋보이겠어."
"타카아키라 경."
'좌방의 강사는 좋겠다.'
"긴장될 땐, 손바닥에 '人(사람 인)' 자를 써서 마시면 좋다더군."
"그렇구나. '人' 자를 써서 마시면 되는 구나. 오오... 효과 좀 보겠는데."
"그대의 친구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쳐주던가? 저길 보게. 금은 세공의 화려함을 무색하게 만드는 고타치의 아름다움을."
- 텐토쿠 천황 4년(서기 960년) 3월 30일 기사. 이 날 거행된 궁녀 시 대회는, 무라카미 천황의 놀이문화와 문예의 정수를 결집시킨 사상공전 규모의 성대한 시 대회였다.
- "자, 북쪽이 어디냐?"
"내게 없는 쪽."
"이럴 수가. 이걸 네가 두었느냐? 네가 바둑을 둘 줄 아느냐?"
- "이게 북두, 안에 천리, 중앙에 있는 흰 돌은 천황대계, 즉 천원이야. 그것도 모르면서 천황 탓만 하기는."
"으으으."
"영감은 우방이니까 북, 수, 현, 검은 돌. 난 좌방이니까 남, 화, 광, 흰 돌. 자. 어디서부터든 덤벼."
"잠깐. 원래 약자가 먼저 두는 법. 네가 먼저 둬라."
"첫 대국인데, 어째서 내가 약자라는 거야?"
"으으으... 네가 훨씬 젊지 않느냐."
"백이 먼저란 소린 들어본 적이 없어."
"어린 놈이 선수를 내놓겠다는 것도 처음 본다. 너... 무슨 꿍꿍이가 있지?"
"꿍꿍이가 있는 건, 그쪽 아냐?"
- 날이 다 저물었을 무렵, 천황자리의 정면 복도의 상석에 좌대신 후지와라노 사네요리와 우대납언 미나모토노 타카아키라 등등이 앉았다. 시 대회를 위해 지어진 시들은 좌우 각각의 시 장식 속에 준비되어 있었다. 침향의 상에 천향의 화촉을 얹고, 상 위에 썰물이 이는 해변과 침향의 산과 명경지수, 금은 세공이 장식되어 작은 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게다가 아래 상의 네 다리에는 은으로 대나무 장식을 달고 그 위에 비단 덮개를 씌었다.
- 뒤늦게 나온 좌방의 강사를 맡은 미나모토노 노부미츠. 이쪽 해변은 침향과 명경산수에 은 학을 올리고 여덟 겹의 금 꽃과 은 잎의 황매화를 부리로 물고 있다. 좌방의 시는 그 황매화의 은 잎에 적혀 있었다.
- 시 대회의 좌우 스무 번의 승패의 심판은 좌대신 후지와라노 사네요리이다. 주안상이 들어온 후 시를 낭송할 강사가 들어오며 시 대회가 시작됐다.
- "몰랐소, 세이메이. 대단히 바쁘다고 들었는데..."
"별구경을 하는 밤이면, 시간이 의외로 더디게 흐르는 법이지요."
"어머나. 그럼 한가하단 말인가요?"
"황후마마. 놀이라고는 하나, 바둑은 박역이라 해서 역과 출을 동시에 행하지요. 인수전에 음양사가 점술에 쓰는 식반이 있는데, 정사각형의 지반 위에 원형의 원반을 얹은 것이지요. 방지는 정이고 천원은 동이며, 동이란 즉, 시간의 흐름이란 의미입니다. 그건 바둑의 세계에선 바둑판이 정이며 둥근 바둑돌이 동이지요. 따라서 흑과 백을 번갈아 두어야 하는 겁니다."
- "왜냐하면 흑과 백은 음과 양, 즉 어둠과 빛, 밤과 낮, 겨울과 여름이지요. 이것을 차례로 두는 것이 시간의 흐름 그 자체인 겁니다. 바둑판도 식반도 우주의 상징이지요. '우'란 무한히 펼쳐지는 공간을, '주'란 영겁 즉,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고 있는 겁니다."
- "바둑판 안에 있는 아홉 개의 별은 구요, 즉 태양, 태음,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계도성, 나후성에 대응하고 있지요. 각각의 혹성은 항상 다른 혹성과 교류를 하여 별 주위의 일곱 줄의 경위선이 각각의 교류를 의미하며, 그것이 바둑판의 길이 되어 나타나는 거지요. 일곱 줄이란 구요에서 일과 월의 힘인 계도성과 나후성을 제외한 칠요고, 일곱 줄의 경위선이 바둑판의 가로세로로 세 쌍을 이루며, 경계선 두 줄을 제외한 바둑판의 길은 각각 19이며, 눈의 수는 19 곱하기 19인 361이며, 360은 하나의 원, 태양이 하늘을 맴도는 수에 해당하며, 1은 만물을 만드는 근원으로서 극, 즉 중앙의 천원에 존재합니다. 천원의 다른 이름은 태극으로, 그 본체는, 하늘의 중심이지요."
- "흐음... 그건, 날마다 바둑을 겨루곤 했는데 무얼 두려워할꼬 라는 식이군."
"아니, 그건 내가 카와치노 곤노카미에게 바쳤던 시. 내가 다이고 천황에게 현상한 시집을... 이 계집이 어디서 읽었지?"
"시험 논문도 읽었는걸. '혼백을 불러라.' 인간의 몸에는 모두 혼백이 있지. 그건 서로를 구속하며 떠날 줄을 모르지만 인간이 죽으면 이탈돼지. 죽은 자의 혼기는 하늘로 올라 신이 되며, 백기는 하강해 귀신이 되거든."
"으음... 혼백이란... 새로운 수법의 공격이군. 그래서 내가 흰 국화를 좋아하는 것을..."
"혼기는 하늘을 품는 양으로 간에 있고, 목에 속하는 이치며, 백기는 마음에 작용하는 음으로 폐에 있고, 금에 속하는 성질이다. 이 정도야 서책만 읽으면 알 수 있지. 그나저나 '혼백을 불러라'라니 제목 한 번 거창한 걸."
- "그럼 왜 영감은 귀신이 됐어?"
"넌 바둑도 못하면서 입만 산 계집이구나. 자, 각이다."
- "바둑이란, 평범하게 두면 그냥 돌이지만, 천지를 상징하기 때문에 두는 사람에 따라서는 점도 되고 주술도 됩니다. 반상에 주술적인 수를 쓰면 다른 곳에 저주를 내릴 수도 있지요."
- "그대와 대국하기 두렵구려."
"저도 두렵습니다."
"안심하시지요. 괜찮으시다면 대국하고 싶은 자가 있습니다."
"그런 자가 있으시오? 그게 누구요?"
"동궁마마의 무녀, 아베노 타카코입니다."
- "말도 안 돼, 정념 덩어리야? 아무리 바둑에 졌기로서니! 감정과 이성의 음양의 도리는 어디로 간 거야? 온갖 정사에 구속되어 자유를 잃고 소모된 마음을 대신할 조화의 방법은 그대 손안에 있다! 답안에 그렇게 써놓곤 정작 자신은 이해를 못 하나 보지? 어이없어."
- "혼은 낮엔 눈에 깃들고 밤엔 간에 깃든다. 눈에 들면 보이고, 간에 깃들면 꿈을 꾼다. 꿈이란 신의 놀음이다."
'아아... 가버린다. 가버려.'
"구천구지도 찰나에 이루어진다. 대제부로 좌천되기 전까지 영감의 혼은 자유였어. 그래서 몸을 관사에 두고서도, 아름다운 선계의 시를 읊을 수 있었어. 좌천 후엔 혼기의 자유를 빼앗겨 백기의 시를 읊어댔지. 그래서 귀신이 된 거야. 깨닫게 해주고 싶었는데... 영감은 바보야."
- "그럼 황후마마. 다음은 제게 화금이나 비파를 빌려주시지요."
"어쩜 세이메이, 그대는 음악까지... 아니오, 더는 묻지 않으리라. 비파를 가져오너라."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바둑이 천지의 상징이듯이, 이번 시 대회도 좌방과 우방, 음기와 양기, 적색과 청색이 잘 대치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건 이 정원의 마름질에도 두루 미쳐 있습니다. 좌방의 마름질엔 자주빛의 등꽃이, 우방에는 노란 빛의 황매화 꽃이. 이 두 빛깔은 보색 관계이며, 자주빛은 하늘의 제왕이 사시는 자미궁이며, 노란빛은 오행에서 말하는 중앙의 토이고 천황이며 둘 다 금기의 색이지요. 비파로 말하자면 좌는 자주빛으로 하늘을, 우는 노란빛으로 땅을, 현은 그 하늘과 땅을 잇는 줄이며, 소리는 그것에 반응하는 음혼이지요. 따라서 현악기인 화금과 비파는, 고귀한 악기라 불리지요."
- "끝나버리면, 바로 어제 일인데 먼 옛일처럼 느껴지기도, 꿈을 꾼 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떠오를 때면 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건 시를 잘못 낭송했기 때문인가?"
"뭐?! 버... 버... 벌써 자네한테까지 소문이 퍼졌나?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날의 일을 주상전하께선 물론이거니와 대납언 타카아키라 님이며 궁녀들 할 것 없이 일기에 적고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유례가 없는 시 대회였으니까."
- "이름을 날려? 난 실수를 했어."
"실수가 아니라, 필연이지."
"하지만 다들 내가 실수를 했다고 여기고 있어."
"하하하. 어쩔 수 없지, 뭐. 그런 식으로 특수한 능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지. 너무 신경쓰지 말게."
"그럼... 시 낭송을 틀린 것도 특수한 능력인가?"
"그것과는 달라."
"그럴 줄 알았어. 술 좀 마시겠네."
"자네는 참 재미있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군."
"뭘?"
"자네의 화금이, 연회 자리에 관공을 얼씬도 못 하게 만들었던 걸 말이네."
"뭐? 그럼 그때, 관공이 있었던 거야?"
"있었지. 결계 밖에 무리를 모아왔었지."
"그래? 그 때문인가? 시 대회 후에, 극단적으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게..."
- "안 보이는가, 히로마사? 펄펄 날뛰며 벼락을 날리는 관공의 머리 위에 미동도 없는 존재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게다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이어진다. 어마어마해...'
"단념해라, 관공. 널 기다리는 신사로 얌전히 돌아가."
- "다행히도 타다미의 혼기는 하늘로 오르고, 백기는 땅으로 돌아갔네. 그리고 관공은 키타노 신사로 돌아갔어. 우리도 이만 돌아갈까. 후우우... 향기로운 귤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 있으니 기분이 좋더군."
"정말 너무하네. 난 관공과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구.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전에 이 세상은 몇 겹의 층이 겹쳐져서 생긴다는 얘기를 자네에게 한 적이 있지?"
"으으응... 그런 것도 같군..."
"아까 그 다른 층이 위에서 아래로 단번에 열렸었지."
"뭐?"
"우리 발밑에 층이 열리고, 타다미와의 사이의 층이 열리고, 타다미와 관공 사이의 층이 열리며, 벼락을 날리는 관공 위에 또 다른 층이..."
"그래서 꽃잎들이 휘날렸었구나!"
- "부럽기 짝이 없군. 타다미까지도... 큰 실수를 저지른 난 어찌 될는지... 아아아..."
"이보게. 자네가 타다미를 구한 거야."
"내가 구했다고?!"
"칭찬은 최상의 주술이라네, 히로마사. 최상의 정화지. 이 방면에선 일을 하다 막히면 우선 칭찬과 축복을 아끼지 않는 게 상책이네."
"그렇구나."
"대단한 일을 했어. 자네의 칭찬 덕에 타다미의 명성도, 시도 후세까지 길이 남을 걸세."
- "너무 낙심 말게. 남을 구하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그런 특수한 능력이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니까. 심지어 그건 위업인데도 평생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거네."
"쳇.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전적으로 동감이네.'
- 시 대회에 자극을 받은 궁녀들은 '남자들은 이미 다 문장을 겨루고 있으니 여자들도 당당히 화가를 겨뤄야 한다'라고 청해 당시의 천황인 무라카미 천황에 의해 개최되게 되었다. 텐토쿠 천황 4년 2월 29일 작시를 하는 시인들에게 시를 의뢰하고, 그것을 시대회 자리에서 강사에게 낭송하게 하는 좌우방 방인들을 황제가 선정했다. 궁녀들 중에서 좌우 각각 열네 명씩 총 스물여덟 명이 방인으로 선정되었다. 3월 3일 황제가 열두 가지의 과제를 정해 궁녀들에게 보냈고, 그에 따라 작시가인 좌방 여덟 명, 우방 네 명의 시인, 시 대회 중에 시를 소리 내어 낭송하는 강사(좌방은 미나모토노 노부미츠, 우방은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좌우 어느 쪽의 시가 출중한지 결정하는 심판(후지와라노 사네요리) 등이 선정되었다.
- 3월 19일 공경들도 좌방, 우방으로 나뉘어 좌우방의 염인 등도 이때 정해졌다. 이렇게 신속히 준비해 30일 시 대회 당일을 맞이했다. 이른 아침부터 궁중의 잡무를 처리하는 궁인들이 총출동해 대회장 치장에 돌입했다. 청량전 서쪽에 새 발을 걸고 중앙에 천황의 자리를 마련했다. 의자 왼쪽에는 휘장을 늘어뜨리고 장식상을 두었다. 의자 좌우에 궁녀들이 앉고 청량전과 후량전을 잇는 중도전에 좌대신 후지와라노 사네요리와 대납언 미나모토노 타카아키라를 비롯한 좌우 대신들과 무신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 특필할 만한 것은 미리 회의를 통해 철저하고 아주 세세한 데까지 공을 들여 조화미와 대조미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것은 좌방은 적색과 자색, 우방은 청색과 녹색으로 의관, 장식, 정원의 색까지 통일을 시켰다. 본 대회에선 그 색조의 대비를 철저하게 지킴과 아울러 그 사이에 미묘한 차이를 자아내고 있다. 천황이 신시(오후 네 시경)에 행차해 의자에 앉으면 좌우방 각각의 시가 얹혀진 시 장식과 시의 승리점을 헤아리기 위한 원지 장식이 들어온다. 과제에 따라 미리 준비된 시를 좌우방 각각의 강사가 낭송한다. 열두 번의 승패를 겨루며 좌우방 스무 편(봄 안개 한 편, 휘파람새 두 편, 버드나무 한 편, 벚꽃 세 편, 황매화 한 편, 등나무 한 편, 늦봄 한 편, 초여름 한 편, 두견새 두 편, 댕강목꽃 한 편, 여름 풀 한 편, 사랑 다섯 편) 전 사십 편의 시가 준비되었다. 시의 승패가 결정될 때마다 공경의 자리에서는 패배한 편에게 벌주를 따라 마시게 하고 시 대회를 계속 진행했다.
- 전 사십 편의 시가 낭송되고 좌방의 승리가 열한 편, 우방의 승리가 네 편, 무승부가 다섯 편으로 큰 차이로 좌방의 승리가 결정되면 악인들이 들어온다. 본대회의 주최자인 천황을 비롯해 방인인 공경 당상관들 중에는 관현악 연주에 재능이 뛰어난 자가 많았으며 무악보다도 창가주악에 심취해 있었다. 먼저 승자가 쌍조의 생황을 불며 민요를 노래하면 뒤를 이어 패자도 쌍조의 생황을 불고 민요를 부르며 연주와 창가를 되풀이한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마지막으로 승자가 일월조의 대춘학전을, 우방은 쌍조의 유화원을 연주하며 연회의 흥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른 아침 천황이 대신 이하에게 녹을 하사하고 자리를 떠나면, 마지막은 대신 이하의 모든 사람들도 노래하고 춤을 추며 퇴장했다. 이리하여 하룻밤의 성대한 연회가 끝이 났다.
8권
- "이봐, 세이메이, 있는가?"
"아, 히로마사님. 신발은 벗으셔야죠."
"에잇, 들어가겠네."
- "오오... 세이메이, 있었군. 늦어서 미안하네. 거문고를 갖고 왔네."
"..."
"부... 분명히... 거문고를 갖고 오라는 부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래... 그랬지. 오늘 아침에."
"어라?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참, 세이메이에게 거문고를 갖다 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왔는데.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엔 음양료에 틀어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있기에 깜짝 놀랐네."
'그런 줄 알면서 내가 왜 온 걸까.'
"오늘 아침에 돌아왔지. 돌아와도 쉴 새가 없네. 잠시 졸다가도 금세 꿈을 꾸곤 하지. 이번엔 그 꿈이 찝찝해서, 이러고 있다네. 오오... 잊고 있었군."
"내가 방해되나?"
"아냐, 기다리고 있었네. 히로마사."
- "게다가 거울이 잠겨 있어. 자네 걸교전 이후 계속 이 모양인가?"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이상하지? 여긴 이렇게 물이 풍요로운데 말이야."
"세이메이! 대체 올해는 어떻게 된 건가? 신사의 기우제 봉폐사가 어제 돌아갔다 싶었는데 오늘 또 파견되질 않나, 온 도읍은 스모우 대회 철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싸움질에, 살인에... 백주대낮에 도적이 온 도읍을 설치고 다니는 바람에 검비위사 인원도 늘었다구. 비도 안 오는데다 백성들까지 황폐해지고 있어. 내겐 백성들이 황폐해지는 것도 다 비가 안내리는 탓인 것만 같다네."
"제대로 봤어."
"자네, 비는 못 내리나?"
"글쎄. 술이나 하세."
"오오, 색절편이 아닌가?"
- "자네도 알지? 이레 동안 만원의 날이 돼도 비가 내릴 낌새조차 없었지. 그래서 칸구 스님이 남전 뜰로 나와 향을 피우고, 쿠자쿠 명왕에게 기도를 드렸더니 향로에서 한줄기 연기가 피어올라, 그게 구름이 되어 비를 내렸네."
"그건 궁궐 내에만 비를 뿌렸지만, 칸구 스님의 법력이라 할 수 있지. 수단이야 어찌됐든 상관없단 소리야, 비만 내릴 수 있다면."
- "마시게."
"하지만..."
"마시래두. 술이 아니라 시원한 물일세."
"하지만 대반야경을 독송할 때 그 치토쿠 땡중도 불려왔었다던데, 자네는 손 놓고 있을 건가? 음... 맛있군."
"음. 안심하게, 히로마사. 음양료에서도 야스노리 님이 오룡제를 지낸다고 하네. 하지만 오룡제만 단독으로 거행되는 건 아니네. 칸구 스님 역시 신천원에서 청우경법을 수법할 계획이라네."
"청우경법? 그런 것도 있나? 그렇다면, 밀교의 수법과 음양제 중에 어느 쪽에 효험이 있는지 경합을 벌이게 되는 게 아닌가? 야스노리 님을 안 도와도 돼?"
"그 어느 쪽에도 내가 개입할 자리는 없네, 히로마사."
- "게다가 문제는 어떻게 비를 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비를 내리느냐지."
- "기우제는 천지시숙의 날을 만원으로, 우선 사흘간 신천원의 샘이 열리게 될 거야."
- '과연 그렇군...'
'그랬었지. 과거엔 하늘도, 거울도, 현도, 사람도, 더욱 단단히 이어져 있었는데...'
'오른쪽 귀를 기울여 별의 응답을 듣는다...'
'다시 처음부터 짜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작업이로군...'
- "지... 지금 당장? 이런 땡볕 속을?"
"서두르지 말게. 어두워진 다음에 갈 거네."
"신천원에선 기우제 준비가 한창이겠군. 세이메이, 비를 내릴 수나 있을까?"
"비는 언젠가 내리게 돼 있다네, 히로마사. 영리한 수도자들은 슬슬 비가 내릴 때쯤 움직이기 시작할 게 뻔해."
"그, 그런건가? 난 잘 모르지만, 그럼 대체 우린 어딜 가려는 거지?"
"자넨 참 재미있는 친구야. 도읍을 떠나기 전에 한 군데 들를 곳이 있지. 우선 이걸 전해야 하네. 안 따라와도 돼."
"잠깐만, 같이 가세."
- "날 계속 피해 다녔겠다?"
"음양료엔 스승이신 타다유키 님과, 선배시며 또한 스승이신 야스노리 님과, 또 제자들이 있는데 제가 있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료에서도 늘 나와 엇갈려 나가곤 하여, 자넨 모습을 감추려 했을지 몰라도, 자네가 지나간 곳엔 궤적 같은 것이 남지."
"저런, 당신껜 그게 보였습니까?"
- "오룡제에 참석하거라. 명령이다. 의식 절차를 전수해줄 생각이다."
"칙사의 수행원을 분부 받았습니다."
"..."
"대신 그 참외를 부탁드립니다."
- "불을 끄고 걸어가라... 는 뜻인가? 아니, 걸어간 흔적이 남아 보이게 돼 있어."
"뭐?"
"이를 테면 반딧불의 궤적이랄까... 달팽이가 기어간 후에 남은 점액 같은 빛이랄까..."
'쳇... 소용돌이에 소(牛)라...'
"점액?"
"아아... 인간의 혼이란 각자 빛을 발하고 있지. 따라서 그 그릇인 몸도 옷을 걸치듯 그 빛을 두르고 있는 거야. 그 빛은 그 사람이 소유하는 것과 닿는 모든 것에 나타나지. 예를 들면 이 부채에도 말이네. 그러니 앉아 있던 곳이나 걸어간 길에 그게 남아 보인다는 뜻이지."
"내...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아아아... 야스노리 님의 얘기네."
'어둠 속에 흩어진 내 목걸이 구슬조차 못 보던 자가... 어느새...'
"흥."
"그건... 자네에게도 보이지 않나?"
"특수한 색깔의 빛이나 강렬한 빛의 소유자에 한해서지. 흔적이 남는 자는 그리 흔치 않아."
'보이는 자가 또 있을지도 몰라. 뒤를 좇아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조심해야겠군.'
"그렇구나. 그렇게 쉽게 보이지 않는다니 안심이군. 안 그러면 자네에겐 길이며 뭐며 온통 점액투성이로 보이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맙소사. 예를 잘못 들었군.'
"그렇겠군."
'그런데 두 줄기나 정원에 남아 있으니, 지금쯤 꽤나 심기가 불편하겠지...'
- "풀게."
"어?"
"갓끈 말이네. 덥지도 않은가?"
"더워..."
"벗어. 승마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안 더워. 명색이 주상전하의 칙사인데, 어떻게 벗겠나."
"주상전화와 나와 자네 말고는 어떤 칙사인지 아는 사람도 없어."
"이대로가 좋아. 만일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낭패란 말이야."
"마음대로 하게. 벗었다간 혼자선 쓸 엄두도 못 내겠지."
- "딱 적당한 시각이군."
'수도자들인가...'
"히로마사, 점액을 찾나? 내 건 경쾌하고 아름다운 빛이라네. 가세나."
"이봐..."
- "소식 한 번 빠르군요. 오늘 초야부터지요."
"그나저나 야스노리 님의 아우들은 제 아비의 제자로 들어오고, 행자 생활을 하는 제게 당신이 오다니... 인과가 따로 없군요. 그런데 자리를 비워둬도 괜찮습니까?"
"기왕 같은 기우제라면 조금이라도 시원한 데가 좋을 것 같아서요."
"용케 빠져 나왔군요. 하기야 승려 사십 명이 거행하는 청우경법은 무덥고 답답하긴 하지요."
- '타이쵸 대사가 영지를 찾았으나 가뭄 때문에 탄식하고 있을 때, 남쪽 고목 사이에서 머리에 백사를 얹은 용마가 날아왔다.
[나는 팔대 용왕이다. 북천축의 물을 이곳으로 옮겨 영겁의 샘으로 만들어 천하태평 오곡풍성을 기원하노라. 만일 가뭄으로 근심하는 일이 있다면 이 샘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또한 이 감수를 손으로 떠서 복덕원만을 기원하라.]
하며 저편 암굴로 들어가자, 사방에 산의 빛이 비치고 대지가 요동치며 바위가 갈라지며 신수가 샘솟기 시작했다.'
- '직녀는 어찌하여 베를 짜느냐!'
- "정화수를 뜨기엔 딱 적당한 시기로군요. 이 같은 영지에서 매일 수행을 하시다니 부럽습니다."
"인간들은 쉽게 범접할 수 없지요."
"간신 스님이 계신 걸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돕는 것도 다 인과입니다."
- "아니, 이럴 수가... 분명히 부탁받고 일곱 개를 넣어두었는데 하나가 모자랍니다."
"그 하나는, 이미 받았습니다."
"네? 뭐라고요?"
"오오... 바로 그 참외잖아."
"그런 것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 "이곳 우노세란 어떤 곳인가, 세이메이?"
"자네는 모르는가?"
"매년 묘월에 나라에 있는, 동대사 이월당에서 수이회라는 십일면 회과 수행을 실시하고, 수행 중간에 이월당 본존 십일면 관음에게 새로운 정화의 영수를 바치는 '물긷기'라는 의식이 있는데, 그 영수가 바로 여기서 보내지는 거지. 수이회의 시조는 지유 카쇼라는 인도에서 도래한 스님인데, 그 무렵 온 나라의 신들을 불러 모았는데 와카사의 오뉴신은 낚시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늦고 말았지. 수이회의 불과 물의 정화 의식의 내용에 기뻐한 신은 늦은 사죄의 뜻으로 십일면 관음에게 알가수를 보낼 약속을 하셨어. 그때 땅속에서 흑과 백의 가마우지가 날아오르며 그 구멍에서 영천이 샘솟기 시작했지."
- "그걸 와카사 우물이라 부르고 있지. 그 와카사 우물의 근원지가 바로 여기 우노세의 수중동굴이야. 동굴 위의 거대한 흰 바위, 그 위에 와카사 남신이, 뒤를 이어 와카사 여신이 강림했다는 전설이 있지. 이 두 신은 오뉴신으로서 이 오뉴천 하류에 와카사 국의 으뜸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네. 지유 카쇼 스님은 한때 신궁사에 계셨었지."
"오... 오뉴... 라면... 분명히... 코야에서 죽은 그 비구니... 그 여인과 연관 있는 곳이 아닌가?"
"이 강 상류의 네고리노데가 그곳이지."
- "히로마사, 이건 착합이야. 베꼽의 끈이며 혼의 끈이지. 시간과 장소와 질을 바꿔 몇 번씩 되풀이하는 상징이네. 음악과 체제와 사상... 그 모든 근본에 있으며, 그것마저도 단순한 상징임을 깨닫게 하는 거지. 상대가 상징으로 나온다면, 나도 상징으로 응해줄 수밖에."
"단순한 결재가, 아니란 뜻이지? 나... 나야 뭐... 아무것도 모르지만."
'결재에 단순하고 단순하지 않고가 따로 있나. 못말려.'
"도착했군."
(역주 : 착합. 신악의 비곡. 완전히 겹쳐지는가 싶으면 미묘한 박자의 차이를 낳기도 하는 신악 피리와 필률의 이중주.)
(역주 : 결재. 제사에 관여하는 자나 부처를 섬기는 자가 심신의 부정을 멀리하며 청결을 유지하는 일.)
- '운천이 샘솟는다.'
"재마파리 청마파리 기도드리나이다."
'우물은 하늘과 통한다.'
"하늘 강의 천수를 이 땅에 내리소서."
- "하지만 모든 용신은 신천원에 다 모여 있다며? 그럼 용궁은 비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용궁엔 왜 가는데?"
"기우제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네, 히로마사. 개구리를 울게 하고, 풍뎅이를 괴롭히는 것을 비롯해, 당나라의 기우제가 여과 없이 전해졌을 무렵엔 강신인 하백에게 바치는 공양으로 소를 죽여 강에 던지기도 했지. '침(沈)'이란 한자가 있지? 그건 소를 물에 던지는 의식에서 온 거라네. 그 밖에도 하백을 진정시키기 위해 옥이나 여자를 바쳤지. 지금은 기우제 때 물의 신께 흑마를, 기청제 땐 백마를 바치는 의식을 거행하고, 바쳐진 말은 강이나 들로 방생하곤 하네. 불교의 주술로는 어제 칸구 스님이 하셨던 공작경법이 있지. 공작이 뱀을 잡아먹는 것을 보고 용을 제어할 거라 여겨 기우제에도 이용되고 있다네. 그리고 쿠카이 대사가 시작했다는 청우경법. 이것은 일찍이 신천원에서 동사의 쿠카의 대사와 서사의 슌빈 대사가 기우제 경합을 했다는 전설의 수법인데, 용신이 사는 연못 북변에 집을 지어 대단, 호마단, 십이천단, 성천단의 네 단을 만들고 천막으로 두르고, 집 위엔 십이천(十二天)의 기를 올리고, 도장엔 이십팔류(二十八流)의 기를 나부끼게 한 후, 붓놀림이 빠른 법사를 불러다 하룻밤에 석가가 용신들에게 설법을 하는 그림인 청우경만다라를 그리게 하지. 고승 외 승려 40명은 끊임없이 대운림청우경을 통독하고 집 밖에선 공작겨을 독송하네. 집이며 기며 천막이며 승려들의 법의며 단상의 법구며 바쳐진 꽃이며 공양이며 물이며 일체 모든 것은 푸른색으로 칠해지고, 단상의 오색 결계는 치지 않아. 지결천결 등의 결계도 치지 않으며, 모든 승려들은 각각 피갑으로 호신하고 영적인 갑옷을 두른다네."
- "구전엔, 이레에 만원의 날에 그 여의주를 금박으로 만든 용의 이마에 붙여 연못에 놓아준다더군."
"그건 누가 하는데? 야스노리 님인가?"
"고승인 칸구 스님이지. 지난번 공작경도 실패를 했으니. 맨 처음 오룡제를 주상전하에게 아뢴 건 야스노리 님이겠지만, 음양사는 신기관이나 승려에 비하면 입지가 약하지. 그래서 동시에 하게 된 거네."
- "신천원 연못의 동북쪽 모퉁이 바위 쪽에서 신공이 거행되고, 음양사의 오룡제는 그 옆에서 거행되지. 음양도의 오룡은 청우경의 오룡과는 달리, 청, 적, 황, 백, 흑색의 오룡을 가리키네. 몸에 용의 범자를 새기고 띠로 오색의 용을 만들어 그걸 받들지. "
'근청동방 청룡왕군 각령 삼만육천 권속 역치동방. 근청남방 적룡왕군 각령 삼만육천 권속 역치 남방.'
- "그러한 용들로 신천원이 가득 찬다는 소리지, 세이메이?"
"제대로 알아들었네."
"하지만 이런 수법의 내용은 극비가 아닌가?"
"물론 의식 절차는, 극비 중의 극비지."
"자네는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정말 대단하군."
"그것도 극비 중의 극비라네."
- "의식 절차를 들어보니, 영험이 있을 법도 하더군."
"그래서... 비는 내리는 거야?"
"글쎄."
'어떤 수를 쓰든, 수도자의 혼이 순수하지 않다면 비는 코빼기도 안 비칠걸.'
- "그야 모를 일이지, 히로마사. 난 칙사인 자네를 핑계 삼아, 편하게 피서나 즐기는 사이 비만 내려주면 장땡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진심이야? 그러면 곤란해!"
"자네는 참 순진하군."
'누가 보나, 피서로밖에 안 보일 거야. 그럴 법도 해. 그들은 용신을 쓰지만, 난 용신계보단... 더 고차원의 물을 원해.'
- "아아, 천덕사의 주지스님이시지."
"주지스님? 그 젊은 나이에?"
"혈통이 좋으니까. 간신 주지스님은 사실 미치자네의 증손자라네."
"뭐? 관공의 증손자라고?! 그... 그런데 왜 와카사의 절에서 주지스님을?! 자네는 알고 있었어?!"
"물론이지. 스가와라노 후미로키 님의 자제네."
"후미로키 님이라면 언젠가, --- 이 꼴을 당했던 분이 아닌가?"
"이 꼴을 당했던 분이지."
"이 분의 아들이 왜 와카사의 절에서 자네를 위해 참외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문장박사인 가업도 잇지 않고."
"그런 후미토키 님 밑에, 카모노 야소노리 님의 두 아우인 야스타네 님과 야스아키 님이 제자로 들어와 있지. 가업도 잇지 않고 말이네."
- '미모로산의 신...'
"오오... 미모로산이로군."
'이 일본의 모든 비의를 문자나 수치나 음악이나 춤과 같은 형상 속에 모두 상징화하여 숨기고, 그 본성은 역사의 기록에서조차 숨긴, 기혜와 마술의 신, 대물주...'
- "아버님, 세이메이를 이 집에 두신다면, 전 후미토키 님의 제자로 들어가겠습니다."
'야스타네 님이 가업을 버린 건,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이... 이보게. 그건 봉납된 말이야."
"그게 피리란 걸 알자마자, 칙서를 호주머니에 처넣은 자네가 할 말일까?"
"히로마사 님, 팽나무 잎으로 싼 밥입니다. 드시지요. 주인님은 안 드신답니다."
"물러가라, 미즈하."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세이메이 님."
- "와카사는 이 대기와 물의 차이가 없어, 물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요시노는 물과 대기가 확연히 구별돼 있다는 걸 알겠어. 냇물은 냇물이고, 대지는 대지고, 하늘은 하늘이야. 그런데 어딜 가든 하나같이 물살의 세기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하군."
"눈썰미가 있군, 히로마사. 와카사도 물의 나라지만, 요시노 또한 다른 의미에서 물의 나라네. 그렇기에 카네노미타케(金峯山)라 불리지. 금은 물을 낳는 법."
'점재하는 크고 작은 폭포들. 물이 풍요로운 협곡. 땅에 흐르는 물도 많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물의 양 또한 어느 곳보다 많아. 그래서 산등성이 위마저 물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기암들이 늘어서 있지.'
-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 산세를 내려다보니, 보이지 않던 진짜 산 모습과 거슬러온 산길이 뚜렷이 보여, 가슴이 다 설레는군."
"그건 수도의 기본이라네, 히로마사."
"수도?"
"산에 들어와 맨 처음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위에서 아래는 잘 보이나 아래에서 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지. 그리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도, 자기 자신은 아직 그 속세의 덤불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하지만 세상엔 보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비의의 성역을 서슴없이 흙투성이 발로 짓밟는 몰지각한 자들이 많지."
"그렇구나."
"산에 들어간다는 건, 어머니 뱃속의 태아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지. 그리고 태반을 싸고 산을 내려와 다시 새로이 태어나는 거야. 즉 살아 있으면서 환생하는 수행인 셈이지. 그렇게 재생을 거듭하며 자기 자신을 높은 경지에 올려놓는 거라네. 요시노의 수호신은, 수분봉의 수분신이 잉태한 아기를 점지하는 신인 삼신으로 변화해왔지. 하지만 잉태란 수행, 즉, 산에 머무는 수행자를 지키는 어머니산이란 뜻이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먼저 조심스럽게..."
- "하지만 용기를 갖고 자신의 덤불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중요해. 전체를 알기 위해. 또 전체에게 다가가기 위해."
"..."
"하지만, 그런 수행 따위가 필요 없는 자도 있긴 하지."
"무, 무슨 뜻이야? 이봐! 난 칙사란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주눅이 들어 있는 줄 알아? 자네는 비도 내릴 수 있을 거고, 대수룡도 비를 부를 수 있잖아."
'좋아라 노래할 땐 언제고.'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 해! 그래서 수행이 필요 없다는 뜻인가?"
"자네도, 비를 부를 수 있네, 히로마사. 주상이 자네를 기우 사신으로 간택한 건, 자네가 미나모토(源)이기 때문이지."
"뭐?!"
"미나모토, 물의 근원. 수원(水原)이니까."
"아아아- 그... 그랬던 거구나... 앗. 난 또. 성 갖고 말장난하지 마. 황자가 내려오면 누구나 물의 근원이 되지."
"후후후. 자네는 피리도 잘 불고 노래도 명창이지 않은가. 아까 했던 얘기로 돌아가면, 천성으로 사랑 받는 자들은 수행 따윌 할 필요가 없지."
"사랑을 받다니?"
"음악은, 신에 가까운 경지의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 하여간에 자네는 그냥 그대로만 있으면 돼."
"도통 못 알아듣겠어."
"그냥 있으래두."
- "산죠가산, 교자가에시산, 미산. 세 산봉우리를 수원으로 하는 세 줄기의 냇물이 합류해 하늘의 강을 이루지. 아메노야스강에 있는 궁은 구비구비 흐르는 하나의 강이 응집되어 남은 용소 속, 즉 비파산 위에 있고, 신사 아래엔 용의 입이라 불리는 깊은 우물이 있네."
'그 주인은 묘음변재천 역우자색이, 산죠가 산봉우리에 출현한 천녀를 이 땅에 불렀다는, 예능의 신으로서 그 성질은 시리이며 샘의 신(사라스바티)이며 용신의 화생이지.'
"요시노에서 입산해도 오궁이며, 남쪽 쿠마노에서 입산도 오궁이며, 서쪽으로 가면 코야를 지나 아마노, 여긴 오궁 중의 오궁, 즉 용궁이라네."
"아니... 오오... 온 하늘에 별이 가득해..."
'아메노야스강 궁. 또 다른 이름은 히노 소궁. 히는 태양 히노 소궁은 먼 태양. 즉 별이지...'
- '왜 별을 북소리라 부르는 것일까. 저 기묘한 소리는 북소리인가? 하늘은 북소리, 이 또한 별.'
"세이메이, 구름 한 점 없는데 어떻게 비가 내리지?"
"구름이 왜 없어. 뒤에 있잖나."
"오오, 용의 입에서 구름이 뿜어져 나와, 북극성을 삼키려 하고 있어. 차... 참외 숫자와 북두성의 숫자가 같은데, 세이메이, 혹시...?"
"인간의 혼은 빛을 발하며 스쳐간 흔적이, 궤적처럼 남는다는 얘기를 했지? 이건 음양도에서 말하는 반폐야. 와카사에서 시간을 뒤바꾼 식으로 걸어왔지."
"뭐?"
"실제로 여행을 떠나 땅을 밟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거라네, 히로마사. 이세의 땅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반폐에 바치고, 떠돌며 거미줄 모양의 결계를 엮어 올린 야마토 공주가 있지. 그걸 쿠니마기 여행이라고들 하는데, 당치도 않은 소리지. 자, 시작해볼까?"
"여긴?"
- "참외를 어전에 바치나이다. 제 이름은 아베노 세이메이이며, 아비의 이름은 마스키, 어미의 이름은 타치바나노 아야코이나이다. 이것은 부채가 아니라, 하늘의 참외를 가르는 신의 검이나이다."
'소리의 울림이 노래를 재촉한다. 온갖 모든 것이 비의 노래를 부른다.'
'정화가 시작된다.'
'하늘과 땅은 소리의 나선으로 서로 응답한다.'
- "씻을 수 없어. ...무거워... 선배의 정념을 내 몸에서 지울 수가 없어."
"지울 수 있다."
'누구... 냐?'
"정념은 백(魄)에서 생기는 법. 백은 땅에서 생기는 것이니, 땅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백의 세계를 접해 더욱, 연마하라. 순수함을 보전할 수 있는 혼으로..."
'아아... 저것은...'
'나 자신이었어... 저건 나였구나. 오직 기우만을 위해 힘쓰려 했는데.'
"세... 세이메이!"
'얼토당토 않은 덤이 붙어 있었군.'
"하하하하..."
"괘... 괜찮아? 다친 데는?"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수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견뎠던 그 오 년의 세월을 씻어내는데...'
"어이가 없군."
- '금세 생겼다 금세 사라지며 물을 떠나지 못하누나
자업자득이라 여기고 남을 탓하지 말며
마음의 변화를 이상히 여기지 말며
불심을 이루는데 그릇된 의심을 품지 말며
만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거늘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가장 가엾은 자도다'
- '연마되어 예리하고 순수해진 영혼은 모든 존재와 내 몸이 일체임을 일순간에 완벽하게 깨닫는다.'
"마음이 곧 신이다... 그 말이 맞아. 그게 바로 진리야."
- 아베노 세이메이의 저택에 관해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콘자쿠모노가타리(헤이안 시대 설화집)에 '세이메이의 저택은 궁궐에서는 북쪽, 서쪽 동원에서는 동쪽에 있었다', 대경에는 '궁궐 입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곳에서 궁궐의 귀문을 지켰다는 설도 있는 너무도 유명한 이곳을 조사해봤더니 놀랍게도 후지와라노 토키 공주 일족이 살았던 곳이 아닌가. 토키 공주는 물론이거니와 한때는 그녀의 부친이었던 후지와라노 카네이에도 동삼조원이 완성되어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 대경의 일화에는 카네이에가 손자인 황태자 야스히토 친왕을 하루라도 빨리 즉위시키고자 아들인 미치카네에게 카잔 천황의 양위와 출가를 권유하도록 시킨 후 야음을 틈타 카잔 천황을 궁궐에서 끌고 상동문으로 나와 동쪽에 있는 원경사로 향하던 도중, 궁궐 입구에 있는 세이메이의 저택 앞을 지나치려 하자 세이메이가 하인을 불러 '천황이 양위되시는 천변이 이미 실현되고만 모양이니 입궐해 아뢰야겠다. 수레를 준비시켜라'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우선 식신 한 명을 궁궐로 입궐시켜라'라고 하자 보이지도 않는 자가 문을 열고 나와 '바로 그 천황께서 지금 대문 앞을 지나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며 칸와 2년(986년) 6월 23일 이른 아침의 일이었다. 카네이에가 토키 공주와 동삼조원으로 이사한 것은 텐로쿠 원년(970년). 그 이후는 귀문 저택(후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저택이 된 재경 일조사방의 귀문 저택과는 다름)이라 불렸던 토키 공주 저택에는 오미라는 카네이에의 첩실이 살고 있었다.
- 텐엔 원년(972년) 대화재로 귀문을 포함한 그 일대가 전소됐는데 텐겐 원년(978년) 7월 24일 음양박사 세이메이 저택에 낙뢰가 떨어져 저택이 파손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이전 기록의 대화재 때 이 부지를 구입했든가 양도받았든가 해서 이사해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파손된 집은 아직 신축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축이었던 귀문 저택은 토키 공주의 일족 소유의 가옥임엔 틀림없지만 여전히 오미와, 오미와 카네이에 사이에 태어난 스이시가 살고 있었다. 귀문 저택은 토키 공주의 아들 센시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에게도 출생지였기 때문인지 토키 공주가 서거 -텐겐 3년(980년)- 한 후에도 이들은 종종 이복여동생을 찾아가 머물곤 했다. 스이시가 서거한 것은 칸코 원년(1003년)이고, 아베노 세이메이가 서거한 것은 칸코 2년(1005년)이므로 세이메이와 토키 공주를 둘러싼 후지와라노 카네이에 미치나가 일족이 같은 시기에 좌경북변 삼방이정에 중복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중복이라 해도 일정(一町)이 사방 120m인 그 사이를 가를 수도 없으니 어쩌면 그 한 부분인 1/4정에 세이메이가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웃은 이웃인 셈이다.
- 본편에 이따금씩 이름만 등장하는 카모노 타다유키의 차남 요시시게노 야스타네가 대내기였을 때 구입한 '지정(泜亭)'(이 역시 1/4정)이 좌경 육조에 있고 이게 종오품 이하의 하급 관리에게 과한 저택이었다고 하니 아무리 탁월한 능력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해도 역시 하급관리인 음양박사 세이메이가 귀족계급의 저택이 많은 부지를 과연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 토키 공주가 살던 귀문 저택과 지정을 둘러싼 주위 고찰에 대해서는 카도다 문예박사의 '왕조영상'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야스타네의 경우는 지정을 구입하기에 앞서 그의 문하이며 별장이나 별납을 바로 가까이에 겸비해둔 토모히라 친왕의 원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쓰여진 것을 보고 그렇다면 세이메이가 귀문 저택에 살았다는 것은 당연히 카네이에와 미치나가 부자의 뒷배가 있었으리라 짐작하니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세이메이의 비범한 능력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산하에 살며 미치나가의 부친인 카네이에가 후원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대경에 있는 일화도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방 모두를 혈연으로 굳건히 하면서도 그 최대의 적이 형 카네미치였던 카네이에에게 있어 자기편에 두고 싶었던 카네미치와는 무관하며 음양도를 깊이 연구한 세이메이는 기이한 힘을 지닌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주술자가 아니었을까. 난 학자가 아닌 만화가이기에 여기서 감히 폭탄발언을 하고자 한다.
"아베노 세이메이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모친인 토키 공주 즉, 외가 쪽의 혈연이었던 게 아닐까."
- 미치나가 곁에 늘 붙어 다녔다는 세이메이가 미치나가를 위해 주술을 구사했던 일화나 전설은 많지만 정사에서는 칸코 2년(1005년) 3월 8일에 미치나가의 딸, 중전 아키코가 오하라노 신사로 행차할 때 85세를 일기로 기우제를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져간다. 그것은 당시 권력자였던 미치나가가 그 시대의 정수였던 기술자들을 마음대로 부리던 모습이며 그 권력에 마지막까지 편승했던 세이메이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섭관가인 미치나가가 태어난 저택 바로 옆에 세이메이가 살았기에 그 자손은 훗날 자칭 사천가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 주종관계를 역전시켜주고 싶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토키 공주의 부친인 후지와라노 나카마사는 일찍이 나라에서 번창했던 아베 가문이 터전을 이주한 아베노를 포함하는 세츠노카미를 맡고 있었으며 나카마사의 부친 야마카게는 후지와라 가문의 씨족신인 하루히신을 나라에서 모셔와 요시노 신사를 창설한 사람이다. (참고로 오우닌 반란 후 우라베 가문의 후손이었던 요시다 카네토모가 대원존신을 모시며 음양도와도 관련이 깊은 요시다 신도를 일으킨다) 한편, 토키 공주의 모친인 타케코는 타나바타 가문에서 출가해 중납언 스미키요의 아내가 되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모친은 이 타나바타 가문의 여인이 아닐까 짐작된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에 문외한인 만화가에겐 도통 알 수 없는 계도 이외에 타나바타 가문을 조사할 자료도 시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아베 가문은 어떨까? 뭔가 링크할 수 있지 않을까?
- 요즘 들어 구하기 쉬워진 음양도에 관한 서적 또는 아베노 세이메이에 관해 기술된 어떤 책을 펼쳐 봐도 세이메이의 모친에 관한 내용은 명확하지 않다고만 쓰여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이미 완성되었을 거라 짐작되는 <보궤초>에 '아베노 세이메이의 모친은 시노다 신사에 사는 여우였다'고 기록돼 있으며 그 영향을 받은 정루리 '시노다의 처' 또는 타케다 이즈모 작의 '노옥도만대납감' 등을 살펴보건대 전설상의 어머니인 백여우일 가능성이 크다.
- 그러나 이 또한 정보량이 부족한 아베 가문의 계보를 가만히 살펴봤을 때 걸리는 점은 매우 화려한 세이메이의 이름이 다른 이름에 비해 걸출하다는 것이다. 돌연변이 같다고나 할까. 계도상에 홀연히 나타난 초신성적인 이 이름과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 아들들 요시히라, 요시마사의 이름과 비교했을 때, 솔직히 이 남자는 아들들에게 애정이 없었던 게 아닐까 여겨질 만큼 계도 선상에 이 세 사람을 잇는 눈에 보일 만한 연결고리를 도저히 찾아낼 수 없다. 이때 비친 한줄기 빛이 바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히라천으로 안내해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에게 소개한 카네우리 키치지의 이름이다. 본명을 타치바나 지로스에하루 즉, 키치지와는 같은 타치바나 가문의 차남을 의미하고 있다. 어쩌면 세이메이는 아들들의 이름에 타치바나 가문의 돌림자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들들의 모친의 이름이 아니라 세이메이 자신의 모친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그는 전설상이긴 하지만 백여우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橘(키츠) = 吉(키츠) = 狐(키츠). 橘(음독:키츠, 훈독: 타치바나) 가문의 여자였기에 여우(음독: 키츠, 훈독: 키츠네)의 자식이라는 전설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 전설을 토대로 한 <보궤초>에서는 당나라에 간 키비노 마키비가 양무제의 시험에 들었을 때 아베노 나카마로의 망령의 도움을 받아 난국을 헤쳐 나온다. 이 은혜를 마키비가 귀국할 때 받은 <금조옥토집>을 훗날 나카마로의 자손 즉, 아베노세이메이를 찾아내어 줌으로써 갚았다는 일화도 있듯이 사료 속에서는 키비노 마키비는 아베노 나카마로와 함께 당으로 건너간 유당사이며 귀국 후에는 타치바나노 모로에의 책사 역할을 했다. 타나바타 가문도 아베 가문과 견줄 만한 고대 씨족으로 부합되는 부분이 매우 많다.
- 이즈미 시키부가 남편 미치사다와 헤어진 것은 초호 원년(999년)경 시의 주제가 됐던 미치사다가 옛날에 유명했던 시노다 신사가 있는 이즈미카미였기에 불려진 노래겠지만 그는 타치바나 가문의 사람이며 미치나가의 가사이기도 했다. 이들의 부합 또한 우연의 일치일까. 물론 이들의 부합은 아베노 세이메이와 시노다 신사의 여우를 연관지어 '세이메이의 어미는 시노다 신사의 여우이다' 라는 전설을 만들어 여우 신앙과 결부시키거나, 그럼으로써 세이메이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적인 면을 긍정적으로 널리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세이메이의 전설을 이용해 암약했던 음양사들이 퍼뜨린 소문일지도 모른다. <보궤초>가 완성되고 아베 일족이 궁궐 호위를 담당했던 중세가 매우 찜찜한 구석은 많지만, 역사에 문외한인 만화가는 중세 이후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아베노 세이메이의 모친' 의 고찰에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 후의 고찰은 전문가에게 맡기고자 한다.
- 오카노 레이코
9권
- "흐음."
"그렇게 말하면 알 거라며, 그 노인네는 사라져 버렸어."
"으-음. 가과의 주술이로군."
"가과? 그게 뭔데?"
"과일 공격이야. 쉽게 말하자면 잉태의 주술이지. 이런, 이런. 외출할 일이 생겼군."
"뭐? 노인네가 온다고 했다니까."
- "산은 여전합니까?"
"여전하다마다. 너구리니 여우니 곰이니, 짐승들이 득실대지."
'사... 산속에 짐승들이 득실대는 건 당연한 거잖아.'
"히로마사, 탄츄 선생이 말씀하는 건, 눈앞의 신통력에 눈이 멀어 너구리나 여우에 홀리는 수도자나 수행자들이 많다는 뜻이네."
"산에서 만난 수행자 친구가, 각자에게 여우와 너구리가 씐 걸 보고 서로를 깔보고 난리더군. 남의 허물만 보이고 자기 허물은 깨닫지 못하는 법. 짐승이긴 해도 요물이라 요력이 있지. 그걸 수행으로 생긴 신통력이라 착각하는 거야."
"개중엔 자진해서 빙의되는, 수행자 측에도 못 낄 이들도 있지요. 그런 놈들은 금세 알 수 있지. 짐승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
"그... 그게 흔한 일인가?"
"흔하다마다."
"흔하다마다."
- "난 도통 못 알아듣겠네. 전에 자네가 요시노에서 수도자들이 얼마나 심오한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줬잖나."
"도리를 벗어나면 모든 게 보기 흉할 뿐이지. 그렇다고 여신의 품에서 그런 함정에 빠진 자의 얘기 따윈 입에 담을 수도 없지."
- "어느날 천상에서 어렴풋이 음악소리가 들려 왔었다더군. 피리 둘, 생황 둘, 쟁과 비파가 각각 하나, 북이 하나. 이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환상적인 가락을 수상히 여긴 큰스님이 음악소리를 따라가보았더니 오색 구름이 드리운 저택이 나오며, 어느 고귀한 분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네."
[요놈들! 어서, 나오지 못해!]
"아까 그분이네."
"그렇군요."
[옳지, 옳지, 여우야, 여우야, 통으로 돌아오렴... 아니, 도망을 치다니! 거기 서라!]
"즉, 가령 넘어지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불숙 나와 도와주고,"
[으왓!]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거기 서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받쳐주어 다치지 않게 하죠."
[뭐야? 뭐가 좋다고 웃어!]
"그런 식이겠죠."
"그렇다니까."
- "자... 잡아왔네."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오오, 잡아왔군. 정말 대단해. 자네가 얼른 받아두게."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중대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내. 그래. 자네는 신의 은총을 받고 있어. 그래서 음양사 측에서 다소 난폭한 짓을 해도, 목숨을 잃는 일은 있을 수 없지.'
"뭐야? 뭐가 우스운 거야? 왜 아까부터 실실 웃어?"
'가르쳐 줄 순 없어.'
"아니네."
- "노고 치하 한 번 거창하다 싶어서 말이야."
"그 참외가? 도사가 자네가 잊고 간 물건이라던데..."
"기우제에 대한 사례라네."
"왓, 어쩌려고?"
'이런 이런... 옥잔이로군...'
"참외 안에서 술잔이..."
"틀림없이 이 모양... 이 모양이야, 히로마사."
"뭐? 무슨 모양?"
"별이지."
"별?"
'먼 별의 모습, 천둥의 모양. 쟁기별인 참수... 폭풍우를 정화하는 별, 참수...'
(역주 : 참수. '삼대성', '쟁기별'이라고 부르며 두뇌를 상징하는 별이고 병법의 별이기도 하다. 참은 삼이니 모든 것이 세 번이란 의미도 지닌다.)
- '서왕모가 머리에 꽂은, 옥승... 심장의 고동...'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구혈. 생명의 원천. 원초적인 물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잔.'
"환상적이군."
'도통 못 알아듣겠네.'
- "왜?"
"왜긴... 나도 가끔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어질 때가 있지."
"드디어 내 매력을 깨달은 거야? 아니면, 마음 써서 날 유혹하러 와준 거야?"
"그렇게 되나?"
"마음을 지나치게 썼는걸."
- '생황. 봉황이 날개를 접은 모습. 봉황이 날개를 펼친 손가락의 움직임. 그 소리는 봉황의 목소리...'
"혹시, 나라토시 님? ... 세상에! 주안상도 마련이 돼 있어."
- "이건... 좀 전의 생황이잖아. 아름다워라. 이렇게 아름다운 생황은 난생 처음 봐."
'나리토시도 참. 어느새 이런 미인을. 부럽군.'
"만져보고 싶은데..."
"그러시죠."
'여자...? 나리토시 님이 아냐. 내가... 이 댁의 공주 방에 와 있는 건가? 마... 맙소사. 게다가 다른 남자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큰일날 일을. 없는 척을 해도 방 안에 있다는 건 변함이 없어. 마주치면 뭐라고 변명을 한담...'
"..."
'이... 이럴 땐 먼저 이름을 말하는 게 도리겠지?'
"나... 난...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아니... 반대인가? 이름을 가르쳐주면 속박을 받게 돼. 아뿔싸...'
"나리. 나리토시 님은 제 이복 오라버니이십니다. 어머니는 후지와라노 야스타다의 혈통을 잇는 분이고요."
"오오... 생황의 명가이신 아스타다 님의 혈연이시군요."
"제게는 숙부님이 되시죠."
"그래서였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생황을..."
"..."
"좀 전의 훌륭한 가락도, 공주가?"
"저는 못 붑니다. 나리께서 부시지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관과 관이 밀착되어 흠잡을 데가 없어. 이름이 뭡니까?"
'이렇게 귀여울 수가...'
"... 와카타케..."
"와카타케...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안에서 봉황이 춤추고 있는 듯합니다."
- "뭐?!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자네의 이슬보기 일을 모르는 건 아마 자네 뿐일걸."
"으으으... 방위바꾸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어. 눈치를 챈 건 사흘째 밤에 떡이 나왔을 때였어."
'이 친구... 완전히 덫에 걸려든 모양이군.;'
"게... 게다가, 난 신침 의식인 줄도 모르고..."
[생황은 부는 것도 좋지만, 청석을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갈고 있는 동안 왠지 봉황이 날아올 것 같은 기분마저 들거든요.]
[...]
"세시 정도 계속 청석을 다듬은 후, 생황의 조율을 해버렸어."
'가는 동안, 공주를 누가 업어가도 몰랐겠군.'
"그건 그렇고 세이메이, 정말 아름다운 생황이었어. 와카타케라는 이름이었지. 그렇게게 아름다운 자태의 생황은 난생 처음 봤네. 그 소리 또한, 날개짓 소리 같았지. 자네에게도 들려주고 싶을 정도야."
'날 불러도 되나?'
"그래서, 공주는 어떠셨나?"
"... 공주는... 자꾸만 생글생글 웃으시던걸."
"착한 공주가 아닌가."
"응. 맞아. 그래서 세이메이."
"돌아가려고?"
"미안하네."
"뭘."
(역주 : 이슬보기 = 혼례. 신침 의식 = 첫날밤. 세시 = 여섯 시간.)
- "그런데 세이메이. 대장군이 누군가?"
"태백의 정령, 즉 금성이지. 만물을 살벌하게 만드는 주인공이지만, 지금의 자네와는 상관없겠지."
"그런가."
"하지만, 좋은 이름이군."
"뭐가?!"
"와카타케 말이네. 공주의 이름이지? 보통 본명은, 남편이 될 남자에게만 가르쳐주는 법이라네. 자네, 몰랐었나?"
'흥.'
"세, 세이메이, 자... 자네..."
"자, 힘내라구, 히로마사."
- '아아... 저거다... 시게오카노 카와히토 님이 조정했던 태을식반...'
- "또 어지간히 힘든 모습으로 편지를 쓰고 있군. 사람 모습이 편지 쓰기에 훨씬 편하지 않나? 이해못할 친구야."
"당연하지. 나도 그런 모습으로 편지를 쓰기는 힘들어."
"세이메이..."
슥.
"세... 세이메이, 방금 뭐였어?"
"아아... 하인이었네."
'진짜?'
- "그나저나, 이 정원 좀 어떻게 하게. 이건 완전 오조의 호리강 귀신의 집과 같은 지경이잖아."
'뜨끔.'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왔나? 궁궐에서 돌아가는 길 아닌가?"
- "이건 안 된다."
"세이메이, 이게 뭐야? 또 내가 모르는 걸... 수상해. 밤중에 뭔가 몰래몰래 하고 있고."
"아직 열어보면 안 된다. 조정처리 중이야."
"새 물건이지? 꺄악. 세이메이, 요즘 표정이 시무룩하네."
- "날 좋아해서 그래?"
"좋아는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다."
- "하츠네."
"네."
"저 궤를 마쿠즈가 만지지 못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 "열흘쯤 전날 밤에 자신전과 인수전 사이에 쥐들이 떼를 지어 달아나는 것을 봤다지 뭔가. 그리고 간밤에도 자신전 난간 위에 사람 형상이 서 있는 걸 보셨다더군."
"아아아아."
"세이메이?"
"괜찮으니 계속하게."
- "난감하군."
'생무지에게 목격을 당하다니.'
"왜? 큰일인가?"
"아니, 짚이는 게 좀 있어서."
'죄 짓고는 못 사는 법이라니까.'
"좀 도와줄 수 없겠나?"
"군기처라... 흠... 가볼까. 오늘 밤에..."
"오늘 밤?!"
"내일부터 천태종 수장인 엔쇼 주지스님이 인수전에서 치성광법을 시작하고, 청량전에서는 대반야경 통독이 있거든. 남 몰래 입궐해 스님과 맞닥뜨리고 싶은 기분은 아냐. 오늘 밤은 안 되나?"
"안 된다고는 안 했어. 괜찮아."
- '궁궐이라... 가지 않고 끝내려 했는데.'
"결국, 가는군.'
- "세... 세이메이, 왜 이럴까? 갑자기 왠지 가슴이 설레."
"흠."
- "이건 대롱여우잖아?"
"조정 전이라 장난만 치고 다녀서 말이야."
'아깐 분명히 두루마리였는데... 어느새 세이메이의 품에...?'
"이제 좀 마시지 그래?"
"뭐?!"
"손에 든 술 말이야."
"아아아... 후우... 아무튼 아키타다 님의 일은, 자네만 믿겠네."
"..."
'혼자... 다... 마시는 거야...?'
- "그런데 세이메이. 난 다른 게 걸려. 올해는, 뭔가 이상해. 여름엔 자네가 기우제를 올렸는데 아직도 염천이야. 내일부터 인수전에서 거행된다는 술법이란, 어떤 거지? 올해는 수법이란 소릴 여러 차례 듣는군."
"천변소제를 위한 수법이네. 천변이란 일월 오성의 변이나, 요상한 별이 천황의 탄생 별을 범하는 일이지. 올해는 그 천변이 끊이질 않았어. 4월 4일엔 달과 태양의 합숙이 있었고, 다음 5일엔 달이 하북을 범했지. 같은 날 백주대낮에 금성이 보였고, 7일엔 토성이 견우성을 범했고, 18일엔 달이 북두칠성을 범했고, 5월 1일엔 일식이 있었지."
"그... 그렇게나 많았나?"
"천변은 혁명내란의 전조라고 하는데, 치성광법은 그 천변을 제거해 국가안위, 옥체보존에 강한 효과가 있다고 하여 천태종이 내세우는 수법이지. 치성광불정이란 모공에서 치성의 빛과 불꽃을 발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일월성신 등의 빛과 불꽃이 있는 하늘을 주관하기에 치성 광명을 발해 천변을 제거한다는 수법이네. 그래서 허공에 하늘과 별자리의 궁신들을 모셔 놓고, 모든 하늘과 궁신과 별자리의 진언을 칭송하지."
- "그럼, 천변이 또 있었나?"
"아니. 이 수법은 천황의 탄생 별의 보존을 염원하기도 하지. 천황의 탄생 별, 일자금륜, 즉 북극성이지."
"그건 요즘 주상전하의 건강이 안 좋아서인가?"
"..."
"세이메이. 사실, 마음에 걸리는 건 주상전하의 일이라네. 요즘 특히, 주상전하의 건강이 좋지 않으셔."
- "흰 자갈이 캄캄한 밤에 빛나니 아름답군."
'이게... 히로마사에겐 그렇게 보이는 걸까? 이건 이미... 관공이 어쩌고 하는 문제가 아냐.'
"왜 그래, 세이메이?"
"군기처를 보러 가세."
"그러세."
- "나요, 히로마사 중장."
"그 목소리는, 죠조 스님?"
"저택 건으론 신세 많이 졌네, 세이메이."
'쳇.'
"죠조 스님이었군요. 어떻게,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조용히 자려 해도, 이 주위가 너무도 소란스러워서."
"그... 그건..."
"후후후... 하지만... 말해두는데, 우대신이 본 건 내가 아니오."
"어... 어떻게 그걸 아시죠?"
- '남쪽 정원 지하에 모여 숨어 있지. 게다가 지상은 지상대로 전당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이러니 동궁의 정신 이상이 심각할 수밖에...'
"중장님, 우대신 일은 염려 마시오. 내일부터 히에이산의 엔쇼 스님이 인수전에서 수법을 하시오. 그러면 진정될 거요. 그렇지 않은가? 세이메이."
"죠조 스님이, 그러시다면 그렇겠지요."
"뭐라?"
"아닙니다. 평조의 목소리로, 제 가슴을, 옥죄지 마십시오."
'진정된다는 말씀입니까, 죠조 스님?'
"흠..."
"중장님. 이만 가실까요?"
"벌써 다 끝났나?"
"그건 그렇고 세이메이, 모레는 경신인데 물론 공부이니 참석하겠지?"
"공교롭게도, 부르심을 못 받아서요."
"그렇다면, 야사카의 내 암자로 오지 않겠나?"
"그건... 입궐하는 것보다 더 겁나는군요. 사양하겠습니다, 죠조 스님."
"그래?"
- '매력적인 목소리야.'
"자네가 말한 대로 캄캄한 밤에 맞닥뜨렸군."
"귀신의 집을 허물었다고, 야사카로 오라니 심히 불쾌하군. 야사카의 수도자들은 그를 신봉해 마지 않지. 무심코 갔다간 뭇매질을 당할걸."
"그래, 그 집의 주인이었구나. 우리 사이에선 아주 매력적인 미성의 소유자로 통하는데. 게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음률을 외우고 관현악에도 능통하시지."
"걸어다니는 가락피리인 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걸어다니는 가락피리?'
"목소리의 마력, 소리의 마력, 별의 마력. 뭐든지 알고 있지. 상대가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반응할지를 알고, 동시에 핵심을 사용해 상대의 핵심을 향해 명령을 내리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어."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철썩 같이 믿게 만드는 능력도 대단해."
"자네는 정말 동업자에게 깐깐하군."
"동업자는 무슨."
"그나저나 죠조 스님은 어떻게 아키타다 공의 괴이한 일을 알고 있었을까."
- "히로마사, 관공이 자네 조부이신 토키히라 공에게 씌었을 때, 조복 명을 받은 건 죠조 스님이었지. 열아홉이란 젊은 나이였는데, 죠조 스님은 부친인 미요시 재상과 함께 토키히라 공의 댁으로 갔지. 가지를 하자 관공은 청룡이 되어 토키히라 공의 두 귀에서 나타나 미요시 재상에게 씌었어. 그때 미요시 재상의 만류로 죠조 스님은 관공을 조복하지 못했지. 그날 밤 토키히라 공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네."
- "엇..."
"히로마사. 내게... 의지하지 마. 내게 의지하지 마. 의지하면 자네는 둔해져. 판단이 둔해지면 행동이 느려지지."
"미... 미안하네. 한눈을 팔고 있었네."
'한눈을 팔고 있었던 건 바로 나야.'
"돌아가세."
"세..."
"나..."
'날 경유하게 만들지 마. 이 친구는 어지간한 일로는 죽지 않아.'
"뭐야?"
'하지만 완전히 보호받는 건 이 친구의 본성이 온전히 드러났을 때야. 날 경유시키면 지체 돼.'
"..."
'주제 넘는 일이라 말 못하겠군.'
- '분명히... 타마키엔 가지 않았어... 그게 실수였다고? 다 내 책임이라고? 아니잖아... 칠월의 기우제는 완전완결했어. 이 미래상이 시작된 후, 난 내 손이 미치는 한, 모든 잃어선 안 될 것을 줄곧 정리해왔단 말이야. '
- '시작됐군. 이렇게 되기까지 한참 걸렸군. 인수전의 식반이 소멸될 때, 이쪽 식반으로 불러모을 수가 있어.'
- "가마는 아직이냐? 가마를 대령하라. 온명전의 검과 옥쇄는 빼냈느냐? 신의 거울은? 의양전의 보물은 빼냈느냐?"
"워낙 일손이 모자란 지라..."
"안 된다! 불타게 할 순 없다!!"
- "오... 온명전은 이미 불타 쓰러졌다 하옵니다."
"설마... 신... 신의 거울이? 누, 누가 가서, 신의 거울을, 찾아오너라. 불탈 리가 없다! 어서 가라! 의양전을 열어라! 불길이 번지기 전에 보물을 빼내야 한다!"
- "남쪽 하늘에 팔만 사천 신주, 하나는 하늘이요, 둘은 땅이요, 셋은 사람이니 삼삼구요,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북두에 칠성이 있으니, 제일성을 추, 이성을 선, 삼성을 기, 사성을 권, 오성을 형, 육성을 개양, 칠성을 표광이라 하니라."
- '육임에 열두 신장이 있으며, 둥근 하늘에 방향이, 천반에 열두 달의 신이, 지반에 열두 십이지. 북두의 핵을 뚫고 나가, 식반의 위쪽에 열두 신장.'
"북에서 남으로 돌아, 전일 백사, 전이 주작, 전삼 육합, 전사 구진, 전오 청룡. 목화토의 신으로서 동방에 있는 자. 북으로 뒤돌아, 후일 천후, 후이 대음, 후삼 현무, 후사 대상, 후오 백호. 금수토의 신으로서 서방에 있는자. 한없이 넓은 하늘은 허성이요, 천일신은 토장이라. 자유자재로 바로 돌기와 거꾸로 돌기를 하며, 열두 신장, 천일신으로 말미암아 주인이 되며,"
'와라.'
"천(天) 자를 바꾸어 수(水)를 만든다. 천일신이 물을 만들고, 지육신이 이를 이룬다. 그런 고로 육임이니라."
'인수전의 태을식반이 소멸돼 새로운 육임반이 탄생한다.'
- "히로마사, 우린 이제 피신하려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다가가지 않는 게 상책이야. 다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 아닌가."
"히로마사 님!"
'누구...?'
"히로마사! 가지 마, 죽어!"
"히로마사 님. 어디를 가십니까?"
"그대는 누구요? 어찌하여 피신하지 않고 그런 차림으로 이런 곳에 있소?"
"아베노 타카코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요전에, 악소요록이 있는데 누가 갖고 나왔겠소?"
"공주님들은 모두... 몸만 겨우 피신하셨습니다."
"상녕전부터는 갈 수 없네. 시게노루 님이 마루청을 다 걷어버리셨어."
"오오, 노리미츠. 불은 어디까지 번졌는가?"
"여경전에선, 이걸 꺼내는 게 고작이었어."
"누군가 대수룡을 갖고 나왔겠지?"
"모르겠네. 아무튼 모조리 불타고 있어. 심지어 도적놈들까지 설쳐대고 있지."
- "히로마사 님. 이걸 입으시지요. 젖은 비단이라면 불이 붙기 어려울 겁니다."
"오오."
"키미노 마키비 님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악소요록을 잿더미로 만들 순 없지요."
"그대도 여길 서성대면 위험하오. 이걸 갖고 몸을 피하시오."
- "부... 불타고 있어."
'내 불꽃을 피울 생각은 없었는데...'
"대롱여우! 물!"
- "못 살아. 아무리 궁궐이 불이 났다 해도 그렇지."
"이 무슨 난폭한 짓이냐. 마쿠즈, 호들갑 떨지 마라. 금방 진정된다."
'아아, 용수철 모양으로 몸 안에 파고 들고 있어. 내 양기인 뱀이 보인다. 사뭇 붉은 빛깔이군. 투명하고... 반들반들 빛나고 있어.'
"자신의 불꽃까지 피워 고열을 내다니! 자신까지 태워버릴 작정이야?!"
- '동북... 귀문의 히에이와 북서... 명계로 통하는 아타고. 남쪽 정원에 모여 있는 원혼과 망령들이 열린 아타고로 흡수되어 간다...'
"크으윽..."
'궁궐의 화재는 통과의례란 말인가. 이제... 끝났군. 등잔불의 불꽃조차 냉엄하군.'
"세이메이!"
'이번엔 내 차례로군.'
- "바깥의 대낮 볕은, 배는 물론 눈에도 혼에도 아직 너무 버거워!"
'막혀 있던 회로를 열어 통하게 하면, 두뇌는 선명해진다.'
"손가락까지 그렇게 야위었으면서, 정신은 말짱해?!"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단전을 수련하면, 내 혼은 쉽게 땅과 하나가 된다.'
"... 난 몰라."
- '정말이지 대낮의 볕 속에선 혼을 억제해두지 않으면, 땅에 발을 못 디디겠군.'
-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어.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어, 세이메이."
"당연해. 혼자의 몸으로 화재를 막을 수는 없지. 소멸 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네, 히로마사. 끝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10권
- '세이메이, 기다려! 왜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 쾌차한지 얼마 안 됐다며. 왜지?'
"세... 세이메이..."
"받게."
"뭐야? 술이잖아. 내가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줄 아나?"
"물이네. 목마르지 않나? 아타고가 화재방지의 산의 이유는, 불 산이기 때문이지. 물이 없단 뜻이네."
"아니, 잠깐!"
- "보게, 히로마사. 저 시커먼 곳을."
"그랬군. 저기뿐이었군."
"그렇다네. 소실된 건 저기 뿐이네."
"음. 금세 다시 세울 수 있겠군."
""금세 원상 복구할 수 있지. 천궁한다 생각하면 그만이야. 덕분에 올 겨울은 궁궐 폐자재로, 도읍 백성들이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좋은 겨울이야."
"뭐?"
"좋은 일이야. 그것도 환장하고 가져가겠지. 난리도 아닐걸."
- "기다려주게, 세이메이!"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걸까. 난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어.'
- "이보게! 나네. 들어가네."
"무슨 일인가?"
"아하아... 세... 세이메이."
"아타고에서 내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서, 혹시 죽었나 싶어서, 걱정이 돼서 살피러 온 거로군?"
'두... 두쿵두쿵두쿵두쿵.'
- '하나도 안 변했군. 괜히 걱정했네.'
"괜히 걱정하긴, 히로마사. 날 보러 와줘서 기쁘네."
"어...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지?"
"자네가 상담거리만 가져오지 않으면 나도 느긋하게 술을 마실 수 있지."
"그... 그런가?"
- "오오, 군밤과 은행이잖아!"
"후시미의 산밥이네."
"군침이 돌아 못 참겠군."
- "왜 내 건 껍질이 벗겨져 있고, 자네 건 안 벗겨져 있지?"
'나도 따끈따끈한 껍질을 까고 싶은데...'
"그런 손으론 힘들지 않겠나? 히로마사."
"아... 그랬지."
'그래... 이런 손으론 주상전하를 위로해드릴, 피리조차 불 수 없어.'
"미안하네. 깜빡 잊고 있었군. 털머위를 으깨서 만든 연고를 준비해뒀지. 화상에 아주 좋네. 손을 내보게, 발라주겠네."
"뭐?"
"괜찮으니까 이리 내놔. 오른손만인가? 팔도 데였군."
'이건 유모가 하는 일인데.'
- '내 고유의 미세한 파동은 다른 이들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엄청난 착각에 심취해 사람들이 매혹되지. 스스로 깨닫고 있다는 게 슬픈 일이군. 그런 파동을 가졌기에, 비구니... 그대의 몸이 화를 입었다.'
'이 사내는... 누굴까. 날 치료하고 있는 이 자는... 눈앞에 있는데도... 왠지... 이 자는... 마치 안개 저편에 있는 것 같아. 이 사내는 누굴까?'
"이제 됐네."
'헉...?'
"다음부턴 색시에게 발라 달라 하게."
"뭐?"
"꾸... 꿈인가?"
- "아..."
'죠조 스님.'
"... 들켰군."
"뭘?"
"뭐긴. 먼저 온 두 손님이지."
"먼저 온 두 손님?!"
"... 자네와... 자네를 감싸고 있는 용 말이네."
"뭐? 용?!"
"용을 알아차리고 지금 자네처럼 용이 안팎을 샅샅이 탐색하기 전에 도망가는 게, 올 테면 와보라고 알려줘도 알려준 뜻도 전혀 이해 못 하는 치토쿠 따위와는 크게 다른 점이지."
'용이라고?!'
- "어... 으..."
"신경쓰지 말래두. 순수하고 예의 바른 용이야. 손가락이 다 나으면 피리라도 불어주게."
"내 몸이 뜨거운 건 용 때문인가?"
"기뻐할 걸세."
"이봐..."
"아아... 고려 음악이 좋겠군. 듣고 싶은걸."
"세... 세이메이, 대체 어... 언제... 어디서 용 같은 걸... 있긴 있는 거야?"
"아타고와 오악의 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 열리는 순간 이곳을 발견하고 와버렸다네."
"그... 그래서 죠조 스님이 온 거야?"
"아니. 죠조 스님은 이곳에 백제의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
"뭐?! 배... 백제의 것?!"
"모처럼 와줬으니, 이번엔 내쪽에서 가줘야지."
"뭐?"
"아마 야사카에 있을거네."
- '화가 났어.'
"난 부탁한 적 없다."
"... 마쿠즈는 내가 얼마 전에 내가 병이 나서 화가 난 거네."
"병이 아니잖아? 자칫 잘못했다간 목숨을 잃었어."
"마쿠즈. 난 어지간한 일로는 죽지 않아."
"더 미워. 까딱하면 폐인이 된다구! 난 폐인한테 얹혀살긴 싫어."
"폐... 폐인?"
'당연한 말을.'
"체내에 잔재하며 평상시엔 잠들어 있는 영적인 힘(쿤다리니)이 있는데, 그 힘을 작동시키는 육체가 준비되기 전에 등줄기를 오르면 인간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회로가 타서 끊겨버려 그 인간을 쓸모 없게 만들고 마는 경우가 있지."
'뻐끔뻐끔뻐끔.'
"이런 도를 실천하는 자에겐, 종종 있는 사건이라네."
- "대체 어떤 병을 앓은 거야? 그렇게 걱정시켜놓고 산이나 오를 상황이 아니었잖아? 무모하기 짝이 없군."
"난, 무모한 짓은 안 해. 히로마사. 아타고에도 올라야 했기에 올랐고, 불꽃도 태워야 했기에 태웠을 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네. 등줄기를 오르는 영적인 힘에는 물과 불의 두 종류가 있는데, 쌍방이 균형 있게 오르면 비극적인 파괴는 생기지 않아. 그럼으로써 인지를 초월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육체가 완성되어 가지. 하지만 미숙한 자가 무모하게 그 힘을 건드리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야. 또 자각 없이 불길이 치솟아 인체가 자연발화해 버리는 자도 있고. 또는 샘이 치솟아 막지 못하면 극도의 우울한 상태가 되고 말지. 와카사 태생의 비구니가... 완성되진 않았지만... 무녀 체질의 샘의 여인이었어."
- "더, 듣고 싶은가?"
'더 이상 묻지 마.'
"아..."
'두근두근.'
"아냐... 됐네. 그나저나, 세이메이. 난 말이야. 난생 처음 그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당했어."
'됐다더니, 끝까지 듣고 싶은 건가? 사실 늘 목숨이 위태로운 일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군.'
- '아아, 내 탓인가? 내가 곁에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군. 그래서 난 말할 수 없었어. 화재가 난 동안 이 친구 곁에도 있을 수 없었지. 왜냐하면.'
[내게 의지하지 말게.]
'히로마사만을 위해 준비된 과정이었으니까. 순수한 이 친구가 통과의례를 치른 모습이 눈에 선해. 위기에 맞서는 용기를 저지하는 유혹의 목소리조차 이 친구 귀엔 들리지 않았지.'
[가지마, 히로마사. 죽어.]
'그리고 무녀에게 받은 물건...'
"세이메이, 그러고 보니, 상녕전 우물가에서 아베노 타카노를 만났네."
"자네에게 건네줄 게 있었나 보지."
"그... 그랬네. 물을 적신 옷을 주었지. 그덕에 중요한 서책을 무사히 빼낼 수 있었지."
'왼팔에 감았었군. 어리석긴. 그러다 팔을 통채로 잃을 수도 있는데. 나더러 무모하다구?'
"하지만 불길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잃어 순간 죽는구나 싶었어. 어찌나 뜨겁던지. 정말, 무서웠네."
- "자넨 그럴 때도 자못 태연하더군. 자넨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묻지 마. 내가 말해줄 것 같아? 곤란해.'
"글쎄... 어떨까... 하지만 각오는 돼 있지."
'아니, 이젠 상관없어.'
"즉, 항상, 언제나, 무슨 일에 맞설 때든 난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네."
"..."
"그게 내 예의지. 무엇에 대한 것이냐고? 내게 생명을 준 자와, 내 생명을 빼앗으러 오는 자에 대한 예의라네. 예를 들면 지금도, 난 이 여정이 생사와 연관되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각오는 돼 있지."
'이 둘은 같지만 올 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지.'
"그런 거라네."
'아... 맙소사. 그래. 그래서 그때 눈물이 멈추질 않았구나.'
- '아... 용의 꼬리다... 머리는 세이메이를 따라가고 꼬리만 남아 있네. 어마어마한 용이구나. 비늘이... 아름다워라. 청은색과 금색과 투명한 복숭아색. 용아... 난 보았노라. 저 자의, 내면에 있는 절대적인 고독을... 깊고 깊은 어둠 속에, 눈을 감고 홀로 앉아 있던.'
- '용이 있으니, 강력하고 거친 파동으로 내 손조차 잘 보이지 않는구나.'
"크흠. 자네란 친구는, 하아, 참 내 처지를 괴롭게 만드는군."
'이 친구까지 그런 소릴 하다니.'
"하지만 세이메이. 실은 내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았던 건 불길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다 타버린 궁궐의 잿더미 속에 서 있을 때였어. 잃어버린 게 너무 커서, 어찌 되찾아야 할지를 몰라 멍하니 서 있었지. 그때, 자네가 날 거기서 꺼내줬어. 이럴 때 등산을 시키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친구라며 부아를 냈지만, 지금은 자네가 그런 이유를 알 것도 같아. 코를 풀었더니 속이 다 시원해졌네."
'이런 방법도 있군... 용은 인간 내면의 하늘과 땅도 잇는 모양이군. 그래.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히로마사 한 사람이라도 화재의 공포와 거대한 상실감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오오, 야사카의 탑이야."
'궁궐 내의 긴장감이 풀어질 거야...'
- "바... 방금 뭐였어?"
"아아... 우리가 왔다는 걸 죠조 스님에게 알린 거지. 자네가 있는데, 누가 돌팔매질이라도 하면 곤란하잖나."
"저, 백사가 말이야?"
"그래. 사신이지."
'저 뱀은 보이나 보군.'
"내가 들어가야 할 곳에 도착한 사실을 하늘에 알린다네. 뭐,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멋대로 가버리곤 하지만. 방금 그 녀석은 선창이야. 와카사부터 따라오고 있었지. 기억하는가? 천덕사의 구청수를... 머리에 백사를 얹은 용마가 날아와 그 땅에 물이 샘솟았다는. 구란 용... 머리가 백사란 점이 특색이지. 어디, 도착했군."
- "허어..."
"왜... 왜?"
"아니네. 전망이 좋군."
'비밀 의식 따윌 몰라도 될성 싶은 자는 되게 마련이지. 두 다리가 대지에 우뚝 선, 거룩하고 성스러운 진정한 인간. 통과했군. 본래보다, 전보다 훨씬 강하게...'
- "아...!"
'이 친구의 순수함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순수한 심신의 건강함은 음색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이 친구의 존재로 인해 구원될 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서 손가락이나 나아 피리를 불어주게."
"뭐?"
'괜한 말을 했군. 말이 헛 나왔어.'
"뭐야? 피리가 필요했어?"
- "관공의 원념 때문이라는 둥 소문이 파다한 모양인데, 그 화제의 본질은 일종의 정화작용이지."
"궁궐의 악창 치료인가요?"
"내 행적을 여러모로 알고 있나 보군."
"죠조 스님... 실은, 전부터 꼭 한 번 여쭙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뭔가?"
"스님은 열아홉살 때, 토키히라 공에 씐 관공 원혼의 조복을 명 받으셨는데, 도중에 기도를 멈추셨습니다. 그 때문에 스님의 스승이셨던 우다법황이 뒷마무리를 하시고, 스님은 히에이산 요코강의 농엄원에 삼 년간 은둔하셨지요. 그사이 관공을 위령하기 위해, 초상을 걸고 사계절 내내 꽃들과 관현을 울리셨다 들었습니다. 꽃과 관현을 바쳐 위령함은, 조복할 법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스님을 비방하는 자도 있었지요. 죠조 스님..."
"..."
"... 관공의 뒤에 있는 그 분은... 바로... 쿠쿠리히메(菊理媛)지요?"
- "관공이 아끼던 백국은, 단금지계인 헤이이의 손이 스님이 포기를 나눠주신 것이지요."
'츠키지 맞은 편을 흐르는 국화 호수... 쿠쿠리히메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사이를 맺어준 여신. 우선과 좌선을 잇는 신. 여자와 남자, 끝과 시작, 안과 밖, 육체와 혼을 잇는 여신. 하쿠산에는 우주생명의 모신(시라야마히메)과 대지 모신(이자나미)의 두 신을 잇는 여신(쿠쿠리히네)이 계시지. 파괴와 탄생. 그 또한 하쿠산의 기능 중 하나다.'
- "히로마사 중장, 그 손은 황금의 손이요. 어서 나아 음악을 연주해주시게."
"크크크크..."
"그 말은, 아까 세이메이에게도 들었지요."
"이런... 피차 쓸데없는 소릴 했구먼."
'이 두사람 뭐야? 하필이면 다리를 건너기 전에 같은 소릴...'
"그나저나 세이메이. 자네 집에 백제의 것이 눌러 앉았다지?"
"그보다도 죠조 스님. 이세와 하쿠산은 같은 자오선상에 있는데 그건 왜입니까? 게다가... 야마토 공주가 이차원에 친 결계... 그것은 해인족에 전해 내려오는 마나시카타마지요."
"그대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그야 아깝다마다요. 그리고 감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추다 보면, 인간 스스로의 혼이 본래 지니고 있는 존엄성이란 것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건 이미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 '그 여신조차도 하쿠산 정상까지 오르면 관공 곁에 묶여버리게 돼. 관공 또한 사랑 받는 재능을 지닌 자였는데.'
"아무튼 박학한데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타고난 시인이었으니까. 재능 있는 문장생을 계수나무에 비유하고, 동궁을 백국에 비유하고, 자신을 난꽃에 비유했지."
'읽다보면 낯이 뜨거워지지. 관공의 집 복도엔 늘 학문을 추구하는 학생들로 넘쳐났지.'
- "현세 이익주의에 물든 범인들을 만났을 때의 탄식이 관공의 시에 잘 표현되어 있네. 주위엔 물질주의자 뿐이었어. 그런 속에서, 그의 고귀한 이상은 나이와 함께 짓밟혀가지. 내가 처음 관공을 만났을 때, 관공은 그에게 허락된 벽력을 마구 내리쳤지."
- "아... 참으로, 아름다운 눈이다... 저 색을... 어디서 보았을까...'
"... 다가오지 마. 미래가 없는 남자가, 날 아내로 맞이할 자격은 없어."
- "별이..."
'왜 재촉하지? 내겐 시간이 없는 건가?'
- "태양은 석양의 그림자 속에 있고, 내가 가야 할 곳은 아득하기만 하구나."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올랐군.'
- ''내가 가야 할 곳은 아득하기만 하구나'... 는 도저히 아마의 춤을 흉내 낼 수 없는 영감과 노파의 니노마이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 '느닷없이 궁궐 재건을 시작하기 전에 음양지진무인 아마를 춰야 한다고 음양사인 내가 주청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용궁의 여의주를 훔쳐낼 방법이 없어, 용녀가 사랑한다는 참새의 모습으로 둔갑해 버젓이 여의주를 훔쳐내는 그 춤을... 그것은... 음과 양. 태양과 태음. 물밑에 비치는 태양과 달. 4... 먼저 내가 들어가야 한다. 용실이 있지 않은가.'
"나는... 둘로 변하는 하나... 나는... 넷으로 변하는 둘..."
'도선을 한 번에 몇 가닥씩 집어넣지 마라. 몸은 하나다.'
- '다들 이런 식이라니까. 용아. 이러면 쓰겠느냐. 내가 이미 지나가고 있잖느냐. 내 뱀의 길을 멋대로 쓰지 마라.'
- '엄청난 맥동이다. 이렇게 힘찰 수가. 생명력이 넘쳐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열, 그리고 경이로울 만큼 높은 긍지.'
'맥동이 내 몸을 뚫고, 내 발로 대지 위에 깊이 뿌리내리고 선 이 환희와, 힘찬 신체의 존재감을, 지금 난 강렬하게 느끼고 있어. 피의 인연도, 혼의 인연도, 천지의 모든 것이 이 사태에 만족하고 축복하는데,'
'계약이 성립됐군.'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구나.'
'별을, 그만 뿌려라. 종을, 그만 울려라. 나는 더욱 크고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인연이 너무 강해 육체를 버릴 수조차 없구나.'
- '또 억지 수단을 쓰고 말았구나. 최종선택권마저도 내게서 빼앗는 것이냐?'
"..."
'이래서야 얼굴부터 골격, 체형까지 모조리 탈바꿈되지 않느냐. 내가... 지진을 맡는단 말이냐? 그러기엔 지금까지의 접지회로의 심도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로군. 좋다... 내가 맡아서 해내주마.'
"!"
'아아. 계약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맹세를 하라는 것이냐?'
"그래. 지구에 태어난 것을, 난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맹세의 중요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 설명해주마."
'내 본심을 내 입으로 말하게 하고 싶은 거라면.'
"무지하기에, 신성한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자들을, 나는 용서한다."
'이봐... 방금 내 입을 활용했겠다? 용서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건 내가 아냐.'
'말로 해주길 바랐는데.'
"나 원 참..."
'아아... 거룩하여라.'
- '깨끗하고, 맑고, 고요하여라.'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적이다."
'숱한 차원의 합체의 의해 인간은 존재하고 있다.'
"아아, 재미있, 도, 다. 아아, 즐겁고, 아아, 행복하, 도, 다."
'그것은 어느 경로로는 거울로, 다른 경로로는 말의 신비로운 힘으로 변환되었다.'
"그렇겠지. 알고 있는 게, 당연해. 기본이지."
- "아마라고? 무악이 아니냐? 그건 아악료가 할 일이지 음양료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지진으로는 창 휘두르기가 염무이나, 그 또한 음양료와는 무관한 일이다. 게다가 아마는..."
"음악도 음양도도, 근본은 같은 뿌리에서 생긴 것입니다. 아마도 염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자네가 그러는 걸 보니, 필시 큰 뜻이 있는 듯하구나. 야스노리와 함께, 나라로 가도록 해라.]
- "지금 한창 들날리는 천문박사이신 당신이 주청하신다면, 궁궐의 중대사이니 주상전화도 안 된다고는 안 하실 겁니다. 하물며 아마는, 로쿠로를 사용한 강력한 지진법이니, 천지가 열린 날에 반폐를 하신 당신은 열쇠를 쥐신 분이지요. 성공하면 음양료에도 정당하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게 될 겁니다."
"너무 성급해. 어느 무인과 악인이 음양가를 위해 움직여주겠느냐?"
'그런 수법엔 안 넘어간다. 일리는 있지만, 내 입으로 말했다간 미친 줄로 알 거야.'
"정당한 근거가 있는, 당신이 춘다고 하시면 그건 정리가 될 겁니다. 지로는 이 세이메이가, 맡도록 하지요."
'승낙해서는 안 돼...'
"그 외에 이 세이메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든지요..."
'승낙해서는 안 돼...'
- '빌어먹을, 날 존재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모든 것에 있어 항복만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야스노리 님을 승낙하게 만드는 일쯤은 무슨 수를 쓰든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을 텐데. 맞서서 이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가혹하군.'
- "내...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겼어... 흥.."
'육체란... 결국 나는 자신의 잔재마저 다 파괴해버렸어. 용이 침범해 지구와 완전히 이어놓고, 생사의 자유도 빼앗기고 속내마저 다 맹세하고, 혈통 관리도 해야 해. 평범한 사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훌륭한 일이지. 천자의 몸이라면 당연한 의무다. 천자는 천지의 힘을 불러모아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난 마술사다. 마술사에게 이만큼 굴욕적인 일이 또 있을까!'
- "삼천실도..."
"뭐?"
"삼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선계의 복숭아지. 그 모양을 닮아서 복숭아나무 주인의 이름을 따서 서왕모라고도 불리지만. 그런 진귀한 조개를 어디서 구했는가?"
"아니... 그게 말이야. 안쪽이 빛나는 조개를 원한다고, 그 편지에 쓰여 있기에 그런 건 찾기 참 힘들겠다 싶던 참에, 우연히 다른 볼일로 타카아키라 님 댁에 갔더니 때마침 소금과 함께 조개가 잔뜩 들어와 있지 뭔가."
'우연히라고?'
"그래서 야구 조개와 전복과 나전에도 쓰임직한 조개를 달라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주셨다네."
'때마침이라고?'
"자... 잘했지?"
"잘했건 못했건, 이건 진귀하고 귀한 보물이네. 당나라에서도 여간해선 구하기 힘든 조개지."
"그런가? 하여튼 자네한테 온 편지인 줄 알았으니까. 타카아키라 님도 세이메이가 원한다면 가져가라 하셨네. 그렇게 진귀한 조개였어? 대단한걸."
"..."
- '어째서 모두 내가 전면항복한 사실을 알고 있지? 서왕모라고? 축복의 선물인 셈인가?'
'하루 빨랐네, 히로마사.'
'보기 드문 귀한 보물을 가져와도 하나도 안 고마워.'
'농담도 심하군.'
- '아예 모실 마음조차 사라졌어. 모신다는 건, 약간이나마 자유의지지가 있다는 말이지. 무슨 짓을 당해도, 교묘하게 잡혀 묶여가는 것을 절실히 통감할 뿐이다.'
'못해먹겠군.'
- "이건, 세이메이야. 네 내면에 있는 빛의 색이야. 유백색의 내면에서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지. 이것만 있으면 괜찮아. 세이메이가 실패해서 이 빛만큼만 남게 돼도."
"내가 지금의 나와 달라진다 해도?"
"이걸 보면, 난 금세 당신이 누구였는지 기억해낼 수 있는걸. 당신에 어떤 곳에 있든, 금방 찾아낼 수 있어. 찾아도, 돼?"
- "마쿠즈, 난 마술사다. 마술사란 늘 진리의 탐구자이며, 미지에 대한 모험가이며, 신에 대한 도전자지."
'여기까지 온 이상 승리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지. 진주 광택이로군. 이런 광채의 혼을 가지고 있다면 용이 따르게 돼도 어쩔 수 없다.'
"미워. 정말 난해한 남자라니까."
'이런 와중에도 빛이 나.'
'아아... 어디까지나, 근거가 있는 모습이다.'
- '잠시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한 순간, 막무가내로 지구의 핵과 이어놓질 않나. 질려서 내가 지진을 맡겠다고 말한 순간, 강제로 맹세를 하게 만들질 않나. 기우제 이상으로 여기 원만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야스노리 님에게 진언을 부탁한다 쳐도 잠시 농락당하고 끝날 수도 없게 생겼지, 이젠.'
"쳇."
- "뭐... 어찌됐든 간에 난,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정말 내게 지진을 맡기고 싶은지는, 그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그쪽에서 알아서 해?"
"내게 지진을 시키고 싶어하는 자 말이야."
'내 준비는 끝났다. 그러기 위해 새롭게 태어났다. 실패는 다 내 책임이란 소린 듣고 싶지 않으니까. 철저하게 자신을 파괴해, 깨끗하게 보존했다. 이 정도까지 했으니, 이젠 그쪽의 솜씨나 구경해야지.'
"아니, 무슨 춤 스승이라도 필요한 거 아닌가?"
"이미, 손써놨지."
"뭐야? 내가 할 일은 없는 거야?"
- "염무라면 '일곡'과 '일고'를 봐도 이치로와 지로의 춤사위가 대비를 이루고 있어. 음양지진이라 불리지만 그뿐 아니라, 천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도 춤 동작의 기본에 하락이 있기 때문이지. 자네와 내가 춤을 춰도 별 상관은 없단 소리야."
"뭐?"
"아마니까. 그러는 편이 단번에 훨씬 섬세한 주술을 얻을 수 있지. 그치만... 주상전하가 냉천원으로 천궁하시기 전날 야사카에 갔었지? 그날 뇌우가 쏟아지고... 용은 하늘과 땅을 정말 자유자재로 왕래하지. 시공간도 차원간도 말이야. 그렇지만 용에도 여러 부류가 있지. 속하는 차원에 따라 성정도 빛깔도 역할도 다른 법이네. 이를테면 지룡(地龍)은 이차원에 속하지. 여기 온 건 지룡이 아닌, 사신으로 온 용이네. 심지가 착하고 용으로서는 아직 어려. 내게 용의 혼에 대해 설명해줬다네. 네 개의 단어로 말이야."
'두근두근'
"긍지, 용기, 한계에도 도전하는 챔피언. 그리고 승리. 그런 다음, 인간 혼의 존엄성과 생명의 맥동을 언어를 쓰지 않고 내게 설명해주었지. 즉, 악룡(惡龍)으로서 퇴치 당하는 일 또한 그들의 역할인 거네. 왜냐하면 용의 혼을 맞바꿔 사람에게 주니까 말이야. 거기 있는 용은 젊다고는 하나 이미 몇 천 년이나 살고 있지."
'두근두근'
- "용은 차원을 측면에서 보는 안목을 갖고 있기에, 그들의 눈에 우린 훤히 다 보여.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지. 깬 인간은 각자 빛깔을 지니며 여의주처럼 빛나고 있어."
'두근두근'
'세이메이, 제발...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듯 낭랑하게 말하지 말아줘.'
"빛나는 여의주가 아닌 곳에, 용은 깃들지 않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신이네."
'두근두근'
- "나라의 물사를 부탁했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타케노우치노 스쿠네에 이르는 가계의 자손이네. 타악기가 전문이지."
"오랜만입니다, 세이메이 님."
"뭐야? 아는 사인가?"
"내가 아마를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네, 히로마사."
"그럼?"
"내가 타다유키 님 문하에서 제자로 있을 때, 풍악전에서 추는 아마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땐 아직 무방비 상태여서 아마의 괴상함을 모르고 졸도를 하고 말았지. 하지만 이 일이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아마의 정체가 궁금해, 아베 부락으로 돌아가 그때부터 노리치카에게 아마의 춤과 하시리마이를 몇 가지 배웠다네."
"아..."
"아마를 포함해 임읍팔악이라 불리는 음악을 텐표 시대 때 보리선나 스님과 불철 스님이 도래해 우리나라에 전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을거야. 그들이 그걸 전수한 곳이 나라의 7대 사찰 중 하나인 대안사지만, 전신은 백제 대사지. 죠메이 천황의 명을 받아 내 조부이신 아베노 쿠라하시마로가 세운 절이네."
"그... 그랬구나..."
'그래. 세이메이의 가문은 그런 가계였어.'
"그래서 내가 귀향할 때, 함께 따라온 야스노리 님도 노리치카에게 춤을 사사 받았지. 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란 편지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 "세이메이... 난 정신이 아득해졌어."
"나중에 사신을 보내겠네."
'자네도 이제 어엿한 자격을 갖췄으니 내가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도 현혹되어 빠지는 일은 없겠지. 자네에겐 자네의 역할이 있으니까 말이야.'
"자, 노리치카, 당장 조정을 시작하자꾸나. 저쪽이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린 아직 안 됐다는 소리는 통하지 않을 테니."
- '저건... 내가 아는 세이메이의 목소리가 아냐. 하지만 환상적인 목소리야. 낭랑하고 종소리처럼 중후해. 중후한 목소리의 황홀한 울림이야.'
"첫 소리의 근본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첫 소리의 근본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 막상 돌아가려니..."
'소리의 근본은 남천축국에서 비롯된다.'
"조여라. 힘껏."
- '땅과 나, 하늘과 나, 하늘과 땅을, 그 힘을 몸에 불러들이기 위해, 금복채로 핵심을 찌르고, 보이지 않은 실로 공들여 수를 놓듯, 정성을 모아 몸을 수양해간다. 이 춤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한다면,'
"꺄악!"
'춤을 출 수 없게 된다.'
- '... 해산물 위문품이라... 이제 벗어 던질 관도 없군. 문어가 없는 것만도 고맙군.'
"... 어느 쪽이지..."
'난 미쿠즈와 생명의 언약을 맺었다. 아마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지. 결국 지금 선택해야 하나?'
"..."
'세이메이, 왜? 뭐라고 말 좀 해.'
'천지의 날실을 통과시키는 마술사가 되는가? 용궁의 여의주를 훔치는 참새가 되는가?'
- "난 그날 난생 처음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마술이란 것을 보고, 그게 잘못된 결말임을 목격했다. 지금 궁궐을 새로 짓기에 앞서, 난 열려버린 천지를 다시 새로 이어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완전한 아마의 춤을 실현한다면 가능하리라 믿고 있지."
'다시 바르게 잇기 위한 불길이다.'
"참새가 되기 전에, 난... 모든 것을 차단한다."
- '무거워... 우왕이 우보를 했던 것은, 다리가 아파서가 아냐. 이 속도로밖에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야 당연하지. 혼이 별의 핵과 이어져 모든 차원을 관통해 안착했을 때, 시공을 가르는 몸이 됐으니 보통 빠르기로는 걷지 못할 수밖에. 무겁다... 송두리째 변하는 이 쾌감.'
- "세이메이! 정녕 말살 당하고 싶소? 이 모양새가 뭐요? 일단 안으로 드시오. 사람을 정기로 만들다니."
'알고 있었군.'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면 곤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기가 되길 꺼려해. 합세해서 말살하고 싶은 겁니까?"
'말살 당했다는 건 키요카미를 말하는 건가? 하기야...'
"토모미 님. 사실은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뭐요?!"
'이미 몇 번이나 경험을 했지만, 너무 하는군... 지금 이 지경이 된 나를 그런 곳으로 보내다니. 궁궐보다 음양료가 불타 없어져야 해. 그래, 더 당혹스럽게 해달라 이거로군. 들러붙은 쓰레기를 내면의 빛으로 태워 없애주지.'
- '칠흑 같은 어둠. 또 하나의 검은 기둥이 솟고 말았다! 그래... 아마(하늘)와 니노마이(땅)로군. 그 토공신이...'
"세이메이 님..."
'가야만 해. 니노마이가 시작된다.'
- '아마를 추는 무인에게 홀을 요구하지만, 돌아가라는 타이름을 받은 영감과 노파. 아마의 춤에 왜 니노마이가 붙어 있는 걸까? 나는 처음에, 아마의 무인이 단상에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회전을 파단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 비밀은 영감이 부르는 시에 감춰져 있다.'
"영혼은 원반형으로 변하되,"
'영감은 하늘을 향해 세 번 원을 그린다.'
'이 목소리는...'
"고리의 행선지는 아득하나니."
'만장의 비웃음 속에서, 근원으로 통하는 최대의 마술이 집행된다. 그래. 이 참에... 그 웃음의 힘도 이용하겠다. 기요카미 님도 영감을 맡았던 적이 있을 터. 잘 봐라. 올바르게만 하면, 원반을 파괴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지.'
'마지막이다. 흰 기둥과 검은 기둥이 통합된다. 아니.. 옥이다! 무겁다!'
- 간교 시대이래 유식한 선비들, 혹은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다투어 논의를 좋아하는 자들은 (정의로운) 뜻을 세우는 일을 견실히 하지 않으면 어리석다 말한다. 그 외의 자들은 그저 미친 듯 음주가무만 즐기며 매욕능력(駕辱凌蝶 서로 헐뜯고 능욕하며 짓밟다)만 할 뿐. 그런고로 이 시를 지어 바치며 그대들에게 권한다.
- 학문을 추구하면서도 길을 잘못 들어 도중에 낙오되는 자들이 벽지의 파도처럼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일은 세상에는 배움에 통달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그 대처에 대해 물으면 그들 마음 속에는 굴러다니는 돌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무절조하다. 경전을 논하라 하면 세상은 (뜻도 세우지 않았으면서) 청산유수처럼 지껄여대는 자들만을 공경한다. 달빛 아래서 (달이 거울 임도 잊고) 쓸데없이 심취해 있지 말고 깨어나라. (진심으로 심취한 게 아니기에) 꽃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시를 큰소리로 읊어대는 그 입을 다물어라. (진심이 담긴 노래도 아닌데 꽃이라고 그것을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훗날 그대들에게서 시흥이 끊길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마라. 천자(하늘)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없이 깊으니라. (이미 그대들은 그 안에 있으며 뒤를 이을 자들도 끝없이 나타날 것이다)
(괄호는 저자 주.)
- 음률과 음양도는 깊은 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양가가 아악두(雅樂頭)에 임명된 사례는 아베노 세이메이의 고손 야스나가가 처음이며, 야스나가의 아들(세이메이로부터 오 대째), 즉 <아베노 야스치카 조신기>라는 천문변의 길흉에 대한 일기를 남기고 그 점괘의 효험이 뛰어났기에 '선택 받은 자'라 불린 야스치카가 그 두 번째이다. 그 후 몇 명의 음양가가 아악두에 임명되지만 악인과 무인을 대향 등의 의례에 인솔한 기록뿐 실제로 그들이 악무에 능통했는지, 연습을 했는지는 기록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무로마치 시대의 악서 <체원초> 11에는 의음 양도에 관해 '의도와 음양도도 관현은 깨우쳐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음양가가 악무를 터득하지 않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 "쿠오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것은 예지다!!"
"검은 불길을 뿜고 있어. 폐는 풀무이고 심장은 숯불 아궁이야. 혼자 다 정화할 속셈이야? 그 힘을 발동시켜준 건 난데, 왜 내가 버림을 받아?"
- "그럼 여기서 퀴즈! 세이메이 님은 제8화 속표지에서 여섯 가지(갓, 앙크, 부채, 도미, 옹계 조개, 마쿠즈)를 버리셨는데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요?"
"관 = 가는 노끈으로 묶여 있는 물질계에서의 지위 / 앙크 = 생명 / 부채 = 본성을 감추는 물건 / 도미 = 보수 / 옹계 조개 = 하늘의 법칙을 존중하는 그의 내면의 경의 / 마쿠즈 = 혈맥, 자신의 혼의 일부."
11권
- '손방에 타케미카츠치, 곤방에 타지카라오, 건방에 타케미나카타, 간방에 소사노오, 중앙에 오오나무치. 오오나무치? 내 몸에 성스러운 모양을 한 검은 창이 열린다.'
- '범람한다. 한 치의 빈틈도 광기도 부정도 망설임도 용납되지 않는다. 아아... 이렇게 되다니... 활짝 갠듯한, 대흑천의 에로스.'
- '그것은 성스러운 범람을 일으키는 거룩한 강의 모습. 일찍이 그 강을 와카사부터 거슬러 올랐다. 하늘 물둑으로 통하는 상류를 향해. 그것은 성스러운 단면을 지니는 거룩한 식물의 모습. 통합되는 생과 사. 통합되는 상과 하. 통합되는 과거와 미래.'
- '이쪽 기둥을 부르기 위해 졸라매지 않고 춤을 췄건만... 낭패로군. 주위를 전부 고차원으로 올리지 않으면 붕괴 돼.'
"당장 갈아입을 새 백의를 내오너라. 발도, 휘장도, 장막도, 천이란 천은 모조리 갈아치워라. 옷가지도 모조리 새 백의로 갈아라. 벗겨낸 천은 모조리 태워 없애라. 여기부터 당장 시작해라."
'마술은 98%가 준비다. 시작 전에 밟아야 할 수순을 하나하나 해결해야 해. 막상 시작한다 해도 얕은 차원에 빠져들어 본래의 목적마저 잃어버리고 말지.'
- '나는 생명력을 끊고,'
- '막아서는 안 될 것을 막으려 해왔다. 나는 자격을 얻어 돌아왔다. 나는 네게 바쳐진 참새다. 몇 번이고 날 죽음으로 인도해도 좋다. 그리고 헌신적인 네 도움이 없다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 헌신적으로 구하려는 행위는 신성한 것이기에, 누구도 널 도울 수 없다.'
"난, 어떻게 돼? 이... 밑에서 거품처럼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하얀 빛 방울은 뭐야?"
- "널 잃지 않고 끝이 나서 다행이다..."
'고생 많았다. 둘 다 손에 넣으려면 극한으로 치우쳐 과감하게 순환시킬 수밖에 없다. 그것이 태극의 모습이다. 용을 쏘기 위해 검은 화살을 쓸까? 흰 화살을 쓸까? 선택에 망설임이 있다면 둘 다 생명을 잃고 끝장이 난다.'
"심려를 끼쳤구나."
'못 말리겠군. 곧이곧대로 모조리 직격하는 것은 너무 잔인해. 교묘하게 결박당하고 공격을 당하지 않는다면, 누가 선택할까... 글쎄...'
"이다음엔, 내 방식대로 해주겠다."
- '이 남자, 아직 더 할 생각인가 봐. 세이메이는 저택 안을 정화했어. 발, 휘장, 장막, 옷가지를 모조리 갈아치웠어.'
- "... 어떻게 말하겠나, 히로마사."
'나도 충고조차 용납되지 않았지.'
"아아..."
'이 친구의 혼을 존경하기에 일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아무 말도 할 수 없지. 함부로 나서는 건 주제 넘는 짓이야. 그 이전에 이 친구를, 업신여기는 게 돼. 나중에 내가 책임을 다 뒤집어 쓰게 되지.'
"..."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 영역에 끼어들면 곤란해.'
"아아..."
'그렇구나.'
'한 사람에, 하나야... 한 사람에 하나씩. 각자를 위한 전인미답의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향기로군. 머릿속 구석구석까지 차가운 물로 가득 찬 것 같네."
'이 친구에게도... 그녀는 물론, 모든 존재에 말이야.'
'그나저나... 이건...'
- '만약 그녀가 날 위해 헌신하지 않았다면... 이 친구가 그 순간 막아주지 않았다면, 난 여의주를 찾지 못했을 뿐더러, 깨어날 수도 없었어. 자칫 내가 여의주를 못 찾았다면, 깨어나지 못했다면, 신관을 호되게 꾸짖지 않았다면, 이 친구와 말을 나눴다면, 즉각 돌아오지 않았다면,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새 단장을 하지 않았다면, 장막을 걷었을 때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날 위해 몸을 바친 그녀의 주검이었다.'
- '이 한 순간은... 천 년이나 만 년이나 백 년이나... 조(兆), 경(京), 해(垓), 극(極)이란 시간에 있어서, 치밀하게 계산된 매듭의 결과의 존재다... 하나만 틀려도 전혀 다른 미래가 전개되지.'
'아아... 다 비웠군.'
"... 세이메이. 자네가 건강해서, 정말 다행이야. 난 정말 걱정 많이 햇네. 난..."
"자넨,"
- '백제로부터 받은 영검 두 자루. 하나는 파적(破敵), 또 하나는 수호(守護). 이번 화재만 아니었다면 존재도 잊혀진 온명전의 궤짝 안에서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모습을 본래대로 복구하려면,'
"제사를 지내야만 하겠지."
'도공.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철 안의 불순물이 빠져나간다. 이것이 연금의 포인트지.'
'못 살아. 때맞춰 일을 시키는군.'
'영검을 다루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불순물 일체를 제거해야 한다.
'나도 소중하니까.'
- "술을 갖고 왔는데 이런 상태를 보니 필요 없을 듯하군."
"고맙네. 술 심부름을 보낼 수도 없었던 차인데."
"또 연구에 몰두 중인가? 근면한 친구로군. 나 같으면 이럴 땐 노래나 부르고 있을텐데."
"소리의 근본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아마로군..."
"거울은... 정(靜)과 동(動)을 아울러 갖지. 잘 듣게, 히로마사."
- '최초의 한 방울이, 최초의 언덕의 융기가, 창조주의 파동의 중심에 있다.'
"훌륭한 눈이야. 이 의장(意匠), 별이 비상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모든 움직임이 한 번에 일어나는 순간을, 거울을 만든 자는 감지했지. 그게 진실이란 사실을. 잘 알 거야. 이 세계는 참으로 흥미로워. 기본은 아주 단순해. 숫자와 도형으로 완벽하게 표현돼 있어."
"세... 세이메이."
"우(宇)와 주(宙)의 정수가 극도에 이른, 복의의 하도와 우왕의 낙서. 여기에 모든 것이 있네. 하도는 원진(圓陣)이지만 하도는 3.3.9.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사용한 완전한 마방진이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것의 합도 15. 중심수인 5는, 방진의 적수(積數) 9에 중심점인 천원수(天源數) 1을 더한 10을 2분의 1로 만듦으로써 얻을 수 있지."
"그...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
- "음양사가 점괘에 쓰는 육임반(六壬般). 이것도 9.9.81.의 마방진이네. 주위에 9.4.36.의 36금(禽)을 배치하고, 하늘을 상징하는 원진을 얹으며 중심수는 41. 정화수(定和數)는 369. 그리고 이쪽은 19 곱하기 19의 바둑판. 9.9.81.의 방진의 사면구성에, 구성(九星)이 내재하며, 그 위에 360의 원진과 천원수 1도 내재하는, 마방진으로 만들었을 경우 중심수는 181이 돼지. 그럼 9.9.81.을 3.3.9. 면의 구성으로 하면..."
'펴... 평소 모드군.'
"9.3.27. 27 조리(條理). 그게 뭔지 아나?"
"..."
"금강경 만다라니. 대칭을 이루고 있는 태장계는 9.9.81.로 공간의 구조 원리를 상징하는 마방진이지만, 금강계 27차 마방진은 시간의 구조 원리를 상징하고 있지. 우와 주. 하도와 낙서. 완전한 미와 조화가 숫자의 이치로 표현돼지. 27차 마방진의 중심수는 365. 정확하겐 조리를 세분하면 365와 4분의 1. 이렇게 말하면, '365도 사분도의 1로써 한 살을 이룬다'라는 회남자의 천문훈을 떠올리지. 그리고 이것은 시리우스, 천랑성의 주기이기도 하네, 히로마사."
- "이게 결론이지. 단순명쾌한 우주. 그것이 신의 이치라네. 음률도 마찬가지야. 동시에 태어나지."
- '이 빛깔, 이 무게, 이 밀도, 이 파동...'
- '달 그림자 한 점 없이 맑은, 광활한 하늘. 밤 폭풍우에 구름이 사라지네.'
- '난 이제 널 위해 몸을 버릴 수 없어.'
'그리고 난 하나. 내 오른쪽 눈은 땅에 속하며 물질을 보는 어둠이다. 내 왼쪽 눈은 하늘에 속하며 차원 간을 수직으로 본다. 따라서 오른쪽 눈은 빛에 의해 보이는 세계와, 그곳에 생겨나는 그림자를 보며, 왼쪽 눈은 빛 그 자체와, 어둠 그 자체를 본다. 나는 어둠으로 하강한다.'
- '진정한 어둠에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어둠을 헤쳐나가는데 손에 빛을 들 필요는 없다. 스스로의 빛을 덮어 가리며, 조용조용히 내려간다. 내게 내재된 빛은 어떠한 어둠에도 용해되지 않는다.'
- '생명을 낳는 풍성한 꽃을 피우는 어둠. 뿌리 중의 뿌리... 밑바닥 중의 밑바닥. 어둠 속의 어둠... 결정체처럼 순수한 어둠에 내 뿌리를 잇고.'
- '내 주위 사방에 기둥이 솟아 있다. 내 양 어깨에 초승달이 있다.'
- ' 내 모습은 단단히 덮여 가려져 있다. 난 어둠을 탐구하는 전차. 난 대지 밑바닥 깊이 결합하는 은자. 어둠의 세계에서 내 얼굴을 보는 자는 소멸한다.'
- '이 예(蚋)는 고래 암수를 뜻한다. 별로 경이로운 고래 얘기는 없었군...'
"얼음 비의 내음이야. 오이가 먹고 싶네."
'아이가 될 혼은 모태가 될 여인의 오른쪽 어깨로 내려온다. 어느날 여인은 오른손 손가락을 상처 내, 피의 계약이 성립된다. 다음은 혼과 모태의 일곱 개의 중심이 빛나는 혼의 끈으로 이어진다. 혼이 모태의 태내에 깃들기까지 그들의 계약은 조용조용히 이루어진다.'
- "난 그 피리 악보는 쓸 수 없었네. 난 그 악보를 편지함에 넣어 자네 집에 보냈는데, 자네에게 돌려보낸 악보가 어찌된 일인지 딴 곳에서 되돌아왔다네. 그게 어찌된 거지? 그걸 확인하러 왔네."
"자네가 보낸 편지함은 분명히 받았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기에 열어보진 않았지. 자네가 봉인한 그대로라네."
"그럼 그 악보가 왜 내 수중에 있는 거지? 내가 편지함에 넣었는지조차도 자신이 없어. 열어서 확인시켜 주게."
"히로마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고 싶은 건가? 악보 편찬은 자네 몫이네. 설사 악보를 태워버렸다 해도, 어디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네. 통과의례를 일단 치르고 나면 그렇게 되게 돼 있지."
"그럼, 영검도 마찬가지란 소린가, 세이메이?"
"통과의례를 치른다는 건, 병이 없다는 뜻이야."
- "역사는 바꿀 수 있어, 히로마사."
'아아... 내 발 밑에서 식물이 싹트기 시작한다. 모든 씨앗은 어둠 속에서 발아한다.'
- '어둠 속에서 내 존재가 아버지로서 필요하다면, 몸을 해방해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리라. 존재가 필요치 않다면, 난 침묵을 지키며 작은 씨앗인 채로 있으리. 히로마사, 그것은 선물이다. 그 가치와 활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자네 뿐이니까. 물질이란 그렇게 모이는 법이지.'
- "세이메이... 관공처럼, 모든 귀신을 다스리는 자가 돼버린 거야?"
"호락호락한 자가 군림하면, 어둠 통치도 그 정도 수준이지. 관공의 혼은 시인이지만, 내게 사랑은 있으나 사사로운 정은 없지. 인간의 마음이 있다는 어둠과 귀신이 산다는 어둠은, 어둠 속에도 못 끼는 갭과 같은 것으로 아주 얕은 층에 있지. 정이 너무 깊어 위로 오르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망량들 따위는 무서운 존재도 아냐. 그들은 강렬한 영성(靈性)의 빛을 쐬면 소멸해버리기 때문이지. 진정한 어둠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아름다움이네!"
- "잘 단련되어 예리하게 갈린 불순물이 없는 검이나, 잘 닦인 거울과 마찬가지지. 모든 것을 가차없이 비추며, 한 점의 티끌도 용납하지 않아."
'아아, 견딜 수가 없어-.'
- "자기의 품격을, 엄격히 추궁 당하게 돼. 그 편이 훨씬 무섭지. 그래서 어둠은 무서운 거라네. 들어올 자격도 없으면서 무턱대로 들어왔다가는, 자기의 분수를 통감하게 돼. 그 통감하게 만드는 방법도 가차없어."
'두근두근'
"결국 자신이 비춰낸 추악한 자신에게 잡아 먹히게 돼. 그건 무섭겠지? 목숨을 빼앗는 자, 자신 속의 혼탁해진 암흑, 즉 정념이야!"
- "따라서 평범한 자들은, 어둠에 접근하지 못해. 하지만 얕은 어둠 사이에 있는 망량들을 부리는 자들이 있지. 함부로 관여했다간 얕은 어둠에 붙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돼. 개중엔 거기서 만족해버리는 소인배들도 있지. 그것마저도 최종적으론 품격 문제라 일컫는 건, 또 다른 의미의 공포겠지."
'세이메이...'
"자네는, 그 어둠의 밑바닥 중에 밑바닥에 서 있군. 어째서 그렇게..."
"난, 성질이 급하다네, 히로마사."
"성질이 급해? 진중하게 때를 고르고 골라 일을 처리하는 자네가?"
"단번에 끝내고 싶으니까, 진중한 거네. 설령, 깊은 우물 밑바닥에서 별을 쏘아 구름을 맞추듯 불가능한 일도, 그게 최상이며 가장 효율성이 높아 그 이상의 방법이 달리 없다면, 실행을 하지."
"세이메이. 난 지금, 왠지 저울질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순수한 자에게, 어둠은, 어둠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지. 온갖 씨앗은 어둠 없이는 발아하지 못해! 생명은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법. 따라서 부정을 용납하지 않지. 어둠이란 것, 물질이란 것, 부정이란 것의 인식을 사람들 대부분은 잘못 이해하고 있어. 군림한다는 것은 공희라네, 히로마사. 자기를 그 세계의 중심에 고정시켜 기둥이 된다는 뜻이니까. 완벽한 하복, 어느 곳에서든 왕이 될 자는 그런 법이야."
- "왕은 스스로 신이 내린 기둥이 되지. 자질만 충분하다면. 그 세계의 중심에 그냥 서 있는, 혹은 앉아 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세이메이... 자네... 용케 날 저울에 매달았군."
- '이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 건가? 빠뜨린 건 없나? 있다면 지금 나와라. 없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궤짝을 불태워라."
"알겠습니다."
- '그럼... 키요마로 공에게 참묘하러 갈 필요가 있겠군. 와케 씨는 비젠의 대장일과 주조에 관여하는 씨족. 불의 힘과 물의 힘을 제어해 금속을 생물처럼 다루는 대장장이는 무속인의 직업.
- '아베노 세이메이 온전의 영검 수리하다'를 달 3부작이라고 부른다. 대응하는 것은 '검' '거울' '현주(玄珠)'. 2001년 9월 8일 일본의 돌기인 스와 상사와 하사와 사궁(四宮)을 방문했다. 돌기라고 하면 지하로 내려가는 깊은 우물. 대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잠든) 삼나무. 두 세계 틈새에 서야 진정한 음양사이기에 기둥을 세운 세이메이는 이번에는 하계 깊숙이 저승으로 내려가야 한다. 네 신사의 사방에 선 네 줄기의 기둥, 지저국(地底國)을 편력하는 코가 사부로의 전설의 무대인 스와. 기기의 이즈모 왕위 찬탈로 유명한 타케미 나카타노미코토(제신-祭神). 하지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츠쿠요미(밤의 신)이었다.
- 스와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묘하게 시간에 딱 맞춰 정각 낮12시에 기원자가 큰북을 쩌렁쩌렁 울리며 추궁 참배를 마치고 '휴우, 이제야 점심을 먹네' 하며 식당으로 들어가서 보니 나와 친구 말고는 모두 츠키미(달맞이) 국수를 주문하고 있었고 친절하게도 아홉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봐, 달님이야'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츠쿠요미는 밤의 신이며 밤의 신은 달의 주인, 역의 신이며, 시간을 주관하므로 스와하면 시간이다. 춘궁에 도착하자 택시를 보내고 상사로 서둘러 올라갔다. 스와대사 본궁에 참배를 마친 후 왜 스와라 불렸는지 신의(神意)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의심이 많은 난 그렇게 확인을 하곤 한다.
[다가가보니 소맷자락에 나부끼는 하얀 싸리의 꽃 향기가 휘날리는 달빛 그늘]
- 그곳엔 칼과 번뜩이는 칼날이 눈부신 하지만 너무도 요염한 달의 노래가, 그리고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고쳐 나아가는 게 좋다는 운세가 적혀 있었다. 마치 택시 기사가 '전궁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가봤자다'라고 말려서 차 속에서 실랑이를 벌인 모습을 지켜본 듯한 내용이다. '그래. 이 제비가 지닌 의미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기사도 그런 말을 했던 것이구나'. 즉시 그리운 옛 친구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전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조용한 전망 좋은 언덕배기에 주저앉아 오후 태양을 등지고 무지개빛 채광을 발하는 새싹 빛깔의 나무들에 둘러싸인 전궁은 이런 우람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정성 들여 참배를 마치고 사무소에서 대답을 듣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어두운 달빛을 벗삼아 조용히 찾아가보니 들판에 난 오솔길이더라]
- 이 또한 저승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담은 달의 노래였다. 지금 바로 거기로 내려가는 과정을 그리려던 참이었는데 미치는 모든곳에 자신을 낮추라고 적혀 있었다. 전궁으로 가는 도중 태양을 피하고자 난 웃옷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아하, 하계로 내려갈 때는 은자의 모습을 취하는 거로구나!'. 본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올 때는 깨닫지 못했던 많은 곤충들의 사해가 있었다. 이미 그리기 위한 지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래와 답가의 형식으로 지도를 받느냐 마느냐의 교육은 시작되었다. 지하에서 솟아오른 시커먼 중세 유럽의 산악지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 과묵하지만 활달한 경쾌하지만 기품 있는 모습. 달답게 어둠 속의 그림자에 몸을 반쯤 숨기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후 밤의 신과 이 달 3부작이 상징하는 것에 관한 모든 대화는 타로카드를 매개로 해 성심성의껏 나누었다.
- 초승달을 옷자락에 걸고 음과 양 두 기둥 사이에 선 여교황, 달밤이 두 탑 사이에 한 쌍의 아누비스가 기다리는 저승으로 난 좁은 길. 목숨을 베어내는 초승달 모양의 낫. 달의 기능, 달의 모습, 달의 상징물, 달의 본성을 찾아가면 달과 게자리를 상징하는 카드인 전차 카드의 양 어깨에 초승달을 얹은 견고한 갑옷을 걸친 시자가 태양과 달의 합, 음양화합, θ, 끝이며 시작인 삭(朔)을 의미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능동적인 달.
- 사실 2001년은 6월 21일 하지의 초승달, 아프리카에서의 계기일식, 남반구에서의 목성식(木星食)을 비롯하여 2002년 1월까지 지구상 각지에서 달이 태양, 목성, 토성을 여러 차례 잠식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달 3부작을 마감하는 세 번째 노래가 없어서 단념하고 있던 차에 같은 해 11월 16일 교토 세이메이 신사에서 모 선생님과의 대담이 있었다. '그래, 이곳에 있을 수도 있어'. 대담 후 제비를 뽑았다. 세이메이와 밤의 신의 관계가 확실하다면, 지금까지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면 당연히 세 번째 달의 노래가 나올 것이다. 이번에는 일소를 의미하는 맑고 상쾌한 달의 노래이다.
[달 그림자 한점 없이 맑은 광활한 하늘, 밤 폭풍우에 구름이 사라지네]
- 나카미카도 무네타다가 쓴 일기 '중기(中記)'의 칸지 8년 11월 2일 대목에 소실된 셋토의 취급에 대해, 쵸토쿠 3년 5월24일에 쓴 쿠란도 부츠네의 일기를 참고하고 있는데 그 중에 텐토쿠 천황이 궁궐 소실 때 '파적' '수호' 두 자루의 영검을 수리한 세이메이의 증언이 실려 있다.
[회계담당자를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보내 의양전의 보검에 대해 물었다. 세이메이가 말하기를 '보검은 서른 네 자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텐토쿠 궁궐 화재 때 하나같이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소실된 셋토는 저 세이메이가 천문 졸업생이었던 때에 선지를 받들어 보고서를 재작성해 올렸습니다. 서른 네 자루 중 두 자루는 영검으로 하나는 '파적' 또 하나는 '수호'. 그럼 그 영검에 새겨진 문양과 그 이름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두 자루의 영검은 똑같이 열두 신, 일월, 오성 등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나 이전 궁궐 화재로 소실된 후 문양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를 올렸던 것입니다. '파적'은 대장군을 파견할 때 하사한 셋토이며 '수호'는 어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난 텐토쿠 왕조 이후 거듭되는 궁궐 화재 후에도 이들 영검이 복원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두 영검은 백제로부터 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지요. 오늘날 남아 있는 여섯 자루 중 두 자루는 정진정명 영검입니다. 이들 영검은 국가의 소중한 보물이기에 반드시 복원되어야 마땅합니다. 덴토쿠 치세 동안 소실된 것은 칙명을 받들어 비젠을 택해 도공 시라네노 야스오에게 명을 내려 7, 8월의 경신일에 반드시 이 검을 복원할 성지인 타카오산에서 단조했습니다. 그 연유는 7, 8월 경신일은 분부에 의해 아베노 무네오 등에게 술을 주조하게 하는 날이며 올해 8월 26일이 바로 그 경신일입니다만 그날은 이미 9월 중양절을 맞이하려 준비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으니 내년 7, 8월 경신일에 단조를 시작해야합니다. (원문참조)]
- 참으로 리얼하고 직무에 충실한 세이메이의 모습을 훤히 엿볼 수 있다. 텐토쿠 4년(AD 960년) 궁궐 화재 대소실된 영검 수리. 이것이 처음으로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름이 정사에 나타난 기록이지만 이 영검 수리 기록이 텐토쿠 4년 12월 12일에 세이메이가 의양전의 작물소에서 수리했다는 기술과 천문박사 야스노리가 오와 원년 7월 5일에 타카오산에서 수리했다는 기술의 두 가지 설과, 결국은 세이메이 자신이 타카오산에서 수리했다는 기술도 있으며 세이메이가 행했는지 야스노리가 행했는지 연구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 대개는 '중우기' 기술 등에서 천문박사 야스노리 밑에서 영검 수리 및 삼황오제제 진행 준비를 맡았던 세이메이가 나중에 음양료에 대두했을 때그 공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리라 짐작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는 단연 약자의 입장에 있었을 세이메이지만 지금 이렇게 인기를 떨치는 것을 보면 마치 세이메이가 카모 가의 존재를 압도하는 듯 보이기 때문일까. 그 밑에서 준비 외에 모든 진행을 했다고 한다면 '다 내가 했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우기'를 읽어보면 세이메이가 수리했다는 기술보다도 영검의 중요성을 깨닫고 반드시 복원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세이메이, 그것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실현되지 않으리라 여겼는지 영검과 오제제에 관한 문서를 자손에게 남긴 듯한 세이메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이메이의 자필 문서는 야마시타 카츠아키 씨의 논문 '음양도와 호신검파적검'에서 다뤄지고 있다.) 만일 권위나 자신이 그것을 행했다는 명성을 얻을 수단으로 문서를 남겼다면 계승이 끊길 것을 두려워해 비밀이나 구전을 악사들이 자손들을 위해 부득이하게 남긴 악서류 쪽이 순수하고 신묘하다. 그리고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역도(曆道)를 카모노 야스노리가 카모노 타다유키로부터 아들인 미츠요시에게 전하고 천문도를 제자인 세이메이에게 전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때부터 카모가와 아베 가의 대립은 시작됐다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초의 인물의 영단을 양가의 후생이 잘못 판단했거나 혹은 최초의 인물의 예측을 초월한 중요한 결단이었거나 상상의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12권
- '하늘에는 천제(天帝)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과 동서남북의 오관(五官)이 있다고 '천관서(天官書)'에 기술되어 있다. 황(黃), 창(蒼), 적(赤), 백(白), 흑(黑)의 오제(五帝)가 각각의 장관으로서 오관을 통할하고 있다. 동관의 칠성은 창용성(蒼龍星). 남관의 칠성이 주조성(朱鳥星). 서관은 백호 모양의 감지성(感地星). 북관은 현무성(玄武星). 하늘의 중관은 천극성(天極星). 가장 찬란한 별이 태일, 즉 천제의 별이다. 주위에는 호위하는 열두 별이 있으며 그 전체를 자궁(紫宮)이라 한다. 추(樞), 선(璇), 기(璣), 권(權)의 사성을 선기(璇璣). 형(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의 삼성을 옥형(玉衡). 이 칠성은 북두로 일월과 목화토금수의 오성을 조정하는 일을 주관한다.'
- '천제는 북두를 타고 중앙을 돌아서, 사방을 지배하고 음양을 가르며, 사계를 세워 오행을 조정한다. 그 이동을 눈에 보이지 않게 나타낸 것이 역(曆)이다.'
- '동관에는 명당이 있으며 남관에는 천고루(天庫樓), 서관에는 오제가 탈 가마의 보관소, 북관에는 우림천군(羽林天軍). 각각의 건물과 지위명이 붙은 별들 사이에, 하늘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일월오성의 거처인 이십팔수가 있다. 세성(歲星 - 목성)은 일년에 한 성수(星宿)씩 서쪽으로 이동하므로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동방의 나무의 정령으로 봄을 주관하는 창제(蒼帝)의 상징. 형혹성(熒惑星 - 화성)은 남방의 불의 정령으로 여름을 주관하는 적제(赤帝)의 상징.'
"오성의 별 집이 하나가 되는 것을 합(合)이라 하며, 서로에게 접근하는 것을 투(鬪)라고 한단다, 아가야."
- '진성(眞聖 - 토성)은 중앙의 흙의 정령으로 여름을 주관하는 황제(黃帝)의 상징. 태백성(太白星 - 금성)은 서방의 쇠의 정령으로 가을을 주관하는 백제(白帝)의 상징. 진성(辰星 - 수성)은 북방의 물의 정령으로 겨울을 주관하는 흑제(黑帝)의 상징. 그리고 일월의 이성은, 우리나라에 숙요도(宿曜道)가 도입된 후에는 이 칠성에 나후성(羅星)과 계도성(計都星)이 더해졌다. 하나같이 흉성으로 나후는 일과 월을 두 손에 쥐고, 계도는 검과 뱀 줄을 두 손에 쥔다. 즉 나후와 계도 이성은 환영의 식신성(蝕神星)의 이름으로, 백도의 중점이며 남에서 북으로 거슬러올라 황도와 교차하는 점을 나후라고 하며, 대칭하는 점을 계도라고 한다. 이 두 점에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 '하늘의 계시와 징조를 이해하는 것이 왕의 될 자의 임무이며, 그것은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한 복점과 합체한다. 왕이 될 자는 하늘의 뜻을 받들고 그것을 따르며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윤활하게 순환시킨다. 그것을 돕기 위해 하늘의 징조를 번역하는 것이 음양사의 임무인 것이다.'
- "계도의 또다른 이름은 표미(豹尾)라고도 하며 흉성이지. 균형을 깨는 것이 나타나면 흉으로 본다. 하지만 극심한 변화를 초래하는 불씨 또한 하늘에서 내리신단다."
"하아아암. 극성이셔."
"변화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에게는 말살되나, 그 또한 임무인 것이지. 변화가 없으면 산송장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
"세이메이 님. 도련님 감기 드시겠어요."
- "보렴. 저기 흥미로운 게 있다. 그럼 구고법(勾股法)을 설명해주마. 옛날에 당나라가 주나라라 불리던 시절, 주공이라는 성인이 있었다. 어느날 주공은 상고라는 수학자에게 물었지. 그 옛날 복희가 하늘 주위를 계측하는 도수를 정했다고 들었지만, 하늘은 사다리로 오르지 못할 만큼 고명한 존재이며, 대지는 자와 치의 척도로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적은 것도 아닌 것을 대체 어디서 이런 숫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묻자, 상고가 말하기를, 숫자를 다루는 방법은 원과 정방형에서 나오는 법. 원은 정방형에서 생기며 정방형은 곱자에서 생기며 곱자는 9.9.81.이란 수의 곱하기와 나누기의 근원에서 생기는 것이라 했단다."
- "1주를 구(勾)라 부르고 길이는 3이며 다시 1주를 고(股)라 부르고 길이는 4며 두 개를 연결하고 남은 양끝을 이은 대각선현은 5가 된다. 이 현을 1주로 하는 정방형은 5.5.25. 바깥측에 구3, 고4, 현5의 직각삼각형을 그리면, 7.7.49.의 정방형을 얻을 수 있지."
'아아... 역에서 말하는 대수는 50. 실제로 작용하는 49라는 수는 여기에 있는 것이로군... 황금...'
- "구의 3과 고의 4라는 것은 원과 정방형에서 나오는 것이다. 구는 직경을 1로 하는 원의 원주이며, 고는 1주를 1로 하는 정방형 주위의 길이란다. 때문에 원과 정방형은 하늘과 땅, 음과 양의 수인 셈이지. 작과 홀에 의해 그 법을 다스리는. 그것이 바로 하늘을 가늠하는 방법의 으뜸 중의 으뜸이다. 그것에 의해 역이 생겨나고 역에 의해 시앗을 뿌릴 때를 알게 됨으로써,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거란다."
- "잘 들으렴. 9.9.81.의 율법에 지배당하는 친구가 오는구나."
"미안하네, 세이메이. 기막힌 술과 좋은 생선이 들어왔길래 가져왔네. 열려 있기에 불쑥 들어... 헉... 자네가 낳았어? ... 그럴리가 없지.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바보 같은 소리를."
"..."
'두근두근'
- "해도해도 너무하네, 세이메이. 왜 귀띰도 해주지 않았어? 자네 후세가 태어났는데, 축하 선물도 못 갖고 오다니. 정말 머쓱하군."
'호락호락 사람들에게 알릴 수는 없잖아. 세이메이의 자식인데.'
- "아으으으."
"뭐? 이 친구 말이냐? 아까 얘기했지? 9.9.81.의 '궁(宮)'에 지배되고 있는 친구란다."
"아으으."
"세이메이... 자네 갓난아이에게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율법(律法)에 대해 얘기하지. 소리는 '궁(宮)'으로 시작해 '우(羽)'로 끝나며 숫자는 1로 시작해 10으로 끝나며 3을 곱하고 나누어 생기는 법. 기는 동지에 시작되며,"
"이봐..."
"돌고 돌아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며, 신은 무를 낳고 형상은 유를 이룬다. 형상을 이룬 후 숫자가 되어 나타나서 목소리로 변하는 법. 천수 3의 3배인 9. 9는 황종의 피리의 길이이지. 9를 한 치로 하며 황종이 아홉 치이니 9.9.81. 이로써 '궁(宮)'을 만든다. 이 '궁' 81을 세 등분해 그 중 하나, 즉 27을 버린 54. 이로써 치(熾)를 만들지. 54를 세 등분해 하나(18)을 더한 72. 이로써 '상(商)'을 만들며, 72를 세 등분해 하나(24)를 버린 48을 '우(羽)', 48을 세 등분해 하나(16)을 더한 64를 '각(角)'. 3분의 4배, 3분의 2배. 이것에 의해 5음계가 결정되지."
"갓난아이에게 그런 얘기를?"
"놀라긴. 무엇이든 상관없네. 이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 잠을 잘 자거든. 그렇지?"
'정말이지 세이메이의 목소리는 자장가 같아.'
"그렇군... 참, 나도 마침내 전하의 윤허를 얻어 악소요록을 읽어봤다네."
"축하하네. 자네가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소실됐을 터이니 마땅히 그래야지."
- "그래. 인간의 몸 속엔 성당이 있지. 그 이름은 현단궁(玄丹宮). 자주색 막으로 둘러쌓인 붉은빛의 연기가 자욱한 녹색 방이지. 그곳에 태을진군이 있단다. 태을진군은 그대처럼 갓 태어난 모습이지."
"아으..."
"비단에 자주색 실로 수놓은 옷을 걸치고, 붉은 불의 유성 방울이 허리춤에 달려 있지. 이 방울소리는 10만리까지 울려 퍼지며, 유성 방울은 여름 밤 남쪽 하늘의 중심에 있는 대화성(大火星)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쪽 하늘의 대화와 부동의 북극을 장악하는 거란다, 아가야."
- '다시 하늘에 거대한 조짐이 나타났다. 한 여인이 몸에 태양을 두르고, 달을 밟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쓰고 있다.'
- "에구구, 놀라라. 이런, 관이 어디 갔나?"
"널 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데, 이 아이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걸. 영락없는 네 자식이야. 희한한 구석을 쏙 빼 닮았네."
"..."
- "타카아키라 님은, 자네 자식에 대해 벌써 알고 계셨어."
"그래서 검이로군."
"믿을 거라곤 수법뿐이라며 귀족들은 온통 천문박사와 호죠의 대논쟁과 세 궁궐에 수법된 안진법의 화제로 난리들이지만, 타카아키라 님은 자네를 은근히 높이 평가하고 계셔."
'관은 어디 갔냐고 했겠다... 더는... 못 배기겠군.'
"큭큭큭."
"뭐가 우스운가?"
"히로마사... 평가를 떠나서 마술사는 시대의 숨은 공로자지. 없어선 시대를 바꿀 수가 없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 대단하십니다, 이런 말이라도 듣고 싶어 했다간 죽을 수도 있어. 역대 마술사들의 혼령을 대할 면목이 없지."
"자네... 점수를 짜게 받는 게 싫은 거로군."
"당도했군."
'시공 하나 못 잇는 주제에 무슨 마술사라고.'
- "오늘은 승향전에서 태가가 거행하는 안진법 만원의 날이지. 술법의 결과를 구경하고 싶네. "
- "금, 은, 유리, 산호, 마노, 진주, 호박. 일곱 가지 보물이 궁궐의 일곱 곳에 묻히게 돼. 중앙에 모셔진 것은, 금색의 부동존. 새 왕도의 궁전이지."
'일곱 겹의 껍질에 에워쌓인, 황금알. 어떠한 풍국(豊國)의 술법을 쓴 들 효험은 좋겠군.'
- "나리께선 엄중한 재계 중이십니다. 새 궁궐 천궁 전 신상제에서 소납언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으실 관원이십니다. 신상제와 천궁 후 방울 연주 및 검의 맹세를 진행하실 중요한 역할이십니다. 오제제에 출사하시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니까, 규정대로 육색금기(六色禁忌)를 지켜주십시오. 병자와 만나서는 안 됩니다. 죄인을 처벌해서도 안 됩니다. 승려를 만나서도 안 됩니다. 불사와 육식, 나리 몸의 혼의 작용을 저하시키는 모든 부정을 금기합니다. 음악도 안 됩니다. 말씀도 삼가야 함은 물론,"
"그나저나 요리마사, 내가 일전에 편지를 보낸 여인에게서 화끈한 답장이 온 사실을 내게 숨겼겠다?"
"애욕도 안 됩니다."
"금기는 깨뜨리라고 있는 법. 이런 대사 때 날 유혹하는 여인이라. 흥분되는군."
"나리! 견실한 출세와 권력의 길과, 좌천-실추된 스캔들 왕 중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두 말하면 잔소리지. 둘 다다."
- '세이메이는 못 준다, 대납언. 그나저나, 우리 아버지와도 꽤나 마음이 통했었는데. 몹시 비위에 거슬리네. 훌륭히 연마된 우아한 센스. 특별히 만들어진 보물만을 엄선했고, 그 또한 고귀한 몸에 썩 잘 어울리곤 하셨지. 더욱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우리 아버지와 극비리에 뭔가 결사를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언젠가 꼬리를 잡고 말겠어."
- "그릇이 그릇인지라.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구해주는 실례를 범해서도 안 되겠지."
- "새 궁궐로 천궁 하기 전의 중대한 제사에 지각이라니, 뱃심 한 번 좋군, 세이메이. 덕분에 난 재계를 아주 제대로 했네."
'천문박사가 되고 싶거들랑 내 실각을 막아보는 게 좋을 게다.'
"극도의 재계를 해야만 관원을 맡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세이메이. 머리에 백사를 얹은 늙은이의 정체는 뭔가?"
"... 그 모습은 구가신이나, 그것은 우가의 조상 영혼인 이나다마와 연관이 있지요. 소납언 님... 토요오카노히메를 보기 시작하셨군요."
'맙소사. 왜 내 등골이 서늘해지지...'
'토요오카노히메. 신상제 제사의 토유케 태신 말인가?' 오리를 먹은 다음이 수확을 할 때지... 라고 했더니, 내가 수확을 당하고 만 건가? 그건 햇곡식으로 신주를 빚는 코노하나사쿠야히메인가?'
"주어를 빼먹은 덕에 호된 경험을 하고 말았군."
- '신과 전하가 수확된 진상품을 함께 드신 후 풍년을 축복하고 기원하는 거지. 신께 바쳐질 신찬은 모두 정성스레 요리되어, 부정을 쫓은 제사장으로 옮겨지고 거기에 목욕재계를 하신 전하께서 납시신다.'
"불멸과 순환을 누리며 축복하고 기원하는 중요한 제사란다. 아베 가는 군사 업무도 맡았지만 궁정에서의 향연이나 신찬을 준비하는 임무도 맡았지. 네 조부님은 미케츠신을 모시는 대선직의 대부이시다. 내가 결국 이나다마의 불꽃을 지닌 백호의 자식이라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란다. 그런데 즉위하신 황제가 일대에 한 번 주제하시는 풍년제를 대상계라 하지."
''상(嘗)'이란 한자 속엔 신기가 아련히 내림을 뜻하는 팔(八)' 자가 숨겨져 있다. 대극전 앞뜰 동쪽에 유기전, 서쪽에 주기전의 두 제전이 세워지고 오미케 식신을 포함한 어찬 8신의 자리가 모셔지지. 전하는 하룻밤 사이에 두 제전에서 아주 똑같은 형식으로 신찬을 공양하고 함께 드신단다.'
- '티끌만한 불순물도 들어 있지 않은 수정. 순수한 액화 상태의 수정은 서서히 식어 결정을 맺는다. 맺히는 과정에서 중심이 신악처럼 상호로 이동해 중심축이 '본'과 '말'의 두 줄기를 이룬다. 한 가닥의 실은 결정을 통과하며 두 가닥으로 보인다. '아'와 '와'의 두 소용돌이가 힘을 받았을 때 생명이 탄생하며 맥박친다. 1에서 2가 생기고 2에서 1이 생긴다. 이것이 풍년의 주술이다.'
- '모든 것의 끝인 해시(오후 9-11시)와 모든 것의 시작인 인시(오전 3-5시)에 유기와 주기의 두 제전 안에 들어가 신과의 향연을 벌이는 것은 천자이신 전하와 엄선된 두 나인 뿐이다. 엄선된 나인은 자신을 우물로 삼아 깊은 태고로 들어가 생명력 풍부한 태고의 신수와 바닷물을 퍼올려 국토를 윤택하게 한다. 국토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무녀인 나인은 햇곡식과 산해진미를 신께 바치는 전하를 도와 시공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그 물은 현세의 물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에 습기를 주는 영혼이 깃든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신기를 받아 순수한 물질 속에서 전하의 영혼이 밎어진다. 그럼으로써 천자는 대지의 풍년 왕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산해진미는 와타츠미 신궁에 있는 우물 위, 향나무 위에 놓이게 되는 거란다."
'빚어진다... 빚어진다란 필멸에서 불멸로의 이동을 뜻한다.'
- '당나라의 옛사람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영혼을 떨치기 위해 구슬 장난감을 주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음기를 받게 하기 위해 실패를 주어 농장, 농와라고 했다.'
- "당나라에서 도입한 것도 우리나라의 옛 것도, 제의는 본래 자연의 질서 하에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본래의 이유는 잊혀지고 그 절차와 형식이 중시되고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매우 풍아한 국풍문화로 육성됐지. 모로스케 님이 살아계셨을 땐, 전하와 미나모토 씨, 후지와라노 키타 가가... 조화를 이뤘었지. 정녕 훌륭한 관계가 될 법 했다. 그런데 세이메이, 그대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나? 피와 혼을 지키고 정사의 위엄을 유지하려는 자와, 권력을 택해 영화를 누리며 악착같이 착취하려는 자 중, 어느 쪽을..."
"보다 근원에 가까운 쪽입니다."
"... 그러고도 이제껏 용케 살아 있었군, 세이메이.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니, 악착같이 착취하는 자라 해도 근원에 가깝지 않다면 도저히 착취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떠오르는군. 하지만 우리에겐, 미나모토 씨라는 가문의 명분이 있으니까. 자아, 그대를 부른 것은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네. 치하루, 있느냐? 그걸 가져오너라."
- "..."
'이 정방형은.'
"대납언 님. 이건... 음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별칭 방제(方諸)라고도 하며, 이것으로 달의 물을 얻지요. 달의 물은 변약수(變若水)로, 당나라의 선인들은 그 물로 장생 약을 만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달의 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에 맑은 구슬을 넣어 달빛 아래에, 이슬을 맺히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 물러나는군, 세이메이.'
'대답 여하에 모든 앞날이 정해지는 순간에 모든 별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거문고 두 개와 저울질을 당하고 있군. 한 쪽은 보름달이 뜬 월대에서, 다른 한 쪽은 백주대낮의 정원이로군.'
- "기다리고 있었네, 세이메이. 안으로 들어가 놀아라.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까."
"댁으로 오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느 도굴꾼이 파낸 물건을, 우리 요리마사가 가로채온 거긴 하지만, 보게. 반대로 상을 맺네. 흥미롭지?"
"..."
'이 상자는, 간밤의 월대로군.'
"그건 양수라고 하며, 태양으로부터 불을 얻는 물건입니다. 별칭은 화주(火珠)라고 하지요. 그림자가 서로 어긋남은 한 점을 통과하며 빛이 반대로 그림자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실례하겠습니다. ... 이렇게 하는 겁니다."
"흥. 점화도구는 필요없다. 난 늘 달아오르는걸. 그대에게 주마."
"카네이에 님."
"개의치 말게, 세이메이. 천문박사가 되고 싶겠지? 난 관백이 되고 싶다. 그대의 결점은 박애정신이지만 내가 뒤를 봐주겠네. 알아듣지? 나와 그대는 비슷한 입장이니, 말이 쉽게 통하는군."
'이 자는...'
- '그 손으로 만지지도 못했던 방제이지만 여기에 이슬을 맺히게 해 키울 수완이 내겐 없으니, 그대에게 주겠다.'
"타카아키라 경."
"이쪽은 달의 배네."
'물의 근원이 바닥날 리 없고, 등나무도 홀로 서는 법은 없지만...'
'세이메이.'
'어찌된 일일까? 머나먼 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이 당도한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간다는...'
- '북인도 마가타국(摩伽陀國) 동북쪽 파시나성(波尸那城)의 서쪽 땅에 길상천녀를 전신으로 하는 왕사성(王舍城)의 대왕이 살았다. 모든 별세계의 감시감독을 주관하는 이 대왕은 천형성(天刑星)이라 불렸지만, 인간계에 환생해 풍요국(豊饒國)의 왕이 되어 이름을 우두천왕(牛痘천天王)으로 바꿨다. 전세의 동포였던 유리조(瑠璃鳥)의 계시로, 청우법의 본존이며 바다의 지배자인 사카라(沙竭羅) 용왕의 셋째 딸인 파리(頗梨)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남해로 향했다.'
- '1, 2, 3, 4 처음 네 숫자의 합은 10. 1, 3, 5, 7 처음 네 숫자의 합은 16. 2, 4, 6, 8 처음 네 숫자의 합은 20. 처음 네 짝수와 홀수의 합은 36. 구고법. 3, 4, 5의 합은 12. 12지, 10간, 28수, 36금. 9.4.36. 9.9.81. 모든 약수의 합이 그 수 자신이 되는 완전수 6과 28. 7.7.49. 5.5.25. 3.3.9. 만물을 낳는 3. 4로는 움직이지 않으나 음인 2와 3인 3을 더해 5가 되면 순환이 시작된다. 그것이 생명이다.'
- '3대 4대 5의 성스러운 삼각형은 7.7.49.의 정방형 안에 5.5.25.의 정방형을 만든다. 그런데 7.7.49.의 정방형이 외접하는 10.10.100의 정방형의 반면적 50이 되기엔 한 칸이 모자란, 그 7대 1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바로 생명의 진동 구조이다. 100의 반인 50으로는 움직이지 않으나 49라면 움직인다.'
- "세이메이. 원본 천문서에 직접 주석을 달다니... 뭐가 그렇게 급해?"
"생애 최대의 게으름을 들키고 말았군."
- '분명히... 내 대답의 한계에 이르렀어. 내 안에서는 지금 간다, 지금 간다는 외침이 멈추지 않는다...'
- "용서해주세요. 대납언님께 꼭 들려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중전마마의 여동생 나리코 님과, 전하에 관한 일입니다."
"나리코 님은 고향으로 내려갔지 않느냐?"
"그게 아직... 예사 몸이 아니신 중전마마께 문안을 여쭈러 왔을 때, 전하와 딱 마주치자..."
- '치토쿠. 저 모습을 똑똑히 보아라. 인간 따윈 몸도 마음도 순식간에 부패해 추락해간다. 모오타루(죽어야 마땅한 것들)...'
'도만 님은 인간의 마음의 빈틈에 몰래 침입해 유혹한다. 나는 도만 님이 유혹할 상대의 상징. 나는 인간의 모형. 나는 풍전등화. 나동그라진 촛대. 달아나고 싶지만, 달아날 수 없는 이 위험과 사랑에 빠졌다.'
- "아버지, 부디 설명해주십시오.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어째서 대사가 있을 때마다, 세이메이를 택하시는 겁니까?"
'제정신이냐? 미츠요시...'
"전 아버지와 조부님의 혈통을 잇는 음양사로서 일하고 싶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조부님도 왜 카모 가의 피붙이도 아닌 세이메이를 특별 취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이는 조금씩 나아지는 줄 믿고 있었는데...'
"나도 같은 말을 아버지께 여쭌 적이 있다. 아버지는 타고난 학자이자 교사였다. 그런 아버지께 재능이 있는 자는 혈연이든 아니든 보물이었지. 세이메이의 재능은 신뢰받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이냐? 나머진 말로 하지 않겠다. 스스로 깨우쳐라.'
"그럼 아버지, 제겐 그런 재능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얼치기 같은 놈. 이와 같이, 고귀한 기억을 끌어내어 모독하려 한다. 뭔가... 일어나고 있다.'
- '아아... 호흡하듯 두뇌에 들어오는 것이... 뭐지?'
- '헤이안 수도를 세울 때 이미 계획돼 있던 건가...? 이것을 토대로 도읍의 위치가 정해진 건 확실해. 하타 씨인가? 이것은 신선사상 수준이 아냐. 도읍은 완벽한 신성기하학 내에 있다... 심지어... 내 손 아래서 도읍이 맥박박치며 호흡하고 있다.'
- '이것이... 내가 갈망하던 새벽이다... 그런데 이리도 공포스럽다니...'
"어머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세이메이...'
'어머니... 부디 지켜주십시오. 제가 또 하나의 업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제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 '진동은 시간을 낳는다.'
- '때가 온다는 것이 이리도 공포스러울 줄이야...'
- "그런데도 당신은 그 날카로운 말과 목소리로 개종을 강요하는 키릴로스를, 현명하게 구슬리긴커녕 설파를 하고 말았어요. 그 자가 당신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당신은 아시잖아요."
"오레스테스, 내겐... 사랑하는 것들이 있기에 속일 수 없어요."
"그래도 여기 남아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요. 아테나이가 있잖아요. 게다가 이곳에서의 당신의 공적이 말살될 리 없어요."
"오레스테스... 이 알렉산드리아는 일찍이 지중해의 진주와 해신의 총애를 받아 세계에서 가장 번영을 누린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세계 지식의 전부가 이 도시의 도서관에 집약된 거죠. 그것들은 근원부터 다양한 형태로 인간들에게 전파됐죠. 수많은 지식과 지혜. 그곳은 인간의 두뇌의 상징이며, 근원과 대화하는 성역이에요. 그것들은 인간들의 보배이자 긍지죠. 그건 내 등대의 불빛이며, 기하학, 수학, 과학, 철학, 그리고 음악, 시, 그밖의 많은 것들... 그것들 전부가 귀결하는 곳은 하나. 오직 하나예요. 근원이며 신이죠. 그것은 오직 하나. 모두 같은 하나에서 동시에 발생해요. 그 하나 앞에 신앙의 차이란 있을 수 없어요. 그 하나에서 발생한 고밀도의 집약에 의해 존재하는 이 물질계의 아름다움. 진동과 빛의 응축, 그게 바로 인체죠.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훌륭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룬 표현 풍부한 세계에 그 몸을 담고 있는지. 난 그 하나에 여기까지 이끌려 왔어요. 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요. 난 그걸 등지고 떠날 수 없어요. 사랑이... 너무 깊어서. 오히려 날마다 그 사랑은 깊어만 가죠. 위험 따윈 안중에도 없어요."
- "대체 그들은 뭘 두려워하는 걸까요? 이런 날 죽이는데. 난 이 사랑 때문에 이렇게도 무력한데."
"히파티아. 그래도 달아나줘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나의 스승, 테온의 딸!"
"하지만 이건 간단한 문제예요. 이 알렉산드리아의 미래에 내가 필요하다면, 난 존재해요. 그게 모든 걸 말해줘요."
- '먼저 모든 사상에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현상은 모두 유기적이며,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바로 그들의 언어다.'
"그렇게 말을 걸어온단다. 우린 그걸 번역하지."
'그리고 점괘를 침으로써,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왕이 될 자의 조건이다.'
'한방 먹었군.'
"차이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마술사는 스스로 이동해 일체가 되야 한단다. 간단하지? 우린 조정자이니까. 명심하렴."
"세이메이, 문 앞에 그 남자가 와 있어."
- '궤짝 안을 맞히고자 역상(曆上)의 사복을 행할 때, 즉 연월과 일의 간지와 시각밖에는 정보가 없다. 식반을 사용한 육임(六壬)의 점괘는 역을 식반 위에서 해체해 괘를 결합시키는 사과삼전(四課三傳). 북두의 형태다. 같은 역과 식반을 사용하는 한 누가 쳐도 점괘는 같다. 나온 점괘를 궤짝 안에 숨겨진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시로 변환할 음양사의 능력은 혀끝에 달려 있다. 텐토쿠 3년 타다유키 님은 어명을 받들어 사복을 하시어 그 괘에 따라 궤짝 안의 수정 염주를 정확히 맞히셨다.'
"고르고 고른 일시와 궤짝 안의 내용물. 하늘이 돕지 않는 한 이렇게 선명해지진 않지. 사복할 필연성이 있었던 거야."
'스승님...'
"세이메이."
"난 이렇게는 못 해. 역도 식점도 언어야. 두 가지의 문법에 통달하지 않고선."
"할 수 없지, 뭐. 네 언어는 숫자와 도형이잖아."
'타다유키 님의 훌륭한 적중을 매명이라고 떠들어대는 놈들도 있지만, 스승님은 역법과 점법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으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외한인 나 같은 놈을 거두셨을까?'
"자아, 목욕재계를 해야겠다."
"이 식반의 괘는..."
- "마쿠즈, 그건 반환할 거다."
"넌 정말 고리타분한 남자야."
"천성이다."
"후계자 교육은 내가 철저하게 계획할 거야."
'내 경우는 타다유키 님의 경우 같은, 온전한 역과 점의 정확성의 증거가 목적은 아냐. 공공연한 자리에서의 술자의 실력 대결이다. 주상은 단순히 즐길 심산일지 몰라도 괘는 숨길 수 없어. 이 괘는 지나치게 간파돼도 위험하다. 나는 피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는데. 이 사복을 실수로 그르칠 수는 없다.'
"폭풍우가 온다. 그 궤짝을 내가 궁궐에 있는 동안 인수전에 보관하도록."
"동행하겠습니다."
"부탁한다, 하츠네."
"네."
- "우리가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입장인 건 알고 있는가?"
'나는 미시의 북소리를 들었다.'
"야스노리 님. 전 충분히 늦게 왔습니다. 도착해봤더니 시간대로인 걸 어쩌겠습니까."
'왜 이번엔 들여보내주지도 않지?'
"세이메이. 궁정 음양사가 궐내의 전하의 어전에서 시정 패거리들에게 뒤질 순 없다. 하지만 그 패는 전하의 불온함을 드러낼 위험이 있네. 대놓고 그 나인은 위험하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도만이 말하지 않겠나?"
'또 일어서질 못하겠군. 꼼짝도 못 하겠어.'
"만일 자네가 날 믿고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점괘 시간을 바꿔 보겠네."
"아..."
'점괘 시간이 바뀌어도 궤짝의 내용물을 맞혀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난 이 상태로는 청량전까지 이르지도 못해. 빌어먹을. 조리의 비밀은 아베 가에 남겨야 할 미래의 약속이었는데. 미안하다, 마쿠즈.'
"히로마사 님. 야스노리 님. 부탁이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의 미래를 위한 비장의 무기. 그런데 그 비밀을 여기서 이 두 사람에게 밝히고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말인가.'
- "그걸 지금 여기서 약속해주신다면, 이 사복을 무슨 수를 써서든 타개하겠습니다."
"좋다."
'이제야 움직이는 군. 좋아. 됐어. 이로써 도읍의 중대한 비밀을 내가 무덤까지 안고 갈 염려도 없고 미래에 대한 보장을 잃은 아베 가를 위해서는, 이 몸을 바쳐 돌아가는 셈이 됐군.'
'세이메이...'
'드디어 사복의 자리로 나간다... 내 손 안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난 빈털터리다.'
- '저것이 근원이 내게 보내는 대답. 저것이 근원이 내게 보내는 선물. 난 절묘하게 기를 빗나가고 있어.'
- '미시다.'
"길일을, 택했군. 치토쿠."
13권
- '이건 날 위해 준비된 게 아닌걸. 죄다 삼베 끈으로 봉인되어 있어. 얄미운 세이메이. 망할 세이메이. 이것에 손댈 수 있는 건 허락을 받은 후계자 마술사 뿐이야.'
- '내 선택이 옳다면 옳은 만큼 스스로 궁지에 몰릴 것도, 그 선택이 중대할 것도, 치명적일 것도, 그것을 선택할 용기를 잃지 않을 것도... 기도하고 있었다.'
"영화를 누려라. 축복을 받아라. 넌 내 집이다, 마쿠즈. 네가 네 안의 내 집을 지켜준다면, 난 반드시 네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내가 쓰러지거나 상처 입은 모습을 보아도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아다오."
- '비밀리에 어둠을 통괄하는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세이메이에겐 초하루 때마다 야행을 할 의무가 있어. 절묘하게 생포됐구나, 세이메이. 그런 부상을 입고선 망량의 희생물이 될 거야.'
'달과 태양의 화합의 시간. 거대한 소용돌이의 기둥을 두르고, 세이메이는 떠났어. 발자국마다 어둠의 망량들이 심취할 감미로운 피를 흘리며...'
- '확실한 회유책. 확실한 혈로. 확실히 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나는 날짐승이며 제물로 바쳐진 고기다. 모든 골목, 모든 동네의 대로소로의 모든 길, 모든 가두. 맹금들이 내 심장에 부리를 꽂고 내 생혈을 빨고 있다. 날 실컷 맛보아라. 내 피로, 부정을 씻어라!'
- "19 대 16의 도읍의 조리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성스러운 도형 속에 성스러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지. 아직 일찍이 그 사실을 의식하고 발동된 적은 없네. 시도를 했던 자 또한 아무도 없지. 히로마사, 자네가 완성해주길 바라네."
- "가야할 지점을 다섯 군데를 써놓았네."
"거긴, 자네도 같이 가주는 거지?"
"난 가지 않아. 도읍엔 있을 수 없게 될 것 같네. 히로마사, 도읍은 보편적인 수리에 의해 훌륭히 설계되어 있네. 이 두루마리를 자네에게 맡기겠네. 부탁하네."
- "부탁하네."
"잠깐만 기다려, 세이메이. 그러다간... 관이, 열리겠어."
"알고 있네. 열어주게. 부탁하네, 히로마사."
'갇혀 있던 지극히 높으신 영혼들이여.'
"알았네, 세이메이. 확실히 책임지겠네."
'눈을 떠라.'
- '이 주작대로와 사조방문소로가 교차하는 사거리는 경성의 조방도에서 보면 흉부와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심장부, 즉 중심이지. 이 사거리를 중심으로 주작대로를 북상해 하나오카산 정상까지의 거리를 반경으로 하는 원을 그리면, 도읍의 동남쪽 경극과 마찬가지로 서남쪽의 경극이 그 원주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네.'
'세이메이이... 난 그것만으로는 모르겠네... 날 높은 곳으로 데려가 그 계획을 보여주게. 내가 과녁을 빗맞히지 않도록...'
'알았네, 히로마사. 그것은 조리의 비율에 따라, 도읍의 범위와 중심점이 결정된 확실한 증거라네'.
- '19 대 16. 원의 직경이 되는 분할된 주작대로 속에 11 대 8이 만들어내는 각도는 원을 정확히 10등분하지. 그것은 신비적 수리에 통달한 자가 도읍을 설계한 증거이기도 하네.'
- '머리. 그것은. 라는 태양. 위대한 태양신.'
'심장. 그것은. 케페투는 스카라베이며, 윤회하는 생명의 파도에서 형상을 창조하고 출현시키는 생명의 그릇.'
'골반. 그것은. 넵은 바구니이며 주인이며 모든 것을 담는 그릇.'
- '내 탄생명은 토트 앙크 아멘 헤카 이누 쉐마. 신비의 신 아멘신의 살아 있는 모습, 이집트 헤리오폴리스의 지배자.'
- "세이메이... 기강을 흐리지 말게. 그래서는 사각제를 했다손 치더라도 모두 허사가 되고 마네."
"야스노리님. 헤이안 도읍을 세울 때, 건곤감손의 사각의 위치가 정해진 것엔, 수리적으로 보나 길흉으로 보나 음향오행의 이치를 토대로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음양오행은 생명순환 물질세계 조직의 근본이며, 그 이치가 도읍 기반에 시행되며 그것이 이제껏 살아 작용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으십니까? 천문, 역, 물시계, 음양오행이란 물질세계의 법칙- 즉 시간입니다. 시간을 거듭함으로써 조직은 발동하고 살아갑니다. 그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음양료의 임무이지요. 그날 해시에 야스노리 님의 지휘 하에, 경성 사각의 대로 가장 극에서 동시에 제사를 거행해주셨으면 합니다."
"자네는 그 시각에 사각의 한 곳을 담당할 건가?"
"전, 그곳에서 공양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알았네. 확실히 책임지겠네."
"감사합니다. 야스노리 님과 히로마사 님의 두 손으로, 헤이안 도읍을 완성해주신다면, 저도 안심이 됩니다."
'세이메이...'
"그럼, 부탁드립니다."
'잠깐... 가지 마라. 부름을 받아도 입궐하지 마라. 귀족들이 무슨 말을 한들, 무슨 부탁을 한들 승낙하지 마라. 나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마. 와카사에는, 가지 마라.'
- '지금뿐이야. 나는 다시 시정 법사로 돌아갈 수 있어. 지금껏 해온 것보다 훨씬 시정 법사답게. 이리로 향해 오는 그 자는, 스스로의 완성도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
- '분명히 닫혀 있던 관이 열리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참으로 길고 길었던 밤이 밝는다.'
- '샘이여. 지금이야말로 나는, 그대가 바라던 것을 완성했소.'
- '가능하다면 사각 모두 내가 집행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자들이 잘할 수 있을까? 한 치의 부정도 용납되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공을 들여 심사한다.'
"아버님..."
'말도, 삼간다. 와카사로 향한 그 자를 물러서게 만들어선 안돼. 균형이 깨지면 그 자는 돌아오지 못하게 돼.'
- '11대 8이 만들어내는 각도는, 360도의 원을 정확히 10등분한다. 또한 경성의 손방의 극과 곤방의 극을 잇는 구조대로는 그대로, 경성을 둘러싸는 원주에 내접하는 정오각형의 한 변이 된다. 후나오카산을 북쪽 정점으로, 이와 같이 헤이안 도읍은 오망성(五芒星)에 의한 영원한 순환 속에 영원히 정지된 조리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합체하고 있다. 그 두 도형의 핵심이 하야부사 신사가 있는 곳이다.'
- "야스노리 님은 경성의 사각을, 자네는 정오각형의 다섯 지점을 제어해주게."
'양 날개의 포인트는 포장도로인 대취어문대로를 경성 밖으로 연장한 곳에 있다. 동은 시라강의 후지와라 가 별장지대에, 서는 바로 도읍의 기반을 만든 야스우지의 본거지인 우즈마사의 봉강사. 경성은 그 다섯 지점이 만들어 내는 정오각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접하고 있다.'
- '세이메이는 내게 다섯지점을 제어하라고 했을 뿐,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 소리라 생각하고 활을 택했다. 경성의 비율이 360을 10등분한다면 36걸음씩 떨어진 과녁을 쏘면 된다. 곤방에서 쏜다. 곤방은 흙이며, 어머니며, 여제이다. 곤방에서 쏘는 왼손은 1, 오른손은 2. 하지만 진동은 을에서 갑, 1에서 2이다.'
- '활을 선택했다. 화살은 현을 2등분하며 진동은 배가 된다. 곤방에서 쏜다. 곤방. 카츠라강과 텐징강이 합류하는 부근. 하늘을 관통하라.'
- '따오기의 머리를 지닌 토트 신. 그는 지혜와 마술의 신이며 태초 최초로 만든 문자의 수호자, 달의 지배자, 만물을 계산하는자, 여덟 도시의 주인이다. 그는 물가를 찾은 공물이 될 물새를 포획할 덫을 치기 위해, 물새를 잡는 육각형 그물 양쪽을 닫는다. 성 헤리오폴리스 성에서는 세트 신이 호루스의 그물에 잡히셨다. 신의 사냥 전설은 앞으로 건설될 카르나크 대열주실의 남서쪽 벽에 새겨져 있다. 토트신의 두 팔은 2m. 이것은 하나의 단위를 나타내며 왼발의 중심축부터 60도의 원을 그린다. 토트신의 팔은 사냥감을 에워싸고 의복의 금장신구를 풀어 포옹한다.'
- "필요한 건, 바로 샘. 당신이오. 나는 왔소.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왔소. 이 모습에 만족하시오?"
"당신은 만족하시나요?"
'생명의 모태가 강림해, 하필이면 이런 모습을 택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샘이여. 당신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나는 씨를 뿌리는 남자요.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신성한 곤방이 되살아나기를.'
"사랑하오. 되살아나주오."
'그때 하늘에서 내리신 초승달 검이 천공에 번쩍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달의 숫자인 열네 조각으로 분할하기 위해.'
- '곤방에서 쏜 다음은 북쪽 정점인 후나오카산에. 두 번째 화살을 북쪽에서 손방을 향해 쏜다.'
'삼가 아뢰나이다. 그 천지는 음양원기 청탁경중의 걸정체이나이다.'
'세 번째 화살을 동남쪽 극과 카모강이 교차하는 손방에서 우즈마사를 향해, 쏜다.'
- '시간과 해와 달이 분리되어 간다. 별이 돌기에 시간이 생기는 것인가, 시간이 흐르기에 별이 도는 것인가. 합체가 풀린 순간, 달을 잃었던 천공의 어둠에 가느다랗게 틈이 생긴다. 대지를 뒤흔드는 격렬한 절규와 함께, 샘의 얼음이 깨지며 나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 팔은,'
[그러고도 이제껏 용케 살아남았군, 세이메이.]
[말살당하고 싶은 거냐? 세상에, 저런 모습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군요. 당신 같은 사람은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꺽여서도 그것을 포옹하며 지키려 했다. 명명백백한 죽음이었다.'
- '아닙니다. 당신이 몸소 신성한 공물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 '물질로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 '연결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육체도, 육체의 형성을 유지하는 진동의 장 또한 순식간에 산산이 흩어지고 맙니다. 물질 따윈 물질 밖에서 보면, 태양빛에 허무하게 소멸했다 태양열에 다시금 피어나는 구름 같은 것. 공간에 모습을 실현시켜 왕림해 영혼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육체는 빛과 진동의 신비한 결합에 의한 결실입니다.'
- '서는 우즈마사의 봉강사 팔각형의 전당, 계궁원. 거대한 오망성을 그리는. 삼가 남두, 북두, 육합의 모든 신,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소생케 하는 유일신께 아뢰나이다.'
"내가 잘 좀 보살펴달라 부탁한 것 같은데, 어찌 내가 보살펴주고 있는 것 같으냐, 요리마사?"
"그게 바로 큰 인물이란 증거입니다, 나리."
'앗...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산과 강에 에워싸인 왕성의, 모든 신께 비나이다. 천문, 인문, 지호, 귀문의 사방의 궐문에 깨끗한 제사장을 만들고 깨끗한 신찬을 올리며 다시 손을 뻗어 순풍적이고 영리한 빈마처럼 한없이 땅을 도나이다. 그 덕은 무한한 하늘의 덕과 일치하며 광명성대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서남쪽에서 벗을 얻다란...'
'세이메이... 자네는 이걸 원했던 거로군... 순종의 덕인 대지의 도를...'
- '마침내 기쁨이 있음을 뜻한다.'
- '왕의 뇌는 기도이며, 왕의 심장은 사랑입니다.'
- '반상에 하늘을 편다. 자미(紫微), 좌원우원(左垣右垣), 천주(天柱), 오제(五帝), 북두(北斗)... 전에도 사각사계에 결계를 쳤었어...'
- "영감! 당신은 세이메이에게 아기 낳는 방법은 가르쳐줬으면서, 낳은 아기가 누군지는 왜 안 가르쳐준 거야?"
"난 심부름만 했을 뿐이야! 세이메이의 불찰이라구."
'큰일이야... 세이메이는 돌아와야 해. 이걸 몰랐다니, 세이메이... 네 수고도 물거품이야. 천제 아메노미나가누시께 비나이다. 난 집입니다. 내가 떠나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천원에 돌을 놓게 해주소서. 그러면 세이메이를 데리고 돌아오겠나이다.'
- '나는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검으로 보식신에게 갈갈이 찢기는 월궁(月弓).'
- '나는 당신의 행동의, 결과이다.'
- [네 바람이 무엇이냐?]
[제... 바람...]
'나는 완벽하게 그자를 물리치는데 협력하고 말았다. ... 그 자의 바람대로.'
- '화살은 이제 필요없어. 나는 날개를 펼치고, 다시금 천원을 쏘겠다.'
- '다른 한 남자도 완벽하게 물리치겠다. 내가 길잡이가 되겠어. 이것이 나의 소리다!'
- '오너라. 바로, 내 날개 속으로.'
- '내 머리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물은 해변을 물들이며 흘러 바닷물과 하나가 된다. 이 순간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상상치도 못할 형상으로 성취되었다... 갓 소생한 미약한 달빛에 갈기갈기 찢긴 육체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씨는 죄다 뿌렸다. 이제 난 대지가 된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든 바다로 흘러들도록. 내 위에 만물을 올려 놓아야지. 두말할 나위없이, 황홀경에 빠져있는 것은 바로 내 쪽이다.'
-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다.'
"넌 자신을 바꿨다."
'넌 달이다. 언제나 천공을 날아가는.'
"날아가버리는 널 항상 좇고 있는 날 아느냐?"
- '그것이 신비이며, 그 주술이 마술이라고. 스러져가는 찢긴 육체를 빛내며, 아베노 세이메이는 말했다. 달의 정기를 받아 달을 머금은, 내가 사랑하는 나무랄 데 없는 이 남자의 육체와, 이 남자의 수행에 축복을... 하지만 이룰 수 있다면, 달님의 힘으로 이 남자와 하나로 이어지고 싶어요. 제게 힘을 빌어주세요. 시간이 바퀴를 도는 동안... 이어도 될까요? 아아,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 "내 다음 천문박사의 지위는 아베노 세이메이가 잇게 된다. 그 후로 대대손손 아베 가는 천문도를 업으로 전하며, 카모 가는 대대손손 역도를 업으로 전하게 된다. 천문도는 하늘의 모습을 관찰해 축복을 직시하며, 역도는 그 천문을 기록으로 남기는, 둘 다 지극히 영묘한 도이다."
'기쁨과 축복이 넘쳐난다. 육체는 여기 있는데 그 자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 "세이메이는, 변약수를 가져오는데 실패했습니다. 그의 실패로 궁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두 도로 나뉘어 전파하며 각각 종가가 되어 양가를 이뤄야 한다."
"그러시면 아버님이야말로 도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그 말씀은 지금이 아니라도 좋으니 어서 청량전으로 가십시오."
'불러들일 수도 찾을 수도 없어.'
- '하늘의 중궁전은 천극성. 가장 밝은 별이 태일 천제를 뜻한다. 추(樞), 선(璇), 기(璣), 권(權)의 네 별을 선기(璇璣). 형(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의 세 별을 옥형(玉衡).'
- '그 전체를 자궁(紫宮)이라 한다. 북두는 천제의 가마를 뜻한단다, 아가야.'
- "이 자는 완벽한 균형 위에서 활동을 멈추고 말았어."
"난 천원에 돌을 얹었단 말이야."
'하늘의 도를 사랑하며, 땅의 도를 사랑하며, 인간의 재능을 사랑하며, 지극히 미약한 무형에 빠져, 태양을 돌리시어 유례가 드문.'
"아버님... 아버님. 전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아버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전하께 가십시오. 어명이십니다."
- '날 부르는 게 누굴까? 더없이 깨끗한 순수상태에 들어가 밝은 명계로 통한다. 소리에 응답해 소생하길 청하나이다. 나는 깨어난다. 4종5횡이 있다. 난 지금, 나간다. 벗이여, 길을 지켜라. 내 집으로 귀환한다.'
- "마쿠즈, 날 모아 데려와줬구나. 네 덕에 이제 환생했지만, 난 아직 임수를 환수하는 중이다. 다시 떠나도, 되겠지?"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자가 찾아온다. 이번에는 황금 벼 이삭을 짊어지고 있다. 이 남자에게서 아직도 그 거대한 바다의 물결소리가 들려. 깊고... 아득한 울림이야.'
"세이메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신으로부터의 축복을 이 자가...'
"괜찮아. 이젠 갈 수 있어."
"그래보여."
'한 순간만이라도 좋아. 내겐 충분해.'
"가세. 주상이 기다리네."
- '내가 사랑하고 너를 사랑한 자들이 가차없이 너를 섬멸했다가 너를 소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주술이다.'
"당신을 원했습니다, 어머니 신이시여. 당신께서 주시는 물은, 가장 영묘한 젊음의 물입니다."
'나는 풍요의 최상신인 토유케 대여신에게 나를 몇 번씩 바쳤던 거로군...'
- '네가 날 원한다면.'
"당신의 선함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기에, 살해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일찍이 당신의 그 영묘한 자양으로 충만한 빛의 기둥이 이 지상에 질서를 세웠다. 그때 신과 인간은 손을 맞잡고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이 집의 주인에게 물을 전하겠노라. 폭포 같은 맑디 맑은 영기 속에 진실한 생명이 충만했다.'
"오소서,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존재는 모든 대화였다.'
"나는 당신 손안에 있습니다."
'살랑거리는 비단 발 아래.'
- '나는 참외를 바쳐 기우 여행을 하면서도 북두의 여덟 번째 별인 보성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탄츄 옹이 여덟 개째의 참외를 일부러 건네주러 왔을 때조차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기다. 틀림없이 보성은 아기를 뜻한다. 분명히 그에게 '점(点)'은 필요하다. 어리지만 생사를 주관하는 신인 태산부군이다. 내 아이가 보성의 정수인줄도 모른 채 저승에 갔다가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의외로 어리바리한 덕에 이승에 살고 있군.'
'그는 내가 잡혀 있던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던져 나를 구했다.'
- '내게 내민 불로불사의 나라의 유혹을 받지 않았지만, 불로불사의 나라에서 내게 접근해왔다. 꿀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대기. 그리고 예주(醴酒)를 주었다. 액체인데도 금속과 같으며, 투명한데도 주위 풍경을 진주색으로 비춰낸다. 꿀 같은 수은. 이것이 고차원의 나우츠히메의 젖이다.'
- '이 남자는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어. 황무지를 개척해 풍요로운 땅으로 바꿔 씨앗을 뿌리길 좋아하는 남자야. 열매 맺을 과실을 음미하고 즐기는 데는 관심이 없어. 신념이 확고한 마술사야.'
"인형으로 단련시킨 손가락도 드디어 나설 차례가 왔어. 다음 황무지로 떠나기 전에 완성해야겠는걸. 저번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신 질색이야."
- '사복(射)'. 덮여진 궤짝 속의 물건을 점괘를 쳐서 알아맞히는 점술사의 점술능력을 시험하는 '사복'은 그 점술사가 투시능력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점괘에 의해 궤짝의 내용물을 맞히는 점술사의 경험치와 기량과 교양을 가늠하는 기술이었던 것 같다.
- '사복'은 옛날 전한 무제 시대에 술사, 동방삭이 무제의 명을 받아 '역(易)' 사상을 토대로 대나무 점대를 사용해 엎어놓은 그릇 안의 도마뱀붙이를 맞힌 기술이 '한서동방삭전'에 남아 있다. 여기에는 동방의 달의 초하루라는 의미 심장한 이름의 술사, 동방삭이 점술과 동시에 유례가 드문 지식과 언어를 방종으로 바꾸는 뛰어난 화술로 주위를 제압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 일찍이 고대 중국에서는 왕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햇수를 헤아렸다. 시대가 지나고 통치하는 동안에도 다양한 길조가 나타나 그 해를 원년으로 하는 실례가 생기며 무제에 이르러 연호제도가 확고해졌다. 그 연호제도는 일본에도 도입되어 '타이카(大化)시대'에 시작됐다고 전해지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개원은 태초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에 따라 정식(정월 초하루) 즉, 달력을 개정하는 조정 의식이 행해졌다. 그것은 일찍이 나라의 주인에 의해 만물을 하나인 태초로 되돌리는 주술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한 시대를 통치하는 '시(時)'라는 기준을 단번에 새로이 리셋하는 시대와 시대 사이에 없어서는 안될 의식이었다.
- 역은 천공을 도는 천체의 일 년 간의 움직임을 한 권의 두루마리로 변환함으로써 국정, 연중행사 일체를 정하고 더욱이 일년 중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순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쉽게 하여 농작물의 씨앗을 뿌리는 시기, 수확시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또 점괘는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능자가 천상계과 명계를 아우르고 하늘과 땅을 기준으로 자아내는 신성한 기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복'은 마치 기술 겨루기처럼 여겨지지만 '점시(占時)'라는, 점을 치는 한순간을 시간속에서 취하여 판단하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여 만들어진 식반을 사용한 점술로써, 가려진 궤짝의 내용물을 놀랍게 적중시켰을 때 그 시대의 나라의 주인이 선택한 그 한순간의 '시'를 정하게 하는 달력과 사용된 점술이 조화를 이루는 중표가 됐음에 틀림없다.
- 만화 음양사는 자연스러운 스토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써나감으로써 숙적으로 표현되는 법사 도만과 아베노 세이메이가 궁궐에서 대치하는 설화 등으로 너무도 유명한 이 '사복'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본서의 스토리 진행 2년 전인 텐토쿠 3년 2월 7일에 천황의 칙명에 의해 실제로 실시된 카모노 타다유키의 '사복' 사료를 접하게 됐다. 당시 일본은 선명력(宣明曆)이라는 태음력을 도입하고 있었지만 '조야군재'라는 사료에는 '사복'의 일시와 간지에서 육임의 점술에 의해 나온 천장의 결과가 기술되어, 카모노 타다유키의 깊은 사상과 교양을 실감케 하는 실로 시적인 점문과 팔각 궤짝 안의 붉은 실로 꿰어진 수정 구슬을 훌륭히 맞히는 상황이 담담히 기술되어 있다. 그 이상 깊이 기술되지는 않은 사료지만 실제로 다루어 보니 거기에 종오품 이하인 카모노 타다유키의 역과 점술에 대한 매우 조심스럽지만 깊고 예사롭지 않은 자신감의 정도가 엿보인다.
- 만화 음양사의 대본은 도쿄 대학 사료 편찬소 대일본사료, 천 년 전에 기술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료에서 보이는 사실 그 자체, 또는 기록의 결손을 메우도록 그려져왔다.
- 사과삼전을 산출하기 위해 코사카 신지 씨의 논문 <세이메이 공과 점시약결(占時略決)> 자료로 했으며, 사과삼전으로 궤짝의 내용물을 한정하기 위해서는 <대육임묘공사복귀촬각(大六壬苗公射覆鬼撮脚)>을 자료로 했다. 만화 속에서는 비시향과라 했지만 '음양사'라는 만화는 감귤열매 15개를 묘사할 수 있는 한순간의 '시'를 단 한번 만에 적중시켰다.
- 선명력과 육임의 결과가 이렇다면 그럼 서양 점성술에서는 어떨까. 전자는 '점시'에서 역을 토대로 간지를 해독하는 점술이며 후자는 마찬가지로 '시'의 천공의 상태 즉 천문으로 해독하는 점술이다. 오와 2년 8월 29일은 양력 962년 9월 30일 미시(오후 2시) 교토 (그림 1 참조), 이것이 도만과 세이메이가 사복을 행했을 때의 서양점성술의 별자리이다.
- 별자리 상의 혹성의 위치와 실제 흑성의 위치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당시 실제 혹성의 위치를 조사해봐도 이것은 거의 혹성직렬이다. 이 그림은 오후 2시 11분 태양이 별자리 상의 제8가에 들어간순간, 죽음과 재생, 신비와 마술 그리고 상속의 제8가에 천칭자리에 있는 금성을 중심으로 7개의 별과 화성, 천왕성, 금성, 해왕성, 수성이 태양과 달을 사이에 두고 두 곳에서 합체한다. 너무나도 놀랍다.
- 별에는 거의 불필요한 각도가 없다. 이 같은 별자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 내용은 본문의 '사복' 상황을 그 별자리와 한치의 오차 없이 반영한 것 같다. 천공이 이럴 때는 마술을 하든가 서로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미는 도만(명왕성). 정반대로 물질계에 이제 막 탄생하려는 신선, 세이메이(토성). 응축, 결정체가 갑절인 토성은 물질의 별자리이며 염소자리의 상승라인 때를 올려다보며 대지를 이제 막 밟은 지평선 아래의 물병자리에서 동틀 무렵을 기다린다. 토성이 며오름과 동시에 명왕성은 생명 탄생의 자리인 게자리와 함께 서쪽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간다.
- 지평선에서 떠오르려 하는 명왕성과 결혼 제7가 토성을 현으로 하늘의 정점인 나후성에서 수성을 잇는 수직의 화살. 해왕성과 토성을 잇는 유일한 길조의 별자리 상에 세이메이의 생활이 보인다. 하나같이 극적인 천문이다. 이런 천문의 순간이 세이메이가 살았던 시대에 있었을 줄이야. 하필 그것이 임의로 택한 '사복' 때 또 스토리상의 '사각제'와 일치할 줄이야. 천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그 모든 순간을 뚫고 나타난 점괘의 결과와 천공의 모습에 놀라게 될 줄이야.
- 1997년 어느 잡지에서 컬러 일러스트 한 점을 의뢰 받았다. 그때 수학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우주공간에서 유유자적하는 세이메이를 그렸다. 우주공간에는 거대한 빛을 발하는 백사가 팔자를 그리며 세이메이의 이마에 접촉하고 있다. 백사는 마술과 수학을 주관하는 지혜의 영적 존재이다. 그 당시 세이메이가 마술사로서 이렇게 존재해주길 바랐던 바로 그 모습이다. 지난달 잡지가 견본으로 도착했다. 그 책 속에 신간 안내로 소개된 책이 있었다. <천공의 뱀>, 존 앤소니 웨스트. 저 표지에는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가 중앙에 배치되고 제목을 히에로글리프의 뱀이 휘감고 있다. 뱀은 고대 이집트 문자와 마술의 신인 토트 신의 이집트 명이다. 천공의 백사를 그린 후에 천공의 뱀을 만났다. 그 책이 더욱 필자를 극적 연구에 몰입하게 했다. 책은 웨스트씨에 의해 알자스 출신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슈바레 드 루비츠(1891~1961)의 저자와 연구 후 그때까지 정설로 여기던 이집트학을 근본부터 뒤집는 듯한 루비츠 씨의 사고를 소개하기 위해 일반 독자용으로 쓰인 것이었다.
- 이 슈바레 드 루비츠 씨의 저서는 일본에서 아직 한 권도 간행되지 않았다. 필자를 매혹시킨 저서는 고대 이집트의 제18~19 왕조시대에 아멘호테프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고도 테베를 건설한 루크솔 신전을 지극히 치밀하게 측량해 팽대한 조사의 결과가 집필된 <Le Temple dans I'Homme (The Temple In Man) (이하 인간 내의 신전)>과 그 8년 후에 간행된 전 3권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저서 <Le Temple De I'Homme (The Temple Of Man) (이하 인간의 신전)>이었다. 루비츠 씨의 이 저작들은 1949년에 카이로에서 간행되어 프랑스의 이집트 학회에 다대한 파문을 던졌다.
- '고대 이집트의 비밀 교리는 생명 기능에 입거하고 있으며 생명 기능의 모든 기관을 살아 있는 상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루크 신전은 신전 건축자체와 그 장식물 전부를 우주와 그 축도인 인간에 관한 비학의 전당으로서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소우주, 즉 신성인간의 상징이다'라는 그때까지의 고대 이집트학을 불식시키고 눈에서 비늘을 벗기는 듯한 뛰어나고 색다른 내용이었다.
- <천공의 뱀>은 단편적으로 이 우수한 연구를 보유하는 것이었지만 더더욱 루비츠 씨의 의도와 자세를 깊이 알고 싶었다. 5년 후 상기의 두 저자와 카르나크 신전에 관한 저서의 영어 번역서 <Les Temples Karnaks (The Temples of Karnak>)를 입수했다. 고대 중국 사상과도 유사한 제왕학, 천문학, 수학, 이집트 현도, 우주의 숫자의 법칙에 대해 기술된 문장 중에서 찾아낸 '별들의 운동(계속과 시간)은 불변이 아니다. 모든 것은 천공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하모니의 법칙 자체는 불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만일 요소 하나가 변화하면 비율이 모든 요소에 대한 '조화적인' 순응을 야기할 것이다'. 이 한 문장이 루비츠 씨의 저작에 대한 긴장감을 풀었다.
- 그것은 경성의 사방에 네 신을 배치하고 천지의 상징을 도읍 안에 구현해 천의, 즉 우주 질서의 기반에 정사를 행하려 했던 고대 중국과 고대 일본에서 미루어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술사들은 이 법칙을 알고 조정하여 화를 복으로 바꾸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도시와 건축물, 음식, 몸에 걸치는 의복에 이르기까지 천상, 즉 눈에는 확실히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의 나선,앵글을 바꿈으로써 보이게 되는 투명한 다각형, 다각체 기둥을 상징하는 것에 철저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시대가 인간 자신, 별들의 에너지가 깃들 수 있는 히모로기였기 때문이다.
- 문자와 수학과 마술의 신인 토트 신은 따오기로 모습을 바꾸고 고도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실의 서북쪽 벽에 고대 이집트의 온갖 미술에 공통되는 19의 비율을 새기고 있다. 인간의 신전 속에 '7과 19의 숫자'라는 장에서 루비츠 씨는 19와 18이라는 숫자가 직경을 20으로 한 원에 내접하는 정오각형의 높이와 대각선의 길이에 입각하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신전 벽을 장식하는 레리프는 전부 그 황금비율에 입각한 정방형을 베이스로 조각되어 있다. 그 정방형 안에서 토트 신은 두 팔을 벌리고 손에 든 스카프로 2미터를 상징함과 동시에 포옹한다. 감싼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서 있다. 그것은 권력과 균형의 중간, 모든 척도의 주인으로서 팔을 벌리고 선 것처럼 보인다. 척도의 주인인 정방형과 헤이안 도읍의 조리의 비율을 맞춰 겹치자 정확히 일치했다. 신기하게도 궁궐은 좌뇌에 해당한다.
- 헤이안 도읍 조영 때 경성을 영원히 지속될 황금비율의 나선을 내재시키는 정오각형안에 정확히 넣으려고 계획했던 것인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 지혜를 주관하는 천공의 백사는 또 하나의 만남을 인도했다. 루비츠 씨의 저서를 앞에 두고 일본에서는 출판되지 않을까, 누군가 번역을 시작하고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찰나, 지인으로부터 최근 소식을 나눈 뉴욕 주재의 비밀사상가가 루비츠의 대저서 <인간의 신비>를 응축한 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 내의 신전>이 수년 전에 번역되어 아직 간행되지 않은 채 원고로만 남아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즉시 뉴욕 주재의 에소테리즘(신비사상) 연구가 마에다 키코 씨와 길고도 열렬한 편지를 나누었다. 2004년 1월 <인간 내의 신전>의 번역 원고 전문을 전해 받았다. 이 번역 원고의 도움이 있었기에 루비츠 씨의 대저서 <인간 신전>의 내용과 윤곽이 보였고 매우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간행되지 않은 소중한 번역 원고를 보내주신 마에다 씨께 깊이 감사를 드리며 가까운 미래에 루비츠 씨의 유례가 드문 연구의 번역본이 간행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 마지막으로 발행일이 다가오는 와중에 지긋이 원고를 기다리며 본서의 탄생에 진심을 다해주신 백천사의 미즈카미 켄이치 씨, 디자이너 소부에 신 씨, 아쿠타 요코 씨, 세세한 데까지 특별히 훌륭한 인쇄를 해주신 도서인쇄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음양사> 완성까지 작업을 함께 도와주신 작화, 제작 스태프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한다.
- 조화가 널리 고루 미치면 조화의 의식마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신비로운 신의 본질이다.
다양한 연구, 다양한 출판물, 인간의 아득하고 깊은 역사, 모든 것을 내포하는 우주, 다양하게 생활하는 사람들, 모든 것에 감사한다.
- 오카노 레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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