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사카이 다츠오] 재밌어서 밤새 읽는 해부학 이야기

일루젼 2024. 7. 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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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사카이 다츠오 / 전지혜

출판 : 더숲
출간 : 2019.05.20


       

정말로 '밤새' 읽은 것은 맞는데, 내 경우에는 그 이유가 '재미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약간의 바보 같은 실수 때문이었다.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은 곧바로 처분 결정을 하는 중이다. 판매가 가능한 책은 판매하고, 매입불가가 뜨는 경우에는 모아두었다가 폐지로 배출하고 있다. (매입불가인 책들은 대부분 출간된 지 5년이 넘었기 때문에 기증도 불가능하다) 

 

책을 쌓아둘 때 시간순대로 쌓아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사도 겪었고, 무너진 책들을 다시 쌓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골고루 뒤섞였다) 손 닿는 곳에 있는 책이 꼭 신간이지는 않다. 지금 주로 발굴(?)되고 있는 책들은 주로 17년-19년 사이 책들인데, 솔직히 그 시절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들을 사모았던 걸까. 잘 모르겠다.

 

<재미있어서 밤새 읽는 해부학 이야기>를 밤새 읽었던 이유는, 읽던 도중에 이 책을 포함한 채로 '알라딘 중고도서 판매'를 신청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 권쯤 누락한 채로 발송해도 되는 양이었지만... 조금만 더 읽으면 함께 발송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달리고 말았다. 

 

이 책은 일본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사카이 다츠오가 쓴 책이다. 기초의학자의 경우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적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철저하게 '해부학적 관점'으로 서술된 점이 재미있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살펴본 의학/해부학사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어떤 대상을 주요 독자로 설정하고 쓴 책인지는 다소 모호하다. 완전히 일반교양서라고 하기엔 살짝 깊고, 예과생이나 의대지망생을 대상으로 했다기엔 가볍다. 그림 자료들도 실려있지만, 해부도를 본 적이 없는 독자들이 단순화된 그림과 설명만으로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식 지식총서 시리즈 중 '해부학'이었던 걸까?

 

가볍게 읽어본다면 괜찮을 것 같다.    

끝.    

           

   


 

 

최초의 번역 해부학 서적, <해체신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퀴즈를 하나 내겠다.
신생아기, 열 살 때, 스무 살 때 중에서
뼈가 가장 많을 때는 언제일까?



- 정답은 바로 신생아기다. 신생아는 뼈가 300개(또는 350개) 정도 되는데, 이 개수에는 잘게 분리된 연골(軟骨, 물렁뼈)도 포함된다. 그래서 신생아는 머리와 몸이 부드럽고, 목도 가눌 수 없다. 그러다가 아기가 성장하면서 분리되어 있던 연골이 점차 뼈로 바뀌면서 합쳐지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뼈가 총 206개가 된다.  

- 이러한 지식은 책만 읽어봐도 알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사실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의학 기술이 계속 발전해 온 것은 이렇게 선조들이 남긴 기록을 실제로 검증하고, 잘못된 부분을 끊임없이 수정해 왔기 때문이다. 이때 내용을 검증하는 수단이 바로 인체 해부다.

- 보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일찍 부패하는 신체 부위부터 해부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슴과 배를 해부하려면 그 표면에 있는 근육을 벌려줘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대흉근(大胸, 큰가슴근)이라는 근육은 팔의 뿌리 부분과 연결되어 있고, 또 손으로 이어지는 혈관과 신경은 목과 연결되어 있어서, 먼저 목부터 해부를 시작해서 혈관과 신경을 따라 팔로 해부 순서를 옮겨가야 한다. 팔이 끝나면 가슴과 배를 해부한 뒤에 발, 골반, 마지막으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머리 순으로 해부를 진행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목부터 해부를 진행하는데, 실습이 시작되어도 학생들은 좀처럼 시신에 메스를 대지 못한다. 그러다가 교수나 조교들이 재촉하면 몇 번이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겨우 손에 쥔 메스에 힘을 싣는다. 

- 그러면 신기하게도 막상 해부를 시작하면 인체의 내부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된다. 그 안에는 혈관과 신경, 근육, 장기 등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이루어진 인체 구조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체의 훌륭한 만듦새에 눈길을 빼앗겨 사람의 몸을 만진다는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고, 해부의 대상이 과학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 실습서만 읽고 피부를 벗겨내면, 어느 정도의 감각으로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힘 조절에 실패해서 피부를 깔끔하게 잘라내지 못한다.

- 가장 먼저 몸 앞면부터 벗겨나간다. 이때 피부를 벗겨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등 쪽 피부를 벗겨내려고 하면 생각한 대로 깔끔히 벗겨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등은 가슴이나 배의 피부보다 두꺼워서 힘 조절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다시 감을 잃기 시작한다. 이어서 손으로 이동해서 피부를 벗겨내야 하는데, 손의 피부는 등보다 얇아서 등 쪽 피부를 벗겨내면서 익혔던 감을 다시 잃게 된다. 

- 마지막으로 후두부의 피부는 매우 단단해서 학생들이 아주 힘겹게 벗겨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머리는 섬세한 영역이므로 이전 단계와 똑같은 힘으로 피부를 벗겨내려 하면 조직이 파괴될 수 있다. 턱뼈를 자르다가 힘 조절에 실패해서 뚝하고 부러뜨리는 일도 있다.
몇 센티미터 단위의 큰 부분을 작업하다가 몇 밀리미터의 작고 섬세한 신경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게 되면, 앞서 익숙해졌던 감을 또다시 잃게 된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부위에 따라 단단함의 차이를 파악하고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나간다. 

- 절에 대학교 전용 봉안당(화장한 시신의 유골을 모셔두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공간에 한계가 있어서 이미 자리가 가득 찬 의과대학이 꽤 있다. 그래서 큰 유골함에서 작은 유골함으로 바꿔서 유골을 안치하거나 오래된 유골은 뿌리기도 한다. 앞서 말한 설문 조사를 시행하면서 유골함의 크기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중부 지방부터 간토, 도호쿠, 홋카이도 지방은 화장하고 남은 모든 뼈를 거둬서 한 사람분의 유골을 모두 수습하므로 유골함이 크다. 이와 달리 간사이 지방은 화장한 뒤에도 형태를 유지한 일부 뼈만 수습하므로 유골함이 작다. 따라서 간사이 지방의 의과대학은 봉안당의 공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고쿠, 시코쿠, 규슈 지방은 위 두 가지 방법이 반반의 비율로 뒤섞여 있다.  

- 의학이 발전한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원시적인 치료는 형태가 조금씩 바뀌며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소민(쇼라이의 자손 子孫, '역병을 막는 신의 자손'을 뜻한다.)'이라고 쓰인 부적이 여전히 전해진다. 이는 역병을 막아주는, 육각형 또는 팔각형의 나무 기둥 형태인 부적이다. 나라 시대(일본에서 '나라(奈良)'라는 지역이 수도였던 시대(710~794년)를 말한다.)

 

- 초기에 편찬된 <빈고국 풍토기(備後国風土記)>에 그 부적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곳저곳을 떠돌던 한 남자가 쇼라이가의 두 형제가 사는 마을에 다다랐다. 그가 마을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묵을 곳이 없어 곤란을 겪었다. 그래서 쇼라이가의 형제 중 동생이자 마을에서 가장 유복한 고탄 쇼라이의 집에 가서 하룻밤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고탄 쇼라이는 그 남자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쇼라이가의 형제 중 형이자 마을에서 가장 빈곤하게 사는 소민 쇼라이의 집을 찾아갔다. 소민 쇼라이는 그를 반갑게 맞아줄 뿐만 아니라 힘든 처지인데도 식사도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었다. 그 남자는 그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찾아왔을 때 "소민 쇼라이의 자손은 후세에 역병이 돌아도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지노와(茅輪)'라는 띠로 만든 고리를 허리에 차고 있으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 뒤에 실제로 역병이 돌아 많은 마을 사람이 죽어나갔지만, 소민 쇼라이의 자손은 그 조언 덕분에 역병을 막을 수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전설은 현재에도 6월 30일에 일본 전국의 신사에서 열리는 '나고시노하라에(夏越の祓)'라는 행사로 여전히 이어져 나아간다. 이날 신사에 설치한 커다란 지노와를 통과하면 건강하게 1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 이처럼 옛 의술은 주술적 요소가 강한 민간신앙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주술적 방법을 써봤는데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여전히 괴로움에 몸부림친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래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며 기도하기보다는 직접 고통을 덜어주려고 인체에 관심을 두고 자세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이 의학의 발달로 나타났다. 

- 문자의 탄생은 역사를 기록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 덕분에 선조들이 과거에 남긴 기록을 후세 사람들이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자로 기록된 의료를 살펴보려면 4대 문명 시대의 의료를 빼놓을 수가 없다. 

- 메소포타미아에는 기원전 1100년 무렵에 점토판에다가 설형문자로 적은 의료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으로 알려졌다. 또 그 지역에서 점토로 만든 장기 모형도 발견되었다. 의학 서적에는 승려가 점성술로 주문을 외우고 성난 신에게 용서를 빌어 병자를 홀린 악령을 쫓는 의식을 치른 뒤에 약을 사용하거나 수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은 악령을 내쫓을 수 있도록 동물의 똥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식물, 동물, 광물을 이용한 약에 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 <함무라비법전>(약 기원전 18세기)에는 외과의가 수술한 내용을 담은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 의사가 수술하다가 환자가 죽거나 눈을 수술해서 환자의 눈이 멀었을 때는 의사의 손가락을 잘라내도 좋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나온다.

-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파피루스 문서에 의료에 관한 기록을 상형문자로 남겼는데, 그때부터 인체 해부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종교와 의료가 일체화되어서 의료인은 의술의 신에게 봉사하는 신관이자 파라오를 전담하는 궁정 의사였다. 질병은 악마의 소행이므로 신관만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문서 속에는 다양한 증상과 치료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를 헤아려보면 800여 가지의 약 처방과 식물, 동물, 광물을 이용한 700여 종에 달하는 약이 나온다. 그 당시에는 병마를 내쫓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겨 구토제, 설사약, 관장을 가장 많이 처방했다고 한다. 문서에는 외과, 부인과, 두발 치료에서 궤양이나 종기의 처치 방법까지 폭넓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치료법은 공적으로 정해진 것이라서 이 방법대로 치료하면 환자가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지만, 정해지지 않은 방법으로 치료해서 효과가 없을 때는 사형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의사는 그 정도로 신분이 낮았다. 

- 고대 인도의 의료 기록은 약 기원전 1500년부터 전승되어 약기원전 500년 이전에 편찬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인 <베다(Veda)>에 남아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인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經)>(한나라 시대의 기록에서 비롯한다)은 약 기원전 2000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황오제(고대 중국의 전설로 존재했던 여덟 명의 제왕) 가운데 한 명인 신농(약 기원전 2740년)은 여러 가지 풀을 맛보고 약의 근본을 백성에게 가르쳐주었다. 

- 갈레노스는 인체를 해부하지는 않았지만, 원숭이를 비롯한 동물을 해부하며 그 내용을 많은 서적으로 남겼다. 갈레노스는 그 후 약 1500년에 걸쳐서 의사들의 군주로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서적은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을 정도였다. 

 

- 갈레노스의 서적인 <자연의 기능에 관해서(De Facultatibus Naturalibus)>에 묘사된 당시 해부 상황의 일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요관(신장에서 방광까지 오줌을 운반해 주는 가는 관) 앞면에 있는 복막(腹膜, 배막)을 절개한 다음 (방광으로 들어가는) 요관을 끈으로 묶어서 막고 붕대를 감은 상태에서 놓아야 한다.(그렇게 하면 소변이 멋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바깥쪽 붕대를 푼다. 방광(膀胱)은 비어 있지만 요관은 꽉 차서 팽창하여 터질 것같이 보이는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잡아맸던 요관을 풀어주면 곧바로 방광이 소변으로 순식간에 가득 차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다. 

-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혈액이 체내를 순환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갈레노스는 우리와 똑같은 심장과 혈관을 보고도 전혀 달리 생각했다.
해부를 하다 보면 동맥·정맥·신경을 볼 수 있는데, 갈레노스는 그 안으로 혈액이 흘러 체내를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각기 다른 종류의 액체를 운반하는 관이라고 생각했다. 물체가 서로 붙어 있으면 진동이 전달되고 전선이 이어져 있으면 전기가 통하듯이, 체내에도 관이 연결되어 있으면 체액으로 영혼이 전달된다고 믿었다.

 

- 갈레노스 설에서는 동맥·정맥·신경을 세 종류의 배관 체제로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장에서 흡수한 영양이 간문맥(肝門脈, 소화기에서 나오는 혈액을 간으로 운반하는 정맥)을 통해서 간으로 들어가고, 간에서 영양이 풍부한 정맥혈이 되어 정맥에서 전신으로 분배된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심장 오른쪽으로 들어온 혈액의 일부가 심장의 벽을 빠져나와서 왼쪽으로 흐르고, 외부에서 흡수한 영혼이 폐에서 심장 왼쪽으로 들어가서, 영혼이 풍부한 동맥혈이 된다는 것이다. 그 영혼을 운반하는 동맥혈을 통해 전신으로 영혼이 퍼져나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갈레노스는 왜 동맥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동맥을 만져보면 맥박이 두근두근 뛰는데, 이를 영혼이 깃든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동맥혈의 일부가 뇌의 아랫부분과 연결되어 있고, 이 뇌의 아랫부분에서 코로 들어온 외부 영혼이 지적인 작용을 하는 신경액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신경액이 뇌 내부의 빈 곳에 머물며 뇌의 작용을 준비하는 동시에 말초신경을 통해 전신으로 전달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감각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 갈레노스가 생각한 인체 체제는 전반적으로 해부학적 소견을 도입하여, 무심코 믿어버릴 만큼 훌륭한 체제라 할 수 있다. 이 가설은 훌륭한 체제와 갈레노스의 명성이 맞물려 앞으로 소개할 하비의 혈액순환설이 등장할 때까지 흔들림 없이 계속 군림하며 권위를 누렸다. 심지어 근대 의학을 창시했던 베살리우스도 이 갈레노스 설을 믿었다고 한다.

- 그러나 실제로 몸속을 살펴보면 당연히 서적에 쓰인 내용과 다를 때도 있다. 왜냐하면 갈레노스는 원숭이를 해부했을 뿐 인체를 해부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갈레노스는 흉골(胸骨, 복장뼈)이 일곱 개로 나뉜다고 기재했지만, 이는 원숭이에 해당하는 내용일 뿐 실제 인간의 흉골은 세 개로 나뉜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자들은 이 모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책 내용은 옳고 인간의 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애초에 해부 대상자는 범죄자이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고, 갈레노스가 살았던 로마 시대에 해부 대상자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노예는 주로 갤리선(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걸쳐 지중해를 항해했던 돛과 노가 있는 배)에서 노를 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노예들은 노를 젓느라 가슴이 발달하여 뼈도 일곱 개로 나뉘었고, 현대인인 자신들은 퇴화하여 세 개가 되었다고 멋대로 해석했다. 

- 갈레노스는 매우 정확하게 해부했을 뿐만 아니라 책에도 원숭이를 해부한 내용이라고 명확히 기재해 두었다. 그런데도 르네상스 사람들은 갈레노스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인체에 관한 내용을 서술해 놓았다고 멋대로 착각했다. 또한 인체도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결여되어서 직접 인체를 해부하며 얻은 정보를 반영하여 바로잡지 않은 채 계속 잘못된 지식을 계승했다. 

- 이와 달리 베살리우스는 서적이 아니라 인체 속에 진실이 있다고 경종을 울리며, 스스로 해부하고 해설하면서 갈레노스가 틀린 부분을 수정해 나갔다. 그리고 1543년에 역사적인 대작이라 불리는 해부 서적 <파브리카(Fabrica)>를 출판했다. 이 책에 실린 예술적으로 정확히 묘사한 해부도는 지금도 통용될 정도이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줬을 것이다. 이는 해부학을 최첨단 과학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갈레노스를 숭배하는 보수적인 해부학자들에게는 극심한 공격을 받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것도 이와 같은 시기였다.

- 그 후 베살리우스는 해부학과 의학을 심도 있게 공부해서 학위를 따기 위해 이탈리아의 파도바를 향해 떠났다. 파도바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며, 해부하기 편한 환경을 꾸려 연구에 몰두했다. 그 성과를 정리한 책이 바로 <파브리카>다. 베살리우스는 대학교를 관두고 아버지가 그렇게 염원했던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인 카를 5세의 궁정 의사가 되어 브뤼셀에 살게 되었다. <파브리카>의 성공을 질투하는 이도 있었다. 파리대학교의 은사에서 파도바대학교의 동료까지 베살리우스의 행동이 갈레노스를 폄하하는 일이라며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난이 이어지던 가운데 카를 5세가 사망했다. 카를 5세의 아들인 펠리페 2세가 대를 이으면서 베살리우스는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겨 계속 궁정 의사직을 이어나갔다.

- 레오나르도의 뛰어난 묘사력과 박력 있는 그림체 덕분에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사실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중기에 접어들면서 레오나르도가 일단 인체를 해부하긴 했지만, 이때도 제대로 관찰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폐의 기관지 형태는 좌우가 다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해부학 노트에 폐의 기관지가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기하학적으로 두 갈래씩 나뉘는 것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를 통해 그가 기관지 형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그렸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중에도 특히 여성의 내장을 묘사한 해부도가 유명하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궁 양쪽에 뿔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알 수 없는 혈관을 묘사한 부위도 있다. 레오나르도는 기능을 의식하면서 해부했을 뿐 실제 모습을 제대로 관찰하지는 않은 것이다. 

- 그런데 후기에 접어들면 실제 모습을 제대로 관찰하여 정확히 묘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근육의 형태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할 뿐만 아니라 근육의 처음(기시)과 끝(정지)(해부학에서는 근육의 양쪽 끝부분을 '기시(이는 곳)'와 '정지(닿는 곳)'라고 한다. 몸의 중심과 가까이 있으며 움직임이 적은 쪽을 기시, 중심에서 멀리 있으며 움직임이 많은 쪽을 정지라고 한다)을 줄로 연결하여, 근육은 근육과 근육 사이를 잇고 잡아당기는 존재라는 기능을 확실히 예측하여 그림을 그렸다. 심장 그림도 매우 사실적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자세히 그렸을 뿐만 아니라 원근감을 살려서 입체적으로 인체 구조를 묘사했다. 후기에는 뇌실의 형태도 전기에 그렸던 표주박 모양이 아니라 뇌실의 본(주형)을 떠서 정확히 묘사했다. 

- 레오나르도처럼 손수 해부했던 예술가는 또 있다. 바로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도 젊은 시절에 해부해 봤던 경험을 토대로 인체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다비드상 등의 조각뿐만 아니라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의 인체 표현은 지금 봐도 매우 훌륭하다. 이 시대의 다른 예술가보다 미켈란젤로의 표현이 빼어났던 이유는 직접 인체를 해부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미켈란젤로는 <목각 그리스도 십자가상>을 제작하려고 피렌체의 수도원에 살았는데, 그때 수도원장의 호의로 부속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받아 해부를 진행했다. 이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근육의 형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험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아무 데서나 인체를 해부할 수는 없었지만, 피렌체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서 레오나르도도 피렌체의 ... 

- 일부에 갈레노스 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동맥혈은 심장에서 발효하면서 혈액 생성을 촉진한다고 생각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을 펼치기도 했다. 또 정신이 뇌의 중심에 있는 솔방울샘에 머문다고 생각하여, 솔방울샘이 액체의 미묘한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고 뇌의 기능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데카르트가 과학적으로 인체를 설명하려 했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당시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대학 교육의 기초가 되었는데, 데카르트는 이를 대신하여 새로운 기계론에 근거한 자연철학을 주장하려고 한 것 같다. 데카르트는 이를 추진하면서 적절한 예시로 하비의 혈액순환설을 꼽아 이용했다. 이렇게 고대의 권위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며 생리학이 발전해 갔다. 

 

- 동판화는 선을 가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인체 구조를 세밀히 묘사한 해부도를 인쇄하기에 적합했던 탓에 18세기까지는 기술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본문은 활자를 이용하여 양각으로 인쇄하고, 동판화는 음각으로 인쇄해야 해서, 두 인쇄판의 높이와 인쇄 압력이 달랐다. 따라서 본문과 해부도를 같은 면에 같이 인쇄할 수 없어서, 다른 쪽에 따로 인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동판화를 대신할 두 가지 새로운 인쇄술이 등장했다. 

- 첫 번째는 목구 목판화다. 이 인쇄술은 결이 촘촘한 목판에 뷔랭(burin)이라는 끝이 뾰족한 특수한 조각칼로 도안을 섬세하게 파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큰 도판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활자처럼 양각으로 인쇄할 수 있다. 본문과 그림을 함께 보여줄 수 있어서 책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

- 두 번째는 석판인쇄다. 이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라고도 불리는 인쇄술로, 석탄암이나 금속판 위에 유성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서 고정한 뒤 그 위에 수성 잉크를 도포하여 크레용으로 칠하지 않은 부분만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이다. 석판인쇄는 평평하고 매끈한 석판 표면에 유성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리듯이 그리면 원판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손쉽게 판화를 제작할 수 있으며, 그러데이션이나 다색인쇄가 가능하여 장기의 질감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석판인쇄는 특히 병리학의 병변(병으로 인해 일어난 육체적, 생리적 변화)을 나타내는 그림에 효과적이다. 동판화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해부하면서 관찰한 병리학적 병변을 석판인쇄로는 박력 있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장기 병변에 주안점을 둔 질병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보급하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할 수 있었다. 

-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진 제판이 보급되고 해부도의 방식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전까지 도판은 원판의 소재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면서 원판을 만들었으므로, 판 제작비도 비싸고 판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매수에도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 제판은 원화가 될 그림으로 원판을 계속 만들 수 있고, 그러데이션이 복잡한 그림도 저렴하게 인쇄할 수 있으며, 해부 대상의 사진 자체를 해부도로 이용할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사진술이 해부도와 해부학서적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주고 있다.
 
- 중국에서 발전한 전통 의학에서는 심장, 간, 비장, 폐, 신장 등 다섯 가지 내장과 이를 보조하는 위, 소장(小腸, 작은창자), 대장(大腸, 큰창자), 쓸개, 방광, 삼초(三焦)라는 여섯 가지 내장을 뜻하는 오장육부가 인체를 구성한다고 여긴다. 

- 중국에서는 송나라 시대에 해부가 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해부도가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인체를 해부한 사람은 에도 시대의 야마와키 도요라는 의사였다. 그 관찰 기록은 <장지>라는 서적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 야마와키 도요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던 고토 곤잔(後藤艮山)은 수달의 내장은 인간과 닮았으니 인체를 대신해 수달을 해부해 보라고 그에게 권유했다. 그 말을 듣고 수달을 해부해 본 도요는 소장과 대장을 구별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도요는 이 일을 계기로 실제 인체의 내부를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통감했다. 

- 그리고 얼마 후 도요의 제자와 그의 친구 세 명이 지역의 관리에게 사형을 받은 사망자를 부검하겠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이는 도요의 조언을 따른 것이리라고 추측된다. 그들은 1754년 2월에 교토의 서쪽 교외에 있었던 교도소에서 참수형에 처한 다섯 명 중 서른여덟 살 남성의 시체를 해부하게 되었다. 이때 도요도 그 해부에 참관했는데, 그로부터 5년 뒤에 출판한 책이 바로 <장지>다. 이 책에는 주로 내장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도요가 내장 해부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사지(四肢)에 관한 내용은 고작 몇 줄 뿐이고, 머리에 관한 내용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참수된 사람을 해부했으니, 머리에 관한 내용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도요가 계속 고 민했던 소장과 대장의 구별 기준도 본문이나 그림에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

- 오장육부의 개념에 너무 집착했던 탓에 잘못 기술한 내용이 많아지면서 아쉽게도 불완전한 관찰 기록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의사가 직접 해부하지 않고, 참수된 사형수의 시신을 짚 위에 올려놓고 급하게 처리하는 등 해부를 진행하고 관찰하기에는 조건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장지>가 출간된 뒤에 해부는 해서는 안 될 비인도적인 행위라며 비난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도요가 <장지>를 쓴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도요는 인간의 내장은 수달과 전혀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직접 체험하며 판단하는 그의 실험 정신이 흘러넘친다. 무엇보다 <장지>의 부록으로 제문을 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야마와키 도요와 그의 동료들은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한 지 1개월이 지나고 나서 그 시신을 위해 공양을 드렸다. 당시는 참수형에 처한 사형수의 시신은 매장하지 않고 형장 안에 내버리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그러나 도요는 해부된 시신을 위해 공양을 바치고 법명까지 지어줬다. 그 제문에는 '범죄자였던 당신과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당신은 이미 머리가 없는 상태라 우리는 안면조차 틀 수 없었소.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시신 덕분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풀 수 있었소. 그 공적은 충신과 열사에 못지않으며, 그 명예는 후세에 전해질 것이오. 그러니 시신이 해부되었다는 능욕에 슬퍼하지 말고, 이 위령을 받아주시오.'라고 쓰여 있다. 

- 예전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체를 해부할 때는 사형수의 시신을 이용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때부터 인체를 해부했는데, 막부는 의사들이 해부를 청원해 왔을 때 서민 중에서 죄질이 무거운 자의 시신을 골라서 공급해 줬다. 당시 시신을 해부하는 일은 잔혹한 형벌을 더 가하는 일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부는 형벌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반면 설령 범죄자라 하더라도 시신에 칼을 대는 일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야마와키 도요의 <장지>가 나온 이후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는 일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시신을 공급받기를 원한다고 신청하는 의사가 계속 늘어만 갔다. 가와구치 신닌(河信)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나라의 허가를 받아 인체를 해부하고, 그 소견을 근거로 <해시편(解屍編)>을 출판했다. 이 책은 <장지>의 뒤를 이어 인체 해부에 기초를 두었던 서적이었다. 흥부나 복부 내장 외에 머리를 해부하는 내용은 <장지>보다 훨씬 상세할 뿐만 아니라 오장육부의 잘못된 부분도 제대로 수정하여 실었다.

- 그러던 가운데 스기타 겐파쿠와 마에노 료타쿠라는 의사가 각각 네덜란드어로 쓰인 해부학 서적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책을 가지고 사형수 시신 해부를 견학한 두 사람은 실제 장기는 한방 의학에서 배운 오장육부와 전혀 다르고, 네덜란드어로 적힌 책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같은 해부학 서적을 가진 겐파쿠와 료타쿠는 동료들을 모아서 그 네덜란드 해부학 서적을 번역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번역을 시작해 보니 네덜란드어를 번역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이렇게 3년의 세월에 걸쳐서 완성한 책이 바로 <해체신서>다. 이 책은 서양의 해부학 서적 내용을 처음으로 전한 서적으로 많은 이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뒤로 서양 의학서적이 계속 번역되고 소개되면서 의사들의 관심은 서양 의학에 쏠리게 되었다.

-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사형수의 시신으로 해부를 진행했는데, 당시는 다양했던 사형의 종류 때문에 해부할 수 있는 시신이 제한적이었다. 무사는 명예를 존중해 주는 할복과 불명예스러운 죄를 범했을 때 처하는 참수 등 두 종류의 사형에 처했는데, 이때 둘 다 해부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와 달리 서민은 책형, 톱질형, 화형, 참수형, 참수 및 재산몰수형, 효수형이라는 여섯 종류의 사형에 처했다. 이 중 참수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 사형수의 시신만 해부에 사용되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 책형에 처하는 사형수는 마을을 한 바퀴 돈 후 사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형장에서 십자가에 사형수의 손발, 가슴, 허리 등을 밧줄로 묶고 옷의 일부를 벗겨내서 배꼽이 드러나게 한 후창으로 그 주변을 찔러서 죽였다. 톱질형에 처하는 사형수는 땅속에 묻은 상자에 목만 땅 위로 올라오도록 하여 넣은 채 2박 3일에 걸쳐서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죄인에게 마을을 한 바퀴 돌게 한 후 톱으로 목을 잘라 죽였다. 화형에 처하는 사형수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형장에서 십자가에 묶였다. 그리고 죄인의 발 쪽에 장작을 쌓아놓고 기둥을 둘러싼 대나무 틀 주변에 갈대를 쌓아서 불을 붙여 죽였다. 이 세 종류의 사형은 시신을 손상하므로 해부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해부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 이제 남은 세 종류의 사형은 참수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죄의 무게에 따라 부가되는 형벌이 달랐다. 참수형은 그중에서 가장 가벼운 형벌로 칼로 죄인의 목을 베지만 추가되는 형벌은 없었다. 그래서 처형한 뒤에 시신 인수자가 있을 때는 시신을 건네주고, 매장하거나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 그러나 참수 및 재산몰수형에 처하는 사형수는 추가로 재산이 몰수될 뿐만 아니라 무사가 사용하는 칼이 잘 드는지 시험하는 대상으로 시신이 사용됐다. 그렇게 참수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 시신은 내다 버렸는데, 이 또한 형벌의 일부여서 매장이나 장례식은 허용되지 않았다. 효수형은 가장 무거운 형벌로 참수에 처한 후 잘린 머리를 받침대에 올려서 사람들이 보도록 전시했다. 말 그대로 '머리를 매달아 놓은' 셈이다. 

- 쇄국정책을 펼쳤던 일본에서 처음으로 서양 의학을 가르친 사람은 나가사키에 부임한 독일계 네덜란드인 의사 지볼트였다. 그러나 지볼트는 당시 반출금지 품목이었던 일본 지도를 해외로 빼돌리려 했다는 간첩 혐의를 받고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그 후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가 쇄국정책을 해체하고자 함대를 이끌고 와서 나가사키에 해군 교습소를 개설하면서, 일본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곳에 찾아온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인 의사인 폼페(Pompe van Meerdervoort, 1829~1908년)였다. 폼페는 자연과학에서 기초의학, 임상의학 순으로 진행되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수립하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5년간에 걸쳐서 인체 해부 실습과 병상에서 임상 현장 지도를 시행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는 <대학교의 시신 제공에 관한 법률>이 공표되고 시행되었다. 그 후 각 지역의 지자체장들은 의과대학의 학장이 의학과 치의학 교육을 위해서 요청해 올 때마다 시신을 제공해야 했다. 또 이 법률과 <시인 조사에 관한 후생노동성 시행령>이 통합되면서 <사체해부보존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을 통해 해부는 반드시 가족의 승낙을 얻고 나서 진행해야 하며, 병원 등지에서 법률에서 정한 공정한 방법으로 시신을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해부 대상 수는 여전히 부족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로는 의학부나 치의학부를 신설하는 대학이 늘어났다는 점을, 두 번째로는 인수자가 없는 시신은 꺼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종종 지자체나 경찰 쪽에서 제공한 시신의 신원 조사가 불충분하여 유가족이 나타나 소송을 거는 사건이 일어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타지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비명횡사한 남성의 시신이 규정 안치 기간을 넘겨서 대학으로 제공되어 해부되었는데, 나중에 남편의 신변이 걱정되어 찾아다니던 아내가 나타났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 이 사건을 일본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 그러나 이는 사실 외형만 비슷할 뿐 본질은 전혀 다르다. 인간의 몸은 하나의 줄기를 중심으로 그 양옆으로 팔과 다리가 뻗어나 있다. 이 중에서 중심 부분을 체간(몸통), 뻗어난 부분을 상지(팔)와 하지(다리)라고 부른다. 

- 실제 인간의 형태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의 형태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바로 몸통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머리와 몸통을 별개로 구별하여 다루지만, 체간에는 머리도 몸통의 일부로 포함한다. 두 번째는 팔과 상지의 개념이다. 뼈의 구조로 살펴봤을 때 상지가 연결된 뿌리 부분은 몸통 깊숙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마치 몸통처럼 보이는 부분이 내부에서 살펴보면 상지의 일부에 해당하는데, 이 뿌리 부분을 상지대(上肢帶, 팔이음뼈)라고 한다. 

- 상지대라는 뼈대는 견갑골(어깨뼈)과 쇄골(빗장뼈)로 이루어진다. 체간과 상지를 잇는 구실을 하므로 해당 부위를 움직일 때는 상지가 시작되는 뿌리 부분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해부학에서 상지대는 상지에 포함한다. 하지도 상지와 마찬가지로 하지가 시작되는 뿌리 부분을 하지대(下肢帶, 다리이음뼈)라고 한다. 또 골반뼈의 양옆 부분도 외부에서 봤을 때는 몸통의 일부로 보이지만, 해부학에서는 하지의 일부로 다룬다.

- 판처럼 딱딱하면 호흡하기 힘들어지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 한다.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면 뼈가 아니라 근육으로 보호해도 될 텐데, 왜 그 자리에는 뼈대가 들어가 있을까? 사실 폐는 스스로 크기를 키우지는 못하고 오그라들기만 한다. 그래서 폐는 흉곽에 들러붙게 해서 억지로 크기를 키워줘야만 한다. 흉곽을 넓혀서 폐가 커지면 공기가 흡입되고, 흉곽을 줄여서 폐도 줄어들면 공기가 배출되는 구조를 띠는 셈이다. 이를 바로 호흡이라 한다. 

- 세 번째 뼈대 용기는 복부의 내장을 담아내는 골반이다. 인간은 두 다리로 직립하여 보행하는데, 지구의 중력 때문에 내장이 아래로 쏠리게 되므로 골반이 아래쪽에서 받쳐줘야만 한다. 골반속에는 내장뿐만 아니라 비뇨기와 생식기도 들어 있다. 그런데 소화기가 집중된 배에는 이런 뼈대 용기가 없다. 그렇다면 소화기는 중요한 장기가 아니라는 뜻일까? 물론 소화기도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중요한 장기이지만, 복부마저 뼈대용기로 둘러싸인다면 장운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이 자유롭게 움직여서 영양소를 흡수하고 대변을 모아서 원활히 배설하려면, 장이 연동운동(꿈틀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뼈대 용기가 있다면 이런 작용을 방해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뼈대 대신에 몇 겹으로 이루어진 튼튼하고 유연한 근육이 장을 지켜준다.

- 이 세 가지 뼈대 용기가 있는 부분은 체간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는 부위다. 그래서 각 뼈대 용기 사이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두개골과 흉곽 사이에 있는 목, 흉곽과 골반 사이에 있는 배가 이에 해당한다.

- 인간의 가느다란 목은 무거운 머리를 지탱해야 하므로, 피로가 쉽게 쌓이고 어깨 결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목이 무거운 머리를 든든히 받칠 수 있도록 두껍고 단단한 뼈대 용기에 둘러싸인다면 어떨까? 만약 목이 앞선 세 개의 뼈대용기처럼 고정되어서 목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뒤에서 누가 불렀을 때 고개를 돌려 돌아볼 수 없게 된다. 물론 몸 전체를 돌려서 뒤를 돌아볼 수는 있지만, 목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 그보다 더 심각한 부위는 배다. 뼈대 용기가 배를 감싼다면 장이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잠잘 때 몸을 뒤척일 수도 없다. 잠을 자면서 몸을 뒤척이려면 상반신과 하반신을 틀어서 몸의 방향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배를 움직이지 못하면 자고 난 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위를 보고 누운 상태에서 배를 고정한 후 몸을 굽히지 않고 일어날 수는 없다. 이렇듯 우리 몸은 안락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능적인 형태를 띤 셈이다. 

- 성인의 뼈 개수는 206개다. 그렇다면 근육의 개수는 총 몇 개일까? 400개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800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근육도 뼈처럼 명칭이 하나하나 다 정해져 있으니 누가 세어보아도 그 개수가 같아야 하지만, 근육의 개수는 어떻게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 의견이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이에 해당하는 부위가 바로 등에 있는 근육이다. 추골과 추골사이를 잇는 근육에는 일일이 명칭이 붙어 있지 않다. 아래쪽 횡돌기에서 위쪽 극돌기까지 사선으로 이어진 근육이 경계 없이 척추를 따라 쭉 연결돼 있으므로 이를 일일이 다른 근육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모두 하나의 근육으로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통틀어서 부른다. 그중에서 추골 한두 개를 잇는 비교적 짧은 근육은 회선근(돌림근), 추골 두서너 개를 잇는 근육은 다열근(뭇갈래근), 추골 네 개에서 여섯 개를 잇는 근육은 반극근(반가시근)이라고 나누어서 부른다.

- 광경근과 표정근은 보통 근육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근육이라고 칭하는 부위는 골격근(뼈대근육)이다. 말 그대로 근육의 양쪽 끝부분이 골격에 붙어 있어서, 이 근육이 수축하면 골격이 움직인다. 따라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광경근과 표정근은 피부에 붙어 있는 피근(皮筋)이므로, 이들 근육이 움직여도 골격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에 이 두 근육이 움직이면 피부가 움직인다. 특히 표정근은 피부를 움직여서 웃거나 화내는 등 다채로운 표정을 짓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에 얼굴 피부가 너무 두껍다면, 표정근이 피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표정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육이 되어버릴 수 있다. 

- 이렇게 피부를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광경근과 표정근 외에 한 군데 더 있다. 이는 새끼손가락에 있는 단장근(短掌筋, 짧은손바닥근)이라는 근육이다. 손바닥을 있는 힘껏 펼쳤을 때 새끼손가락 쪽에 주름이 잡히는데, 이 주름을 만드는 근육이 새끼손가락 뿌리 부분에 있다. 결국 인간의 몸에는 골격을 움직이지 않고 피부를 움직이는 근육이 얼굴, 목, 손 이렇게 세 군데에 있다는 뜻이다. 

- 사람들은 평소에 겨드랑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부위다. 정식 명칭은 액와(겨드랑이)로 목의 뿌리 부분에서 팔로 가는 동맥과 정맥, 신경의 통로 역할을 한다. 액와는 몸 앞쪽 근육인 대흉근과 뒤쪽 근육인 광배근(넓은둥근) 사이에 우묵하게 들어간 부위에 있다. 이렇게 들어간 부위는 의외로 해부하려면 복잡하다. 왜냐하면 틈새나 우묵하게 들어간 부위는 주변 근육에 둘러싸여서 생기는 공간이므로, 그 부위를 보려고 근육을 제거하다 보면 오히려 그 부위가 사라져 우묵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액와를 해부하려면 가장 먼저 흉부의 피부를 벗겨냈을 때 보이는 대흉근이라는 큰 근육을 가위로 잘라내야 한다. 메스로 절개하면 아래쪽 조직까지 잘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흉근의 가슴 쪽 끝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뒤집어준다. 그렇게 하면 액와가 잘 보이고, 대흉근 아래에 숨겨진 소흉근(작은가슴근)까지 볼 수 있다. 이 소흉근도 가위로 자르고 쇄골도 톱으로 자르면 팔로 향하는 큰 동맥(액와동맥)과 정맥(액와정맥), 거기에 얽힌 신경다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액와동맥(腋窩動脈, 겨드랑동맥)과 액와정맥(腋窩靜脈, 겨드랑정맥)은 팔에 진입하자마자 상완동맥(上腕動脈, 위팔동맥)과 상완정맥上腕, 위팔정맥)으로 이름이 바뀐다.

- 또 액와에는 많은 림프절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액와는 유방암일 때 주목을 많이 받는데, 그 이유는 이 부위에 림프절이 있기 때문이다. 유선(젖샘)에서 나온 림프관의 절반 이상이 바깥쪽을 향해 가다가 액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림프액이 나오므로, 유방에 암이 발생하면 액와의 림프절에 쉽게 전이된다. 그래서 이 부위에 암세포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 팔꿈치를 굽히는 데 회외나 회내(엎침, 손바닥이 아랫면을 향하게 하는 운동)와 같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완요골근이 힘을 가장 많이 발휘하는 순간은 회외도 회내도 아닌 그 중간에 해당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다. 바로 맥주잔을 드는 동작을 할 때다. 그래서 해당 부위를 '맥주잔근육'이라고 알려주곤 한다. 

- 그러나 손에서 팔꿈치 전까지 일자로 쭉 바깥쪽을 지나가다가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혈관과 신경도 있다. 그 신경은 바로 요골신경(노신경)과 척골신경(자신경)이다. 상완골의 뒤쪽에는 요골신경구(노신경고랑)라고 불리는 고랑이 있는데, 바로 요골신경이 이 고랑을 통과한다. 팔베개를 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을 때 손이 저린 이유는 머리의 무게가 이 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완골의 뒷면 아래쪽에도 척골신경구(자신경고랑)가 있는데, 척골신경이 이 고랑을 통과한다. 팔꿈치 바깥쪽을 눌렀을 때 저리는 느낌이 나는 부위가 바로 이 척골신경구다. 엎드린 상태에서 팔꿈치를 세워서 책 등을 읽으면 아래팔이 저리는 이유가 바로 이 신경 때문이다.
이 두 신경은 손상되기 쉽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경이 통과하는 통로라도 뼈 주변을 지나는 부위는 약점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 그러면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은 어디에 붙어 있을까? 사실이 근육은 두 군데로 나뉘어 있다. 손가락은 구부리지 않고 손가락 뿌리만 힘을 주어 구부려 보길 바란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만져 보면 손가락 그 어디에도 알통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손가락을 구부려서 주먹을 쥐어 보길 바란다. 그러면 전완근이 단단해질 것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은 손바닥에 하나가 있고 손목과 팔꿈치 사이, 즉 아래팔에 또 다른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편채로 손가락 뿌리 부분을 구부리고 펴는 동작은 주로 손가락 뿌리의 관절(손허리손가락관절)을 움직이고, 손바닥 근육을 사용하므로 알통은 생기지 않는다. 이와 달리 손가락을 구부려서 주먹을 만들 때는 손가락의 관절(손가락뼈사이관절)을 움직이고, 손가락에서 떨어져 있는 전완근부터 손가락뼈까지 길게 이어진 힘줄을 움직인다. 

- 아래팔의 바깥쪽 면에는 네 손가락을 구부리는 천지굴근(얕은손가락굽힘근)과 심지굴근(깊은손가락굽힘근)이라는 근육이 두 층으로 분리되어 붙어 있다. 천지굴근의 힘줄은 손가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틈으로 심지굴근의 힘줄이 통과하면서 입체로 교차하여 손끝까지 이어진다. 사실 굉장히 훌륭하고 아름다운 부위여서, 해부를 실습할 때 반드시 학생들에게 관찰하게 하는데, 모두 이 부위를 보고 감동하고는 한다.

- 손에 있는 근육과 전완근은 공통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기능을 하며, 손의 근육은 손가락 사이를 벌리거나 모으는 기능도 한다. 중수골과 중수골 사이에는 골간근이라는 근육이 있는데, 이 근육은 손바닥 쪽 골간근(바닥쪽뼈사이근)과 손등 쪽 골간근(동쪽 뼈사이근) 등 두 개 층으로 나뉜다. 손가락 사이를 벌릴 때는 손등 쪽 골간근을, 모을 때는 손바닥 쪽 골간근을 사용한다. 

- 엄지손가락을 한번 있는 힘껏 벌리면 손등의 엄지손가락 뿌리 부분에 힘줄 두 개가 튀어나와서 그 사이가 우묵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을 해부학적 코담뱃갑이라고 부른다. 이 독특한 명칭은 코담뱃갑을 뜻하는 타바치에르(tabatière)라는 프랑스어에서 따온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때 담뱃갑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는데, 그 형태가 이 우묵하게 들어간 부분과 닮아서 이런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그러나 시신의 상태에 따라 폐에 염증이 있어서, 폐가 늑골에 들러붙어 있거나 잘 떼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는 힘을 주어 신속히 떼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흉곽을 들어내는 데 방해가 되는 부위는 바로 횡격막이다. 횡격막도 늑골에 들러붙어있으므로, 그 부착된 부위를 가위로 잘라줘야 한다. 

- 흉곽을 제거하면 폐를 둘러싼 얇은 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흉막(가슴막)이라고 한다. 흉막은 복막과 비슷한 막으로 예전에는 늑막이라고 불렀었다. 이 흉막도 안타깝게도 복막처럼 잘 찢어진다. 그래서 제대로 된 흉막을 보기도 전에 찢어져서 폐가 바로 보일 때가 많다. 흉막도 그냥 봤을 때 막이 있는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얇다. 그러니까 폐가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이 흉막을 확인하려면 폐의 표면을 살펴봐야 한다. 그 표면이 매끈매끈하다면 폐 위쪽에 막이 덮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신체에는 세 종류의 매끈매끈한 막이 있다. 가장 커다란 막이 복막이며, 이어서 양쪽 폐를 감싸는 흉막, 마지막으로 심장을 감싸는 심막(심장막)이 있다. 이 막들은 엄밀히 따지면 똑같은 종류의 막은 아니지만, 매끈매끈하고 얇아서 수분을 분비할 수 있다는 공통된 성질이 있다. 수분을 분비하면 막이 미끄러워져 둘러싼 장기가 움직여도 주변 장기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쉽게 밀어내서 상처가 나지 않는다. 

- 폐를 살펴보면 우폐(오른허파)는 셋, 좌폐(왼허파)는 둘로 나뉜다. 이를 폐엽(허파엽)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관찰해도 오른쪽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둘, 셋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흉막이 폐엽의 틈새로 들어가서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폐는 이렇게 나뉘어 있어야 원활히 움직일 수 있다. 그래야 그 사이에 있는 틈 덕분에 각기 다르게 움직일 수 있어서, 움직임의 제약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폐가 팽창할 때 횡격막은 아래로 내려가므로, 폐는 원래 모양을 유지하면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직 방향으로 늘어나면서 커진다. 따라서 이처럼 폐가 나뉘어 있기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조금씩 어긋나면서 각각의 형태가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 해부학 서적 등에서는 폐를 피부 색상에 가깝게 묘사하지만, 실제 눈으로 목격한 폐는 예상과 달리 거뭇거뭇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흡입해 온 공기 속 매연 등이 폐에 쌓여와서 그렇다. 설령 공기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폐를 꺼낼 때 앞서 미리 잘라둔 늑골의 단면이 의외로 뾰족해서 손에 상처가 나는 일이 많으므로, 손에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폐를 들어 올려야 한다. 폐는 일반적으로 감촉이 부드럽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간다. 그러나 폐에 질환을 앓았던 사람은 폐가 단단해지거나 안쪽이 석회화되어 있을 때도 있다. 오른쪽 폐가 왼쪽 폐보다 더 작은 이유는 심장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또 기관(숨통)에서 갈라져 나온 기관지(숨관가지)도 좌우 모양이 다르다. 폐의 크기가 더 큰 오른쪽 폐의 기관지가 더 굵고, 폐의 크기가 작은 왼쪽 폐의 기관지는 상대적으로 더 가늘다. 여기에 차이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관지의 각도다. 오른쪽 기관지는 수직에 가깝고, 왼쪽은 수평에 가깝다. 왜냐하면 왼쪽 기관지는 심장과 연결된 대혈관이 심장을 지나 폐로 이어지므로, 폐의 입구까지 거리가 멀어져 수평에 가까운 상태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 아기가 단추 같은 물건을 삼키거나 고령자가 땅콩 등을 잘못 삼켜서 기관지가 막혔을 때, 압도적으로 오른쪽 기관지로 이물질이 들어갈 확률이 높다. 오른쪽 기관지가 두껍고 수직에 가까워 이물질이 들어가기 쉬우므로, 이런 사고가 오른쪽 폐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적출한 폐에 연결된 한쪽 기관지에 주사기를 사용하여 공기를 집어넣으면 폐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 폐를 적출한 가슴의 한가운데에는 심장이 남아 있다. 심장도심막이라는 막으로 싸여 있는데, 심막은 흉막(폐)이나 복막(복부)과 달리 2층 구조의 주머니로 이루어져 있다. 심장 전체를 감싸는 심외막(심장바깥막)은 얇고 매끈매끈하며, 심장 위쪽에 있는 대혈관에 매달려 있다. 심외막은 그 매달린 부분부터 바깥쪽으로 뒤집히듯이 심장 전체를 감싸는 주머니(심낭)를 형성한다. 그 바깥쪽을 둘러싸는 주머니는 튼튼한 결합 조직이며, 횡격막 돔의 중심 부분에 고정되어 있다. 심낭의 얇은 틈새에는 소량의 액체가 들어 있으며, 이 액체가 심장이 원활히 박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2층 구조 덕분에 심막을 통해 심장이 비치지 않고 새하얗게 보인다. 두께는 1~2밀리 미터가량으로 학생들도 실수로 이 심막을 찢는 일은 드물 정도로 두꺼운 편이다. 심막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심장이 1분 동안 몇십 번씩이나 움직이는데, 이 움직임은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지므로, 이를 견딜 강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렇게 표면을 관찰한 다음 심낭을 절개하면 심장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심장에는 지방이 쌓여 있어서 노랗게 보인다. 이 지방을 조심스럽게 제거해 내면 그제야 심장의 벽을 이루는 근육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심막이 매달린 부위인 심장 위쪽 뿌리 부분을 절개하여 심장을 적출한다. 

- 심장은 왼쪽과 오른쪽에 펌프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구조상 이렇게 좌우로 나눌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펌프를 나누어버리면 심장의 구조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장은 심장 아래쪽의 두꺼운 벽으로 이루어진 심실과 심장 위쪽의 얇은 벽으로 이루어진 심방으로 나뉜다. 이 심실과 심방 사이에는 수평 방향의 벽이 있다. 쉽게 말해 심장은 수직 방향(좌우)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수평 방향(상하)으로 나뉜다는 뜻이다. 심실과 심방의 경계에는 관상동맥(심장동맥)이 지나고 있어서, 외부에서 봤을 때도 경계면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 다만 심장은 그 모양이 반듯하지 않고 뒤틀려 있다. 이런 심장의 형태만 보고 좌우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해부도 등에 묘사된 심장 그림은 마치 우심실이 크고 좌심실이 작은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좌심실은 작지 않다. 심실의 기저면보다 아래쪽은 수평이 아니라 뒤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앞에서 봤을 때는 기저면보다 아래쪽에 있는 심실이 커 보일 뿐이다. 또 심장은 왼쪽으로 틀어져 있어서, 오른쪽이 크고 왼쪽이 작게 보인다. 따라서 가장 크게 움직이며 박동하는 왼쪽 아래 끝에 있는 심첨이 왼쪽으로 왔을 때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므로, 우리는 심장이 왼쪽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 심장의 골격은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심방과 심실을 완전히 분리해 주는 것이다. 심실 근육은 심실 근육 골격에 붙어 있고, 심방 근육은 심방 근육 골격에 붙어 있다. 즉 이는 심장이 위아래로 나뉘어서, 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라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심방과 심실이 동시에 수축하면 심장이 펌프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심방이 수축하여 심실로 혈액을 보내고 나서 시차를 두고 심실이 수축해야만 한다. 

- 그렇다면 심방과 심실은 어떻게 연계를 맺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일까? 그 열쇠는 바로 자극전도계라는 장치가 쥐고 있다. 심장의 골격을 이루는 우섬유삼각 속에는 심방의 수축 흥분을 조금 늦게 심실에 전달하는 데 쓰이는 가늘고 긴 연락 통로가 있다. 이 연락 통로는 특수한 심근 섬유로 구성된 자극전도계의 일부인 방실속(방실다발)이다. 이를 통해서 심방에서 심실로 자극을 전달하는 구조를 이룬다. 자극전도계는 매우 가는 연락 통로이므로, 해부하더라도 맨눈으로 확인하기 힘들어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해부를 통해 섬유성 골격을 이해하는 것은 곧 심장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인 셈이다. 


- 피부와 근육을 제거한 복부는 지방을 다량 함유한 대망(大網, 큰 그물막)이라는 얇은 막이 뒤덮고 있다. 결장 단면 대망은 마치 앞치마처럼 윗부분은 위장에 연결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그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상태다. 대망은 복부 어느 부위에 염증이 생기더라도 그 염증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도록 감싸주는 기능을 한다. 
 

-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대장은 대부분 결장(結腸, 잘록창자)인데, 이 결장의 표면에 결장끈이 계속 이어지므로, 대망을 들어 올렸을 때 이를 기준으로 소장과 대장을 구별할 수 있다.  

- 그 끝자락에 있는 소장은 길이가 무려 6미터나 되지만, 장간막에 주름이 많은 덕분에 배에 잘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장간막을 통해 혈관과 신경이 장까지 고루 퍼질 수 있다. 중력 때문에 장이 처질 만한 부분도 장간막으로 복강(체벽과 내장 사이에 있는 빈 곳을 뜻한다) 후벽에 고정할 수 있다.

- 소장과 대장을 끄집어낼 때는 장을 그대로 잘라서 적출해 내면 장 속에 남아 있던 대변이 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만 한다. 따라서 공장의 시작 부분과 결장의 끝부분을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두 군데씩 실로 확실히 묶어준 뒤에 그 사이를 잘라준다. 

- 대장은 소장에서 영양이 흡수되고 나서 들어온 내용물의 수분을 흡수하여 단단한 대변을 만들어낸다. 그때 이 결장끈이 수분이 줄어든 내용물을 있는 힘껏 짜낼 수 있도록 큰 연동운동을 쉽게 일으켜준다고 추측한다. 또 결장끈의 표면에는 포도송이처럼 지방 주머니가 붙어 있는데, 이를 복막수(腹膜垂, 복막주렁)라고 한다. 이 복막수도 대장과 소장을 구별해 내는 기준점이 된다. 외과에서 수술할 때는 이 부위를 손으로 더듬기만 해도 결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이어서 적출할 부위는 위다. 장과 마찬가지로 위의 윗부분에 일정 간격을 두고 두 군데를 묶어서 가위로 잘라낸다. 또 십이지장(샘창자)과 이어지는 위의 아래쪽 끝부분도 일정 간격을 두고 두 군데를 묶어서 잘라낸다. 그 후 위를 끄집어내는데, 위도 근육이 발달되어 있으므로 갈색을 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위를 꺼내고 나면 배에는 어떤 장기가 남아 있을까? 바로 간과 십이지장, 췌장(이자), 비장이다. 남은 장기 중에서 다음 순서로 간을 적출한다.

- 간은 왜 각이 둥근 직각삼각형의 형태를 띨까? 많이 알려졌듯이 간은 흐물흐물해서 형태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각이 둥근 직각삼각형을 띠는 이유는 위쪽은 횡격막에 딱 맞게 접해 있어서 둥근 형태를 띠고, 아래쪽은 내장에 눌려서 우묵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주변 부위에 형태를 맞춘다는 뜻이다. 좋게 말해 유연성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 부패 방지용으로 주입했던 포르말린 때문에 간이 단단해져서, 본래의 흐물흐물한 질감은 적출할 때 느껴볼 수 없다.
간을 앞쪽에서 살펴보면 세로로 긴 막이 한 장 끼어 있는데, 이는 간겸상간막(肝鎌狀間膜)이라는 복막 주름이다. 태아일 때는 탯줄에서 연장된 정맥이 이 복막 주름의 가장자리를 지나가는데, 어른이 되어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또 간도 좌엽과 우엽으로 나뉜다. 

- 간을 뒤쪽에서 관찰할 때는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다. 좌엽과 우엽 사이에는 미상엽(꼬리엽)과 방형엽(네모엽)이 있다. 앞에서 봤을 때는 미상엽과 방형엽이 마치 우엽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뒤에서 봤을 때는 네 개의 엽(뇌나 폐, 간 등을 구분하는 단위)으로 나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엽과 미상엽, 방형엽으로 둘러싸인 부위에는 동맥과 간문맥, 담관이 출입하는 통로가 되는 간문이 있다. 이 부위가 본래 간의 중앙 부위에 해당한다. 간문의 주변에는 간동맥과 간문맥이라는 두 개의 혈관이 이어져 있다. 대동맥에서 나뉘어 나온 혈관이 간동맥이며, 위 등의 소화기에서 혈액을 모아서 간으로 옮기는 정맥이 간문맥이다. 이 혈관에서 간으로 연결된 혈액은 간정맥을 지나서 간 뒤쪽에 있는 하대정맥으로 흘러 들어간다. 

- 신장이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디에 고정되어 있을까? 신장은 복막보다 안쪽에 있으므로 후복막 장기(後腹膜臟器)라고 한다. 복막과 연결되지 않은 대신에 척추 양쪽에서 복강의 안쪽 벽(후복벽) 지방에 파묻혀 있다. 그 덕분에 위치가 고정되어 아래로 처지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 신장이 조금 더 높은 데 있고, 오른쪽 신장이 조금 더 낮은 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른쪽 신장이 간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부신(副腎)은 마치 모자처럼 신장 위에 씌어 있다. 신장과 부신은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소량의 지방이 있어서 살짝 띄워져 있다. 

 

- 수질은 열 몇 개의 덩어리로 나뉘며, 각각의 덩어리는 피라미드처럼 원뿔꼴로 생겼다. 그 모양 때문에 수질 하나하나를 신추체(腎錐體, 콩팥피라미드)라 부른다. 또 신동에서 뻗어 나온 신추체의 끝부분은 마치 유두처럼 보여서 신유두, 콩팥유두)라 부르며, 신장에서 만들어낸 모든 소변을 이 부위에서 배출해 낸다. 사실 인체에서 '모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위가 없는데, 이 신유두는 '모든'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희귀한 부위다. 그리고 그렇게 배출된 모든 소변을 받아들이는 부위는 신배(腎杯, 콩팥잔)라는 작은 컵 모양의 주머니다. 신배가 모인 부위는 신우(腎盂, 콩팥깔때기)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요관을 통해 신장 밖으로 소변을 배출해 낸다.

 

- 이렇게 신장은 소변을 만드는 작업이 맡아하는데, 이 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하루에 얼마만큼의 소변을 만들어내게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매일 똑같은 식단으로 식사하지 않으므로, 수분과 염분의 섭취량도 날마다 달라진다. 또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이나 호흡하며 날아가는 수분량도 일정하지 않다. 이렇게 불규칙한 수분과 염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신장이 담당한다. 만약 신장이 이 작업을 미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체내의 염분 농도는 정밀히 조절된 상태다. 그런데 신장이 제구실을 해내지 못할 때 칼륨을 많이 함유한 채소나 과일 등을 다량으로 섭취하면 혈액 속 칼륨이 늘어나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 또 체액의 염분 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므로, 염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농도를 낮추고자 체액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혈액량이 늘어나 혈압도 올라간다. 

- 신장은 묽은 소변은 쉽게 만들지만, 반대로 진한 소변은 쉽게 만들어내지 못한다. 수질 속에는 나트륨과 요소(尿素)가 쌓여 있으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농도가 진해진다. 수질을 마치 꿰뚫듯이 지나가는 집합관이 수질을 통과할 때, 주변의 높은 삼투압 때문에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농도가 진한 소변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신유두의 끝부분에서 나오는 구조다. 

- 즉 서혜관은 복부와 음낭을 잇는 통로인 셈이다. 평소에는 서혜관이 닫혀 있지만, 워낙 연약한 부위이므로 장이 복강을 쉽게 삐져나올 수 있다. 서혜관을 따라 장이 탈출한 상태를 서혜탈장(삼굴탈장)이라 한다. 여성보다 남성이 서혜관이 넓어 서혜탈장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 서혜관의 기능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성에게는 굳이 필요한 부위가 아니지만, 여성에게도 해당 부위에 가느다란 결합조직이 존재한다. 서혜관은 본래 고환이나 난소를 아래로 잡아당겨 음낭 속으로 빼내는 기능을 하는데, 남성은 이에 걸맞게 고환이 서혜관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 있다. 그러나 여성은 아래로 잡아당겨지지 않아 난소가 여전히 복부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아래로 잡아당겼어야 할 끈만 남아서 서혜관을 통과한다. 이 끈을 자궁원삭(子宮圓索, 자궁원인대)이라 하며, 자궁을 고정하는 기능을 한다. 

- 서혜인대 위에서 일어나는 서혜탈장은 남성에게 많이 발생하지만, 서혜인대 아래에 있는 또 다른 통로에서 일어나는 대퇴탈장(넙다리탈장)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 서혜인대의 심층에 있는 틈은 근육으로 거의 막혀 있지만, 남아 있는 틈에는 대퇴동맥과 대퇴정맥(넙다리정맥), 림프관이 지나간다. 이 좁은 틈을 따라 장이 탈출한 상태를 대퇴탈장이라 한다. 
 
- 대둔근은 골반 뒤쪽에 붙어 있으며, 대퇴골 뒷면을 수직 방향으로 지나는 조선(粗線, 거친선, 대퇴골 뒤쪽에 세로로 길게 튀어나온 선)의 윗부분에 해당하는 둔근조면(臀筋粗面, 볼기근거친면)이라는 부위를 향해 있다. 위치 관계를 보면 대둔근이 고관절(엉덩관절)을 늘리고, 대퇴골을 뒤쪽으로 잡아당기는 근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중둔근과 소둔근은 대둔근과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중둔근과 소둔근이 대전자로 향하는 위치 관계를 보면 두 근육이 대퇴골을 옆으로 올리고, 다리를 바깥쪽으로 뻗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과연 직립으로 보행하려면 대퇴골을 뒤로 잡아당기거나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할까? 다리가 지지대로써 어떻게 상체를 움직이는지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절하고 나서 고관절을 펴면서 상체를 일으켜주는 부위, 직립보행을 하면서 앞으로 쏠리는 상반신을 뒤로 잡아당겨서 허리를 세워주는 부위가 바로 대둔근이다. 그리고 한 발로 섰을 때 지면에 붙어 있는 발이 떠 있는 발 쪽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들어 올려주는 기능을 하는 부위가 바로 중둔근과 소둔근이다.

- 좌골신경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연필만큼 굵은 신경이다. 이 신경이 대둔근 아래에 숨어 있어서 엉덩이에 근육주사를 놓을 때 대둔근에 놓으면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부위를 피해 엉덩이 윗부분에 드러나 있는 중둔근에 주사를 놓는다. 중둔근은 근육 아래에 뼈만 있으므로, 혈관과 신경을 다치게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들이 아무 데나 주사를 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전한 장소를 골라서 바늘을 꽂는 셈이다. 이 또한 해부를 실습하면서 구조를 직접 관찰해야 이해할 수 있다. 몸속에서 가장 굵은 신경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척추뼈 속을 지나는 척수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뇌의 분점처럼 중추신경(신경기관 가운데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의 일부일 뿐이다. 그 척수에서 나오는 신경 가운데 골반 주변으로 나와서 하반신으로 향하는 몇 가지 신경 다발이 모여서 굵어진 부위가 바로 좌골신경이다. 

 

-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상지는 앞면에 구부리는 근육이 있고 뒷면에 펴는 근육이 있다. 반면 하지는 반대로 앞면에 펴는 근육이 있고 뒷면에 구부리는 근육이 있다.
 
- 상지나 하지에 있는 동맥 모두 관절 부분에서는 펴는 쪽이 아니라 구부리는 쪽을 지나간다. 왜냐하면 동맥이 관절을 펴는 쪽을 지나가면, 혈관이 무리하게 당겨지거나 쉽게 외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지에서는 어깨, 팔꿈치, 손목에 있는 관절이 모두 구부리는 쪽이 앞면을 향한다. 하지만 하지에 있는 관절인 고관절은 구부리는 쪽이 앞면에 있고, 무릎관절은 뒷면에 있어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대퇴동맥도 허벅지에서는 앞면을 지나가다가 내전근 안쪽을 통과하면서 무릎 뒤쪽을 향해간다. 그리고 무릎 아래쪽부터는 다리 뒷면을 지나간다. 정맥도 깊은 곳에 있는 비교적 굵은 정맥은 동맥과 함께 지나가지만, 피부 바로 아래쪽을 지나는 정맥도 많다. 이처럼 피부 바로 아래쪽을 지나는 정맥은 피부 겉쪽에서 보여 채혈하거나 정맥주사를 놓을 때 쓰이기도 한다. 

- 손에는 뒤꿈치가 없지만, 발은 뒤쪽에 뒤꿈치가 튀어나와 있다. 그렇다면 발에는 왜 뒤꿈치가 튀어나와 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발목 관절은 안팎에 있는 복사뼈 사이에 있는데, 아킬레스건은 발목 관절보다 훨씬 뒤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렛대의 원리로 따지면 복사뼈의 위치가 받침점, 발끝이 작용점, 아킬레스건이 힘점에 해당한다. 아킬레스건이 잡아당기는 뒤꿈치가 뒤쪽으로 물러나서 힘점이 멀어지면서 발끝으로 차는 힘이 세어진다. 따라서 이처럼 뒤꿈치가 발 뒤쪽으로 튀어나와 있지 않으면 발끝으로 지반을 강하게 찰 수 없다. 이 구조는 포유류의 특징이기도 하다. 
 
- 그러나 혈관과 신경은 안쪽 복사뼈의 뒤쪽을 지나가도 괜찮지만, 발가락을 구부리는 근육의 모든 힘줄이 안쪽 복사뼈의 뒤쪽을 지나가면 균형을 잡는 데 좋을 리 없다. 그래서 균형을 잘 잡으려면 발바닥이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즉 바깥쪽으로 어긋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퇴, 즉 정강이 앞쪽의 근육 일부를 바깥쪽으로 조금 돌려서 바깥 복사뼈의 뒤쪽을 지나가도록 한다. 이처럼 균형을 맞추고자 정강이 근육의 일부만 바깥쪽으로 오게 한 탓에 발을 안쪽으로 구부리는 힘(내반)은 강하고, 바깥쪽으로 구부리는 힘(외반)은 약하다. 그래서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발이 안쪽으로 꺾이며 발목이 삐게 되는 것이다. 

- 전신에 있는 관절 중 가장 많이 상처가 나는 부위는 무릎이다. 왜냐하면 무릎은 체중이 실리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무릎관절을 잘 살펴보면 맞붙어 있는 대퇴골과 경골이 상당히 다른 형상을 띠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퇴골 아랫부분의 안쪽과 바깥쪽은 둥근 형태를 띠는데, 경골의 윗면은 평평한 형상을 띤다. 그래서 두 뼈가 접한 부분이 매우 좁아 거의 한 지점에 체중이 실린다. 이 덕분에 가동 영역은 넓게 확보할 수 있지만, 접한 부분이 좁아 무게가 한곳에 집중되고 만다. 게다가 무릎관절은 무려 체중의 다섯 배나 되는 무게가 실리는 부위다. 달리거나 뛰어올랐을 때만 충격이 다섯 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걸을 때도 무릎관절이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주변 근육이 수축해서 밀착하므로 그 힘까지 더해져 무릎에 가해지는 무게가 체중의 다섯 배가된다. 

 

- 그래서 관절연골이 다치지 않도록 주변 관절에서 관절반월(관절반달, 관절강에 있는 반달 모양의 판)이 뻗어 나와 경골과 대퇴골 사이를 채워서 뼈끼리 접하는 면적을 넓혀준다. 이 덕분에 무게가 분산되어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든다. 즉 관절반월이 완충재 구실을 해서 무릎이 다치지 않도록 방지해 준다. 그러나 격하게 운동하면 무릎이 손상되기도 한다. 특히 관절반월은 자주 손상된다. 연골은 훌륭한 신체 부위이지만, 내부에 혈관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즉 이 부위는 다치거나 상하면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주변 관절포까지 심하게 손상되었을 때는 다친 부위를 그대로 봉합하면 주변을 지나는 혈관이 결합조직에서 뻗어 나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골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 대신에 관절반월을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한다. 단 손상이 적어서 연골만 다쳤을 때는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러 손상 부위를 넓혀서 저절로 회복할 수 있도록 촉진해 주는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오히려 손상 부위가 넓을수록 쉽게 낫는다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무릎뼈는 무릎인대 안쪽에 있는 뼈다. 이처럼 인대나 힘줄 안쪽에 있는 뼈를 종자골(종자뼈)이라 부른다. 손가락에도 종자골이 있지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무릎에 있는 종자골만 예외적으로 큰 편이다. 이 무릎뼈 덕분에 급격한 각도로 대퇴사두근의 힘줄을 꺾거나 돌릴 수 있다. 즉 무릎뼈가 무릎관절 앞쪽에 있으므로 도르래 구실을 하며 힘줄의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있게 해 준다. 무릎을 구부리고 있으려면 힘줄의 방향을 바꿔 줘야만 하는데, 무릎뼈가 이 방향을 바꿔주는 임무를 맡아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이쯤 되면 당신은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릎인대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이 부위가 대퇴사두근의 힘줄이라는 점을 말이다. 무릎인대는 무릎뼈 아래에 있는 경골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경골과 무릎뼈 사이를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다시 말해 대퇴사두근의 힘줄이 경골까지 이어지고, 그 중간에 무릎뼈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실 무릎인대는 인대가 아니라 힘줄인 셈이다. 

- 그렇다면 요의와 변의를 느낄 때는 막혀 있는 이 출구가 어떻게 열릴까?
요도괄약근과 항문괄약근은 각각 평활근으로 이루어진 내요도괄약근과 내항문괄약근, 골격근으로 이루어진 외요도괄약근과 외항문괄약근이라는 2단 구조로 되어 있다. 변의를 느끼면 반사적으로 직장의 평활근이 수축하면서 내항문괄약근이 느슨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변이 바로 새어 나올 수 있으므로, 외항문괄약근을 수축해서 대변이 나오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배변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배에 힘을 주면 복압이 올라가며 대변이 배설된다. 요의를 느낄 때도 이와 마찬가지로 ... 


- 이러한 작업을 거치다 보면 관절을 떼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실감할 수 있다. 에도시대 때는 망나니가 칼로 단번에 죄수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를 깔끔히 자르려면 제1경추와 제2경추 사이에 정확히 칼을 찔러 넣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를 해낸다는 것은 마치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 경추(목뼈)는 제1경추부터 제7경추까지 일곱 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제1경추와 제2경추는 그 형태가 독특하다. 제1경추는 고리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 고리 구멍에 제2경추 위에 튀어나온 치돌기(치아돌기)가 끼워져 있다. 그런 구조 덕분에 마치 바퀴가 축의 주변을 회전하듯이 제1경추가 회전하면서 고개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1경추는 고리 모양의 경추라는 뜻의 환추(고리뼈), 제2경추는 축 모양의 경추라는 뜻의 축추(중쇠뼈라고도 하는데 중쇠는 바퀴 한가운데 구멍에 박힌 긴 쇠를 뜻한다)로 부르기도 한다.
 
- 두개골 내면에는 뇌를 감싸는 경막이라는 단단한 막이 붙어있다. 이 경막을 제거하면 뇌가 보인다. 이 막은 두개골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 뇌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해부할 때 두개골에 붙어 함께 딸려 올라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만 한다. 경막은 단순히 뇌를 감싸줄 뿐만 아니라 뇌 사이에 두 군데의 큰 주름을 만들어낸다. 하나는 좌우의 대뇌반구 사이에 수직으로 접힌 대뇌겸(大腦鎌, 대뇌낫)이라는 주름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뇌와 소뇌 사이에 수평에 가깝게 접힌 소뇌천막이라는 주름이다. 이렇게 수직과 수평으로 주름이 접혀 있어서 무리해서 경막을 잡아당기면 뇌가 손상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해부할 때는 뇌를 꺼내기 전에 경막을 군데군데 잘라줘야 한다. 

- 보통 해부를 실습하기 전에 미리 뇌를 제거해 두므로 학생들은 두개골에 남은 경막을 관찰하게 된다. 경막은 힘줄이나 인대처럼 콜라겐으로 이루어진 튼튼한 결합조직이다. 막은 얇지만 단단하고 뼈와 비슷한 하얀색을 띤다. 뇌를 수술할 때는 경막을 절개해야 하므로, 절개한 부분에 인공경막을 이식하고 뼈를 덮어서 수술을 마무리한다. 보통 조직을 이식하면 면역계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면역반응을 일으킬 만한 성분은 제거하여 순수한 콜라겐에 가까운 형태로 인공 경막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또 경막 안에는 정맥이 지나가는데, 이를 경막정맥동(경막정맥굴)이라 한다. 뇌로 보낸 혈액은 모두 이곳에 모여 최종적으로 뇌 바닥부의 경정맥공(목정맥구멍)에서 내경정맥(속목정맥)이 되어 나온다.  

- 그런데 학생들이 해부하면 한가운데를 제대로 자르지 못하고,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치게 자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남아 있는 비중격을 떼어낸 후 그 내부를 관찰한다. 비중격을 떼어내면 옆면에 구조물이 튀어나와 있다. 이 구조물을 비갑개(鼻甲介, 코선반)라고 한다. 비갑개는 상중하의 세 개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은 뼈로 되어 있으며, 점막으로 덮여있다. 비갑개의 아래쪽으로 공기가 통하는 길이 있는데, 이 또한 상중하 세 개의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 그러나 코는 단순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출입구가 아니다. 비강이라는 공간이 가느다란 통로로 머리의 다양한 부위와 연결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비강 주변 뼛속에 뚫린 통로가 있다. 이 부위를 부비동(副鼻洞, 코곁굴)이라 하는데 전두골(前頭骨, 이마뼈)에는 전두동, 이마굴), 상악골(위턱뼈)에는 상악동(上顎洞, 위턱굴), 사골(篩骨, 벌집뼈, 눈 사이의 코 윗부분에 있는 뼈)에는 사골동(篩骨洞, 벌집굴), 접형골(나비뼈)에는 접형동(蝶形洞, 나비굴)이라는 네 개의 통로가 있다. 이 네 개의 통로도 개구부 기능을 하는 비강과 연결되어 있다.

- 관절 사이에 연골판이 들어 있는 관절은 악관절과 손목 관절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드물다. 손목에는 요골과 척골이 있는데, 두 뼈 중에서 새끼손가락 쪽에 있는 척골은 손목뼈와 직접 접해있지 않고, 그 두 뼈 사이에 연골판이 들어 있다. 손목뼈에 직접 접해 있는 뼈는 오로지 요골뿐이며, 이 관절 부위를 요골수근관절(撓骨手根關節)이라 한다. 따라서 악관절과 손목 관절은 전혀 다른 관절 형태를 띠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 막을 가위로 잘라내면 안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안구 주변 틈새를 가득 채운 지방이다. 안구를 빙글빙글 움직여서 다양한 방향을 보려면, 눈 주변이 단단한 뼈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활액주머니와 같은 장치도 갖추고 있지만, 안구 주변은 근육이 수축하거나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므로, 이를 담아내려면 무엇보다 지방으로 부드럽게 감싸는 구조가 가장 적합하다. 안와의 지방은 피하지방 등과 달리 윤기 있고 아주 깨끗한 황색을 띠며 부드러워서, 핀셋으로 손쉽게 꺼낼 수 있다. 피하지방은 단단한 콜라겐으로 그물을 만들어 지방을 둘러싸는데, 이 안와의 지방은 지방 알맹이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고, 그 알맹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콜라겐도 매우 무르다. 그래서 지방뭉치를 꺼낼 수 있다. 즉 그만큼 지방이 부드러워서 안구를 잘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 이렇게 안구를 움직이려면 여섯 개의 근육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열두 가닥의 뇌신경 중에서 세 가닥을 사용해야 한다. 눈은 이처럼 굉장히 호사스러운 구조를 띤다. 그렇다면 과연 안구를 움직이는 일이 이렇게 호사스러운 구조를 띨 만큼 중요할까? 외안근은 의도한 대로 안구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큰 소임을 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카메라의 손 떨림 방지와 같은 기능이다. 몸이나 머리가 움직일 때 안구도 함께 움직이면서 시야가 흔들린다면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몸이나 머리를 움직일 때 반사적으로 안구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서, 시점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이는 장면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용을 맡은 장치가 바로 외안근이다. 

- 따라서 공기의 음파는 대부분 수면에서 반사되어 액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밀도가 낮은 공기의 진동을 물의 진동으로 바꾸고자 우선 고막의 넓은 면적으로 받아들인 소리를 등자뼈 바닥의 좁은 면적에 전달하면서 에너지를 집중하게 한다. 고막과 등자뼈바닥의 면적 비율은 17:1이므로, 고막에 가해지는 압력은 17배로 커진다. 또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 등 세 뼈를 거치는 사이에 지렛대의 원리로 진폭이 작아져 에너지가 아래에 집중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공기에서 액체로 음파 에너지의 60퍼센트를 전달할 수 있다.  


- 중이까지 해부하고 나면 이제 내이를 해부해야 하는데, 이 부위도 뼛속에 복잡한 관이 있다. 그 복잡한 형태 탓에 미로라고 불린다. 그 관 안에는 그 관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막 주머니가 들어 있다. 그 뼈에 있는 터널 같은 관을 골미로라고 하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막 주머니를 막미로라고 한다. 막미로의 안팎에 들어 있는 액체는 성분이 서로 다르다. 막 바깥쪽에 있는 외림프(perilymph, 바깥림프)는 혈액처럼 나트륨이 많이 함유된 액체다. 그리고 막 속에 있는 내림프(endolymph, 속림프)는 세포 내부처럼 칼륨이 많이 함유된 액체다. 이 성분의 차이가 귀의 감각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다. 

- 내이에서 청각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감각세포는 모두 막미로에 있으며, 그 감각세포는 막 안쪽의 칼륨 농도가 높은 내림프의 액체에 잠겨 있다. 감각세포는 꼭대기에 털이 난 세포로 이 털이 기울어지면 내림프의 칼륨이 세포 속으로 유입되어 흥분한다. 이는 내이의 감각세포에 공통된 감각 수용 구조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트륨 속에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 골미로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방에는 달팽이관이 있으며 한가운데는 안뜰기관, 후방에는 반고리관이 있다. 전방에 있는 달팽이관은 똬리를 틀고 있는 달팽이 형태처럼 보여서 달팽이관이라고 불리며, 이 부위로 소리를 감지한다. 후방에 있는 반고리관은 회전운동의 가속도를 감지하고, 한가운데에 있는 안뜰기관은 직선운동의 가속도를 감지한다. 그러나 이 부위는 직접 해부하더라도 동굴처럼 뚫린 공간이라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 막미로 바로 바깥쪽 벽은 치밀뼈(골수공간이 없는 단단한 뼈)이므로 단단하며, 더 바깥쪽은 해면뼈(갯솜뼈, 흐물흐물하고 구멍이 많이 뚫린 뼈)이어서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해면뼈부터 끌로 깎아내면 단단한 뼈 부위가 골미로의 바깥쪽 면을 만드는 껍데기 같은 부위에 닿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이렇게 될 때가 드물다. 학생들이 직접 끌로 깎아내면 '골미로의 단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양호한 상태의 내부는 좀처럼 관찰하기 힘들다. 심할 때는 외이를 해부할 때부터 중이나 내이까지 잘못 건드려서 아예 확인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자네들은 오늘 해부가 끝났구먼. 볼 수 있는 부위가 사라져 버렸거든."이라고 말을 건네고는 한다. 단 망치뼈나 모루뼈 등은 꺼내서 확인할 수 있다. 개중에는 점점 뼈를 깎아내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다른 뼈덩어리를 함께 깎아낸 줄도 모르고 '이 속에 청소골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해부하는 학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학생들은 해부하다가 실수하면서 인체 구조뿐만 아니라 인체 조직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얇음과 두꺼움 등을 직접 느끼며 해당 부위를 다루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맺음말

 


인체 지도를 탐험해 본 소감이 어떠한가? 어려운 단어가 나올 때도 있었겠지만, 단어의 의미를 잘 살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부 용어는 인체의 각 부위의 기능과 구실을 명확히 표현해서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또 눈이나 신장이 지방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지면을 강하게 차려면 뒤꿈치가 튀어나와야 한다는 점 등 인체 구조에는 저마다 그렇게 생긴 이유가 있고, 무엇 하나 쓸모없는 부위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인체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체의 신비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부학을 통해, 인체를 탐구하려는 마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느끼고, 본인이나 타인의 몸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해부라고 하면 그저 인체를 훼손하는 잔혹한 행위라며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인식이 강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사람이 인체에 관심을 두게 됐을 뿐만 아니라 해부의 의미도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의학 발전을 위해서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해부학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이런 분들의 선의 덕분이다. 해부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명심하고, 생명을 소중히 다루며, 시신과 진지하게 마주했으므로 오늘날 해부학 교실이 성역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에 ‘재밌어서 밤새 읽는'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해부학의 학문적 재미를 의미할 뿐 인체 해부 자체는 매우 엄숙한 행위다. 인체는 신비한 수수께끼가 흘러넘쳐난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전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러분도 이 책을 계기로 자기 몸과 마주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7년 3월
사카이 다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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