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한차현] 숨은 새끼 잠든 새끼 헤맨 새끼

일루젼 2012. 10. 8.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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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새끼 잠든 새끼 헤맨 새끼 - 4점
한차현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반양장본 | 170쪽 | 188*120mm | ISBN(13) : 9788961887557
2008-11-10 

 

 

슬슬 서평과 해설에 대해서도 책을 한 권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의 방은 여전히 거지 소굴이고, 틀림없이 5-60권은 훌쩍 넘게 팔아제꼈는데 그 공간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빨리 빨리 치우려고 알x딘에서 후려쳐도 그냥 다 팔아버리는데. 세 자릿수가 넘게 팔아야 겨우 티가 나려나.

 

한동안 책 리뷰가 뜸했다.  

9월은 책은 잘 읽었는데 리뷰쓰기가 귀찮았고, 10월은 정신이 좀 나가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더랬다. 

멍한 머리로 오기를 부린답시고 비문학만 쥐고 있다가 10일이 코앞인 지금에서야 안 될 때는 돌아가자 싶어 펄프 픽션을 쥐었다.

나는 이 출판사의 펄프픽션 '귀족'(마광수)에 이미 한 번 데인 적이 있다.

 

나는 마광수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사라와 나는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 두 권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그와 사상이 비슷해서라기 보다는 이런 이도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소소한 응원을 보내는 정도다.

하지만 귀족은 좀. 음. 하하. 뭐랄까.... 받아들이기 어렵다기보다는, 마광수 특유의 찰진 맛이 없어 실망했던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아, 이제 마광수 옹도 늙으셨는가.... 하고 넘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펄프 픽션에 대한 이미지가 생긴다.

(물론 민음 펄프는 꽤 괜찮은 거 같은데...)

 

아마도 이 출판사에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을 이 펄프픽션 시리즈는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놓는 새로운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해서 이런 저런 연이 닿는 작가들에게 부탁하여 시리즈를 시작해나가다가 뒤에는 신인이나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려했던 것 같다.

(박범신 - 엔돌핀 프로젝트 / 이경자 - 귀비의 남자 / 김종광 - 죽음의 한일전 / 이청해 - 그물 / 마광수 - 귀족 / 한차현 - 숨은 새끼 잠든 새끼 헤맨 새끼)

 

이제는 몇 번이고 되뇌여 입에 착 붙어버리는, '언제 샀는지 모르겠는데 집에 있던' 이 책이 현재 절판 상태인 걸 보면.

펄프 픽션 시장의 부흥은 아마도 크게 잘 되지 못한 모양이다.

(문득 든 생각인데, 그렇다면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역시 펄프로 봐야할까? 종이는 펄프스럽지 않았지만 원체 얇아서.)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결말까지 당당하게 스포하므로, 알아서 중간에 건너뛰시라.)

 

20대 초의 세 친구가 1박 2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두 명의 여자와 합석해 술자리를 즐긴다.

그리고 셋은 가위 바위 보를 통해 한 명의 술래를 뽑고 다른 둘은 각각 다른 여자와 원나잇을 즐기러 모텔로 향한다.

이들은 [레베카의 이중생활]을 여러번 보고 개똥철학을 세운 현기를 따라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한다.

 

'무릇 섹스는 존재론적이며 동시에 관계론적이다. .... 그리하여 본래 섹스란 생명 개체의 실존적인 본능이며 동시에 타자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타적 행위이다. 나와 상대가 존재의 고독한 극점까지를 순순히 드러내며 서로에 이르고자 하는, 그를 위해 서로 부단히 이끌고 격려하고 협력하며 나뒹구는. ..... 존재론적이며 관계론적인 섹스의 궁극을, 그럼에도 동성 친구 간의 우정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 ..... 바로 보여주기요 훔쳐보기이다. ..... 이야말로 섹스의 존재론적이며 관계론적인 측면을 친구 간 우정 이상으로 승화하는 그럴듯한 방편 아니겠는가, 까지가 현기 주장이었다.'

 

해서 술래가 된 '나'는 두 친구의 모텔방을 오가며 그들의 정사를 훔쳐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현기가 문자로 보내온 호수의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문 너머로는 엽기토끼의 흐느낌이 들려오는데 잠긴 문은 열리질 않았다. 분노와 실망 사이에서 배회하던 '나'는 승일의 모텔로 가보지만 로비에서 혼숙은 안된다며 저지당한다. 그렇게 양쪽을 오가던 '나'는 결국 승일와 같은 모텔에 방을 빌린 다음 승일의 방 앞에 서 보지만, 역시 노랑머리의 신음만 들릴 뿐 문은 잠겨 있었다.

 

기운이 쭉 빠진 그는 방에 홀로 누워 배신감 속에 잠들었고, 그런 그를 깨운 것은 경찰들의 거친 호출이었다.

 

두 여자는 자살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노랑머리는 당초의 계획대로 성공했고, 엽기토끼는 실패했다.

그 밤, 그 헌팅으로 살아있는 마지막 밤을 보낼 상대가 변했던 것이다.

 

다행히 살아남은 엽기토끼의 증언과 노랑머리의 유서로 조사는 간단하게 끝이 났고, 그들은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승일은 임신 6개월의 아내를 두고 군에 입대 했고, 현기는 어머니가 힘써준 대로 캐나다 유학을 떠났으며, '나'는 아버지의 정비소에서라도 일할 요량으로 기술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살아가느라 7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세 사람.

어느새 결혼까지 했다며 입성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현기가 아담하고 고운 아내와 딸을 소개한다. 떨떠름해하는 승일과 분위기를 풀어보려 반갑게 맞는 나.

 

그랬다. 그녀는, 엽기토끼였다.

 

 

여기에서 짚고넘어갈 포인트들.

자살 동호회의 운영자가 넘겨준 청산가리 캡슐은 실패를 대비한 두 알이었고, 노랑머리는 승일을 먼저 씻게 만든 다음 수면제를 탄 맥주를 권해 그를 잠재운 뒤 홀로 캡슐을 삼켰다. '나'가 들은 신음은 그녀의 단말마였다.

현기는 어떻게든 엽기토끼를 설득해 상의를 탈의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그리고 드러난 몸 곳곳에 선명한 자해의 흔적에 경악한다. 흐느끼기 시작한 그녀를 달래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우선 방문을 잠그고, 다 들어주겠으니 편하게 말해보라며 그녀를 토닥인다. 얼마전 교통사고로 -어쩌면 의도적일지도 모르지만- 죽어 화장한 자신의 형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저 가위바위보였다.

그것만으로 수면제가 아닌 청산가리를 먹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 한 사람은 시체와의 하룻밤을, 다른 한 사람은 새 생명이 잉태되는 하룻밤을 보냈다.

 

모든 것은 그렇게 한 순간의, 장난 같은 결정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틀림없이 그것만은 아닌 것들로 정해지는 것이다.

채 서로를 드러낼 시간도 없이 잠들어 버린 승일의 파트너였던 노랑머리는 그대로 자신의 결정대로 선택했고,

더 어리고 흔들리고 있었다고는 해도 서로를 드러내고 마주하게 된 엽기토끼는 살아남아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는 결말은,

아마도 작가가 두 캐릭터를 비교하며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애초에 승일의 경우 -후에 이혼했다고 하지만- 아내가 있었고, 현기는 생활의 여유가 있었다는 설정은 다소.... 별로다. 

그리고 결말이 주는 의미가 그리 크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7년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자리에 동석시킨다는 점도 잘 납득이 되지 않고(사진을 보여주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관음의 대상이 될 뻔 했던 인물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등장시키는 것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연결고리도 보이지 않아서.

 

 

뭐. 후루룩 잘 읽었다.

크게 인상 깊은 작품은 아니었다고 말해야겠다.

할 말이 별로 없어야 편하게 리뷰를 쓰니 이것도 참 몹쓸 성격이다. 할 말이 많으면 그냥 다 토하고 정리를 하던가 추려서 갈고 닦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적당한 양만 남기고 까먹을 때까지 묵히니. 별로 좋지 못한 습관 같다. 그런데 쉽게 고칠 것 같진 않다.

 

 

 

[발췌]

 

# 하기야 상관없는 노릇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혼녀건 레즈비언이건 남파 공작원이건 변신 우주 괴물이건 그렇지 않건 서로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지금, 혹시라도 중요한 무엇이 있다면 다만 지금이라는 순간들이니까. 그뿐 서로가 누구건 무엇이건, 어차피 지구 반대편보다 더 멀고 아득한 사이들이니까.

 

 

# 분노와 두려움의 차이를 아세요? 두려움은 밖으로부터 오지만 분노는 안으로부터 나와요. 두려움을 사람을 가두어 병들게 하고 분노는 사람을 움직여서 아프게 만들지요.....

 

 

# 7년 만에 세상은 많이 변했다. 세상을 들먹일 필요 없다. 21세기를 걸고넘어질 것도 없다. 20대 초반과 서른 살을 바라보는 나이들이란, 그 빌어먹을 차이란, 양적인 변화를 넘어선 본질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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