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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일루젼 2012. 12. 1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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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 8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364쪽 | 220*140mm | ISBN(13) : 9788960171930

2009-03-20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지만, 다카노 가즈아키를 좋아해서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어온 그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글이기 때문이다.

 

'그레이브 디거' 같은 경우도 다소 심령 미스테리가 될 뻔 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남겨두지 않고 현실적으로 설명해냈던 그다.

또 디거 뿐 아니라 '13계단'이나 '제노사이드'에서도 강한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냈던 그인데...

(물론 그것이 작품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답을 던지기 보다는 화두를 던지는 쪽에 가까우며, 그것을 스토리 전개 안에 잘 녹여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매우 좋게 생각하는 작가다)

 

이번만큼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또 미스테리나 추리라기보다 연애물에 가까운 소설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소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읽어나가는 동안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많이 생각 났는데.... 아 물론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가 죽음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크게 보면 6개의 각기 다른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 시간의 마법사 /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날 / 돌하우스 댄서 /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 미래의 일기장

 

이 중 가장 마지막, 에필로그인 '미래의 일기장'을 제외한 다섯 편은 모두 '야마하 케이시'라는 예지가로 연결된다.

그의 비젼(vision)을 보는 능력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는 것이다.

 

또한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와 '3시간 후 나는 죽는다'는 연결되는 에피소드로, '3시간'은 '6시간' 후 5년 뒤라는 설정이다. 또 이 에피소드에서는 '6시간'에서 케이시에 의해 목숨을 구한 '하라다 미오'라는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데... 아마 이 에피소드가 작가가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 싶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어떤 발버둥도, 그마저도 예정되어 있어 결국은 운명의 결말을 더 재촉할 뿐인가.

 

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여기서의 결론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짤막한 에필로그 '미래의 일기장'이 덧붙인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흠. 가즈아키가 쓰는 로맨스라니....

 

각 에피소드들에서의 '케이시'의 이미지는 일관성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아쉽지만...  

(이것은 아주 콩깍지 씌인 시선으로 봐주자면 등장 인물과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 봐줄 수도 있다...)

 

솔직히...

취향이었다. 휴. -_-;; 해서 별점이 조금 더 후해진 것 같.... 다.

 

다 읽고 팔아버리려 했는데 그냥 갖고 있을까 좀 고민이 되는 소설.

나는 '케이시'처럼 예의 바르고 단정하며 많은 것을 속으로 삼켜 짊어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을 되부풀려 밖을 향한 가시로 세우지 않는, 그런 사람을.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을.

 

어쩌면 그건 내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최근 잡념이 좀 많았다.

결국 성장이란 홀로 할 수만은 없어서, 혹은 메타는 결국 메타이므로,

 

나는 '살았어야' 할 시간들을 '연명하며' 보내왔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은 성장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기 때문에....

 

하지만.

진실로 내게 허락된 것이라면.

다시 '살아나는' 시간들을 함께할 수 있다면.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그것까지도 짊어지고서도 마음을 열 수 있다면.

 

 

그러던 참이라 그랬는지, 난 참 좋게 읽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연애에 치중해 본 것도 같다.

어린 시절부터 이루고 싶었던 간절한 꿈, 소망,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과거에는 틀림없이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혹은 닳아버린- 것만 같은 반짝임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있었다. 결국 그런 모든 따듯한 것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끝!   

 

 

 

[발췌]

 

# 미쿠가 태어난 이후로 줄곧 곁을 지켜주던 사람은 편도로 인생 최후의 여행을 떠났다.

 

# 거기엔 허세나 연기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미아는 지금까지의 어떤 연애에서보다 스스로가 순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고 앞에서는 어른스러울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 예쁘게 꾸민 모습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리해서 꾸밀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좋다는, 묘하게 편안한 마음이다. 미아는 난생 처음으로 몸에 딱 맞는 옷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 안긴 채로 미아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변함없는 따스함이었다. 안심하고 몸을 맡기며 미아는 깨달았다. 자신은 겁쟁이였다. 누구를 좋아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겁먹고 있었다. 언젠가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미아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기 한 몸만 생각하는 연애를 해왔다.

 그러나 신고는 달랐다. 있는 그대로의 미아를 받아들여 주었다. 미아도 그런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이 연애의 끝이 어떻게 될지 미리 근심할 필요 같은 것도 없었다.

 

 

- 스포 포함 문구 -

 

 

 

# 그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며 미오는 인연이 참 신비롭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가 인생 속에서 단 수 시간만을 함께 보내고 떠나간다.

 

# 케이시가 미오의 팔을 잡았다. 둘이 어깨를 기대고 걸으면서 미오는 그의 왼쪽 팔목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갖다 대었다. 지금도 두 시계는 1초조차 다르지 않게 똑같은 시각을 지나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도록 맺어진 것 같았다.

 이 시계가 가리킬 시간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미오는 생각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느 쪽이든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래도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미오는 생각했다. 꿈은 언제라도 불확실한 미래 안에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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