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올리버 색스 / 김한영
출판 : 알마
출간 : 2013.06.30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나날들이다.
물론 실용적인 것들을 추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삶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하기보다, '즐거우니까' 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뒤에는 그런 생각도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행하고 감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자듯이 그렇게 성장하며 거스름 없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뜬금없이 하게 된 것은,
독서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섞여 버려서인 것 같다.
<환각>은 대체로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어렵거나 복잡한 부분은 많지 않다.
어쩌다 눈이 헛돌 때에는 잠시 덮었다 다시 읽으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소 챕터의 제목들은 상당히 자극적이지만 (헛것이 들리는 사람들, '신성한' 질환, 기면증과 몽마, 귀신에 붙들린 마음 등)
저자를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약물로 인한 환각 부분에서는 <해시시 클럽>과 <어느 아편중독자의 고백 - 국내 번역 제목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 언급되는데 드퀸시는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니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https://illusionofmoon.tistory.com/72
[토머스 드 퀸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 때 심한 편두통과 그로 인한 전조증상이 있었다.
저자인 올리버 색스와 그의 어머니도 편두통 환자였는데, 그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서술해놓은 부분을 읽으며 상당 부분 공감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고 즐겁게 읽었다. 특히 주석 부분을 많이 메모해두었는데- 후에 더 찾아봐야지 하고 덮어둘 것만 같다...
많은 것들을 건드리며 일단 걸쳐놓았으니까- 하는 위안과 도피를 벗어나
하나라도 일정 수준 이상에 달할 때까지 파고드는 끈기를 가질 수 있는 하반기가 되기를 바라며.
최근 리뷰들은 특히나 리뷰라기보다는 주절 주저리가 되는 기분인데, 이런 시기도 나쁘지만은 않다.
각을 잡기에는 소화불량 상태니 일단은 읽고 익히는 쪽에 중점을 두기로 한다.
인풋을 욱여넣다 보면 정리가 되어 아웃풋이 쓰고 싶어지는 날이 오겠지.
- 환각이라는 단어의 엄밀한 정의는 지금도 상당히 다양한데, 주된 이유는 환각, 오지각, 착각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데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각은 외적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지각 표상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경우에 환각이라고 한다.
- 인간은 다른 동물과 공통점이 많다. 예를 들어 음식과 물, 수면 같은 기초적인 욕구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우리에게는 인간 특유의 정신적, 감정적 필요와 욕구가 있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초월하고 도취하고 도피해야 한다. 우리는 의미와 이해와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이 영위하는 삶의 전반적인 경향을 알아야 한다.
- 실제의 기억이나 경험이 재활성된다는 펜필드의 개념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기억이 프루스트의 식료품실에 진열되어 있는 절임 과일 병처럼 고정되거나 동결된 것이 아니라, 회상이라는 행위를 할 때마다 변형, 해체, 재조합, 재분류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이 실험들을 통해 바틀릿은 "기억 memory"이라는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상기 remembering"라는 동적인 과정에 근거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 입면 환각이 상상력을 확대시키고 풍부하게 해 준다고 느낀 포는 환각을 겪는 동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본 특별한 것을 메모했고, 그 기록을 자신의 시와 단편소설에 집어넣었다. 포의 위대한 번역자인 보들레르도 환영의 독특함에 매료되었고, 아편이나 해시시로 효력을 더하곤 했다. 19세기 초에는 (사우디와 드퀸시뿐 아니라 콜리지와 워즈워스까지 포함하여) 한 세대 전체가 환각의 영향을 받았다.
- 나도 그런 경험을 점점 더 자주 한다. 언젠가 나는 침대에서 기번의 자서전을 읽고 있었다. 1988년 당시에 나는 청각장애인들과 그들의 수화법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많이 읽고 있었다. 그리고 1770년 런던에서 한 무리의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로 활발히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장면을 그린 기번의 놀라운 묘사를 발견했다. 나는 즉시 그 구절이 내가 쓰고 있는 책에 멋진 각주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기번의 묘사를 다시 읽으려고 찾았을 때 그 대목은 온데간데없었다. 본문의 두 문장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글을 환각으로 보았거나 꿈으로 본 것이 분명했다.
- 많은 종교 전통에서는 묵상이나 명상법을 이용해 왔으며(신성한 음악, 그림 또는 건축을 곁들여서), 그 목적은 환각적인 상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했다. 앤드루 뉴버그와 여러 학자들이 입증한 바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명상 수행을 하면 주의, 감정, 몇몇 자율 기능에 관여하는 뇌 부위의 피질 혈류량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 특이한 정신 상태 중 가장 흔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 (수많은 의식, 문화와 사회에서) 가장 '정상적인' 상태는 영적으로 동조된 의식, 즉 초자연성이나 신성을 물질적이고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의식 상태다. 민족학자인 T. M. 루어만은 탁월한 저서 <신이 답할 때 When God Talks Back>에서 이 현상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게 조사했다.
루어만의 예전의 책은 현재 영국에서 주술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었고, 그 책을 쓰기 위해 그녀는 그들의 세계에 아주 깊이 들어갔다. "나는 인류학자를 따라 했다. 그들의 세계에 참여하고, 그들의 집단에 합류했다. 그들의 책과 소설을 읽었다. 그들의 기술을 몸소 행하고, 그들의 의식에 직접 참가했다. 그리고 그 의식들은 대개 상상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그룹의 지도자가 말하는 이야기를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흥미롭게도 이 기술을 1년 정도 훈련하자 그녀의 심상은 더 분명해지고 세밀해지고 입체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중 상태는 "더 깊어지고, 평소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 자기상의 분신은 말 그대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어 있고, 자세와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한다. 분신은 순전한 시작적 현상이며, 독립적인 정체성이나 지향성은 전혀 없다. 분신은 욕구도 없고 주도권도 없다. 다시 말해, 분신은 수동적이고 중립적이다.
- 환상지와 다른 환각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환상지가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반면, 시각 및 청각 환각은 통제를 벗어나서 자율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있다.
- 이를 통해, 생리학적 차원에서 시각적 심상은 시각 환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자발적인 시각적 심상이 사용하는 하향식 처리 과정과는 달리, 환각은 복측 시각 경로 부위들이 직접적이고 상향식으로 활성화된 결과다. 이 부위들은 정상적인 시각적 입력 정보가 없으면 쉽게 흥분한다.
- 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문화는 환각성 약물을 찾고, 무엇보다 신성한 목적에 그것을 이용할까? 이는 새로운 생각이 아니다.
- "올리버! 도대체 뭘 먹은 거야?"
"아무 것도 안 먹었어. 그래서 이렇게 무서워하고 있어."
캐럴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뭘 끊은 거니?"
- 유디트 바이스만은 <두 마음에 관하여 : 목소리를 듣는 시인들 Of Two Minds : Poets Who Hear Voices>에서, 특히 시인들이 직접 말한 내용에 근거하여 분명한 증거를 제시한다. 호머에서 예이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들이 단지 비유적인 의미로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청각적인 음성으로 들리는 환청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 루이스 캐럴은 전형적인 편두통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캐로 W. 리프먼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캐럴의 편두통 경험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크기와 형태의 낯선 변형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고 시사했다.
- 그 후 데이비드 C. 테일러와 수전 M. 마시는 Z박사의 흥미로운 생애를 자세히 서술했다. 그는 아서 토머스 마이어스라는 유명한 내과의였고, 그의 형제인 F.W.H 마이어스는 심령연구협회를 창설했다.
- 정상적인 상황에서 냄새를 상상하는 능력은 그리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장면이나 소리를 상상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냄새를 명확히 상상하지는 못한다. 상상으로 냄새를 맡는 능력은 보기 드문 재능으로, ...
- 음악 환각은 매우 다르다. 음악에서는 별개의 기능 체계들이 음성, 음색, 리듬 등을 지각하지만 뇌의 음악적 신경망은 함께 일하므로 어떤 곡의 멜로디나 템포나 리듬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면 반드시 음악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악곡을 전체로 이해한다.
- 이전에는 초월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생각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사람도 무아경 발작을 겪으면 믿음의 기초나 세계를 보는 눈이 흔들린다. 그리고 열렬한 신비적, 종교적 감정, 다시 말해 신성한 존재에 대한 느낌이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런 감정에 생물학적 기초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겪은 수학적 섬망이 생각났다. 그는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불가능할 정도로 큰 숫자들과 씨름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 마브로 마티스의 한 환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졸고 있거나 잠들기 전... 책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활자를 선명히 보고 단어들을 구분하지만 거의 의미가 없는 듯하다. 내가 읽고 있는 것 같은 책은 전혀 익숙하지 않지만, 그날 읽고 있던 어떤 주제를 다루곤 한다."
- 나중에 루어만은 복음주의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성, 하나님의 본질은 비물질적이다. 신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그녀는 의아하게 여겼다. 이렇게 증거가 부족한데도 어떻게 신은 그렇게 많은 복음주의자들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삶에 현실적이고 친근한 존재가 되었을까?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실제로 신의 손길을 느끼고 목소리를 크게 들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꼈고, 신이 실제로 존재하며 분명 그들과 나란히 걸어 다닌다고 한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기도와 영적 수련을 강조하는데, 그 기술을 읽히려면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런 기술은 실제의 경험이든 상상의 경험이든, 자신의 경험에 완전히 빠지고 충분히 몰입하는 성향이 있으면 더 쉽게 익힐 수 있다. 그 능력은 "마음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 소설을 읽는 사람이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나 일요일에 산을 타는 사람이 상상이나 감상에 몰입하는 방식"이라고 루어만은 정의했다. 몰입 능력은 연습을 통해 갈고닦을 수 있으며, 기도할 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도의 기술은 종종 세부적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집중된다.
- 켄터키 대학교의 케빈 넬슨과 그의 연구팀은 유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대뇌의 혈류량이 감소할 때 의식이 해리되고, 깨어 있는 상태인데도 대상자들은 몸이 마비되고 REM 수면의 특징인 꿈같은 환각에 빠진다. 이 상태는 수면 마비와 비슷한 점이 있다. (임사 체험은 수면 마비에 잘 걸리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특징이 있다. 넬슨이 생각하기에는, "어두운 터널"은 망막으로 가는 혈류의 감소와 일치한다. (이는 시야의 수축 또는 터널 시야를 일으키는데, 조종사들이 중력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끔 이 현상을 겪는다.) "밝은 빛"은 뇌간의 한 부위(뇌교)에서 피질하 시각 중계소들을 거친 뒤 후두 피질로 이동하는 뉴런 흥분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고 넬슨은 추측한다.
- 블랑케는 한 환자를 대상으로 우뇌 각회(두정엽과 측두엽의 윗부분)의 특정 부위들을 자극하면 어김없이 유체이탈 체험을 하는 것을 입증했다. 환자는 몸이 가벼워지면서 공중에 뜨는 느낌과 함께 신체상의 변화를 겪었는데, 두 다리가 "점점 짧아지면서" 얼굴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블랑케 등은 각회가 신체상과 전정 지각을 중재하는 회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곳이고, "자아와 육체의 해리 경험은 신체에서 오는 정보를 전정의 정보와 통합하지 못한 결과"라고 추측한다.
-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없으나) 믿음의 대상을 지성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의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감지되는 유사 감각적 실재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동물적 감각은 위협을 감지하기 위해 진화했을 테지만, 종교적인 열정과 확신에 대한 생물학적 기초로서 인간의 고결하고 초월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타자', '존재'는 신의 현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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