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켈리 링크] 초보자를 위한 마법

일루젼 2022. 4. 25. 08:08
728x90
반응형

저자 : 켈리 링크 / 이은정

원제 : Magic for Beginners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07.12.20 


       

다 읽고 책 정보를 확인하다 보니 평가가 상당히 낮은데...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을까? 이 작품은 수작이다!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근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Stranger Things Happen>는 발간이 취소되었던 모양이다.

 

잘못된 권위에 기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휴고상과 로커스상(현재는 명칭이 변경되었다) 수상 작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어슐러 르귄, 아이작 아시모프, 톨킨, 아서 C. 클라크, 코니 윌리스, 로저 젤라즈니, 조지 마틴, 롤링, 닐 게이먼, 나오미 로빅, 커트 보니것, 필립 K. 딕, 프랭크 허버트, 류츠신, 테드 창, 이윤하 등등 창창한 작가들을 알린 상들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수여되는 뉴베리와는 달리, 휴고상과 네뷸러상은 SF&F의 영예다. 특히나 휴고상은 독자들이 뽑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내 경우에는 취향과 잘 맞는 편이라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찾아 읽기도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기대에 걸맞은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만족도는 개인의 영역이고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충분히 평가가 갈릴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조금 의아하긴 하다.  

(당연히 '재미가 없다'는데 '이건 수상작이니까 당신도 재미가 있어야 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나의 의문은 '이 책이 재미있는 사람이 이렇게 없었다고?'에 가깝다.)  

 

시기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나도 오래전 처음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을 읽고 '표제작을 제외하면 그냥 그렇다'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혀가 길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무척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미지로 받아들이면 기묘한 기분이 들었고,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또 다른 대표작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출간되지 않아 안타깝다.         

 

 


 

- 고양이 가죽 : 메르헨의 잔혹화.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에 관한 시각으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 요정 핸드백 : 주머니 또는 가방으로 연결된 이 세계는 종종 보이는 설정이지만, 그것을 현실적인 시각에서 엮어가는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다. '절대로 믿지 말라'는 화자의 당부와 '사물에는 수명이 있다', '제대로 발음해서는 안된다'는 설정들이 각각 떠오르는 민족성들과 연결되어 더 몰입하게 한다. 산 위와 산 아래의 시간 흐름이 달라 하룻밤 만에 백 년이 흐른다는 내용도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 멋진 이혼 : 산 자와 죽은 자의 결혼이라는 설정을 두고 영매를 매개인으로 해서 상황을 풀어나간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환상적이고 유쾌하지만, 결혼 후 상대 배우자를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하는 위기의 부부를 덧씌워 읽으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게 된다. 여러모로 즐겁게 읽었다.

 

- 호르트락 : 터키어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경계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이미지적인 소설이다. 이 단편에서 등장하는 좀비와 잠옷, 수렁의 상징을 세세히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숙자들로 가득 찬 슬럼가, 매일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그런 곳에 위치한 황량한 도로 위 단 하나의 불빛 같은 편의점(혹은 잡화점). 개를 사랑하지만 매일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견들을 안락사시켜야 하는 찰리. 켈리 링크의 소설들은 그 자체가 주는 이미지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한번, 다 읽은 후 그것이 꼬집고 있는 현실과 겹쳐보면서 다시 한번, 오싹하다. 

 

- 대포 : 샤갈의 그림들이 떠오르는 밝은 소설. 하지만 대포를 메타포가 아닌 현실로 해석하게 되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성으로 한 번, 실제로 사람을 쏘는 대포로 두 번. 

 

- 돌로 만든 동물들 : 환상 소설의 형식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생각해 볼 지점들은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페인트 - 제대로 되지 않은 식생활, 좋지 않은 환경, 취한 상태에서의 환각과 뒤섞이는 감정.

 

  두 번째는 토끼 - 사람과 토끼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들이 나오는데, 발 밑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암시할 수도 있고 진짜 주인이 어느 쪽인지의 관점으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그것들을 조종하는 작은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는 저자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개미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아일랜드 적인 의미로 요정과 작은 사람들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석상 -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은 처음 집을 계약할 때 등장하는 토끼 모양 석상이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토끼들이 과연 실재하는 토끼일까? 이 이미지는 일본이나 아시아권에서 집 문 앞에 조각해두는 돌 수호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중 인물의 대사 속에 등장하는 '오이시' 등의 일본에 관한 묘사를 생각해 볼 때도 그렇다.) 얼마 전 읽은 <시시리바의 집>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현실적으로, 교외에서 힘겹게 출퇴근하는 육아에 지친 부부를 덧씌워 읽어보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해질 것이다. 

 

- 초보자를 위한 마법 : 이야기 속의 이야기. 한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그 안에 등장하는 또다른 TV 드라마의 줄거리 속으로 녹아든다. 독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처음에 언급된 설정을 잊고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다가 순간 당황하게 된다.  

 


   

- 한때는 열두 명이 넘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 당시 마녀에게는 아이가 셋 있었다.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마녀도 자기 아이들 수를 세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마녀의 집은 고양이와 아이들로 넘쳐났다. 마녀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녀들의 자궁은 지푸라기와 벽돌, 돌멩이들로 가득했고, 어쩌다 출산을 하더라도 토끼나 병아리, 올챙이, 집, 실크 드레스 밖에는 낳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녀는 후손을 얻고 엄마가 되고 싶어 했고, 그 때문에 다른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아이를 훔치거나 돈으로 사 오는 것이었다. 마녀는 특정 계열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들을 선호했다. 단 쌍둥이는 기피했는데, 불길한 마법에 걸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체스 말처럼 한 세트로 아이들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은 마녀의 가족이라기보다는 마녀의 체스 세트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이런 점은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하지만 말이다.

 

- 어떤 여자 아이는 마녀의 허벅지 위에서 종양처럼 길러졌고, 다른 아이들은 정원에 굴러다니던 잡동사니 속에서, 닭고기 기름이 붙은 알루미늄 호일이나 고장 난 텔레비전 세트 안에서, 혹은 이웃이 내다 버린 종이 상자 같은, 고양이들이 물어온 쓰레기 안에서 길러졌다. 그녀는 그렇게 항상 검소했다.

- 마녀의 복수 가죽 속에는 개미들이 우글거렸고, 솔기 사이로 계속해서 개미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개미들은 시트 안으로 들어와 스몰을 깨물었고, 팔을 타고 내려가 체모가 자라고 있는 가랑이 사이를 깨물며 그를 괴롭힌다. 스몰은 마녀의 복수가 깨어나, 방으로 들어와 그의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온몸을 핥아주는 꿈을 꾼다. 유리창이 녹아내린다. 다시 개미들의 행군이 시작되고, 그들은 미끄러운 흔적을 길게 남기며 사라진다. 

 

-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침대 위로 쏟아진다. 마녀의 복수는 몹시 아름다웠다. 달빛을 받은 모습이 여왕처럼, 칼처럼, 불타는 집처럼, 혹은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녀의 털이 반짝인다. 그리고 수염은 바늘땀을 잡아 빼 왁스를 바른 실처럼 보인다. 마녀의 복수가 말한다. 
"너희 엄마는 죽었어."

 

- 마녀의 복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며 꼬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어. 그러면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니? 네가 지금 나한테 뭘 해달라고 한 줄 알아? 제발, 내일 밤에, 내일 밤에 다시 이야기해." 
스몰은 그 정도의 대답에 만족해야 했다.  

 

- <고양이 가죽>

 

 

- 나는 친구들과 종종 재활용품 가게에 들르곤 했다. 보스턴까지 기차를 타고 나가 의류상가 거리로 가면 어마어마하게 크고 오래된 중고 의류 도매점이 있다. 그곳의 물건들은 색깔별로 진열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쓸 만해 보였다. 도매점을 거니는 것은, 이를테면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 속을 걸어 다니는 것과 유사했다. 아슬란이나 하얀 마녀, 끔찍한 유스타스 대신 마법의 옷으로 가득한 세계를 만나긴 하지만 말이다. 

 

- 우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건에도 삶의 주기가 있다고 믿었다. 웨딩드레스와 모피 목도리, 티셔츠와 신발, 그리고 핸드백 등은 삶의 주기에서 중고 의류점을 반드시 거쳐 간다. 아직 쓸 만하거나 유행에 뒤떨어진 정도라면 그 옷들은 죽음을 맞이한 후 마지막으로 중고 의류점에 가게 되는 것이다. 옷이 죽었다는 것은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옷을 사서 세탁한 후 다시 입으면, 새 주인의 체취가 배기 시작하면서 옷은 환생한다. 어쨌든 어떤 물건을 찾고 있다면 그걸 발견할 때까지는 계속 찾아다녀야 한다.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찾아야 한다. 

 

- 요정 핸드백의 정확한 이름은 발더지우르레키탄 말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라는 뜻의 오르지파니카닉츠쯤 될 것이다. 할머니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똑같이 발음하지 않았다. 도리어 철자를 조금씩 바꿔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

"절대 제대로 발음하면 안 된다. 그러면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

 

- "난 그 사람이 떠났다고 생각했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후로 이십여 년 동안 난 할아버지가 나와 네 엄마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떠난 줄 알았단다. 아무렇지도 않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는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참이었거든.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고 내가 원할 때 청소하고 싶었어. 네 엄마에게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난 괜찮았어.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한 건 바로 그거였지. 근데 그 사람은 도망친 게 아니었어."

 

- 나는 제이크가 똑똑해서 그를 좋아한 건 아니다. 나도 꽤 똑똑한 편이다. 똑똑하다고 해서 다 착한 것은 아니며, 심지어 똑똑할지라도 상식이 풍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스스로 빠지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 루스탄도 다시 나타나 조피아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할 것이며, 아마 그때는 용감하게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것이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말이다. 물론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믿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도 믿지 않겠다고, 부디 나에게 약속해달라. 

 

- <요정 핸드백>

 

 

- 옛날 옛적에 죽은 아내와 사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는 죽은 몸이었고, 이후 십이 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아이 셋을 낳는 동안에도 그녀는 죽은 몸이었다. 세 아이도 모두 죽은 몸이었다. 또 앞서 말한 그 세월 동안,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닐까 남편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도 물론 그녀는 죽은 몸이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결혼하는 관습이 생긴 지는 이십 년이나 되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흔한 일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과의 이혼은 더욱 드물었다. 그보다는 결혼을 후회하는 살아 있는 남편(혹은 살아 있는 아내)이, 스스로 인정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배우자의 존재를 이제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를테면 조강지처가 죽은 사람일 경우 남자는 쉽게 중혼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중혼이랄 수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이종 결혼을 끝내기가 쉽지 않아다. 앨런 로블리(살아 있는 사람)와 라비에 타일러(죽은 사람)는 <뉴요커》> 저명한 영매이자 결혼 중매인 집에서 열린 칵테일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그들은 보수적인 종교단체들의 눈총을 감내하고 십삼 년을 살아오면서, 죽음보다도 끔찍한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앨런과 라비에 부부의 아이들은 가정용 플랑셰트(두 개의 작은 고리와 연필이 달린 심장 모양의 판, 손가락을 얹어 생긴 모양이나 글자로 잠재의식이나 심령 현상 등을 읽어내는 데 쓰인다 - 옮긴이)와 위저 점판(심령술에 쓰는 문자 기호판 - 옮긴이)을 이용해서 아빠에게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는데, 마침 디즈니랜드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특별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매는 그들 부부가 디즈니랜드에서 만나는 것을 허락했고 디즈니랜드는 집에서 버스로 십오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 "당신 어머니가, 아, 몹시 바쁜가 봐요." 세라가 말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됐네요, 앨런, 네 시에는 다른 약속이 있어요. 참, 라비에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대요."
사실 라비에는 앨런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세라는 자신이 무슨 말을 꾸며내 하건 라비에가 개의치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더 낫지만, 알더라도 웃어넘기고 말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 세라는 문득 시간이 나면 죽은 사람들을 위한 에티켓 책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비록 그 책을 읽는 것은 산 사람들이고, 감춰야 할 부분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아니, 최소한의 베일만 강제로 들춰내지 않으면 될 것이다. 세라는 언젠가 한 역사학자(그가 산사람이었던가 죽은 사람이었던가. 어쨌든 지금은 분명 죽은 사람이다)와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물론 과거는 지금과 달랐다. 놀이공원의 모습도 달랐고 입장객의 줄은 더 길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보다 더 과거를 돌이켜볼 줄 모른다. 역사학자는 과거의 모습을 알기 위해 그 시대에 출간된 에티켓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일 에티켓 책에, 빈민굴에서 가서 인간의 똥을 집어 들며 색깔과 크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교양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적혀 있으면, 그 시대 사람들이 자주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금기시했던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세라는 역사학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 <멋진 이혼>

 

 

- 찰리는 그리스 연극에 등장하는 엘렉트라나 카산드라 같은 여주인공처럼 생겼다. 자신이 사랑하던 도시에 방금 불을 지른,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개들의 정체를 알기 전부터 에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 바투는 찰리에게 수작을 걸려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는 찰리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저 에릭이 찰리를 좋아해서 그녀에게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바투는 찰리의 신상에 대해 궁금해했다. 에릭에게든 올나이트 편의점에는 찰리가 괜찮은 여자인지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많은 사안들이 걸려 있었다. 

 

- "모르겠어요." 에릭이 말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바투를 쳐다봤다.

"서른다섯? 마흔?"
바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너도 알겠지만 난 잠을 줄이기 시작했어. 그래서 더 이상 늙지 않는 거지. 난 점점 젊어지고 있어, 하지만 넌 꼬박꼬박 잘 자고 있으니 머지않아 우리는 나이가 똑같아질 거야. 이봐, 여기 좀 보고 어떤지 말해줘." 

 

- "그럼 우리 이 문제는 정리가 된 거지? 혹시, 아직도 내가 널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날 속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정말로."

에릭은 이렇게 말하면서 재킷을 걸쳐 입었다. 
"모자도 쓰는 게 좋을 거야. 바깥공기가 쌀쌀하니까. 알다시피 넌 내 아들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모자도 쓰라고 잔소리하는 거야. 만일 내가 너를 속인다면 그건 너를 위해서야. 난 너를 아들처럼 아껴. 에릭, 언젠가는 이 모든 게 네 것이 될 거야. 나를 믿고 내 말대로 해. 내 계획을 믿어." 

 

- <호르트락>

 

 

- "무슨 말이야?" 헨리가 물었다. 그는 자명종을 바라보았다. 새벽 4시였다. 

"우리가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는 거지?"
"난 가끔 둘 중 하나를 편애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워." 캐서린이 말했다.

“내가 틸리를 더 예뻐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틸리가 침대에 오줌을 쌌기 때문이야. 틸리가 항상 화를 내기 때문이고, 어쩌면 칼턴을 더 예뻐하는지도 몰라. 그 앤 어렸을 때 심하게 병치레를 했으니까." 
"난 두 아이 모두 똑같이 사랑해." 헨리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캐서린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남편이 두 아이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 캐서린은 전문가용 카탈로그를 보고 페인트를 주문했다. 색상 이름은 모두 <보바리 부인>이라든지 <앰버 연대기>, <화씨 451>, <양철북>, <초록색 커튼>, <해저 2만 리> 같은 유명한 소설이었다. 캐서린은 지금 자신이 대학교에서 수없이 가르쳤던 소설 이름을 딴 '캐치-22'로 벽을 칠하고 있다. 수업은 언제나 반응이 좋았다. 페인트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 <돌로 만든 동물들>

 

 

-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엄마가 말씀하시 않으셨어요? 폭스가..."
"이런." 아빠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놈들이 폭스를 죽인 게로구나."
작가라는 직업에는 이런 단점이 있다. 아무리 대단하고 놀라운 반전도 그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다. 소설가는 어떤 이야기든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하고 있다. 

 

- <도서관> 에피소드 중에는 모든 등장인물이 투명인간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배우들은 아무도 볼 수 없다. 보이는 거라곤 책과 책꽂이, 5층에 있는 개인 열람석, 그리고 그곳에 와서 재롱도 피우고 마술을 부리기도 하고 동전을 움직이기도 하는 마법사뿐이다. 투명한 금서들은 투명한 해적 마법사들과 싸우고, 해적 마법사들은 투명한 폭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과도 싸운다. 싸움은 어설프기도 하고 치명적이기도 한 사고의 연속이다. 그들이 싸운다는 것은 소리로만 알 수 있다. 책꽂이가 넘어가고 책들이 아래로 쏟아진다. 투명인간들은 투명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만 다음 에피소드를 보기 전까지는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 또 다른 에피소드에선 폭스가 자유시만 세계수 도서관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카바레에서 유명한 예언자 소녀 밴드인 '더 노른스'로부터 마법의 약을 훔쳤다. 그녀는 우연히 그 약을 몸에 주사했는데 임신이 되어 뱀을 한 무더기나 낳았다. 뱀들은 폭스를, 변절한 사서들이 실수로 잘못 꽂아둔 무시무시한 마법에 대한 고문서(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었다)가 있는 책꽂이로 데려갔다. 폭스는 뱀들에게 번역을 요청했다. 그러자 뱀들은 바닥에서 몸을 비틀어대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뱀들은 쉬쉬거리고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폭스를 위해 책을 번역해주었다. 그러다 긴 몸뚱이에서 불길이 솟고 나중에는 완전히 몸이 타버렸다. 그 모습을 본 폭스가 울부짖었다. 폭스가 우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폭스는 툭하면 어린아이처럼 우는 윙 왕자와는 달랐다. 

 

- "꿈속에서 말해줘 봤자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엘리자베스판 폭스가 말했다.

"깨어 있을 때 잊지 말고 나에게 전화해요. 나랑 연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해요." 
"어떻게 해야 내가 당신에게 전화하는 걸 잊지 않을까요?" 제러미가 말했다.

"꿈속에서 당신이 한 말조차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말이에요. 탈리스는 왜 여기 있죠? 그녀의 티셔츠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왜 당신들 둘 다 폭스죠? 그럼 난 마르스인가요?"

 

- "설령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라도 일부는 진짜일 수 있어." 에이미가 말했다.

"세계수 도서관이 진짜 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니면 <도서관>은 허구일지라도 폭스는 작가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모델로 쓴 건지도 몰라. 작가들은 언제나 그렇잖아, 그렇지? 제러미, 너희 아빠도 나를 모델로 책을 쓰셔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이언트 거미에게 먹혀도 좋아. 아니면 자이언트 거미와 섹스를 하고 거미 새끼를 낳아도. 그러면 굉장히 멋질 것 같지 않니?" 
본인은 절대 모르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에이미에겐 심령 능력이 있었다. 제러미도 자신의 잠재 능력도 시험해보건대, 지금 거실 밖에서 서성대며 이런 대화를 엿듣고 심지어 종이에 적기까지 하고 있는 아빠를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작가들이 제 머리에서 나와서 쓰는 글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제러미는 진짜 심령술사가 아니었다. 서성거리거나 숨어 있다가 상대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는 것은 도둑질이나 요리와 마찬가지로 아빠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제러미는 어둠의 신들에게, 남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능력은 절대 갖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다. 그것은 어둠의 길이었다.   

 

- "그럼 훔쳐야 할 책 세 권을 말해줄게." 폭스가 말했다. 

"저자와 제목, 그리고 주얼리 페스티벌 번호(Jewelly festival number)는..."
"듀이 십진법(Dewey Decimal)이죠. 실제 도서관에선 듀이 십진법 분류라고 불러요." 

 

- <초보자를 위한 마법>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