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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3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저자 : 오스카 와일드 / 박명숙원제 : De Profundis출판 : 문학동네출간 : 2015.05.02      불현듯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걸 느낄 때, 그리고 사실은 소유하고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감사함과 함께 부끄러움을 감각한다.  욕망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것'만 가지면 모든 게 좋아질 것만 같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해낸 적 없던 일들을 척척 해낼 수 있을 것만 같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 문제들도 모두 매끄럽게 풀려나갈 것만 같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저것'을 얻지 못하면 다른 이들에..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저자 : 구병모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18.11.10 이 책을 읽은 지 근 한 달 정도가 지났다. 발췌문을 정리하며 생각한 것은 무언가를 접한 직후와 시일이 지난 후 감흥이 변해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발효와 부패를 나누는 기준은 오직 '인간의 이익'일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리 만이 영원하다던가. 인간의 기억은 날카로웠던 문장과 그 순간 진동했던 감정들을 쉬이 잊는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짤막한 한두 문장 혹은 한두 단어를 접하는 순간 그 전체가 즉시 되살아나기도 하는 것이다. 은 이전까지 내가 읽었던 -몇 편 되지 않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어쩌면 저자가 발표한 모든 소설들 중 가장 자기 개인을 담아낸 작품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다작을 한다 ..

[루리]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저자 : 루리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2.03 한 번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친구네 딸에게 선물할까 싶어 잠시 알아보다 말았던 터라 평이 좋다는 정도 외에 다른 사전 정보는 없었는데, 색감이 예쁜 표지를 보고 혹시 만화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리고 펼친 첫 장. 밤하늘 위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첫 문장이 눈부시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은 한 권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누군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각자의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심사평에서 언급되었던 바처럼 "이 이야기를 '동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이가 있다면 꼭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노든이 앙가부에게, 치쿠가 노든에게, 그리고..

[강화길] 화이트 호스

저자 : 강화길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0.06.12 책더미 한 켠을 조심스레 허물었다. 지나간 것들은 떠나보낼 시기가 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행성 역행이 끝났다거나 음력 설이 되었다거나 하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나를 휘감고 있던 것들이 '툭'하고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맞는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기분. '강화길'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낯선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 작가는 이전까지 내가 반해왔던 작가들과는 결이 다른 스타일인데, 이런 느낌의 소설은 무척 드물다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잘 짜여진 미스터리나,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환상 소설이 아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잔인할 정..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저자 : 심채경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2.22 춥다. 가능만 하다면 바로 월동에 들어갔을 날씨인데, 영하의 눈발을 헤치며 꾸역꾸역 출퇴근을 행하느라 아주 고역이다. (수많은 출퇴근러들에게 위로와 안부의 인사를 건네본다.) 원래 동일 조건에서 절대 온도가 내려가면 입자의 활동은 저해되는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굉장히 '느려진' 느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는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논다거나, 먹는다거나 모든 활동들이 평소의 몇 배는 걸리는 것 같다. 마치 물 속에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리 싫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심채경 저자의 는 21년도에 구매해두었던 책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올 겨울, 눈이 내리는 날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김홍중] 은둔기계

저자 : 김홍중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0.11.20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읽었다. 철학을 접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생각을 다듬는 칼을 얻는 것이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도록 거울을 닦을 천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은 저자가 말한 대로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다. 한 문장씩 끊어서 눈 앞에 걸어두고 한참을 곱씹어야 했다. 그런데도 좋았다. 특히 현시대에서 역사를 밀어낸 향유자로서의 주체를 설명하며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려 했던 부분과, 모든 선험은 후험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유행가를 통해 작품이 시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고찰했던 부분과, 그러므로 작품은 반영론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저자 : 정문정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3.10 읽는 동안 아픈 문장이 너무 많아 쉬어가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라는 의 첫 문장처럼 불행은 모두 제각각이라 그 크기와 성격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고통은 상상일 뿐이라, 누구나 자신의 경험이 가장 괴롭고 아플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왜 모른다는 이유로 디메리트를 받아야 하는지 분노했었다. 출발선상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는 게 아닌지, 태어나자마자 보육시설에 가둬놓고 키우지 않는 한 '똑같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비교'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절망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서울이나 경기권과 ..

[하라다 히카] 낮술 - ランチ酒

저자 : 하라다 히카 / 김영주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6.07 이나 같은 느낌. 음식에 대한 묘사가 너무 구체적이라 꼭 먹어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고구마 소주라면 '모리이조'나 '나나쿠보' 같이 향과 맛이 달큰한 쪽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한동안 안 마시던 청주나 법주 쪽이 끌린다. 의 주인공의 성장 과정과 그에 따른 서사는 적당한 무게감으로 매끄럽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서사가 없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꼭 사정이 있어야 낮술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예전에 '낮술은 마시고 깨도 환해서 계속 마실 수 있어서 좋아'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종이 서로 잘 맞았더라면 더 즐겁게 달릴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낮술은 가볍게, 취하지 않고 ..

[스노리 스투를루손, 프란츠 슈타센] 에다 - 오딘과 토르, 북유럽 신들의 운명과의 전쟁

저자 : 스노리 스투를루손/프란츠 슈타센/이경혜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19.02.27 가볍고 얇은 것들이 읽고 싶어질 때는 동화책이나 어린이용 도서만한 것이 없다. 지엽적인 나뭇잎에 집착하게 될 때, 큰 줄기만 남겨진 어린이용 도서로 읽으면 전체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자체로도 즐겁다. 삽화나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쉬운 길로의 도피이냐 아니냐는 이후 원전으로 더 나아가느냐 아니냐로 가름하면 될 것이다. 북유럽 신화들은 신족간의 전투와 협정이라는 장치를 통해 융합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 또한 그러하지만, 구전 문화의 특성상 남겨진 전승이 많지 않은 켈트 신화들은 기독교적 탄압과 맞물려 특수성을 띤다. 그 차이점들을 파고들어가는 것 또한 즐거움이겠다. ..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경계선 - Let the Old Dreams Die

저자 :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 남명성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7.30 경계선 언덕 위 마을 임시교사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마지막 처리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다른 책을 구매할 때 함께 구매했는데, 막상 받아볼 때까지 의 원작 소설 저자라는 건 몰랐다. 팔리기 위한 글쓰기-다시 말해 카피라이팅-에 대해 잠깐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결국 마케팅의 성공은 목표한 타깃이 마침 그 시기의 '다수층'과 잘 맞아떨어졌느냐의 문제 같다. 관심사는 계속해서 변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채널도 빠르게 변한다. '다수층'은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지속해서 변화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결국 내가 노린 '타깃'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가 마케팅의 핵심이라..

[미르치아 엘리아데]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저자 : 미르치아 엘리아데 / 이재실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1999.04.12 한 번 덮었다가 다시 도전해서 완독했다. 직전에 와 외 관련 도서들을 연이어 읽은 덕을 입어 그럭저럭 읽었다. 연금술과 야금술을 연속선상에 놓고 접근한다면 일반적으로 익숙한 '금을 만들어내기 위한' 집착이나 '깨달음을 얻어 신이 되기 위한' 구도나 '영생을 얻어 불로불사로서 천세만세를 누리기 위한' 탐욕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아야 한다. 연금술은 틀림없이 영지주의의 영향과 함께 스스로의 정화와 변성을 통해 '완전한' 것을 이루고자 한 'Magnum Opus'의 성격을 띄지만 야금술과 공유되는 부분을 살펴본다면 그 작업은 개인성보다는 자연과 섭리를 '돕는' 전체성과 신성에의 복종의 성격이 짙어진다. 그대로 두어도 '금이 될..

[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저자 : 이길보라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0.08.18 평가와 리뷰의 시대다. 별점과 좋아요와 하울과 각종 후기들이 컨텐츠가 되는 시대. 직접 가보지 않은 여행지의 숙소에서 어떤 어매니티를 제공하는지, 침구 브랜드가 무엇인지, 어떤 옵션이 가장 좋은지 각종 옵션별 상세 상태 사진과 변경 후기까지 볼 수 있는 시대. 모든 것이 그렇듯 장단점이 존재한다. 타인의 리뷰를 참고하는 경우, 흔히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손실을 막아준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손실'이라는 부분에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경험과 평가를 참고하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물품이 아닌 서비스나 체험에 대한 후기는 오히려 선입견을 키울 수도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경험에 대한 ..

[헤르타 뮐러] 숨그네

숨그네 (양장) -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문학동네 352쪽 | 203*137mm | ISBN(13) : 9788954610742 2010-04-05 숨그네. 이 단어는 헤르타 뮐러가 숨과 그네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들어낸 것이다. 한글로 만난 숨그네는, 두려워했던 것에 비해서는 다정하게 나를 태워주었다.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이것이 진짜 숨그네는 아닐 것 같다는 의심과 불안을 완연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첫 세 장을 읽어나가며 구체적이고 또렷한 모습을 갖춰나갔다. 숨그네의 시작은 한 아이의 시점에서부터 흘러간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의 성별을 모호하게 흐려버린다. 징발되었다는 말에서 남성인가 생각하면 바로 다음에는 대상으로 선정된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가 언급되며 다시금 모호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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