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간다.
갑작스레 생각이 나는 단어가 있다. 판타지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1세대 판타지라고 손 꼽히는 책을 모두 읽은 나 자신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뭐랄까, 갑작스레 나는 같은 자리를 뱅글 뱅글 맴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방랑자라고도 할 수 없는, 쳇바퀴 안에 갇힌 그런 자 같다는 생각이. '마법의 가을'. 평생 한 번 찾아온다는 후치 네드빌의 '마법의 가을'. 내게 1년의 중심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여름에 이루어졌으며, 그렇기에 찬란한 기억들은 대개 여름이었다. 가을이 왔고, 나는 나를 만났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누스'를 찾았다. 보통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어떻게 보일지는 알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해..